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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격자의 차트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6
연여름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2월
평점 :
“그 눈빛은 이미 자기의 삶을 장악한 자의 것이었거든.” - 116쪽에서
강렬한 이야기다. 경계를 두르고 그 내부에 폐쇄적 집단을 형성하는 인간 무리들의 삶의 형식과 내용을 통해, 그들의 언어와 행동 양태를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바라보는 것은 야릇한 흥분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의 힘, 상상력의 힘이란 어쩌면 인류가 자신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위대한 방편인지도 모르겠다. “2692년 8월 23일, 생애한도가 연장될 수 있다는 소문이 병원을 도는 중이었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그리곤 “이번 오류 사건이 규모가 컸”기 때문이라는 문장이 뒤따른다. ‘오류 사건’은 소설의 표제에 있는 ‘부적격자’와 하나의 관련어로 묶여 이 소설의 서사를 이끄는 핵심어랄 수 있겠다.
‘부적격자’라는 단어는 개념 자체에 어떤 기준을 내포함으로써 특정한 시대와 공간, 그리고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새로운 다섯 차례의 세계대전과 기후변화, 바이러스로 인한 식수오염으로 종말의 위기에 내몰린 일군의 생존 무리들은 오염되지 않은 식수원을 찾아 방벽을 쌓고, 외부로부터의 오염원을 차단하여 생존을 보호하기 위한 경계를 두른다. 즉 경계 내부가 된 집단은 자신들만의 규범을 통해 적절함과 부적절함을 나눈다. 부적절함이란 이처럼 특정 집단 체제가 자신들의 안전이라는 명목 하에 배제하는 것들이다. 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 허구가 되어버리고 금지되거나 사장되어 버린다. 보이지 않는 폭력의 한 유형이다.
그런데 배제라는 것은 영구적으로 고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 상황의 다름, 적용 대상의 구분 등등 무수한 요인들에 의해 변화하는 것이다. 본래적으로 자의성을 내재하는 것이고, 개념상 상대성을 지닌다. 모세라는 인공지능의 제안으로 발견된 오염되지 않은 식수원의 발견에 따라, 한정된 자원 내에서 살기위해 불가피하게 구성원들의 생몰(生沒) 연령의 한계를 설정하게 되고, 집단의 리더가 지닌 인류의 경험, 즉 “권력이 고이고, 내부분열과 탐욕과 악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자멸하는 것을 알기에 인공지능과 인간은 상호협력 관계자로서 인공지능 모세를 ‘중재자’로 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을 ‘실무자’로 하여 한정된 공간에서 8만 명의 인간이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는 대략 40년을 생애한도를 설정한다. 따라서 중재도시에는 그 어떤 리더도 없으며, 중재자인 인공지능 모세 또한 실무자들이 “중재자의 제안을 받기를 원치 않는다면 언제든 사용을 중지할 수 있는 그런 존재”이다.
중재자와 실무자가 합의한 생애한도 연령에 도달한 실무자는 소거된다. 소설의 시간은 그로부터 대략 9세대에 이른 시기이고, 주요 배경은 중재도시 중앙병원이다. 8만 명의 집단구성원은 모두 실무자로 불리는데, 제각기 방벽 내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일을 수행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책은 애초부터 부적격자 차트”임을 거듭 강조한다. 어떤 실무자가 부적격자일까. 소설은 바로 이 부적격에 내포된 무수한 함의들을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조건, 그리고 산다는 것은 진정 무엇인지를 생각게 한다. 우리들은 생존을 위해 무엇까지 포기할 수 있는가?
세대를 이어가며 상시 8만 명의 생존유지가 가능한 세계가 목적인 곳, 그래서 최소의 필요로 살아가야 하는 곳이기에 효율성을 덕목으로 하는 합리(合理)가 최고의 원칙이다. “사치, 유희, 쾌락, 종교, 예술, 감정 등 인간의 모순을 촉발하는 변수들”은 금지, 제거되고, 욕망과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균형제’라는 약물을 정기적으로 투여한다. 한편, 세대를 거듭하며 방벽 ‘바깥’이란 모두에게 각인된 ‘근원적 거부’로서의 의미를 띠게 됨에 따라, 모든 허구는 모순이라 여겨지고, 상상력은 죽은 단어가 된다. 실무자로 지칭되는 모든 구성원들은 점차 중재자의 합리에 길들여져 간다. 허구, 이야기, 상상력은 도시의 안정과 지속을 위협하는 개념이 된 것이다. 합리를 구성하는 효율성의 관점에서 허구는 불필요한, 군더더기요, 생존의 필요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기록은 그래서 철저하게 군더더기가 제거된 사실인 필요 내용이외에는 기재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융통성, 충동, 소중함. 애착, 애도와 같은 생존의 필요라는 효율성의 기준과 모순되는 단어들은 전부 죽은 단어가 된다. 한편, 사실로 확인되지 않거나 확인될 수 없는 꿈이나 상상과 허구를 이야기 하거나 이를 듣고도 중재자에게 고발하지 않는 실무자도 결점을 부과 받는다. 생애 연령 한도에 이르기까지 결점이 7회 누적되면 즉시 부적격자가 되어 3병동에서 소거된다. 하나의 예로 워터드롭이라는 중재자와 소통하는 일종의 리시버가 있는데, 이의 미착용도 결점 대상이다. 모든 대화는 이 워터드롭을 통해 중재자에게 전송되고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일종의 감시체계이다.
따라서 이를 귀에서 제거하는 행위는 집단규범을 위협하는 행위가 된다. 이제 오류사건의 의미를 말 할 때가 된 것 같다. 오류사건이란 생애연령 한도에 도달하기 전에 몽증을 겪으며, 욕망과 감정을 통제하는 균형제라는 약물의 투입으로도 완화되지 않는, 결국 자기 소거를 감행하는 부적격자의 발생이며, 이는 실무자들에게 심리적 영향을 끼쳐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실무자가 사망하는 일종의 재난을 일컫는다. 소설의 시작문장에 생애한도가 연장될 수 있다는 것은 실무자의 무더기 결손으로 불가피하게 한도에 도달한 실무자들의 연령한도를 연장하여, 중재도시의 정상적 순환을 가능토록 하는 조치이다.
실무자들은 중재도시에서 세대를 이어가며 생존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했다. 자신들의 감정과 쾌감과 욕망, 그리고 꿈과 상상력, 이야기마저도 효율성이라는 합리를 위해서. 이는 다시 말해서 인간이 지닌 모순성, 즉 두 가지의 판단, 사태 따위가 양립하지 못하고 서로 배척하는 상태에서 갈등하는 존재이기에 이 모순을 소거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꿈이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현상이고, 이는 다양한 상상을 낳는다. 이 상상은 마음에 홀로 담기에는 버거운 것이고, 발설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린다. 또한 방벽 밖의 세계가 제아무리 근본적 부정을 의미한다지만 호기심, 궁금증은 물론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무수한 가공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된다. 인간은 이러한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지식을 늘려나가고, 그 무지를 줄여나감으로써 경계 밖의 존재자들은 물론 다름을 수용하고 포용성을 확대해 나간다.
그러나 중재도시에서 이것은 도시의 생존을 위협하는 범죄적 행위다. 합리의 저해는 곧 도시의 생존성 저해인 까닭이다. 오류사건으로 인해 생애 한도가 연장되자 소거 대상자의 최후 기록을 담당하던 1병동 근무자인 세인은 한시적으로 부상 또는 질병 실무자들을 치료하는 2병동에 근무하게 된다. 세인은 방벽에서 떨어져 기억을 상실한 방벽유지 보수 실무자인 레드를 담당하게 된다. 기억을 상실한 레드는 세인에게 허용되지 않는 군더더기의 이야기들, 사용하지 않는 죽은 단어들은 물론 도시 공용어인 존중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어느 날 레드는 자신의 귀에서 리시버인 모세를 빼 내고는 세인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암묵적 신호를 보낸다.
중재자가 들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지만 모세를 차단한 시간이 168시간, 일주일이 경과하면 결점이 1회 누적된다. 168시간은 레드가 결점 부과 한계시간을 알기 위해 자신의 귀에서 빼내 알아낸 사실이다. 부적격자로 강제 소거 될 위험을 알면서도 저지른 행위라는 점이다. 자신에게 죽음의 가능성이 설정된 한도보다 빨리 도래할 것임을 알면서도 저지른 이 행위는 그저 단순한 일탈이 아니다. 그는 내부 체계가 금지한 것, 특히 상실된 선택이라는 자유를 행사한 것이다. 무결점 실무자인 세인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 역시 발설되지 않은 자신만의 꿈의 세계를 간직하고 있으며, 그 머릿속 상상의 세계에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에 레드의 제안을 수락한다. 모세를 자신의 귀에서 빼내고 레드와 세인은 자유롭게 확인되지 않은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군더더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여기에는 너무도 많은 인간 삶의 조건에 대한 물음들이 내재하고 있다. 생애 한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날이 도래하면 자발적으로 소거되는 삶에 대한 물음, 타인의 상상과 그에 기초한 이야기 나눔의 금지란 대체 인간에게 무엇인지, 그리고 방벽 바깥이라는 잊혀진 부정의 세계, 다시 말해 금지된 무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 그 앎의 욕구에 대한 본질적 물음이다. 이에 더해 적격과 부적격의 구분이란 것의 그 자의적 분별이란 것 또한 중재도시가 금지한 허구의 하나가 아닌가하는 것이다. 이제 모두에 인용한 “자기의 삶을 장악한 자”의 의미가 조금은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외부에 무언가를 바라거나 거기에 어떤 목적을 두지 않는 내적 확신을 지닌 주체적 존재의 힘으로서 인간의 존재 조건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체계에 순종한 한 실무자의 고발에 의해 강제 소거된 레드가 14년 전 방벽 너머에서 보았던 하얀 머리를 한 낯선 인간에서 발견된 자기 삶을 장악한 자로서의 삶을 위해 세인은 3세대 이후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굳게 닫힌 방벽의 육중한 출입문을 열어젖힌다. 세인의 이 행위에도 여러 의미들이 함축되어 있는데, 그는 레드의 몽증(夢症)을 공유했으며, 부적격자인 레드에 대한 애착을, 그리고 허구를 재생산하고, 이윽고 그것을 실행한 것이다. 그리고 세인은 레드를 이렇게 기록한다. “얼마나 비합리적인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반짝거리던 사람이었는지.”라고.
우리는 이야기를, 허구의 소설을 왜 읽는가? 우리는 왜 꿈을, 희망을 갈구하는가? 아마 그것은 알지 못하는 내 인식 경계 너머의 존재와 존재자들을 알고자 함이요, 그를 통해 혹여 금지와 배제로 자기만의 동굴 속, 그 편협과 왜곡에 묻히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또한 두려움의 지대를 벗어나 가능성이 숨 쉬고 있을 경계, 방벽 너머로 나아가려는 삶에 대한 무한한 의지와 용기일 것이다. 세인을 따라나선 이폴, 그들은 언어라는 한정된 영토를 떠남으로써 새로운 언어를, 그 낯선 지대를 발견하고, 허구로 치부되었던 바깥이 곧 진실임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왜 허구의 이야기가 읽혀야 하는지를 강하게 역설하는 작품이다. 또한 바로 그 상상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언어와 삶의 조건들을 발견하게 되고, 자유라는 선택의 주체로서 자기 삶의 지평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것임을 이야기 속에서 절로 깨닫게 이끈다. 레드의 차트를 기록하는 세인의 눈동자에 깃든 작은 불꽃, 또 그것을 바라보고 기쁨을 느끼는 이폴의 마지막 모습에서 인간의 모순성, 절망적 상황에서 죽음을 희망하며 한편으론 삶을 갈구하는 비합리가 어쩌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바로 그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일 우리들이 어떤 특정한 집단만의 공동체를 꾸린다면, 그래서 그곳에서 생을 누려야 한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생존을 위해 꿈과 감정과 선택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을까? 효율과 합리성만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살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자본주의의 척추인 이들 합리가 최고의 원칙인 오늘의 세계가 우리들에게 무엇을 앗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반면교사일 것이고, 감정과 상상력과 허구의 이야기가 지닌 그 강력한 힘이란 무엇인지를 깨우치게 하는 작품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한 호흡에 내쳐 달려 읽게 되는, 그와 동시에 굵직한 인간 삶의 본래적 조건을 생각게 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너의 처지를 기꺼이 상상하는 용기, 그러한 힘들이 이 무심한 세상을 완전히 박살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은 거”라는 작가의 말로 감상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