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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 인생 공부 - 오만과 냉정 사이, 천하를 가른 심리전 ㅣ 인생공부 시리즈
김태현 지음, 사마천 원작 / PASCAL / 2026년 5월
평점 :
인간 내면에 꿈틀대는 야수적 정신(animal sprit)이 표출되는 실체의 현장을 보는 것은 언제나 매혹적이다. 그것이 설령 반복되는 읽기여도 내 영혼은 그 적나라한 광경들에서 예기치 않은 삶의 지혜라는 수확을 건져 올리게 된다. 초한(楚漢)쟁투, 항우와 유방을 비롯한 걸출한 인물들이 발산하는 그 동물성과 그것의 미묘한 절제와 절충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빛나는 인간 존재에 대한 한 걸음의 이해는 지금 여기서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세상과 인간들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새로운 지대를 열어 보여준다. 사마천 『사기(史記』,의 변주된 이야기들인 『초한지』가 바로 그러한 이야기다. 이 책 『초한지 인생 공부』는 그 이야기들의 또 다른 관점에서의 해석이다.
‘인생 공부’라고 하지만 지은이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면 이 책은 2,200년 전 초,한(楚漢)이라는 시대적 무대를 “거대한 전장이기 이전에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충돌하는 ‘심리의 실험실’”로써, “인간학의 문법과 존재의 교과서”라는 표현이 오히려 적절할 것 같다. 인간 욕망과 권력의 미묘한 충돌, 혼란과 안정기의 두 다른 체제에서 변화하는 인간의 모습들, 리더의 태도와 자질이 빚어내는 인과의 상황들로부터 인간 존재의 무수한 갈림길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우리는 목격할 수 있게 된다.
‘초한지’는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토대로 하여 초한충돌 시대의 이야기들을 모아 각색한 이야기다. 따라서 기원전 3세기 중원의 역사를 말한다는 것은 곧 『사기(史記)』의 역사를 재구성, 해석하는 작업일 것이다. 이 책은 “역사적 사건과 대사는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기반하고, 문학적 장면 묘사는 『서한연의(西漢演義)』를 인용”하여 저자가 오늘의 시각에서 재해석한 “생존과 존엄, 권력과 사랑 사이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인간들의 내면 심리에 관한 보고서”라 할 수 있다.
이미 이 시대의 역사와 영웅들에 대한 내용은 사마천의 《史記本紀》와 《史記世家》 《史記列傳》을 통해, 그리고 장편소설로 재구성된 『서한연의(西漢演義)』의 무수한 아류본(亞流本)들인 ‘초한지’등을 통해 잘 알려져 있으며, 더구나 장국영, 공리가 열연한 첸카이거(陳凱歌) 감독의 영화 《패왕별희(覇王別姬)》로 익숙한 것이다. 또한 파부침주(破釜沈舟), 배수진(背水陣), 성동격서(聲東擊西), 사면초가(四面楚歌),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토사구팽(兔死狗烹)과 같이 비근하게 우리들 일상에서 사용되는 이들 성어(成語)들로도 전투(심리)전략, 인간 본성, 정치 책략 등 배후의 의미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학(人間學)이라 불릴만한 하나의 집적된 관점으로 이들 역사 속 인물들을 통해 상황의 변화에 따른 인간의 면모를 통찰할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오늘의 언어로 수려하게 한 시대의 역사 전체를 조망하는 관점에서 들려주는 이 책은 빠져들 수밖에 없는데, 아무렴 바로 우리들이 실제로 이 세상과 인간들의 관계에서 겪게 되는 경험들의 다채로운 형상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지극히 협소할 때 읽었던 『사기(史記)』 속 인물들과 그들의 행적은 그저 서사적 흐름이 주는 이야기의 재미와 흔한 교훈들을 주워 삼키는 것에 불과했던 것 같다. 이제 인간사에 대한 경험이 제법 싸인 지금, 진(秦)의 수도 함양을 복속시키고 난 후 승리의 축연 자리인 홍문연(鴻門宴)에서의 항우와 유방, 그네들의 책사 범증과 장량의 언행이 역사 행방에 얼마나 중대한 전환적 사건이었는지를 새삼스레 곰곰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과연 내가 항우였다면, 유방이었다면 어떤 결단을 내렸을까하고 상상의 자리에 참석해보기도 한다. 절대적 힘의 우위에 있다고 여겼던 항우의 미적거림과 달리 행동할 수 있었을까? 유방처럼 대담하게 자신의 죽음의 장소에 참석할 수 있었을까? 엄청난 우위의 힘을 가진 항우 앞에서 나는 어떻게 닥친 위기를 넘겼을까?
“지금 죽이지 않으면 후일 반드시 화를 입을 것입니다. (불자,약속개차위소로, 不者,若屬皆且爲所盧)” 라는 책사 범증의 말을 항우가 아닌 나라면 어떻게 수용했을까? 이 말은 훗날 항우를 포위한 역전된 상황에서 홍구화약(鴻溝和約)으로 일시적 휴전에 합의함으로써 다 잡은 항우의 숨통을 트여주려 할 때 ‘양호자유환(養虎自遺患)’, 호랑이를 길러 스스로 화근을 만드는 것이라는 유방 책사의 말로 변주되어 반복된다. 여기서 우리네가 빈번하게 망각하는 자성(自省)과 경청의 중대함을 발견하게 된다. “리더의 본질은 말하는 힘이 아니라 듣는 힘”이라는 것, 즉 리더는 귀가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력을 장악한 이들이 보이는 행보를 보면 자신의 권위를 내세운 일방적 말만 쏟아내는 현상을 보게 된다. 이 절대 우위 의식이라는 오만은 항상 실패를 몰고 온다. 폐쇄된 소통과 열린 소통, 이보다 보편적 진실의 감각이 어디 있겠는가.
진을 복속시킴으로써 천하를 쥔 항우가 “측근을 챙기고 잠재적 적들을 고립시키는 사실상의 정치적 숙청을 단행” 함으로써 험준한 산맥에 가로막혀 중원으로 나오기 힘든 파촉(巴蜀)지역 한중(漢中) 땅을 다스리는 한왕(漢王)으로 밀려나는 유방의 처지가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마음을 품게 될까. 책사 장량의 권유에 따라 지나온 잔도(棧道)를 불태워 오가는 길을 막아버리는 행위 속 정치적, 전략적 의미를 헤아리는 것도 쏠쏠한 흥미로움이다. 홍문연에서의 항우의 행위에서 드러나듯 그는 타인의 조언을 자신의 완벽함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자기애적 인물이다. 그 심리를 꿰뚫은 유방의 책사 진평의 이간계(離間戒)는 사마천이 “성인의 경지에 오른 지략가”로 평가한 책사 범증과 항우의 사이를 갈라놓는데 성공한다. “귀가 닫힌 자는 곧 눈도 먼다.”는 이 평범한 진실이 사실로 입증되는 현장이다.
절대적 힘의 우위에 대한 환상, 과거의 승리에 집착하여 상황 변화의 유연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폐쇄된 소통으로 고립되어 자만에 빠지는 실상들은 우리네의 일상 환경에서 즐비하게 목격되는 현상이다. 한미(寒微)한 집안 출신의 동네 건달이었던 유방이 대귀족 금수저 출신의 항우를 몰락시키는 것은 그네들의 출신성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람에 대한 태도, 상황에 대한 전체적 인식의 여부, 즉 겸허와 오만, 듣는 이와 말하는 이의 차이가 갈라놓는다.
하급 창고관리 병사에 머물던 한신의 출중한 전략술을 감지한 유방의 탁월한 행정책임자인 재상 소하의 수차례에 걸친 천거에 유방은 그를 대장으로 임명한다. 이때 한신의 확신에 찬 비전과 항우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의 언급이 그 까닭이 될 것이다. “항우가 준 땅이 아니라 백성이 주는 땅을 차지하십시오. 그러면 천하는 대왕의 것이 됩니다.” 소하가 유방에게 한신을 천거하며 했다는 말을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평생 한중의 왕으로 남으려 하신다면 한신이 필요 없겠지만, 천하를 다투고자 하신다면 한신이 아니고서는 이 일을 도모할 사람이 결코 없습니다.” 《사기열전》〈회음후열전〉
유방은 한신에게 중원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관중 땅의 정벌을 명한다. 여기서 한신은 그 유명한 동쪽에서 소리 내어 주의를 끌고 서쪽을 격퇴한다는 성동격서(聲東擊西)의 함정을 ‘명수잔도 암도진창(明修棧道 暗渡陳倉)’으로 변모시켜 가짜 행동 뒤에 숨겨진 진짜 기동의 전략적 의미를 보여준다. 잔도 수리에 적의 시선을 모아 놓고는 험난한 우회로를 통해 관중의 중심인 진창(陳倉)을 기습 점령하고 연이어 삼진을 평정해버린다. 유방이 얼마나 신이 났을까. 연이은 승리의 동력으로 유방은 한신과 함께 제나라 반란에 출정하여 빈집이 된 항우의 초나라 수도 팽성을 공격, 무혈 입성하기까지 한다. 손쉽게 얻은 승리(성취), 이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임을 다시금 목격하게 된다. 신중하고 절제를 미덕으로 하던 유방이 순간적으로 승리에 도취하여 절제력을 상실하고 상황을 방기하고 만다.

팽성 대전, 훗날 항우가 자결하는 초한(楚,漢)의 마지막 전쟁인 해하전투만큼 유명한 역사적 사건이다. 제후국들과 연합한 유방의 56만 대군에게는 급하게 비보를 전해 듣고 달려오는 항우의 정예기병 3만은 가소로운 것이었는지 모른다. 항우가 초패왕(楚覇王)이라는 천하의 군웅으로 이름을 얻게 된 거록전투에서 보인 타고 온 배를 모두 가라앉히고 솥과 시루를 깨부수고 막사는 불태우고, 식량은 사흘치만 남긴 채 돌아갈 길은 앞길만 있다고 적에게 쇄도하는 ‘파부침주(破釜沈舟)’의 결단은 실로 가공할 만한 심리 전술이라 할 수 있다. 〈항우본기〉에 사마천은 팽성대전의 참상을 세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한(漢)나라 죽은 병사가 10만, 초(楚)나라 군대가 영벽 동쪽 수수(睡水)까지 추격했다. 10만이 모두 수수로 빠지니 수수의 물이 흐르지 못할 정도였다.” 자연의 섭리마저 거스르게 했던 참혹함의 이 생생한 증언만큼이나 성공의 도취가 부르는 참사에 대한 경계의 교훈은 없을 것이다.
팽성의 참사와 동일한 유방의 실기로 형양 공방전이 있는데, 팽성의 참패는 유방 연합군의 와해 움직임을 초래한다. 위나라 위표가 배신한 것인데, 이것은 유방의 미래전략에 대한 큰 상처가 되었을 게다. 이를 급히 봉쇄하지 않으면 연합군의 연쇄적 이탈을 초래할 시발이 될 것이기에 한신을 좌승상으로 임명하며 위표를 칠 것을 명한다. 한신은 여기서도 명수잔도 암도진창(明修棧道 暗渡陳倉)술책을 감행한다. 위표의 주의력을 황하(黃河)나루에 집중시키고 정예부대를 이끌고 은밀히 상류로 이동, 뗏목을 타고 위의 수도 안읍을 기습, 위표를 생포함으로써 관중과 형양을 잇는 북방 제후국을 격파하는 교두보의 확보와 아울러 연합세력의 이탈을 방지하는 효과를 얻은 것이다. 적이 성동격서의 잘 알려진 교훈을 왜 망각하고 대비하지 못하는 반복된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일까? 바로 교만이다. 수적, 지리적 우위에 대한 자만이 이 뻔한 인식을 하지 못하게 한다. 인간의 우매함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방은 여기서도 반복된 실수를 하는데 형양성 함락의 승리로 다시금 도취되어 방어를 소홀히 한다. 형양은 항우의 초군에게 틈도 없이 완벽하게 포위되어 탈주의 희망이 사라지고 있었다. 기신이라는 충신의 자신이 유방 대신 죽겠다며 변장을 통한 탈출 양동작전으로 구사일생 형양 포위 망에서 벗어난다. 사마천은 기신의 행위를 《사기열전》에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충신이어서? 제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인물을 알아본 예지력 때문에?, 생명의 희생이 전달하는 인간의 고귀한 정신을 위해서? 나는 잘 모르겠다.
초한 전쟁의 가장 안타까운 인물은 한신임을 쉽사리 떨치기 어려운 데, 분노를 복수로 쓸지, 삶의 미래 설계를 위한 동력으로 쓸지 인간 존재의 방향을 가늠할 줄 알았던 냉정의 미학을 실천한 차가운 이성의 두뇌를 가진 인물이 왜 결정적 순간 자기 삶의 주체로서 행동하지 못했는가에 곤혹감마저 들게 하는 장수이기 때문이다. 내 단순한 결론은 유방이나 항우와 같은 동물적 영혼을 그는 수없이 압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야수적 욕망의 표출 말이다. 한신의 내면, 특히 “감정을 규율로 구조화한 인물”이라는 저자의 평가는 참신하고 탁월한 해석으로 여겨진다. “감정의 파도를 지적 구조로 재조립하여 이성의 설계도로 만들어” 낼 줄 아는 인물임에도 공이 커질수록 증가하는 권력자의 의심 속에서 장수가 스스로 자신을 지킬 방법을 냉정하게 구축하지 못했다는 것은 더욱더 그에게 동물적 감각이라는 야수적 충동의 표출 능력이 없었다는 심증을 강화시킨다.
한신은 많은 성어(成語)와 관련된 주인공이다. 이미 언급된 명수잔도 암도진창(明修棧道 暗渡陳倉)은 물론 배수진(背水陣), 토사구팽(兔死狗烹), 또 하나의 역사적 전투인 조나라 정벌에서 벌인 정형(井陘)전투에서의 전략이 바로 배수진(背水陣)이다. 사실 항우가 앞서 보인 파부침주(破釜沈舟)와 유사한 전술이다. 당대 전술에는 금기인 도망칠 길을 스스로 끊는 것은 전쟁의 전(戰)자도 모르는 어리석은 방책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장 자체를 하나의 무대로 계산한 치밀한 전략의 결과라는 점이다. 패배할 줄 모르는 전쟁의 신, 한신은 조나라의 격파에 이어 연과 초와 국경을 맞닿은 제나라까지 복속시키고는 유방에게 제나라의 가왕(假王)으로 봉해줄 것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이 임시왕 봉책의 사건은 한신의 소심함을 드러내 보여주고, 이 요청의 서신을 받은 유방의 불쾌함에서는 공적에 대한 인색함, 언제 적으로 둔갑할 줄 모르는 증대하는 힘에 대한 의심을 보게 된다.
가장 주목해서 골똘히 생각하며 읽게 된 장면은 이로 인한 한신이 겪는 갈등의 본질을 드러내는 그의 책사 괴통(蒯通)과의 대화이다.
“충성으로만 스스로를 지키려 하면 훗날 의심이 덮칠 때 구원할 논리와 힘이 없게 됩니다. (...) 제나라 땅은 전리품이 아닙니다. 이곳의 풍부한 경제기반과 병참의 지속성은 대왕을 지탱하기에 충분합니다. 반역을 꾀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냉혹한 안전 설계입니다. 한(漢)왕은 겉으로 기뻐하나 속으로는 이미 의심하고 있습니다.”
전승의 결과로 높아진 명성이 최고 권력자에게 곧 죄로 비칠 수 있음의 지적이고, 현실권력의 의심 앞에서 스스로 지킬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없다면 곧 죽음으로 돌아 올 것이라는 말이다. 사실 결과론적으로 우리는 역사를 알고 있기에 괴통의 진언은 인간사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라고, 그의 말을 듣고 초(楚)와 한(漢)과 제(齊)의 삼분지계(酸三分之堺)를 형성해야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신은 자신이 유방에게 충성을 다한다면 괜찮을 거라고, 수동적 무능성에 좌초되고 만다. 오 애재(哀哉)라, 토사구팽(兔死狗烹)은 인간사 만고의 진리인 것을!
이것은 한(漢)의 제국통일, 즉 적이 사라진 제도화된 국가의 정비 안정 상태에 이르렀을 때 “그대들은 모두 토끼를 잡는 사냥개와 같소, 소하는 그 사냥개들에게 토끼가 어디 있는지 알려준 사람일 뿐이오.” 라는 유방의 말처럼 모든 공은 한순간에 사냥 도구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유방의 행정 책임자인 소하의 말처럼 “왕의 신뢰는 언제나 경계와 함께 오는 것이며, 충성은 언제나 의심의 그림자 속에서 증명되어야 하는 것.” 이라는 이 깨달음의 음성은 어떤 조직이던 그 수장과 수뇌부와의 관계에 내재된 보이지 않는 인간학의 보편 법칙일지도 모른다.
“권력의 절정은 언제나 낭떠러지와 맞닿아 있는 것”이라는 인식 하에 권력자의 의심을 처리하는 태도와 방책들의 모범이랄 수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는 귀중한 지혜가 되어 줄 터이다. 소하와 실행의 결은 조금 다르지만 형식과 체면보다 생존과 실리를 중시하는 책략가 진평의 “권력자의 의심을 흡수하는 피뢰침” 같은 태도는 꽤 호감을 자아낸다.
“승상, 내가 다스리는 나라가 과연 평안하겠는가?
폐하의 마음이 평안하시면 나라 또한 평안해집니다.
모두가 좋다 하는데, 승상만 말이 없구나.
모두가 좋다 하면 그 안에 분명히 허점이 있을 것이옵니다.
승상은 참 이상하오, 내 마음을 읽는 듯하오.
폐하의 뜻이 곧 천하의 뜻 이옵니다.“ 《사기세가》 〈진승상세가〉
왕과 승상 진평의 이 대화 장면은 왕이 자신을 통제한다고 느끼게 하면서 실제로는 왕의 감정을 조율할 줄 아는 자의 가히 우아하기까지 한 조용한 통치의 예술을 보여준다. 침묵과 순응 속에서 왕이 폭주하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제동장치로서 역할, 칭송도, 간언도, 조언도 없지만 미묘하게 안심되는 진평의 대답에는 언어의 온도를 낮추어 안정의 언어로 돌려주는 신묘함이 있다. 충성과 처세의 경계선, 권력의 미세한 줄 위를 걸었던 회색지대의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생존기술과 불안한 제국을 다스렸던 인물들을 이렇게 읽다보면 마치 세계의 한 지대를 달관한 듯한 느낌마저 든다.
조직의 리더로서, 권력자로서, 때로는 권력의 전략가로서, 인간사의 한 지평으로서, 어떠한 태도가 우리들의 삶을 보다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척도들의 집약된 한 편의 탁월한 실험 사례라 해도 될 것 같다. 그래, 인간 본성,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왔을 때의 상황은 이미 많이 변한 것이다. 그 상태에 따라 우리에게 다른 태도와 기준이 필요한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 당위를 망각하는 것이 우리들이다. 상황의 인식, 듣는 귀에 대해서, 언어의 온도에 대해서, 그 균형 감각을 되새기는 아무쪼록 의미 있는 독서가 되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