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지구에서 7만 광년
마크 해던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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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친구, 우정, 의리, 호기심, 모험심, 도전과 같은 어휘들을 떠올리게 하는 환상적 모험기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무심한 듯 아이들이 던지는 어른들을 향한 시선에서 허점과 결여 투성이의 미흡한 기성사회를 보게 되고, 불완전한 어른의 세계를 뛰어넘는 또 다른 성장의 모델까지 제시하는 작품이라 하여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의미심장한 철학적 구조나 경직된 언어로 이루어진 문장과는 거리가 아주 먼 유쾌하고 발랄하며 활력이 넘치는 동화적이고 헐리웃 스타일의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의 흐름으로 한 순간에 작품에 도취될 정도로 단순 명쾌한 구성에 이 정도의 주제를 편입시킨 작가의 역량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학업에는 관심이 없는 문제아인 나,‘짐보’, 그리고 과격한 데스메탈(death metal)음악에 심취하고 가죽잠바와 오토바이족과 어울리는 누나‘베키’, 프라모델이나 조종하는 실업자 아빠, 생계를 책임지느라 바쁜 직장생활을 하는 엄마라는 가족구성처럼 소설은 전통적 성역할을 답습하지 않으며, 짐보가 아빠에게 사다드리는 <초심자를 위한 500가지 요리법>이라는 요리책처럼 엄마에게 이혼당하지 않도록 돕겠다는 의도는 물론 의기소침한 어른들에게 세상 다시보기라는 용기와 긍정의 관점을 선사하기에까지 이른다.

한편 엉망인 학교생활이지만 마음을 흔쾌히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찰리’와 함께 겪게 되는 세상보기는 문제의 접근과 해결,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도전과 용기, 위험과 결단, 우정과 의리 등 사람의 정신과 관계에 대한 모델로서의 역할을 한다.
짐보와 찰리, 두 소년의 호기심은 우연히 엿듣게 된 두 명의 선생님이 주고받는 알 수 없는 언어의 기묘한 의혹에서 시작된다.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선생님들을 미행하고 감시하며, 급기야는 몰래 잠입한 선생님 집의 다락방에서 이상한 언어로 써진 쪽지와 용도를 알 수 없는 팔찌를 발견 한다.
그러던 중 찰리가 실종되고, 의혹의 두 선생님도 감쪽같이 사라진다. 여기서 소설은 빠른 호흡과 긴장을 높이는 추리적 요소와 서술로 전환되어 급격하게 독자의 시선을 밀착 시킨다.

이 속도는 짐보를 살해하려는 낯선 이들과의 힘겨운 격투와 누나 베키와의 긴박한 탈출의 장면, 그리고 찰리가 써 놓은 <스푸드베치!>라는 비밀의 단서가 지목하는 곳, ‘스코틀란드 스카이섬의 코루이스크 호수’여정으로 급격하게 치솟는다. 이 여정에서 견원지간처럼 으르렁대는 남매는 형제의 사랑을 새삼 깨닫는데, “나는 내가 실은 우리 누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평생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하는 짐보의 이 대목은 누나를 괴롭히기만 하는 내 아들 녀석이 제 누나만 없으면 안절부절 하는 모습과 겹쳐 슬며시 공감의 웃음을 머금게 된다.

쪽지의 좌표가 말하는 장소, 파란빛의 기둥, 그리고 쾅! 하며 사라지는 사람. 오직 친구 찰리를 구하겠다는 짐보의 열망은 예기치 않은 원통장치에 이끌려, 대마젤란 성운 방향으로 태양계 중심에서 약 7 만 광년 떨어진 곳인‘궁수자리 왜소 타원 은하’에 도착한다. 거기에는 알 수 없는 언어를 말하던 두 선생님, 바로 외계인를 발견하게 된다. 지구의 파괴를 기획하는 외계인의 음모와 이를 막고 지구를 구하여야하는 절대절명의 위기가 두 소년의 어깨에 지어진다.

다분히 동화적이고 몽환적 요소로 살짝 유치하기도 하지만 이야기에 내재한 어른들의 불완전성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세상보기 제시라는 둔중한 주제의식은 재미를 오히려 깊게 만들어준다. 쾅! 우주여행의 시작과 도착을 알리는 굉음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정신을 구성하는 우주를 이해하고 나아가 새롭고 독창적으로 구축해 나가는 소리의 다른 형식이 아닐까? 두 악동의 용기와 사랑, 모험의 여행을 감동적이고 성공적으로 그려낸‘마크 해던’의 또 하나의 걸출한 모험 소설이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으면 얼마나 다른 이해를 말하게 될지 궁금해지기도 하는 그런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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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아이, 몽텐
니콜라 바니어 지음, 유영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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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8개월짜리 여아(女兒)의 해 맑은 눈망울과 천진스런 미소, 깔깔대는 그 순박한 행복의 메아리가 내 가슴속으로 밀려오는 듯하다. 인간의 발길을 허락한 적 없어 보이는 깊고 깊은 협곡과 산악, 야생의 동물들과 강과 호수와 습지, 그리고 섭씨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의 대 자연에 그대로 하나가 된 듯 한 몽텐, 디안, 니콜라, 이들 가족의 여정은 그대로 아름다운 시(詩)가 되고, 삶의 노래가 되며, 생생한 활력이 되어 스모그처럼 탁해진 정신과 마음을 청량한 기운으로 바꿔준다.

캐나나 북부 프린스조지에서 시작해 험준한 로키산맥을 넘어 알래스카 접경지 도슨에 이르는 이천사백 킬로미터의 대 여정은 변화무쌍한 자연이 인간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고, 혈관 속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두려움으로 심장을 옥죄는가하면, 가족의 안전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 문명으로부터의 엄청난 거리가 주는 무원(無援)의 숨막힘,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절대 고독의 조합이 된다.

겨울 여정을 위한 준비의 지점, ‘투카다시’호수로 가는 네 마리 말과의 신경전, 삶과 죽음의 경계에 맞닥뜨린 회색곰과의 아찔한 조우, 쉼 없이 내리 퍼붓는 지긋지긋한 비, 모기떼 등 타이가 여름의 고단한 걸음에서 이들 가족의 신뢰와 인내, 사랑의 숭고함, 아니 인간정신의 경외를 목격한다.

특히 일 년 여에 걸친 기나긴 이 대자연 여행기가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우며, 행복감에 도취되게 하는 것은 새의 울음소리를 따라하고, 자연의 색깔과 움직임 하나하나를 자신의 커다란 눈으로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듯한 아기, '몽텐(Montaine)'의 자연과의 닮아가는 모습 때문이며, 그저 한 편의 서정시라 하여야 할 것만 같은 “아득한 아침의 빛”과 호수와 숲과 야생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향기와 그 무수한 자연의 오묘한 색깔들의 향연이 더 없이 소박하고 감동적으로 펼쳐지고 있음에서이다.

소나무를 베어 통나무집을 세우고, 온 세상이 얼어붙는 겨울 눈썰매 출정을 준비하는 과정과 함께 수놓아지는 그 매혹적인 가족의 풍경은 문자 그대로‘태초의 풍경’이 그러했으리라 만큼 천상의 행복감을 선사한다. “숲에 사는 것이 아니라 숲과 함께 사는”사람, “나는 산 속에, 산은 내 속에 있는” 사람, 자연과 합일이 되어 있는 이들 가족의 무한한 자유와 조화는 바로 우리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부러워지기조차 한다.

여정의 작고 소박한 느낌과 사건들에서부터 생사를 달리는 위기의 순간들, 동물과 인간의 교감을 넘어 자유의지라고 까지 판단력과 믿음을 쌓아가는 과정, 문명과 동떨어진 차디차고 고요한 눈 덮인 협곡과 얼어붙은 강위를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혹한 속 눈썰매, 그 안에 새근거리고 잠든‘눈의 공주’.몽텐의 사랑스러움에서 진정 인간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번뜩 깨우치게 된다. 어느덧 인간에게 낯 선 것이 되어버린 자연, 자연과 점점 멀어진 인간들이 말하는 진보가 얼마나 커다랗게 인간을 상심시키고 있는 것인지, 경탄과 환상의 기쁨을 앗아가 버린 것인지, 이들의 고귀한 경험이 어떠한 설득보다 강렬하게 다가온다.

 

‘니콜라’의 위험한 여행 제안을 따라주고 엄청난 희생을 감수한 아내‘디안’에 대한 절절한 고마움, 자연에 대한 민감성과 감수성이라는 놀라운 유산을 갖게 된‘몽텐’, “얼굴에는 서리가 맺혀있고, 눈썹은 얼어붙은”이들이 마침내 폭설과 혹한, 영하40도의 물살과 유빙을 해치고 ‘도슨’에 “다왔다!”고 외치는 순간은 단지 독자인 나에게도 정말 환상적인 순간이 된다. 해냈다! 아기도 해냈고, 니콜라와 디안도 해냈다. 보물보다 소중하고 값진 경험, 이들이 들려주는 록키산맥의 자연과 행로, 툰드라에 울려 퍼지는 새들의 울음소리와 몽텐의 미소, 정말이지 듬직한 명견‘오춤’의 활약이 물밀듯이 감동으로 밀려온다.  눈과 얼음, 장엄한 대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감수성 높은 야생 여행기이다. 아름답다, 경이롭다, 그리고 경외의 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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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결혼시대
왕하이링 지음, 홍순도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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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화, 근대화 등 서구의 자본주의적 물질주의를 단시간 내에 쉴 새 없이 흡수하고 있는 사회, 오늘의 중국이 거치고 앓아야 하는 일상의 갈등과 이해의 문제를‘결혼’이라는 화제에 담아 그 속성과 본질을 규명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삶의 성찰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유교적 봉건전통 문화와 서구의 물질적 합리주의 문화의 충돌, 농촌인구의 도시유입에 따른 사회적 갈등 등 우리의 70,80년대와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어 작품 속 인물들이 겪고 있는 홍역을 이해하는데 별도의 해석이 필요 없을 만큼 친근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배용준’, ‘김치’, 한국의 대중문화, 등속의 표현들이 잘사는 나라의 모델처럼 스치듯 지나가는 일화에서 이 작품의 통속적 취향을 엿볼 수 도 있는데, 오늘의 중국인들이 부딪는 현상이 아주 낯익은 것이라는 점에서 시시콜콜한 지나간 한국의 TV 드라마 속 장면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갈등하고 고통 받으며 때론 기뻐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들이 마치 한국인의 그것과 같은 동질감을 느끼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의사 엄마, 교수 아빠라는 선택된 가정에서 양육된‘샤오시’라는 도시 여성과, 오지 시골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지만 세칭 일류대를 졸업하고 잘나가는 IT기업의 촉망받는 사원인‘젠궈’와의 결혼생활을 플롯으로 하고 있다. 눈치 챌 수 있겠지만 이미 도농(都農)의 대비가 암시하듯이 이들의 일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여전히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유교의 봉건적 관념이 젠궈라는 남성의 가계(家系)에 있어서는 굳건히 틀을 잡고 있다. 가부장적 질서, 남존여비, 여성의 자손번식자로서의 의무와 같은 전근대적 유산들과 관계에 의거한 청탁과 의존에 대한 의식 없음과 같은 무례함으로 대표되는 남자의 집안과 합리주의와 도시의 규격화된 일상, 근대적 이성주의에 기초한 도시 상류계층인 여자의 집안은 사사건건 마찰과 마주한다.

특히나 결혼이 사랑하는 두 젊은 남녀의 결합만이 아니라, 두 사람의 가족과의 결합이라는 인식과 대립하면서 이들 부부의 신랄한 갈등의 촉발은 끊임없이 양쪽 가계가 제공한다. 도시에서 출세한 아들이 가난한 시골의 부모와 형제, 친척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젠궈의 아버지는 사돈 집안의 도시에서의 영향력이 당연히 자신의 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샤오시는 이러한 시아버지의 무리한 요구에 반발하지만 번번이 수용하여야만 하고 고통을 감내하여야만 하는 수동적 자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분노한다. 이야기의 중심을 관통하는 제재는 이렇듯 양가가 상징하는 도시와 농촌, 근대와 비근대의 쟁투를 담고 있지만, 이에 못지않은 또 다른 의미에서 선보이는 결혼관도 재미를 더한다.

출판사 직원인 샤오시와 그녀의 동료인‘젠자’라는 여성의 이성관과 결혼관인데, 대재벌 총수의 정부(情婦)로서 6년여를 보내지만 결코 자신과의 결혼을 거부하는 남자를 떨치고, 샤오시의 동생인 연하의 남성,‘샤오항’과의 사랑과 결혼을 향한 사회 관습과의 갈등과 이의 돌파를 위한 과정을 통해, 물질과 학벌과 같은 속물적 조건에 내둘리는 오늘의 젊은이들이 지니는 결혼관과 풍속을 해체하고, 결혼의 의미를 진중하게 정립한다. 또한 자신의 성취를 향해 철저했던 아내를 둔‘샤오시’의 아버지가 상처(喪妻)를 함으로서, 일생 한 끼의 식사에서부터 작은 보살핌등과 같은 아내로부터 내조를 받지 못했던 남자가 맞이하는 노년의 삶을 재조명함으로써 혼자된 노인들의 결혼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 감성적 접근은 물론 사회의 태도와 대중적 시선을 일깨우기도 한다.

일면식도 없는 남편의 형수(손위 동서)의 친정 할아버지의 상(喪)에 곡(哭)을 위해 마지못해 오지 산골로 찾아가지만, 그 사이 친정 엄마는 과로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단지 베이징이라는 도시의 잘 교육받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변에 과시하려는 시골 형수의 체면을 위해 반드시 가야한다는 남편의 채근에 못 이겨 이루어진 여정이었으니, 이 사건이 초래한 파국은 극단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이 작품을 수놓는 두 남녀와 도농 가족 간의 에피소드들, 그리고 연상연하 커플, 노년의 삶을 통해 그네들이 당면한 시대의 충돌들을 유머와 재치 넘치는 문체로 그러나 진지함을 잃지 않은 노련한 의식을 담아 대중에게 사유의 기틀을 던진다.

이해와 배려의 과정, 물질을 넘어서는 사랑의 진정성, 자본의 중용적 가치라는 결말의 시사처럼 중국사회가 안고 있는 그네들로서는‘신(新)’결혼 시대의 통증은 수습되고 안착될 터이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선택한 배제와 배타, 물질숭배, 자본지상의 조건만이 남아있는 우울한 결혼시대는 오히려 구태(舊態)스럽고 케케묵은 이네들의 티격태격하는 신 결혼시대라는 과도기의 산물을 부럽게 한다. 오늘의 중국인들을 들여다보는 모처럼의 즐거운 계기가 되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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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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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무로마치 막부 시대의 말기인‘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지배하던 16세기, 다도(茶道)의 명인인‘센 리큐’라는 인물을 통한 다도의 미학, 그리고 이에 얽힌 사랑과 삶과 죽음의 서사시라 하여야 할까. 특히나 리큐(利休)다도의 정수(精髓)에 조선 여인의“처절한 아름다움과 범접할 수 없는 위엄, 그리고 우아함”이 놓여있음은 감성의 동요(動搖)를 일으키게 하고, 작품의 몰입을 재촉한다.

또한 익숙한 시간을 역행하는 구조는 주인공인 리큐의 사사(賜死)라는 최근의 사건으로부터 과거의 시간으로 안내하여 인물의 삶과 배경을 하나씩 드러냄으로써 한 인간이 추구하였던 미(美)의 본질과 그 진실의 심원에 더욱 매혹적으로 다가서게 한다. 그리곤 바로 그 정점에 천하제일의 다인(茶人)이 그토록 도달하려한 다도의 진수인 “깊은 산골 속에 돋아난 풀, 그에 깃든 생명의 빛”이자, “자연스러운 소박함 속에서 심원한 조화의 미”의 비밀과 근원을 발견케 한다.

한 꺼풀씩 벗겨지듯 드러나는 세월의 내밀한 과정에서조차‘녹유향합’이라는 열아홉 살 마주했던 그 강렬하고 선명한 숭고할 정도의 아름다움을 구체화 할 뿐이다. 거기에는“소박한 풍정 속에서도 관능적인 풍윤함이 있는 독자적인 다도 세계”의 실재(實在)가 있고, “사람을 죽이는 한이 있어도 갖고 싶을 정도로 크나큰 아름다움”을 말하는 리큐 다도만의 본질이 있다.
문득,‘다도(茶道)’라는 소재 하나로 이 정도의 풍미 넘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작가의 역량에 은근히 샘이 나기도 한다. 사실 작품 속 이방인들의 일본 다도에 대한 비판처럼 다다미 2,3장에 불과한 좁디좁은 방에 모여 작은 흙덩이에 불과한 다완(茶碗)을 들고 뻔한 칭찬을 해대며 맛없는 음료를 마시는 행위에 무어 그리 대단한 의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할 만큼 시시한 소재에서 말이다.

그러나 한 다도 명인의 삶의 역정을 통해 우리네 인생사를 구축하는 다양한 모습들, 다시 말해 한 순간이 지배하는 영겁의 진실,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이란 삼독(三毒)과 같은 사람의 본성에 내재하는 그 품격들이 격돌하는 사사로워 보이기만 하는 역사의 장면들을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다.
최고의 권력자인‘히데요시’의 다두(茶頭)로서 세상의 존경을 받는‘리큐’라는 인물의 심미안(審美眼)의 본질, 화려한 서원다도와 소박한 와비다도를 승계하지만‘소박한 초암(草庵)속의 화사함’이란 그만의 다도 정신을 구성하는 이야기 속 사건들은 삶에 대한 예리하고 풍부한 해석을 품고 있다. 그래서 작품의 탁월한 서사적 재미를 뛰어넘는 인생에 대한 고귀한 사유를 외면키 어렵게 한다.

관백‘히데요시’가 ‘리큐’의 사사를 명령하는 죄목은 사실 변명에 가깝다. 사찰에 건립된 리큐의 목상이 불경스럽다는 것과, 다완을 비롯한 다기를 미적가치라는 명목을 통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날카롭다는 뜻, 지나치게 날카로운 사람은 배척당한다.”는‘리(利)’라는 이름자나, 히데요시가 던지는 리큐의 내면을 관통하는, “ 너만큼 욕심과 색이 강한 사내는 달리 본 적이 없어.”, “ 마음속에 감춘 교만을 용납할 수 없었다.”는 것과 같은 말들의 반복과 같이 이미 처세, 아니 진정함에 대한 삶의 진실을 어겼다는 보다 본질적인 의미의 결과라 해야 할 것이다.

한편 할거하는 지역의 쇼군들을 복속하거나, 조선통신사를 맞이하는 히데요시의 일화 등 역사적 사건들에 등장하는 행다(行茶)의 의례(儀禮)로 자연스럽게 다도의 효용이나 그네들의 삶으로 체화된 본질을 담아내는 의연한 문장들에서 절로 다도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읽게 된다. 한 낱 차를 마시는 형식례에서 사람을 꾀는 술책으로, 마음의 해방공간으로, 삶을 다스리는 호흡의 완급과, 생명의 우미한 광채까지 헤아리게 되며, 또한“아니꼬워 보이지 않을 만한 겸양”으로서의 고매함이란 어떤 것일지, “고담하고 처연할지라도 그곳에 활기찬 생명의 싹이 있어야 바람직”한 것이란 바로 무슨 형상일지, “똑같이 탐욕스러워도 사람에 따라 품성”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촘촘히 들어찬 삶의 태도와 근원을 읽게 한다.

다도와 그 다도를 일으킨 역사 속 다인(茶人)을 말하는 일본의 역사문화 소설에서 삶의 태도와 사람의 품격, 그리고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에 공감하는 것은 분명 문학이 주는 사유의 즐거움이 된다. 다만 그 역사는 특정한 하나의 민족이나 국가만의 역사일 수 없다는데 다른 시선이 놓여 질 수밖에 없다. 모두에서 언급하였듯이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히데요시가 조선정벌을 준비하던 시점이고, 더구나 조선의 다기, 조선 여인의 상품화와 약탈, 침략에 대한 향수 등이 소재로 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다 노부나가’의 하룻밤 욕구를 채워주는 여성 역시 조선의 여인으로 설정하고 있다. 물론 문학작품에 민족주의적 보수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편협한 비판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진정 한 편의 아름다운 회화(繪畵)같은 작품으로 그 섬세함과 수려한 문장들에 매혹되지만 한편의 씁쓸한 심정을 그저 놓아버리기만은 쉽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 될 것이다.

리큐의 아내 소온의 말처럼 “싸늘하게 식어 있는데 몸은 달콤한 열을 띠”게하고, “그것이 더욱 서글프고 안타깝게”다가오는 작품이다. 아마 ‘탄탄한’작품이란 이 작품을 위해 만들어진 표현이리라. 삶의 열정과 이상을 다도 미학에 버무려낸 또 하나의 역사소설 걸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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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종말시계 - '포브스' 수석기자가 전격 공개하는 21세기 충격 리포트
크리스토퍼 스타이너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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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 연료인‘석유’의 고갈로 인한 인류의 암울한 미래상 또는 인류문명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2009년12월10일자 영국의 시사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 Economist』를 통하여‘국제에너지기구(IEA)’가 '피크 오일(peak oil)'이 2020년에 닥칠 것임을 공식 인정함에 따라, 우리들의 일상은 유가의 상승에 따라, 어떻게 변화 될 것인지, 경제, 정치, 사회에는 무슨 일들이 발생할지, 그래서 우리들은 어떻게 이 변화되는 환경에 대처하여야 할지, 또는 준비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미래 보고서라 할 수 있다.

기괴한 낙관론들에도 불구하고 석유는 고갈될 것이며, 그 고갈을 향한 총생산량의 감소로 가격은 불가피하게 엄청나게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진실이다. 유가가 오르지만 저마다 자신의 경제적 능력이 수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그 수용 가능한 유가의 수준이란 어느 수준일까? 이대로 가만히 앉아 지금의 10배로 뛰어오른 유가에도 우리의 산업기반과 가정경제가 버텨낼 수 있다고 보는가? 아마도 3~4배만 되어도 거의 모든 산업은 정지되고, 도로에 움직이는 차량은 극단적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물론 유가의 상승에 따라 기술, 정책, 산업 제반에서 이의 대책을 준비하고, 그 구체적 실행에 착수하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싶다. (한국의 국가정책에서 이러한 대책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 본적이 없음) 석유의 공급부족이 결국 지혜로운(?) 인간들에게 일정한 조정기간을 거쳐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과 산업을 창출할 것이고, 인류의 일상도 거기에 맞게 재구성 될 것이라고 낙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임기웅변의 대응책으로 이러한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도 터무니없거니와, 설혹 정밀하게 구성된 준비가 있더라도 오늘의 세계사회의 일상은 거의 모두 석유에 의존하고 있기에 그 새로운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간과 재원이 요구될 것이다. 아마도 기나긴 ‘조정기간’에 심각한 실업, 극심한 경제 불황, 상상을 초월하는 식량난 등 국제분쟁으로 인한 고통과 참담함은 실로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우린 이러한 예측 가능한 시련을 극복키 위해 지금이라도 준비와 실행에 착수하여야 할 것이다.

이 저술은 이와 같은 곧 다가올 위기의 가능성에 대해 갤런(gal)당 유가(油價)의 추이에 따라, 불가피하게 변화되는 상황과 그에 대한 대처방안, 실제의 움직임을 분석, 예측, 설명하고 있다. 1 갤런 당 4달러에서 1 갤런 당 20달러에 이르기까지 9단계에 이르는 유가의 단계별 상승에 따른 인류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실로 가공할만한 위협이 될 것이다. (*1갤런은 3.785리터)
4달러에 이미 주요 산유국의 절반이 생산을 줄이고 있으나, 여전히 소비에 열광하는 인간들은 절제와 위기의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6달러에 이르면 이러한 인간사회는 아무런 대비도 없는 상황에서 이 변화의 촉발을 감지하기 시작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물론 유가의 상승이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유가가 10퍼센트 오를 때마다 교통사고 사망률이 2.3퍼센트 감소하고, 1달러 오를 때마다 비만관련 질병 사망자가 미국에서는 1,000명씩 감소할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경찰등 관용 차량의 사용은 절대적으로 감소할 것이며, 이는 시민과 경찰의 친화와 호감 증대, 범죄의 감소라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니 불행 중 다행이란 것이 이런 상황을 일컫는 것일 게다.
8달러에 이르면 드디어 석유를 이용하는 항공사 등 직접산업들의 대학살이 본격화 되고, 사람들은 이동 수단의 비용을 감당 할 수 없어 인구와 생활시설이 밀집된 도시로 집중될 것이며, 유흥과 여가시설 등은 대부분 문을 닫을 도리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개인이 사용하는 차량은 모두 멈추어 차고와 주차장에 먼지를 안고 서 있을 터이다. 대규모 실업과 석유에 기반하는 제품 물가의 기하학적 상승으로 가계가 절망에 떨 것은 자명하다.

이에 대해 이미 미국 등 선진 여러 나라들은 전기차와 전기차의 상용적 기반을 위하여 송전시스템 및 관련 기간망의 구축을 위한 실행에 착수하여 정부, 전력기관, 관련 산업분야가 일체가 되어 구체적 예산은 물론 실행일정에 따라 그 단계별 이행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 충격을 완화하고 삶의 지속성을 유지키 위한 진지한 노력을 벌써부터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10달러에 이르면 “진보와 기술에 대한 보루”가 완전히 무너지게 되며, 플라스틱 사회는 영구히 종말을 고하게 될 것 이란다. 그러나 우매한 인간은 12달러가 되어서야“소득을 갉아먹는 에너지의 전성시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자각하게 된다니, 그 탐욕스러움은 자신들의 종말을 목전에 두고서야 깨달을 정도로 어리석은 모양이다.

교외 주택의 가치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대형할인점의 시대는 종지부를 찍고, 동네의 상점이 부활하며, 도심 주간고속도로는 영구적으로 철도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대도시는 더욱 조밀해 질것이다. 14달러에는 급증한 운임비를 감당할 수 없어 세계화는 역행하고, 해외의 생산기지는 자국으로 철수 하게 되며, 쓰레기처리 비용으로 신문지, 포장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급기야 식품네트워크가 붕괴되고 지역농장 중심의 일상으로 회귀하는 16달러 시대, 그리고 대부분의 이동과 수송은 철도 네트워크에 의존하여야 하며,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는 미국의 군대도 전투기와 탱크, 함대의 에너지문제로 그 역할을 최소화하여야 하는 18달러 시대를 거쳐, 20달러 시대는 더 이상 석유를 이야기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두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저자는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지금이라도 이 엄청나게 긴 조정기간에 발생 할 고통과 시련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과시적 소비행위를 지양(止揚)하고, 절제의 미덕을 최선(最高의 善)으로 하는 겸허함의 자세로 전환하여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곤 석유 의존적 인류의 산업기반을 ‘전기’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체제로 이전하는 준비와 실행에 착수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핵폐기물 처리에 문제를 지니고는 있지만 원자력 이상의 대안을 현재의 인류는 가지지 못하고 있는 이상 유력한 기간자원으로 육성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저술의 세부적 예측사례와 실행방안에는 미래 산업에 대한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방향들이 실재하고 있어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미래 대책을 위한 정책 컨설팅의 보고(寶庫)라고도 할 수 있다. 치솟는 유가는 분명 우리들의 집, 차, 지역, 상점, 직장 등 삶의 형태를 바꿔 놓을 것이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 그리고 후손들을 위해 어떤 세상을 넘겨줄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사유의 근원을 제공 한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임박한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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