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센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0
서머셋 모옴 지음, 신상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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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서머셋 몸(W. Somerset Maugham) 자신의 1차 세계대전 중 유럽지역 영국첩보원으로서의 경험 일부분을 토대로 하고 있어 그의 소설 중 독특한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굴레』나 『달과 6펜스』를 떠올리면 첩보물이란 미스터리 소설을 그와 연결하는 것이 낯설기도 하지만, 그만큼 강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을 부인키 어렵다. 또한 이 작품과 더불어 1937년 발표된 『공포의 배경』은  소위 첩보원을 주인공으로 하는 심리적 스릴러의 원천이 되었다고 하니 문학사적 위치도 간과할 수 없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1928년에 최초로 발표되었으며,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10년을 전후한 세계대전 기간으로, 영국,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지역과 레닌과 트로츠키의 볼셰비키 혁명이 완성되는 1911년의 러시아를 무대로 하고 있다. 특히 작가의 체험이 그대로 반영된 듯 보이는 내용들의 사실성으로 인해 인물에 대한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작품의 특징이랄 수 있겠다. 그리고 모호한 이야기의 구조를 하고 있는데, 총 16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각각이 하나의 인상적 의미를 전달하면서도 전체는 연결되어 한 편의 장편소설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몇몇 이야기는 그 자체로서 완성도 높은 하나의 단편소설로서 완벽한 기능을 수행한다. 사랑을, 허영심의 본질을, 조국애를, 전쟁과 첩보전의 비정함을, 소시민적 삶에 대한 연민을, 전쟁이란 혼돈과 위험의 특수한 시공에서 펼쳐내기에 보다 다양한 인간의 양태를 발견하게도 된다.

 

영국 첩보원이 된‘아센덴’은 ‘제임스 본드’류의 민완하고 다재다능한 이상화된 스파이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을 하고 있어, 오히려 진지하고 내용의 신뢰를 갖게 된다. 리얼리즘이 지향하는 맛이 바로 이런 것일 게다. 위험에 대한 경계와 두려움, 적대적 상대자에게조차 보내는 인간적 연민, 위선을 걷어내고 진솔하게 드러내는 감정들로 인해 비정하다거나 냉혹한 첩보원이란 도식이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전쟁이란 적의와 증오에 희생자일 밖에 없는 첩보원들, 그들 역시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내이며, 자식이자 어버이다. 어센덴이 임무를 수행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동료 스파이나 적의 스파이 모두에 대해 그네들 본연의 인간성에 초점을 맞추고 내면과 일상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


조국 영국을 배신하고 적국인 독일을 위해 첩보활동을 하는 영국인에 대해서 증오와 분노라는 적의보다는 삶의 수단으로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나 독일인 아내를 위한 곡진한 사랑을 발견하는 식이다. 전쟁 중인 조국에 위해를 가하고 영국 첩보원을 죽음에 몰아넣은 배신자일지언정 그를 함정에 빠뜨려 처단해야만 하는 첩보원으로서의 애환이 진실 되게 그려지고 있다. 영국으로 향한 남편으로부터 소식이 두절되자 기다림의 두려움으로 고통 받는 첩보원의 아내를 묘사한 장면은 압권이다. 반면에 독일의 첩자인 인도인을 체포하기 위해 그의 연인을 이용하는 정보기관의 비정한 일화는 사랑조차 한낱 죽음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착잡한 인간애로 갈등하는 첩보원을 보게 되는 것은 어떤 인간적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이 작품은 어센덴이라는 스파이로서의 인물 자체에 시선을 맞추고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현대의 미스터리 액션, 서스펜스를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들과는 근본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스릴이나 박진감, 긴장감을 요소로 하고 있지 않으며, 허황된 영웅을 탄생시키지도 않는다. 그러나 소위 스파이를 구성하는 임무의 본질들이나 활동 내용, 그 추진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사실성을 통해 인간과 삶의 본원적 모습들, 시대에 대한 주의 깊은 성찰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적 성취를 이뤄내고 있는 것은 결정적 미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상 깊은 이야기가 있는데, 임무를 위해 파견된 국가의 주재영국대사가 사랑과 결혼, 그리고 허영에 대해 들려주는 인생의 회고담이다. 고급 외교관 신분이었던 청년이 천박한 무희에 불과한 여성에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열정에 빠져들지만, 신분과 권력, 명예에 대한 지향으로 사랑을 떠나 자신의 야심을 지원해 줄 수 있는 가문의 여성과 혼인하는 것이다. 사실 통속적인 스토리라 할 수 있으나 이 회고에서 발산되는 ‘허영’, ‘인생에서 진정 중요 한 것’에 대한 문장들은 가히 문호다운 사색적 명문들로 채워져 있기에 압도되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괴롭히는 여러 감정 중 가장  파괴적이고 보편적이며 뿌리 깊은 허영심이란 감정이 우리들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허영심의 속박에서 구출되지 않는” 이유들...(정말 매혹적이랄 수 있다.)


사랑, 배신, 삶과 죽음의 기로 등이 무대를 바꾸며 스파이 활동에 녹아 흐르다, “인생에서 노인이 되어 후회할 수 있는 것을 만들지 못했다”는 사회적 성공을 했다는 인물의 고백에서 절정을 이루고, 블라디보스톡에서 페트로그라드로 이어지는 러시아 횡단열차의 이동과 볼셰비키 혁명 전야의 불안한 정세 속에 펼쳐지는 인간 군상들의 예술과 사랑, 폭력과 무참한 희생이 한 평범한 미국인 가장의 소심하기조차 한 세탁물로 상징되는 자기애의 집착이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작가의 말처럼 전쟁의 현실감이 상실된 시기에 전쟁 첩보활동은 단지 소재에 불과 하게 된다. 그 환경,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삶의 심연을 공감어린 인간애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를 위로하며 인생의 가치를 되새겨 보는 작업이야말로 변화하지 않을 문학의 본성 일 것이다. 이야기를 듣는 기쁨이 분명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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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물든 방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0
앤절라 카터 지음, 이귀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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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구전민담은 물론 문자화된 동화의 원작에 대한 지원이 없을 경우 다소 당혹스러운 작품이 될 수 도 있을 것 같다. 내용 자체에서 읽히는 페미니즘이나 젠더(Gender)를 부인하는 성적평등의 요소, 혹은 「마왕」과 같은 몇몇 작품의 환상적일정도로 우아한 문장에의 도취만으로는 작품의 뭔가를 읽어내지 못했다는 결핍의 느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책,『피로 물든 방(原題: The Bloody Chamber)』을 구성하고 있는 10개의 변형된 이야기들이 각기 18세기 유명 작가인‘샤를 페로’나, ‘그림 형제’가 쓴 동화에 기초하고 있고, 바로 이들 작품의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 틀을 전복하고 있다는 배경적 요인을 지니고 있어서이다.

 

사실 구전되는 민간의 이야기란 우리나라의 전통 민담에서 보여 지듯이 당대의 소외된 약자들로서 현실 세계인 사대부, 남성중심의 세계에서 할 수 없었던 것을 처녀 귀신으로 분한 여성들이 이승에서 비로소 직간접적으로 해소하고,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시 서구의 민간에 전승되던 이야기들도 이러한 맥락을 가지고 있었으나, 당초의 내용이 문자화되면서 남성 작가들에 의해 왜곡, 변형되었다는 점에 작가는 주목했던 것 같다.

 

결국 작가의 작품 집필 의도나 취지가 이 책만큼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예로서 표제작인 「피로 물든 방」은 샤를 페로의 동화집에 수록된 「푸른 수염」을, 「리용 씨의 구혼 이야기」는「미녀와 야수」를, 「눈의 아이」는「백설 공주」를, 「사랑의 집에 사는 귀부인」은「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염두에 두었을 경우에 그 차이에 대한 이해로 작품이 더욱 선명해진다는 점이다.

 

수록된 각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은 소녀가 되었든, 귀부인이 되었든, 자신의 신체나 욕망을 은폐하지 않는 인물로 그려진다. 즉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이라는 '젠더'가 내장하고 있는 차별화된 사회적 기능이나 역할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성(性:sex)'이라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는 구분 없이 분명하고 노골적이 된다.

여성을 쾌락의 수단으로만 간주하는「피로 물든 방」의 백작을 비롯해 수록된 거의 전편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권위와 야수성을 고유의 특성으로 하고 있으며, 여자들은 수동적이며 남성권력에 순응하는 모습을 띤다. 그러나 이 여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주체적 본성에 눈을 뜨게 되면서 남성이라는 사회의 고정된 우월적 권력을 전복시키거나 혹은 남성과 여성의 분별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상황으로 전환 시킨다.

 

「사랑의 집에 사는 귀부인」의 갇혀 지내는 여인이 남편의 눈을 피해 젊은 남자와 적극적인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가하면, 「피로 물든 방」의 여인 또한 자신의 성적 반응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마왕」의 소녀나, 동화 「빨간 모자」를 변용한「늑대-앨리스」등 늑대 연작의 소녀들도 예외 없이 자신들의 성적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기성의 동화가 그려내는 늑대나 남성의 희생양으로서가 아닌 대등한 권력관계로 전환된 여성상이 그려지는 것인데, 여기에는 여성 스스로가 가부장적 문화에 종속되어있다는 인식적 한계에 대한 각성이 포함되어있다고도 할 수 있다.

 

결국‘여성’이라고 하는 젠더가 발산하는 피동적이고 수줍으며 의타적이고 가냘픈 전통적 여성상의 파괴를 통해 내재된 억압과 차별의식을 제거하려는 것이며, 과감하게 숨겨진 여성의 성적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가부장 사회가 억압해 온 성 모럴의 왜곡을 시정하고자 하는 것이라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 지향하는 귀결은 동일 지점에 모이겠지만 외설적이고 폭력적이며 권위적인 남자들의 야수성이 극대화 된 인물들을 통해 고착화된 사회문화적 남성성의 이미지를 비틀고 조롱하기도 한다. 부와 권력을 장악했지만 야수는 더없이 정염에 취약하고, 늑대는 나체의 소녀를 잡아먹지 않으며, 오히려 오쟁이 지고 죽음에 내몰린다. 이 역시 젠더관계를 여지없이 파괴해버리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집은 일면 음흉하고, 잔혹하며, 외설적이다. 아마 기성의 지배적 사회와 문화 관념의 전복이 가져오는 불편함, 거북함, 낯섦이 가져오는 느낌 탓일 게다. 그럼에도 음울한 고딕적 어둠, 노골적인 에로티즘과 극단적으로 대비될 만큼 아름다운 서정적 문장들은 더욱 기괴한 매력에 빠지게 한다. 혹독한 남성 신화의 해체, 분별이 없어진 성의 나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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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이별 동서 미스터리 북스 7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이경식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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챈들러가 빚어낸 불세출의 인물, ‘필립 말로우’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소설의 품격을 이미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언어나 행동에는 세상의 무수한 사실 그대로가 장식이나 위선 없이 담겨져 있다는 느낌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표현 중에“한계를 넘어서면 어떤 위험도 다를 바 없다.”라는 문장은 세상을 대하는 신념을 엿보게 한다. 선악과 같은 이분법적 잣대로 획일화하여 구별하거나, 신분, 재산, 지위, 과거의 내력 등으로 인간을 판단하지 않으며, 하나의 존재자 그 자체로서에 대한 연민으로 인간을 대하는 말로우의 철학적 개성은 요즘 세상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매력이다. 사교성과는 조금 먼, 강한 신념이 오만으로 인식되어 적의를 불러일으키는, 그러나 인간에 대한 배려와 정감, 의리를 간직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술집 주차장에 만취하여 버려진 남자조차 외면하지 못하는 탐정이다. 이렇게 우연히 알게 된 남자에 대한 호감은 두 사람을 일종의 우정, 인간적 신뢰로 연결한다. 남자가 대재벌의 방탕한 둘째 딸의 남편임을 알게 되지만 그늘진 모습에서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과 불안을 인지한다. 어느 날, 권총을 든 채 새벽녘에 찾아 온 남자로부터 아내가 살해되었다는 고백을 듣고 그의 도피를 돕게 된다. 물론 그 남자가 그의 아내를 살해한 범인이 아니라는 확고한 믿음에서이다. 이것이 소설의 발단이다. 성적으로 문란한 재벌가의 딸이 피살되고, 그녀의 남편이 도주한 사건. 치정(癡情) 사건의 전형적 외형을 하고 있지만, 그 심층에 접근 할수록 그리 너주레하다거나 천박하지 아닌 것이 된다.

 

들이닥친 형사들에게 다짜고짜로 얻어맞고, 경찰에 연행되어 다시금 폭력을 당하지만 말로우란 인물은 입을 다물어버린다. 살인 종범이라는 억지 이유로 유치장에 구금되지만, 도피를 도왔던 남자가 자살하였기에 사건이 종료되었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석방된다. 즉, 아내를 죽이고 도망친 남편, 즉 살인자인 용의자가 죽었으니 수사가 더 이상 진행될 이유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소설의 외연은 확장되기 시작한다. 치정으로 인한 단순 살인사건이 아니라 사건을 조속하게 덮어버리려는 힘, 그리고 그러한 힘에 기꺼이 공조하는 비루한 공권력처럼 혐오스런 인간의 오염된 사회질서, 법과 제도 등 문명이라는 그럴듯한 어휘에 은폐된 인간들의 위선적 심리에 메스를 갖다 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법률은 정의가 아닐세, 대단히 불완전한 기구라는 것을 알아야 하네. 단추를 잘 누르고 거기에 운까지 따른다면 정의가 튀어나올 때도 있겠지. 법률이란 그런 거야.”이 말에는 사회질서에 대한 강한 불신도 있지만 그보다는 삶의 초탈, 보다 높은 삶의 지혜와 진실의 통찰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이러한 형태의 일견 냉소적이랄 수도 있겠지만 나름 심화된 사회학적 비판의식을 끼워 넣고 있는데, 이러한 덤 같은 문장들이 사건의 진실로 접근하는 통로이자 중대한 단서로 작용하고 있다는 발견에 이르면 ‘챈들러’의 명성이 결코 허명이 아님을 인정하게 되기도 한다.


재벌이 자신의 치부를 조속히 은폐하기 위해 권력을 행사하고 폭력을 주사한 것인가? 다시 말해 금권이 공권에 외압을 가한 것일까? 아니면 재화에 대한 탐욕에 눈 먼 경찰, 검찰 등이 스스로 시녀가 되어 재벌의 무릎에 앉아 아양을 떨어댈 요량으로 알아서 기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에서 법의 정의로운 집행이란 정말 공허하고 무력한 얘기가 되고 만다. 단지 돈이냐, 권력이냐만 문제가 되는 세상에서 일반 시민의 법률적 정의에 대한 기대는 정말 가소로운 것이 되고 만다. 어쩌면 이 소설의 재미를 이끌고 있는 스토리는 이렇게 몇 글자 안 되는 소비물질주의, 기회주의적 관료주의, 정경유착이나 금권정치, 쾌락과 이기주의에 몰입하는 상류계층의 타락한 정신 등 비판을 위한 수사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할 정도로 진지하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화를 방해하려는 듯 불쑥 정신적 고통으로 알콜 중독에 시달리는 유명작가와 그의 아내인 미모의 여성이 등장하고, 마침내 실종된 남편을 찾아달라는 탐정의뢰를 받기까지 한다. 엄청난 광휘와 지성을 발산하는 미모의 여인에 대한 숨길 수 없는 호감도 한몫해서 실종된 작가를 찾아내지만 이 과정에서 피살된 재벌의 딸과 작가의 관계, 작가의 아내와 자살한 남자와의 관계에 대한 진실에 접근하게 된다. 그리곤 유명작가와 그의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듯한 말로우의 인간적 갈등, 그 속에서 꿈틀대는 숨겨진 비밀들, 도피를 도왔음에도 자살한 남자의 사건이 무관해 보였던 이들 부부의 은폐된 사실에 접근 할수록 주변의 위협이 더해지면서 작품의 몰입을 견인하기도 한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러한 이야기의 개입이 복선이나 반전을 위한 내용의 구조적 필연이자, 이야기에 감각적 재미를 덧대기 위한 절대적 요소라고 이해하게 되지만 요즘의 미스터리 작품들이 갖춘 속도감이나 구조적 긴밀성과 같은 정교함에 비추어 그 유기적 연결이 느슨하거나 괴리된 느낌을 갖게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거창한 비판적 시선의 개입과 마침내 드러난 사건의 원인이 결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과 사회와 제도와 같은 문명의 자기 비판적 성찰을 도입하여 자칫 경박하고 미천할 수 있는 장르문학의 내용적 한계를 극복하고 현대인의 심리적 해부나 인간성 회복과 같은, 게다가 범죄를 개인적 문제로서가 아니라 물질의 풍요 등 현대의 욕망이 수반하는 더러운 댓가로 해석하는 것 등은 필립 말로우라는‘고독한 초인’으로서의 매력에 더해져 작품의 격을 올려놓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현대 미스터리 소설의 발전사에 리얼리즘의 이정표를 제시한 귀중한 문학적 위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대표작인 『깊은 잠(The Big Sleep)』과 함께 읽어 볼만한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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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속삭인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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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역사적으로 민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장소를 오늘날 발견하기란 수월치 않은 일이다. 참지 못하고 흔적을 아예 지워버리는 일을 선택하곤 하기 때문인데, “공간들이란 희미하게나마 그곳에 머물렀던 이들의 흔적을 간직”한다는 경외의 발로일 것이다.

이러한 공간의 기억이 모티브가 되어 한 여인의 의식을 완벽하게 허물어뜨리는 여정을 쫓는 것이 이 소설이다. 아마 이 작업이 후일 유태인 처형에 동조한‘벨디브(유태인 강제수용 벨로드롬 경기장) 사건’을 소재로 한 『사라의 열쇠』 집필로 연결되었던 모양이다. “돌이 인간의 불행을 빨아들이고”, “벽이 고통을 느낀다고 믿었던” 것처럼 특정 공간을 만들어내는 벽, 집, 건물 등에 스며들어 있는 과거 사람들의 감정을 예민하게 불러내고 그 고통을 위로하려는 의지의 투영이었을 것이다.

 

마흔 살의 이혼녀,‘파스칼린 말롱’은 새 출발을 다짐하며 자기만의 거주공간을 마련한다. 첫 눈에 자신의 이러한 상황과 기분에 걸 맞는 집의 입주는 부푼 기대와 충일한 만족감으로 가득하게 한다. 그러나 이사하는 날, 현기증과 구토 증세, 오한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지만, 사무실에 출근하면 이 증세는 말끔히 사라진다. 왠지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 두렵기만 한데, 이 집에서 일곱 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 사건의 첫 번째 여성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죽고 있으며, 그 장소의 예외가 어디 있겠느냐고 자위하지만 구토와 어지럼증, 악몽은 점점 심화되기만 한다.

 

“어떤 장소에서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는 강렬한 느낌”, 이 낯설고 거북한 기운, 그녀는 사건의 기록을 검색하곤 피살자가 열여덟 앳된 여성임을 알게 되고, 나머지 여섯 명의 연쇄살인 희생자가 된 여성들 또한 열다섯, 열일곱의 어린 여자들이었음에 살인자에 대한 증오와 두려움, 피살자들에 대한 연민이란 양가적 감정에 시달린다. 죽은 이들의 피살 현장을 한 곳씩 찾아 장미 한 송이에 애틋함을 담아 두고 오는 발길을 반복한다. 그 공간들에 그네들의 응어리진 고통이 숨 쉬고 있다는 믿음으로.

이 괴이한 장소에 대한 연민의 집착은 그녀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데, 회사에 손실을 가하는 결정적인 업무실수의 반복으로 나타나고, 소개받은 남자와의 섹스는 그의 목을 졸라댐으로써 피폐화되어가는 정신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이것은 자신의 죽은 아이, ‘엘레나’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여인으로서의 고통스런 기억이 잠재의식 속에서 피살된 일곱 명의 여성들에 투사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생후 육개월 만에 죽어간 아이에 대한 애통함은 이혼의 상처로 더 깊숙한 의식에 자리하고, 전 남편의 새로운 여자의 불룩한 배는 절망의 극한으로 치달아 정신착란의 상태에 이르게 한다. 깊은 상실감에 허우적거릴 때 위로 받기는커녕 무관심과 배신이 돌아오고, 공간에 스민 영혼의 교감이란 비의적 감수성을 지닌 여인으로서는 감당 할 수 없는 정신의 무게이다. 마침내 이 착란적 고통을 해결하려는 듯이 달려가는 장소는 섬뜩하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녀가 찾아간 그 장소적 공간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공간적 장소가 간직하고 있는 감정과 기억들이란 모티브는 자연스레 인간의 정신, 그 내적 심리의 반영으로 연결된다. 내 손길과 시선이 익숙하게 묻어있는 가구들, 그리고 내 몸처럼 안락한 느낌을 주는 나의 집처럼, 사랑의 기억과 같이 떠오르는 마로니에 공원과 가로수가 있던 붉은 벽돌의 카페처럼, 담과 벽들, 집과 건물들은 어떤 감정의 흔적들을 분명 담고 있다. 아니 내 내면의 정신작용이 그 감정의 흔적들을 입히고 불러내는 것일지도.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정서와 치밀한 심리적 묘사를 담아 슬픔과 그리움, 원망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알 수 없는 기운에 매료되게 하는 이 소설을 읽다보면 어느새 우리도 소름끼치는 착란의 세계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음침한데 아름답고, 불안한데 명쾌한 낯선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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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마이클 매커디 판화,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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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가 노래하는 소리를 들려주는 소설”을 쓰고자 했다는‘장 지오노’의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는 행동주의 정신이 고결하게 배어있는 영혼의 글이라 해야 할까?

지극히 짧은 소설이지만 내 마음에 전해오는 메시지들, 감동은 어떠한 장황한 대서사시 이상이다.

 

소설은 세계 대전(1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10년에 화자(話者)의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지역의 황량한 고산지대여행 중 만나게 된 양을 치는 남자와의 인연에서 시작된다.

매일 도토리 100개를 누구의 땅인지 관심조차 없이 아주 정성스럽게 심는 남자, 그래서 3년간 10만개를 심었고, 2만 그루의 싹이 나오고, 그 중 1만 그루가 생존하여 성장할 것이라는 애기를 전해 듣는다. 이후 전쟁 참전 후 잊고 있었던 도토리를 심던 남자를 기억하곤 10년 만에 찾았을 때 물조차 말라버렸던 황무지는 폭이 10킬로미터가 넘는 떡갈나무 삼림으로 변해있음을 발견한다.

“아무런 기술적 장비도 없이, 오직 한 사람의 영혼과 손에서 나온” 실천이 만들어 낸 자연의 멋진 변화. 자신과 관계된 일이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만을 마음에 두고 미래를 상상해보던 청년에게는 처음 보는 경이였을 것이다. 메마르고 너무도 황량해서 한정되고 제한 된 자원을 가지고 되풀이되는 경쟁에 좌절하고 무너져 버리던 고산지대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메마른 영혼 속에 푸른 잎을 피워 낼 내일의 도토리”를, 그 어떠한 경쟁적 속도도 숭배하지 않고 자기를 희생하며 일하는‘엘제아르 부피’란 남자에게는 이미 고매한 인격이란 수식도 어설프기만 하다. 아름다운 혼을 가진 사람, 철저한 고독 속에 홀로 일한 남자, 확실한 자신만의 열정, 선을 행하기 위해서 인내해야했던 무수한 절망과의 싸움이 짐작되어 절로 그 정신의 고결함에 겸허해 진다.

 

노인이 되었음에도 나무를 심는 평생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던 1935년, 정부는 6~7미터의 나무로 빽빽한 삼리지대가 된 그곳을 ‘천연 숲’이라 부르며 시찰에 나선다. 천연의 숲이라니! 한 남자의 고결한 정신과 노동의 산물임을 알지 못하는 세상의 왜곡된 정신세계가 수치스러워지는 대목이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라는 인간들의 가공할 탐욕이 부딪히는 동안에도 노인은‘자연에 대립하는 인간’이 아니라‘자연 속의 인간’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간다. 아마 산의 웅장함과 고요함이 선사하는 우주와의 일체감에서 정말의 건강과 번영의 빛을 만나고 있지 않았을까?

한정된 자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하다못해 앉는 자리의 위치를 놓고서도 경쟁하고, “선한 일을 놓고, 악한 일을 놓고, 그리고 선과 악이 뒤섞인 것들을 놓고 서로 다투”는, 정신이 실종된 오늘의 우리들에게 참다운 행복을 생각하는 시간을 준다.

 

우린 스스로들“‘인간이 인간에게 늑대(Home homini lupus)’ 인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자연을 통제하려는 오만을 여전히 고수하고, 물질이 뿜어내는 광기로부터 소외될까하여 줄달음치는 발걸음을 멈추지 못하는, 제로게임일 수밖에 없는 잔혹한 경쟁은 이젠 멈추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비와 눈이 숲 속으로 스며들어 옛날에 말라 버렸던 샘들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자연의 생명력처럼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태양 아래 서 있을 때”임을 우리의 육체와 정신은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 책의 정신과 미덕은 작품의 첫 페이지에 밝힌 작가의 글처럼 ‘고결한 인격의 만남’이 주는 감동, 잃어버린 우리들의 인간성 회복에 대한 거대한 영감들, 게다가 강렬하고 풍성한 시적 서정성의 완벽한 하모니가 전해주는 정신의 숭고한 무엇, 그것의 지향인 인간의 희망과 행복의 부활을 꿈꾸게 하는 것일 터이다. 감동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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