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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오따쓰 - 세상을 다시 창조하는 마을
앨런 와이즈먼 지음, 황대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콜롬비아하면 그 정국의 불안함이 얼마나 오랜 기간 지속되었으면, 지구 반대쪽에 있는 무관심한 사람에게 조차 내전과 코카잎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제아무리 인류애가 깊고 이상적이며 균형 잡힌 발상과 실행도 이러한 사회에서 30여년을 꾸준히 지속하고 유지하기란 불가능해 보이기만 한다.
‘가비오따쓰’, 원주민 야네로가 제비갈매기를 일컫는 말이자, 이젠 콜롬비아 중부 내륙 사바나지역의 생태공동체 마을의 이름이며, 지명이기도 하다. 또한, 인류와 자연의 조화를 실천하는 사람들 그자체이기 하며, 존재 가능한 유토피아(Utopia)의 이름, 즉 지상에 유토피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실행된 그 어떤 유토피아보다 훨씬 더 실천가능성이 있음을 입증하는 장소이다.
나무 한 그루 자랄 수 없는 버려진 광활한 사바나의 초원에서, 숲이 성장하는 토양으로 만들어 내고, 지구 대기환경을 끊임없이 훼손하고 있는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한 태양광을 이용한 천연의 에너지 개발을 위한 무수한 연구노력, 그리고 오염된 식수로 질병에 노출된 극악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식수원과 상상력 넘치는 펌프의 개발 등 오직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통해 풍요로운 이상향의 건설에 매진한‘파올로 루가리’를 비롯한 콜롬비아국립대 농화학부 토양화학자‘스벤 제텔리우스 박사’, 안데스대학 기계공학부 교수‘호르헤 쌉’박사등 최고 지성들의 야망에 찬 출발은 정말 인류의 대안적 생활양식처럼 기대와 열망으로 가슴 부풀게 한다.
제텔리우스 박사가 “새롭고 대안적이며 거주 가능한 생태공동체를 목표”로 하여야 한다고 오늘 이 공동체의 산파이자 후원자이고 주체자인‘파올로 루가리’에게 제언한 초기의 이상(理想)은 이제 울창한 열대삼림지로 변모하고, 자족경제를 마련한 명실상부한 생태공동체의 실증으로 우리에게 그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단기 생명보험 패키지, 무기판매, 경호시스템, 장례기업과 같은 “죽음이 가장 잘나가는 성장산업”이라 할 정도의 무차별적인 살상이 공공연히 자행되는 콜롬비아의 불안정한 사회 환경을 극복하고, 이들 초기의 가비오따쓰인(人)들이 그들의 꿈을 실현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30여년이라는 그 오랜 세월만큼 무수한 굴곡과 시련의 연속이다.
자연친화의 생태공간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농기구와 태양열온수기를 비롯한 난방기구, 풍력과 놀이를 이용한 펌프의 개발 등 공동체의 삶을 지속시키기 위한 초기의 부단한 노력에서부터, 공동체를 위해 지혜와 노동력을 아끼지 않았던 무수히 지나쳐간 사람들의 진실과 애환, UN과 UNDP 등 구호와 지원의 단절로 자생하기 위한 수익원천의 발굴이라는 문명사회와의 불가피한 연계에 대해 공동체의 이상을 손상시키지 않고 어떻게 그 접점을 찾아 내는가하는 실천적 문제점들이 생동감과 열정이 담겨져 기술되고 있다.
한편, 부분적으로 틀렸음이 입증되기도 하였지만, 1972년 로마클럽이 제출한 보고서‘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에서 “소비와 생산재의 문제에서 전 세계인이 집단적으로 자제하지 않으면, 인류는 한 세기도 지나지 못가서 실제적인 생존이 불가능해 질것이라는 경고”는‘지구를 구하기 위해 맺은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조약’이라 일컬어지는 1987년 몬트리올협정으로 이어졌음과 같이 급격하게 파괴되는 오존층처럼 지구환경의 손상은 그 심각성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가비오따쓰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은 실로 지대하다.
물론 가비오따쓰의 30여년에 걸친 지난한 과정이 모두 성공적이지만은 않다. 작게는 그들이 만들어낸 수력터빈이 기술적으로 성공했으나 전력이 갖는 사회적 시스템의 연속성을 고려하지 않은 사회적 실패, 까싸바 분쇄기가 가져온 생활의 편리함과 생산성의 향상이 원주민과 농촌사회와의 괴리로 문화적 측면에서 실패하기도 한다. 또한, 공동체의 정체성이란 측면에서 “사람들은 우리를 왜 분류하려는지 모르겠소. 우리는 이념 주의자가 아니에요. 모든 이념은 문제를 불러일으킬 뿐이지요.”라는 루가리의 열띤 주장에도 세상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어느 한 틀에 끼워 맞추려는 이기적 잣대를 거두려하지 않는다. 더구나 콜롬비아 중국대사를 역임하는 끼비오따스의 조정자였던‘빼빼 고메쓰’와 파올로 루가리와의 공동체에 대한 견해 차이는 우리사회(한국)의 대안공동체의 실현에 있어서도 신중히 고려하여야할 다양한 과제들을 시사해주고 있다. 경쟁이 없는 사회, 이기적 소유욕이 배제된 삶을 사는 공동체로서 구성원들의 직무,기능 영역의 자율적 수행과 상호존중, 균등한 대우, 거주공간과 식사의 공동적 운영 등 200명 남짓한 공동체로서 불협화음이 대두되고 있지 않지만, 관리되어야 할 삼림의 규모와‘지속가능한’인류의 대안 공동체로서 성장하기 위한 구성인의 증가에 대응하는 시스템의 고려가 준비되어야만 할 것이다.
“발전이란 어떻게 정의하시겠습니까?”하는 질문에 국민총생산(GDP), 의료 병상수와 같은 물질적 지표가 아니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라는 루가리의 인류의 진정한 발전에 대한 진의는 “지속 가능한 기술이나 경제 발전 같은 것은 그에 걸 맞는 인간의 발전 없이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와 맞물려 21세기 오늘 시장만능적 몰가치와 이성의 황폐화, 지역,민족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산업 국가들의 우리들에게 현명한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한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러시아, 인도, 중국, 멕시코가 제조 불법 화학물질(염화불화탄소(CFCs,프레온가스),메틸브롬화물)이 콜롬비아가 생산해내는 최악의 물질 코카인의 양을 능가하고 있을 정도로 인류는 이기적이고, 무지하며, 몰염치하다. 그래서 파올로 루가리를 비롯한 가비오따쓰인들의 이젠 울창한 삼림으로 변모한, 여전히 인류미래의 대안을 실험하는 유일한 장소처럼 보이는 야노스(Llanos)의 생태공동체가 어떤 구원처럼만 느껴진다.
수백만 그루씩 심어지고 관리되는 소나무, 그리고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복원능력으로 천연의 열대우림처럼 보이는 경외를 자아내는 숲, 그곳의 동물들, 새, 곤충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자연의 소리, 경쟁 대신 협동이 들어서 있는 장소, 나누고 섬기는 존재로 살아남는 사람들, 스스로 만들어낸 독소에 젖어 허우적거리는 인류에게 잃어버린 감각을 되살려주고자 하는 시도가 지구 한쪽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본다. 누군가 루가리에게 말한다. “당신이 쓰고 있는 역사는 마치 시와 같군요.”가비오따쓰인들이 지금도 만들어내는 사바나의 풍요로운 삼림은 바로 우리들 미래의 삶이 되지 않을까?
앨런 와이즈먼의 이 저술은 그의‘인간 없는 세상’이 도래하기 전, 우리 인류가 준비할 수 있는 진정한 상상력이자 현실이며, 귀중한 대안으로서 아름답다. 인류의 오디쎄아(Odisea)로 발걸음을 내 딛는 가비오따쓰를 그리며...
“사람들은 가장 편리하고 풍족한 곳에서 사회적 실험을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힘든 곳을 원했지요. 여기서 무언가 이루어 낼 수 있다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해낼 수 있을 겁니다.”
- Paolo Lug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