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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부 살인자의 성모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5
페르난도 바예호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평점 :
이 소설은 1980~1990년대의 부패하고 범죄 집단화된 국가인 콜롬비아를 배경으로 한 절망적이고 자조적인 외침이다. 그런데, 저 먼 남미대륙 한 나라의, 그것도 30년 전의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던져줄 수 있는가라는 볼 멘 불평의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역사는 그 모습을 변조해서 반복된다. 1930년대 나치의 파시즘이 21세기 이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콜롬비아의 증오가 꼬리를 물고 영속되듯, 이 땅에서도 그것을 빼닮은 듯 범죄 집단화하는 국가권력의 양태가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마약 밀매조직이 곧 정부였으며, 그 쓰레기들이 국가 행정과 공권력을 휘두르고 있었고, 이에 영합한 오래된 부패조직인 관료들은 자기 주머니 채우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으며, 그 구성원인 시민이라는 존재들의 삶 또한 무지막지하고 극악무도한 패악질을 닮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직 그 짓을 흉내 내야만 생존의 여지가 있었으니 말이다. 화자(話者)는 생존해 있는 마지막 문법 학자로 자처 혹은 추정하는 페르난도(작가의 분신)라는 인물이며, 어느 검사에게 조국 콜롬비아에서의 자기 행적을 술회하는 형식을 하고 있다.
“청부 살인자(sicario)란 위탁받아 살인하는 아주 젊은 청년이에요.
심지어 어린아일 때도 있어요.” -12쪽
지구상에서 가장 범죄가 잦은 나라, 증오와 원한의 수도, 메데인은 재앙의 얼굴을 하고 있다. “법은 불(不)처벌이 원칙이고, 범죄자이면서 처벌받지 않은 첫 번째 인간이 대통령인 나라, 이 시간에 그는 아마도 나라건 일터건 모두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고 있을거야”(27쪽). 이 낯설지 않은 익숙한 문장이 이 소설을 더욱 열중하여 읽게 한다. 메데인에는 150개의 성당이 있다. 청부 살인자들이 실수하지 않게 해달라고 성모에게 기도하기 위해서, 총을 쏠 때 목표물에 정확하게 명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위해 존재하는 수많은 성당, 범죄의 일상성만큼이나 즐비한 성당의 실존은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 죽음인 나라에 맞춤처럼 보인다.
어디를 걷거나 어떠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더라도 죽음은 삶처럼 따라붙는 곳, 그 누구도 결백하지 않은 인간쓰레기들, 찌꺼기들만이 있는 나라,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죽이는 것이 정당화되는 곳이다. 죽이려는 열망과 재생하고 번식하려는 분노가 서로 경쟁하는 곳, 열두 살이 되면 범죄의 온상지인 코무나의 아이들은 늙은이와 다름없어진다. 살아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지만 사회는 점차 유대감과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해지고 누덕누덕 기운 침대보처럼 되어버린 도시, 소설은 온통 총알을 박아버리는 장면의 연속이다. 더 이상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가난의 고통과 벌이의 고됨으로부터 해방을 주기 위해 서로 서로 죽음을 공연한다.
택시의 라디오에서는 공공의 젖이나 빨면서 나라의 돈을 빼앗아가는 엿 같은 관리들의 의미 없는 발표문이나 마약 밀매자들의 거슬리는 바나예토 음악이 틀어져 있다. “죽음, 권총, 경찰, 안녕 개새끼야.” 재의 수요일 성 십자가를 그어주는 곳, 탕! 피할 수 없는 단호한 단 한발의 총알. 사체에 몰려드는 구경꾼들, 야비하고 천한 영혼 밑바닥부터 말 할 수 없이 은밀하게 용솟음치는 기쁨을 어쩔 줄 몰라하는 선천적이고 만성적 비열함을 가진 군중들. 거짓말과 도둑질을 일삼는 가장 비열한 버러지들이 되어버린 시민이란 것들. 뉴스도 더는 새롭지 않다. 단지 죽음의 숫자가 오늘과 내일 조금씩 다를 뿐. 당국이라 말할 수 있는 게 없고, 단지 도둑질하고 공공의 것을 약탈하는 사악한 권력만이..., 그래서 기도의 내용도 이렇다. “이 삶에서 이미 지옥의 악몽을 겪었고, 그것도 아주 충분히 겪었으니, 영원한 저주에서 저를 구하소서. 이웃과 함께, 아멘.”
“훔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둑맞지 않기 위해 피를 흘리며 지켜낸 곳.
주님, 그토록 이상한 생각에서 구하시고 보호하소서.” -89쪽
소비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지독한 약탈자본주의가 시대를 휩쓸면서 이에 도취된 인간들은 타인으로부터 탈취를 영속화한다. 빼앗기 위해 죽이고, 그를 다시 찾아오기 위해 죽이고, 이 반복의 소용돌이 속에서 죽음의 향연은 계속된다. 권력이 곧 불의(不義)한 조직인 세계,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니 수출할 것도 없고 오직 하얀 코카인 가루에 매달려 있다. 자동차도, 가전제품도, 명품 브랜드 옷과 가방도, 모든 것이 마약에 의존해 있는 세계, 마약 밀매 영역다툼으로 반복되는 매일의 죽음과 이 죽음을 괴로워하는 사회를 먹이로 먹고사는 기자라는 것들까지, 어느 한 구석도 악취나는 부패에 오염되지 않은 영역이 없는 곳이 소설 전반을 그칠 줄 모르고 가득 메우고 있다. 그럼에도 개들이 짖는 소리는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가면서 자기들이 더 낫다고 목청껏 소리치고 있는 형국이란 가히 저질 코미디 이상의 촌극이라 할 것이다.
하나의 세계가 몰락하는 광경, 인간 군상의 저열한 추락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나 특출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주가조작, 부동산 투기를 위한 국토계획의 자의적 변경, 정적 살해를 위한 공권력의 사적 남용, 하다못해 마약밀매의 개입 징후까지, 이 소설의 극단적 양상들이 결코 먼 나라의 지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에 절로 전율케 된다.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고, 갈라치기와 적대로 시민 분열을 초래하며, 역사의 부정과 부역자들의 만행이 뻐젓이 저질러지다 보면 아마도 이 사회도 그간 쌓아온 질서와 정신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약탈자와 파렴치범들이 행세하며 처벌받지 않는 곳인데, 그 누구인들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겠는가? 사회는 순간 급속하게 저 지옥의 나락으로 곤두박질 칠 것이다.
이 소설은 시종 욕하면서 빠져드는 작품일 것이다. 그 역겨움과 비열함과 악랄함, 그리고 그 어떤 사회적 책임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 그래서 죽음은 늘 방치되고, 살인자는 더 이상 추적되지 않는 세계, 어른이 되기 전에 청부 살인자가 되어 또 다른 청부 살인자에 의해 죽어가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세계, 인간임에 대한 불명예와 치욕이 넘쳐흐른다. 왜곡된 현실을 더 왜곡하여 보려고 저 무도한 머저리는 마약밀매에 개입한 것인가? 아무튼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심사가 그리 편하지 않았다. 다만 서사적 힘은 가히 독보적이고 치명적일 만큼 흡입력이 뛰어나다, 페르난도 바예호는 라틴 아메리카의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라고 한다. 한 사회가 한번 폭력의 굴레에 갇히기 시작하면 그것을 걷어내는 데는 엄청난 사회적 희생을 필요로 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이미 정치검찰들에 의해 폭력의 굴레에 갇히기 시작했다. 아마 이것을 이전의 민주사회로 회복하는 데 우리사회는 엄청난 곤혹이라는 고통을 겪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정치인 혹은 관료는 본질상 비천하고 악한 놈들이야 .(...) 절대로 그들이 순진하다고, 죄 없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고 기대하지 마. 그게 바로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거야.” -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