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들은 말한다. 마르크시즘(Marxism)은 더 이상 오늘의 사회에는 유용하지 않으며, 폐기되었다고. 헛소리! 인간과 자연 사이의 모순, 인간과 인간사이의 모순이 극복된 사회질서를 논의하는 것이며, 인간 개체 ‘자신의 힘’에 관한 지식을 획득하고 이 힘을 사회적 힘으로 조직하며, 바로 이 사회적 힘이 더 이상 정치적 형태의 힘으로 자신과 유리되지 않도록 하여 자신의 해방을 실현시키려는 시도라는 그의 사상 중 극히 일부만으로도 너무도 많은 것들을 인간과 인간사회에 시사하고 있다.
이를테면 당대의 문학거인이었던 빅토르 위고가 그의 소설에서 19세기 중엽 프랑스 사회의 인간 소외를 개인의 악으로 그릇된 통찰을 하였다고 작품전체가 폐기되지 않는 이유와 같다. 마르크시즘을 구성하는 핵심적 사상의 하나인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서로 대립 충돌함으로서 역사의 모순이 발생한다는 통찰, 즉 생산력과 생산관계, 생산관계의 전 체계가 정치적 상부구조 및 사회 형태와의 연관성을 가진다는 지적은 여전히 사회의 권력관계를 분석하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더구나 마르크시즘을 형성하고 있는 무수한 저술들과 실천행위의 기록들은 한낱 낡아빠진 독단론의 집합이거나 기회주의의 은신처에 똬리를 틀고 있는 현실의 삶과 괴리된 이론적 이념이 아니다.
마르크시즘은 자본의 하부에서 임금 노동을 하는 절대 다수의 대중이 스스로 삶의 주체임을 깨닫게 하고 그러함으로써 자기소외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인간 존재에 끊임없는 모욕을 가하며 인간정신을 공허와 환멸에 차도록 방치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내적 모순을 제거하려는 휴머니즘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오늘 우리네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제시되었던 그의 사상에서 여전히 배워야 할 것, 이해하여야 할 것을 발견 할 수 있으며, 실천적 가치로서 적용할 수도 있다.
2018년 5월 5일이면, 마르크스의 탄생 200주년이 된다. 19세기 인류 사회를 온통 적셔댄 자본주의의 발흥에 수반된 계급 전쟁, 사회관계의 상층부를 장악하려는 첨예한 갈등으로 점철된 시간의 족적들을 더듬어가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임금 노동자인 21세기 오늘을 투영해보는 것이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알지 못한 채 마르크시즘은 실패한 이론이기에 이제는 관심을 가질 가치조차 없다고 떠벌리는 우매함과 오만을 넘어 무지의 편협은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들을 인용, 재인용하거나 해석 또는 비판의 글들이 난무하다보니 그 왜곡과 몰이해가 지나치게 판을 치는 모양을 보게 된다.
마침 다행스럽게도 1989년 번역 소개된 이래 절판과 복간을 반복하다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의 해를 맞이하여 새롭게 편집된 ‘마르크스 레닌주의 연구소’의 『마르크스 전기 1, 2』 가 재출간 되었다. 이 책은 마르크시즘 이해의 척추를 세우는 최고의 저작이 되어주는데, 마르크시즘을 개관(槪觀)하는 역작(力作)으로서 그가 집필하고 발표한 저술들의 동기는 물론 이것들의 주체적 사상과 의도와 해설을 포함한 내용 소개까지 더해 갈증을 느끼던 무지를 거의 완벽하게 해소시켜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저술이 빛을 발하는 첫 번째의 가치는 『헤겔 법철학 비판』, 『1844년 경제학•철학초고』 , 『신성가족 또는 비판적 비판에 비판』,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독일 이데올로기』, 「공산당 선언」, 『철학의 빈곤』, 『정치경제학 비판』, 『프랑스의 계급투쟁』,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자본』등 위대한 저술들이 역사적 시간과 어울려 가히 풍부하고 참된 의미로 전달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둘째는 1840년대의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유럽전역에서 일어난 혁명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과학적 공산주의’를 이념적 기반으로 하는 최초의 국제 노동계급 조직인 ‘공산주의자 동맹’의 결성과 이를 통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지도자로서 실천적 행동가의 전략과 전술은 물론 그 사상적 토대의 발현을 목격케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마르크시즘(Marxism)의 본질을 이해하는 견고한 기초의 터전이라 해도 그릇된 표현이 아닐 것이다.
특히 ‘과학적’이라는 수식어와 관념론적 이론이 아닌 ‘실천 행위’로서의 이념이라는 어휘는 마르크시즘을 여타 유사 이데올로기와 구별하는 중대한 요소임을 발견하게 한다. 19세기 산업 자본주의 사회가 몰고 온 사회적 모순의 대두는 유럽사회 정치체제의 급변을 요구하게 되는데, 자본 계급의 임금 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계급적 충돌의 불가피한 귀결을 내재한다. 결국 자본주의가 지닌 내적 모순에 대한 대안은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지만, ‘공상적, 혹은 유토피아적 공산주의’나, ‘진정한 사회주의’와 같이 감상적, 관념적 인류 해방을 부르짖으며,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지니지 못한 기회주의적 이해에 머무는 것들이다. 이같은 실태가 바로 ‘실천적 사상으로서의 과학적 공산주의’를 정식화시키려는 마르크스의 저술들이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역사적 현장에서의 지도적 역할이라는 행위이다.
이러한 단적인 예는 유토피아적 공산주의를 주창하던 ‘프루동’과의 논쟁으로부터 『철학의 빈곤』이라는 유명한 저술이 집필되는 것으로 확인하게 된다. “역사가 객관적 조건과는 무관하게 자의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주의주의적 역사개념에 입각해 있으며, 사적 소유의 기원은 물론 소유 집중 이유도 알지 못하는 프티부르주아의 한낱 심적 열망”에 불과한 빈곤의 철학이라는 프루동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가치와 화폐 이론을 포함한 자본이론의 맹아(萌芽)로서의 위치를 갖는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술행위는 이처럼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자기인식의 명료화와 심화, 대중 확산을 위한 실천적 도구로서의 역할을 지닌다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출발점인 ‘포이어바흐’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으며, 변증법은 또한 ‘헤겔’을 피할 수 없는데, 청년기 헤겔 좌파로 불리는 ‘청년헤겔학파’의 일원으로서, 인간의 실천행위, 특히 집단적 행동을 과소평가했다고 헤겔의 주관주의적 역사관을 비판한 『헤겔 법철학 비판』이나, 인간을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존재로 파악한 포이어바흐와 달리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역사에 뿌리박은 사회적 제 관계의 산물로 파악하며, 유물론적 관점을 정식화한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는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변증법을 이해하는 관문임을 알게 되기도 한다.
또한 청년헤겔학파의 ‘브루노 바우어’와 그 일파에 대한 비판으로 작성된 「신성가족, 비판적 비판에 대한 비판」은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기초를 제공한, 마르크시즘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저작이다. 노동자의 자기 소외의 원천으로서 재산, 자본, 산업, 그리고 임노동임과, 모든 역사적 시대마다 특정한 경제구조와 이에 상응하는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음을 과학적으로 규명함으로써 헤겔의 완전한 극복을 이뤄낸다. 훗날 혹자들은 이를 두고 “헤겔 논리학의 병기창에 있는 무기를 사용하는데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다고 전하기도 한다.
한편 『독일 이데올로기』를 쓰게 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당시 임박한 분노도 보게 되는데,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역사적 자기 이해를 방해하는 ‘진정한 사회자들’과 같은 이념적 반대파들을 잠재우기 위한 작업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부르주아 사회가 내재한 인간 존재에 대한 모욕의 본성과 모든 계급간의 충돌 대립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 기인한다는 역사성의 발견을 비롯한 정치적 상부구조와 사회적 의식 형태와의 연관성 규명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부르주아 및 프티부르주아와의 연대나 이용행위에 대한 환상을 차단하기 위한 도구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마르크시즘의 정식화는 물론 인류 사상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는 1848년 프랑스 6월 혁명이 지닌 역사적 의미로부터의 깨달음인데,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와의 인류 최초의 내전이다. 프랑스공화국의 심화된 내부 모순을 시정하기 위한 민주공화국 확립 요구에 대한 반혁명세력인 부르주아지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처참한 학살로 맺은 피의 투쟁이 준 교훈이다. 여기에는 사상적 차이가 아니라 사회 각 계급들의 서로 다른 지위, 즉 사회적 관계의 우열인 물질적, 경제적 생활조건이 만들어낸 자본주의가 애초에 내재하고 있는 적대관계라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니고 있던 환상, 프티부르주아가, 부르주아가 될 수 있다는 계급적 믿음이란 공허한 꿈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산업, 금융 자본의 임금 노동자인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자기 인식의 필요를 절실하게 각성하는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임금노동과 자본」이라는 마르크스의 저서로 표현되고 있는데, 노동계급 결집의 강한 필요성을 이들 집단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이처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술 작업은 역사 현장에서의 체험과 통찰이라는 실천적 행위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1848~1849년의 독일에서의 혁명운동 또한 융커 등 대지주 봉건세력과 부르주아세력의 연대, 프티부르주아의 노동계급에 대한 배반과 같은 반혁명 세력과 노동계급의 계급의식 미성숙 등 혁명의 좌절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등 공산주의자동맹의 일원들을 독일에서, 프랑스 파리로, 벨기에 브뤼셀로, 지속되는 추방과 체포 구금의 위협으로 내몰고, 마침내 마르크스는 영구 정착지가 될 영국 런던의 망명길로 오르게 한다.
따라서 혁명의 좌절과 반혁명 세력의 승리 이후, 1850년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는 반동의 시기로서 극도의 궁핍에 시달리며 그들 이론의 정교화와 저술 작업을 위한 시간이 된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네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저술의 하나라 할 수 있는 그의 『자본』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절대주의 체계가 다시 부활한 반동세력이 유럽을 지배하던,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는 곤경의 시기였던 바로 그 시간의 덕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학을 비롯한 정치, 역사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고, 자료를 수집하고, 노동계급의 연대를 복원하는 이 역사적 시간이 안타까운 한편 숭고한 시간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이처럼 오늘 우리네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제시되었던 그의 사상에서 여전히 많은 배움을 얻는다. 『마르크스 전기 1, 2』는 역사적 인물의 사적 생활을 묘사한 단순한 전기(傳記)물이 아니다. 마르크시즘의 형성과 정식화의 여정에서 서술된 위대한 저작물들의 핵심 내용의 도출과 그 역사적 분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 우리들은 여기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인간을 향한,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해방을 위한 인류애를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술들을 읽으려는 모든 이들의 유용한 안내서이자 지침서가 되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