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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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린이한, 林奕含 ; 1991.3.16~2017.4.27 ]

 

이 작품을 다 읽어 나가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혐오와 수치와 분노의 감정이 검붉게 솟구치는 것을 누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열세 살 소녀가 열여덟 살에 이르는 동안 학원 선생에게 지속적인 성 폭력이라는 거미줄에 걸려 죽어서야 겨우 풀려 날 수 있었던 참담한 실제의 이야기다. 교활함과 사악함, 타인의 고통위에 선 쾌락의 탐닉에 몰입하는 인면수심의 인간에 동조하는 사람들과 사회의 왜곡과 위선, 추한 시선들이 너무도 아름다운 언어와 문장들로 구성되어 그 감당할 무게가 더욱 지나치게 힘겹고 아프고 시리게 다가온다.

 

어린 소녀에 대한 성적 욕망을 달래던 쉰 살의 학원 강사 리궈화는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소녀를 발견하고, 샴쌍둥이처럼 지식과 삶의 지혜를 공유하던 열세 살 동갑내기 류이팅과 팡쓰치 두 소녀와 그네들의 부모에게 작문학습을 제안한다. 계산된 접근을 통해 이 인물은 팡쓰치의 인물됨을 탐색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아이가 지닌 자존심”, 그로인해 절대 자신의 일을 밖으로 발설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하게 된다.

 

리궈화란 인물의 이러한 자신감은 이미 수없이 많은 여학생들을 성적 노리개로 손에 넣었던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완벽하다 할 만큼의 천상의 미모를 한, 게다가 지적 균형까지 갖춘 열세 살 팡쓰치의 사춘기는 잔인하게 찢겨진다. 이후 리궈화는 어떤 멈춤도 없이 팡쓰치가 자신의 기억을 상실하고 미쳐버려 정신병원에 수용되기까지의 5년에 걸쳐 성적 유린을 지속한다. “이건 네 잘못이야. 네가 너무 예쁜 탓이야.”, “네 몸 위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 이건 내가 너를 사랑하는 방식이야.” 어떤 죄책감이나 부끄러움도 없는 소름끼치는 비열함 이외에는 아무런 인격도 없는 성욕에 장악된, 더러운 침을 흘리는 괴물만이 보인다.

 

리궈화에게 학원선생이란 이처럼 어린 여학생들을 수월하게 사냥할 수 있는 권력이자 수단으로 활용되고, 세상은 이런 야비함과 폭력성에 입을 다물고 외면하며, 오히려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멸시의 손가락질을 해대며, 자신들의 위선을 도덕성이라는 외피에 은폐한다.

이를테면 피해자의 호소에 감히 남의 가정을 깨뜨려? 난 너 같은 딸을 둔 적이 없어!”라든가, “넌 늙은 놈이랑 붙어먹었어!” 와 같은 반응, 혹은 SNS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에, “원조교제네”, “불륜녀는 뒈져버려”, “경쟁 학원강사가 올린 글인가”, “어차피 같이 즐긴 거잖아.”처럼 범죄행위에 대한 비난이나 도움의 지원이 아니라 성적 행위만을 소비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과 같다.

 

이러한 양태는 리궈화 같은 성폭력자가 사회의 어떠한 비난이나 지탄도 받지 않고 오히려 옹호되는 사회적 양식 때문이기도 하다. 소설의 이 문장은 지금 우리 한국사회에 벌어지는 모습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성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그에게는 최고의 방패였다. 여학생을 강간해도 세상은 그게 그녀의 잘못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녀 자신조차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죄책감 때문에 그녀는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죄책감은 아주 오래된 순수 혈통의 양치기 개였다.”(P123에서)

 

이러한 사회의 성적 무지와 편견, 곡해는 여성 스스로가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팡쓰치의 책 읽기를 도우며 세상의 지혜를 나누어주던 이원이라는 또 다른 형식의 피해자인 여성의 주위에서도 발견된다. 폭력적인 여성편력으로 결혼을 하지 못하는 첸이웨이라는 남자의 배우자로서 자신의 딸은 절대 안 된다고 하면서도 이원을 중매하는 행위에 도사린 타인의 고통에 대한 외면의 심리이다. 또한 팡쓰치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하는 우회적인 성폭력의 시사에 성교육이라니? 성교육은 성이 필요한 사람한테나 하는 거야. 교육이란게 다 그렇지 않니?”라며 외면하는 태도도 여성의 성적 피해를 방조하고 있음을 피할 수 없는 듯하다.

 

사랑을 배워야 할 어린 소녀 팡쓰치에게 가해진 성폭력은 사랑으로 둔갑하여 죄책감과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자기 파괴의 혼란으로 내몰고, 마침내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한 고통에 매몰시켜 버린다. 아무도 그녀를 구원해 줄 수 없을 때, 리궈화에게 말한다. 자꾸 기억을 잃어버린다고, 꿈과 현실의 경계를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애원한다. 이때 괴물의 환호하는 내심을 읽게 되는 것은 그야말로 혹독한 수치와 분노에 휩싸이게 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 중 하나가 바로 피해를 당하고도 자책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P192에서)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일말의 상상력도 없었다고 되뇌는 팡쓰치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보면, 바로 1년 전 오늘인 2017427일 생을 마감한 이 소설의 작가 린이한이 남긴 후기가 사무칠 만큼 아프게 새겨진다. “다 쓰고 난 뒤에 보니 가장 무서운 건 내가 쓴, 이 가장 무서운 일이 정말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사실이에요.” 나는 책장을 덮고 이 이야기가 실제가 아니라 소설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뻔 했다.

 

이 세상에 한 사람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고통이 있음을 매양 잊어버리는, 혹은 알지 못하는 나와, 우리들, 그리고 사회의 망각과 무지를 깨닫는다. 아마 지금 어디선가 신음하며 고통을 호소할 곳이 없어 잠 못 이루며, 눈물 흘리는 소녀와 여성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결코 그녀들 혼자 느낄 죄책감도 아니며, 수치도 아니라고, 그것은 정작 왜곡하고 외면하며 무관심했던 나와 우리들, 사회가 짊어져야 할 책임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더 이상 상처받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이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썼던 작가의 영면(永眠)이 더욱 안쓰럽고 안타깝기만 하다. “세상 그 어떤 팡쓰치든 소비될까 두렵다던 유언 같기만 한 작가의 말을 진정 소중하게 지켜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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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day Stories : Selected and Introduced by Haruki Murakami (Paperback)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Vintage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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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생일 이야기(birthday stories)라는 선집(anthology)의 소개 글에서 어느 날의 드라마틱한 기억을 술회한다. 이른 아침 무심히 튼 일본 전국망의 라디오 방송에서 112일 일종의 공개 행사(public event)로서 그날 출생한 유명 인사의 생일을 축하하는 아나운서의 음성이 들려온다. 그런데 바로 자신의 이름 - “Novelist Haruki Murakami today celebrates his **th birthday.(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 임을 알아차렸을 때 너무 감동해서 그는 목 놓아 울었단다. “Whoa! I cried aloud....”

    

 

 

그저 평범하게 지나갔을 관습적으로 맞이하는 그런 생일이었을지 모를 하루가 그의 삶에 대한 기쁨을 자극하고, 그리고 다른 이들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은 충동으로 번졌음은 어쩜 당연한 감정이었는지 모르겠다. 만일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누군가가 나의 출생이란 사건에 의미를 불러 넣어주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지...

 

아마 하루키의 단편소설, 버스데이 걸(birthday girl)은 그 어느 날과 다르지 않을 생일을 맞이할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비로소 이해하게 된 특별하고 소중한 의미를 지닌 생()의 감동을 나누기 위해서였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소설의 주인공은 별 신통치 않을 생일을 직감하는 스무 살 여자의 신비로운 하루의 이야기로 전달된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스무 살 생일을 맞이했던 어느 날의 이야기로서.

 

남자 친구와 깊은 상처의 말을 주고받은 후 다가온 그녀의 생일은 우연히도 그녀가 쉬는 날이었지만 동료의 질병으로 불가피하게 대신하여 근무하게 된 날이기도 하다. 그녀는 뭔가를 딱히 기대하는 그런 날이 아니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담담히 맡은 일에 임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저녁 손님을 준비하던 오후부터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규칙적으로 같은 건물에 있는 사장에게 식사를 배달하던 매니저마저 복통으로 자리를 비우게 된다.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레스토랑의 사장에게 저녁 식사 배달의 임무를 맡게 된 여자는 낯 선 노년의 남자, 사장으로부터 예기치 못한 축하를 받는다.

생일 축하해, 자네의 인생이 보람 있는 풍성한 것이 되기를, 어떤 것도 거기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이 없기를.”

 

 

 

그리곤 흡사 친절한 요정처럼 특별한 날에 수고스럽게 저녁 식사를 가져다주었음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단 한가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제안한다.

 

여자는 한 번도 생각해 본적 없던 소원을 골똘히 생각한다. 그런데 그녀의 소원은 부자가 되는 많은 돈도 아니고, 좀 더 똑똑하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며, 뛰어난 미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신비에 싸인 노인은 예상 밖의 소원에 다시금 확인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이런 소원을 말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손바닥을 딱 하고 마주침으로서 그녀의 소원은 성취되었음을 알린다.

 

사장의 방을 나서는 여자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하다. 그녀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노인의 생일 축하의 말에 이어졌던 어떤 것도 그녀의 인생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내 생일 나는 내게 무엇을 선물 할 수 있을까? 하루키는 누구나 일 년에 딱 한 번 갖는 공평한 하루인 생일은 삶이라는 축복을 얻은 무엇보다 소중한 날임을 선언한다. 자신에 대한 사랑, 그것으로부터 타인에 대한 사랑이 이어지고, 삶의 축복이 모든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음을 말하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올 해는 내 자신을 위해 작은 과잉을 저질러 볼 까하고 소심한 다짐을 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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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발견해도 입이 헤 벌어지게 하는 작가가 있다. 행복 바이러스가 내 몸 속에 잔뜩 주입되어 절로 유쾌한 기분이 온 몸을 돌게 하는, 그래서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윤이나는 듯 하며, 밝은 인상으로 어께가 쫙 펴지는 자신감으로 가득하게 하는 이야기가 그저 그려지는.

 

일상의 언어를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사람, 가슴 따뜻한 시선과 건강성이 유쾌하게 지면을 꽉 채우는 그런 소설을 보여주는 작가. ‘에릭 오르세나는 내겐 그런 작가이다.

국내에 이미 소개되어 잘 알려진 오래 오래』에서 가브리엘 부자(父子)의 미소가 뚝뚝 떨어지게 하는 우아함 넘치는 쾌활함의 기억, 두 해 여름의 섬을 가득 채우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에이다>번역에 열중하는 섬마을에 퍼진 기운의 기발한 은유의 문장은 잊혀지지 않는다.

 

섬의 어디에나 색정의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中略) 향긋한 냄새로 미루어 근처 어디에선가 교접이 한바탕 벌어지고 있으려니 짐작하고 있었다.”ㅋㅋ (두해 여름 에서)

 

그의 최근 출간작 프랑스 남자의 사랑의 국내 번역 출간 소식은 정말 반갑기 그지없다. 역시 'happy Virus'를 예상케 하는 출판사 홍보 문구가 시선을 끈다.

 

 “종횡무진 뻗어나가는 유머와 지성의 향연, 프랑스적 재치와 수다로 버무려진 사랑의 유전학이란다.

 

어찌 지르지 않을 수가 있던가작가 엠마뉘엘 카레르는 자신의 어머니가 너도 에릭 오르세나처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기억을 고백할 정도이니, 그의 허구에 담긴 사랑의 이야기가 발산하는 정체의 위력은 가히 진실을 삼킬 만큼 위력적임을 그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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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 다이닝 바통 2
최은영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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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선집의 기획 의도는 계속 살아가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으로서의 요리 행위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7인의 작가가 써낸 질 높은, 참 맛의 식사 모두에 입맛이 맞으면 좋겠지만 사실 이런 욕심은 과욕에 그친다. 물론 입이 짧은, 익숙한 것들에 다스려진 내 탓도 있겠지만.

 

황시운이 쓴 매듭의 한 자극적인 이미지는 다른 어떤 작품보다 그 인상을 깊게 남긴다. ‘펄펄 끓는 육수에서 격렬하게 꿈틀대는 낙지의 몸부림이란 문장이 빙벽등반 추락사고로 사지가 마비된 남편 윤을 거두어야 하는 여자의 신산(辛酸)한 삶의 모습에 비추어져, 잊고 지내던 통증이 확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바라보는 아이는 그 살아있는 것의 고통에 엄마의 옷자락 뒤로 숨어들기도 하지만, 그 고통의 몸부림을 싱싱한 생명력이라고 탄성을 내지르며 환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 그 격렬한 움직임에 대해 진정 내가 아는 것이 있기나 한 건지...

 

이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살아감의 감각을 깨우는 것과는 달리 삶의 인간적 형태에 대한 물음을 하는 김이환의 배웅은 요즘의 주관심사이기도 한 생명의 의미를 반추하게 한다.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을 말하는 특이점의 시대, 신체를 버리고 영혼(정신)을 저장하여 영원히 존재하겠다는 그 기술중심주의 세계에서 자신들만의 종교적 공간에서 살며 오롯이 육체의 죽음이란 길을 걷는 사람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이다. 그런데 이 공간은 폐쇄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도시라 불리는 포스트휴먼의 사회로 나아가 영혼 저장의 영원한 존재의 믿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중 요한이란 인물이 도시로 가기로 결정함에 따라 일종의 송별모임에 달콤한 맛의 상징인 초콜릿의 등장이다. 아마 신체의 감각을 일깨우려는 상징이겠지만, 이것 또한 생체의 존속을 위한 기계적 알고리즘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기술자들의 낙관론에 의하면 너무 하찮은 저항 같기만 하다. 어쨌든 우리네 젊은 소설가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문제 제기의 작은 출발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 작품집을 가장 강렬하게 각인시키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최은영의 선택은 슬그머니 내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추궁처럼 들려 괜스레 회피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한다. KTX가 우리 사회에 등장할 때 초고속으로 달리는 기술의 우월감에 도취한 권력의 귀족성이 잉태한, 부자연스러운 희생양이 되어버린 여성 승무원들의 비도덕적 해고에 도사린 우리들의 무지를 환기시키고 있다. (2018) 5월이면 그 투쟁이 시작된 지 12년이 되는 것 같다. 2년 뒤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던 채용공고를 무시하고 위탁계약자에게 책임을 떠넘김으로써 저항하던 근로자들을 무더기 해고했던 사회적 참변으로 기억되는 사건이다.

 

우리는 옳다고 해서 이기고, 옳지 않다고 해서 지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강한 쪽은 어떤 경우에도 모든 것을 잃지 않습니다. 그러나 약한 쪽은 최소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전부를 걸어야 해요.” (P 25)

 

고작 이러한 불의에 공감할 수 있다는 자위의 내적 만족에 머물면서, 외부에서는 이러한 부당함에 노출된 채 그저 당하고 좌절하는 이들에 아무런 위안도 되지 못함을 안다는 것은 정말 수치스러움이 밀려와 눈을 질끈 내려 감게 된다. 인간이 같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 mille-feuilles nabe, 밀푀유나베 ]

 

여성주의의 거센 물결은 이 선집에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윤이형의 승혜와 미오인데, 퀴어 여성인 승혜의 한없는 자기 왜소화라는 갇힌 내면을 뚫고 나오기를 응원하고 격려하게 하는 소설이다. 육식을 거부하는 연인 미오를 위해 채식의 식단을 준비하던 승혜가 이웃 여자의 도움요청에 따라 그 집 아이를 위해 사뭇 과시적인 소고기를 넣은 밀푀유나베를 만드는 장면은 정말 아름다운 것은 이런 것이야! 라고 말하고 싶어지게 한다. 폐쇄된 껍질을 깨고 나오는 이 땅의 모든 승혜에게 박수를.

 

끝으로 마음을 한없이 푸근하게 해줬던 이은선의 커피 다비드의 소회로 마무리하여야겠다. 독특한 향취와 맛을 지닌 원두와 커피에 어느 섬마을 사람들의 저마다의 이야기가 상응하여 펼쳐진다. 고기잡이를 나섰던 사랑하는 남편을 여읜 여인네의 애틋한 그리움에서, 시집온 인도네시아 여인의 순박한 적응의 장면, 9급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23살 아가씨의 예쁜 질투와 섬사람들의 투박한 일상의 이야기, 그리고 아들의 출소 만기 전에 죽음을 앞둔 해녀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셔보는 핸드 드립 커피에 얹어진 소박하고 애절한 이야기까지 동화적 아름다움으로 더럽혀진 마음이 세탁되어 마치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는 듯한 가뿐함을 느끼게 해준다.

 

소설, 문학의 힘이란 참으로 대단하다. 이처럼 일상의 진부함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쉽게 망각하고, 혹은 외면하거나 무시하며, 알지 못했던 것들을 되찾게 되거나, 새로이 알게 되며, 어떤 비로소의 자각이 생기게 하여 현실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니 말이다. 이 선집은 그야말로 질 높은 식사’, ‘참 맛의 식사를 충분히 제공해 주었다고 해야겠다. 한없이 편협해졌던 내 시선에 양질의 영양분이 흡수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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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ages - song by 'marina and the diamonds'

 

 

 

 

영국의 가수 마리나(Marina and the Diamonds)의 이 노래를 듣다보면 곡의 흥겨움과 세련된 리듬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그 가사가 말하는 오늘의 인류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이 예사롭지 않음에 더욱 매혹된다.

DNA에 각인된 인간의 특성에 대해서, 이 신랄한 야만성과 동물성, 그리고 수많은 모순을 지닌 인간의 모든

행동양식과 학습의 미명하에 이루어지는 졸렬한 본성의 본색에 대해서...

신(神)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가 인간은 두렵다고 노래한다...

 

Murder lives forever

And so does war

Its survival of the fittest

Rich against the poor

At the end of the day

Its a human trait

Sewn deep down inside of our DNA

One man can build a bomb

Another run a race

To save somebodys life

And have it blow up in his face

Im not the only one who

Finds it hard to understand

Im not afraid of God

I am afraid of Man

 

Is it running in our blood

Is it running in our veins

Is it running in our genes

Is it in our DNA

Humans arent gonna behave

As we think we always should

Yeah, we can be as bad as we can good

 

Underneath it all, were just savages

Hidden behind shirts, ties and marriages

How could we expect anything at all

Were just animals, still learning how to crawl

 

We live, we die

We steal, we kill, we lie

Just like animals

But with far less grace

We laugh, we cry

Like babies in the night

Forever running wild

In the human race

 

Another day, another tale of rape

Another ticking bomb to bury deep and detonate

Im not the only one who finds it hard to understand

Im not afraid of God

Im afraid of Man

 

You can see it on the news

You can watch it on TV

You can read it on your phone

You can say its troubling

Humans arent gonna behave

As we think we always should

Yeah, we can be as bad as we can good

 

Underneath it all, were just savages

Hidden behind shirts, ties and marriages

How could we expect anything at all

Were just animals, still learning how to crawl

Underneath it all, were just savages

Hidden behind shirts, ties and marriages

Truth is in us all, cradle to the grave

Were just animals still learning how to behave

 

All the hate coming out from a generation

Who got everything, and nothing guided by temptation

We were born to abuse, shoot a gun and run

Or has something deep inside of us come undone

Is it a human trait, or is it learned behavior

Are you killing for yourself, or killing for your savior

 

Underneath it all, we’re just savages

Hidden behind shirts, ties and marriages

How could we expect anything at all?

We’re just animals still learning how to crawl

Underneath it all, we’re just savages

Hidden behind shirts, ties & marriages

Truth is in us all, cradle to the grave

We’re just animals still learning to beh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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