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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로부터의 자유 - 행복과 성공을 부르는 공간 창조법
브룩스 팔머 지음, 허수진 옮김 / 초록물고기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집안의 여기저기에 처박힌 그야말로 잡동사니, 아니 쓰레기 같은 것들을 치우는데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보자는 지극히 단순한 의도로 집어든 책이다. 그러나 이게 그리 단순한 잡동사니,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당혹스러움에 직면하게 된다. 잡동사니는 우리의 내면,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모습이 외부에 표출된 모습, 행동양식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 당돌한 주장에 다소의 저항감을 가지고, 솔직히 말하자면 어떤 방어심리를 가지고 읽어나갔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무슨 필요한 물건 좀 소유하고 있기로서니, 그리고 거의 완벽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사는 나 같은 부류에게는 결코 소용에 닿는 말은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말이다.
물론 오늘의 물질사회가 지니는 속성, 그 영역에서 생존하는 존재이기에 물질의 소유에 전혀 무감하다거나 완전한 무소유를 지향하는 성자가 아닌 한 물질의 적정한 소유와 필요를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물질 그 자체의 소유에 혈안이 된, 또한 물질을 팔아대기 위해 무진장 쏟아내는 무차별적이고 무분별한 광고의 환상과 거짓에 기만당하는 정도는 아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각종 물건들을 도처에 쌓아둬서 사용치 않고“쓰레기 사탑, 무용지물 타워, 엉망진창 신전, 뒤죽박죽 언덕을” 만들고 있거나 틈틈이 창고나 이 방 저 방에 처박아 둔 것도 아니니 나는 잡동사니와의 전쟁을 선포할 수준과는 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부심, 방어체계가 읽어 나갈수록 허물어진다. 내 마음 속 진정한 것을 들여다보게 하는데,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어떤 내면적 잡동사니가 혹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또한 그것이 지금 책상서랍, 기타 수납공간, 아니 책장, 장롱, 창고, 차 트렁크 등에서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된다. 그것들이 집안 곳곳, 방에서 거실에서 서재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빈 공간을 잠식하는데도 내 잠재된 의식의 어느 곳에서 합리화하고 변명하며 방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데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 저작은 물질의 소유를 지향하는 현대 자본주의적 행동양식의 통념이 얼마나 인간의 본성과 삶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지, 그래서 사람들을 피폐한 물질주의 환경에 희생시키고 있는지를, 그래서 그 물질들의 더미에 싸여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인생의 의미를 오직 물질 축적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의 헛되고 일시적일 밖에 없는 그 한시적 마취상태, 불행의 악순환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물건이 행복과 안정의 보증수표나 되는 양” 온통 물질에 취해있고 사방에서 경제, 정치, 문화적 논리를 들이대면서 부추긴다. 그런데 정작 그 물건들이 우리들의 인생에 어떤 가치를 부여해주기는 하는 것일까? 타인의 시선이 만든 늪에 빠져 허우적대며, 고작 과시하려하지만 자기 인생에 바쁜 인간들이 남의 과시에 눈 돌릴 틈은 없다. 그리고 그 물건의 소유가 과연 행복을 지속시켜 주는가하면 손에 넣는 순간, 아니 집에 들여놓는 순간 진부해지고 매력을 상실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딘가에 처박아둔다. 다시금 공허한 심사를 달래기 위해, 자신의 행복이라는 감정에 보상을 하기 위해 물질을 손에 넣지만 이 역시 해결되지 않는 욕망의 허기짐에 대한 확인 이상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왜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비싼 값을 치러서, 고급 브랜드라서, 소유 그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서, 추억과 사연, 체취가 묻어있는 것이라서, 이 정체모를 욕망의 기운 탓에 처분을 겁낸다. 더구나 아무리“하찮은 것이라도 소유 자체가 의미 있다”고, 그것이 미덕이라고 터무니없는 환상을 배워왔으니 사실 개인의 의식을 탓할 것도 못 된다. 그렇다고 계속 쌓아두고 처박아서 방치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이 잡동사니가 되고 만 것들을 처분하여야만 하는 것일까? 처분하지 않으면 무슨 문제가 되는 것일까? 버린다는 참 의미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어떤 뜻이 내재하는 것일까?
혹, 그 잡동사니에는 무언가 감추고 싶은 두렵고 나약한 감정이 내밀하게 포장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내 현재와 미래를 막아서는 어떤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자문하게 된다.
만일 그렇다면 내면을 허약하고 취약하게 만드는 뿌리들을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그 마음의 잡동사니들, 강박관념, 혼동, 분열, 서툰 언어, 불면증, 우유부단, 방향상실,,.이러한 것들. 바로 가혹한 목표치, 타인으로부터 배워 모방한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가치의 충족, 부정적인 언어들, 미래에 대한 불확실과 그 근심과 걱정들이 물 위에 떠 있는 부표처럼 계속해서 누르고 있어야 집어넣을 수 있는 그 엄청난 힘을 요구하듯이 끊임없이 물건의 형태로 탈출하게 하고 우리의 관심을 일시적으로 딴 데로 돌리게 하는 것 아닐까? 이것이 내면의 본질적 감정을 회피하고 진정의 가치를 찾지 못하게 하는 것일 게다. 인생에 조건을 다는 이러한 가치들이 잡동사니일 뿐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결코 미래에, 이상에, 남의 시선에 묶여 현재를 만끽하지 못하고 진실을 보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절대 행복해질 수 없”어 스스로를 위장하는 물건에 집착한다.
결국 치워버려야 할 잡동사니들, 진정 내 눈길을 애원하며, 주목을 끄는 물건이 아닌 것들, 지금의 내 인생에 결코 없으면 안 되는 그런 것이 아닌 것들은 잡동사니이다. 즉, “회피하고 싶은 내면적 감정이나 가치에서 우리의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며, 표면적 생활공간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잡동사니이니, 우리의 내면을 옥죄며, 인생에 장애를 걸쳐놓는 이것들을 치워버려야 하는 당위성은 정말 중대한 것이 된다. 그러니 깔끔하게 정리된 내 책상과 서재와 방과 창고가 잡동사니가 아닌 것이 아니며, 더구나 그곳에 도사리고 있는 무수한 과거의 유물들이 내가 은폐하고 있는 내면임을 마주하게 되면서 이제라도 내던져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치쌓인 책 더미들, 잠자고 있는 무수한 사진들, 사용하게 될 까닭이 없는 서류뭉치들, 옷가지들, 전자제품들... 이젠 치워야 할 것 같다. 그것들이 내게 무엇인지 알게 된 이상, 본질을 뒤덮고 있는 감정의 껍질을 벗겨내야 할 터이다. 더 이상 내게 벌을 줄 필요도, 고통에 담금질을 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니 말이다. 물건은 내가 아니다. 결코 나 일 수 없는, 신성한 바로 나의 현존을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지니는 의미를 만끽하기 위해서라도... 그럼에도 사실 막상 수집한 내 소유의 물건들을 처분하려면, 물질의 집착을 버리려면 심리적 저항이 일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정말 예상치 못한 막강한 방어기제가 작용하는 것을 느낀다. 그 실체를 진중하게 살펴보면 그 속에 해결되어야 할 내면의 잡동사니가 보인다. 그 내면의 잡동사니가 불러 모은 외면의 잡동사니는 한결 버리기 쉬워진다.
진정한 삶의 가치, 내면을 일깨워주는, 물질로부터, 소유로부터의 탈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는 고마운 저작이다. 내 마음의 잡동사니들이여 안녕, 물질들이여 안녕~ 소박하고 단순한 인생이 삶을 얼마나 명쾌하고 행복하게 해주는지 우리의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뒤바꿔주는 지혜가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