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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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3주가 지났을 뿐인데.....할 일은 너무 없고 할 일 없이 때우기엔

시간이 너무너무 많아서 인간 감정의 공포스러운 수렁이라 할 수 있는

권태감이 계속해서 백작의 마음의 평화를 위협했다.” - P 90 에서

 

    

 

볼셰비키 정권에 의해 연금형을 선고받고 32년간 모스크바의 메트로폴호텔이란 곳에 갇혀 지내야만 했던 구시대 귀족인 알렉산더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이란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에이모 토울스가 창조해 낸 지성, 유머, 매력, 유연한 사유와 성품의 이 인물은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회자될 장엄한 문학적 캐릭터가 될 지도 모르겠다. ‘알렉상드르 뒤마가 그려낸 에드몽 당테스와 엘바 섬에 유폐된 나폴레옹’, 그리고 빅토르 위고장발장과 같이 불의의 감금상태라는 강제된 환경을 버텨내기 위한 어떤 복수와 환상조차 지니지 않은 운명 통제의 새로운 인간상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317호 스위트룸에서 9제곱미터의 다락방으로 옮겨가는 것, 백작, 각하로 불리는 로스토프의 귀족으로서의 삶과의 이별, 기한 없는 감금, 축소된 세계에서 새로운 자기라는 정체성의 재정립이 시작되어야 한다. 비로소 책을 읽는 데 필요한 시간과 고독을 제공하는 상황에서 로스토프가 펼쳐든 책이 몽테뉴의 수상록이란 것은 다분히 해학적이다. 더구나 자신의 운명이 타인의 처분에 달려있을 때 취해야 할 태도를 제시하는 첫 에세이의 내용은 그가 선택할 삶의 방법을 지혜롭게 암시한다.

 

소설 제목의 신사(Gentleman)'는 어떤 이데올로기나 신분의 복귀와 같은 기대의식이 없는 로스토프의 성향이며,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인식에 기초한 그의 태도, 언행, 몸가짐의 예측 가능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위협당하는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위해 그가 취하는 일련의 행위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귀족의 권위를 상징하는 그의 코밑수염이 불공평함을 항의하는 고객에 의해 한 쪽이 잘려나가는 호텔 이발소에서 벌어지는 최초의 자기 인식에 관한 에피소드와 뜯어진 바지 솔기를 손수 꿰매기 위해 옷 수선실의 마리나와 친구가 되는 장면은 특권을 포기함으로써 자신의 신세계를 수용하고 마침내 새로운 삶의 형상을 직조해내는 아름답기조차 한 인간의 출발을 알린다.

 

더 이상 그는 각하로 언급되지 않으며, 고객으로서 한없이 우아한 후원자였을 때와 다름없이 식당의 최고 웨이터가 되며, 9살 소녀 니나와의 우정, 여배우 안나와의 로맨스는 마냥 안으로 좁혀들기만 하는 벽의 갑갑함을 밖으로 팽창하는 영역으로, 호텔을 러시아 전체로 인식케 함으로써 새로운 전경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는 환경에 지배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때론 굴복하고 또 때론 단호하고 대범한 태도를 취하며 실질적인 일에 헌신함으로써 자신의 결의를 유지해 나간다.

 

어린 소녀 니나의 인도에 의해 호텔 지하에서 지붕 밑에 이르기까지 밑으로 혹은 뒤로, 여기저기를 다니며 공간을 확대해 나가는 삶의 한 순간, 그리고 좁디좁은 다락방을 그 크기와 상관없이 상상하는만큼 넓게 만들어가는 과정은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초월하는 방법에 대한 끊임없는 시연이 되어 가슴 뭉클한 숭고한 감정이 되어 날아든다. 그러나 호텔 밖의 세계는 가히 폭력과 공포, 야만이 널뛰는 격동의 시공이며, 니나라는 새로운 세대의 세계이기도 하다.

 

여기에 슬픔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불가항력적 세계에 놓인 친구 미치카와의 이야기는 메트로폴과 저편의 세상이 되어 그의 존재를 위협한다. 어린시절 로스토프에게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맨체스터 나방의 운명, 그 생존의 적응과 진화의 얘기, 볼셰비키 비밀경찰의 간부 오시프와 러시아의 야만성과 진보의 이념적 관계를 교환하며 쌓는 우정, 영화 카사블랑카의 음모적 장면의 해석, 결코 돌아오지 못한 니나와 그녀의 딸 소피아의 돌봄과 사랑, 보람의 이야기들은 삶을 살아 낼 수 있는 가치에 대해 풍부한 사유의 공간으로 안내한다.

 

32년간 그가 쌓은 재산으로서의 사람들, 로스토프가 소중하게 쌓은 것들의 면면을 응시하는 것은 이 소설의 중요한 목소리일 것이다. 1922년에서 1954년에 이르는 32년이라는 한 인간에겐 거의 모든 시간이랄 수 있는 장구한 세월을 유폐된 호텔이라는 공간에서 숭고한 인간의 열정을 지펴낸 이 소설의 통찰은 우리들에게 무수한 문제적 대화를 지속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삶의 상황이 우리 자신의 꿈을 추구하지 못하게 할 경우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그 꿈을 추구하기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로스토프의 확신에 찬 주장은 인간 정신에 대한 작가 토울스의 경외에 찬 애정의 표현이 아닐까? 에이모 토울스는 유쾌한 담론 예술가로 불린다. 아마 책을 읽고 난 뒤에 엄청난 물음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소피아를 도피케한 후 자신의 고향 니즈니노브로고드로 왜 돌아갔을까? 그를 기다리던 회색빛 머리를 한 여인은 과연 누굴까? 1946년의 장에 등장하는 미시카, 오시프, 리차드가 말하는 혁명 시대의 세 가지 관점에 누구의 의견에 동의 하는지? 인용되는 영화 카사블랑카의 칵테일 글라스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소설의 주제에 영향을 미치는 무수한 모티브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두고두고 읽힐 작품이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무진장한 영감을 선사해줄 그런 소설이다.

 

참 고 : <에이모 토울스 소설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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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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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이상 유자녀 부부로서 10년 내 자녀를 최소 셋 이상 갖도록 노력한다는 조건에 입주자격이 주어진 실험공동주택이라는 작위적 공동체가 배경인 소설이다. 이 축약된 공동체를 통해서 현실적 상황과 괴리된 출산정책, 성추행의 본질적 경계성, 자기이익 최우선의 개인주의, 여성주의의 환기 등 공동이라는 연대의 선의(善意) 뒤에 숨은 위선과 그 환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출산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생계벌이의 전선에서 퇴장하여야한다. 이를 위해서 생활경제의 안정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외벌이 가족만이 입주가 가능하기에 네 이웃의 부부 중 한 사람은 각기 직업을 가지고 있으나 그 역시 시원찮다. 급여가 제 때 지급되지 못하는 불안한 직장, 혹은 친척 약국의 사무보조라는 임시직처럼 안정적 경제가 담보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가계의 지속성을 유지해야 하는 부담은 여성에게 부과되어 아동도서 그림을 그리는 프리랜서가 되어 납기에 시달리거나 중고의류와 염가 사이트를 헤맨다. 자기 아이 하나도 건사하기 힘들정도이니 쓰레기 분리수거 등 소소한 공동체의 부담에 참여하는 것이 관심대상이기에는 벅찬 것일 뿐이다. 그러니 애초 이들이 아이 셋을 갖는다는 것은 가능성이 희박한, 망상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도심에서 떨어진 한적한 교외의 12 세대짜리 공동주택의 입주조건과 실험이라는 국가 정책에 내재된 비현실성, 현재적 삶에 대한 몰이해의 그 허구성의 신랄한 비판으로 읽히는 이유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 자녀에 대한 각종 정부 지원금과 지원 정책의 허구성, 기득권을 지닌 부유층 이외에 대부분 서민계층의 복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정책의 환기이다. 현실의 경제 환경 하에서 세 자녀씩이나 낳는다는 것은 요원한 사치이자 공허한 망상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소설 속 입주자들은 이미 국가가 내건 입주 조건을 지키겠다는 내심의 기약이 없다는 점에서 그 정책적 비현실성은 더욱 고착된다.

 

그리 믿음직스럽지 않은 국가에서 처음 시작하는 사업인 만큼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뒤따를 테고

관리 집행이 잘 안되거나 정권이 교체되면 사업자체가 흐지부지될 수도 있었다.”   - P 43

 

  

대중의 현실적 삶과 국가 정책 사이에는 커다란 불신의 심연이 놓여있다. 기득권은 쉽사리 놓아지지 않는다. 기득권의 또 다른 측면에서 남성중심의 사회체제와 그들 언어에 내재된 휘발성과 은밀성에 깃든 위선의 양식에 대한 비판은 소설의 한 축을 차지한다.

여섯 살 딸아이의 엄마인 요진은 약국 사무보조원으로 무기력한 남편 은오에게 가사를 맡기고 불안정한 삶을 지탱하고 있다. 입주자인 신재오의 차량 수리로 인하여 출근 방향이 같은 요진은 내키지 않는 동행을 감수한다. 이웃집 남자 재오는 동행하는 차내에서 “....하도 조용히 살아 그런가, 요진 씨 소리 지르면 어떻게 되나 들어 보고 싶네요.” 라고 요진에게 모호한 말을 건넨다.

 

발화 당사자의 미묘한 제스처나 그 자리의 공기, 청자의 심리가 지워진다는 점이, 언어 자체가 지닌 약점이었다.”  

                                                                                                                                                            - P 120

 

소리 지르는 거 듣고 싶다는 말, 그리곤 강압성이 친절함과 친근함의 외피를 뜯고 새어 나오는비밀스럽고 은밀함 못지않은 추진력을 지닌 둘만의 저녁 식사를 제안한다. 점점 집요해지는 이웃집 남자의 치근거림, 요진은 남편 은오에게 이같은 사실을 말하고 해결키 위해 직장을 조퇴하고 집에 달려가지만 그녀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남편과 이웃집 여자 교원과의 친밀한 대화의 모습이며, 방치된 딸아이의 고통을 목격하는 것이다.

 

실망한 요진의 시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은오의 내심의 목소리는 아주 흥미로운 남성의 모순된 심리를 엿보게 해준다. 불규칙적이며 턱없는 생계비로 인해 절약과 수치심조차 모르고 살아가야하는 이웃집 여자 교원에 대한 측은지심이다.

 

강교원은 누군가에게서 베풂을 받는 감각, 순전히 자신을 위해서 돈을 쓰는 기쁨이나 온전히 자신에게만

제공되는 물건이 일상에서 어떤 활력과 변이를 가져오는지 좀 더 자주 경험할 필요가 있었다.” -  P 148

 

그래서 공동체의 아이들을 데리고 교원과 나들이를 하며 소비한 비용을 자신이 부담하여야겠다는 내심의 다짐을 하는 것이다. 아내 요원 또한 이와 같음을 알지 못하는 전형적인 남성적 무지의 시선이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남성의 시선은 오랜 관습적 비합리성과 도덕적 불균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의 고발이라 할 것이다. 요원은 딸 시율만을 안고 떠나버리는데 남편 은오는 이 행위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이 지닌 기득권의 본질을 깨닫는 것, 그 껍질을 벗어던지는 것은 결코 자발적 수행이 되지 못하는 것일 게다. 아마 끊임없이 상처를 내고 자극의 강도를 높이며 상실의 고통을 겪게 하여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진이 실험공동주택을 등지고 떠나는 택시 안에서 그녀의 코를 찌르는 축사의 악취를 차단하기 위해 차창을 닫으려하는 장면의 묘사는 불온한 현실을 막아내려는 강고한 몸짓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소설은 공공선이라 가장된 공동체 명의의 행위 이면에 놓인 개인의 삶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의 토대에 세워진 환상의 신랄한 발가벗김, 바로 그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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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7-03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구 문제와 거주 이슈까지 두루 다룬 작품이라는
생각에 읽어 보고 싶어졌습니다.

분량도 부담이 없어 보이니 도전!

필리아 2018-07-03 21:46   좋아요 0 | URL
네, 최근 많이 팔리는 일종의 추세화된 소설이랄까요...
 
나의 타자 - 정체성의 환상과 역설 무의식의 저널 Umbr(a)
슬라보예 지젝/ 러셀 그리그 외 지음, 강수영 옮김 / 인간사랑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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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사회라는 거대 구조에 짓눌려 그것이 설정하고 있는 수많은 규칙들과 제도, 혹은 문화라는 관습적 양식에 자신을 맞추어야 하는 고통을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게 된다. 결국 라는 존재의 정체성이란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만들어 낸 가면과도 같다. 그런데 나라는 실체는 정작 그 가면 뒤에 감추어져 있는 어떤 주체이기에 이 분열된 는 문득 문득 자신이 낯설어지며, 그 간극으로 고통과 불안을 느낀다.

 

타자라는 이 수상쩍은 책을 읽던 중 정말 우연치곤 기이하게 The Call이라는 가수들의 콜라보(Collaboration) 음악 프로그램에서 태민×비와이가 부르는 <피노키오>라는 노래 말이 들려왔다. 아마 대충 이런 가사였던 것 같다.

 

너로 향한 내 거짓이 내겐 익숙해, I wanna be wanna be,

하얀 웃음너머 검은 거짓말들을 꼭 진실인척 진심인척 난 나를 꾸며,

더 깊숙하게 숨어버린 진심, 이러다가 진짜 내 모습마저 사라질 듯 해.....”

 

노래를 부르는 이 젊은 가수의 호소에는 무대에 올라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자신의 꾸밈에 익숙해져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곤 그 꾸밈, 가면의 삶이 정작 자신의 실체가 소멸될 것 같은 불안을 느끼게 하고 있음을 노래한다. ‘, 이건 진정한 내가 아닌데, 진짜 나의 삶을 살고 싶어라는 소위 사회구조라는 대타자(大他者)에 저항함으로써 분열된 주체의 통합, 온전한 를 되찾고 싶다는 무의식적 외침의 반영일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결핍을 겪는 주체, 주체 내부의 상처와 마주하기, 미완의 나를 총체적 나로 끊임없이 지향하기, 실패가 불가피한 나를 만나는, 지속적인 진자운동을 통해서 타자(분열되어있는 내 안의 타자들)를 동일자(the same)로 만드는 무한한 과업의 수행을 이야기한다. 정체성으로 가는 여정의 다양한 논의들이 제시되고 그것들의 철학적 혹은 논리적, 그리고 성적 함의를 살펴보는탐색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정신분석, 젠더연구, 비교문학, 현대철학를 대표하는 7인의 라깡주의 석학들이 사회구조에 대항한 주체의 저항 가능성 등을 어떻게 이론화하는지에 토대를 두고, 부분적이나마 국내 출간되지 못한 라깡의 여러 세미나의 내용들을 통해 정체성과 동일화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를 엿볼 수도 있으며, 강박의 망상적 실재를 이해하게도 되고, 혹은 성차에 대한 오랜 논쟁적 논의를 지닌 페미니즘의 이론적 무기를 발견할 수도 있게 해준다.

 

따라서 소개되고 있는 담론의 주제와 관련하여 읽는 이에 따라 그 실천적 관심은 무궁무진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의 서장을 여는 슬라보에 지젝의 대타자의 권위에 복종하려는 열정적 애착에 대한 주디스 버틀러의 비판으로서 라깡 해석은 그야말로 압권이랄 수 있다. 이를테면 버틀러는 대타자에 저항하려는 원초적인 복종은 상상계에서 이루어지기에 상징계인 실재에서 무력하며, 그럼으로써 열정적 애착을 봉쇄해버린다. 결국 주체는 사회구조에 대항 할 수 없는 형국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지젝은 열정적 애착이란 근본적 환상이며, 이것을 가로질러 무화시키고, 주체적 결핍을 겪도록 하는 것, 즉 무력감은 원초적 열정적 애착의 필요를 자극하는 탈애착(dis-attachment)이라는 틈새를 일컫는 또 다른 이름으로 해석함으로써 저항의 자유가 가능한 주체를 복원해낸다.

    

 

 

이 논의는 진정한 여성’, 그리고 진정한 행위의 개념으로 이어지는데, 페미니즘 이론가들에게는 매력적인 이론 기반을 제공하는 부분이 될 것 같다. 고전 느와르와 90년대의 신 느와르에 등장하는 팜므파탈의 형상을 비교함으로써 남성적 정체성이 스스로를 주장하기 위해 필요한 내재적 위협으로 창조해낸환상에 머물지 않고, 이 환상을 수면으로 끌어내 남성적 게임을 완전히 수용하고 남성을 게임에서 완전히 패배시키는 대타자 위협의 효과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예시되는 존 달John Dahl의 영화 마지막 유혹 The last seduction의 주인공 린다 피오렌티노의 한 장면 -피오렌티노는 남자를 연인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직접 남자의 바지 지퍼를 열어서 그 안에 손을 넣고 그의 상품을 점검한다. 그녀는 나는 보지 않고는 어떤 물건도 사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이후 그녀는 어떤 식으로든 그와는 따뜻한 인간적 접촉을 거부한다.” - 은 팜므파탈 역시 남성적 환상의 실현이라는 유령적 아우라를 의도적이며 잔혹하게 떼어버리는 진정한 여성이라는 행위의 형상으로서 선명하게 각인된다.

 

한편 페미니스트 기획의 유효성 측면에서 뉴욕주립대() ‘마리나 드 카네리의 논문 일자에 균열내기: 주인, 노예 그리고 아내헤겔주인-노예의 변증법에 대한 페미니즘 진영의 비판 혹은 찬양에 스며있는 오류 지적을 통해, ‘본질의 단일성을 회피하면서 인간 존재의 총체성을 사유하기 위해 일자(一者)의 균열을 도입하고, 여성을 총체성의 필수적 기능으로, 또한 치유할 수 없는 남성의 불안에 깃든 증상으로 설명해내기도 한다.

 

또한 덴마크 아루스대() ‘커스틴 힐드가르환상으로서의 성과 증상으로서의 성은 일종의 논리 수학을 통해 남성은 여성에 대한 환상을 통해서만 보편적이 될 수 있다.”는 즉, 성차(性差)는 모순적임을 증명해 내는데, ‘중간 항 배제의 법칙을 인정하지 않는 직관주의의 논리는 아마 이 책의 신선한 지적 매력을 증폭시키는, 더욱이 라깡의 그 유명한 명제인 성관계란 없다.”의 남성이 말하는 여성적 본질 없음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는 흥미로운 주제를 관통하고 있기도 하다.

 

모두(冒頭)의 아이돌이 부른 노랫말로 회귀하면서 맺어야 할 것 같다. ‘동일화(同一化)’의 이야기다. 어느 순간 주체인 청년이 대타자인 사회대중의 응시에 담긴 거울상에서 자신의 이미지를 진정 발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았던 정체성이 강탈되었다는 동일화의 오류임을 자각하는, 불안의 정서가 나타났다는 것일 게다. 이러한 양상에 완전히 일치하는 정신분석적 해석이 있다.

    

대타자의 응시가 집요하고 고집스럽게 반복됨으로써 변장한 주체는 자신이 붙들려있는

동일화의 자리에 불가피하게 놓이게 된다. 다시 말해 대타자의 욕망의 대상으로 포박당했으니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콕 집어낼 수 없어졌다.”

 

아마 태민×비와이의 노래 속에 등장하는 의 처한 상황이 이것일 것이다. 꾸며낸 정체성에 자기 동일화를 거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 인식에 이미 자기 존재의 위협에 저항하는 힘이 있음을, 그의 건강한 정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대타자의 욕망이 되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오직 대타자가 그에게 의미가 되는 상태가 중지되지 않아야 한다. 대타자가 의미를 상실하는 때 그는 새로운 주체에 직면하여야 할 것이다. 아마 이것이 우리네(인간 존재)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러면서 인간적 성장을 해 나갈 터이다.

 

150여 쪽 남짓의 책이지만 읽는 이에게는 1천여 쪽을 읽는 것처럼 인내와 힘겨움을 요구하는 그리 녹록치 않은 글이다. 오늘과 같이 무수한 가면, 증폭되는 내 안의 타자에 몸서리치는 환경에서 어떻게 온전한 나를 축조해 나가야 하는지를 발견하게 해 주는 풍성한 의미로 가득함을 발견하게 된다. 무의식의 주체를 다각적 층위에서 탐사함으로써 개인의 내면을 아우르고 보다 윤리적 행위가 가능한 존재로 발전하는데 귀중한 초석적 사유의 시간이 되어주는 저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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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발표되고 두 달 만에 독서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가 1년여가 지나고 나서 작품에 대한 진짜 반응이 일기 시작했다는소위 역주행을 시작한 독특한 이력을 지닌 작품, 게다가 무려 32년간 지금도 실재하는 모스크바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메트로폴 호텔에 감금 생활이라는 플롯은 소설모스크바의 신사(A Gentleman in Moscow)』를 꽤 흥미롭게 바라보게 한다.

 

 

소설은 서른세 살의 알렉산드로 일리치 로스토프백작이란 인물이 공산주의혁명이 성공한 러시아에서 과거 프롤레타리아 혁명 동조의 시를 쓴 이력으로 인해 목숨을 부지하고, 종신 연금형 선고로 인해 호텔을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점에서 시작된다메트로폴은 수준높은 최고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시설인데, 체제의 건재함, 풍요를 대외에 과시하기 위해 잔존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간적 배경이 소설적 매력인 것은 특별함이 용납되지 않는 공산주의가 장악한 호텔 밖의 사회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동시대이지만 안과 밖이 서로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의 한 가운데 있음에도 그 혹독함을 비켜간 장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며또한  모든 사람들이 드나드는 장소가 한 사람에게는 세상의 축소판일 수밖에 없다는 설정이 발산하는 관음증적 관심의 유발이랄 수 있다.

 

 

그래서일까? 로스트프라는 한 인간이 겪어내야 할 삶의 면면을 강렬하게 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끓게 된다. 그것은 아마 인간과 시대의 변화에 대한 관찰자이자 참견자이며, 환경과 인간의 지배관계에 대한 세심한 응시가 될 것이다여기서  숨길 수 없는 내면의 빛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이 소설의 압축적인 문장은 더더욱 소설의 서사적 역량을 기대케 한다.

 

 

"자기만의 동굴에 갇혀 『오디세이』를 읽음으로써 자신이 지닌 가능성을 실현하는게 아냐.

사람은 거대한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딛음으로써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거야." 

- P 608 中에서

 

 

그런데 이 매혹적인 작품의 뒤늦은 평가만큼이나 국내에 이 작가에 대해서도 그리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작가  에이모 토울스(Amor Towles)’는 그의 대표작인 Rules of Civility (2011)2013년 국내에 우아한 연인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적이 있으나 지금은 그나마도 절판된 것 같다또한 그의 작품으로 Rules of Civility와 이번에 번역 소개되는 A Gentleman in Moscow (2016)만 알려져 있지만 2013년에 Eve in Hollywood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에서 1964년 출생했으며, 예일대를 졸업하고 스탠포드대에서 영문학 석사를 받았으며, 아내 매기(Maggie), 딸과 아들을 둔 가장으로서 맨해탄 그레머서 파크에 살고 있다. 1991년부터 2012년까지 뉴욕에서 투자전문가로서 일해 오다 지금은 전업 작가로서 소설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문학적 성취에 더해 상업적 성공까지 거둔 에이모 토울스의 소설은 국내 독자들에게도 뜨거운 호응을 얻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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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6-23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반역된 게 아니었군요. <우이한 연인>이 또 언제 번역됐었군요.
그런데 이게 또 언제 절판이 되었을까요? 별로 알려진 것 같지도 않은데...

무려 700페이지가 넘네요.
그렇지 않아도 출판사에서 읽겠다고 하면 한 권 보내주겠다는 걸
어렵게 거절했네요. 읽으면 리뷰를 꼭 써야하는 거라 좀 부담이 되서...
읽으면 좋을텐데, 700 페이지는 저로선...흐흑~
나중에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필리아 2018-06-23 17:10   좋아요 0 | URL
서사를 이끄는 힘이 대단해서 분량이 문제되지 않을 것 같아요.
기회가 닿으실 때 읽어보세요. 혹 에이모 토울스의 열혈 독자가 되실지도....^^
 

 

나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았다. 거울 (....) 지금까지 한 번도 나는 거울에서

벗어나보지 못했다. 햇빛을 반사해 나를 되쏘았다.”   P 32에서

 

 

거울, 소설은 내 안의 타자에 관한 이야기다. 불멸의 무용수로 불렸으나 서른여덟의 은퇴가 임박한 발레리나, 제인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이도 하다. 누군가의 얼굴, 그 속에 숨겨진 타자의 욕망을 응시하는 것은 은밀한 쾌락을 동반한다. 화장대 거울, 수영장의 잔잔한 수면, 무용연습실 사면의 거울, 여기에는 자신의 욕망, 혹은 숨기고 싶은 무언가의 형상이 있다. 그래서 제인은 공들여 화장을 한다. 어떤 흔적도 드러나지 않게, “모든 기억과 무관한 얼굴이 되어서야 거울 앞에서 벗어난다.

 

절박한 욕망이 지은 나라”, 싱가포르에서 영국 여인에 의해서 키워진 여자. 잃어버린 어린 딸(제인)을 대신해 입양된 임선경은 제인이 되어, 제인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자신의 욕망을 감추고 제인이 입었던 무용복과 발레슈즈에 자신을 맞추었다. 더 이상 임선경이라는 이름은 없다. 철저하게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존재로, 그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존재가 되기위해 자신을 억압해온 국립무용단 프리마돈나가 있을 뿐이다.

 

퇴락하는 무용수가 될 수 없어 절치부심하는 제인에게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라는 유명 안무가의 작품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가 제안하는 작품은 그녀의 내면 저편에 수장시켰던 쾌락과 고통의 금지되었던 기억을 불러내려한다. 억눌렸던 욕망의 반동, 틈새가 없는 쾌락의 향연, 태초의 암흑이었으며 자기 몸의 경계선이 지워지는 파멸 같은 춤에 새겨진 비극의 기억들을.

 

 

 [출판사 은행나무 블로그 內 이미지 편집 발췌]

 

언제나 기존의 규칙과 형식 안에서 완벽하고 안전하게 춤을 춰왔던제인에게 주물 같은 몸을 깨고 나와 자신만의 춤을 추게 했던, 처음으로 자기 몸의 주인임을 느끼게 해주었으며 지고의 욕망에 몸을 떨며 관습을 초월한 쾌락과 어둠의 심연이 뒤얽혀 있던 대학 무용과 시절의 은밀한 춤의 이야기다. 이것은 소설의 중추가 되어 온통 에로틱한 위반행위로 독자의 의식을 고양시키는데, 기존의 기준을 위반하고 제한을 타파하며 고통과 절정의 쾌락을 경험케하는 도발과 악의 내부의식이 제기하는 문제를 살피게 한다.

 

소설은 이처럼 에로틱한 물결로 가득 차있는데, 그 형식적 구성에 있어서조차 관능적이다. 이것은 제인의 은밀한 춤의 내용, “거대한 쐐기못. 거기에 매인 로프는 그들의 절박한 몸부림에 의해 어둠 속에서 느슨해졌다 팽팽해지길 반복하는 것과 일치하면서 그 강렬함을 증폭시킨다. 지연과 전진의 페티시즘, 소설의 결말, 앎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 자극으로 가히 폭력적인 읽기로 내몬다.

 

그런데 이 반복의 페티시즘은 안무가 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제인의 기억을 들춰내고, 자아가 상실된 그녀의 껍데기뿐인 실체를 드러내며, 마침내 거울에서 이상화(理想化)된 타자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서 제인과 텐은 다름 아닌 거울상()임을 발견하게 된다. 즉 텐을 통해 제인의 적나라한 욕망의 세계를 다면적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소설은 이처럼 제인과 텐이라는 인격 뒤에 감추어진 타자의 이야기다. 무엇보다 개인의 욕망이 그녀와 그를 에고가 소외된 존재로, 즉 타인들의 응시와 관점에서 생긴 존재로 규정하는 비인격적 타자에 의해 정해진 불온한 인간의 모습을 비춘다. 억압의 사슬을 끊어내는 일이란 그리 용이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타자의 삶이란 얼마나 피상적인가.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거절했을 때 삶은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으리라일체의 감각과 지성을 깨우는 강력한 작품이다. 불현듯 이런 생각도 스친다. 혹 여성주의 물결과 함께 억압되었던 자기애와 욕망의 폭발적인 분출을 자극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작품 평점 : ★★★★★

작가 소개 : 1983년 서울출생, 고려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

            2015년 「아저씨, 안녕」으로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7년 장편소설 『위안의 서』로 제3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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