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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세계사 보급판 세트 (블루 커버 에디션) - 전3권 - 고대 제국에서 G2 시대까지
피터 프랭코판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19년 11월
평점 :
당사자가 되어 사건 속의 주체가 되면 그것의 외연을 보는 시야가 좁아지게 된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사건을 바라보게 되면 보이지 않던 것이 비로소 보이게 되고, 실체의 윤곽을 보다 실재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훼손을 가하려는 어떤 세력이 있다고 여겨지면 그 반대 집단에 대한 적의로 이익훼손 행위의 이면이나 관련된 사항들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만일 드러나지 않은 것에 보다 크고 장기적이며 궁극적인 이해의 부분들이 있다면, 결국 당위적 행동을 불러일으킨 훼손된 이익이라는 사건에 대한 적대적 반응은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오히려 궁지에 몰리는 처지에 이르기까지 한다. 이 책은 역사의 과정을 통해 이것들을 보게 한다.
이 책은 이처럼 관점을 서구 중심의 세계관에 의해 서술된 세계사의 오만과 그로인한 잘못된 역사를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게 한다. 세계의 역사가 자신(유럽)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기만과 착각은 그 당사자라는 좁은 시선에 매몰되게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문제를 유발하는 주체로, 세계사의 반동적 존재임을 입증하게 될 뿐이라는 의미이다. ‘실크로드(Silk road)세계사’라는 책의 제목이 시사하듯, 세계사를 비단길이라는 고대(B.C. 119년)에 처음 열린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로 연결된 거대한 대륙을 가로지르는 물질과 문명, 사상과 종교가 어우러지는 교역로라는 의미의 수식어가 붙은 세계의 역사인 이유이다.
또한 이 어휘는 고대에 놓인 이 단일한 특정 지리를 연결하는 길(路)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세계의 ‘주요 자원’의 중심 연결지대를 뜻하는 보다 확장된 개념을 지닌다. 인간의 접근을 가로막는 타클라마칸과 카라쿰 사막, 텐산 산맥과 힌두쿠시 산맥, 파미르 고원지대를 넘어서 동과 서의 육상로를 잇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세계의 중심으로 인식하는 세계관이며, 이 동서를 연결하는 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해상로로 확장되기도 하며, 세계의 패권을 확보하게 하는 세계 권력 지배의 루트(route)이기도 하다. 그래서 실크로드는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들과 함께 ‘새로운’ 자원 확보의 길이 생성되기도 한다.
책에는 총 9개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이와 같은 세계의 지배적 욕망이 되는 자원 -이것이 인간 혹은 물질이 되었든, 사상이나 종교가 되었든 무엇이건 - 의 변화된 지리적 루트를 보여준다. 기원 후 2000년의 역사시대에서 인류가 무엇에 현혹되고, 그 현혹을 지배하기 위해 어떠한 걸음을 걸었는지, 그것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초래하였는지, 그 영향은 긍정적이었는지, 혹은 부정적이었는지, 21세기 오늘에 생성된 새로운 실크로드는 무엇인지, 그래서 우리 인류는 이러한 역사의 과정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위해 어떤 행위가 요구되는지를 헤아리게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주의 깊게 읽게 하는 것은 바로 이 변화의 변곡점을 만들어내는 역사의 흐름이다. 그 흐름을 만들어 낸 계기와 그 기회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 깃든 이야기들이며, 그것이 바로 지배력이라는 힘의 생성이다. 이 힘은 자원의 지배권을 차지하고 지키기 위한 일련의 행위들로 이어지며, 그것은 위협과 폭력, 전쟁을 동반한 우월적 지배력의 행사의 동력이다. 이 원시적 야만성의 동력을 지지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그 질서의 점유에서 어떻게 경쟁적 우위를 확보하는 가에 대한 사유의 디딤돌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원 후 8세기의 이슬람 제국들의 풍요와 그 번영이 야기한 주변부의 양상들은 흥미로운 중세 유럽의 상황들을 보여준다. 당대에 루시로 불리던 오늘날 스칸디나비아 지역인 바이킹들이 번영의 중심인 페르시아에 노예를 팔아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는 것에서부터 동로마를 위협하던 튀르크 종족의 하나인 하자르 족의 아시아 북부 스텝지역의 교역 거점 확보를 통한 지위 확보의 행태 등은 명맥을 유지하던 동로마 콘스탄티노플로 대변되는 유럽의 기독교 세계의 문명적, 군사적 취약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특히 주목할 만 한 내용인데, 13세기 초부터 시작된 몽골의 세계 등뼈지대의 침탈이 가져온 사건이 세계 지배권을 오히려 유럽으로 전환시켰다는 아이러니이다. 몽골의 서진(西進)이 몰고 온 것은 중국과 중서부 아시아의 선진 문물의 유럽 전수와 같이 유익함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페스트를 몰고 온 경로이기도 했으니 이 질병은 당시 유럽인의 인구수를 3분의 1로 줄여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진짜 아이러니는 이 참혹한 죽음의 무도가 끝난 후, 유럽 세계는 페스트가 불러일으킨 공포와 달리 ‘줄어 든 인구’로 인해 자원 배분에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 구조 작동방식의 전면적인 재구성을 낳고, 사회의 부가 이들 유럽 사회에 고르게 배분되는 효과로 이어졌으며, 이는 소득의 여유가 되어 그들 산업의 투자 가속화로 인해 산업 발전을 자극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유럽 사회의 급속한 기술의 발전의 동력이 되었으며, 시민 의회가 등장하는 것도 이즈음이다. 몽고의 세계 지배권을 확장시킨 서진이 시작된 13세기부터 15세기에 이르는 200년간이 오히려 주변부 유럽이 동방으로부터 오는 물질과 사상의 교역 거점을 차지하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세계의 변방이었던 유럽이 중심부로 얼굴을 드러내는 세계사적 전환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의미심장한 세상의 심원한 우발성을 목격하게 한다. 아마 이 극적인 세계사의 분수령적 시기가 세계사가 유럽 중심사로 다시 조작되어 쓰여지는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항해술과 선박 건조술, 빈번한 이웃들과의 그칠 줄 모르는 전쟁으로 다져진 전쟁 도구의 발전은 정말 우스꽝스런 사건으로 이어지는데, 자신들의 힘에 대한 자신감은 동방이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 성지의 탈환이라는 환상적 야욕으로 분출된다는 점이다. 성지를 탈환함으로써 거룩한 신앙의 회복을 이루겠다는 노골적이고 거짓투성이의 명분을 내걸고 영토 확보를 위한 출정을 수행하는 것이다.
잘 알려진 콜롬부스라는 인간 또한 이러한 사기술에 편승해 거짓 명분을 내걸고, 예루살렘이 있는 동쪽이 아닌 서쪽 대서양으로 출항하는 것인데, 이는 인도아대륙의 풍부한 자원과 문명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루트를 찾아내기 위한 은폐된 야심으로 시작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러한 상황은 배제된 채 서인도제도, 즉 중앙아메리카를 최초로 발견한 창의적 탐험가로 배우고 있다. 인도로 통하는 항로를 발견 독점함으로써 베네치아 및 제노바 등 동방과의 교역 거점을 이미 점유하고 있는 경쟁 도시국가들의 방해 없이 자원을 지배하고자하는 욕심의 행위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콜롬부스가 도착한 곳은 인도의 서쪽 해안도 아니었으며, 그 어떤 문명적 물질도 보지 못했다. 그는 거짓 보고를 통해 풍부한 금과 은, 무진장한 보물이 있었다고 선전한다. 그의 오판과 실패야 어쨌든 이 서쪽 대서양으로의 탐험은 새 영토에 대한 환상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코르테스의 아즈텍 문명의 잔혹한 침탈과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주변부에 불과했던 이베리아 반도의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얻는 기회로 이어졌으니 기록될만한 역사적 사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금과 은을 비롯한 자원은 약탈품, 그러니까 공짜로 얻은 부다. 이 넘쳐나는 부는 항상 노예를 부른다는 것을, 다시 말해 한 부분에서 다른 곳으로 부가 집중된다는 것은 빼앗긴 곳의 속박과 함께한다는 불변의 철칙을 보여준다. 부와 속박은 함께한다. 기적에 가까운 부의 증가는 에스파냐를 유럽의 강자로 만들어주고, 또한 노예무역의 지배적 위치로 인하여 쌓은 부는 교황을 조종하며 종교적 권위를 두른 맹주로 군림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것은 정말 흥미로운데,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의 유럽이란 얼마나 혹세무민하고 위선적 명분으로 종교를 뒤집어 쓸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입증한다.
아마 주변부중의 주변부였던 여전히 별 볼일 없던 섬나라 잉글랜드가 에스파냐와 벌이는 전쟁의 결과처럼 인류의 역사를 완전히 뒤바꾸는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될 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튀르크에 의한 함락으로 동로마라는 고대와 중세 유럽의 시대는 가고, 새로운 유럽, 잉글랜드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잉글랜드의 부상(浮上)은 어쩌면 인류사의 비극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유럽의 역사라는 것을 들여다보면 이들은 15세기에 이르기까지 동방의 부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약탈적 종족들이었다는 것이 옳은 해독일 것이다.
이웃 도시들과의 처절하고 잔혹한 전쟁을 통한 약탈, 지배권의 독점을 위한 끊임없는 전쟁의 연속이었으며, 그것은 이들의 행태 저변을 이루는 탐욕스런 야만성이다. 이들 착취 문명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자 ‘르네상스(Renaissance;부흥)’라 부르며 마치 옛 영화가 있었던 주인공처럼 주장하고 있지만, 세계사의 주변부였던 유럽은 이 때 비로소 처음으로 세계의 중심에 낯을 들이민 것이다. 그러니 저자의 표현처럼 그냥 ‘네상스(Naissance;탄생)’라 부르는 것이 진실한 언어일 것이다.
16세기 이후 이 책의 역사 기술은 더욱 신랄한 언어들로 바뀐다. 잉글랜드가 세계의 지배자로 등장함에 따라 세계사는 약탈 이데올로기에 의한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도둑놈 눈에는 모든 것이 도둑질의 대상이요, 타인 모두가 도둑놈으로만 보이는 것이라고 하는 말처럼, 잉글랜드의 관점에서는 자신 외의 모든 국가는 약탈의 대상이요, 적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이 말은 상상의 관념적인 언어가 아니라 이들이 저지른 모든 역사의 증거가 그렇다고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16세기부터 20세기 중반의 시기에 이르는 이 책의 서술은 잉글랜드를 비롯한 후진 유럽 국가들의 세계를 향한 탐욕과 약탈의 역사이다. 서로 증오하고 배신하며 죽이는 역사, 타인과 타지역을 유린하고 수탈하며 기만하는 배신의 역사, 이로 인해 골 깊은 불신에 매몰되어 불안을 지우기 위해 폭력과 전쟁이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역사를 보여준다. 동방의 자원 거점지역과 산유국들의 독차지를 위한 양차대전의 은폐된 동기들, 믿지 못해 영혼 없는 동맹을 맺고,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불신의 불안으로 뒤통수를 치고 상대를 향해 침략을 서슴지 않는 영국을 비롯한 독일, 러시아 등 이들 유럽국의 행태는 식민지 수탈과 제국주의의 혐오스러운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오늘에 이어지는 세계 질서의 뿌리에 도사린 속성을 보여준다.
왜 이슬람 국가들이 모여있는 서아시아와 발칸, 크림 반도에 있는 동유럽 국가들이 혼돈에 허우적대는지 그들에게 쌓인 세계에 대한 불신의 근원을 이루는 역사적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영국, 러시아, 미국, 세 강국이 2차 대전 중에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연필로 죽죽 그어 댄 남의 나라 영토의 분할과 지배권 할양이 초래한 불의한 힘의 남용이다. 주인있는 남의 나라 자원을 마치 무주공산의 자원처럼 수탈하는 영국 등 서유럽 국가들의 행태나,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거나 저항하면 위협과 폭력, 전쟁을 불사하고, 해당 산유국들의 군주에 막대한 뇌물을 주어 영합하면서 그들 국가와 인민들을 빈곤의 나락에서 신음하게 하는 것은 이들 제국주의 유럽 국가들이 대외 명분으로 내세우는 민주화 및 건전한 사회적 안정화라는 허울 좋은 위선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란, 이라크, 시리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등, 이들 국가들이 서방국가들에 반기를 들어 올리고 그들의 어떤 말에도 불신을 보이는 것은 근대 수백 년 동안 이뤄진 이들의 기만과 배신, 착취와 수탈이 초래한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영국의 페르시아(이란 이슬람 공화국으로 국명을 바꾼 것이 1972년이다)로부터의 지배력 후퇴와 미국으로의 힘의 불가피한 이전은 영국에 대한 이들 산유국의 증오와 혐오의 정도가 과연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의 일례라 할 것이다. 타종교에 대한 관대함을 보이던 이 이슬람 지대가 근본주의적 종교 지대로 변화한 것은 이러한 유럽 제국주의의 오랜 기간의 기만과 수탈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쥐어짤 수 있는 부의 밑바닥까지 훑어가며 저지르는 그 잔혹성은 오늘날 유럽의 우월적 부의 중심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의 실패가 야기한 근래의 상황이나 이라크 침공의 거짓 명분, 지금도 이란에 취해진 금수조치와 금융거래 정지로 인한 미국과의 갈등에 도사리고 있는 제국주의적 추악한 이기적 탐욕의 뿌리를 읽을 수 있다. 미국의 위선과 기만정책은 한국도 예외 지대가 아님은 물론이다. 2000년간의 역사 시대를 한 마디로 논하라한다면 아시아 대륙의 등뼈를 지배하기 위한 쟁탈의 역사라 할 것이다.
실크로드, 동서를 잇는 루트에 위치하여 물질과 사상과 종교가 모여들던 곳, 풍요와 번영으로 화려한 문명이 꽃 피던 곳, 이들 중서부 아시아 지역의 거점 지역을 차지하려는, 또한 그들을 복속하고 점령하기 위한 폭력과 전쟁의 역사라 할 것이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에 도달하면서 제국주의 유럽 중심의 시대는 저물고, 그들의 말처럼 “필연적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재조정”하는 정책을 세워야 하며, “2040년까지는 ‘전환의 시기’가 될 것”이라는 절제된 예측의 시대가 도래 했다.
자원의 지배와 그 거점지역에 대한 패권을 차지하려는 인간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은 매 페이지마다 빛나는 통찰을 통해 탁월한 교훈을 읽도록 촉구한다. 그것은 주인과 노예의 오래된 변증법적 전환, 즉 노예의 주인 됨의 수많은 역사적 사실의 보여줌이며, 단기적 이익 앞에 사라진 도래할 장기적 상황의 끔찍함에 눈을 감았던 제국주의 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행태로 발견케 되는 폭력의 야만성과 자멸성, 그리고 종교와 전쟁과 상업의 관련성과 그 불가분한 동반적 교류 및 진퇴의 양상들, 인간의 부 축적과 노예라는 인간 상품 거래의 상관성 등 무궁무진한 역사적 진실들을 접하게 된다.
또한 국제 질서, 국가 간의 외교 근간에 놓여있는 비밀과 그 은폐된 위선을 통해 21세기 새로운 질서의 시대에 어떤 선택이 유효할 것인지를 숙고하게 해주기도 한다. 지금 아시아의 등뼈 지대가 다시 부흥하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르네상스다. 새롭게 복원되는 실크로드, 변화하는 세계 질서의 뿌리, 그 연원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들은 이제 어디에 서야 하는지,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지, 주변부에 여전히 머물러 있을 것인지, 중심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와 실천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가늠해보는 최적의 역사서가 되어 줄 것이다.
주의 깊은 통찰과 예리한 역사 비평의 시선이 우아하고 수려한 문장으로 서술되어 읽는 이가 지루할 틈이 없는 저술이다. 숨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두툼한 이 역사서를 손에서 놓지 못하도록 강제한다. 세 책으로 분권된 판본이길 망정이지 합본된 책이었다면 잠도 자지 못했을 것이다. 외교, 통상산업, 국방 분야의 관리들과 정치인들, 지혜를 쫓는 청장년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