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 개정판, 하버드 초청 한류 강연 & 건국 60주년 기념 60일 연속 강연 CD 수록
박진영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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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의 대중스타 박진영의 20대 청년으로서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기술되고 있다. 대중음악인으로서의 음악에 대한 정열, 사회의 불평등한 가치에 대한 균형적 시각에 대한 사유, 페미니스트로서의 남녀의 성에 대한 담론, 부조리한 사회규범에 대한 나름의 가치 정립 등이 의례 그 나이에 하게 되는 치열한 의문을 당당하게 자신만의 목소리로 정리하고 있다.

25살의 청년이 연예스타로서 대중 앞에 서게 되면서, 자아를 어떻게 정립하고, 나아가 사회에 대한 책임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이야기는 성숙한 시민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표제인 ‘미안해’가 그의 아내에 대한 배려의 미흡에서 야기되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이는 그의 팬들, 그리고 그를 아는 모든 대중에 대해 자신이 받은 갈채에 대한 미흡한 화답으로 여겨진다.

이렇듯 10여 년 전에 쓰여진 그의 가치관이나 사회와 대중에 대한 배려의 뜻이 2008년인 오늘에도 변함없이 지켜내고 있다는 자신감이 재출간을 가능케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청년 박진영이 이제 장년이 되어 미국이란 음악시장의 중심에 진출하는 과정을 마지막장에 추가 수록한 것은 ‘한류’라는 다분히 천박한 민족주의적이고 정치적인 인사들의 시각에 대한 대중을 향한 폭넓은 이해를 촉구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이처럼 박진영의 주장은 겸손한가운데 투철한 정의가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다.

20대의 젊은이로서의 사유에 비롯되어 그 미숙함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치들이 부분적으로 보여 지고는 있으나, 그가 이야기 하듯이 모든 전문적 사상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듯이 한 청년의 성숙한 사유로의 과정으로 이해 될 수 있다. ‘보편성’이란 언어는 정말 조심스러운 어휘가 아닐 수 없다. 자칫 지역이나 소득계층, 서로 상이한 사상의 시선에서는 격렬한 논쟁을 야기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장자본주의적 질서에 대한 이해나 만족감의 표시와 같은 개인적 성향까지 문제시 할 수는 없으나, 앞선 서술에도 불구하고 왜곡된 연민이나 동정으로 비추어 질 수도 있음을 경계하여야 할 것 같다.

대중의 스타로서 이제는 그가 말하듯 프로듀서로서, 그리고 사업가로서의 역할에 열정을 불사르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또한, 음악에 대해, 나아가 사회에 대한 소명의식이 우리의 대중음악 뿐 아니라 대중의 삶에도 의미 있는 실천으로 이행되기를 기대해본다.

200여 쪽의 이 작은 책자는 화보와 에피소드, 소년시절의 일기, 담론, 그리고 에세이와 같이 다양한 편집구성으로 독자들의 시각을  즐겁고 화려하게 꾸며준다. 책속의 그 무지개 같은 컬러들이 탁월한 뮤지션, 아니 그가 정의내리는 뛰어나 딴따라의 세계로 안내하는데 손색이 없다. 우리의 대중 음악인이 이처럼 철저하게 사유가 정리되어 있고, 인간에 대한 넓은 연민의 가슴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어 유쾌하기 그지없다. 그의 음악세계가 더욱 공고해지고 의지가 더욱 확장되어 세상에 펼쳐지기를 진정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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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생육기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5
심복 지음, 권수전 옮김 / 책세상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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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詩經)의 가장 첫머리에 사랑을 노래한 관저(關雎)를 두었듯이 심복(沈復)또한 사별한 아내와의 행복했던 추억을 맨 앞장에 두었다. 자전(自傳)문학으로 분류되는 이 작품은 애달픈 부부의 사랑 이야기를 근간으로 18세기 말 청조의 문화와 일상의 소소함, 그리고 중국대륙의 자연 정취,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삶의 즐거움을 펼치고 있다.

외사촌누이 운(芸)과의 사랑과 그리고 아내로 맞이한 이후의 이들 부부의 지극한 배려와 이해는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의 감동을 안겨준다. 심복은 자기부부를 후한시대 부부의 본으로 알려진‘양홍과 맹광’에 비유하면서, 금슬을 자랑한다.
아내 운이에게 멋진 풍광과 멋스런 구경을 시켜주려고 밖으로 이끌면, “손을 꼭 잡고 어디 가세요?”하고 묻는 그 사랑스런 모습을 기억한다. 그리곤 “세세무궁토록 부부가 되기를 원합니다(願生生世世爲夫婦)”라는 양각과 음각의 도장을 새겨서 서로 떨어져 편지를 띄울 때면, 이를 정표삼아 찍어 보내기도 한다. 시집을 갓 와서 시댁의 낯설음과 어려움에 말없는 아내 운이를 위해, “나는 그녀가 말을 하게 하려고 울지 않는 귀뚜라미를 갈대풀로 건드려 울게 할 때처럼 했더니 운이도 차츰 말을 하기 시작했다.”라는 구절에서, 사랑하는 이에 대한 그리움의 간절함을 읽는다.

아내 운은 시화(詩畵)를 할 줄 아는 여성으로, 심복과 서로 글을 논하고, 그림을 평하기도 하며. 산수(山水)를 같이 즐길 줄 아는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다. 작자는 이런 아내에 대한 의지가 깊었음을 내내 아쉬워한다. 더구나 침실을 아내의 이름 운(芸)이의 뜻을 풀어‘빈향각(賓香閣)’이라는 이름을 써 넣기도 하고, 친구들과 자연 속에서의 풍류를 즐기려 할 때, 재치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아내를 “규중의 여인들 중에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지금 세상에도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까지 칭찬해대기도 한다.

이처럼 이 자전문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진운(陳芸)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閨房記樂(행복한 결혼생활), 閑情記趣(아름다운 멋을 찾아서), 坎坷記愁(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이렇게 전반부 3편을 중심으로 짙게 표현되고 있으며, 浪遊記快(내 숨결이 묻어나는 곳), 中山記歷(유구국을 다녀와서 ), 養生記道(건강하고 여유롭게 사는 법) 후반부 3편은 작자인 심복 자신의 외유기와 인생의 말년을 정리하는 삶의 경륜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이들 글 역시 아내 진운에 대한 상실의 상념이 곳곳에 묻어나고, 멋스런 산수와 드넓은 세상을 보여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흐른다.

코를 막을 정도의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음식으로 개로유부와 하로과가 등장하는데, 죽은 아내 운이가 즐겨하던 음식이었으나 작자는 싫어하였단다. 그러나 아내 운이의 지극한 권유로 코를 막고 씹어보는 모습에서 절로 사랑의 기쁨이 넘치는 광경이 그려진다.“처음에는 싫었는데 자꾸 먹다보니 좋아지게 되었소.”하는 심복이 그때 아내에게 하던 말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비록 추녀라 할지라도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지요.”하는 작자의 마음속 정감이 아내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커다란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옛말에 금슬이 좋은 부부는 백년해로를 못 한다.”고 자기부부의 금슬을 시샘해 아내가 먼저 떠났음을 애처로워하고, 아내가 죽은 후 자신의 호를 매일(梅逸, 매화를 여의다)이라 지었다는 고백은 사랑의 그 심원함에 천박하기 짝이 없는 오늘의 사랑만을 아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임종을 앞둔 아내가 작자에게 재혼을 말할 때, 심복은 다음과 같이 아내에게 시를 선사한다.

『이미 창해를 건넌 사람에게 보통 물은 물이라 하기 어렵고,
무산을 겪은 사람에게 보통 구름은 구름이 아니라네.』

그리움과 외로움, 상실로 인한 번민으로 삶의 지탱이 불가능 할 때, 그리고 세상에 대한 욕망으로 불편함을 멈추지 못하는 노년의 자신을 수양하는 마지막편인 養生記道(양생기도)는 오늘의 가치관과 환경에 비추어 다소 괴리되는 수련도 있으나, “마음의 멈춤과 휴식, 만족을 알고 한가할 수 있으면 이것이 바로 즐거움을 얻는 것”이라는 깨달음은 “마음이 쉴 수 있으면 눈은 저절로 감긴다.”는 손진인의 시구와 어울려 삶의 깊은 맛을 느끼게 해준다.

200여 년 전의 이야기이나, 이 작품은 18~19세기 자전문학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당 시대의 다양한 문화와 유적의 면모를 볼 수 있는 사적 가치, 그리고 당시로는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사대부의 진솔한 개인사를 드러냈다는 측면에서 높은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기도 하다.
작품의 모두에서 작자는 이 자전문(自傳文)을“먼지 낀 거울에서 투명함을 찾는 것처럼 훌륭한 문장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고 겸양을 보이지만, 오늘에도 그 문학적 향취는 사그라지지 않을 정도로 세월의 풍화에 견고하다. 사족 같지만,‘명예와 이익에 얽매이고’, 물질의 욕망에 마음을 멈추지 못하며, 사람의 관계에 대한 연민을 생각조차 갖지 못하는, 그래서 가치의 혼란과 정신의 황폐함에 내몰린 우리들에게 정말 때 묻지 않은 깊은 자연의 청명함을 주는 책이라 감히 추천하고자 한다.

註(주)* 부생(浮生):‘덧없는 인생’이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으나, 아득한 추억(꿈)의 삶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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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와 리리의 철학 모험
혼다 아리아케 지음, 박선영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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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적 인간행동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평범한 일상적 사고의 패턴 속에 녹여낸 훌륭한 철학입문서라 할 수 있겠다. 또한, 10대를 주인공으로 한 학교소설의 형식을 채택하여 보다 친근하게 청소년들의 삶과 가치관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어 이야기로서의 재미를 배제하고 있지 않으며, 우리들의 삶과 철학을 좀처럼 연결 짓지 못하는 그 괴리를 말끔히 메워주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작품은 생각하는 삶, 인생의 가치에 대해 사유케 하는 뚜렷한 주제의식을 가진 흥미로운 청춘소설이며, 그래서 그 거창하고 낯설게 여겨질 수 있는 철학자들의 고뇌어린 사색의 결과가 보편적인 인간의 삶속에서 ‘왜’, 그리고 ‘어떻게’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자연스런 동화로 이어지게 하고 있다.

따라서, 주요 등장인물인 고등학교 2학년 남녀학생들의 시선을 경계로 하여 설정된 소재들 역시 ‘사람 마음의 본질’, ‘영혼의 존재 여부’, ‘원조교제’, ‘인간의 생명과 관련한 사형제도’, ‘종교’ 등으로 누구나 한번쯤 의문을 가져보았던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미미와 리리, 두 여학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일상과 번민이 윤리선생 데코라는 인생의 멘토(Mento)를 통해 가볍지만은 않은 인생의 본질적 가치의 설명이 흥미롭고 유쾌한 에피소드와 함께 전개된다.

리리 오빠의 자살이 가족과 가까운 이들의 상실감이란 상황을 시작으로 자살이 갖는 본질적 의미를 생각게 하고, 이에 따라 자연스레 사후세계에 대한 역사적, 철학적 성찰을 이끌어낸다.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존재하는 것인가?,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인간기계론』같은 저술과 플라톤의 주장 등을 대비하여, 기능적이고 물질적인 접근과 물질과 영혼의 2원론을 고찰하기도 한다.

또한, 원조교제와 관련하여 인간 개인의 욕망에 대한 처리와 그 책임의식, 자아와 타자에 대한 개념의 정립, 나아가 사형제도에 대한 토론을 통해 개인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의 상충과 조화를 위한 멋진 사유의 접근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이 작품은 우리가 가져야만 하는 성숙한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성장에 철학이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본원적 사유와 성찰의 방식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왜 인간은 서로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인가? 와 같은 다소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의문에 대해 ‘호모 데몬스(Homo Demons)', 즉‘착란인’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설명과, “종(種)이 살아남기 위한‘제1원리’로서 ‘인간들이 서로 죽이는 것을 금지한다.”라는 공리(公理)의 소개나, 칸트의‘목적의 왕국’, 미야자와 겐지의‘진정한 복지에 이른 길’, 벤담의 ‘공리주의’에 이르는 사랑과 조화의 메시지로의 전개, 철학적 태도를 인류에게 비로소 제시했다는 데카르트의 ‘의심하는 자아’, 칸트의 이성비판, 홉스, 존 로크, 루소에 이르는 사회계약론이 가지는 의미까지 폭넓은 철학적 식견들이 ‘철학’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고 친근하게 서술되고 있다.

이 철학이란 삶의 필수적 사유의 방법을 청춘드라마에 슬기롭게 입혀낸 소설은 ‘나와 너’라는 인간관계의 순수한 존재방식에 대해 어느덧 같이 진동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리곤 타자(他者)에 대한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책을 덮는 나를 발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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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제국 - 소설로 읽는 아메리카의 초상
김욱동 지음 / 소나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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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와 20세기의 미국을 대표하는 문학작품과 작가에 대한 비평서이자, 해설서라 할 수 있으며, 현대문학에 대한 다양한 비평기법의 소개와 활용을 통해 작품의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지원해주는 진정 상쾌한 저술이다.

또한, 수록된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8명의 작가와 그들의 작품은 일반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친근한 것으로서 각 작품들에 대한 다양한 비평과 시선이 독서의 흡입력을 제고하여 수월하게 문학적 이해에 접근하게 하여준다.

1850년 발표된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자』를 시작으로, 1970년 마여 앤젤루의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에 이르는, 21세기 오늘에도 세계에 넓게 독자를 형성하고 있는 고전적 작품들이 우리가 미처 읽어내지 못했던 속살을 저자의 친절하고 풍부한 이론적 식견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저자가 선정한 작품들은 이미 많은 독자들이 읽었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소설들이기에 더욱 흥미롭고, 명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 문학 비평서는 그 어느 문학수업, 창작수업, 문학비평 강의를 뛰어넘는 자연스러운 몰입을 형성케하여 현대문학의 사조(思潮)에서 비평기법, 작가의 창작세계, 그리고 이들 작품의 현대사적 의미에 이르는 풍부한 문학적 지식을 체화시켜준다.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해체주의자의 분석을 통해, 시대적 조류(潮流)에서, 플롯인가, 인물인가, 인종과 종교와 계급에 대한 시대적 변화는 어떻게 반영되고 변화되어왔는가, 이를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시선은 어떻게 변화되었는가와 같은 일관된 연속성에 의해 구성되어 있어 미국현대문학을 이해하는 귀중한 문학적 자양분을 충일하게 제공하고 있으며, 작가의 문학적 토양이 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인문적 설명까지 더해 하나의 작품을 이해함에 있어 실로 다채로운 도구의 실제를 목격하게 된다.

특히, 해체주의자들의 구조주의 이론에 의해‘주홍글자’라는 소설의 제목이 “간음이나 불륜의 사랑 보다는” 오히려 “언어와 정치, 담론과 권력에 초점”을 맞추려 하였음을 읽어내듯이, 헤스터의 가슴에 부착된“A"자의 다중적 의미로의 이전(移轉)은 문외한인 나로서는 새로운 발견이 되기도 했으며, 나로서 가장 큰 애정을 가졌던 작품인 『이선프롬』과 작가 이디스 워튼의 세계는 정말 매력적인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자연주의에 대한‘환경론적 결정론’에 대한 그 단순한 학습이 있었다면, 이디스 워튼의 작품을 대했을 때, 보다 풍요로운 이해와 재미에 빠져들었을 것임을 알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원문이 가진 독특한 언어의 뉘앙스가 우리말로 번역되어 그 참맛을 미처 느끼지 못했던 몇몇 구절의 소개는 번역서에 의존했던 독서의 미진한 그 무엇을 발견케 하여준다.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마크트웨인의 『톰소여의 모험』,『허클베리핀의 모험』,F.스콧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갯츠비』, 오 헨리의 단편소설들에 대한 위대한 작가들과 비평가들이 빚어 낸 다채롭고 통찰력 넘치는 비평들의 소개와 어우러진 해설들이 독자들의 작품을 보는 안목을 한층 격상시켜 주리라 예견된다. 문학작품에 심취해있는 독자들은 물론, 문학작품에 쉬이 접근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작품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재미와 삶과 사회와 인류의 본성을 꿰뚫는 혜안을 가지게 하여줄 역작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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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더링
앤 엔라이트 지음, 민승남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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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흐름에서 시간은 멋대로 역전되고, 회상과 비유가 난삽하게 연결되며, 모든 것이 화자의 의식 내에서 사실로 변조되어 있어, 그 진실을 알아차리기가 수월치 않다. 아니, 진실이란 없는지도 모른다. 작가가 수없이 다양한 장치와 기법을 통해 숨겨놓은 이야기들을 연결시키려면 한 번의 독서만으로는 무리가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두 번 아니 세 번 읽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그래서 작가가 전달하려 애쓴 그 무엇들을 남김없이 밝혀내고 싶어진다.

화자(話者)인 나,‘베로니카’자신의 기억과 상상의 모호한 경계선을 위태롭게 거니는 이야기들은 그녀의 미분화된 자의식으로 더욱 긴장되게 한다. 바로 과거와 현실의 경계를 와해시켜 그녀의 의식의 흐름을 쫒아가야 하는 독자를 정말 수고스럽게 한다. 흩어져 있는 기억들을 쥐어짜듯이 모아놓는 구성이기에 제목은 오히려 이 작품의 기법이기에 가깝다.

희미하고 비어있는 엄마,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엄마, 12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낳은 그 왕성한 번식활동, 그리곤 항상 신경증에 시달리고 아이들을 위해 필요한 존재이지 못했던 엄마로 인식하는 베로니카에게서 우울한 증오를 목격하게 된다.

이 작품의 커다란 플롯은 베로니카보다 11개월 먼저 태어난 오빠‘리엄’의 죽음에 따른 나와 가족의 삶에 대한 기억이다. 그 기억은 리엄의 장례일로부터 5개월에 걸친 가족의 삶에 대한 자의식의 잔인할 정도의 해체이다.

번식과 신경증의 엄마를 위해 할머니 에이다의 집에 옮겨진 세 아이, 리엄, 베로니카, 키티, 그리곤 할머니 에이다의 처녀시절인 1925년, 호텔에서 마주하는 너전트와 에이다의 존재치 말아야 했을 만남의 암시, 그리고 두 딸 레베카, 에밀리의 엄마인 나, 베로니카의 구조는 나를, 나의 삶을 성찰하기위한 근간이 된다.

자식의 출산이‘번식’으로 표현되는 것은 사랑과 섹스의 개념적 분리와 그 의미를 극명하게 하기위한 수단이다. 또한, 할아버지 찰스와의 짧은 기억보다는‘에이다의 집’에 주인처럼 행세하던 너전트와 에이다와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그 끈질긴 욕망에 대한 탐색을, 그리고 영원히 씻지 못할 너전트의 추악한 모습에서 세상의 악을 발견한다.

이 주요한 이야기의 구조는 이렇듯‘욕망과 증오(desire and hatred)’에 대한 탐색이다. 이는 부커상 수상 직후, 영국 가디언(The Guardian)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엔라이트’의 작품 의도이기도 하다. 작품의 종교적 색채는 구교(카톨릭)이지만, 베로니카의 작품 초반의 선언처럼 종교를 던져버리며, 아버지의 신앙태도와 베로니카의 식탁에서의 에피소드에서처럼 그 믿음에 회의의 눈초리를 보낸다. 또한 위선적인 성직자로서의 오빠 어니스트를 통해서도 종교의 허울을 조롱하기도 한다.

이는 카톨릭이란 종교의 그늘아래서 반복되는 무능하고 파렴치한 자신들의 탐욕스런 행위와 교차되어 그들의 오래된 종교적 갈등(신교와 구교)에 대한 냉소적 회의와 어울려 묘한 정치적 여운을 던지기도 한다.

한편 베로니카의 섹스에 대한 의식은 혼선을 빚는다. 마이클과 섹스, 남편과의 섹스, 너전트와 에이다와의 섹스, 에이다와 찰스의 섹스, 아버지와 엄마의 섹스, 이들의 섹스에서 사랑을 발견하지 못한다. “결국은 그냥 섹스에 불과한 것이다.”처럼 그저 욕망으로만 해석된다. 이러한 의식이 시종되지만, 작품의 종국에는 “다시 남편과 사랑을 나누고 싶다~省略”에서와 같이 “前略~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자기연민과 같은 위안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작품이 이렇듯 절대적 이념을 거부하고, 어린시절 에이다의 집에서 벌어진 리엄의 성적학대에 대한 잔상을 시발로 한 자의식적 서술, 그리고 불쑥 “나는 독자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이야기를 바꿀 수 있다.~ 생략”는 식의 메타픽션식 의식흐름은‘진실을 찾으려 했던’독자들에게 다시금 책장을 거스르게 만든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안성맞춤의 뛰어난 소설이 될듯하다. 읽을수록 진한 맛이 우러나는, 세월이 흘러도 풍화되지 않을 걸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의 화려한 수사와 극명하고 다양한 주제를 모두 토해 낼 수 없음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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