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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의 시칠리아 ㅣ 작가가 사랑한 도시 5
기 드 모파상 지음, 어순아 옮김 / 그린비 / 2010년 7월
평점 :
이 산문을 읽게 된 사연은 모순을 지닌, 조금은 괴팍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우선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읽으며 편치 않은 인간적 혐오스러움과 자기중심적이고, 편익을 위해서는 거짓말과 기만적 행동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이에 대한 반감의 촉발이 하나였으며, 채 50년이 되지 않아 반복되는 지중해 연안의 작열하는 태양 빛을 사랑했던 카뮈의 영혼이 이미 모파상에 의해 선취되고 있었다는 발견이었다. 이 두 관련 없는 동기는 모파상의 글을 읽으며, 한편으론 괴테의 오직 앎의 축적 시선이 아닌 감각과 영혼의 순수한 체험을 통해 불쾌함을 희석시키고자 하는 것이었으며. 또 한편으론 지중해 쪽빛 바다와 빛의 찬란함에 전율하는 두 유사한 정신에 감응하고자 하는 욕심이었다.
이제 괴테의 글을 내 마음에서 지워버린다. 이 자연그대로의 글에 대한 감응을 방해하는 기분, 그래서 분석적이 되려는, 괴테를 비난하고 싶은 읽기를 그만두었다. 1787년 4월5일 시칠리아의 주도인 팔레르모에서의 일기에 괴테는 “여기는 로마와 달라서 제작을 지배하는 예술 정신 같은 것이 없다.”고, 이에 더해 “아무런 취향이나 지도도 없이 한 장소에 가져다가 붙여놓아서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시칠리아에 대한 자신의 예술적 인상을 적고 있다. 자기가 알고 있으며 익숙한 것, 자신이 예술이라고 세운 기준에 벗어나는 것들은 여지없이 폄훼한다.
괴테의 여행으로부터 102년 뒤인 1889년 모파상의 팔레르모 첫 인상은 관대하게 열린 시선, 다름에 대한 수용의 정신으로 가득하다. 마차를 끌고 가는 짐승의 머리에 달린 방울 술과 요염한 마구, 알록달록 칠해진 마차들에 시선을 보내며, “흥미를 유발시키면서 우리가 어떻게든 풀어봐야 하는 수수께끼 놀이를 하듯 움직인다.”고 쓰고 있다. 이 젊은 예술가는 낯설고 이질적인 것을 자기 알량한 지식의 기준으로 재단하려하지 않는다. 물론 1세기라는 결코 짧지만은 않은 세월의 간극이 있긴 하지만 동일한 공간에 대한 감상은 무척이나 대조적이다. 때문에 정말 편안한, 자연같은 마음으로 이 산문을 읽었다.
『모파상의 시칠리아』란 표제를 한 이 산문은 1889년 우울증에 시달리던 모파상이 치료의 방편으로 떠난 여행 에세이로 1890년에 출간된 『La Vie errante (人生流浪)』에서 시칠리아 방문 부분을 발췌한 글이다. 그의 여정에 지중해의 가장 큰 섬 시칠리아 일주가 포함된 것은 파리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검은 철로 세워진 에펠탑, 즉 문명의 오만과 속물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혐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계적이고 냉혹한 이성주의가 인간 영혼이 지닌 아름다움이나 심미안까지 훼손시키고 있다고 여겼던 것 같다. 어쨌거나 이 부유한 젊은 예술가는 지적 미인인 어머니의 어릴적 친구인 정치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을 지닌 플로베르의 보호 하에 문학계의 사다리를 수월하게 오르며, 인기 작가이자 거장의 반열에 우뚝 선다.
모파상과 괴테는 팔레르모에 있는 노르만 궁전을 두 사람 모두 방문하게 되는데, 모파상은12세기에 건축된 이 궁전이 동서(그리스,비잔틴,아랍문명 등)의 여러 양식이 혼합된 시칠리아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절대적 걸작이라 감탄하지만, 꽤나 수다스럽게 작은 장소조차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는 괴테는 당시 총독관저로 사용되던 곳에 초대되어 방문한 장소였기 때문인지 이렇다 할 의견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는 총독 옆에 앉아 식사했다는 언급과 자기 여행에 편의를 제공해주겠다는 총독의 친절만을 쓰고 있다. 즉 자기 명성의 과시에 열중하고 있었기에 정작 궁전의 매력적인 아름다움은 인식조차 못한다. 모파상은 12세기의 노르만인들이 세운 거대한 요새에 장식된 치장 벽들과 숨겨진 듯 자리잡고 있는 그 안의 붉은 빛이 은은하게 발산하는 작은 팔라티나 성당의 장식예술과 색채가 형태에 미치는 거의 관능적인 아름다움에 감동받고 사로잡히기까지 한다.
인간의 마음이란 이처럼 다른 것이리라. 자신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찾은 자와 목적 성취의 수단을 위해 찾은 자의 감상은 이처럼 천양지차이다. 시칠리아 유적들로부터 창조성의 재인식과 심미안을 개발시켜 주리라는 참모습을 발견할 준비가 된 인간에게는 숨겨진 의미들이 찬란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 영감의 빛을 무한히 발산한다. 모파상은 소설가로서의 목표를 “이야기 사건 내부에 깊이 감춰져 있는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 이해시키는 데 있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감춰진 것의 의미를 발굴하려는 의지는 이렇게 다른 문화에 대한 관대하게 열린 시선일 것이다.
이 산문에는 몇 가지 특이한 감상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회랑에 매달려 가족들이 찾는 미라가 된 시체들이 전시되어있는 ‘카푸친형제회 수도원의 지하묘지’의 장장 여섯 쪽에 걸친 관람기다. 시체를 잘 분해하는 수도원 땅 덕택에 1년 동안 검고 마른 살갗의 미라로 만들어, 이 미라에 옷을 입혀 가족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이상하고 기괴한 방식으로 옷을 입은 해골 무리들로 채워진 지하묘지, 금속왕관을 쓰고 하얗게 몸치장을 한 처녀 미라들과 작은 유리관에 있는 아이들의 미라까지, 게다가 생전의 사진까지 같이 걸려있어 그 대비가 일깨워주는 충격적인 장면들이 불길하게 코믹스러우면서 참을 수 없는 웃음까지 던져줬다며 죽음의 사육제를 묘사하고 있다. 이 장황한 묘사는 모파상의 우울증이 심각한 정신질환적 국면에 이미 진입해 있었던 것임을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이 여행 이후 4년이 지나지 않은 1892년의 자살시도와 1893년 사망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엉뚱한 길로 빠졌는데, 이 글의 진정한 맛은 모파상의 지극히 친근하고 평범한 시선, 인간미다. 괴테에게는 발견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시선, 연민과 동료애, 인간과 자연과 옛 인간들의 손길이 만들어 낸 유적의 일체적인 감응이다. 화산섬이다 보니 화산에 오르는 여정이 모파상이나 괴테 모두에게 기록되고 있는데. 둘 모두 유황가스와 불꽃이 피어오르는 분화구 가까이 다가가는 행위는 유사하지만 세부에서 커다란 차이가 발견된다. 괴테는 호기심, 암석과 화산활동이라는 법칙의 관찰로써 앎의 축적이지만, 모파상에게는 인간 영혼에 불러일으키는 감각에 대한 체험이고, 생의 의지의 환기이다.
모파상은 울부짖는 유황광산의 거친 계단을 기어오르는 10~12살 어린아이들의 고된 노동을 바라본다. 바구니에 유황덩어리를 가득 채우고 나르는 작고 말랐으며 안색이 누런 아이들, 가장 고통스러운 광경이었다고 모파상은 쓰고 있다. 괴테에겐 이런 시선이 없다. 단순히 시차의 간극에서 오는 생활상의 변화로만 보기도 힘든 것이 이미 괴테의 시대에도 이러한 노동은 흔했다는 점에 있다. 문학의 의무란 무엇일까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Venus Laudolina, sculpture, Museum of Syracuse, Sicily, Italy】
아마 이 산문의 가장 멋들어진 부분이 될 듯한데, 오늘날 ‘시라쿠사의 비너스’로 불리는 머리와 한 쪽 팔이 없는 토르소에 대한 감상기다. 모파상은 대리석으로 조각된 이 고상한 여인이 여행을 결심하게 만든 것이라 쓰고 있듯, 이것이야말로 오염된 근대문명을 일깨우는 예술의 재인식과 부흥을 위해 당대에 요구되는 예술의 전범(典範)이라 생각했던 것인 모양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너스라 부르며, “그녀는 있는 그대로의 여인, 우리가 사랑하는 여인, 우리가 갈망하는 여인, 우리가 포옹하고 싶은 그런 여인이다.”라는 찬양으로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급기야 “나는 그보다 감동을 주고, 그보다 더 주목을 끄는 인간의 모습을 본적이 없다.”고 쓴다.
“숨기는 듯 감추고, 가리는 듯 드러내며, 유인하는 듯하면서 숨어버리는 수줍음과 관능으로 가득 차 있는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몸짓은 지구 상에 있는 여성의 모든 모습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리석은 살아있다. [...] 그녀는 신성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74쪽
이름 모를 고대 예술가에 의해 예언된 인간의 계략이자, 삶의 황홀한 신비를 감추기도 하며 보여주기도 하는 파로스의 대리석으로 조각된 작품이야말로 그가 찾으려했던 새로운 예술의 지향점이자 감흥이기도 했음일 것이다.
카뮈가 「티파사에서의 결혼」에서 말했던 “야생의 푸른 하늘과 꽃으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끓는 빛 속에서 말하는 신들의 세계”는 20여 개의 도리아식 거대한 신전의 폐허가 평원 전체를 가득 채운 지르젠티에 있는 ‘신전의 계곡’에서 부풀어 오른 모파상의 감동어린 문장으로 그 유사한 감각 이미지들이 다시 100년 남짓 시간 뒤의 독자에 그대로 되살아난다. 폐허와 봄의 결혼, 이 세계와 인간의 결혼, 아마 공감은 인식으로, 관능은 의지로 심화되는 이 감응의 경이로운 묘사는 현존하고 있다는 느낌, 실체감인 생에 대한 사랑의 찬미로 다가온다.
지중해의 쪽빛 바다에 쏟아지는 태양을 사랑했던 이 두 예술가들은 마치 인간 정신을 승계하듯 고독에 대한 사랑, 죽음에 대한 항구적 반항과 병을 감추려는 본능조차 닮아있다. “전율하고 싶은 욕망 없이, 영혼 속에 긴 여행에 대해 전율하는 갈망을 일깨우지 않고 빛을 볼 수 있는가?”고 묻는 모파상을 어찌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한 인간의 예술적 영혼이 그려낸 산문을 읽으며 나는 완전히 매혹되었다.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재능과 선으로 유혹하는 신비스런 비밀을 간직한 가히 우아하다고 할 글이다. 모처럼 영혼이 휴식할 수 있는 독서였다고 감히 말하련다. 300여 편에 이르는 중단편 소설과 여섯 편의 장편을 남기고 마흔셋이란 젊은 나이에 생을 달리한 천재 예술가의 작품들에 다시 손을 뻗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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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문장의 출처
1. 괴테의 문장: 박찬기,이봉무,주경순 共譯, 『이탈리아 기행』 민음사 刊 2023년 7월, 1판1쇄
2. 카뮈의 문장: 김화영 譯, 『결혼,여름』 책세상 刊, 2011년 2월, 개정 1판 9쇄
3. 모파상의 문장 : 어순아 譯 『모파상의 시칠리아』 그린비 刊, 2010년 7월, 초판 1쇄
原書 - Guy de Maupassant, 『La Vie errante』, 189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