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경영 - 탁월한 경영자가 되려면 먼저 유능한 정치가가 되라
제프리 페퍼 지음, 배현 옮김 / 지식노마드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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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연하고 탄탄한 이 저술이 지니는 본성에 우선 찬탄의 갈채를 보낸다.

‘권력’이란 언어가 가지는 그 근원적 몰염치함의 속성이 보이는 듯하여 나와는 무관하다고 손사래 치게하는 막연히 거북한 그 무엇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또한 인위적이든, 자연발생적이든 ‘조직’이란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기 마련이고 바로 이 조직이란 틀은 필연적으로 권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위대한 저술은 바로 우리 인간 개인이나 집단에서의 권력이란 속성과 그 발생의 원천, 그리고 권력이 사용되는 방법(전략,전술), 권력의 획득과 유지, 상실의 역학관계를 유수의 기업, 공공기관, 정부조직과 그 속에서 탄생한 권력자들의 부침을 통해 탁월한 통찰로 조명하고 있다. 그래서 기업조직에 종사하는 최고경영자를 비롯하여 경영관리계층의 인력, 정부 및 공기업 조직의 종사자뿐 아니라,  개인 단위의 모든 이들에게 삶의 중대하고도 긴요한 지혜와 인식을 전해주는 본질적 요소의 하나라 할 수 있겠다.

권력의 본질에 대한 가히 해부학적 접근이라 할 이 저술은 마키아벨리즘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중세 봉건군주체제하에서의 권력론이라면 이 저술은 현대사회의 시장경제체제하에서 재조명한 ‘마키아벨리즘’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1부 조직과 권력을 비롯해 전편(全篇)에서 정의되는 권력의 해석과 그 본성에 대한 다채로운 관계의 분석과 조명은 이 저술에 몰입할 수 밖에 없을 정도의 신선함과 적나라하고 명쾌한 규명이 거침없이 서술되고 있다. 저자인‘제프리 페퍼’스탠포드 경영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권력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권력이란...타인의 행위에 대해 자신이 의도한 특정 결과를 초래하는 능력을 말한다....”,“권력은 저항을 극복하고 타인으로 하여금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이다.”즉, 자신이 의도한 목적달성을 위해 행위를 개시하고 지속하는데 요구되는 근본적인 힘, 다르게 말하면 의도를 현실로 바꾸고 그것을 지속시키는 역량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어떠한 일이든 혼자 달성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존재치 않는 오늘에 있어 권력이란 타인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고자 하는 인간 상호관계에 대한 기술이라고 까지 할 수 있는 것 같다.

이와 같이 타인에 대한 영향력의 행사라는 속성으로 인해 사람들은 “권력에 대해 논하는 것을 회피하는 쪽을 선호한다.”고 지적하고 ‘로자베스 캔터’의 연구와 ‘간즈와 메레이의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권력과 정치가 존재함을 알고도, 심지어 그것이 개인의 성공에 필수적임을 마지못해 인정하면서도 이를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는 권력에 대한 이중적 태도를 증명하기도 한다. 이렇듯 신뢰받지 못하는 권력이지만 오늘과 같은“상호의존적인 체계에서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빈번하게 요구되는 중요한 사회적 과정”임을 부인 할 수는 없다. 저자는“우리는 위험 때문에 약품이나 자동차, 원자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대신 위험을 이러한 힘들을 생산적으로 사용 할 수 있게 해줄 교육과 정보 등을 얻으려는 동기로 간주”하는 것과 같이, 권력은 인류 진보에 시급하고도 가장 필수적인 것이며, 따라서 우리들 개인 개인이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수단을 정당화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수단을 불신하는 논리가 자동으로 합리화 되지도 않”듯이 고의로 방기(放棄)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이란 본성을 배경으로, 권력을 획득하여야 하는 것은 극히 당연한 행동의 귀결이 된다. 따라서, 나의 권력 기반은 어떤 것들인가, 내가 속한 조직이나 사회에서 의사결정과정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우리들이 행사하려는 권력과 영향력의 기반은 무엇인가, 어떤 상황 하에서 통제권을 거머쥐기 위해 개발하여야 할 영향력의 기반은 어떤 것인가, 권력행사를 위해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 전략 전술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은 바로 내가, 우리가 목적하는 것을 실현하기위한 필연적 지식이며, 능력이 된다. 이들 내용은 바로 금융서비스업체 E.F.허튼을 비롯해, 혼다, 제록스, 애플, 리먼브라더스, 메릴린치, CBS방송, GE, 그리고 뉴욕시, 미 행정부 등의 최고경영자, 정치가들과 그들의 조직 예를 통해 권력의 관점, 권력 주체의 중요성, 권력의 상호의존관계, 권력 네트워크와 의존 패턴, 권력의 상징에 대한 멋 떨어지는 해설들이 주술처럼 펼쳐진다.

“사회적 행위를 이해하는 데에는 범주와 꼬리표가 가진 중요성을 인식해야한다.”,“필수불가결한 수단을 동원하여 수호하겠다...”는 링컨의 헌법수호선서의 무시무시함, 내가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누구의 협조가 필요한가, 내가 하려는 것을 무산시킬만한 적대자는 누구인가, 내가 성취하려는 것에 영향을 받는 자는 누구인가, 실세로 파악한 사람들의 친구와 동맹자는 누구인가.”와 같이 수단과 방법이 가히 공작적이라 할 정도로 치밀하게 조명되고 있는 것과 같다.

이 저술의 꽃 중의 꽃은 바로 2부 권력의 원천이라 할 만 하다.‘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권력은 개인적 특성으로부터 나오지만 상황이 제공하는 기회로부터 나오고 우리자신을 환경에 맞게 바꾸어나갈 수 있는 능력으로 부터도 나온다.”고 한다. 자기편을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자원에 대한 통제력, 조직의 활동, 정보에 대한 장악력, 공식적 권한, 이들 3가지는 감히 권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다. “자원, 동맹, 황금율”그리고 “좋은 자리”, 이들을 획득하여“공원국장 따위에서 뉴욕시전력공사이사장, 세계박람회의장, 연방주택공급 제1프로그램의장...”에 이른‘로버트 모제스’의“경쟁이 없는 틈새시장에서부터 권력기반을 만들어나간 다음 조직 내에서 영향력 있는 지위를 획득하고, 그 조직을 활용하여 더욱 결정적이고 실질적인 자원을 획득할 방안을 알아낸”사례는 마키아벨리의 권모술수를 능가한다.

저자의 가르침중 하나를 소개하면, “소유는 사회정치적 인식과 구속력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의존하는 간접적인 재량권일 따름이며, 소유하지 않더라도 접근을 규제하는 것은 가능한 것이고, 그래서 자원의 실제 사용과 그 사용에 대한 통제권 즉, 자원의 소유, 할당, 사용에 관한 규제를 만들고 그 규제를 실행하는 능력”을 통해 권력을 획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이 끊임없이 규제를 만들어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물리적 중심성이 의사소통 네트워크에서의 중심성을 낳는다는 것으로 GM의 최고경영자 마크네일러 기획그룹의 물리적 공간 설정의 실패사례와 같이 보안상 일급정보를 다룬다는 이유로 지하실에 격리하여 위치시켜 오히려 업무 프로세스에 긴밀하게 밀착하기 어려워지게 됨으로써 권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과 같다. 결국 위치가 갖는 상징적 지위를 선택할 것인지, 근접성을 택해 정보의 흐름에 가까이 있는 것과의 균형성을 고려하여 선택하는 것이 성공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보잘것없는 보좌관으로서의 시작에서 미국의 대통령이 된 ‘린든 존슨’의 중요한 권력의 원천인 ‘네트워크 포지션’의 획득과정 사례나, CBS의 윌리엄 페일리와 같이 “마음이 내키면 설명했지만 내키지 않으면 설명하지 않았다...그의 전제주의적 행동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보스로 여겼다.”는 일화, 이를 뒷받침하는‘예일대 사회심리학 교수 스탠리 밀그램’과 ‘주커’의 실험사례, 그 유명한 세계적 재벌인 ‘체이스뱅크 회장 재직시의 록펠러’의 융통성을 통해“감정적으로 초연함으로써 얻어지는 융통성은 권력을 키우기 위한 중요한 특성”에 이르는 엄청난 통찰이 빚어낸 설명들은 가히 권력론에 대한 바이블이라 치켜세우고 싶을 정도이다.

그리고 프레임짜기, 대비, 몰입강화, 희소성과 관련한‘심리학적 유도저항’이론, 대인영향력의 확보를 위한 사회적 증거효과, 영향력 행사의 기막힌 책략으로서 타이밍으로서의 기습, 지연, 마감시한,조직의 안정, 존속을 위해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외부에서 유력 인사나 의사결정기구를 영입하는 것과 같은 적응적 흡수, 착각원리에 기초하여 정치적 배경, 언어, 의식등을 사용함으로써 사람들 속의 강력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견인 하여 합리적 분석을 방해하거나 흐리게 하는 등의 무궁무진한 권력실행의 전략전술이 ‘자신을 영입하려는 펩시의 존 스컬리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간의 일화’,‘메릴린치 도널드 리건의 예’,‘힘멜스트란드, 톰 피터스의 상징적 관리에 대한 정의’등과 함께 풍부한 실례를 기반으로 심도 있게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목표관철에는 권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우리는“선인(善人)과 악당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곳, 즉 세상을 일종의 원대한 도덕이 작동하는 곳으로 보려”하지만, “나쁜 사람들이 때로는 위대한 멋진 일을 하고, 착한 사람들이 때로는 나쁜 일을 하거나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끼고, 우리의 균형감각이 혼란으로 흐뜨러진다. “누구의 심기도 건드리지 않고 과오를 저지르지 않으려 전전긍긍하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권력 획득은 항상 매력적인 과정이 아니며, 권력 사용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우리는 목적과 수단이란 쟁점 때문에 심란해진다. 그러나 밀어붙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으며, 목표관철을 위해 권력이 우리가 극복해야 할 반대자보다 더 큰 권력이 필요함을 이해는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때 그것은 선(善)의 다른 시각으로서 존중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권력과 영향력에 대해 이처럼 명쾌하고 분석적이며, 실천적이자 이론적인 저술이 집필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걸작이다. 조직을 회피할 수 없는 우리네들이라면, 그리고 삶의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원한다면, 이 저술은 우리들의 인생항로를 밝혀주는 등대가 될 수도 있으며, 기업이나 집단적 조직, 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위와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경영전략서가 될 수도 있다. 올 최고의 경영 전략 도서라 추천함에 주저치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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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영향력이라는 사람들이 행사하는 지배력의 속성과 그 실제를 이처럼 속속들이 파헤치는 저작도 없을듯 합니다. 마키아벨리즘을 연상시키고, 탁월한 통찰에 탄성를 지를정도입니다. 이제 200여쪽을 치닫고 있는데요, 500여쪽의 두툼한 책이 그저 매혹덩어리로만 보일 정도랍니다...

권력의 원천에서 권력이 실행되는 현상, 그 속성등이 끔찍 할 정도의 공감으로 쏙쏙 머리에 입력된다. 주말이면 완독이 될것 같다. 벌써부터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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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전 2
이종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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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악)의 세력이 점점 그 힘을 더해가는 듯한, 그래서 선과 악의 일대 전쟁은 불가피해 보이는 기대를 던져주며 1권은 끝났었다.

2권은 전편과 달리 에피소드의 열거를 지양하고 작품의 진행속도와의 결합을 보다 공고히 하려는 듯이 줄거리 중심의 형태로 다소 변화를 준 것 같다. 즉, 선명해진 주제의식과 인물성격의 구체화, 서사성의 견고(堅固)화 등이 이루어져 재미를 더욱 만끽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느낌이다.

선과 악의 대결구도, 얽히고설키기 시작하는 애정 네트워크, 지극히 통속적이고 적나라한 대화, 확전일로에 놓인 퇴마사와 영귀와의 전쟁에 대한 기대감 등 재미를 유발하는 요소들을 섬세하고, 분명하게 깔아놓고 있는 것과 같다.

1권의 가물가물해진 기억을 되살리기라도 하려는 듯, 초입부터 머리카락이 곧이 서고, 오한이 등골을 서늘하게 타고 내려오는 전율로 독자의 정신을 메다꽂는다. 이 구성전략은 처음부터 알지 못할 공포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하는 묘미가 있다. 개운치 않은 떨림으로 멈칫거릴 틈도 없이 관능의 언어로 매혹하고, 새로운 등장인물로 신선함을 선사한다. 작가의 TV일일연속극적 시나리오와 엔딩 기법처럼, 독자들의 시선을 지면에 가두어놓고 또한, 호기심과 기대감의 적절한 오르내림을 주어 조절해댄다.

새로운 귀신, 액귀(縊鬼), 사령자(死靈者)의 등장은 악의 뻔뻔스러움과 비열함을 두드러지게 하여, 다음으로 미루어진 ‘무풍리’에서의 본격적인 혈전을 선악의 대결이란 명료한 구도로 뚜렷이 해놓는다. 한편, ‘숙희’의 모호한 태도, 악귀의 근원인 사람의 선함이란 흐릿한 경계를 통해, 여전히 선이 이겨내고는 있지만 악의 세력으로의 중심이동을 암시하여 애매한 균형을 조성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독자를 갈등과 긴장으로 더욱 팽팽하게 조여 놓는 역할을 수행하는 듯싶다.

귀신전 2를 한번 손에 든 독자들은 절대 내려놓지 못한다. 등장인물, 사건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여운을 남기고 있어 ‘귀신전 3’의 기대는 더욱 증폭되어 버린다. 권(拳)이 더해질수록 더욱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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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코네로가의 영원한 밤
플라비오 산티 지음, 주효숙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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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탈리아 여행기』를 읽어본 독자라면 더욱 친근한 독서가 될 수 있겠다. 물론 상상의 문제이지만, 괴테가 이들 작품을 집필 할 당시의 심리적 상태를 마치 이해라도 할 수 있는 듯한 문장의 장치들로 대문호의 은밀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야릇한 호기심이 채워지기도 한다.

작품은 죽음에 임박한 괴테의 ‘고백록’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실존인물을 작중 주인공화 함으로써 리얼리티를 제고하고 이성의 냉철함으로 인한 분석적 잠재시각을 잠재워버린다. 때문에 두려움에 휩싸여 진정되지 않는 의식 속에 쓰여 지는 그 강박적 불안감이 그대로 독자에게 전이되어, 낯설고 막연한 공포감으로 시작하게 유인한다.

1786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에 도착한 괴테의 기이한 여정을 쫒는다. 작품의 전반부는 선술집에서 만난 낯선 남자가 들려주는 음습하고 괴이한 ‘보스코네로家’의 비밀스런 이야기로, 그리고 후반부는 작중인물로서 괴테가 직면하는 자신의 경험으로 시간적 연속선상에서 이어지는 구조로 되어있다.

머리만 뜯긴 채 나뒹구는 사체, 잔혹하게 훼손된 농부들의 시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하인과 경감 등 도통 사건의 전말을 좆을 수 없는 연쇄적인 살인사건이 이어진다. 단지 주어지는 암시란 “삶은 피를 먹고 산다”, 그리고  “심오한 징후”라는 뜻 모를 의문을 던져줄 뿐이다. 기억상실증과 수면발작증을 앓는 보스코네로가의 계승자인 남작 ‘페데리고’와 어린 시절 가정교사인 ‘텔라모니오’, 이 추상적 단서의 의미를 찾기 위한 집요한 수소문, 겁에 질린 판사, 사체를 수집하는 외과수술의,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듯 보이는 변호사까지 끔직한 살인사건의 본질에 혼란을 주는 징후들과 막연한 단서를 마구 흩뿌려 대어 독자의 긴장을 팽팽한 강도로 높여나간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그 집요한 공포와 전율의 실체를 마주하는 순간, 괴테의 지성과 이성이 하릴없이 무너져 내린다.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에 그칠 줄 모르고 외쳐대는 악(惡)의 실체는 바로 우리를 에워싸고 있을 뿐 아니라 언제든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음을 본 것 아닐까? 초현실적인 실체에 직면한 고귀한 우리의 이성이 이렇듯 마지막 순간까지 부들부들 떨게 만들고 그를 써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진실은 무엇일까?

괴테가 이 낯선 곳에서 체험한 지옥과 악의 실체는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로 현현하고, ‘발푸루기스의 밤’에 모티브를 제공한다. 진실이 아닐지언정 작가 ‘플라비오 산티’의 이 악마적 고백록은 미스터리 공포소설로서, 또한 메리 셸리, 로폴리도리의 계보를 잇는 정통 고딕소설로서뿐 아니라 탄탄한 서사와 문학성으로 독자의 지성을 즐겁고 풍요롭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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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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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실체?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는 무엇인가? 단세포 생물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바이러스는 “무기질 적이고 딱딱한 기계적 오브제 지나지 않아 생명으로서의 움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 바이러스는 무생물인가? 생물을 단순한 물질과 구분 짓는 유일한 특징은 무엇인가? 그 유일한 특징이란 ‘자기 복제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증식되는 세포분자는 어떻게 자신의 특성을 전달하는가?  “끊임없이 무질서한 열운동에 농락당하는 원자의 행위가 어떻게 고도의 질서를 요구하는 생명활동”을 손상시키지 않고 “질서 정연한 상태를 창출하고 유지”하는 것인가? 이 생명 시스템에 고찰은 우리에게 자연에 대한 겸허와 경외감을 던져준다.

이 저술의 매력은 뉴욕 대기 중의 독특한 진동의 향수와 보스턴의 목가적이고 학문적 분위기와 같은 서정성과 저자의 연구생활에서의 경험적 진술이 어울려 자칫 이론적이고 낯설기만 할 수 있는 분자세포학, 분자생물학의 세계를 통해 생명의 실체를 수월하게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여준다.

단세포 생물에서 시작하여 미국 근대기초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사이먼 플렉스’의 세균분리, 네덜란드‘바이예린크’의 세균과는 다른 미세한 감염입자 즉, 바이러스의 발견, 그리고‘오즈월드 에이버리’에 의한 세계최초로 생명의 본체인 ‘유전자’-‘형질전환물질’- 구성단위의 발견 등을 오늘의 생명시스템에 이르는 위대한 과학적 발견으로서 그 이론적 의의와 내용을 상세하게, 그러나 일반  자 누구든지 이해하기 쉬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생물의 유전자정보 담당자로서의 DNA에 대한 구조와 그 대칭성이 지니는 의미, 이후 왓슨, 클릭, 윌킨스로 이어지는 DNA나선형 사슬에 그 과학적 발견과 생물학적 특성의 규명을 가능케 한 ‘샤가프의 퍼즐’의 설명은 이 저술의 중추적 내용이 되고 있는 ‘동적 평형’과 같이 분자세포학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원자는 그렇게 작은데 우리의 몸은 왜 이렇게 큰 것 일까? 하는 이 원초적 질문에 대한 ‘평방근의 법칙(루트n의 법칙), 즉 오차율의 부정확성을 줄이기 위한 고도의 질서를 요구하는 생명활동에 치명성을 줄이기 위해’자연이 선택한 이 오묘한 신비, 그리고 핵산의 위태로운 균형과 같은 네트워크화 된 ‘상보성’과, “생명이란 요소가 모여 생긴 구성물이 아니라 요소의 흐름을 유발하는 효과”라고 새로운 생명관을 제공한 ‘루돌프 쇤하이머’의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란 생명의 정의 등, 이 화려한 생물학적 발견에 대한 지식의 향연은 가히 매혹적이다! 라는 표현이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어진다.

또한 췌장의 소화효소 생산세포의 세포막을 구성하는 GP2란 단백질이 생명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기위한 GP2 넉아웃실험과 그 결과 GP2마우스(쥐)의 성공적인 배양과 탄생에서 기계적 비교와 같은 인간의 오만한 과학적 실험이 가져온 어리석음을 겸허하게 반성하기도 한다. 이 실험에서 저자는 생명현상의 다양한 중복과 과잉이 생명시스템 자체에 이미 사전에 준비되어있고, 질서 그 자체를 유지하는 생명이라는 시스템의 고유현상- 동적 평형 -의 경이로움에 숙연해진다.

프랭클린의 DNA C선 해독자료를 훔친 윌킨스와 왓슨의 몰염치 같은 과학적 발견 뒤에 숨겨진 에피소드에서, 펄레이드의 단백질 흐름의 가시화 연구, 슈뢰딩거의 브라운운동과 확산, 평균하면 등 풍요로운 분자생물학의 역사 등 다양한 연구 성과에 이르기까지 이 저술은 문학작품을 능가하는 몰입을 견인하며, 철학과 문학, 과학이 통섭하는 학문적 다채로움의 장을 선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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