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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 문학의 기본개념 8 ㅣ 문학의 기본 개념 8
이강엽 지음 / 연세대학교출판부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신화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니 만들어질 수 없도록 지배질서가 용납하지 않는다. 집요한 보수적 확장, 새로움은 배척되고, 질서에 대한 개혁은 단지 도발적 파괴로만 인지되어 거부되고 말살된다. 그리곤 대중 연예의 싸구려 감상으로 몰아넣고 진짜의 인간 감정이 들어설 자리는 박탈되고 있다. 신화학자,‘켐벨’이 말했듯이 깨어있는 의식과 매혹적 신비와의 호해나 도덕적 질서의 강화, 개인이 중심을 잡고 현재와 미래의 삶을 위해 나아갈 수 있는 신화의 기능이 들어설 곳이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젠‘개천에서 용났다’와 같은 신화는 들리지 않는다. 신화가 만들어지지 않는 사회, 생성될 토양 자체를 차단하고 거부하는 사회는 커다란 불행과 재앙을 불러낼 것이다. 어쩌면 우주의 질서는 이 순간에도 경고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대체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 이야기이자 환상 같은‘신화’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것일까? “신화는 모름지기 가장 비현실적인 표면을 통해 가장 현실적인 이면을 드러내며, 갖가지 환상으로 어우러진 감각적 외피 속에 본질적인 사유를 감춰두고 있는 법”이라고 ‘프라이’는 말했다. 또한 “그 내용의 본질에 있어서 인간의 근원적인 물음에 답하는 참된 얘기이며 이야기의 구연 내지는 전승 방식에 있어서 특정 의례를 동반한 제의적 이야기이고, 효용적인 측면에서 신의 믿음은 물론 신의 힘에 의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실용적인 이야기”라고 하였다.
신화는 창조와 파괴, 그리고 파괴를 통한 창조의 순환이며, “생성-탄생-죽음의 보편 법칙”이 지배하는 우주질서에 대한 겸허한 경외이다. 더구나 인간이 도달하고자 하는 불가능에의 도전과 그 여정에서의 고난과 실패를 통해 유한자로서 인간이 갖는 한계를 되돌아보고 마침내 세상의 중심에 서며, 그것을 타인과 이웃, 세상에 확산시키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사회는 신화가 발붙일 곳이 없다. 봉쇄되고 차단되며 왜곡되고 처단되는 차별화와 구별짓기가 터 잡고 순리에 역행하는 퇴행의 길을 고수하는 환경이니 말이다. 이에 더해 설혹 성공의 중심에 설지라도 그 수확이 확산되지 않는 배타적 이기심만이 찬양받는 곳에서 신화를 기대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신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사회, 신화가 풍성하게 회자되는 곳, 인간의 감정이 좌절되지 않는 곳, 그런 곳에 대해 꿈을 꿀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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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욱 신화를 이해하고 말하고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들의 의무이고 책임이다. 이 책은 문학과 사상의 지평을 넓혀주기 위해 신화란 무엇인지, 신화는 어떻게 읽고 해석하여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구성과 내용은 어떤 것인지를 쉽고 친절하게 설명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와 우리사회가 사라져버린 신화적 공간을 재생하고 삶의 본질에 근접하는 힘을 조성하는 길을 안내한다.
신화를 크게 “창조신화, 시조신화, 영웅신화”로 삼분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창조신화는 홍수신화와 같은 재생신화와 함께 무언가가 처음 혹은 새로이 만들어지는 질서의 부여와 집단의 사유체계를 드러내는 장치로서 묘사되어 존재(생명)의 순환을 이야기한다. 새로움을 위해 기꺼이 낡은 것이 자리를 내어주고, 악이 무성해지면 깨끗이 쓸어내는 물에 의해 청산되고 선을 다시여는 그런 것이다.
한편 영웅신화는 엄청난 고난과 시련을 극기하고 마침내 인간에게 금지된 공간에 성공적으로 진입함으로써 세상을 차지하거나 목적을 성취한다. 그러나 이 성취와 깨달음 뒤에 영웅은 머무르거나 출발지로 회귀하는가에 따라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지는데, 귀환을 거부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돌아가 그 성취를 세상에 확산하는가가 바로 핵심이 된다. 이 책에는 이러한 신화들이 세계의 각 지역,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로부터 인도,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이집트, 아프리카, 북유럽, 그리스신화에 이르는 신화들로부터 삶과 자연의 그러해야 함에 대한 진실, 진리의 틀을 보여준다. 이러한 예화 중에 3분의2는 신(神)이고 3분의 1은 인간으로 만들어진 ‘길가메시’처럼 불완전한 인간과 전능한 초월적 힘인 신의 능력이 결합되어 절묘한 양면성, 즉 영웅적인 강력한 추동력 이면에 불안과 번민하는 약점을 지닌 인간의 한계성을 노출하여 내적 성숙과 불균형의 묘미를 보여준다. 이들은 대개 지상과 천상, 지하세계 등 층위가 다른 세계를 차례로 겪어나가면서 세상의 중심, 삶과 죽음의 그 비의를 터득하는 데 이르게 된다. 헤라클레스가 겪는 12개의 고난이나 미궁 속 미노타우스를 물리치는 테세우스는 바로 이러한 것들을 대표한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물리치거나 극복하여야 하는 대상은 바로 우주와 대자연의 본질인 중심을 방어하는 괴물, 혹은 대상물을 이겨냄으로써 그 중심, 인간에게 금지된 공간, 각성, 깨우침, 달관에의 진입을 상징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신화를 보는 시각에 대한 이론들로서 기독교가 타 신앙들의 신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신화를 일개 우의(寓意)로 해독하는 에우헤메리즘(euhemerism)을 전파하여 그 본질적 의미를 훼손하는가 하면, 역사적 사실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하여 카인과 아벨의 대립을 농경과 유목사회의 갈등, 인물의 이동경로를 추적하는 것과 같은 형식으로 이해하여 신화의 보편성을 해치는 방법들을 소개하기도 하는가하면, 갱신과 재생을 연관시키는 제의적(祭儀的)접근, 레비스트로스와 같이 신화의 내재적 구조를 파헤치는 구조적 접근등을 다채로운 세계의 신화들을 통해 신화가 지닌 논리적 모델을 찾아내기도 한다. 이밖에 프로이트나 융 처럼 심리적 접근을 통해 신화 속 상징물을 통해 개인과 집단적 무의식을 해석하여 그 본질적 의미를 발굴해내기도 한다.
신화를 해독하는 이와 같은 방법들을 아는 것은 우리가 우리사회나, 여타 문화적 산물인 책, 연극, 영화, 미술작품, 사회적 담론을 읽는 데 있어서 대단히 유용한 방향성을 제공한다. 일례로 신화에는 유독‘처녀 잉태’라는 초자연적 탄생이 많이 기술 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이것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기존 문화의 가치인 아버지라는 법인 전통적 관습이나 터부를 깨기 위해서는 아버지에 매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터부를 깨는 사람은 공포와 견제의 대상이 되고 혹독한 모험과 시련이 앞에 놓인다. 결국 이를 이겨냄으로써 터부를 파기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 낼 수 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한편 “자아(自我)의 신화”를 얘기하는 코엘료의 『연금술사』처럼, 양치기 산티아고의 보물을 찾는 여정이 종국에는 맨 처음의 출발지로 돌아오듯이 자신이 선 곳, 바로 그곳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신화적 깨달음으로 안내하는 것이나, 영화 <쇼생크 탈출>처럼 감옥이란 시련, 그리고 길들여지지 않음, 이상세계에 대한 추진, 타협과 깨달음, 마침내 미궁(감옥)에서의 탈출은 영웅의 재현으로 현대적 신화의 이상적인 예로 등장하기도 한다.
메마르고 황폐화된 오늘의 현대사회에서 우린 이러한 신화를 잊고 살고 있다. 다시 말해 삶의 본질에 접근하는 힘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말로 표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판적으로 보아야 할 터부인 그릇된 제도와 장치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보수적 지배 권력들의 방해를 넘어서야 한다.
비록 그날그날을 똑같은 일에 종사하며 사는 시지포스의 운명 못지않은 부조리한 삶이지만 우린 분투해야만 하는 당연한 삶의 이유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 신화를 꿈꾸는 세상, 그리고 신화가 마구 양산되는 그런 세상이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것 아닐까? 무릇 작가를 꿈꾸는 이들, 사회를 비평하고 해석하는 이들, 삶의 본원을 탐색하여 세상의 당위를 제시하고자 하는 철학하려는 이들, 삶을 보다 충실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의미 있는 상상력과 깨우침을 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