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신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0
손보미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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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우연이오. 그리고 우리를 지속시키는 건 우리 자신 뿐이오˝ - 존 파울즈 [마법사]中에서
존 파울즈를 읽으며 손보미의 소설 [우연의 신]을 발견한 것은 오직 ‘우연‘이라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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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기체 - 곤충 사회의 힘과 아름다움, 정교한 질서에 대하여 사이언스 클래식 32
베르트 횔도블러.에드워드 윌슨 지음, 임항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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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類比)를 가정할 수 있다면 지구상의 유일한 지성적 존재로 자임하는 인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진화적 상상을 도모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책은 벌, 말벌, 개미를 포함하는 ()사회성을 지닌 벌 목()과의 곤충들, 특히 초유기체로 명명할 수 있는 종들의 사회성을 통해 이들의 진화적 과정에서 발견되는 개체 또는 군락(집단)의 다양한 사회적 양상들을 추적하고 있다.

 

아마 이 책을 과학 연구의 전범(典範)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세심하고 주의 깊으며, 겸허한 과학자의 연구태도로부터 가설과 실험, 관찰을 통한 발견과 이론의 정립, 동일 유사 연구들의 상호비교와 비판적 수용, 풍부하게 인용되는 유관 연구사례와 대립 이론들의 반복되는 과학적 성취를 포함하는 위대한 두 과학자의 일생을 바친 연구에 머리를 조아리게 한다. 사회생물학, 혹은 생태사회학의 범주로 분류할 수 있는 이들의 업적인 이 책은 인간의 행동, 정신의 형성, 사회기능체계를 사유하는 데 무한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으며, 궁극적 초유기체라 할 수 있는 아타니족 잎꾼개미를 비롯하여 침개미인 하르페그나토스에 이르기까지 학문적 성과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움과 지적 허영을 만족시키는 데 어떠한 부족도 없다고 하겠다.

 

[오이코필라속 일꾼 개미의 협동; P 195 발췌 수정 인용]

 

 

도심의 한적한 여느 길가에서 빵부스러기 혹은 나뭇잎 조각들을 부지런히 그리고 일사불란하게 나르는 개미의 작은 행렬을 우연히 보게 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저들은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까, 저 일꾼개미와 여왕개미는 어떤 관계일까, 번식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그리고 운반한 먹이는 어디에 저장되고 어떻게 배분되는 것일까, 아니 그들의 농장 사료는 아닐까, 그들의 집단은 또한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하는 질문들이 꼬리를 잇는다. 더구나 이성(理性)이 게재할 여지가 없는 저 작은 미물이 조직화된 사회를 구성하고 축조할 수 있는지에 이르면 자연이 부여한 놀라운 경이로움에 매혹되곤 한다.

 

어떤 집단의 일부로서 서로 협동하며 노동을 분담하여 수행하는 듯한 이 곤충들에서 사회성을 보게 되는 것이고, 이들이 이루고 있는 소위 군락이라는 전체적인 어떤 기능체계들의 상상에 이르는 것이다. 바로 이처럼 사회를 형성하고 특성화된 사회계급을 가진 개체를 생산하는 곤충집단을 사회성 곤충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개미를 비롯하여 사회성 벌, 사회성 말벌 등 벌목 곤충들과 흰개미(흰개미는 벌목이 아님)가 포함된다. 특히 진사회성이라 불리기 위해서는 첫째, 조직의 성체는 번식 전담계급과 부분 또는 완전 불임 계급으로 분리되어야 하고, 둘째 한 군락 안에 두 세대 이상의 성체가 함께 살아야 하며, 셋째 완전 또는 불임 계급이 어린 개체(, 애벌레)를 돌봐야한다는 학계의 합의된 정의가 있다.

 

단연 시선을 잡아채는 항목은 기능별로 구분되는 계급이 있어야 진사회성 곤충이라 불릴 수 있다는 지점이다. 그리고 어린 개체를 돌봐야한다는 정의에서 계급 분리의 기원을 발견하게 되는 부분일 것이다. 결국 이들의 사회성이란 어떤 개체인가가 돌봄이 역할을 분담하고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들 진사회성 곤충이 개체 사이의 갈등을 최소화하고, 군락과 군락간의 경쟁에서 가장 효율적인 형질을 지니도록 선택된 일꾼계급의 생산과 같은계급 조절의 결정규칙이라는 발달 알고리즘을 가지며, 자연 선택의 대상이 되는 군락, 알고리즘 자체의 유전적 진화를 하는 진사회성 곤충을 초유기체라 정의하고 있다.

 

개체가 태어나서 알, 애벌레 등의 단계를 거치며 성()과 계급이 순차적으로 조절 결정되는 일종의 발달 알고리즘의 연구사례를 읽고 있을 때는 신비를 벗겨내는 과학의 지고한 연구관찰과 그 통찰력에 감탄을 연발케 된다. 특히 하나의 동일 집단을 구성하는 개미의 무리인 군락마다 실로 다양한 진화적 차이를 보이는 것에서 자연 선택의 대상이 되는 것은 군락(群落)’이다라는 다수준 자연선택이론을 접할 때에는 협소한 대중적 상식에 머물던 내 사유의 경계가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할 만큼 과장된 기쁨을 얻게도 된다.

 

이 걸출한 책은 이처럼 두뇌 아니, 이성이라곤 티끌만큼도 없는 곤충이 어떻게 인류와 같은 문명을 건설할 수 있는지, 그들이 자연의 무한한 생태적 압력 속에서 여하히 유효한 선택을 통해 초유기체로 불릴 수 있는 진화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는지를 탐색, 규명하는 일련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즈음에 이르면 진사회성이라는 문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앞선 진사회성의 세 가지 조건에서 보여 지듯이 번식 분담이라는 노동 분담의 전()적응특성을 가진 종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이들 분담적 특성을 가진 개체가 급기야 해부학적으로도 구별되는 계급으로 생산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이것을 진화적 귀환 불능점이라고 부른다. 더 이상 이전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없는 생태적 사건이랄 수 있다.

 

처녀 생식과 양성생식을 모두 하는 반수-배수체 유전을 통해 성별을 결정하는가하면, 발달 중인 암컷 알이나 애벌레가 결정 단계마다 개체의 생리적 조건에 따라 그야말로 단순한 이분법적 경로의 선택으로 계급이 조절 결정되는 이들의 사회계급 생산시스템은 입을 쩍 벌리게 한다.

 

[액상 먹이를 담고 있는 일꾼개미, 일생 저장고 기능을 수행 ; P177 발췌 수정 인용]

 

 

여기서 올더스 헉슬리멋진 신세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예정된 사회계급별로 인공배양과 부화의 조건을 차별하여, 알파, 베타, 감마, 엡실론 등 사회계급에 따라 배양되고 양육된 인간들은 동일한 일의 반복된 노동과 직업에 배치되어 일생을 마친다. 내적 동요가 말살되어 사회는 동요하지 않는다. 즉 필요성의 장치에 의해 유지되는 새로운 세계를 말하는 소설이다. 책에 소개되는 진사회성 벌목 곤충 중 가장 진화된 초유기체인 아타니족 잎꾼개미의 사회가 이러하다. 일꾼개미는 병정개미와 단순한 채집개미, 쓰레기 처리 개미, 알을 돌보는 일꾼 개미, 액상을 저장하는 저장개미로 노동이 세분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체구도 해부학적으로 완전히 구분되어 있으며, 이들은 평생을 반복된 노동을 하다가 일생을 마친다. 귀환 불능점을 넘어선 고도로 진화된 개미 종의 사회성은 사실 그리 찬탄과 자연의 경외에 탄복하는 것에 의구심과 거부감을 자아낸다.

 

이들 사회성 곤충의 의사소통과 계급체계의 연구로 집대성된 이 책의 수많은 사례들, 번식 독점을 위한 경쟁, 개체 사이의 공격적 상호작용이 노동 분담을 강화하며, 쓰레기 내버리는 개미가 군락 동료들의 적대행동으로 계속 그 일을 하도록 강요되는 고찰, 합의 도출과 같은 의사결정 체계가 아닌 단지 동료와의 접촉수 감지에 의한 정족수의 다수가 결정하는 혼란 속의 질서, 버섯 농장을 가꾸며, 기생 곰팡이와 벌이는 군비경쟁이나, 둥지의 환기 시스템, 이산화탄소농도조절, 극미한 페로몬의 성분차이가 만들어내는 조직과 번식의 행동 변화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작업마다 최적 효율 달성을 위해 어떻게 융통성있는 행동프로그램으로 노동을 분담하는지에 대한 수천의 사례는 저자들의 주장처럼 인간 두뇌 속 뉴런들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나 각종의 컴퓨터 알고리즘의 설계에까지 그 통찰의 결과물이 도움을 주고 있음과 같은 기술적 실익을 획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또한 수많은 종의 진사회성 개미 군락마다 그 사회성 진화정도가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어, 진사회성 사회가 밟아온 진화과정을 이해하고, 그 결과 결정 규칙을 밝히는 데 인간 사회의 진화와 관련하여 유비적 미래 예측의 수단이 되어 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이들이 지니고 있지 못한 선()할 수밖에 없는 선천적 이성(理性)이라는 고유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 과학이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이 있다. ‘귀환 불가능점이란 것은 인류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 사회성 곤충들과는 달리 되돌릴 수 없는 진화적 강을 건널지 말지의 선택이 자연이 아닌 인간 자신이 쥐고 있다는 것이다. 최고의 진화종인 아타니족 잎꾼개미와 대비되어 소개되는 침개미 속들의 개미들에서 관찰되는 번식 계급을 위한 투쟁, 일꾼 개미들의 경쟁처럼 고착된 계급사회로 나아가지 않음으로써 발견되는 술수와 폭력성은 과연 부적응적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야야 할 것 같다.

 

변화 없는 삶, 매일이 동일한 삶, 아마 이러한 영원성, 동일성이란 시간이 멈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살아있는 것일까? 죽은 것과 같은 것이 아닌가? 시간이 백 년 동안 멈추었을 때를 회고하는 백팔십사 세 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김성중작가의 이슬라라는 소설이 있다. 멈춘 백년이 과연 인간의 삶을 얼마나 의미 그득한 것으로 만들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또 다른 야만과 폭력, 살아 있음에 대한 고통의 외침이 있을 뿐이다. 너무 나간 것 같다. 말하자면 이런 생각이다. 이들 진사회성 곤충들의 사회성 진화와 관련한 유전체적 지식의 습득, 단순한 되먹임 혹은 본질적 행동의 의례화에 따른 신호 의미의 축적과 같은 의사소통의 행태학적 이해, 의사결정의 단순성과 그 규칙의 이해처럼 인간이 미쳐 발견해내 못했던 기술적 이해의 확장과 같은 인류의 반성적 삶의 도움이 아니라, 과학 만능적인 발상에 의거한 인간과 인간사회의 사물적 이해와 자연선택은 곧 옳은 것이라는 논리로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를테면 국지적 혼돈으로 보이는 상태로부터 어떻게 전체적으로 질서가 창발 되는가? 와 같은 의문에서 출발되는 단순한 결정규칙들의 합리성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곤충생물학의 발전적 연구에 갈채를 보낸다. 여기에는 인류의 반성적 삶에 의미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모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회생물학, 특히 진사회성 곤충에 대한 최고의 연구 업적을 담고 있는 인류의 위대한 저작이다. 개미의 생태적 진화의 모든 것을 접할 수 있는 걸작임에 매 페이지마다 탄성을 지르지 않은 곳이 없다. 그만큼 이 책이 지닌 권력은 엄청나다 할 수 있다. 또한 그 만큼의 인간과 인류 사회에 대한 책임도 지니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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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슈 2019-01-12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걸 보시다니 대단합니다

비의식 2019-01-12 14:47   좋아요 1 | URL
우연히 기회가 닿았네요. 의사소통과 진사회성의 조건등을 설명하는 장은 가히 독서의 시간이 아깝지않네요. 고맙습니다. 닷슈님~

얄라알라 2019-03-09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파노라마섬 기담 / 인간 의자 대산세계문학총서 15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단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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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이셔널한 촉각 관능의 세계, 그로테스크한 인체예술적 취미의 전형을 볼 수 있다. 농축된 모조품으서의 현실을 황당한 유토피아로 그려낸 수작(秀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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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go 2019-03-01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 몰라서 여쭙습니다
대개 수작은 한자를 秀作 이라고 쓰는 것 같은데
殊作이라고 쓰신 이유가 달리 있는지요?

비의식 2019-03-0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vango님이 맞습니다. 한자변환을 무심코 해버렸네요. 수정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미스 플라이트 오늘의 젊은 작가 20
박민정 지음 / 민음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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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공동체라는 말에 어떤 기쁨도 위안도 느끼지 못할 것 같아요.”

- P133 유나의 편지에서

 

 

요즘 들어 세상이 두렵다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이 사회가 공감 능력이 부재한 인간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깊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감정과 말을 쏟아내면 그뿐, 타인의 느낌과 표현에는 무감하다. 아마 미투’, ‘갑질과 같은 타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언어들이 사회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타자란 내 욕구를 받아내는 대상일 뿐, 게다가 라는 에고이스트에 방점을 찍어대며 자기애를 부추기는 정신병적 미디어 세계는 세상의 더러움, 사회적 불의에 자신의 공모 사실을 인식할 능력조차 앗아가 버린다. 우리 모두는 공모자다.

 

소설은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항공 승무원 여성의 공포와 불안 가득한 절망적 다짐의 일기로부터 시작된다. “아빠, 여기서 실패하면 군말 없이 삶으로 돌아갈게요.” 그리곤 불명예 제대한 공군대령 홍정근이 자살한 딸아이의 장례식장이라는 낯섦과 혼란의 지대에서 손님처럼 서성거리며 타자성(otherness)과는 괴리된 투박하고 어설프며 고집스럽게 뱉어내는 중얼거림의 장면으로 이어진다. 아내와 딸아이와 결별한 채 10여년의 시간이 지나 주검이 된 딸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성장과정과 일상의 삶, 그녀의 생각과 환경들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글 형식인 유나의 일기, 유나의 연인이었던 주원’, 정근의 관사시절 운전병이자 유나와 같은 항공사 부기장이었던 영훈, 그리고 유나의 죽음을 이해해보려는 정근의 목소리를 오가며, 오늘 우리네가 상실한 것들, 그래서 추하고 무서운 세상, 그렇게 되어가는 공동체 공모자들의 민낯을 살펴보게 한다.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인 우리들이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다고.

 

정말 무심히 저지른다. 타자의 배제와 몰인식이 무엇인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인간들로 넘쳐난다. 타인과의 정서적 교감, 타인의 언어와 표현에 대한 숙고적 경청(reflective listening)이란 말이 생소할 것이다. 이것은 곧 자신의 생각과 감정관리의 미숙함과 자아통제의 어려움으로 나타나곤 한다. 소설 속 정근은 오늘 우리네들의 초상일 것이다.

 

전투기 도입과 정비와 관련한 부정 자금의 수수를 관행처럼 여기던 정근은 내부고발자인 윤 대령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곤 자신이 직접 죽이지 않았으므로 결백하며, 어떠한 도의적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부당한 불명예를 뒤집어쓴 자신은 위로받고 이해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 대령의 죽음이라는 세평에 대한 딸 유나의 의문에 정근은 극악한 폭력으로 대응한다. 아내 지숙과 딸을 향한 무자비한 폭행은 정근과 모녀와의 이별로 이어진다.

    

 

이러한 정근이 딸의 자살 원인 규명에 나서는 모습은 주변 인간들에게 공감을 지펴내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의미하는 본질을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한다. 아마 이 본질의 규명은 유나의 일기와 주원의 회고, 영훈의 기억을 통해 바로 지금 오늘의 공동체가 상실한 가치를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잃어버린 타자성이라는 궁극의 가치를 알려주는 듯하다. 그것은 대령 사모의 차량을 운전하는 영훈의 입을 통해, 혹은 유나의 기억을 통해 운전석 옆자리에 앉기를 고수하는 어린 소녀의 배려와 존중의 의미에서, 임신상태에서 상사의 대소사에 노동력을 동원해야하는 병사의 아내인 혜진의 유산을 돌보는 유나의 엄마, 대령 정근의 아내인 지숙의 속 깊은 자기 이해와 배려의 행위에서 인간의 접촉, 그 따스한 정서 교감의 빛을 보여준다.

 

소설의 서사는 이처럼 정근의 자기애와 대척점에서 타자성을 부각하기도하지만 유나를 죽음으로 내몬 사회적 공모관계를 엄폐물인 구조적 형태에서 끌어내 가시화해내기도 한다. 자신의 무능과 배척을 벗어나기 위해, 직장에서 쫓겨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유나와 부기장의 불륜관계라는 누명을 씌워 고발하는 항공사의 엑스맨 제도(숨은 감시자)와 이를 교사하는 임원의 행위, 이를 모른척하는 동료집단의 행태는 인간사회, 그 공동체의 역겹도록 더러운 현실을 드러낸다. 타인의 진심과 비극을 이용하는 인간들의 사회, 우리는 그런 공동체의 구성원들이다.

 

박민정 소설의 문장들은 더할 수 없이 나지막하고 조용하다. 그러나 소박한 어느 문장에도 강직한 의미들이 날카롭게 꽂혀있지 않은 곳이 없다. “상대가 아픈 이야기를 할 때 쓸데없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지 않는 것처럼 타자성이란 타인에 대한 정감 깊은 배려이다.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갓 태어난 아기시절, 엄마의 젖가슴에 작은 손을 올려놓고 그 품에서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안정감을 느끼던 그 기억을. 내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타인의 피부와 체온을 느끼며 교감할 줄 아는 그 정감의 무의식이 아닐까? 아기의 작은 동작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베풀어주던 타인, 그 배려의 손길을.

 

내가 살기 위해서 동료를 죽이는 것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것, 사회적 불의에서 자신만은 쏙 빠져나와 타자를 향해 손가락질 하는 것, 자기를 알려고 해 본적이 없는 결코 반성적 사유라는 것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것, 이 세상의 더러움에 자신도 공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능력이 없는 것, 정근이, 우리가 생각해야 할, 아니 우리가 느껴야 할 것들이지 않을까? 유나가 느껴야 했던 분노와 배신, 그리고 그녀가 넘어서 마주한 슬픔과 그 책임감의 실체란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지 않을까?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유나의 글들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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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장편소설 가면의 고백을 다시금 읽게 된 동기가 있다. 철봉에 매달린 동급생 오미(omi)의 상체에 대한 매혹을 바라보면서 화자인 가 떠 올리는 인상과 관련하여 등장하는 귀도 레니(Guido Reni)’의 그림, 성 세바스찬(St. Sebastian)으로 비롯된 일종의 모방작인,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를 피사체로 하여 사진작가 시노야마 기신(篠山紀信)’이 촬영한 동명의 사진에 가해지는 논의들에 대한 어떤 확인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다분히 키치(kitsch)적인 이 사진작품과 함께 사진작가 호소에 에이코(細江英公)’가 미시마 유키오를 피사체로 촬영, 1963년 간행된 나체 사진집 장미형(薔薇刑)은 여성의 나체와 달리 대상화를 거부하고 스스로가 주체화되며 우상화되려는 미시마의 의식을 해독하는 증거로 제시되곤 한다. 사진집의 표지는 피사체를 객체화하려는 사람의 시선을 제압하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응시하는 미시마의 사진으로 꾸며져 있는데, 바로 이 미시마의 시선에 내재된 의미의 독해가 그의 첫 장편소설인 가면의 고백이 진정 무엇을 말하려했는가에 대한 상보적(相補的) 재료가 되어 주리라는 생각에서이다

    

 

사진: 細江英公(호소에 이이코)撮影三島由紀夫를 피사체로 한 裸体 写真集 表紙

      

미시마 유키오의 반()자전적 작품으로 읽히는 이 소설은 화자인 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불안, 이에 대한 자의식의 끝없는 정상화라는 자기기만과의 투쟁, 그리고 성적 자기실현에 이르는 시련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 그림을 처음 본 순간 나의 모든 존재는 모종의 이교도적인 환희로 뒤흔들렸다. 내 피는 끓어오르고 내 육체의 기관은 분노의 빛으로 넘실거렸다. ...(중략)... 나의 내부로부터 어둡고 번쩍거리는 것이 빠른 걸음으로 공격해 올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중략)... 아득한 도취와 함께 튀어올랐다.” (출처: 문학동네 가면의 고백P 48 에서)

 

화자의 아버지가 사온 화보집에 실린 귀도 레니의 그림, <성 세바스찬>을 보고 최초의 ejaculatio(射精)를 경험하는 묘사이다. 이것은 탄탄한 근육질의 어깨와 가슴을 지닌, 또한 금지의 반역자이기도 한 동급생 오미의 육체에 대한 성적 갈망과 분출에 연결되어 혼란스러운 그의 성적 정체성을 묘사한다. 자신과 같은 또래의 소년들과는 다른 자신의 발견인데, 결코 친구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기에, 그들의 호기심에 동참하지 못하는 자신을 은폐하기 위해, 남자아이가 혼자일 때 느끼는 것을 추리하기위해 수많은 소설들에 이야기되는 인생의 모습들을 세심하게 읽기까지 한다.

    

 좌측: Guido Reni , St. Sebastian, 우측: 三島由紀夫 St. Sebastian

 

결국 내 관심사는 일견 미시마 유키오의 자전적 상()이기도 한 소설의 화자가 동성의 남자에게만 육체적 욕망을 지니는 자기이해로부터 시작된 외견적 연기와 내면의 기만과 저항, 그리고 수용의 반복을 거듭하며 세상의 윤리적 시선을 어떻게 포섭해 나가느냐는 문제이다. 아마 다음의 문장은 화자의 정체성 성숙의 중간 기착지, 그 경유의 지대로 적절할 것 같다.

 

“....(전략)...남의 눈에 나의 연기로 비치는 것이 나로서는 본질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었고, 남의 눈에 자연스러운 나로 비치는 것이 곧 나의 연기라는 메커니즘을 그 무렵부터 나는 희미하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즉 육체적 감각에 대한 불안, 완벽하게 자신의 천성을 배반하기 위한 의식적인 연기에 돌입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의 여동생인 소노코거짓된 육감의 인공적인 합금으로만 이루어진 감정으로만 바라보던 여자”, 즉 위장된 연기가 아니라 존재의 밑바닥이 뒤흔들리는 듯한 슬픔의 감정으로 느끼게 됨으로써 전환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것조차 남성 고유의 정체성으로 향하려는 의지의 시작이라는 자기의식의 강요에 불과하다. 그의 침잠한 내면의 소리는 어떤 여자에게서도 비열한 욕망이라는 것을 품어 본적 없는 너 자신을 잊어버릴 셈인가? 소노코의 벗은 몸을 상상해 본 일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어?” 하고 묻는다. “애초에 육체적 욕망에 전혀 뿌리를 두지 않는 사랑 따위가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은 명백한 배리(背理)가 아닌가?” 가 답변일 것이다. 이제 소설의 서사적 진전은 잠시 미루고, 욕망과 금욕, 수난과 속죄, 고통과 황홀, 남성의 동일화와 여성의 동일화 사이에 존재하는 귀도 레니<성 세바스찬>이 지닌 성을 넘어선 도상학적 양의성에 반발, 강력하게 반시대적 남성성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미시마 유키오<성 세바스찬>을 얘기할 때가 된 것 같다.

 

미시마 유키오가 표현한 이 그림이 페미니즘으로부터의 이의신청을 받아야 하는 그야말로 순전한 마초이즘의 발산에 불과하며, 성적인 시각의 한 가지 편향을 뒷받침하는 그런 것이기만 할까하는 의문이다. 물론 이렇게 해석할 충분한 요소들과 증거가 있다. “성 세바스찬의 그림에 매혹당한 이래로 나는 벌거숭이가 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두 손을 머리위에서 교차시켜보는 버릇이 생겼다. ...(중략)... 그러자 내 시선이 겨드랑이로 향했다. 불가해한 정욕이 솟구쳐 올랐다.” 가면의 고백에 등장하는 몽상의 문장이다. 평자들은 이 몽상을 몰래 엮어 넣은 것이 미시마가 표현하고 있는 <성 세바스찬>이며, 이것은 찍히는 대상이 우위를 확보한 대상화의 전도(顚倒)라고까지 한 장미형의 미시마와 함께 남근중심적 성의 문화사회적 왜곡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소설의 화자가 하는 내적 의식과 행위는 생물학적이 아닌 사회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성()에 순응하려는 것이 아니다. 소노코의 청혼을 비겁하게 거절하고 나서 타인의 아내가 된 소노코와의 재회이후 재개되는 만남의 마지막 장면인 댄스장에서의 한 묘사를 보자. 앞에 앉아있는 소노코를 잊고 울룩불룩한 팔 근육의 젊은 남자에 시선이 빼앗겼던 화자가 마침내 두 사람의 재회가 끝나는 시간, 젊은 남자가 있었던 해가 들이치는 의자 쪽을 훔쳐보는 시선이다. 그는 최종적으로 젠더, 사회적 규정을 배반하는 것이다.

 

성적 시각의 편향을 고착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며, 성의 대상화를 남성인 자신의 나체를 통해 부인하려는 역설로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자신의 인공적 정상성이라는 인위적 연출이라는 위험한 작업에 소노코를 끌어들인 것을 자각, 성찰하는 것에서도 화자의 최후적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자신을 무익하고 정교한 하나의 역설이라고 인식했던 미시마의 시적 이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지 않을까? 다름의 자기 인정이 그토록 어려웠던 것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 이른다. 타자의 피부에 이르지 못하는 자신의 욕망을 과감하게 드러낸 배리(背理:역설)의 미학, 혹은 의지의 미학이라 부름이 타당치 않을까? 아니 육체와 인간의지의 치열한 투쟁의 그 공존과 균형을 향한 미학이라 하고 싶다. 오늘 우리들은 이해의 다름에 더욱 넓은 시선을 갖도록 요구되는 환경에 있다. 시간의 변화, 시대의 감각적, 지적 수용의 변화는 인식의 확장을 또한 요구한다동성애등 퀴어가 시대의 어휘가 된 요즘 다시 읽어볼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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