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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크 독트린 - 자본주의 재앙의 도래
나오미 클라인 지음, 김소희 옮김 / 살림Biz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민주주의를 뿌리내리고 국민경제의 기틀을 마련하려는 그러나 경제력이 취약한 세계의 어떤 국가에나 잔인성과 탐욕으로 가득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국부를 착취한 밀턴 프리드먼과 그 추종자들, ‘시카고 경제학파’, 일명 ‘시카고 보이즈(Chicago Boys)’가 발을 디디지 않은 곳이 없다.
“Shock Doctrine"은 국가(민)경제 및 사회에 대한 충격을 인체에 대한 생물학적 충격과 대비하여 생체적 비유로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의 그 공포와 혹독함, 잔인성,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해부하고 있다.
이 저술은 크게 세부분으로 구분하여 이해 할 수 있다. 그 첫째는 美중앙정보국(CIA)의 사주를 받고 진행된 캐나다 맥길大의 인간에 대한 전기충격 실험과 그 의미, 고문방법으로서의 활용, 그리고 시카고大의 밀턴프리드먼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근본주의자들의 재난자본주의 본질을 성찰한다. 둘째로는, 이들이 어떻게 세계경제를 식민화하였는지, 바로 ‘쇼크(Shock)요법’을 어떻게 전개하였는지,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획득하였고, 그들이 획책한 대상 국가들의 참상은 어떠하였는지를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끝으로, 재난자본주의의 현상과 이 충격의 무덤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해 새로운 경제도약을 향해 나아가는, 즉 인간적 삶을 추구해 가는 남미국가들을 중심으로 인류 미래의 가치체계를 조심스럽게 진단하고 있다.
인간의 뇌를 백짓장처럼 만들고 새로운 기억을 주입시키면 완벽하게 새로운 인성을 심어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狂人, 맥길大 심리학교수‘이웬 카메론’의 인간 전기충격실험은 실로 그 탐욕스러움에 혀를 내두르게 한다. 지속적인 전기충격과 다량의 환각제, 화학물질을 투여하여 기억을 지워나가는 이 끔직한 인간개조 실험은 오늘날 CIA 고문기법의 핵심을 이룬다. 이 실험은 결국 인간성만을 황폐화시키고 정상인을 정신분열자로 둔갑시키는 역할 이외에는 어떠한 의학적 성과도 얻지 못한 잔인한 인체실험이었으며, 다만 고문기법으로서 환영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기충격 실험, 즉 충격(공격)을 가해 하얀 백지처럼 만들어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면 의도한바 대로 이상을 실현 할 수 있다는 망상을 경제이론에 그대로 이식한 자들이 바로 밀턴 프리드먼과 그 추종자들, 1970년 이래 오늘의 미국자본주의, 아니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외치는 ‘시카고 보이즈’다.
케인즈의 공공정책부양과 서민복지시스템을 포함하는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완전한 자유방임적 근본주의적 자본주의를 주창한 시카고 보이즈(Chicago Boys)가 미국정부와 자본가들의 이해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최초로 공격을 가한 국가는 남미의 칠레정권이었다. 오랫동안 서구자본에 침탈된 사업들을 공기업화하고 공공서비스를 강화하여 수탈로 신음하던 국민경제를 복원하려던 1970년의 칠레정권은 미국의 쿠데타지원으로 축출당하고, 시카고 보이즈로 구성된 정부가 구성되기에 이른다. 이 사악한 자본주의자들이 그들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물가와 세금을 올리고, 공기업을 민영화하여 헐값에 사들이고 전기, 상수도, 의료, 언론 등을 장악하여 민간경제를 주물럭대는 것이다. 이의 실현을 위해 이들은 우선‘쇼크요법’을 사용한다. 바로 국민과 국가를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하여 어떠한 판단도 할 수 없는 참담한 상황에 몰아넣는 것이다. 반대세력이나 이견을 가진 자들은 모두 감금과 고문으로 회유하고, 그렇지 않으면 살해하여 피가 낭자한 공포가 같이하는 세상으로 만들어 넣었다. 그리곤 그저 부패한 독재정부 또는 전제정권과 결탁하여 부를 주워 담는 것이다. 헐값에 팔아넘긴 공기업의 댓가는 부패한 정권이 가져가고, 거저 챙긴 막대한 부는 시카고 보이들, 미국자본의 넘치는 몫이었다. 대신 국민들의 대다수는 빈곤으로 추락하고 국가경제는 참혹할 정도로 피폐해지는 결과만 남는다. 이것이 바로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실체이다.
‘남미 원추지대’로 표현되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등 남미국가들이 한결같이 프리드먼의 시카고보이들로 구성된 미국의 사악한 자본주의에 의해 극단적 충격요법을 맞이했다. 바로 오랜 서구의 식민화로 신음하던 이들 국가들에 경제개발자금을 지원해준다는 명분하에 강요된 Shock Doctrine이었다. 상상을 넘어서는 막대한 부의 창출에 맛들인 미국 자본주의는 쇼크를 그칠 줄 몰랐다. 1990년 초의 몰락한 공산주의 국가 러시아의 옐친과 공모한 대대적인 공포정치와 민영화의 사례에서부터, 중국의 덩 샤오핑의 천안문사태로 이어진 폭력과 공포의 쇼크와 시장경제의 도입, 남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이라크 등의 쇼크요법과 파렴치한 착취, 자본수탈의 사례가 끝없이 이어진다. 여지없이 진행되는 자본주의의 무차별적 공격, 쇼크와 공포, 그리고 민영화, 자본 약탈, 남는 것은 국부를 착취당한 국민들의 빈곤심화와 황폐한 도시, 신음하는 농촌의 어두운 그늘만 있다. 그리곤 시카고 보이들과 사악한 미국자본은 떠나버렸다.
여기서도 드러나듯이 자유시장경제,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쇼크를 주고 반대세력을 숙청하는 프로그램이 전제가 되는 독재 내지 전제정권을 그 기초로 하고 있다.
그럼 우리 대한민국은 시카고보이즈의 이 잔인하고 혹독한 수탈을 피해갔을까? 1997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한국자본시장 공격은 외국인 투자 자본을 급속하게 한국에서 이탈하게 만들었다. 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환율통제가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외환위기의 국면에 이르렀다. 국가경제가 휘청거려 대외차관이 절실할 때 미국정부와 세계금융시장은 한국경제가 완전히 침몰 할 때까지 외면했다. 그리곤 때가 오자 - 충격으로 경제적 공포와 두려움으로 정부와 국민이 정신을 잃어버리자 - 시카고 보이들이 이끄는 IMF는 오만한 얼굴로 구제금융을 들고 나타났다. 역시 조건이 있었다. 바로 대기업 및 공기업, 금융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인력삭감), 그리곤 조속한 민영화조치(기업 매각), 정부예산의 긴축 즉, 공공정책 집행의 축소 등이 그것이다. 미국금융자본에 종속된 한국경제는 불가피한 것이었고 차기 대선후보자들까지 이 조건을 지키겠다는 각서를 제출하고서야 비로소 그 더러운 자금을 받을 수 있었다. 1910년 경술국치에 이은 20세기말의 또 한 차례의 국치일이었다.
이때 우리의 은행들과 D자동차를 비롯한 S자동차, 중공업 등 대기업들의 지분이 무더기로 실제시장가의 10%도 안 되는 가격에 그들의 손아귀로 넘어갔다. 시카고 보이즈의 이념으로 무장된 네오콘은 단기투기자본까지 동원하여 한국기업들을 유린하였다. 그들은 천문학적 이익을 가지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미국의 자본주의가 한국시장을 그들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시장으로 공격을 시작하고 있다. 다시 반복되는 환율의 통제 불능 사태, 금융쇼크(Shock)!, 다시 밀려오는 두려움에 안달하던 한국경제, 원-달러 통화스왑으로 달러 수혈, 공기업의 인원 감축시작, MBC방송을 시작으로 공기업 민영화의 목소리가 MB정부로부터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다. 그리곤 규제의 무차별적 해제, 즉 자유방임적 자유시장경제 바로 자본주의 근본주의의 전형인 프리드먼식 착취경제시스템으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45조원이나 소요된다는 4대강 유역 개발사업의 재원조달은 어디서 할 것인가? 가뜩이나 가벼워진 국민의 주머니, 세금으로 조달하겠다는 것인가? 누굴 위해서? ... 부자들을 위해서, 재벌을 위해서, 미국 자본주의자들을 위해서... 주시할 일이다! 답답하다...
이렇듯 미국 금융자본(IMF, 세계은행 포함)에 의존경향이 큰 국가는 예외 없이 시카고보이즈, 그리고 그들의 이념을 추종하는 자본가세력의 사냥감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세계화란 프리드먼식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의 모습을 하고 수탈과 폭력으로 점철되어있다.
이러한 '쇼크독트린(Shock Doctrine)'은 지향하는 목적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그 실체를 드러낸다. 9.11테러로 지칭되는 사건은 이 천박하고 폭력적인 미국의 자본주의자들에게 미소를 짓게 했다. 더 할 수 없는 매혹적인 부(富)창출의 아이디어를 안겨주었다. 바로 ‘재난(災難)자본주의’라는 브랜드를 공고하게 하여주는 아이템이 되었다. 정부의 간섭이 배제된 완전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프리드먼과 추종자, 체니, 럼스펠드, 조지 부시...는 국가안보력의 증강, 확충이라는 명분으로 정부의 안보, 군사기능을 민간화하기 시작했다. 제약, 무기, 보안시스템, 경비회사, 구호식품, 군대..., 재난은 곧 부를 창출하는 경제아이템이 되었다.
이라크에 대한 침공은 럼스펠드를 비롯한 이들 재난자본주의자들에 의해서 오랜 기간 계획된 자본수탈프로그램이었다. 원유를 비롯한 중동지역의 부를 착취하기 위한 정교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으며, 군사작전도 재건계획도 이미 산업이었다. 때려 부셔서 아무것도 없게 만들고 다시 세우고, 부숴버릴 때 돈 벌고, 다시 세우며 돈 버는 재난자본주의는 시카고보이즈의 일대 쾌거였다. 이라크의 국부는 침략자 미국의 것이었다. 이라크인들은 그네들의 재건사업에서조차 철저히 배제되었다. 이제 재난은 곧 경제부흥, 부의 증대하는 공식이 확고해졌다. 즉 소수의 부자는 더욱 엄청난 부자가 되었고, 대다수의 국민은 가난해지는 공식.
스리랑카를 휩쓴 쓰나미의 현장에서, 이스라엘이 보이는 팔레스타인과 인접국가에 대한 오만한 비타협 행위에서, 그리고 태풍 카트리나가 쓸고 간 미 서부지역 뉴올리언즈의 황폐화된 현장에서 ‘재난자본주의’의 그 더럽고 사악한 탐욕에 찬 자본주의를 본다.
이 걸작중의 걸작인 ‘나오미 클라인’의 자본주의 모순과 실태에 대한 적나라한 통찰은 확고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시장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적 사회주의”로 다시금 30년간의 독재와 전제정권하의 자유주의시장경제로 신음하던 빈곤을 털어내고 재건하려는 남미원추지대 국가들의 새로운 모색에 격려를 보내고 있다.
어려운 재정은 서로 인접한 그네들의 원추지대국가들이 블록화하여 상호 지원하는 체제로 발전 성숙시키고 있다. 무역은 현찰이 오가는 거래가 아닌 바터시스템을 확대하고 있으며, 외국기업에 침탈된 공공 서비스 를 위한 기업은 다시 공기업으로 전환하고 있는 등 공적투자의 확대와 국민의 자유로운 시장경제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더구나 IMF나 세계은행의 자금지원을 거절하고 미국금융자본과의 거래를 최소화하였을 뿐 아니라 자유무역협정을 파기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이들 국가가 새로운 행보로 정한 제3의 길이 인류의 미래를 위한 희망의 빛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실체에 혹독한 시련을 겪은 남미국가들, 러시아,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그들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더구나 이태리, 프랑스 등 영국을 제외한 유럽 국가들의 대다수는 신사회주의 노선을 걷고 있으며, 스웨덴 등 북유럽국가들은 복지사회국가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유독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란 미국의 행보에 보조를 맞추려는 유일한 국가가 되려는 한국을 이해할 수가 없다. 여전히 미국금융시장에 발목이 붙들려 있고, 미 달러에 직접 연동하는 환율체제를 고집하는 한국정부, 가장 심각한 모순을 지니는 근본주의적 자본주의 시스템을 모방하는 한국경제가 더욱 안타깝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부조리, 그리고 지난 30여 년간의 극악한 자본주의의 폐해를 이처럼 명쾌하고 지적(知的)으로 해부한 저술의 출현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21세기 걸작중의 최고의 저작이다. 해박함과 열정, 지성에 그저 탄성만을 질러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