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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의 뿌리
이사야 벌린 지음, 석기용 옮김 / 필로소픽 / 2021년 3월
평점 :
어떤 유사한 신조를 지닌 사태가 광범위한 인간 무리와 지역에서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이것이 일순간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점진적으로, 그러나 비교적 이전 시대의 흐름과는 달리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동인(動因)이 분명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인간 역사의 오랜 시간 중추적으로 이어져온 믿음에 많은 인간이 비로소 의심과 회의의 시선을 겨누게 되는 어느 순간이 오고야 만다. 아마 인류 역사에 있어 이러한 전복적 변환의 사태를 몰고 온 것이 ‘낭만주의(Romanticism)’라 말하는 것이 이 책의 논지이다.
물론 낭만주의를 획일적이고 명료하게 정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저자는 말한다. 'XX주의(主義)'라는 하나의 범주에 몰아넣어 어떤 시기의 사회문화적 조류를 뭉뚱그리는 것은 사실 가당치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향하는 사상의 방향에서 공통적인 부분이라 할, 특히 그것이 너무도 이전과 다른 중대한 것일 경우, 그것을 하나의 전환적 사태로써 범주화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고대에서 중세까지 거의 흔들림 없이 이어져온 서구 전통의 척추라 할 명제들, 즉 원리상 해답(진리)은 존재하며 알려질 수 있다는 것과 참된 가치인 해답을 발견하는 방법을 배우고 가르칠 수 있으며, 참인 명제들은 서로 양립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즉 세상과 인생은 직소퍼즐처럼 완벽하게 짜 맞추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성과 과학의 대두에 따른 계몽주의라 해서 이러한 전통적 이해와 다를 바가 없다. 다시 말해 낭만주의는 단순히 계몽주의의 반동으로 태동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계몽주의는 단지 해답들이 이전의 전통적 방식들 - 계시, 교리 등등 - 로는 획득되지 않으며, 오직 이성의 올바른 사용으로만 가능하다고 살짝 비튼 것일 뿐이다. 계몽주의라 해서 서구의 전통적 주류의 사고를 이탈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계몽주의가 서구의식의 대반동이며 대변혁인 낭만주의를 촉발했다. 계몽주의자는 말한다. “도덕에 관한 저술, 정치나 비평, 어쩌면 문예적인 저술마저도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기하학자의 솜씨로 이뤄낸다면 더 훌륭해질 것이다.”라고. 즉 패턴과 단일한 진리가 있다는 것이며, 이는 이성으로 규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보편타당성을 갖는 일반명제를 수립할 수 있고, 인간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나의 해답이 있다는 것이다. 이 엄격한 논리적 관계 네트워크의 실재에 대한 믿음은 사실상 세상에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 자신도 계몽주의 철학자인 데이비드 흄은 바로 이러한 믿음에 심각한 파열을 만들어낸다. 그는 인과율을 의심하고, 외부 세계 존재의 앎에 대한 연역 불가능성을 지적하며 이성주의의 이상을 깨뜨렸다.
사람들은 이 세계가 둘 더하기 둘은 넷과 같이 이러한 것이 삶과 사유의 토대이며, 모든 것은 필연적 논리의 연쇄 산물에 불과하다는 이 고정되고 닫힌 체제에 숨 막히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계몽주의의 자연과학과 이성주의는 인간 정서를 차단해버림으로써 인간의 모든 반(反)과학적 열망과 욕망이라는 배설구를 이해하지 못했다. 계몽주의는 누천년을 지배해 온 궁극적 진리에 대한 믿음, 퍼즐식 사고방식에 결정적 쐐기를 박는 계기가 되어 준 셈이다.
Ⅰ. 독일, 낭만주의의 원천
저자는 이러한 전통적 사고방식과 계몽주의에 대한 반동의 발원지를 17~18세기 독일로 규정하고 있다. 즉 낭만주의는 독일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사야 벌린은 독일 지역에서 30년간 벌어진 프랑스군 중심의 외국 군대에 의한 대규모 살해와 초토화된 재기불능의 재난이 독일인들을 심각한 민족적 열등감으로 몰아넣었다고 파악하고 있다. 이렇게 야기된 콤플렉스와 모욕감은 루터주의를 계승하는 경건주의의 토대 하에 자기 내면의 성채로 움츠려드는 은둔의 결과를 초래하고, 주변에 단단한 성벽을 쌓아올림으로써 자신의 취약한 외양의 노출을 축소하려 노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변국, 즉 프랑스를 비롯한 계몽주의(이성, 과학)에 대한 증오로 발산되었으며, 반문화, 반지성, 외국인혐오, 민족(지역)주의에 빠져들게 하였다는 것이다. 즉 “상처입은 국민적 감수성의 산물이자 국민적 모욕감의 산물로 낭만주의 운동의 뿌리가 내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실 이보다 앞선 시기에 계몽주의에 대한 반동이 다른 지역에서 공통적 의식으로 대두된 사례를 발견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부정하기 어려운 추정이라 할 수 있다. 하만, 레싱, 칸트, 헤르더, 피히테, 헤겔, 셸링, 실러, 휠덜린, 클라이스트, 노발리스, 슐레겔, 호프만에 이르는 엄청난 인물들만으로도 낭만주의의 원천이 독일이 아님을 반증하기 어렵다.
계몽주의에 대한 총체적 반항의 과정에 물꼬를 튼 인물인 ‘요한 게오르크 하만’은 어쩌면 독일 낭만주의의 시조라 해도 될지 모르겠다. 그는 책과 그림, 그리고 무수한 대화들을 과학적이고 일반적 명제로 분석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실패한다고 설파했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 다른 책과 공통으로 지닌 요소들, 즉 일반화된 것들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또한 서로 다른 화가들이 그린 그림에 어떤 원리가 적용되었는지는 굳이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리가 책을 보고 그림을 보는 이유는 그것들이 전해주는 특유의 메시지, 특유의 실재에 반응하고 싶기 때문이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원리나 일반명제를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능력이 풍요롭고 격렬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 즉 창조의 욕망에 대한 갈구이다. 계몽주의는 이 풍요로운 감각의 세계 대신에 창백한 대체물을 제공하려 했다. 계몽주의는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행위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의 약동, 개체성, 창조의 욕망을 일반화하고 분류하여 고정시키고 이로부터 이성적 배열을 추출하는 경향성에는 아무런 생명성도 없다는 것이다.
계몽주의는 살아있는 총체를 조각들로 쪼개는 정신적 살해 행위로 간주된다. 하만의 제자랄 수 있는 헤르더는 “유럽 이성주의 몸통에 가장 무시무시한 단검을 찔러 넣은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통일성의 부정, 조화의 부정, 이상들의 양립 가능성을 부정하며, “자기에게 보이는 대로의 진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만큼이나 타당한 진리”라 주장했다. 사실 각각의 시대와 지역에는 그 나름의 서로 다른 내면적 이상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무수한 유무형의 세례가 뼛속까지 아로새겨져 있지 않은가? 한국이라는 영토에 살고있는 나는 독일에 살고있는 사람과 너무도 많이 다른 전통적 관습과 행동 양식을 지니고 있다. 양자를 일반화한다면 고작 인간 형체의 유사성이나 몇 가지 이해 가능한 일상적 양식일 것이다. 아마 두 사람은 많은 윤리적, 의례적, 정치적, 문화적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다. 여기에 이성과 과학이 개입해서 무엇을 규명할 수 있을까? 이 둘의 삶의 방식을 일반 명제화 하면 둘 다 적응하지 못하고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이제 서구 의식을 지배해왔던 ‘영원의 철학’이라는 신화는 전복된다.
Ⅱ. 독일 낭만주의자들
이 책의 가장 흥미있는 부분은 낭만주의자들에 대한 2 개장(章)에 걸친 논의이다. 절제된 낭만주의자들과 고삐 풀린 낭만주의자들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는 역동성과 상상력의 확장 정도, 그리고 시기적 전후에 따른 의미의 변화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Ⅱ-1. 절제된 낭만주의
서구 세계의 감정, 사상, 행동 등 가치관에 급진적 전환을 가져온 낭만주의는 사실 온전히 낭만주의적이라 정의할 수 있는 예술가나 사상가와 같은 특정 인물로 규정할 수 있는 그런 순수한 신조가 아니다. 단지 어떤 속성이나 경향, 이상적 유형이라는 운동이나 신조의 양상으로 포착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칸트는 거의 절대적이라 할 만한 유형의 지식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은 계몽주의자이다. 과학의 신봉자였으며, 논리와 염격을 좋아했다. 그러나 사물의 본성을 쫓았던 이전의 서구 사상의 전통과 달리 그는 사물의 본성 때문에 성이 난 사람이었으며, 특히 도덕철학에 있어서는 ‘자유’, 즉 ‘선택하는 인간’에 강박적으로 매달렸다는 점에서 낭만주의 아버지 중의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칸트는 인간은 원형적으로 타고난 자유를 지니며, 이 자유가 자아의 특권을 제공하고 나 자신을 만든다고 믿었다. 자연과 달리 인간은 인과율에 지배를 받지 않으며, 자신이 소망하는 바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칸트는 그의 저작인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계몽은 타인의 굴레에서 자기를 해방하는 것”이라 규정했듯이 자기 책임 행위를 강조했으며, 착취, 격하, 비인간화에 열렬하게 반대했다.
가치란 스스로 생성하는 무엇이라는 생각, 특정 행동 방침을 알고있는 인간 의식을 단언했다. 칸트를 결정적으로 낭만주의자로 이해케 하는 것은 ‘결정론’에 대한 극단적인 반감 때문이다. “자연에 의심의 여지없이 참되게 적용되는 이른바 인과율이 인간 생활의 모든 측면에 참되게 적용된다면 실제로 세상에는 도덕성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천명은 낭만주의의 핵심 골격을 이루는 ‘불굴의 의지’와 ‘사물의 구조같은 것은 없다’는 끝없는 자기 창조의 표현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사야 벌린은 절제된 낭만주의자로 칸트 외에도 실러와 피히테를 꼽고 있는데, 실러의 자연을 딛고 일어서 자유롭게 행동하는, 더 드높은 곳에 도달하는 인간에 대한 찬양은 그야말로 낭만주의의 본령이라 할 수 있다. 사회가 나쁘고, 합당한 도덕성을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 사회를 타도하고 파멸시켜 이상을 향해 돌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위대한 죄인’은 이 낭만주의에서 탄생한다는 것이다. 아마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실러의 『도적떼』에 등장하는 도적 우두머리인 ‘카를 무어’같은 약탈, 방화범이 영웅적 지위로 격상되는 것은 자신의 이상에 전념하는 새로운 인간상의 대두를 의미한다.
마지막 인물로 피히테는 “단지 ‘자유’라는 이름의 언급만으로도 그 앞에서 내 마음은 활짝 열리고 꽃이 피어오른다.”고 선언했듯이 칸트의 사도이다. 삶이란 본성의 초연한 사색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더불어 시작된다고 하였다. 앎이란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며 인간과 우주란 일종의 지속적 행위이지 사색으로 지식의 영역에 요구해 해답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낭만주의는 이렇게 고취된 개인을 향해 나가가려는 거대한 충동의 출발을 한다.
Ⅱ-2. 고삐 풀린 낭만주의
낭만주의 화려한 분출이다. 이제 낭만주의는 고결한 운동의 핵심을 구축했다. “자아란 직접적 자각의 대상이 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연쇄적인 경험들을 가리키는 것, 바로 이런 것들로부터 인간의 성격과 인간의 역사가 만들어 지는 것”이라는 결론이다. 무언가 단일한 진리가 있으리라 믿지만 실상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특성이란 오로지 노력하고 시도하고 장애물에 덤벼들어 나 자신을 온전히 느끼게 될 때에만 체득될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평소에는 느껴지지 않던 자아라는 감각이 저항과 대치 국면에 뚜렷해지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 것이다.
낭만주의의 개화기에 드디어 일반 독자에게도 친근한 낭만주의의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노스탤지어’와 ‘망상’이다. 노스탤지어는 “나는 언제나 고향으로 가고 있다.”는 노발리스의 자기 예술에 대한 답변처럼 무한한 동경이자 갈망이다. 그래서 이 때의 낭만주의 문학들은 이국적 사례를 찾아다니며, 온갖 종류의 환상을 탐닉한다. 그런데 망상은 이 노스탤지어와는 아주 대척점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본성의 확장, 걸림돌의 파괴, 그리고 자신의 해방으로 무한히 솟구쳐 올라가는 갈망을 향하는 것과 달리 비관적 형태를 띤다. 도달하려 하지만 이를 방해하는 어둠 속의 무엇, 일종의 냉담하고 적대적인 자연이다. 이건 허무이며 음모론의 발굴로 나아가는데, 숨어있는 음모를 수색하는 더 큰 개념을 발굴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이 그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은 19세기 내내 축적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카프카의 소설처럼 방향을 상실한 불안, 저변에 깔린 근심의 독특한 감각으로 출현하기도 하며, 술레겔이나 호프만의 소설처럼 악몽, 거대한 비인격적 힘의 충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마 거의 격렬하다고 할만큼 '호프만(E.T.A.Hoffmann)'은 “사물의 본성이 존재하고 사물의 구조가 존재한다” 는 서구의식을 뿌리부터 거부하며, 인간을 가두는 그런 구조는 없다고 선언한다. 이제 낭만주의는 잠재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보다 더 실재적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물이 수시로 뒤바뀌며 진정한 심리적 망상들로 가득차 있는 이유이다. 희미한 감지, 파편, 암시, 신비한 조명이야말로 실재를 파악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환각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차단하고 있는 장벽을 부수고 단호히 빗장을 열어젖힌 우주에 대한 감각, 영속적 변형에 대한 감각을 생성하는 것이다. 낭만주의는 급기야 논리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족쇄풀린 자유로운 의지를 마음껏 구가한다. 낭만주의는 사물의 본성이 존재한다는 이 토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낭만주의는 실재에 대한 참된 지식이 있다는 오래된 생각에 대항해 벌이는 전쟁이다.
낭만주의란 결국 인간이 적응해야하는 패턴이란 없으며 오직 우주의 끝없는 자기 창조만이 있을 뿐이다. 라는 생각, 사물을 모종의 관념화나 계획에 순응하는 것들로 바라보려는 자기 탐닉적 형태의 자멸적 어리석음에 대한 저항이다. 사실 우리가 어떤 상황을 고정해두려고 주도면밀하게 실행하려 하지만 늘 새로운 심연이 펼쳐지고 헛수고가 되기 일쑤인 경험을 하기 마련이다. 쉼 없는 흐름을 멈춰 세우려는 시도, 가둘 수 없는 것을 가두려는 노력, 존재하지도 않는 진리를 추구하려는 시도에서 얻게 되는 것은 비현실과 환상뿐이라는 것이다.
Ⅲ. 마무리하며
이제 사회를 이성적으로 분류하려는 모든 시도가 얼마나 얄팍한 짓거리에 불과한 것인지 드러났다. “과학, 공리주의, 기계류의 사용이 국가를 대신해 주지 않는다.”는 국가에 대한 천명처럼 낭만주의는 무한히 활동적이며 살아있는 총체로서 국가를 정의한다. 이는 객관적 법칙이 존재한다는 인간적 환상에 대한 경멸이다. 낭만주의는 이처럼 규칙과 법률과 예의범절과 지극히 꼼꼼하게 잘 조직된 삶의 형식을 날려버리라고 외친다. 이러한 극단까지 밀고 나가면 인간적 이상의 심각한 대립의 결과만 초래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 는 낭만주의는 삶의 불완전성에 대한 자각이며 고양된 이성적 자기 이해의 촉구이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바로 이들 낭만주의자들이 세워놓은 자유주의적 양식, 다원성과 삶의 불완전성에 대한 자각, 고양된 이성적 자기 이해와 같은 생각들로 구성되어있다. 이는 바로 지금을 사는 많은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사이 이들 낭만주의자를 상속받고 있으며, 우리 안에 이러한 사상, 신조를 품고 있다. 우리들 모두는 이들 낭만주의의 광기를 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단지 거대한 인과적 과정을 구성하는 하나의 조각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별개 차원의 소외된 존재도 아니다.
우리는 사회에서 서로 소통하고 사는 존재들이다. 다른 인간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무런 공통의 가치도 없다면 우리는 아마 인간이 되지 못할 것이다. 결국은 타협해야 한다. 아마 우리는 불완전한 평형을 보존하며 아슬아슬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점점 더 많이 자기 이해가 요구되는 사회이다. 무엇이 이 불안한 평형을 유지하는 관념, 행동이 될 수 있을까? 아무튼 이 낭만주의자들의 모종의 가치들은 삶의 위대한 지표의 하나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불굴의 의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