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 당대총서 20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이광근 옮김 / 당대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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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우리가 삶의 기반으로 하고 있는 이 세계 체제의 본질에 대해 이처럼 명쾌한 분석은 일찍이 없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16세기 이래 지속되어 온 자본주의 세계경제 500년간의 역사사회학적 고찰로서 ‘세계체제분석’이란 사회현상의 개별적 독창성을 강조하는 역사학과 같은 개별기술적 분석양식과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법칙정립적 양식의 경계들 자체를 철폐하고‘단일학문적(unidisciplinary)’연구로서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사회분석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이 저술은 세계를 인식하는 학문으로서 과학과 인문학의 분기(分岐)와 다시금 인문학의 과거 세계에 대한 인식으로서의 역사학과 현재에 대한 정보의 필요성으로서의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의 분화를 근대성(modernity)이 지닌 시장, 국가, 시민사회의 분화와 연결하여 설명하고, 이어 유럽 등 서구의 자기중심적 시선에 따라 자신들과 다른, 즉 근대적인 것으로 생각되지 않은 세계의 연구로서 인류학과, 나머지 '고도문명(high civilization)'이라고 불리는 중국, 아랍, 페르시아, 인도 등의 광대한 지역의 연구로서 오리엔탈리즘의 분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1945년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제3세계의 지정학적 자립의 선포, 미국의 세계체제 헤게모니 패권의 장악, 세계경제와 민주화 경향의 조합이라는 세계변동은 근대와 비근대의 개념 와해를 가져왔고, 이에따라 종전의 분류형식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론으로서 대두한 잘 알려진 ‘발전(development)’론이라는 지적대안의 등장과 이들의 지식구조 기저에 자리잡고 있던 인식론의 의문으로서 핵심부-주변부 개념, 종속이론, 아시아적 생산양식, 봉건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논쟁, 전체사(Total history)논쟁을 아우르는 세계체제분석으로의 진행과정을 명료하게 이해시켜주고 있다.

특히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는 소체제(minisystem), 세계경제(world-economies)와 세계제국(world-empires)을 포함하는 세계체제를 중심으로 핵심부적 생산과정과 주변부적 생산과정이라는 불평등교환의 현상에서부터 끝없는 자본의 축적이라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속성, 그리고 근대세계체제의 정체성으로서의 보편주의, 민족국가등 국가의 존립기반과 구성요소로서 자본가와 노동자, 핵심과 주변, 반주변국의 현상들, 지문화(geo-culture)를 구성하는 이데올로기의 출현, 반체제운동 및 사회과학의 역할을 통해 작금의 세계체제 위기를 통찰해내는 이 저술의 일관되고 명쾌한 분석은 “내적 모순이 심각할 정도로 악화되고” 혼돈(chaos)에 휩싸인 오늘의 자본주의체제를 승계할 새로운 체제건설을 향한 탁월한 미래학이 되기도 한다.

자본주의 세계경제로서의 근대 세계체제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우선‘끝없는 자본의 축적’이라는 구조적 메커니즘을 그 첫째로 하고 있으며, 이 메커니즘의 성공적 행동, 즉 생산을 통한 잉여가치의 더 많은 축적을 위해 언제나 독점을 선호하는 자본가들의 행태를 조명한다. 여기에 더해 이러한 독점적 지위를 확보, 유지키 위해 국가장치를 통한 지원으로서 특허권제도, 보호주의정책(보조금,세금감면등), 규제(중소기업은 치명적)를 이용하여 독과점을 심화시켜주는 자기파멸적 체제를 해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및 유럽 등 소위 선진국들로 형성된 핵심부적 생산지와 그 밖의 주변부적 생산지의 잉여의 왜곡된 흐름을 설명하는데 그대로 유효하게 적용된다. 즉 준(準)독점에 의해 통제되는 핵심부적 생산과정이 경쟁이 심한 생산과정인 주변부로부터 끊임없이 잉여가치를 가져가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한국이나 브라질, 인도와 같은 핵심부와 주변부의 제품생산이 거의 동등한 비율로 섞여있는‘반(半)주변국’의 위치에 대한 성찰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는데 유용한 시사를 던져준다.

한편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일반규칙들에 우선순위가 주어지는 것”이라는 ‘보편주의’의 대표로서 능력주의, 만인의 평등과 같은 공적담론이 지닌 체제유지 수단으로서의 허위를 통찰하고, 핵심부-주변부의 기축적 분업(axial division of labour) 만큼이나 보편주의와 반보편주의의 대립적 양극현상이 이 체제의 근본적인 것임을 이해케 한다. 또한 국가의 역할을 통한 자본의 축적과정이 지닌 비중립적 행태와 외형적으로는 ‘자유방임’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준독점이나 값싼 노동자의 유입을 통한 이윤의 보전, 생산자가 부담하여야 할 하부구조(도로, 항만, 교량, 공항 등) 비용의 비생산자에로의 이전과 같은 잉여의 왜곡된 흐름을 지적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잉여가치를 둘러싼 항구적인 갈등, 즉 ‘계급투쟁’을 낳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이러한 배경을 이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이데올로기를 탄생시킨 프랑스 혁명초기의 보수, 자유, 급진의 역사적 성향과 경과를 통해 설명한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지닌 시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못마땅해 하고, 위계적 구조를 신뢰하며, 민주주의를 경멸하고, 교육의 대상 확대도 거부하며, 교육은 엘리트 간부의 육성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보수주의에 대항하여 “재주만 있으면 어떠한 경력이든 추구할 수 있다.”는 기회의 평등과 능력주의를 주장하지만 “대신 군중에 대해서는 배워먹지 못한, 비합리적 존재들이란 인식하에 주도권은 전문가 집단만이 할 수 있다.”는 중도주의를 표방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갈등으로 19세기의 이데올로기를 설명한다.

그러나 비록 실패하였지만 1848년부터 유럽 국가들의 연쇄적인 급진주의의 혁명은 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보수주의자들 및 자유주의자들에게 자유, 평등, 형제애라는 구호를 공공의 영역에 까지 적용시키는 결과를 야기하였으며, 바로 위와 같은 근대세계체제의 작동 메커니즘으로서 사회과학(경제,정치,사회학)이 1968년 혁명까지는 자신들의 도덕적 정당성을 위한 지식 토대를 공급하는 역할이 되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결국 1968년 이후의 반동은 기득권 세력이 질서를 회복하고 새로이 등장하기 시작한 이윤압박으로 인한 당면한 어려움을 남반부를 통해 부분적으로 해소하고, 발전주의를 폐기하는 대신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테마를 들고 나오게 한 역사적 전환점으로서의 의의를 주목하고 있다.

세계경제체제의 남반부를 통한 이윤압박의 해소를 위한 시도는 분명 제로섬 게임에 불과한 잉여가치를 통한 자본축적에 필요한 수요의 한계에 봉착했으며, 궁극적으로 경쟁판매자의 존재여부와 유효수요의 수준으로 인한 가격인상의 딜레마, 갈수록 증가하는 생산비용의 해소를 위한 시골인구의 상실, 폐기물 매립지와 자연자원의 고갈이라는 한계를 극복키 어려운 극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제 근대자본주의체제는 수명을 다하고 있으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과 마주치고 있고, 체제위기라 부를 만한 상황에 도달해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체제들은 저마다 수명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생산에서의 이윤압박을 피해 금융영역으로 이동을 추구하였지만 이는 혼돈을 증가시키는 역할만 하였을 뿐, 세계경제는 더욱 불안하고 환율과 고용의 오르내림에 종속되어버렸다. 본질적 분분이라는 모든 구조와 과정들이 격렬하게 요동하는 이 혼돈의 시기는 새로운 체제의 이동 내내 지속될 것이다. 
 

21세기 지금에 이르는 인류사회는“상대적으로 긴 시기에 걸쳐 높은 수준의 폭력이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이러한 분출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하”는 현실에 처해있다. 새로운 체제를 건설하는 참가자들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인가? 우리는 이러한 체제건설에 참여자가 될 수 있을까? 그 체제는 어떠한 형태일 것인가? 다만 저자인 ‘월러스틴’은 자유(liberty)와 평등(equality), 어디에 무게 중심을 둘 것인가의 문제로서 현존하는 우리의 세계체제를 계승할 다음 체제로서 “다수의 자유와 소수의 자유를 모두 확장하고자 하는 이들과 다수의 자유나 소수의 자유 둘 중 하나를 더 선호하는 것처럼 위장한 채 비자유 체제를 추구하는 이들 사이에서 그어질 것”이라고 예견하는데 그치고 있다. 아마도 그가 그리는 새로운 체제는 결국 다수가 스스로의 자유를 깨닫고 소수의 자유를 신장시키기 위해 다수가 취해야하는 필수적인 입장을 강조하는 것일 게다. 비록 200여 쪽에 불과한 저술이지만, 책 전체에 밑줄을 그어야 할 정도로 지금의 세계체제를 형성하는 탁월한 논리들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 우리와 우리사회를 인식하는 데 명쾌한 구조적 지식토대를 제공한다. 16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어 지문화(geo-culture)를 지배해 온 근대자본주의체제는 붕괴하고 있다. 여전히 미국식 신자유에 기초한 시장자본주의에 집착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지배층들은 보다 거시적인 안목의 세계질서를 이해하고 나아가 도래할 신질서를 창조하는데 중추적 역할자로 참여할 수 있는 사상적 전환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하겠다. 오늘을 형성하는 근대세계체제를 이해하는데 이보다 명쾌하고 지적인 저술은 다시는 출현키 어려울 것이다. 현재의 삶을 사는 모든 이들이 필독하여야 할 20세기 최고의 저술이라 함에 주저치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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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기 - 그리스 신들의 계보
헤시오도스 지음, 김원익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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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8세기경 그리스 음유시인 ‘헤시오도스’가 쓴 『Theogonia ; 神統記』와 『Era kai Hemerai ; 노동과 나날』을 번역한 저술이다. 「신통기」라는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는 제목을 선명하게 표현한다면 ‘그리스 신들의 가계도’라 할 수 있으며, 「노동과 나날」에서는 노동의 정의와 당시대의 정령숭배 및 터부, 자연과 인간 삶의 조화를 엿 볼 수 있다 하겠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들의 관계가 우리에게는 낯설고 그 의미의 전달이 쉬이 이루어지 않아 그네들의 문학, 예술, 철학 등의 고전을 읽다보면 곤혹감을 떨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차에 이 저작을 알게 된 것은 어쩜 내게는 광명이라 할 수 있기조차 하다. 대체 ‘제우스’라는 신은 어떻게 생긴 것이지? 그리고 그 많은 그리스 신들은 누구의 자식이란 말인가? 그리고 오이디푸스, 아킬레스, 휘페리온 하는 잘 알려진 영웅들은 누구의 자손이고, 신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정작 이들 신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이 끊이지를 않았으나, 이 저술은 이러한 의문들을 해소시켜준다.

“태초에는 카오스(혼돈)가 있고 그 다음에는 넓은 젖가슴을 지닌 가이아(대지)가 있었는데...”라고 세상의 생성을 말하는 이 저술의 시작부분은 바로 그리스의 신들이란 곧 우주생성의 각 요소임을 암시한다. 그 다음 타르타로스(지하세계)와 에로스가 차례로 생겨났다. 그러나 헤시오도스가 말하는 신들의 출생과 가계가 호메로스나 오비디우스와 달리 설명되는 부분들이 있는데, 바로 우주생성의 4요소로 태초에 등장하는 에로스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인 에로스가 그러하며, 또한 우라노스의 남근으로부터 태어났다는 아프로디테의 출생에 대한 다양한 충돌이 그것이다.
이처럼 신통기는 그리스 신들의 가계에 걸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지만, 서사의 커다란 줄기는 크로노스와 레아 사이에서 출생한 제우스가 폭군인 아버지와 적대적인 신들을 굴복시키고 우주의 전지전능한 신이 되었는가에 대한 권력의 쟁투와 그 속에 사리고 있는 정의로움의 승리에 대한 정신을 담고 있다 하겠다.

한편 이들 신들의 권력싸움에서 묘사되는 “온 땅이 지글지글 끓어올랐고 황량한 바다와 함께 오케아노스의 물결도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中略 ~ 먼지구름이 위로 솟아오르게 했으며...” 하는 부분에서 구약을 떠올리게 한다. 더구나 게토와 포르퀴스의 막내아들인 뱀의 출생과 “뱀은 대지의 어둠 속 깊은 곳, 광활한 대지의 끝에서 황금사과들을 지키고 있다.”는 내용이나, 노동과 나날에서 최초의 인간여성인 ‘판도라’의 창조도 제우스의 명령으로 헤파이스토스가 흙으로 빚어내는 모습은 서구신앙의 모태를 보는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최근 우리사회에 법과 판결의 공정성 시비가 분분한 가운데 정의의 여신 ‘디케’가 자주 거론되는데, 바로 제우스와 몸에 광채가 나는 여신 테미스의 여식임을 알게 되고, 에우노미아(질서), 에이레네(평화)와 자매라는 가족관계까지 터득케 된다.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트로이 전쟁의 기화가 되는 사건을 목격하게도 되는데, 그 유명한 트로이의 왕자인 ‘파리스의 심판’ 내용은 헤라와 아프로디테, 아테나 세 명의 여신이 서로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는 갈등이었다니,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기(猜忌)의 역사는 실로 꽤나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이 저작의 두 번째 저술인 「노동과 나날」은 작자인 헤시오도스가 자신의 형제인 페르세스와의 재산으로 인한 재판을 화두로 하여, 선(善)으로서의 성실한 노동의 가치와 제우스신의 권능을 빌어 인간에게 모든 것 중 최고의 선은 ‘정의(正義)’ 라는 인간의 윤리와 정의로운 세계의 질서를 당시 노동의 근간인 농부의 지침서 형식을 빌려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헤시오도스의 지독한 여성혐오주의자로서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아마 최초의 여성인 ‘판도라’ 그자체가 악(惡)이라는 의미에서 더욱 그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21세기 식 추측도 해본다. 또한 여기서 헤시오도스는 인류의 다섯 시대를 설명하고 있는데, ‘영웅의 종족’으로 반신(半神)인 인류의 네 번째 종족에서 오이디푸스나 아킬레스를 발견하게 된다. 헬레나를 구하기 위한 트로이 전쟁에서 이들 영웅종족이 모두 죽게 됨으로써 오늘의 인류인 다섯 번째 종족인 철의 종족이 창조되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정의는 주먹에 있고 배려하는 마음은 없으며, 악한 자가 덕 있는 자를 헤치며 위증을 일삼는” 종족, 그래서 질투의 여신이 음험하고 증오심 가득한 시선으로 따라다니며 감시한다는 것은 이미 인간사회의 타락과 부조리가 오늘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스 신들의 계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은 이 헤시오도스의 신통기가 최초라 한다. 오디세우스나 일리아드, 그리스신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등을 통해 접했던 그리스 신들의 이해는 물론 철학과 자연문학의 효시로서의 인문학적 의미를 접하는 의미 있는 독서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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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 - 천 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 키워드 한국문화 1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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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歲寒圖)라는 書畵 한 첩이 지니는 역사, 학문, 예술, 그리고 그 정신에 대한 품격 높은 인문서라 할 수 있다. 텅 빈 초라한 집 한 채와 소나무 몇 그루가 을씨년스럽게 서있는 황량한 이 그림이 무어 그리 대단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이 책을 잡게 하였는지 모르겠다. 19세기 조선 최고의 학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리할까?

이 저작은 한 인물의 학문적 성장과 성취를 향한 열정, 시대적 배경부터 찬찬히 소개하고, 정치사적 혼란과 정쟁으로 인한 아버지 김노경의 고금도 유배 등 안동김씨 세력의 터무니없는 무고로 완당(阮堂)선생 일가의 부침 및 이재 권돈인과 황산 김유근과의 석교(石交)의 일화, 그리고 세한도가 그려지게 된 계기와 배경에 대한 지식, 서화의 심도 있는 감상과 이해, 그리고 오늘에 전해져 오기까지의 여정을 품격 높은 고증과 해석, 오랜 자료의 수집과 학문적 노력의 결정으로 담아내고 있다.

여전히 공허하고 피상적인 도학(道學; 유교 도덕에 관한 학문)의 공리공론에 사로잡혀 현실, 즉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지식이 전무(全無)한 당시 조선의 풍조를 벗어나 실증적인 연구와 학술에 대한 관심, 그리고 분리된 학문과 예술의 일치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는 學藝一致와 병세의식(幷世意識) 등 북학(北學)이 도래하던 19세기의 정신사를 기초로 한 당시대의 학문적 흐름이 촘촘히 설명된다. 이는 연행(燕行)과 北學이란 단어가 당시를 대표하듯이 청의 뛰어난 문인들에 추사의 학문적 동경이 있었음은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는 추사가 청의 문사들과의 교우와 앞선 서책을 통한 강력한 정보력을 배경으로 19세기 조선최고의 학자로 발돋움 할 수 있었음을 설명한다. 그의 연행에서 어렵게 만난 담계(覃溪) 옹방강 선생으로부터의 배움과 학문의 최고 경지를 향한 문경(門徑;학문의 궁극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최적 루트)을 찾아 자기고유의 정신과 학문을 정립해 내려는 노력의 과정들을 조명하는 저자 박철상에서 지고한 노고의 흔적을 발견하게도 된다.
또한 고독하고 참담한 제주도 유배지에서 아내를 여의고 그 슬픔을 표현한 완당선생의 시(詩)는 애틋한 사랑과 서러움, 미안함과 원망이 담겨있어 200여년이 훌쩍 지난 오늘에도 그의 지고지순한 성품이 안타깝게 전해져 오는 듯하다.
“어떻게든 월하노인月下老人 저승 법정 세워놓고 / 내세에는 남편 아내 처지 바꿔 태어난 뒤 / 나 죽고 천리 밖에 그대 혼자 남게 하여 / 나의 이 슬픈 심정 그대도 알게 하리.”

이렇듯 천리만리 떨어진 유배지에 그 많던 친교는 모두 떠나버리고 안부조차 찾는 이 없는 추사가 유배가기 전이나 유배 간 뒤나 언제나 똑같이 자신을 대하고 있는 우선(蕅船)이상적의 행동을 보면서 문득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듯이, 사람도 어려운 지경을 만나야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는 법이다.”라는 『논어』「자한」편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라는 구절을 떠 올린 것은 결코 우연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물의 형상을 묘사하기보다는 마음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보이지 않는 자신의 인품과 학식, 감정과 사상을 황량한 겨울 속에 산수화로 그려낸 세한도는 그대로 문인화의 정수가 된다.
누군가의 아류가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정신으로 승화시키고 스스로 터득한 초묵법(焦墨法;극도로 진한 먹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까칠한 종잇조각을 잇대어 그 위에 그린 그림과 제사(題辭)는 조선의 정신과 문경의 정점에 있는 작품으로서 조선 문인화의 전범(典範)으로 추앙된다. 정간(井間)을 쳤으나 칸을 벗어나고 줄이 맞지 않게 쓴 글씨 하나에도 유배생활로 지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나게 하려한 치밀함이고 텅 빈 상상속의 초라한 집도 그의 의식세계를 담고 있으며, 종잇조각을 잇대어 붙인 것 역시 당나라 안진경의 <걸미첩 乞米帖>을 연상시키는 궁핍함의 표현 장치라는 해설에 그만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고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지 못하던 우매한 정신세계를 들킨 것 같아 움찔하게 된다. 특히 “몸통은 썩고 가지 끝에 몇 개만 남아있는 소나무의 몰골, 끝에 붙어있는 솔잎의 애처로움이 절개를 지킨 이상적의 모습이자 유배생활에 지친 자신의 몰골을 담은 중의적 표현”이라는 해설과, 사마천의 『사기』中 「정세가 鄭世家」, 「급정열전 汲鄭列傳」편을 알아야 비로소 제사(題辭)를 이해하게 되는 것은 무지 속에서 햇빛을 보는 것 같은 기쁨을 선사해주기도 한다.

또한 장서인(藏書印)에 대한 독보적 전문가인 저자의 압봉인(押縫印), 한 장(閑章) 등의 인장에 대한 설명은 물론 세한도의 인장 각각이 지니는 작품 속의 의미와 인주(印朱)의 빛깔이 세한도의 꽃으로 피어나는 대목은 그야말로 탁견(卓見)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이상적을 통해 청나라 문사들이 완당의 세한도를 보고 제영(題詠)한 시들과 오랜 세월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전되다가 일본인이 가져간 세한도를 어렵게 다시 찾아와 장황(裝潢;표구와 같이 서화를 여러 가지 형태로 꾸미는 것)하여 오늘의 우리들에게 우리의 정신을 음미할 수 있게 된 험난한 여정을 쫓아 볼 수 있는 여유가 된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세한도 한 첩의 감상과 이해를 위해 그 관련된 인물들, 서책, 제영들이 읽기에 곁들여져 시각적 지원을 하게끔 편집된 이 저작은 그야말로 품격 높은 하나의 우리정신이자 보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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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내 인생
주세페 쿨리키아 지음, 이현경 옮김 / 낭기열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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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 우리사회 청년들의 초상을 보는듯하여 가슴이 시큰거린다. 자동차회사 노동자로 노예같은 빠듯한 삶을 살아 온 아버지는 아들‘발테르’에게 출세라는 말을 담는다. 시도하면 계층을 뛰어넘을 것으로 생각하는 그 무지함과 우매함이란 바로 이 땅의 사람들만큼이나 안타깝다.
타락한 세상은 회복 불능의 상태에 이르러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보고 사는 것일까?하는 것은 주인공이 부딪는 사회의 다양한 부문에서 묘사된다.

군(軍)신체검사의 형식적 행위, 공익요원의 배치에 대한 행정의 늦장대응, 정부기관의 부조리한 구태와 자기입신만을 지향하는 속물들, 입학한 대학의 교수진과 학생들의 기만적인 위선의 행태, 매스컴과 광고의 소비지상의 과시적 행태의 끊임없는 부추김, 약자와 소위계층에 질시를 보내는 만연된 이기적 자본주의에 찌든 인간들, 부자의 무분별한 허영과 사치 등등 발테르가 겪는 세상에는 위안과 평온이 존재치 않는다. 1980년대의 이탈리아와 21세기 한국사회의 닮은꼴을 보게 된다.
이러한 세상에 냉소를 보내는 주인공은 결코 인간의“삶에 맞지 않게 만들어진 어떤 메커니즘에 떠밀려 공허감에 짓눌린 채로” 노동의 세계라 불리는 곳에서 “미래의 상어들과 한 책상에 앉는”것에는 눈곱만큼도 흥미를 갖지 못한다. 아니 인간의 자유의지를 구속시키는 이 후기산업사회의 타락에 참여 할 의사는 없다.

진정한 인간들과 흥미로운 무엇인가를 공부하려고 찾은 대학은 첫 번째 화재가 옷과 액세서리에 관한 이야기이고, 두 번째는 요트에 관한 이야기, 누구 옷장에 옷이 더 많은 지를 내기하는 고삐 풀린 경쟁심과 과시의 현장일 뿐이다. 성공과 출세라는 자본주의 질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떠나 찾아간 공익요원이 기숙할 수 있는 무료숙소는 “전등도 악취의 공격을 받은 듯”모든 것이 죽어있다.
“화장실로 가서 문을 열었다. 변기에는 뚜껑이 없었고, 똥으로 막혀있었다. 두 번째 칸을 열었다. 변기에는 뚜껑이 없었고, 똥으로 막혀있었다. 세 번째 칸을 열었다. 변기에는 뚜껑이 없었고,....”

“선거일이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사회는 항상 소수 기득권자들의 놀음에 불과하고, 중산층들은 어쭙잖은 재물을 놓칠까 전전긍긍한다. 돈이라는 신이 모든 전선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고, 텔레비전에서는 “멋진 자동차, 통장, 최신 유행의 의상, 간단히 말해 풍요로운 삶!”이란 헛소리만을 떠들어 댄다. 그리곤 “중요한 것은 카리스마, 매력, 최고의 외모, 성공에 대한 욕심”이라고 추켜세우며, 구인광고는 MBA이상 우대라는 조건을 달곤 세칭 일류대 출신, 초특급, 초일류 전문가만을 찾는다. 방문판매직 외에는 ‘발테르’가 찾아 갈 곳이 없다.
이제 기다리는 것은 “노동의 세계라 불리는 그 뒷간 같은 곳으로 튕겨져 나가, 조만간 겨우 먹고 살면서 자동차나 식기세척기 할부금을 빠듯하게 낼 수 있을 만큼의 월급에 자신을 파는”삶 뿐이다. 뼈 빠지게 일해 버는 몇 푼 안 되는 돈은 자신과 같은 노예들이 만드는 제품을 사는 데 다 써버리는, 그래서 “다시는 내게 되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를 무엇인가를 소모하곤”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참담한 현실만이 남아있다.

“절망에 빠진 낙오자가 되기 위해 태어났는지도 모른다”는 이 시니컬한 주인공, ‘발테르’의 얼굴은『시계태엽 오렌지』에 나오는 것처럼 비틀어져 있는‘알렉스’의 모습과 흡사하다. 내적인 공허를 외적인 수단인 소비로 고쳐질 수 있다고 거짓 약속을 하고, 필요가 없음에도 인식하지 못하고 욕망하는 조작된 욕구에 대체된 취약한 정서는 자기혐오를 보상하는 자기기만과 무자각의 불행으로 내 몰고 있다. 갈수록 양산되기만 하는 청년 실업의 증가와 이젠 극한적으로 벌어져만 가는 부의 편중, 여전히 성장과 성공만 외치는 무뇌한의 정권으로 우리의 자식들을 바로 쳐다볼 자긍심을 잃어만 간다. 눈부신 성공 같은 것이 자신에 대한 신뢰와 태연자약함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할 정도의 내적 동기로 충만한 열린 정신의 젊은이들이 투명하고 품위 있으며 공정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자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단순하고 직설적이며 조악하고 거칠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진중한 의지를 선사하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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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천사 1 - 판타스틱 픽션 블루 BLUE 1-1 추락천사 1
로렌 케이트 지음, 홍성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음울한 고딕의 분위기가 사랑을 더욱 애절하게 만든다.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순간 재가 되어버리는 비련의 운명. 더구나 한 사람만이 이를 알고 있다면 그 안타까움과 절망적인 고통을 무어라 할 수 있을까. 작품 속‘루신다(루스)’처럼 꿈속을 헤매는 것 같은 황홀함과 부드러운 촉감, 달콤한 사랑의 밀어가 귀가에 나즈막이 느껴지는 듯한, 진정 환상적 러브 스토리, 아니 그 이상으로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남자친구의 죽음으로 소드앤크로스(Sword and Cross)라는 감화원(reform school)으로 전학을 가게 된 17살 소녀, ‘루신다 프라이스’. 그곳에서 처음 보게 된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매혹적인 남자, 다니엘에 빼앗긴 마음으로 온통 그의 생각으로 전전하고, 그 주체할 수 없는 환상적인 전율과 그리움의 애틋함이 떨리도록 전달된다.  

그러나 이처럼 사랑하는 연인에게 왠지 알 수 없는 저주가 감도는 듯한 분위기가 한 축을 이루면서, 재활학교인 소드앤크로스의 루스 주변 인물들의 예사롭지 않은 등장이 또 하나의 긴장을 담당한다. 자신감 넘치는‘아리앤느’, 학교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펜’, 구내식당에서의 악의적인 도발로 적대감을 보이는‘몰리’, 빼어난 미남으로 루스의 사랑을 요구하는‘캠’, 그리고 미스테리한 선생들, ‘콜’, ‘소피아’...그래서 학교의 음침한 분위기는 더욱 신비롭고 기이하며 매혹적인 내음을 발산한다.
루스를 따라다니는 구름같은 검은 그림자가 하늘을 드리우고, 뜬금없는 그림자인형극을 통해 “아흐레 낮과 밤동안... 사탄과 그의 천사들은 천국에서 아래로, 끝없이 추락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피아 선생의 암시는 이들의 앞을 미궁으로 이끈다.

집요한 사랑을 갈구하는 캠과 사랑하지만 외면하는 다니엘 사이에서 갈등하는 루스의 애처로움 속에서 그녀가 위험에 휩쓸 때 마다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다니엘의 등장은 진부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결속을 기대하는 독자들의 마음을 고조시킨다. 다니엘의 비밀 장소인 호수가와 두 연인의 거칠어진 호흡이 들리는 듯한 사랑의 유영,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던 다니엘의 포옹에서 “그녀는 더 많은 걸 바랐다. 더 뜨겁고 더 떨리기를 바랐다. 다니엘에게서 더 많은 걸 원했다. 똑같지는 않았지만 마치...꿈속에서처럼 황홀했다. 땅에 발을 디디는 느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몸이 가벼웠다. 그의 손길이 온몸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는 그 달뜬 사랑의 감정은 여지없이 독자를 로맨틱한 불길에 휩싸이게 한다.

“맑은 담갈색 눈동자, 작지만 가지런한 치열, 짙은 눈썹, 풍성한 검은 머릿결”의 ‘루스’, 근육질의 팔로 루스의 허리를 감싸고, 달콤하고 열정적인 키스로 온몸을 관통하는 뜨거운 열망을 안기는 ‘다니엘’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한 고대 전쟁(ancient war)이후, 사랑하지만 견뎌내야만 하는 저주를 받고, 지상으로 추락’한 두 연인에겐 더 이상 다가 갈 수 없는 장벽이 있고, 추락이후로 천년 동안 계속 살아남지 못한‘루스’에 대한 다니엘의 긴장과 위기에 대한 직감은 더욱 애틋하기만 하다. 이들 추락한 천사들에게 다가오는 어둠과의 불가피한 일전, 가려졌던 등장인물들의 의외의 반전 속에 이들 연인의 운명은 또다시 죽음과 재회의 반복되는 고통일지, 자못 그 궁금증이 증폭되기만 한다.

깃털처럼 부드러운 감촉, 터질 것 같은 강렬한 관능과 애절한 사랑의 운명이 전편을 호수처럼 잔잔히 흐르는 로맨틱 판타지 문학작품의 결정판이라 하여야 할 것 같다. 이미 디즈니사에서 출간되지도 않은 이 작품의 4부작에 대한 영화 판권을 사들였을 정도이니 사람들이 기대하는 로망의 절대적 스토리를 담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금지된 사랑에 대한 간절함은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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