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이중텐 지음, 박경숙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한자(漢字)문화권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또한 공맹(孔孟)의 유교적 예(禮)의 사회에 살아가고 있어 저자의 논리와 설명은 낯설지 않다. 오히려 한국의 한자에 조예가 깊은 어느 문화인류학자가 한국인의 생각과 태도, 의식구조를 설명한 것이라 해도 크게 다름이 없어 보일정도이다.
단체, 집단의식의 뒤에 숨어 등 돌린 채 뒷담화만을 흘리는 태도나, 매사 먹을 것이 개입된 언어 상의 표현 습관과 생활양식에 베어있는 또 다른 음식의 모습, 체면치레와 평등의식 속에 내재한 본질의 성찰 등이 그러하다. 물론 21세기 오늘, 개방과 개혁의 대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는 중국사회와 중국인, 그리고 중국의 권력(官,軍)과 학문, 문화를 주도하는 중심세력에 대한 진실어린 충언이기는 하나, 주변국, 아니 이해당사자일 밖에 없는 우리에게도 그들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우리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의미심장한 주석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할 수 있다.
음식, 의복을 비롯한 우정과 한담(閑談)등 총 9개장으로 구성되어 중국인의 의식을 해부하고 있으나, 크게 ‘체면’과 ‘단위’를 중심적 행동양식으로 구분하여 오늘에 이르는 중국인들의 습성과 태도, 의식구조, 그리고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이면의 본질적 양식을 관련지어 풀어내고 있다 할 수 있다.
우리(한국인)가 사용하는 많은 어휘, 속담, 관용어 등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한 표현으로 그들의 언어에 있음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게 된다. 무엇이든 먹는 것과 연관짓는 범식주의(泛食主意)의 예에서 ‘입에 풀칠한다’, 강사보고 ‘입을 놀려먹고 산다’라든지, 직업이나 일을 ‘밥그릇 ’이라 하고, 나라 밥 먹는 관료를 ‘ 철 밥그릇’, ‘한 방 먹었어’, 곤경에 빠졌던 것을 ‘쓴 맛 보았다’와 같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유사함을 보게 된다. 이러한 언어표현의 방식과 어원에 대한 해석을 통해 친밀성, 정중함, 배려 등 식사문화가 갖는 그들만의 속내로 유연하게 연결짓고 있다.
이러한 해석의 방식은 의복의 장에서도 계속되어 자본과 물질의 홍수 속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유행의 행렬에 대한 비교의식과 평등주의의 관념, 그리고 체면이라는 오래된 습속의 발현이라는 측면에서 중국인 자신을 적나라하게 해체하고 있으며, 그들의 앞날에 대한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안타까움을 호소하고 있다.
제3장인 체면의 장은 『아Q 정전』의 '아Q'의 일례를 곁들여가며 흥미로움을 더해 수월한 이해의 장으로 나가게 한다. 그들의 체면의 법칙이나 가면과 체면의 관계, 의식과 무의식의 정의를 통한 ‘의식적 자기기만’에 이르는 해설은 가히 최고의 인문서로 손색이 없을 정도의 걸작에 이른다. 이 저술을 읽는 내내 매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지 않고 넘어 갈 수 없는 다양한 지식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음을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체면과 인정과 같이 중국인들의 오랜 태도와 행동 양식이 그들의 처세와 어떻게 관련되고 있는 것인지, 세상물정에 밝다는 것,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처세인 만큼 가식적일 수 있다는 것 등 그들의 ‘체면’이라는 것의 의식 속 배경과 의미를 이해케 된다.
단위의 장을 기초로 결혼, 가정, 우정의 장은 중국사회의 본위(本位), 즉 기초 단위와 관련하여 그들의 개인으로서의 개체 부존재와 오직 단체만이 존재하는 사회임을 통찰한다. 최소의 단위는 가정이라는 단체이며, 개인이란 단위는 존재치 않는다.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역사적 배경과 공산사회로 이어지는 불과 30여 년 전까지의 중국은 그러했으며, 이는 중국사회와 중국인의 의식과 행동의 근원이 되는 가장 중요한 인식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일상의 행동, 태도, 양식은 여기에 뿌리를 두고 파생되었다 할 정도로 그 근원적 의의는 깊다.
단체에 숨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의식, 공사불분(公私不分)의 태도, 전통적인 등급사회로서의 관본위주의 등 오늘의 중국 관료사회의 부패와 부조리의 근원적 연결고리를 제시하고 있다. 이후 사랑 없는 결혼제도의 배경- 단체인 가정, 가정의 주체인 아버지의 선택이면 당사자와는 무관한 혼인제도 - 과 이혼문제, 우정과 관련한 의협심과 의리의 논의와 현재적 해석에서의 의미까지 중국인의 의식개혁을 위한 저자의 주장과 논리는 거침없이 전개된다.
끝으로 한담, 우리말로는 뒷담화라 할 수 있는 등지고 하는 타인에 대한 이야기가 가지는 해학과 풍자는 오늘 그들 사회에서 얼마나 혐오스럽게 횡행하는지 짐작케 한다. 반세기에 걸친 우리한국사회의 본격적인 서구화와 자본주의화, 민주주의를 위한 고통스런 학습과 체화의 시기가 오늘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중텐의 이 저술의 의미는 다분히 그네들을 향한 자성과 변화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탁월한 계몽서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여전히 구태를 밟고 있는 변화 없이 고집스럽도록 어리석은 우리자신들을 목격 할 수 있다.
저자가 말미에 이 저술을 한담의 격(대중적 문체로의 접근)으로 집필한 의도를 밝히고 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에게 가까이하고, 많은 이야기와 지혜와 지식을 제공하려한 노력이 전체에 묻어난다. 밑줄 그어놓은 문장들과 아름다운 시구(詩句), 역사의 일화, 『홍루몽』을 마치 다 읽어 본 듯 할 정도의 다양한 참고문헌 등은 두고 두고 들춰 볼 만큼 유익한 언어들로 무성하다. 이중텐은 그야말로 멋진 수다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