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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저리 클럽
최인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에고에 빠져 자기연민에 몰두하거나, 결손과 상흔, 너무 일찍 세상의 이치를 보아 우주적 고뇌를 짊어진 청춘을 그려내는 작의적 작품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모 작가는 최근 국내에 이렇다 할 성장소설이 없어 젊은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자신이 나섰다고 색 바랜 이데올로기로 포장하여 오만을 부리기도 하지만, 이‘머저리 클럽’은 색을 입히지 않은 지극히 보편적인 다수를 수사(修辭)하지 않은 채 유쾌하게 추억하는 순수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그 건강성이 돋보인다.
10대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 그렇게 참혹하리만큼 고통스럽거나 지난한 방황을 촉발하고, 사회계층의 구분, 부와 가난과 같은 경제적 양극화, 교육제도의 경직성, 기성세대의 부조리에의 회의(懷疑)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저항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국내의 몇 안되는 성장소설을 표방하는 근작(近作)들의 주인공하면 결손가정, 도시빈민, 깊은 갈등을 내재한 가족의 아이를 내세워 음울하고 뒤틀린 황색의 세상과 혼돈을 배경으로 하고, 지독하리만큼 정체성이란 주제에 집착하여 자기영혼을 이리저리 핥아대는 것을 성장통이란 비현실적인 상상력으로 끌어다 댄다. 이러한 고답적(高踏的)인 구조에는 10대들을 비롯한 독자들에 대한 계몽적, 교훈적 의도를 포함하는 의도적인 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와는 달리 이 작품은 보통의 상식을 가진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이고 돌이키면 그 찬란하고 쾌하였으며, 뜨겁게 설레던 가슴과 아득한 실연의 슬픔으로 남몰래 눈물짓던 바로 그 순수했던 시절을 그리고 있기에 그 작은 통증들이 아름답고 성숙이란 긍정성에 애틋한 추억을 더해준다. 6인의 남자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머저리클럽’의 구성원들과 주인공‘김동진’, 그리고 이들과 합병하는 5인의 여고생 클럽, 이름하여 ‘샛별클럽’의 한사람 한사람에게 살포시 지나가는 슬픔과 고통, 고뇌는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빵집에 남학생과 여학생이 마주하는 것이 교칙에 위반되어 처벌받던 시절, 그리고 낙원동, 청진동 분식점이 일탈을 조성하던 60,70년대의 낭만이 그리워진다. 등교시 타고 다니던 만원버스에서 매번 마주치던 그 여(남)학생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가방을 무릎에 올려 받아주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창밖과 창에 비친 모습만을 흘깃 보던 그 순박하고 사랑스런 모습이 떠오르며, 슬며시 미소가 머금어진다.
저마다 성장의 고통이란 모습이 다르게 찾아오지만 처음 눈뜨는 사랑의 관념, 그리고 결별과 같은 상실이 가져다주는 통증이 가슴을 저리게 하던 시절, 그리고 부모로부터의 관심이 점차 거북해지고 하나의 객체로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속 외로움과 고독, 그 철저한 엄습이 친구라는 관계로 서서히 이동하고 비로소 자신을 정립하던 미숙했던 내가 떠오른다.
“접목을 할 때 나뭇가지를 꺽어 상처를 내는 예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내 마음에 상처를 그어 내린다는 것은 무언가 새로운 접목이 아니겠는가.”하는 동진식의 성숙을 어느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이해했던 것일 게다. 그렇듯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가끔은 영민이처럼 “안간힘을 이를 악무는 자기혐오”에 휩쓸려 열등감과 자괴감에 한 없이 빠져들기도 하지만 우린 또 다른 사랑과 삶의 긍정 앞에 멋지게 일어서왔다.
작품 속에 ‘겨울이야기’라는 에피소드와 ‘경아’의 이야기는 작가의 옛 작품과 눈송이가 푸르게 내리던 그 겨울 단성사에서 상영되던 동명의 영화가 오버랩 된다. 왠지 그 낭만성이란 것이 시린 가슴을 떠올리게 하고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거치는 마지막 관문처럼 여겨져 더욱 선명하게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의 문학적 성취에 대해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찌할 수 가 없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닌 어느 낯선 어른이 읊조리는 생경함이 장황하게 포진하여, ‘이 작품은 성장소설입니다.’하는 식의 의도가 흐름을 방해하고 조악하게 하는데 일조한다. 또한, 성장의 통증이란 것이 음울과 깊은 번민, 그리고 가출과 자살까지를 수반하는 부정적 고통이 승화되어야 비로소 긍정과 성숙,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그런 되먹지 못한 것은 아닐지언정 삶에 대한 진정성이나 인생의 진리를 향한 근원적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만, 11명의 그 풋풋한 추억들이 책을 읽는 내내 그들과 같이 미소 짓고 가슴 설레는 유쾌함으로 이렇게 오늘을 살아가는 것 아닌가하는 위안을 준다는 것이며, 바로‘그래 세상은 살만한 것이야! ’하고 긍정을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