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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크리스토프 1 ㅣ 동서문화사 세계문학전집 32
로맹 롤랑 지음, 손석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6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글은 로맹 롤랑의 10장 혹은 10권의 대하소설 『장 크리스토프(Jean Christophe)』중 1~5권에 대한 독서 후기이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쓴 『빌헬름 마이스터』와 비견되는 프랑스 교양소설의 대표작으로 불리기도 하는, 악전고투하는 인간 영혼의 격동적 인간의 목소리이다. 이 소설은 한 인물을 내세워 그 어떤 허위의 영웅주의를 그려내려는 케케묵은 교훈주의가 발붙이려는 작품이 아니다. 지식인이라는 얼굴 뒤에 숨어 비열함을 배설하는 이 세계의 권위와 질서에 충돌하며 자기 이상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하는 한 인간이 겪어내야 하는 숱한 굴욕과 좌절의 실체 속에서 지극히 인간적 감정이 들끓는 감동적인 생명의 서사시라 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을 하나의 ‘음악의 시’라고 부르는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소설은 주인공의 유아기를 보여주는 ‘새벽’을 시작으로 ‘아침’, ‘청춘’ 과 같은 인생의 성장기를 표현하는 장을 거쳐, 성장한 인간이 겪어야 하는 이 세계의 온갖 갈등과 증오, 무기력과 절망, 그 속에서 다시 솟구치는 노여움과 분노에서 길어 올린 삶의 강렬한 욕망의 무대들과 마침내 ‘새로운 날’에 이르는 총 10개 장(혹은 권)으로 구성된 대하(大河)소설이다. 1890년에 시작된 발상으로부터 10여년에 걸친 집필 끝에 1912년 6월에 탈고한, 한 작가의 인간과 세계에 대한 모든 이해가 망라된 필생의 역작이다.
10개의 장은 각기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던 듯하다. 이 동서문화사의 번역판본으로 1,700여 쪽이니, 여타 국내도서 판본으로는 2,500여 쪽에 이르는 분량이라 해도 될 것 같다. 한 호흡에 내달려 읽을 작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양적인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작품의 감상이라는 점에서도 각 장(권)을 기준으로 천천히 음미하며 읽도록 작가는 애초에 권유하려 했던 듯싶다. 각 장(章)이 한 인간의 특정 시기에 마주해야 하는 체험의 성분이다 보니, 그 고유한 경험의 세계들마다 독자들의 마음에 건네는 현상들이 다를 것인 까닭이다. (이를테면 ‘새벽’은 초등생이, ‘아침’은 중학생이, ‘청춘’과 ‘반항’은 고교생이, ‘광장시장’ 이후는 대학생과 성년의 독자가 읽는 것과 같이)
소설은 제3의 관찰자 시점으로 씌어져있는데, 다분히 전지적 작가시점이라 해도 될 것 같다. 이러한 시점이 직접으로 드러나는 5장 혹은 5권인 「광장 시장」에는 ‘저자와 그림자와의 대화’라는 작가와 주인공인 크리스토프와의 대화 장면을 통해 이 세계에 저항하며 단독적인 세계, 크리스토프가 삶의 목적으로 믿는 선을 위한 투쟁과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관계의 고려와 선을 위한 싸움에 도사린 악의 지향성에 대한 담화로 작가가 개입한다. 이것은 작가 로맹 롤랑이 작중 인물인 크리스토프에 대한 깊은 애정과 바로 작가자신의 이상을 투영한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 천재 예술가, 이 세계의 부패와 자기 몰이해에 도전하는 혁명가로서의 인물에 대한 존경의 의지를 반영한 작품이라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1권 - 「새벽」
1장 또는 1권에 해당되는 「새벽」은 아기 ‘장 크리스토프(이하 ’크리스토프‘라 표기)’와 그의 가계에 대한 묘사로 이루어져있는데, 할아버지인 전직 궁중 악장 출신인 장 미셸이 요람에 누워있는 크리스토프를 보고 내뱉는 인상적인 말로 시작된다. “이거 참 밉게도 생긴 놈이로군! (...) 아무 걱정할 것 없다. 얼굴이야 차차 변하는 거니까. 못 생겼으면 어떠냐! 이 애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야. 훌륭한 사람이 되어달라는 거지.”
장 미셸의 아들인 크리스토프의 아버지 멜키오르는 아버지의 후광 덕에 궁중 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살아가지만 한미(寒微)한 집안의 여식인 아내 루이자와의 결혼을 후회하며, 이것이 자신의 출세를 막아선 것이라며 가장의 역할은 물론 궁중 음악가로서의 역할마저 소홀히 하기 시작한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루이자는 궁핍을 면하기 위해 마을의 피로연이나 연회 등에 요리사로 품팔이를 나서는 고통을 겪는다. 나태하고 술주정에 세월을 보내는 아들을 대신하여 장 미셸은 며느리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몇 푼에 불과한 연금을 쪼개 가계를 돕고, 크리스토프에 음악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삶에 대한 기개와 가치에 대한 경험들을 들려준다.
생 마르탱 수도원의 장중하고 완만한 종소리가 밤공기 속으로 울려 퍼지고, 그 영묘한 음악이 어린 크리스토프에게 풍부한 젖처럼 그의 속으로 흘러들어가며, 세상이란 온통 자유롭고 밝은 미래와 안락한 보호로 이루어져 있다고 여기던 여섯 살 아이는 어머니 루이자가 품팔이 일을 하는 집을 찾아갔을 때 마주친 사건으로 인해 인간 중에는 명령하는 사람과 명령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기네 집 식구나 자신은 명령하는 사람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닫는다. 어머니에게 명령하던 한 여인은 어린 크리스토프를 자신의 아이들에게 끌어다 놓는다.
크리스토프의 추레한 옷차림은 곧 가난뱅이 아이로, 무시하고 노리개로 삼아도 문제가 되지 않을 아이로 인식되고 놀림과 폭행을 당한다. 크리스토프는 저항 끝에 그 집 아이를 때리게 된다. 이 장면은 내게 아주 익숙한데 우리 주변에서 늘 관찰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잘못한 아이들은 자기 부모의 권력 뒤에 숨어버리고, 약자의 자식은 바로 비굴한 자기 부모에 의해 얻어터지는 상황 말이다. 어린 크리스토프는 격렬한 고통에 사로잡힌다. 참담하고 미칠듯한 분노가 들끓는 여섯 살 아이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진다. 아마 타인의 악의에 대한 최초의 인식이고 부끄러움과 부정에 대한 반항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 유아 성장기인 ‘새벽’은 보통의 인간에게는 발생치 않는 하나의 사건이 더해지는데, 크리스토프의 음악, 특히 작곡과 연주 능력의 천재성이다. 주정뱅이 바이올리니스트 아버지 멜키오르는 아들 크리스토프의 작곡 능력을 폄훼하고 한갓 유치한 아이의 흥얼거림으로 무시하지만, 할아버지 장 미셸이 크리스토프가 흥얼거린 선율을 악보로 표기한 것을 보자 야심으로 돌변하여 크리스토프를 채근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이 부당한 강요를 읽어내고 좋아하던 음악에 혐오를 느끼고, 연주하기를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그럴수록 학대는 심해지고, 할아버지가 들려주던 위대한 음악가로서의 희망으로 이내 굴복한다. 멜키오르는 대공으로부터 크리스토프가 작곡한 음악 연주회를 승낙받기에 이르고 크리스토프는 공식 궁중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등록된다. 음악 천재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대공의 보호 하에 있게 됨으로써, 음악가로서 지위가 인정되고, 그 능력 발산의 토대가 갖추어진 것이다. 이것은 멜키오르의 가정에 대한 책무를 더욱 방기하게 하고 어린 아이는 가계의 일정 벌이를 책임지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고작 여섯 살이다.
한 인간의 새벽에 이미 세상의 오욕과 허위, 고난과 역경이 몸에 새겨진 것이다. 어린 크리스토프와 어머니 루이자의 미약하지만 든든한 후원자였던 할아버지 장 미셀마저 죽음으로써 그야말로 가계는 침몰한다. 크리스토프가 궁중 악단원으로서 받는 급여까지 빼앗아 술로 탕진하는 아버지, 어린 아들의 짐을 덜기위해 품팔이를 하는 루이자, 급기야 아버지 멜키오르마저 술에 절어 싸늘한 시신이 되고, 열 네 살의 크리스토프는 두 동생과 어머니의 삶을 꾸려내야 할 가장의 무게를 지게 된다. 이제 어린아이는 「아침」을 맞는다. 시쳇말로 소년가장인 크리토프가 청년으로 가는 길목이다. 외톨이, 세상에 대한 신뢰가 손상되었더라도 아직은 여전히 천진난만한 소년이다.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토해 낼 대상이 없던 소년에게 다가 온 우정은 지고한 행복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몽땅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즐거움, 그러나 세상은 그러한 소년들의 우정을 그 자체로 보아주지 않는다. 그 우정에 파렴치하고 불쾌한 빈정거림이 파고들고, 그들 천박한 호기심은 심연을 열어 보여주게 된다. 천진난만했던 관계는 그렇게 더럽혀지고 변해버린다. 그들은 서로 낙담하고 우정은 어둠에 묻혀 사라져 버린다.
2권 - 「아침」
그러나 인생의 아침 아닌가. 사랑은 다시금 소년의 마음으로 들어차고, 집 앞 오랫동안 비어있던 저택에 과부가 된 추밀고문관의 아내인 폰 케리히 부인과 그녀의 여식 민나가 돌아와 살게 된다. 여인은 궁중 연주회에서 본 한 마을의 소년에 대해서 알아보고 그를 민나의 피아노 선생으로 고용한다. 그들은 동정과 흥미로 소년을 고용했을 뿐, 결코 교육도 훈련도 받지 못한 이 야생의 소년에 대해서 그 어떤 진심도 가지지 않았다. 소년은 그들의 빈정거림을 알 아 볼 수 있는 능력이 아직 없었다. 그네들은 그의 책, 담화, 교양전반에 대한 무지와 조잡한 행동거지에 대한 한탄을 감춘 채 얼마간의 은혜를 베푸는 보호자인 척 하는 태도를 고수한다. 여식인 민나 또한 크리스토프는 “보기 흉한 가난뱅이 소년이며, 가축 이상으로 생각지 않고” 있었다.
고립된 공간에 갇혀 지내는 소녀와 외톨이 소년의 반복되는 만남은 산골짜기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안개처럼 무턱대고 솟아나는 연정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소녀는 여인다운 교태로 소년을 유혹하고 그 풍부한 사랑의 감정에 매몰되어 버린다. 세상은 그렇게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능청스럽고 시치미를 뗀 체 소년의 행동을 관찰하는 눈은 딸과 함께 여행을 떠나버린다. 이윽고 소녀의 부재를 안달하던 소년에게 도착한 편지는 “너무 흥분하지 말고, 편지도 보내지 말아달라”는 단교의 내용이다. 소년에게는 집에 돌아왔다는 전갈도 전하지 않는다. 뒤늦게 사실을 안 소년은 달려가지만, “우리 딸애를 유혹하다니, 정 말 뜻 밖” 이라는 말과 함께 “두 사람은 안 된다. 신분만 해도...”라며 딱 잘라 멸시적 요소를 담아 냉담한 눈초리를 보낸다. 열다섯 살 소년 크리스토프는 그토록 우아한 영혼이라 생각했던 두 모녀의 무정함을 비로소 감득하고 호되게 따귀를 맞은 느낌으로 수치와 노여움으로 몸을 떤다.
소년은 되찾을 수 없이 잃어버린 부질없는 생애의 절망감에 짓눌리며 깨닫는다. “인생이란 휴전 없는 무자비한 투쟁”임을. 눈에 보이지 않는 적군, 추하고 어두운 욕망, 인간을 타락시키고 절멸시키려는 것들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는 것을. 소년 크리스토프는 그렇게 하나의 인간, 그가 되어야 할, 성취하여야 할 섭리로서의 인간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며, 청춘이 된다. 3장 (혹은 3권) 「청춘」은 여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함으로써 비록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기성의 인간 세계의 질서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작품의 중요한 한 축이라 해도 될 것 같다.
3권 - 「청춘」
크리스토프의 ‘청춘’은 이 세계의 냉엄한 시선으로부터의 깨달음인 자기되기로 시작한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켜켜이 쌓인 쓰라린 고뇌를 숨긴 채 세계를 뚫어보는 시선을 가진 인간으로서, 가계의 돌봄과 자신을 위해 착실하게 피아노 교습을 통한 벌이와 작곡을 위한 작업, 궁중 연주를 묵묵히 수행해 나가고, 아버지의 죽음과 동생들의 분가로 어머니와 함께 시장 거리에 있는 작은 집에 셋집 생활을 꾸려나간다. 겸허하고 선량한 여인네의 삶밖에 알지 못하는 어머니, 루이자는 참아왔던 현실의 삶에 지쳐 이제 모든 기운을 잃어버리고 의지의 힘을 상실한 채 무기력으로 빠져든다. 자신의 괴로움에 빠져 어머니의 고통을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이내 지난날의 유물 속에 좌초한 어머니를 발견하고 아들은 마음 아프게 불쌍한 영혼, 어머니를 동정심으로 안는다.
청춘의 도입부는 이러한 두 모자와 더불어 이사집의 집주인 오일러의 가족들을 통한 독일 소시민들의 면모를 보여주려는 듯 한데, 그네들 교양이란 것의 한계, 기질들, 허영심과 하찮은 명예의 집착, 궁구하지 않은 맹목적 종교관에서 보이는 신앙의 이기주의 등, 독일인에게 자리잡은 이상주의의 허위가 배경이 되어 흐른다. 무엇보다 크리스토프가 경험하는 최초의 이성과의 사랑, 자비네, 아다, 로자 등 여인들과의 사랑과 이별에서 드러나는 허무와 씁쓸한 기쁨들, 닳아빠지고 시든 영혼들, 정열적 환각, 사랑의 전율, 그리고 치명적인 나날의 소모, 상실과 살아감의 이유를 직시하는 위기와 극기로서의 시간이다.
삶에 대한 희망을 품었지만 현실의 경험들은 치욕스러움과 비겁함과 자기 맹세의 배신을 요구한다. 그는 세계와 자신에 대한 믿음에 고뇌한다. 떠돌이 행상인 외삼촌 고트프리트는 어디에도 붙들려있지 않은 문자그대로의 유목민적 삶을 실천하는 인물인데, 매년 연례행사처럼 누이 루이자의 가족을 찾아오고, 그때마다 크리스토프는 외삼촌으로부터 어렴풋 현자의 면모를 발견한다. 외삼촌은 청년의 정신적 삶에 대한 유일한 조언자로서 인생의 길을 조언한다. 인간이 희망을 품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은 전혀 별개가 아님을, 인간은 결단코 희망과 살아감에서 싫증을 느끼지 않는 것이라고. 따라서 믿음이 없다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는 것임을, “해가 뜨는 데 대해서 믿음을 갖”듯, “오늘 일을 생각하고 이치 따위란 버리라고, 생활에서 억지를 버리고, 하루하루에 대한 믿음을 갖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삶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읽어나가던 중 내 마음을 가득 채웠던 문장이 있다. 조카에게서 고트프리트는 불가능한 것을 해내려 몸부림치는, 그 이상의 것을 바라는 욕망을 발견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하면 되는 것”을 이라고, “너는 오만하다, 너는 영웅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것밖엔 못하지...영웅이라? (...) 난 이렇게 생각한다. 영웅이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다른 이들은 그걸 하지 않는단다.”
4권- 「반항」
크리스토프는 이 말의 충일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 역량을 초월하려는 시도가 없는 삶이란 보람 없는 삶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후일 그가 보다 넓은 세계에서 지식과 관계의 경험들이 쌓였을 때 그는 알아차릴 것이다. 크리스토프는 이것만은 깨우쳤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기 자신으로 있다는 자유의 즐거움을 각성한 것이다. 청년은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삶의 전환기를 맞는다. 맹목적 반동의 시기이자 자신이 진실이라 시인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되는 그러한 시기에 도달한다. 제 4권 「반동」은 기성의 음악계와 대중의 인식에 도전하는, 자기 확신에 찬 젊은 열정이 세계로부터 소외되고 마침내 무수한 장벽 앞에서 부정되고 좌절하는 인간을 보여준다. 독일의 허위의식을 꿰뚫어보게 된 이 청년 음악가는 기성의 위선적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들, 그리고 대중의 무지를 본다. 이러한 그의 비판적 목소리는 위험하고 해괴한 짓거리로 치부되고, 악의적 소문이 되어 소도시를 휩쓴다.
그가 작곡한 독일인의 무기력에 대한 반동의 비판에서 출현한 작품은 철저하게 외면되고, 그의 음악을 조롱하기 위한 작당모의에 의해 안전히 추락한다. 시기와 몰이해, 수구적 보신주의가 팽배한 세계에서 새로운 세계로의 지향을 말하는 음악은 발붙이지 못한다. 대중과 기성의 권력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기에 이 청년의 음악은 무례하고 기이한 것이었으며, 그의 성장을 결코 허용하지 못한다. 작곡가가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고 발표할 수 없다면 토대가 없어진 것과 같다. 그는 비평지에 음악비평을 맡게 되고, 독일의 엄격주의와 속물근성을 비웃음 섞인 관찰안으로 날카롭게 벼려 혹독하게 비판한다. 그의 비판은 작곡과 음악 연주가들을 넘어 가수를, 나아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멍하니 입을 벌리고 연주를 듣고 있는 청중들까지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기성의 권위에 대한 비판을 넘어 대중을 적으로 돌림으로써 그에 대한 비난과 질시는 극에 이른다,
여기서 멈추어야 했는데, 젊은 열정은 내친걸음에 동료 비평계에 훈계를 가하기 시작함으로써 비평가들을 연결하는 상호 암묵적 약속을 난폭하게 깨부숴댔다. 그는 곧 공적 질서의 적으로 간주되고, 무차별 공격의 대상이 된다. 인간은 자기 확신으로부터 빠져나오기가 본디 힘든 존재이다. 크리스토프는 이제 싸움을 할 바에는 머리가 터지는 인간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로 미친 사람처럼 공격을 계속한다. 앞날을 위한 어떠한 보신처도 마련하지 않은 이 천둥벌거숭이는 급기야 위협을 느낀 비평지로부터 쫓겨나고, 대공의 보호막이었던 궁정연주자의 지위까지 박탈당한다. 크리스토프를 지지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알려지자 수많은 적이 나타나 크리스토프를 공격 보복한다. 승자에 아첨하고 패자를 욕함으로써 자신들의 무지와 욕망을 감추려는 비겁한 자들은 “그의 교향곡은 정신병원에서 태어 난 것이다. 그의 경련적 화성은 마음이 메말라 있는 것과 사상이 없는 것을 기만하려는 수작”이라고 까지 살인적 비평을 쏟아낸다.
홀로 버림받은 음악가, 모든 출구가 닫혔다. 궁여지책에 자비를 들여 작곡한 것을 출판하여 자신의 음악을 알리고자 하지만 6개월 동안 단 한부도 팔리지 않는다. 생계에 대한 위협으로 청년 천재는 그의 처지를 이용하여 값싸게 음악교수를 얻으려는 반종교적 학교에 자리를 잡는다. 그는 박물학을 가르치는 라인하르트 교수의 부인과 공동의 관심사와 친절을 받게 된다. 선량한 교수 부부의 초대에서 그는 애정과 감사의 기쁨과 배은망덕에 대한 대중의 혐오를 깨닫는다. 라인하르트 부인으로 불리는 안젤리카로부터 그녀의 출신지인 알자스지방과 프랑스, 라틴 문명에 대한 매혹을 간접적으로 듣게 된다. 독일의 기만적 이상주의에 똬리를 튼 그 허약함, 그 허위에 올라타 권세를 부리는 기성의 권력과 폭넓게 자리한 대중의 몽매성을 떠나 프랑스에서 새로운 출발을 꿈꾸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아들은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
작곡과 답답함을 피해 산책하던 중 들른 술집에서 병사들의 마을 처녀에 대한 성적 모욕을 목격한다. 그들의 행패를 참지 못한 크리스토프는 한 병사를 때려눕히고 커다란 부상을 입힌다. 이때 방관하던 마을 청년들이 가세하여 일군의 독일병사들에게 커다란 상흔을 남긴다. 갑자기 마을 사람들은 크리스토프를 지적하며 그로 인해 싸움이 시작되었으니 그를 군대에 넘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위협하기 시작한다. 피해 대상이었던 마을 처녀는 그들의 비겁을 지적하며, 크리스토프의 해외도주를 돕는다. 이 뜻하지 않은 사건의 범죄 용의자가 된 크리스토프는 불가피하게 파리로 탈주하게 된다. 아마 작가는 이들 농촌 마을의 술집 사건을 통해 당시 독일 소시민들에 팽배한 방관적 태도와 비겁함, 굴종적 인성을 들추어내려 했던 것 같다. 이는 크리스토프가 독일을 벗어나 프랑스로의 이주를 정당화하는, 그의 비판에 힘을 실어주는 적절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 예기치 못한 파리로의 도주는 젊은 비판적 음악가의 지성을 한층 넓고 깊어지게 해주는, 그러나 무수한 모욕과 배신, 좌절과 절망의 번민을 수반하는 그런 인생의 여정이 될 것이다. 5권인 「광장 시장」은 다층적 의미를 지닌 제목으로 여겨진다.
5권 - 「광장 시장」
주머니에 하루 여관비가 될까 말까한 궁박한 크리스토프가 자신의 몸을 누일 파리의 가장 누추하고 값싼 여관방이 있는 곳으로서 떠들썩한 광장시장이고, 그가 만나고 경험하는 프랑스의 음악과 소설과 시, 연극, 비평, 정치에 이르는 예술과 문화사회 전반에 대한 소란스럽기만한 현상으로서의 광장이자 시장이란 의미로 이해된다. 아마 작가 로맹롤랑의 당시 프랑스를 휩쓸던 예술을 위한 예술, 그 탐미적 세력에 올라탄 사회정치 전반에 만연한 위선과 탐욕, 부패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의 산물일 것이다. 작가는 이를 젊은 독일 천재음악가의 시선을 통해 우회적 비난의 목소리를 실어 직접의 공격화살을 피하고자 했던 것으로 의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크리스토프는 프랑스인들로부터 자기 이익을 추구하면서 입으로만 이상주의를 외치고, 예술과 미의 이름으로 국민의 일반적 풍조인 외설과 퇴폐를 은폐하고 있음을 간파한다.
이 장은 온통 프랑스 예술의 각 분야와 정치사회에 이르는 크리스토프의 편력기라 할 만큼 프랑스 사회 전 분야를 망라한 냉혹한 비판의 목소리로 가득 채워져 있다. 따라서 소설적 맛스러움은 가장 덜한, 그야말로 한 편의 프랑스 문예비평이라 해도 될 지경이다. 이 편력을 통해 크리스토프는 그들과 확연히 두드러진 자신의 개성을 확신하고, 그 힘을 배증시키는 시간으로 삼는다. 이 소설은 문학작품으로서의 범주를 초월한다. 새로운 행동으로 가열차게 내모는 한 인간에게 몰아닥치는 무수한 절망들과 그 모멸과 굴종과 실의를 추진력으로 삼기 위해 수없이 고뇌하는 한 인간 내면의 빛을 읽게 된다. 그럼으로써 소설은 이미 숭고한 하나의 정신사가 된다.
크리스토프는 이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은 어디서 연원하는 것인지는 6권~10권의 기대가 될 것 같다. 내 인생 여정에서 너무 늦게 이 작품이 도달한 것 같은 아쉬움이 있지만 새로운 삶들은 이 순간에도 새벽을 맞으니 그들에게 이 책은 인간과 인간 삶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주리라. 결코 시대의 유행과는 무관한 영원한 배움의 산실이 되어 줄 것 같다. 수많은 검증과 비판 속에서 살아남은 명작, 그래서 고전이라 불리는 명예를 지니게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