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와 준》의 아나이스 닌과 《악령》의 스타브로긴 

- 악마와 그 주변을 맴도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

 

아나이스 닌은 우리 대부분이 감히 인정하거나 생각조차 하지 못할 일들을 저질렀다.”

 

소설가 킴 크리잔(Kim Krizan)은 아나이스 닌(Anais Nin;1903-1977))에 대한 전기소설 속에서 거침없는 여성의 욕망을 드러냈음을, 시대적 당혹감으로서 위와 같이 썼다. 그것은 엘렌 식수가 말한 ()로고스적 무기가 단련되게끔 글쓰기로서 여성 억압의 표현에 스스로 갇히지 않은, 텍스트들 속에서 페니스가 순환하는섹스트(sextes)의 출현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는 사건으로 이해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이었을 게다. 그러나 이것은 시대의 전경(全景)으로서의 시선이지, 아나이스의 텍스트 자체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발판으로 자신의, 한 여자로서의 자기 자리의 발견을 향한 고투, 자각을 향한 수행(遂行)적 걸음이었음을 발견해야 한다.

 

출처: The Anaïs Nin Foundation


1. 아나이스 닌을 말하고자 하는 동기에 대해서

 

우리의 독서시장에는 193110월부터 19328월까지에 이르는 아나이스 닌의 헨리 밀러와 그의 두 번째 아내 준과의 에로틱한 모험의 내용이 담겨진 헨리와 준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일기를 읽은 독자들, 일부 평자들은 도덕적 규범이 붕괴된 한 여인의 성적 편력 행위의 묘사들에 빠져 아나이스가 찾아 헤매는 것이 무엇인지를, 즉 그녀가 왜 이 글쓰기를 실행하고 있는가를 망각하고 마는 듯하다. 나 또한 나는 창녀처럼 그에게 본능적으로 충실했다. 그와 함께하지 않으면 쾌락을 느낄 수 없다 라는 문장처럼 유부녀가 뭇 남성들을 옮겨다니며 자신의 성적 쾌락을 마치 자아발견의 행로인양 위선을 떨어대는 자기 정당화의 궤변으로 읽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 속 빈번하게 등장하는 도스토엡스키의 악령속 스타브로긴의 몰인격, 악의 화신이 헨리와 준, 그리고 자신과 비교되는 성찰의 말들을 보며 이 텍스트를 완전하게 잘 못 읽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묘사하는 성적 쾌락의 장면들은 단지 자기 욕망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일 뿐, 그것이 글쓰기의 목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나이스가 헨리를 생각하면 나는 다리를 벌리고 싶다라고 쓰는 것, 마치 드러내지 말아야 할 것이 드러났음에 현혹당한 읽기로 본질을 읽지 못하는 우를 저질렀다는 자각이었다. 이 글을 쓰고자 한 충동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아나이스라는 여인이 이 일기를 씀으로써 추구하려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왜 이렇게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로인해 그녀가 발견한 것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규명으로서의 읽기로 전환된 것이다. 스타브로긴과 아나이스, 헨리, 준의 도식(圖式)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가 그 해명이 되어 줄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아나이스 작품들에 대한 문학적 폄하의 시선을 불식시키고, 그녀의 문학적 업적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아보자는 취지였다는 말이기도 하다. 헨리와 준은 아나이스 닌이 자신의 문학적 명성이 절정에 이르기 시작했을 때 다듬어진 일기의 일부분으로 1966(63)에 첫 출판되어 자아 발견의 여정을 통찰력 있게 그려냈음을 문학적 업적으로 찬사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실제 일기 속 여러 인물들이 삭제되어 순탄치 않은 편집과정을 거쳐 탄생한, 소설적 윤색이 더해진 일기라 할 수 있다. 물론 1932년에 출판한 D.H. 로렌스 비전문 연구서를 필두로 1939년에 소설 인위의 겨울(The Winter of Artifice), 1944년 단편소설집 유리 종 아래에서가 발표되며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얻어냈지만 문학적 명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후 1950년대 내내 내면의 도시들, 불의 사다리, 알바트로스의 아이들, 네 개의 방이 있는 심장, 사랑의 집에 들어온 스파이등의 소설을 발표하며 독자층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냈으며, 1964년 소설 콜라주가 그해 타임지 최고 도서로 선정되면서 독보적 여성 작가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즉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문학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1971년 공쿠르, 메디치 등 프랑스 4대 문학상의 하나인 세비네 상의 수상, 1974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1974년 미국 국립 예술문학 협회 정식회원으로 선출되며 그녀의 문학적 업적은 공인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1970년대라는 시대는 여전히 이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반감과 옹호가 상존하고 있었음의 반증일 것이다. 이 같은 글쓰기를 수행한 후배 작가 아니 에르노가 202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어쩌면 숱한 아나이스들이 맺은 결실 일 것이다. 아나이스는 폄하 또는 비하와 격하 대상의 작가가 아니다. 즉 그녀는 악령속 스타브로긴처럼 이 세계에 악을 전염시키는 위험하거나 배제되어야 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 생각하는 지 스타브로긴과 아나이스를 비교하며 그 차이 속에서 이 여인이 발견하고자 고통스럽게 애쓴 것의 자취를 우리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 도스토엡스키의 악령속 스타브로긴은 어떤 인물인가

 

아나이스가 악의 화신으로 대입하는 악령의 스타브로긴이라는 인물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우선일 것 같다. 스타브로긴은 내 삶의 법은 내가 만든다는 태도를 지닌, 이 세계의 모든 확고한 신념이 무너진 뒤 남은 공허에 가까운 인간이다. 그에게는 하나님도, 전통의 도덕도, 외부 권위도 자신을 규정하지 못한다고 여기며 자기 의지만이 기준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선과 악을 초월해 있다고 믿는 이 인물은 영웅적 행위와 타락한 행위 사이에 본질적 차이가 없으며, 스스로 도덕 바깥에 선 존재라고 믿고 싶어 한다. 한 마디로 아무것도 믿지 않으면서 자기 의지만 믿는 태도의 인간이다.

 

이 인물을 악령, 악의 화신으로서 두려운, 아니 무서운 인간으로 말하는 이유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의지란 것이 실제 아무런 방향성도 없는, 삶의 의미를 조직해주지 않는 욕망과 결단으로서의 의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처럼 그 어떠한 교리나 신념을 설파하지 않음에도 그의 공허와 카리스마가 주변 인물들의 과격 사상과 행동을 촉발하는 중심점이 되는 데 있다. 의미와 믿음이 빠져나간 자리를 차지한 텅 빈 공백, 이것이 개인과 사회를 얼마나 위험에 빠지게 만드는지를 표상하는 것이 도스토옙스키가 구현하고자 한 핵심적 시선이다. 이를 정리하면, 도덕을 상대화하고, 자기 의지를 절대화하려 하지만 결국 공허와 양심의 반격 앞에서 붕괴하는 인물이고, 그래서 그의 신념은 어떤 적극적 이상이라기보다, 믿음의 상실이 낳은 허무주의적 자기숭배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한 존재다. 그래서 헨리와 준에서 헨리가 아나이스에게 당신은 물론 나르시시스트야, 이 일기가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지.”라고 말하는 것, 바로 그것에 닿는다.

 

그렇다면 헨리가 농담처럼 뱉은 지적처럼 아나이스는 스타브로긴의 텅빈 공허로서의 의지를 수행하며 악의 덧을 마구 뿌려대는 팜므파탈인가? 스타브로긴처럼 스스로를 선악을 초월한 인간인가라고 묻게 되면 아나이스는 바로 그러한 스타브로긴의 매혹과 파괴성을 감지하고 그것을 자기 안에서 미학화하고 관계화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다름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스타브로긴이 공허한 의지의 중심이라면 아나이스는 그 공허 주변을 맴돌며 그것을 감수성, 욕망, 자기 서사로 번역하는 인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스타브로긴은 소설 속에서 준과 헨리 중 누구인가라는 점에 귀착된다고 할 수 있다.

 


3. 헨리와 준의 자기해석자로서의 아나이스

 

헨리가 말한다. (...) 그녀를 처음 만난 날, 준은 내가 자신을

팜므파탈로 생각해 주기 바란다고 했어. 나는 악마성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도스토옙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악마에 몰두해 있지.”

 

준이었다면 헨리가 글 쓰는 것을 방해했을 것이다, 난리를 피웠을 것이고,

화려한 팜므파탈의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아나이스)”

 

아나이스는 스타브로긴적 매혹을 맴도는 인간이라고 해석했다. 그것은 아나이스가 준에 대해 말하는 문장에서 다시금 확인되는데, 악을 낳고 범죄를 일으키지만 스스로는 거의 행동하지 않는 인물인 도스토옙스키적 인물인 스타브로긴을 인용하는 것에서 그녀의 무의식이 드러난다. 실제 준은 헨리를 직접 움직이기보다는 움직이게 하는 힘의 중심으로서 악의 자기장 같은 존재로서 행동하는 것에서 확인된다. 즉 아나이스는 준이라는 스타브로긴적 인물에 매혹되는 해석자이자 매개자이다. 아나이스가 자신을 “the revealer, the harmonizer(드러내는 자, 조화시키는 자)”라고 부르며, 준에게는 도스토옙스키를, 헨리에게는 준을 준다고 쓰는 것에서 그녀가 파괴의 중심이 아니라 파괴적 매혹을 언어와 관계 속에 배치하는 연출자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아나이스의 헨리와의 지독한 성애와 그에 대한 집착은 자기 쾌락, 삶의 안정 장소를 찾아내기 위한 그녀만의 일련의 고통스러운 수행(遂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수행의 여정 자체가 제공하는 쾌락의 감각은 하나의 요소이지 그것이 곧 욕망이 지향하는 궁극의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나이스는 전통적 가치가 무너진 자리에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식의 자기절대화에 접근하고자 하는 스타브로긴과 같은 인물이 아니다. 스타브로긴으로 아나이스를 해석하는 것, 즉 그녀를 성적 쾌락에 목매단 탕녀 정도로 이해하는 것, 그래서 뭇 남성들의 자존과 삶을 파괴하고, 그들의 가정을 궤멸시키려는 그러한 성의 화신이 아니다.

 

아나이스는 욕망과 위험, 심지어 악의 매혹에 끌리면서도 자신 안의 잔혹성에 대한 저항이 남아있음을 분명히 말한다. 잔인함에 대한 무능력은 약점에 가깝다, 또한 우리는 가장 자기답지 않을 때 가장 자신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할 때 그녀는 자기모순을 감지하고 자의식적 기록자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결국 아나이스는 준이라는 팜므파탈이 낳는 정동을 흡수하고 서사화하는 인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기에 그녀는 나는 타인의 욕망과 어둠을 통과하며 나를 발견한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나이스는 준 혹은 스타브로긴의 공허 그 자체와 달리, 그 공허를 견디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고백, 이미지, 역할극을 만들어내서 허무의 매혹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미학적 자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나이스는 매우 지적인 여성이고 인간을 단순한 현실의 개인으로 읽기보다는 하나의 심연적 유형, 상징적 배치로 해독한다. 아나이스는 스타브로긴적 중심으로 준을, 창조적 노동과 육체성을 가진 인물로 헨리를 읽으며, 자신은 이 둘 사이를 통과하며 스스로를 분열시키기고 확장하는 의식의 존재로서 위치한다. 즉 준의 중력장 안에서 자신이 얼마나 멀리 혹은 깊이 끌려갈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그녀는 허무의 공백과 타락의 에로스를 자기해석의 연료로 바꾸는 고백적 미학가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악의 매혹을 사랑과 글쓰기의 형식으로 번역하는 감수성의 공모자로서 아나이스는 끝내 양심과 문장 속으로 되돌아오는 미학적 증인이라 할 수 있다.

 

4. 결어 - 아나이스의 글쓰기가 말하는 것

 

아나이스 닌이 일기를 쓰는 것은 이상화된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때문에 일기 속 자기 정당화의 변들이 위선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그 생경한 날 것의 성적 묘사들이 혐오와 당혹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그것은 정작 글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말단의 감각이 야기하는 도덕이라는 오래되고 낡은 인식에 지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나이스는 이 일기를 쓰는 동안 자신의 진정한 내적 실체를 발견하고 이 분열된 욕망들인 자신을 통합하고 진실된 인격을 형성하고자 고투했다. 그녀는 글 속에서 글쓰기가 분열되고 혼란스러운 자아 속에서 가장 강력한 요소라고 믿었으며, 어떤 파괴적 영향을 받더라도 온전함을 만들어내는 행위였다고 말한다. 이처럼 아나이스의 일기는 한 인격의 진화로 나아가기 위한 독특한 문서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자아 속으로 도피했다가 진정한 자아를 재발견하는 과정의 역동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이 여러 인격을 연기해왔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는다. 그녀는 인간이 길을 잃은 허위와 망상의 미로를 인내심 있게 해쳐나가지 않고서는 자아의 통합과 일치에 도달할 수 없다고 믿었음은 분명하다. 그녀는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에 있으며, 인간이 추구하는 질서는 바로 자신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아나이스는 자신의 진실한 본성을 찾아가는 철저한 여정에 대한 경이로움과 인간 정신의 신비로운 작용에 대한 깊은 외경을 통해 미학과 질서, 이상을 마침내 버렸을 때 비로소 새로운 삶의 질서와 지혜를 발견한다. 그녀를 메를로 퐁티의 몸의 철학을 실천한 사람이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모든 세포가 기능할 때, 즉 꿈, 욕망, 본능, 식욕이 모두 살아날 때 풍요로움에 도달합니다라고 쓸 때 깨달음의 충만함 속에 존재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신을 왜곡하는 거울을 부수고 온전함과 기쁨을 경험하기 위해 삶의 투쟁을 벌여 나갔던 인간의 특출한 사례라 해도 될 것이다.

 

나는 창녀처럼 그에게 본능적으로 충실했다. 그와 함께하지 않으면 쾌락을 느낄 수 없었다. 헨리와 관계를 가진 날 휴고가 나를 원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어젯밤 그는 열광하며 절정을 느꼈다. 나는 그에게 순종하며 그를 기만했다. 즐기는 척 했을 뿐이다.”  - 헨리와 준,165

 

이 문장을 읽을 때 교활하고 발칙한 색정적 여인을 떠올리며 도덕적 분노가 슬그머니 일어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이러한 묘사에 함몰된 읽기에 그친다면 그것은 매우 편향된, 남성적 시선의 읽기, 즉 절름발이 독서가 되고 말 것이다. 여성의 자신의 성 욕망 드러내기를 남성들은 관음의 시선으로 읽어내며, 그것에 편협한 (팔루스의)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곤 한다. 그럼으로써 죄의식을 부과하고 그것에 악의 그림자를 덧씌우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을 여성의 시선으로 보고자 한다면 그것은 사회가 억압으로 눌러 온 것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며 개방된 세상 속에서 그 어떤 구속도 없이 자기를 발견하려는 처절한 탐색의 여정임을 발견할 수 있다.

 

출처헨리 밀러북회귀선》 中 아나이스 닌의 서문 일부 발췌


아나이스는 성 탐닉에 안달하는 성 탐닉자가 아니며, 자신의 성적 자유를 위해 타인을 파괴하는 인물도 아니다. 헨리와 준에는 작가로서 또한 불륜의 관계자로서 헨리 밀러에 대한 재정적 지원에 대한 직접적 표현은 없지만 그녀는 그의 문학적 동행자이자 지지자로서 많은 영향을 서로 나누었다. 스치듯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의 초고를 아나이스가 읽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이 소설의 서문을 쓰기도 했는데, 아마 그것을 읽었던 사람들은 이미 아나이스의 문학적 역량에 대한 비판은 거두었으리라 믿어진다. 매우 높은 지성의 소지자이면서 밤의 여왕으로서 재능이라는 이 낯선 조합의 여인은 헨리를 비롯한 프레드, 그녀의 남편 휴고나 사촌 에두아르도에게도 낯설면서도 매혹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그녀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고, 그것을 연출하기 위한 세련된 감각의 소지자였음이 일기 속 도처에서 드러난다. 아나이스 닌의 텍스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엄한 검열의 시대에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글로 옮기는 것은 한 여인에게 실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음을 상기해보면 그 미학적이고 문학적 작업의 결과를 당연하게 볼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일기는 죽지 않았다. 그가 내 옆에 없어서 그를 애무할 수 도 없을 때, 일기를 쓰는 것 외에 그를 사랑할 다른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헨리와 준)” 문장은 단절된 욕망을 대신하여 삶의 충일함을 지속시키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글쓰기에 매달리는 아니 에르노가 탐닉에서 반복한다. 에로티즘은 존재 자체를 문제삼는, 여자를 존재적 물음에 빠뜨리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삶의 의미로서 사라져 버리는 괘락으로서의 욕망, 욕망의 부재인 삶의 멸실로서 죽음으로, 사회적 통념을 박살내는 이 격렬하고 천박한 음란의 노래는 스스로를 정의하려는 각고의 자기 탐색의 투쟁이다. 자기 욕망을 들여다보려는 자기성찰적 반영의 역동적 상호작용의 결실이기도 했을 것이다. 도덕주의를 앞세워 비난당하고 잊혀지는 작가를 대신해 항변 하고 싶었다.

 

이 글은 부분적으로 루퍼트 폴이 세운 아나이스 닌 재단(The Anaïs Nin Foundation)’의 아카이브를 참조했음을 밝힙니다. (루퍼트 폴은 1947년 이후 아나이스의 연인이자 1955년 정식 혼인한 남편으로 1977년 아나이스가 사망할 때까지 함께한 그녀의 동행자였다. 폴은 2006년 사망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프로이트 자신의 정신분석적 발견에 오이디푸스 콤플레스라는 이름을 부여했을까? 이것은 21세기 오늘의 개인적이거나 정치적인 삶에 있어서도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계급주의적, 민족주의적, 인종주의적 유산을 과신하는 논자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의 그 무참한 몽매성에 대한 하나의 역사적이고 실체적인 통찰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1. 고대 그리스 비극 공연의 의미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공연되었던 기원전 5세기의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고를 조금은 해야 한다. 당대의 아테네인들은 비극(연극)을 자신들 도시국가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겼다는 것인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리스 비극들이 모두 기원전 5세기의 70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생겨나고 사라졌음은 비상한 의미를 갖는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 혁명의 일부로서 폭발한 문화적 혁신이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비극은 그들의 교육과정에서 읽고 암기되었으며, 비평가와 철학자들은 이 극들을 읽고 연구했다. 일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이 시민에게 감정적, 지적 영향을 미침으로써 긍정적인 교육경험을 준다고 보았으며, 비극이 불러일으키는 연민과 공포는 시민이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도덕적 인식으로 이끈다고 생각했음을 들 수 있겠다.

 

그리고 매우 중대한 사실인데, 이 비극(연극)들은 아테네에서 매년 개최되던 디오니소스 대축제(국가적 종교축제였음)의 주요행사로 단 한 번 공연되기 위해 쓰여져 무대에 올려진 것이라는 점이다. 아테네인에게는 이 비극 관람이 오늘날 우리들이 연극을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는데, 연극관람, 디오니소스 축제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시민으로서 해야만 하는 중요한 시민활동이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이 축제에는 아테네 시민은 물론 아테네와 동맹을 맺고 있는 외교사절들의 의무적 참석과 국가 관료인 아르콘(집정관)이 직접 경연에 참가할 세 명의 극작가 선발부터 행사를 주관했다는 점에서도 비극 공연 참관이 시민정치 생활에 있어 얼마나 중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 행사의 의식은 지중해 패권을 차지하고 있는 아테네 제국의 군사적 이데올로기를 과시하는 의식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지배력과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의도된 스펙터클이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자부심 가득한 의식이 끝나면 하루에 한 작가의 세 작품씩 3일에 걸쳐 공연되었다. 그런데 이 화려한 힘의 과시라는 의식 이후에 시민생활의 토대가 산산이 깨어지고 찢어지는 세계를 보여주는 비극과 정치적 부패를 비롯한 부정한 삶들에 대한 풍자를 주제로 한 희극이 공연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하게 여겨지지만 이 두 극단인 긍정성의 의식과 부정성의 연극이 결합된 축제는 바람직한 도시국가는 어떠해야 하는 가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낯설면서도 신선한 그들의 감각을 발견하게 된다.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시민적 자부심이 불러 올 자만이 일으킬 비극성을 통해 시민의 바람직한 도덕적 인식을 이끌어내기 위해 의도된 것이었다는 점에서 이 비극 작품들은 그들에게 지적, 감정적 긍정적인 경험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도 이러한 시민적 삶의 태도에 대한 자기성찰을 위해 의도된 것이었다는 점은 오늘 우리들이 이 작품에서 발견해야 할 앎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필수적 배경이 된다. 오이디푸스가 이러한 배경을 함축하고 있는 인물임은 그래서 지극히 당연하다. 지중해 패권자로 군림하는 아테네 제국처럼 오이디푸스는 지적이고 존경받는 성공한 인물로써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통제할 줄 알지만 신탁이 예언한 운명을 필사적으로 피하고자 하며, 자신이 정말 누구인지도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 모범적인 사람이 곤경에 처하는데서 아테네 시민들은 그 인간적 비극의 고통을 보면서 자기성찰로 나아가게 된다


현전하는 고대 그리스 비극은 예외 없이 이러한 구도를 따른다. 디오니소스 대축제(이데올로기 과시의 의식+비극(연극)공연)는 이렇게 시민들이 일반적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자기반성을 하는 감정적 연대의 장()이었다. 오늘의 우리들에게는 이 같은 시민적 자기성찰과 비판적 감정적 연대의 장을 생각조차 할 수 없기에 더욱 매혹적으로 보인다. 이것으로 고대 그리스 비극이 어떠한 의미를 지닌 배경 아래 있었는지에 대한 대강의 이해는 갖춘 것 같다. 이제 20세기 독일의 한 정신분석가가 비극 오이디푸스 왕의 인물을 자신의 발견 이론의 이름으로 삼았는지를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2. 20세기 독일 사회의 고대 그리스의 집착과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그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 또 다른 배경의 파악이 필요한데, 19세기 전후에 시작된 독일인들의 정체성 발견을 위한 나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물음, 즉 자기이해의 열쇠를 고대 그리스에서 찾았다는 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헤겔부터 시작해서 실러, 바그너, 니체에 이르는 독일 사상가들은 마치 입을 모아 말하듯 그리스를 자신들의 고향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헤겔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스는 역사에서의 빛의 초점이었으며, 고대 그리스는 그리스의 이름으로 유럽의 교양인들, 특히 우리 독일인들이 고향처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라거나, 니체 또한 더 이상 어느 곳도 우리의 고향이 아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고향일 수 있는 유일한 곳을 동경한다. 왜냐하면 그곳이 우리가 우리의 고향이기를 바라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바로 그리스다.”라며 독일인들의 뿌리가 고대 그리스에 있었음을 천명한다.

 


이것은 바그너의 독일국가주의라는 흉물스러운 정치적 열정으로 이어지고, 급기야 독일과 그리스 사이에 친족관계라는 무모한 혼합을 통해 자신들을 납득시키기 위한 기이한 논법들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타키투스가 묘사한 북방으로부터 그리스를 침입하여 스파르타와 코린토인을 구성하게 되는 도리스인을 독일인 자신들이라고 신화적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들의 공통된 신체적 특징인 큰 키, 금발, 푸른 눈동자, 잘 발달된 근육을 종족 아리아인의 전형적 표지라고 진리로 확증하기에 이른다. 독일인들은 이같은 날조된 정당화의 궤변에 열광하며 감명 받은 것은 물론이다.

 

독일의 모든 교육기관에는 그리스 비극을 비롯한 고대 그리스에 대한 교육과정이 필수가 되고, 모든 교육제도는 이러한 그리스 애호 열풍에 부응하기위해 재편되기까지 한다. 국민이 세대에 걸쳐 그 나라의 본질을 유지하며, 국가는 없을지언정 독일 국민은 언제나 존재한다. (...) 신화는 한 국민에게 특유한 것으로 한 국민에게는 그러한 신화가 있어야 한다.”는 민족과 독일 정체성의 신화 발명이 이렇게 독일에서 출현한다. 이황당한 계보학은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은 혈통에 대한 왜곡된 극단적 환상이 지속되어 편견의 역사를 만들고 그릇된 독단은 확실성이 된다.

 

멀쩡한 정신의 소유자라면 이러한 사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프로이트는 이렇게 환상에 맹목적으로 심취한 독일인의 정신과 섹슈얼리티의 발달에 대한 거대 서사를 고대 그리스 비극작품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시대의 대유행에 따르는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이 탁월한 지성은 오이디푸스에서 자신의 태생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탐구해나가는 그 고통스럽고 집요한 자아탐색이 독일인들과 쌍둥이처럼 닮았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유대계 독일인은 국가주의적 열정이 절정에 이른 독일인들의 민족적 가족사에 욕망과 폭력이 얽힌 추악한 비밀을 폭로하기로 한다. 그리스에 순수하고 순결한 기원을 두고 있다는 독일 국가 신화를 위협하는 망측한 진실을 드러낸 것이다.

 

독일인들의 정체성에 심각한 도전을 한 것이다. 날조된 독일인들의 순혈주의와 국가주의적 신화를 깨뜨림은 물론 이 똑똑한 천재는 자신이 발견한 것에 최신 유행하는 그리스 고전이 갖는 위상, 즉 그 권위를 올라타기 위한 전략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 꾀바름은 곧바로 권위를 지닌 이론으로 격상된다. 프로이트는 독일인들의 그리스 열광을 고의로 이용한 것이었다. 프로이트가 왜 오이디푸스를 자신의 이론 명칭으로 사용하게 되었는가의 배경까지 더듬어보았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의 의식과 독일 사회의 국가주의적 신화를 깨부수는 이름의 배경과 더불어 그 토대로서 오늘의 우리들에게 이것들이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이르렀다.

 

3.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이 말하려는 것 ; 앎의 불가능성

 

앞서 언급했지만 그리스 비극은 아테네 시민들에게 자기반성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의도된 연극이라고 했다. 영국 케임브리지그리스고전문학 교수를 지낸 사이먼 골드힐은 그의 역작 Love, Sex and Tragedy에서 소포클레스가 오이디푸스(Oidipous)라는 말로 말장난을 하였다고 쓰고 있다. ‘나는 안다라는 뜻을 가진 oida라는 말과 어디라는 의미인 pou를 조합하여 “‘그가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이름은 나는 어디인지 안다라고 외치는 것이라고, 이 분열적 말놀이를 통해 앎에 대한 매혹과 은폐와 폭로에서 하나의 전기를 맞게 하려한 것이라고 해독하고 있다.

 

오이디푸스 왕은 단순히 근친상간이나 오인된 정체성에 관한 슬픈 이야기에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다. 소포클레스가 그 이름에서 말장난을 하였듯, ‘너는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답하도록 이끄는 것이 바로 소포클레스의 의도이자 공연행사에 부합하는 주제였다. 이 극이 정체성 문제와 관련해서 보여주는 통찰에 주목하게 하려는 것이었다는 말이다. 이 비극을 읽어본 사람들은 극 전체에 걸쳐 끊임없이 너는 어디서 왔는가?’ 라는 물음이 울려 퍼지고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나쁘거나 타락한 사람이 아니다. 지적이고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며, 주변 상황의 통제를 위해 자신이 지닌 온갖 수완을 사용하여 운명에 투쟁하는 인간이다.

 

자기 삶의 방향을 통제하려고 애쓰지만 운명 또는 우연이라 불리는 다른 힘들이 그를 다른 길로 이끈다. 자기 삶의 이야기의 통제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지만 그것은 철저한 자기 삶의 파괴, 삶의 실패로 귀결된다. 이 비극은 인간 삶에 대한 인간의 통제 실패, 다시 말해 자기 삶의 이야기이기를 분명하게 직시하여 적절히 보지 못하는 무능함을 가리킨다. 우리들 모든 인간은 오이디푸스와 같이 자기 삶을 통제하려고 하기에 오이디푸스를 바라보는 우리들은 자극 혹은 충격을 받게 되고, 자신들의 삶에서 적절한 자기 의문을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을 한 남자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잠자리를 했음을 알게 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기에 비극이라고 여기지만, 이 극의 진짜 충격적인 목소리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내가 누구인지 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때야말로 가장 자기기만의 참극을 초래하기 쉬운 순간임을 끈질기고 불안할 정도로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 극한의 비극성이 있다. 오이디푸스는 수수께끼의 해독자이자 문제해결사이며 앎의 추구자이다. 그리고 성공을 거둠에도 그럴수록 점점 더 불운한 자기파멸을 향해 나간다. 다시 말해 이것이 비극인 것은 인간이 자신이 알고자 하는 욕구와 답을 찾는 능력을 훼손시켜 놓는데 있기 때문이다.

 

이 비극의 중추골조는 한 인간의 혈연의 관계망이 뒤엎어지면서 그 관계망이 뒤죽박죽이 되어 찢어발겨지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내이기에 오이디푸스의 아이들은 그의 형제이거나 자매이기도 하다. 자아를 규정하는 통상의 언어가, 근친상간에서는 내파(內波)하는 것이다. 여기서 작동할 수 있는 범주는 아무것도 없다. 오이디푸스에게 자신의 기원을 안다는 것은 세계의 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상실하고, 가족 가치가 붕괴되는 전조일 뿐이다. 잘 안다고,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이미 불행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어느 길을 가야 하는지 잘 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프로이트는 어쩌면 이러한 앎의 진실을 알았는지도 모른다. 그가 오이디푸스를 선택한 것은 결과론적이지만 정말 매우 통찰력 있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이디푸스로부터 독일인과 그네들 사회의 순혈주의와 국가주의적 망상이 초래할 자기파멸을 보았던 것일 게다.

 

4. 결어 ; 범국민적 자기비판의 공통감각은 불가능한 것인가

 

오늘 한국 사회의 모든 개인, 사회, 정치적 수행에 있어서 갈등과 반목은 앎에 대한 그릇된 확신에서 초래되는 것이라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배에 대한 오만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오인은 지금 벌어지는 이 세계의 모든 비극의 원인이라 해도 될 것이다. 그리스 비극은 바로 지금 여기에대한 적절한 인식을 형성하는 지에 대해 안다는 것, 이러한 앎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시도가 야기하는 불행을 폭로하는 것이다. 이 비극을 오늘날에는 소설과 시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분야가 대신하고 있지만 우리 자신이게 하는 과거와 그 파묻혀 있는 삶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그리스 비극공연처럼 그 감정적 연대적 자기비판을 공유하게 하는 데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오늘에도 대단히 매혹적이고 독자(관객)로 하여금 한 인간의 자멸을 공포감에 차서 바라보게 함으로서 내가, 우리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에 대해 고통스러운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이 비극 작품은 우리 자신을 규정하는 데 필수적 역할을 하는 말들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한 뜻 깊은 의미를 열어놓는다. 오만해지고 부패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그 앎의 경계를 두려울 만큼 읊어대는 이 비극은 인간 앎의 궁극적 불가능성에 대한 비통함을 상기시킨다. 내 날 것의 마음을 보려는, 생의 통제력을 지니려고 시도하는 내 교만이 이 비극 작품과 그 역사적 배경을 더듬게 했다.

 

독일인들은 그렇게 그리스 문화를 자신들의 고향이라고 열렬히 떠들면서도 오이디푸스의 비극의 본질을 알지 못했다는 점은 정말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프로이트가 이들의 환상을 깨부수려 하긴 했지만 말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도 이러한 비극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것만 같다. 자기 성찰 없는 인간들이 너무도 날뛰고 있다. 이러한 비극 작품을 모든 국민이 관객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획은 불가능한 것일까? 공통의 자기비판이라는 감각적 유대를 지닐 수 있는 방법 말이다.


 ------------------------------------------------


이 글은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과 더불어 사이먼 골드힐의 Love, Sex and Tragdy(러브, 섹스 그리고 비극)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임을 밝힙니다. 자기 삶의 이야기를 통제한다고 생각하는 우리 인간의 오만이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비통한 앎의 불가능성이 점점 더 깊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근대문학 여성문학의 길을 열었던 김명순의 소설을 몇 차례에 나눠 각 작품의 내용과 소소한 몇 글자 감상기록으로 남겨둔다. 191711청춘11호를 통해 작가 생활을 시작케 했던 의심의 소녀19203월 작가의 아명이자 필명이기도 했던 탄실 이전에 망향초(望洋草)라는 필명으로 여자계4호에 게재했던 조모의 묘전에서, 그리고 다시 일본 유학길에 올라 1년 남짓한 교토의 음악학교로 추정되는 생활 끝에 학비와 생활비의 곤궁으로 다시 귀국한 192112~192222회에 걸쳐 개벽18~19호에 연재했던 칠면조세 편으로 시작하련다.

 

彈實김명순 1896.1.20.~1951.6.22


단편 의심의 소녀는 내겐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 산월에 대한 애도이자 자기 삶에 대한 주체자로서의 세상을 향한 투명한 공개선언으로 여겨진다. 소설은 평양의 한 마을에 기거하게 된 범네로 불리는 8,9세 소녀와 그녀의 외할아버지 황진사에 대해 동리 사람들의 의혹에 가득 찬 시선으로부터 그네들의 삶에 드리웠던 진실을 점진적으로 드러내며, 당대 세력을 지닌 남성들의 중혼과 축첩의 야만성과 그로인한 모욕과 폭력에 더불어 이를 감당하여야만 했던 여인네들의 삶의 현실에 애도를 보낸다.

 

소녀 범네에 대한 세간의 묘사를 보면 풋남() 순안치마에 담황색 겹저고리 입고 분홍신을 신었다....실로 새마을 동리 소녀들과는 군계일학 이지만 그 어여쁜 얼굴에는 어린 아이에게는 없을 비애(悲哀)에 지친 빛이 보인다.“ 오지랖 넓은 마을 아낙네는 어느 날 황진사와 범네가 산책길에서 돌아오는 모습을 지켜보는 한 남자의 행적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전해들은 마을 이장의 목소리로 범네는 탕자인 조 국장과 강제 혼인하게 되었던 황진사의 무남독녀가 낳은 딸 가희(佳姬)임이 드러난다.

 

조 국장이라는 자는 경성에 세력의 기반을 둔 여색에 몰두하는 파렴치한이다. 이 자는 세 번 처를 바꾸고 첩을 갈기도 10여 인이고, 화류에 놀고 촌백성 계집까지 희롱하는그야말로 희대의 탕자(蕩子)이다. 범네, 즉 가희의 어머니인 조 국장 부인은 학대와 감금의 비관 끝에 24세에 자결하였으며, 황진사는 어린 가희가 조 국장의 첩들에 의해 곤경을 겪을 것을 걱정해 이름을 범네로 바꾸고 조 국장의 시선을 피해 방랑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이 소설이 이광수에 의해 선외가작으로 뽑혀 청춘에 등단하게 된 것은 중혼과 축첩이라는 악습에 대한 얼마간의 시대적 공감이 태동하고 있었음의 반증일 것이다.

 

단편 조모(祖母)의 묘전(墓前)에서는 장편(掌篇;손바닥)소설에 가까운 짧은 이야기인데, 여성의 혼인 풍습이 지닌 폭력성에 대한 고발이다. 박춘채(春菜)는 열일곱 여성이다. 당시 유명한 여자 묵화가인 할머니 운계(雲溪)여사의 손녀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한다. 그런데 운계여사에게는 남자 자식이 없어, 상철이라는 사내를 아들로 입적시킨다. 운계가 임종하자 막대한 유산을 가로 챈 상철이란 자는 사업을 벌이다 운계로부터 받은 상속 재산은 물론 춘채의 재산까지 몰수하여 말아먹는다.

 

이에 더해 막대한 부채를 떠안게 되자 춘채를 채권자의 방탕한 자식 김영수에게 부리나케 시집보낼 준비에 돌입한다. 작가 김명순은 아들 입적이라는 당대 호주 상속제에 의문을 보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여성을 한낱 금전적 소모품으로 여기는 가부장제 남성들과 사회 인식에 대한 부당성을 고발하는 것이다.

 

유탕자(遊蕩子)는 심산에 나날이 시들어 말라가는 산 백합을 돌아도 

안 볼 뿐 아니라도화의 이름 난 기생을 작첩하였다

상철의 부처는 춘채를 김수영에게 약혼시켰으므로 

부채를 담당치 않고...” - 조모(祖母)의 묘전(墓前)에서에서

 

처를 박대하는 것은 물론 구타와 학대를 일상으로 자행하는 유탕자(遊蕩子)에게 춘채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재정적 이익을 위해 혼사가 강행된다. 소설의 제목이 할머니 묘지 앞에서인 것은 이렇게 비참한 신세로 몰린 춘채가 할머니 묘소 앞에서 자신의 운명을 하소연하기 때문이며. 바로 그 탄식의 음성에 고스란히 당대 남성중심의 질서에 대한 강한 전복의 의지가 있음이다. 치욕의 혼인 가마를 김씨 댁 문내에 머무를 손녀의 비운을 모르십니까?”에 이어, 금지옥엽 길러주신 열일곱 생명이 구수(仇讐)되어 금전에 바뀌어 물품같이 유탕자(遊蕩子)의 희생이 되어가는 손녀의 운명을 어찌하오리까?”라고 할머니 묘소 앞에서 부르짖는 것은 세상을 향한 한 여성의 자기 주체로서의 분노에 찬 항의였을 것이다.

 

식민지 조선의 남성들에 의해 채색되어 문란한 여성으로 낙인이 찍혀 문단 내 남성 작가들을 비롯, 세간의 온갖 혐오스러운 비난은 김명순을 재차 일본의 유학길에 오르게 한다. 그러나 그 식민제국인 일본 유학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일본에 똬리를 튼 또 다른 식민지 조선 남성들의 동족 여성들에 대한 성 착취의 시선이고, 경제적 곤궁의 고통이었다. 필요 생활경비를 충당할 수 없게 되자 모국으로 돌아 온 직후 개벽에 발표한 소설이 칠면조.

 

【《開闢18호에 게재된 소설 ‘칠면조(七面鳥’), 김명순 여사로 표기됨.


칠면조는 조금 독특한 소설인데, 서간문, 즉 편지의 형식을 띤 작품이라는 것이다. 즉 서간문이란 수신자를 향한 쓰는 이의 내면이 밝혀지는 글이며, 그것이 수신자에게 도달하지 않을 것을 알며 쓰는 편지의 경우 일종의 자기고백으로, 자신에게 향하는 글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수신자는 -나 슐츠 선생으로 되어있는데, 아마도 소설의 화자가 교토 음악학교를 다닐 때의 스승으로 짐작된다. 즉 음악(피아노)학교 시절에 대한 자신의 고단한 삶의 여정에 대한 내적 고백의 기록이라는 얘기다. 서구 문명에 대한 이른 학습을 했던 작가 김명순은 칠면조라는 단어가 말이 많지만 의미 없는 소리어리석은 사람을 은유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특히 실패자라는 의미로 암암리에 사용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두 번째 감행된 1920년에서 1921년의 1년 남짓한 일본 유학생활은 그녀의 의지를 다방면에서 좌절케 하는 경험이었던 것 같다. 소설에서 K()라고 표기되는 지역은 교토(京都)를 이르는 것일 게다. 음악학교는 화자에게 월사금을 보증하는 사람을 세울 것을 요구하고, 궁여지책 끝에 소개를 통해 알게 된 재일 조선인 노동자 박의 보증을 받게 되지만 그 남자의 태도에 불안과 위협을 느낀다. 박이 화자에게 아직도 여자답고 활발치 못한 데가 있다고 무엇을 풀어버리라는 듯이 말하였습니다.”와 같이 은근한 성적 개방의 요구를 암시하는 말을 건넨다.

 

화자는 D씨로 불리는 미소하던 흰 얼굴에 시원한 눈이 애교있는 입이 기꺼운 해조(諧調)를 외우려는 듯한세련된 젊은 남성에게 호감이 있다. 그러나 화자는 세상에 대한 불안의 시선이 내재되어 자기감정에 충실한 사람이 되는 것을 망설인다. 사교계에 나서려는 것은 과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실 사회는 너무도 잔혹하지 않을까 겁도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대 여성의 자기 억압으로 온전한 주체를 정립하는 데 여전히 불안의 심리를 떨쳐내지 못했음의 자기 성찰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조선의 남성들은 화자의 이러한 세상 남자들과의 자유로운 교제의 생각에 음란한, 문란한 이라는 혐오의 수식어를 붙이며 여성의 자유는 곧 성적으로 타락한 여성이라고 사회 밖으로 내쫓는다. 안 뜰에 심겨진 동백꽃 나무에서는 비 맞는 꽃송이들이 그 담 밖 길가에 떨어졌습니다.”라는 시적 문장은 화자 자신이 세상 밖으로 내쳐질 것을 예감하는 문장일 것 이다. 1917년으로부터 1921년에 이르는 대략 5년 남짓한 시간의 경과 속에서 작가 김명순이 여성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여전히 높은 불안이 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 같다. 김명순의 소설은 시적 정체성과 아울러 당대 조선인들의 지적 수준을 저만큼 앞서가고 있었음을 느끼게 한다. 김명순은 이러한 내적 불안과 외적 공포라는 이중의 적들과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야 했다.

 

김명순 소설의 두 번째 감상기록은 당대 식민지조선의 남성들이 지닌 자유연애와 여성의 성적 정결에 대한 이중의 모순에 놓인 위태로운 욕망의 갈등을 묘파하는 외로운 사람들이 될 것 같다. 이 소설은 탄실이와 주영이에 한 달 앞서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오늘날 경장편 분량의 작품으로, 당대 남성 문인들이 김명순에 가하는 질시와 혐오가 본격적으로 가해지는 시기에 즈음한 작품이기에 예사롭지 않은 글이라 하겠다. 김명순은 영어, 독일어, 일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했던 남녀불문 당대 보기 드문 지식엘리트였다. 이 특출한 여성에 대한 못난 식민지조선 남성들의 머리와 욕구는 여전히 전근대에서 벗어나기를 거부하고 있었으니 그 간극만큼이나 각성한 여성 주체의 삶은 커다란 고통이었을 것이다. 으이그 지지리 못난 놈들의 역사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이 글은 동시대 문학사 1동시대 문학사 3, 사랑에 각기 수록된 이광호 평론가의 나는 쓸 수 있는가-‘일인칭하기의 역사적 몽타주, 강계숙 평론가의 한국 여성시의 시작(始作/詩作)을 돌아보다, 심진경 평론가의 여성 자아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타자 되기의 미학, 강동호 평론가의 종언 이후의 사랑, 권보드래 평론가의 방황의 권리, 고통의 미학을 바탕으로 필리스 체슬러의 여성과 광기(Women Madness)의 문제의식에 터 잡은 일종의 글모음이자, 소소한 잡설이다.


과거가 잔존하는 현재라는 동시대의 비동시성이 현시대에 혼융되어 실재함을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체감하는 시절이다. 국민대중을 기초(基礎)로 한 민주주의와 자율적 윤리의 성숙에 대한 요구가 강한 지금 전체주의나 파시즘, 권위주의와 같은 과거의 퇴행적 유령들이 상존하며 세상을 갈등과 혐오, 혼돈의 시대로 몰고가는 것처럼 결코 동시대는 동시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대의 이러한 시간적 얽힘은 지난 것들에 대한 내 관심을 자극해오던 차에 동시대의 문학사라는 기획 하에 폭력, 사랑, , 젠더라는 한국의 근대 문학사를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네 개의 주제어로 출간된 책을 읽게 되었다.

 

그것은 지금 여기, 바로 오늘에 활발히 논의되거나 논의되어야 할 하나의 문학사라는 거대한 역사의 범주로 포섭할 수도 없는, 아니 포섭하는 것이 불가능한 우리 근대 문학의 주제계(主題系)들 각기의 기원을 탐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들의 각 담론 혹은 계보(系譜)들을 읽다가 예기치 못한 우리 문학사에서 오랫동안 지워진 작가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 글은 이로인해 촉발된 개인의 욕망에 따라 발췌한 글 모음의 보관용 기록이다. 잊혀진 그 문제적 작가와 작품, 그리고 커다란 시차를 두고 계보를 잇는 작품들은 그러한 기록에서의 부수적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의 작가 김명순과 그녀의 작품 세계는 앞서 열거한 <사랑과 와 젠더> 세 주제계열의 주제 글들 모두에서 설명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시사하는 내용은 매우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감정은 곧 이어 한국문학에 대한 나의 많은 몰이해와 오독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졌고, 부지런히 몇 권의 책을 부랴부랴 구입하도록 이끌었다. 그것을 어떤 범주의 언어로 특정한다면 한동안 여성 독자들에게 베스트셀러였던 샌드라 길버트와 수전 구바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 이미 분석 제시한 문학적 열기와 충돌이 적절한 출구를 얻지 못해 내면의 심층에 갇혀있어 제 숨을 틀어막는 병인으로서의 정신분열에 내몰린 미친 여자이고, 여성이 여성을 서로 감시, 단속하게 하는 신화적 지층을 탐사한 페미니스트 정신분석학자 필리스 체슬러의 여성과 광기(Women Madness)이기도 하다.

 

동시대 문학사 1나는 쓸 수 있는가-‘일인칭하기의 역사적 몽타주라는 글에서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근대 초기 여성 작가에게 의 글쓰기를 밀고 나가는 것은 모성 이데올로기와 인습적인 가족제도에 얽혀있는 식민지 젠더 시스템과의 투쟁을 의미했으며, 여성이 의 문제를 생각한다는 것은, ’를 구성하는 사회적 요인들의 억압을 드러내고, ‘의 다른 잠재성을 상상하는 문제이다.”라고 쓰고 있다.

 

1920년대 식민지조선은 중혼(축첩)과 남성불륜이라는 가능성이 활짝 열려있는 사회였으며, 여성의 지식과 교양은 불행을 가져오는 화근이며, 기껏해야 남성사회를 보완하는 범위 내의 지식습득만 허용되는 세계였다. 그런가하면 한편으론 신여성이라는 식민지 남성 지식인들이 근대에 대한 자신들의 욕망과 결핍을 투사하는 허구적 대상으로서의 환상을 씌워놓곤 막상 그 여성들이 새로운 풍속과 여성의 주체적 정립을 향한 해방의 목소리를 낼 때에는 여지없이 온갖 비아냥과 조롱으로 무참한 폭언과 비열한 가해를 가하여 문학의 장은 물론 사회적 낙인을 찍어 내치는 시절이기도 했다. 신여성=근대적 지식인 여성=문란한 여성이라는 등식을 남성 자신들이 유용성에 따라 활용하는 비열한 언어였다.

 

이때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 1917년 잡지 청춘에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당선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한 김명순이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출간되던 1925년에 한국 근대문학사에서의 최초의 여성 시인으로서의 詩集생명의 과실을 출간한다. 이미 활발한 문학 작업으로 주목받는 작가로 성장하고 있었으며, 문단 남성 작가들 또한 김명순에게 신여성이라는 더러운 기호로 자신들의 욕망을 투여하며 열광했지만, 그녀가 근대적 자아인 개인 주체로서의 여성 자기의 목소리를 내자 남성 문인들은 연애 스캔들을 내세워 그녀의 글쓰기를 무차별 공격하기 시작했다,

 

김명순이 유학시절 일본군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이응준이라는 소위로 임관한 조선인 남성에게 성폭행 당했다는 매일신문의 기사는 곧바로 김명순을 문란한 여성이라는 프레임에 가둬 끝없이 채색하고 소비하며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성폭행 피해자는 문란한 여성이라는 등식으로 변질되는 괴이한 윤리적 잣대가 작동했다. 특히 남성중심의 문단은 정말 파렴치했는데, 김기진, 방정환, 김동인 등이 린치에 가까운 공격으로 악질적 가해를 해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보드래 평론가의 방황의 권리, 고통의 미학, 동시대 문학사 3, 사랑』「방황의 권리, 고통의 미학)

 

김동인은 김명순을 모델로 한 추악한 소설(김연실전)을 써서 2차 가해질까지 해댄 것인데, 이 친일 매국노는 한국문학사의 더러움을 장식하는 감초인 듯하다. 김명순은 이러한 적대적 불화에 고군분투하며 격렬한 언어적 발설과 분출을 통해 세계에 참여하기를 희구했지만 문단과 사회의 극단적이고 처절한 단절과 처벌은 그녀에게 그 어떤 극복의 가능성마저도 완전히 앗아가고 말았다. 이러한 완전한 절망감에 부딪쳤을 때 그 어떤 존재건 미치거나 죽지 않을 수 있을까? 울분과 수치심과 복수심을 발산함으로써 세계에 호소하며 그런 스스로의 정념을 객관화하기 위해 여러 다양한 삼인칭 장치를 활용하여 분투하지만 결국 분열로 진행되고 만다. 그녀의 내 가슴에라는 시를 읽다보면 조각조각 찢어진 붉은 꽃잎들같이도”, “나는 무수한 검붉은 아이들에게 묻노라.”, “분노에 매맞아 부서진 거울 조각들아,”, “피 맞아 피에 젖은 아이들아,” 와 같이 시문장의 전체가 찢어지고, 조각나고, 아이들이라는 분열의 언어로 쓰여져 있음을 읽게 된다.

 

[출처: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1924년 6월 14일자 조선일보 영인본]


동시대 문학사 1여성 자아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타자 되기의 미학라는 글에서 심진경 평론가는 김명순의 분투가 가장 짙게 남아있는 작품으로 1924년 신문에 28회 연재되었던 소설 탄실이와 주영이(1924)를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 김명순은 자신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문화적 폭력에 맞서는 동시에 스스로를 새롭게 재정의하기 위해 절박한 시도를 한다. 심진경은 이를 자기변명이 아니라 여성의 삶을 스스로 언어화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였다고 해독하고 있다. 그러나 끝내 자신의 망가진 정체성을 벗어나려는 분투는 실패하고, 거처도 없이 떠돌다 일본의 뇌(정신)병원에서 죽고 만다. 여기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여성이 의 문제를 생각한다는 것은 를 구성하는 사회적 요인들의 억압을 드러내고, ‘의 다른 잠재성을 상상하는 문제임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참 빠르기도 하여라.)

 

이의 또 다른 표현으로서 미친년들, 미쳤다고 낙인찍힌 여성들은 고정된 성역할 규범을 벗어났기에 들어야 했던 사회적 징계의 언어였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성적 욕망과 주체성에 대한 남성적 시선의 비열함에서 비롯된 여성의 광기라는 언어가 역설적으로 가부장적 남성중심의 이데올로기의 해체를 시도하는 언어의 의미로 비로소 와 닿은 것이다. 성폭행당한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피해자를 가해한 당대 문단 남성들의 위선과 비열함이란 그리 새삼스럽지도 않다. 김명순에게 가해진 일방적 단절과 폭력과는 차이가 있지만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새롭게 자각하고 재구성하려는 고백적 자기 서사인 1934년에 게재된 나혜석의 이혼 고백장-청구(靑邱)씨에게는 곧바로 뻔뻔한 불륜녀라는 비난과 더불어 성적으로 문란한 존재로 낙인찍어 내버려졌다. 나혜석도 알츠하이머로 떠돌다 행려병자로 객사하고 만다. 여성이 자기 주체의 정립을 위한 목소리를 내면 곧바로 처단되던 그 비루한 실제는 이렇게 미친년, 여성의 광기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어쨌거나 김명순과 나혜석은 소위 신여성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여성 지식인 엘리트였다. 그런 그녀들이 남성중심사회에서 처절하게 내쳐지고 미친년이 되고, 이름 없이 사라졌다. 당대 여성 인구의 대다수는 이렇게 근대화를 체화한 교육받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소위 구여성이라는 범주에 속했다는 점이다. 일제 식민지 통치권력이 들어서서야 통속교육이라 해서 자신들의 통치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소양 교육을 시행하였을 뿐 아니라, 1920년대의 식민지조선의 문단이라 해도 자유자재로 한글을 구사하는 인물이 드물었다는 증거들은 구여성들에게 자기 각성, 여성의 새로운 자율적 자기 주체의 정립을 기대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에 물음이 발생한다.

 

필리스 체슬러가 지적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이 서로 싫어하고, 서로 경쟁하며, 다른 여성들로부터 배신당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는 즉, 성공하거나 권력을 지닌 여성들이 다른 여성들을 보호해주거나 그로인해 고양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 서로간의 차이로 인해 작동하는 심리적 두려움이라는 여성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간극의 문제다. 1938년 여성 소설가 백신애는 남편과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광인으로 내쳐진 구여성의 비극을 다룬 광인 수기를 발표한다.

 

서구 페미니스트 정신분석학자가 2005년에 발표한 권력을 지닌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 사이에 놓여있는 강의 문제가 백신애의 신여성과 구여성의 물음 속에서 이미 개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백신애의 소설 작품들에는 균열적이고 병리적 상황에 빠지는 인물이 즐비하게 등장한다. 백신애는 김명순이나 나혜석이 문단이나 사회에서 어떻게 취급받고 처형되는지 보았을 것이다. 그녀가 취한 방법은 이중 언어 전략이다. 따르는 듯 하지만 이면으로는 저항을 감추는 듯 발설함으로써 기존의 규범적 질서에 균열을 내고 해체를 요구하는 것이다. 여성의 광기는 살아내기 위한 불가피한 생의 필살기였던 셈이다.

 

- 이눔 하누님아, 에이 비러먹을 개새끼 가튼 하느님아, (...) 아이 무서워, 아니올시다. 거짓말이올시다.(...) 부대부대 벼락은 치지말고 잘 살두록 해주시소.“ -백신애, 광인수기에서

 

광인 수기속 미친 여자는 남성중심 사회에서 타자로 소외된 여성이 자신의 내적 분열, 분노, 저항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형상이다. 한국문학의 역사에서 이러한 불복종 여성, 특히 미친년의 문학사적 전통은 근 60년간 끊어졌다 2007년 한강의 채식주의자영혜로 다시 출현했다.” 물론 여성의 광기를 소설의 제재로 직접 삼은 소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고, 남성중심의 젠더화된 여성에 대한 관습화되고 스캔들화된 허구에 저항하는 무수한 여성 서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광기에 강하게 견인된 김영순-백신애의 계보는 김명순-백신애-한강이라는 연결선으로 이을 수 있게 되었다. 이건 무슨 문학적 계보를 의도적으로 만들고자하는 따위의 도식이 아니다. 소설 속 미친년들이 다만 그렇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는 스스로를 나무라고 상상하는 정신병자로 변하여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그녀가 본래 미친년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평범했던 여자가 아버지에게 맞아죽은 개, 그 개를 강제로 먹어야했던 기억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로 인한 사후적 채식주의의 선택이 가부장제적 폭언과 폭력의 계기로 이어지고, 급기야 거식과 침묵을 거쳐 나무-되기라는 불가능한 변신 욕망으로 나가는 과정이 연작단편으로 구성된 이야기다. 아버지-남편이라는 가부장질서에서 심지어는 식물적 육체가 된 처제 영혜의 육체를 예술의 대상으로 삼아 또다른 형태의 여성적 역할로 대상화하는 예술로 가장한 형부의 성폭력이 더해진다. 극단으로 치닫는 영혜의 광기는 타자화된 여성을 강렬하게 표현한다.

 

정말 조소가 터져나오는 것은 이 소설의 형부의 예술적 위선 위에 펼쳐지는 패륜적 근친상간이라 부를 수 있는 영혜에 대한 성폭행 장면을 뚝 떼어내 영혜를 패륜적 여성이라 부르며, 부도덕한 소설이라고 욕설을 뱉어내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이다. 소설을 한 웅큼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문해력 무능을 만방에 알리는 무지의 어리석음은 물론, 필리스 체슬러가 지적한 페미니스트 여성들 사이의 불신과 몰이해가 바로 지금에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지배질서에의 순응과 거부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오정희의 작품들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히스테리적 주체들의 전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라캉이 아마 이렇게 말했는가보다. 주체는 스스로의 결여를 전면에 내세워 타자의 권위, 규범, 사랑의 대상을 자극하고 그 타자가 내세우는 이름과 설명을 끊임없이 시험한다.”며 히스테리 주체란 타자의 욕망을 캐묻고 흔드는 운동 속에서 자기 인식을 이 구조의 두 자리를 왕복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이러한 여성 주체가 오히려 오늘날 여성이 위치한 자리에 대한 가장 진솔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에 이른 페미니스트의 시점에서 보면 퇴행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엘리트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페미니스트들이 감염시켜야 할 대상은 바로 이러한 현실 사회 속 여성들이다. 오정희는 소설 속 여성 인물들을 히스테리적 주체로 상정하면서 가부장제적 질서라는 보편성 안에 스스로를 묶어두면서 그 안에서 내부의 예외로 존재하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비록 이러한 전략을 선택했지만 그것이 완료된 능사라고 생각지 않았다는 것이 그녀의 소설들 전반에 모호하고 불투명한 라는 존재의 출몰이다.

 

문학평론가 우찬제와 대담에서 오정희는 이를 설명하려 애쓰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충족되지 못하는 욕망이거나 엄중한 금기에 짓눌린 자아 또는 현실을 견뎌내기 위해 불러온 곡두이거나 어쩌면 근원적 그리움일지도 모르며 내 의식에 투영된 나 자신일 수 있습니다.(오정희, 우찬제의 대담록 오정희 깊이 읽기,2007라고. 에로스적 충동이 넘쳐흐르는 오늘에 이러한 전략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사태들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성적충동을 부추기고 섹시미를 범람케 하는 문화의 장과 달리 공적 장에 이르러서는 이를 묵살하거나 손가락질하는 가히 변태적인 시대임을 목도할 수 있다. 기성의 남성중심의 지배질서는 물론 20세기 전반과 많이 다르지만, 21세기 오늘에서도 지배질서의 윤리와 여성 욕망의 배치는 그리 순조롭지 못한 것이 실상이다. 여성 욕망과 변화하지만 여전히 강고히 잔존하는 질서의 압력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이 흐르고 있다.

 

나는 남성이다. 하지만 젠더화에 토대를 둔 성차별 의식에 조금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페미니스트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광기에 젖어들 수밖에 없는 여성 작가들의 계보 문학의 자취를 따라가다 한국문학의 수많은 작품들에 대한 내 무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심진경 평론가가 더 이상 순수 여성은 없다!”는 선언에 공감한다. 남성이건 권력을 쥔 여성이건 소외된 여성이건 우리들 모두는 자기 안에 타자를 품은 양가적이고 미결정적인 자기 동일성이나 보편성으로서의 단일 정체성을 지닌 존재들이 아니다.” 결코 그 누구건 확고한 자기동일성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나르시시스트이거나 철저하게 세계와 이격되고 고립된 산 속 깊은 곳 자연인일 것이다.

 

당연히 여성의 정체성이란 것도 단일 내부만으로 이루진 것일 수 없다. 타인과의 지속적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상대화하고 자기 확신을 무력하게 만들며, 당연함을 잠식케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자세일 것이다. ‘순수 여성이라는 말의 정체성도 이미 습득되어 온 역사적 산물이다. 결국 여성이라는 말 자체도 이미 오염되어 있기에 순수 여성이란 말은 가당치도 않게 된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제 하여야 할 일은 완전히 다른 무수한 정체성들에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자신과 어떠한 관계를 맺는가의 문제가 될 것이다.

 

평론가 오혜진은 퀴어 친밀성과 낭만적 사랑에 대한 소문들(동시대 문학사 3, 사랑이라는 글에서 여성의 현대적 섹스는 생물학적 번식이라는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쾌락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이야말로 나무랄 데 없는 자아를 연출하게 하는 동기부여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은희경의 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함께의 여성 주인공이 애인은 셋 정도 되어야 사랑에 대한 냉소를 유지할 수 있다.” 는 말의 변주처럼 들린다. 낭만적 사랑이 쾌락으로 대체된.

 

그러나 페미니스트 정신분석가인 필리스 체슬러는 차이와 고유성의 희생은 생물학적인 재생산과 문화적 무능이라는 여성에게 끝없이 반복되는 순환과 단단히 묶여있다.”고 현실의 삶에 놓여있는 여성의 본원적 고뇌에 대해 질문한다. 오혜진이나 은희경 식 전략은 필리스의 지적처럼 그렇게 단순하게 절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진단은 빈곤하거나 조잡하기 짝이 없다. 내 부족한 시선과 이해는 지금 지나 온 한국문학들, 특히 여성 문학들을 다시금 읽어보도록 종용하고 있다


한강의 여수의 사랑노랑무늬영원의 여성 서사들, 오정희의 소설 컬렉션들, 최윤과 배수아와 신경숙, 김명순과 백신애와 강신재, 그리고 박경리, 최승자와 김혜순의 화법 자체의 형질변화를 촉구하는 시선들을 조금은 더 깊숙이 읽어보아야 할 듯싶다. 이들 동시대 문학이 아닌 비동시성의 문학들이 우리 앞에 놓인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품고 있거나 어떤 영감이 되어주기도 한다. 다가오는 봄이 되면 이들 한국문학사에 저마다의 좌표를 남긴 여성작가들의 소설과 시를 탐닉하는 시간이 될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통속(通俗)이라는 어휘는 20세기 식민지 사회로 이행되기 전 조선사회에서는 그 사용례가 드문 말이었다. 굳이 그 용례를 살펴보자면 사대부 양반계층이 하위계층의 문화를 자신들과 구분하기 위해 아()와 속()으로 분별하는 용도로 사용했던 듯하다. 강용훈 교수는 통속에 대한 개념사 연구서인 통속의 계보학에서 “1906년 이후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에서 '통속'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식민지 지배권력이 속의 세계로 통치성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등장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20세기 일제의 식민통치권력이 식민지민들을 자신들의 통치 질서에 복속시키려는 의도에서 본격적으로 사용한 어휘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인 최초의 한글사전인 조선어 사전1938년이 되어서야 출간되었는데, 거기에서 통속모든 세상에 널리 통하는이라는 의미라고 기술되어 있는 모양이다. 서두가 길어졌다. 어쨌거나 통속이라는 어휘의 본격적 사용은 20세기 들어서면서 부터라는, 다시 말해 식민통치권력이 피지배민의 소위 계몽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하려다보니 장황한 시작이 되었다.

 

오늘날 한글사전에는 1938년의 사전적 의미와 더불어 저급, 저속한이란 의미가 추가되어있다. 사실 우리들의 일상 대화 속에서 , 그거 너무 통속적인데라고 한다면, 그것은 누구나 다 아는 뻔한 것이라는 의미와 함께 조금 저급하다고 얕잡는 어감을 품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통속을 말하고자 한 계기가 저급함을 느낀 소설 때문이다. 누군가가 쓴 창작품, 더군다나 해외에서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설에 나는 그야말로 통속적이라는 평을 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이것이 꼭 비하하려는 의도이기 보다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너무도 상식적인 이야기여서 그 진부함을, 기대 이하의 것이었음을 말하려는 것이었다.

 

그 소설은 20세기 일제 식민치하 한국인들의 일상적 삶의 모습들을 매우 정형화된, 아니 유형화(類型化)된 이라고 해야 할 인물들이 꼭 그만큼 유형화된 행태를 하는 인물전개나, 시대적 통찰의 세부를 표현하지 못하고 이미 드러난 외피의 변죽만을 우려먹는, 한마디로 저급하다고 느낀 것이었다. 대중적 인기를 얻은 기생이 인력거를 끄는 가난한 고학생을 도와 성공시키고, 거지 대장이었던 인물이 사랑에 눈멀어 일제에 저항하는 투사가 되는, 또 다른 한편은 친일로 부를 축적한 부자의 딸과 결혼을 위해 성장의 토대를 마련해준 연인을 배반하는, 1920~30년대 식민지 한국의 신문에 연재되던 심훈, 염상섭, 김말봉 등의 통속소설, 그리고 오늘날의 막장 TV드라마와 빼닮지 않았나? 21세기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한국인만을 위해 쓴 소설은 물론 아니지만 마치 누군가를 계몽하겠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매몰되어 있음에 대한 불쾌감이었다고 해야 할까? 상식,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그런 것으로 계몽한다는 생각을 오늘에도 하고 있다는 그 불순한 저의라니.

 


오늘에는 이 어휘, 통속이라는 말은 거의 사라진 것 같다. 그리고는 대중이라는 말이 그 개념의 상당부분을 대체 수용하여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때문에 통속소설이라는 표현보다는 대중소설이라는 범주로 뭉뚱그려 싸잡아 넣고, 소설문학이라는 문화의 한 범주를 평등화시켜버린 것만 같다. , 여기서 대중문학과 통속문학, 또는 고급문학과 저급문학의 2000년대 한창이었던 철지난 문학논쟁을 재현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대중문학이라 불리는 오늘의 소설작품들을 세분하여 문학을 서열화하는 위계질서를 부활하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또한 통속이라는 사용례가 드물어진 어휘의 부활을 도모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현실적 과제가 있음을 회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통속이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갈아탄 것도 대략 50년 쯤 된 것 같다. 한국사회에 TV가 널리 보급되던 1970년대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등장이 본격화된 이후부터 통속은 슬그머니 대중문화, 대중문학, 대중 예술로 불리기 시작했을 테다. 20세기 내내 계도(啓導)되고 훈육되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던 수많은 사람의 집단이었던 '통속'으로 멸시되던 존재들이 문화주체인 대중(大衆)’으로 그 지위가 격상되어야 할 필요가 대두되었으니 말이다. 통속이 사회적, 매체 기술의 발달로 인해 대중으로 불리게 된 사람들의 앎의 수준도 갑자기 뛰어오른 것일까? 매체가 쏟아내는 잡다한 정보의 영향으로 어느 만큼의 도약이 있었을 것이지만, 대중 구성원들이 한결같이 동일한 앎의 질적 도약을 지니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않아 보인다.

 

어쨌거나 대중이라는 이 의뭉스런 어휘에는 온갖 잡다한 의미들을 상층부 지배계층과 다른 일반의 사람들이 지닌 속성 모두를 싸잡아 넣은 두루뭉술한 어휘가 되어 그 용례의 폭이 무한하게 넓어졌다. 즉 평준화되고, 평등화된 대다수의 사람들과 그 집합을 지칭하는 효율적 어휘가 되었다. 그렇다보니 무언가 저급함을 말하려하면 대중을 비하하여만 하게 된다. 곧 대중이 저급한 것이 된다. 통속이 지닌 저급, 천속한 의미가 구별짓기의 엘리트주의적 문화관이라는 날선 비판을 지우기 위해 대중이라고 퉁치면서 비하의 목소리는 이면으로 은닉되었다. ‘대중은 문화의 주체입니다.’ 라고 말하지만 이때 그것은 단지 소비대상이거나 투표의 수량이라는 계산적 필요성에 근거한 가장된 권력주체로서의 기만적인 가면의 언어일 뿐이다.

 

그렇다면 통속소설이라고, 통속문화라고 분별하는 것이 오히려 진솔한 표현이 아닌가. 음흉하게 대중소설이라고 그 문학적 품질의 분별을 감춘 채 독자 일반인 대중 감식안의 천박성을 말하는 것은 더욱 기만적이다. 20세기를 관류하면서 통속이라는 어휘의 개념은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그러하지만 하나 분명한 것이 있는데, ‘세상에 널리 통하는이라는 뭇 사람들과의 원활한 소통의 긍정적 시선과 저속 또는 저급한의 의미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통속에 교육(계몽), 윤리, 상식, 도덕의 의미와 연결하여 사용하며 그 긍정적 용례로 해석하려는 의지와 천속(賤俗)한 것 일반이라는 부정적 용례 사이에서 끊임없이 요동쳐 왔다는 사실이다.

 

통속에 대한 이러한 개념변천의 관점을 나는 거부한다. 마치 용례의 긍정과 부정의 부단한 충돌처럼 보이는 시대적 담론들은 말장난이기 십상이다. 그때그때 자신이 처한 상황 또는 입지에 따라 통속의 잣대를 돌리는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에서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신문연재 소설을 쓰면서 통속소설 작가로 비하되어 불리던 김말봉은 통속의 가치 폄하에 다음과 같이 강력한 반론을 편다.

 

대중문학이라면 통속과 통하는 것으로 믿고, 통속이기에 멸시해도 좋다는 일부 그릇된 인식에 사로잡힌 족속이 있다. (...) 저속이 대중의 취미라고 속단하는 작가배가 있다면 이것은 대중을 모욕하는 뜻이 된다. 대중은 문자 그대로 수많은 민중을 의미하는 것이다. (..) 건전하고 정의가 승리하는 모랄(morals)’ 아래서 대중이 진정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정신문화를 지향해준다면 대중문학의 사명은 수행된다 해도 좋다.” - 출처: 경향신문1958.3.5.기사 대중문화에서

 

김말봉은 이렇게 통속을 저속과 구별하며 슬며시 통속을 대중과 또한 구별해버린다. 이 글에는 통속을 저속이라 말한다면 대중의 취미를 모욕하는 것이라는 것, 건전하고 정의가 승리하는 윤리의식과 정신문화 지향을 앞세워 재미가 대중문학의 사명이라는 것이라는 문제적 정의가 보인다. 어떤 문화적 생산물에 통속성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위험성이 여기에 있다. 대중을 욕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대중 뒤에 숨어든 통속, 대중의 의미는 이렇듯 흉측스러운 전략이 있다. 자기 저급성을 은폐, 대중에 영합하여 사욕을 충족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날 대중성이라는 것의 민낯이다. 또한 윤리의식과 정신문화를 앞세워 재미를 판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는 김말봉의 주장에는 별개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대체 어떤 윤리이고 정신이냐는 것이다.

 


김말봉은 오늘날 TV의 막장드라마의 효시이다. 말초적이고 선정적인 내용과 기성의 질서에의 순응이라는 규율과 상식에 봉사하는 정신이라면 그것은 매우 그럴듯한 말의 수사(修辭)로 부패한 양심을 가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통속은 대중과 분리하여 그 선명성을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문화를 대하는 소비대중(독자, 관객, 청중)의 안목을 대우하는 것이 된다. 통속성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대중을 저속하다고 폄하해서가 아니라 대중의 취향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어떤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 통속의 딱지를 붙이는 사람이 있다면 대중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나가떨어지기 십상이다. 더구나 문화생산자 당사자가 고급과 저급을 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입지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비평가들이 나서야 할 때다.

 

통속에 대한 긍정적 수용과 부정적 배제의 논쟁들은 모두 거기서 거기다. 시대에 따른 담론의 주체적 성질의 표현들만 달라졌을 뿐이지 그 본질은 모두 동일한 선상에서 이루어질 뿐이다. 여기에는 통속이 지니는 의미를 그 동일성에도 불구하고 두 다른 대척의 뜻으로 받아들였기에 발생한 편의주의적 해석이 있어 보인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상식의 의미는 현상을 사실 그 자체로 믿어버리는 긍정의 의식, 즉 현실 질서에 그대로 순응하며 어떤 이의도 지니지 않는 이라는 의미와 저급 저속하다는 것은 다른 의미의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표면적 시선에서는 충돌이지만 어휘가 내재하고 있는 함의에는 아무런 충돌도 없는 것이다. 통속은 그저 저속한 것이지, 여기에 그 어떤 시대적 담론을 끼얹어봐야 자기 이해에 터 잡은 말장난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아는 것이 통속이다. 규율 순응을 반복하는 것, 자신이 모르거나 다른 것을 배제하려는 폭력성의 다른 표현이다. 대다수 식민지민에게 자신들의 통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상식을 위해 통속강의, 통속교육을 시키면서 통속은 우리사회에 자리 잡은 언어다. 이를 뒤집어 바라보면 식민지 한국인들을 싸잡아 무지와 몽매에 안주하고 있는 저속함이라는 멸시의 의미와 더불어, 이를 적정한 앎의 궤도에 올려놓고자 하는, 즉 자신들의 통치 질서에 길들이겠다는 의도된 의미가 있다.

 

통속성은 이처럼 오만한 태도와 전체주의적 욕망이 들끓고 있다. 통속성을 답습하는 것과 통속성을 지적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내란범 재판에서 윤은 최후변론에서 계엄명령은 계몽(啓蒙)령이라고 비굴한 항변을 반복했다. 누가 누군가를 대상으로 계몽하겠다는 것은 이처럼 폭력과 교만의 다른 얼굴이다. 20세기 상반기 식민지민들의 문자 해독능력과 새롭게 쏟아져 들어오는 문물에 대한 앎이 일천했던 시대와 21세기 K-Culture로 상징되고 대중지성 또는 집합지성이라 불리는 현실에서는 그야말로 계몽, 통속성을 향한 행보는 그 무엇이든 퇴행적인 것이다.

 

개념사 연구자인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개념 자체가 정치, 사회적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개념의 잣대를 통해 인지된다.” 개념적 변화와 사회적 변화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제 통속은 저급으로 분명하게 해석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 문화에서 분명 몰아내야 할 선명한 것으로 지목되어야 한다. 또 한명의 개념사가인 레이먼드 윌리엄스도 어휘들의 의미변화 양상은 역사적이고 사회적 관점에서 서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듯, 이제 통속은 한국사회의 변화적 관점에서 재정의 되어야 한다. 공론장에서 은폐되었지만 일상의 이해에서의 용례에 주목해 우리 문학의 수용자들인 대중의 의미를 격상시키기 위해서라도 통속은 저급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

 

어느 평론가가 대중의 문학적 역량에 대해 불신을 보이면서 대중의 문학적 취향을 통속으로 싸잡아 단정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대중이 곧 통속이라고 여긴 것인데, 이러한 대중의 용례에서 보이듯 통속은 분별되어 지적되어야만 한다. 통속이 계속해서 대중 속에 암약하게 방치하면 지금 한국사회에서 날뛰는 저 통속적인 것들처럼 대중을 전락시킨다. 일종의 낙인찍기라는 극약의 처방으로서 대중과 통속의 분리, 나아가 통속의 부활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통속을 주장하는 것은 엘리트주의적 차별의지도 아니며, 문화민주주의를 역행하려는 반민주적 반동주의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비난 속에 내포된 은밀성과 폭력성의 은폐를 모르는 체 하려는 대중 뒤에 숨은 불순한 의지들을 봉쇄하기 위함이다. 계몽령이라는 반시대적 수작이 가능한 것도 대중이라는 언어 뒤에 숨어있는 통속이 암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을 동질화 형성하겠다는 이 전체주의적 욕망의 싹을 뽑아내기 위해서라도, 문화 선진국으로의 진정한 돋움을 위해서라도 통속성은 지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정적 감상주의와 상업주의가 판을 치는 문화, 통속적 취향에 입맛을 맞춘 문화는 자기 파멸적이다. 대중의 지성을 갉아먹는 암세포다. 하나의 소설이 장황한 설레발을 치도록 만들었다. 이 잡설을 쓰면서 우리의 20세기 상반기 근대문학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음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통속과 순수, 정통문학과 대중, 통속문학의 논의를 뜨겁게 달구었던 김기진, 안회남, 이태준 등을 읽어보아야 할 것만 같다. 그리고 언어가 시대와 상호반응 변천하는 개념사도 더불어서

---------------------------------------

* 이 글은 강용훈 교수의 통속의 계보학이 부분적 바탕지식이 되었으며, 김주혜 작가의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Beasts of a little land)에 대한 비판적 읽기에서 비롯되었으며김말봉 소설들에 대한 회의적 읽기로의 전환을 계기로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