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신문이 말하지 않는 경제 이야기 - 정치와 경제를 한눈에 파악하는 경제학 지도
임주영 지음 / 민들레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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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경제신문은 매일경제신문(이하 매경)과 한국경제신문(이하 한경) 두 신문사가 압도적인 발행부수와 유료부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연혁상으로는 매경이 다소 앞선다고 한다. 당시 언론인 정진기 씨가 창간했다고 알려져 있다. 창간일은 1966년 3월 24일이다. 발행부수는 70만 부, 유료부수는 55만 부로 경제신문으로서는 최다이며 국내 1위 경제신문이다. 정식 영어 명칭으로는 'Maeil Business Newspaper'를 쓰는데 영어 약칭은 MK를 쓴다. 국내 최초의 경제신문은 산업경제신문(헤럴드경제의 전신, 1954년 창간)이고 2호는 서울경제였으나, 언론통폐합 이후로 경제신문계는 매일경제신문과 한국경제신문의 라이벌 구도로 이어져 왔다고 전해진다. 매경의 자회사로는 종합편성채널 MBN과 케이블 방송채널 MBN플러스, 매일경제TV를 운영하는 매일방송, 매경닷컴 등이 있다.

한경은 자산과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부문에서 경제신문 1위를 지키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매경과의 차별화를 부각시킨다. 금감원 공시. 최근 4년간만 비교해봤을 때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에서는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한국경제신문의 우위가 압도적이라고 한다. 매출은 경쟁회사인 매일경제신문보다 28억원 적은 2306억원이었다. 한국경제신문과 매일경제신문은 최근 4년간 매출 1위를 두번씩 나눠가졌다. 증권경제방송 시장점유율 1위의 한국경제TV와 경제포털사이트 한경닷컴 그리고 주간지 한경비즈니스·월간지 머니·비정기 간행물 무크 등을 발행하는 한국경제매거진, 경제 중심 출판사 한경BP, 클래식 등 고급문화 전문 채널 한경arteTV 등으로 구성된 한국경제미디어그룹의 모회사다. 서울서 발행되는 경제지는 이외에도 여러 개 있지만 아직 두 신문사의 성장세를 꺾을 만한 능력은 없어 보인다. 지방 경제신문 등 많은 경제지도 있지만 사실상 대한민국의 경제신문의 양대 산맥으로 매경과 한경을 꼽는다.

 


 

이 책 『경제신문이 말하지 않는 경제 이야기』은 부제 「정치와 경제를 한눈에 파악하는 경제학 지도」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경제신문에서 독자들의 경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다각도로 애쓰지만 그 성과에 미치지 못하는 원인이 경제 신문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중립의 정론'에 서 있지 못함을 지적하고 있다. 책의 저자 임주영은 "경제학에는 원래 정해진 답이 없다. 사람들은 경제학이 사회과학 범주에 속하고 주로 숫자와 데이터를 이론의 근거로 제시하니 마치 수학처럼 정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랬다면 IMF 국가부도나 대공황 같은 숱한 경제 위기를 반복적으로 겪었겠는가."라며 말문을 열고 있다. 경제 신문을 이용하는 신문의 독자들에게 신문을 만드는 사람과 그 신문이 정부의 경제 정책을 편향되게 보도하는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미국과 일본 경제에 기대어 산업화를 이룬 대한민국의 경제 신문이 올바로 설 수 있는 토양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창간 시에는 각자 정론을 펴서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꾀하고 독자에게 올바른 경제 지식과 재테크 등을 알리려던 창간 정신은 무디어지고 언론 통폐합으로 살아 남은 두 경제지가 정부 정책의 나팔수 역할로 명맥을 이어오는 동안 정부와 최대 광고주인 재벌 그룹에 의존하는 바람에 빚어진 현상으로 보인다. 더욱이 경제학이 제대로 된 이론 없이 현실과 맞지 않아 수없이 개선하고 고치는 오류를 범하면서도 부의 창출만 우선하고 분배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등 잘못된 관행이 이어져 왔다고 저자는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특히 경제학에는 현실과 전혀 안 맞는 가정을 전제로 계산하고 그 결과로 만들어낸 이론도 수두룩하게 많다고 주장한다. 이를 ‘세테리스 패러버스’라고 하는데, 결과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무수히 많을 때는 다른 변수는 없다고 가정하고 계산한다는 경제학 용어다. 쉽게 말해 그냥 마음대로 대충 계산하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경제 칼럼니스트인 저자 임주영은 우리 주변에 세테리스 패러버스로 계산된 무수한 경제적 주장들을 들여다보며 사실에 근거해 낱낱이 반박해 나간다. 곁들여 언론의 나팔수 역할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한다. 아울러 독자들이 제대로 경제 정책을 이해하고 나름대로의 재테크 능력을 키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를 테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면 3조3,000억 원의 GDP 증가 효과가 있다’ ‘최저임금이 1만 원이 되면 일자리가 6만9,000 개 감소한다’ ‘좌파 포퓰리즘으로 우리도 베네수엘라처럼 망할 것이다’ ‘전두환 시절이 더 살기 좋았다’ ‘실업급여로 해외여행이나 가고’ ‘긴급재난지원금으로 퍼주다가는 나라 살림이 거덜난다’ ‘국민연금은 곧 고갈돼 못 받게 된다’ 등 하나같이 익숙한 내용들이 도마 위에 오른다. 저자는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잔인한 ‘대격차의 시대’를 마주한 지금, 각자도생을 위하여 반드시 알아야 할 진짜 경제 이야기를 펴나간다고 밝힌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브렉시트(BreXit)'를 언급한다. 국민의 의견을 물어 2016년 6월 영국이 EU를 탈퇴한 일이다. 사실 브렉시트 선언은 유럽 다른 나라들과의 자유로운 무역을 전면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책에 따르면 경제 성장률은 곤두박질쳤고 GDP가 2022년 2분기까지 5.5%나 감소했다는 분석이 있었으며 금융회사 430여 개, 금융자산 무려 1조 파운드(약 1,600조 원)가 영국 밖으로 빠져 나갔다. 게다가 자유무역 포기의 대가로 관세는 더 높아졌고, 이주 노동자가 감소하면서 인건비가 크게 증가해 40년 만에 깨어난 인플레이션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브렉시트가 선봉에서 영국 경제를 나락으로 이끌었다는 이야기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영국 경제사를 통틀어 가장 아둔하고 바보 같은 결정으로 브렉시트를 꼽는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졌다. EU 탈퇴를 결정한 당일, 영국 국민이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한 문장이 "What does it mean to leave EU?(EU 탈퇴가 무슨 뜻이지?)"였다는 것이다. 그날 영국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검색창에 이 문장을 입력했다. 결국 브렉시트의 의미도 정확히 모르면서 EU 탈퇴에 투표했다는 뜻이다. 도대체 이런 일이 왜 벌어졌을까?

 


 

저자는 행동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대니얼 카너먼의 이론-사람들이 늘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을 들어 이날 투표 성향을 풀이한다. 오랜 기간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로 경제 불평등은 커졌고 서민의 삶도 갈수록 피폐해졌다. 보수 세려긍ㄴ 서민이 가난한 이유를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이 몰려들어와 서민의 일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이라고 선동했다는 것. 물론 사실이 아니다. 선동한 사람들이 사람의 '깊이 생각하기' 시스템을 차단했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영국 국민들은 신문의 경제 기사는 숫자, 생소한 용어, 내용도 이해하기 어렵다. 당연히 읽기 싫어했고, 난이도 높은 경제 기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여론을 확증 편향으로 이끌었다. 난민들 때문에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차별과 혐오를 더 키운 결과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카너먼의 이론을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들의 선택은 틀리기 십상이고 때론 결정과정도 엉망이다.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생각의 과정을 건너뛰고 대충 찍기를 선호하는데, 뇌의 이런 습관을 행동경제학에서는 ‘휴리스틱’이라 부른다. 이처럼 아둔한 결정으로 꼽히는 브렉시트를 저자는 대입시켰다. EU를 탈퇴하면 난민도 막고 일자리도 지킬 수 있다는 선정적인 선동에 휴리스틱이 작동한 것이라는 말이다. 당시 브렉시트를 옹호하는 매체가 잔류를 희망하는 매체에 비해 4∼5배 많았던 언론 환경을 감안하면, 국민의 결정 배경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저자는 ‘대한민국에선 브렉시트 같은 결정이 절대 일어나선 안 된다’는 절박함에 이 책의 집필을 결심했다고 〈프롤로그〉에서 강조한다. 지금 우리의 언론 상황도 당시 영국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는 생각에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중요하고 민감한 경제 이슈들이 많다. 사회적 합의가 매우 시급한, 더는 미룰 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런데도 실체적 진실을 알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정파적이고 이념적인 문구가 진실을 가리고, 숫자나 데이터를 과장해서 해석한다. 그 해석을 언론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면서 덧칠을 더해 이제는 뭐가 본질인지 알 수도 없다. 사실이 곡해되고 본질이 뒤틀리면 경제는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다. 경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오류를 바로잡고 강점은 발전시킬 수 있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던 꿈같은 시절에서 한순간 후진국으로 전락해버린 현재를 제대로 성찰하지 않는다면 더 깊은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라는 저자의 절박한 심정에 경제 신문 기사보다 오히려 더 눈이 가고 더 공감이 된다. 경제 공부도 하지 않고 경제 신문조차 잘 읽지 않는 대부분이 올바른 경제 정책을 따르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는 저자의 집필 취지가 훨씬 큰 설득력을 갖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논쟁거리들, 이해할 수 없는 경제 정책, 정치적 의도로 왜곡된 사안, 심상치 않은 세계 동향 등, 지금 우리가 당면한 경제 문제를 깐깐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그의 시선을 통해 언론은 알려주지 않는, 내 삶과 직결되는 진짜 경제 이야기와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무당 경제학의 굿판을 걷어차라〉, 2장 〈사람의 경제학을 위하여〉, 3장 〈정치가 밥 먹여준다〉, 4장 〈투기 조장 정부 vs 투기 억제 정부〉, 5장 〈익숙한 것들과 이별하기〉 등이다.

신문의 경제 기사를 매일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경제 기사는 대입 시험 수험생의 각오로 공부해야만 할 만큼 난이도가 높다. 그렇다 해서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지나쳐선 안 되는 이유는, 경제는 내 삶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주 노동시간, 국민연금, 긴급재난지원금, 실업급여, 가계대출금, 부동산 규제, 기본소득, 장단기 금리, DSR 등이 모두 경제 정책에 좌우되는 만큼,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에 휩쓸리는 것은 위험하다.

이 책은 우리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정책과 논쟁 이슈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복잡한 경제 이야기를 구체적인 사안 중심으로 해설한다. 일명 '무당경제학'이라 불리는, 근거 없는 슬로건에 불과한 ‘낙수효과’에 대한 맹신, 삶을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헛된 숫자 GDP의 실상, 최저임금이 오르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오해, 국민연금 관련 협박 마케팅, ‘주 69시간 근무제’ 추진의 내막, 긴급재난지원금과 재정건전성 사이의 상관관계, 부자감세가 초래할 국가 위기, 붕괴 직전에 이른 청년층에 대한 지원 정책 등,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두에게 해당되므로 더욱 똑바로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 사안들을 5개 장으로 나누어 자세히 풀어준다.

 


 

또한 경제와 정치는 서로 맞물려 흐름과 방향을 같이하므로, 집권 정당에 따라 달라지는 경제 정책에 관한 이해도 필수적이다. 저자는 진보와 보수에 따라 각각 달라지는 정책들의 추이도 개괄하면서 “정치가 밥 먹여준다”는 말이 결코 농담이 될 수 없는 치명적인 사례들을 제시한다. 재벌의 불법, 편법 경영승계가 초래한 천문학적 손해배상금을 결국 국민이 물어야 하는 현실, 대중국 무역이 위태로워짐으로써 감당하게 될 경제적 손실의 규모, 어렵게 극복해낸 일본의 수출규제를 한국정부가 포기해버린 굴욕, 정부에 따라 명운이 달라진 한국 해운업의 위상 등을 통해 정치가 경제를 좌우하고 결국 국민의 삶을 재단하게 되는 프로세스를 거시적으로 보여준다. 각 사건의 배경 정황, 전개 양상, 그 결과로 파생된 손실과 여파 등을 알고 나면, 경제 주체인 우리 개개인이 앞으로 어떤 관점으로 정책 및 집행을 감시해야 하는지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전세사기 사건의 구조적 문제, DSR 규제 완화에 대한 깊은 우려, 가계부채를 늘리고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정부 정책의 후폭풍 등을 세밀하게 짚어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행여 잘못된 정책이 강행되었을 때 국민이 감당해야 할 충격과 불행한 사태를 결단코 막아야 한다는 결의와 사명감을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저자 : 임주영

 

경제 칼럼니스트. 채권과 외환 등 금융시장에서만 25년 이상 근무하고 있다. 자본시장의 첨병인 금융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했지만, 자본이 아닌 사람이 행복해야 한다는 따뜻한 경제철학을 지녔다. 올바른 경제 성장을 염원하고, 경제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냉철한 비판과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고민한다. 〈굿모닝충청〉과 〈시민언론 민들레〉에 경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던 꿈같은 시절에서 한순간 후진국으로 전락해버린 현재를 제대로 성찰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 우리 사회의 뜨거운 논쟁거리들, 이해할 수 없는 경제정책, 정치적 의도로 왜곡된 사안, 심상치 않은 세계 동향 등 바로 알아야 할 경제문제를 절박한 마음으로 풀어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니다!’라는,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겠다는 각오를 책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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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River Seven : A pulse-pounding horror novel from bestselling author Anthony Ryan (Paperback)
A. J / LITTLE BROWN PAPERBACKS (A&C)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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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작품 『붉은 강 세븐』(원제: Red River Seven)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를 깨운 것은 총성이 아니라 비명이었다." 저자 A.J. 라이언은 아포칼립스의 세상을 그리는 것으로 이미 명성을 얻은 작가다. 그러나 그의 명성을 알기에는 첫 문장으로만 만족하기 어렵다. 분위기는 감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비명이 인간의 비명소리가 아니라고 다음 문장을 받치고 있다. 뒤의 서술은 앞 문장을 설명한다. "총소리가 났다는 건 알았다. 소금기를 머금은 보슬비에 따가운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들었을 때, 희미하지만 익숙한 총성이 귀를 쿵쿵 울려댔다."(p.9) 비명의 진원 쪽으로 몸을 홱 돌렸고 그는 다시 들린 비명 소리에 두개골을 관통하는 통증을 느낀다. 그는 의식을 다잡고 주위를 살핀다. 갈매기가 잿빛 물 위를 빠르게 미끄러져 날고, 그의 시선은 갈매기의 궤적을 따라간다. "바다···."라는 말이 바짝 마른 혀를 긁어대며 입술을 빠져 나왔다. "난 바다 한가운데 있는 거야." 아무 이유도 없이 이 말이 터무니없을 만큼 웃겨서 그는 폭소를 터뜨렸다." 소설 속 인물의 행동은 아무래도 정상적이지 않다. 총소리에는 무감한 듯하지만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비명으로 들리고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깬다. 그리고 배의 갑판 위에서 상항 파악을 하자 배를 움켜쥐고 구르듯이 웃는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갑판 위에 웅크리고 앉아 미동도 하지 않는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드디어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상황 파악에 들어간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눈에 들어온 광경은 그에게서 웃음기를 거두어버린다. 시체는 격벽에 기대어 쓰러져 있었고, 격벽의 짙은 회색 페인트는 죽은 남자의 두개골에서 최근 쏟아져 나온 게분명한 검붉은 핏자국으로 변색해 있었다. 시체는 평범한 군복에 군화 차림이지만 재킷에는 휘장도 이름도 없다. 고개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얼굴을 낯설다. 하지만 턱 밑을 관통한 총알이 두개골 윗부분을 뚫고 나가면서 남자의 얼굴을 많이 바꾸어 놓았을 터였다. 한쪽 팔은 옆으로 축 늘어져 있고, 다른 팔은 손에 권총을 쥔 채 무릎 위에 놓여 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와 주변 상황이지만 그의 기억 속에는 "M18, 지크자우어."라고 떠오른다. 이 총은 미국 군용 권총이다. 17발 장전 가능한 유효 사거리 50미터의 우수한 총기다. 이때 그에게 다가온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그가 권총의 이름은 알면서, 자신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작 부분을 짧게 어랜지했지만 이 소설은 출간되기 20개월 전에 이미 메이저 영화사들의 치열한 경쟁 끝에 영상화 판권 계약이 체결될 만큼 압도적인 서사를 인정받은 화제작이라고 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에는 처음 소개되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인 A. J. 라이언이다. 저자의 작품이 아포칼립스를 그리는 소설이 많아서 그렇겠지만 가장 참혹한 현장을 그려내는 데 특화된 작가로 명성이 자자한가 보다. 첫 소설 『피의 노래』(Blood Song)와 이후 발표한 『타워 로드』(Tower Lord), 『불의 여왕』(Queen of Fire) 등으로 수많은 독자를 이미 확보한 작가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까마귀의 그림자〉(Raven’s Shadow) 시리즈와 『깨어난 불』(The Waking Fire), 『화염의 군단』(The Legion of Flame), 『재의 제국』(The Empire of Ashes) 등 〈드라코니스 메모리아〉(The Draconis Memoria) 시리즈 등도 공전의 히트를 친 작품들이다. 『늑대의 부름』(The Wolf’s Call), 『블랙 송』(The Black Song) 등 〈까마귀의 칼날〉(The Raven’s Blade) 시리즈, 『버림받은 자』(The Pariah), 『순교자』(The Martyr), 『반역자』(The Traitor) 등 〈강철의 언약〉(The Covenant of Steel) 시리즈는, 본명인 앤서니 라이언(Anthony Ryan) 이름으로 출간했다. 책의 제목만 들어도 궁금하고 잔혹함이 예상될 정도다.

이 책 『붉은 강 세븐』은 세계 종말이 언젠가 다가올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날 법한 파국을 보여줌으로써 긴장감을 고조시킨다다. 온통 붉게 변한 서양 문명의 심장부인 영국 템스강을 따라 일곱 명의 기억을 잃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무슨 이유로, 어떤 임무를 띠고 가는지 모른 채 오로지 생존을 위해 함께한다. 이 여정은 당연히 숨 막히는 액션, 거대한 스케일의 스펙터클, 좀비·전염병·변신 등의 소재를 화려하게 펼치며 멸망 직전의 세계, 어둠의 심장부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 런던의 템스강을 배경으로 인류 멸망이 임박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그린 아포칼립스 스릴러다. 읽는 것만으로도 뇌리를 떠나지 않을 강력한 공포물의 시·청각 이미지가 넘쳐나는 이 책은 박진감 넘치는 전개와 최고의 몰입감을 자랑하는 밀실 미스터리인 동시에, 배를 타고 미지의 세계를 항해하는 현대판 오디세이라 할 수 있다. 신화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과거의 승리와 돌아갈 집을 기억한 채 표류하던 것과 달리 『붉은 강 세븐』 일곱 전사들은 목적지는 물론 어떤 개인사도 기억하지 못한 채 한배를 타고 닥쳐올 운명에 대처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만큼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이다.

 

 

이 작품은 오늘날 인류에게 심각한 위협으로 부상한 전염병과 뇌과학의 한 과정으로서 기억을 서로 연결한 점도 작품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앞서 잠깐 언급한 소설 도입부의 한 남자가 자신이 누구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깨어난다. 자신의 신원에 대한 유일한 단서는 팔에 새긴 ‘헉슬리’라는 문신과 총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감각뿐이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를 포함해 일곱 명의 낯선 이들이 바다 위의 같은 배에 함께 있었고, 자살한 것으로 보이는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동시에 깨어났다. 여섯 명 전부 자신이 누군지 기억이 없으며, 어째서 이 배 위에 있는지, 이 배가 어디를 지나고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또한 이들은 평범한 군복과 삭발한 머리, 신체 부위에 수술한 흔적을 공통으로 지녔고, 팔에는 이런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콘래드, 리스, 골딩, 플라스, 디킨슨, 핀천. 배는 원격으로 조종되고 있고, 그들이 직접 통제할 수 없으며, 많은 양의 총기들을 싣고 있다. 그들은 앞으로 닥쳐올 상황에 대비하여 협력하기로 합의하고, 각자 잘 알고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고는 자신들이 의사, 탐험가, 역사가, 군인, 물리학자, 형사로 이뤄진 전문가 집단이리라는 결론에 이른다. 자신의 이름은 모르지만 전문가다운 지식을 비춰볼 때 전문가 집단임을 추정해 낸다. 그리고 누군지는 모르지만 여섯 사람은 어떤 목적을 위해 이 배에 배치됐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한다.

“무슨 이상한 실험 같은 건가 봐.” 헉슬리가 제안했다. “기억을 지운 다음 무기를 장전한 배에 태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는 거지.” (중략) “기억이라는 게 뇌의 깔끔한 개별 영역에 은밀하게 들어앉아 있는 게 아니거든. 개인사를 기억하는 능력은 없애버리고 축적된 지식과 기술은 그대로 남겨둔다, 그건 내가 지금껏 읽은 모든 신경과학 저널에서 주장하는 이론을 다 뛰어넘는 거야.” 그녀는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아니면 내가 읽었다고 생각하는 저널이겠지. 지금은 단 한 건의 검사나 환자 상담도 기억해낼 수 없지만, 어쨌든 난 내가 그런 일을 했었다는 걸 알아.”(p.27~28)

 


 

갑자기 제어판에 불이 들어와 지도가 표시되고 그들이 영국의 수도 런던으로 바로 이어지는 템스강에 접근 중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시간이 지나도 그들의 항로에서 걷히기는커녕 점차 짙어지는 분홍빛 안개의 정체가 수상하다. 모두의 의구심이 커지는 가운데 비행기 한 대가 공중에서 비컨을 떨어뜨리고 그 안에서 위성 전화가 발견된다. 수화기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그들에게, 무엇이든 개인적인 것을 기억해내는 사람을 사살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러지 않으면 나머지 일행의 목숨이 위험해질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도 남긴다. 어째서 그들은 아무것도 기억해선 안 되는가? 그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은 누구이며, 그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안개 저편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비명 소리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궁금해지만 누구 하나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결국 명령 받은 대로 지시 사항을 수행키로 한 일행은 수행할 수 있는 명령이 떨어질 때 난감해진다. 갈등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개인 신상 기억은 없지만 상황 인지, 판단 능력은 그대로 남겼다. 사용하는 모든 총기나 무기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보아 분명 군사 전문가 집단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사적인 기억을 떠올리는 구성원은 무조건 위험 요소로 간주해야 합니다. 배로 돌아가 그녀를 사살하십시오.”

“그럴 순 없어.” 헉슬리는 전화기를 꽉 움켜쥐고 입술에 바짝 가져다 댔다. 분노가 신중함을 넘어 폭발하면서 침이 튀기 시작했다. “잘 들어, 대답을 들을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아무 짓도 하지 않을…….”

배에서 울려 퍼진 소리는 굉음과 건조한 균열이 뒤섞여 있었지만, 그 출처만은 분명했다. 총소리였다.

“배로 돌아가십시오.” 목소리가 전과 마찬가지로 단조롭게 말했다. “그녀를 사살하십시오.”(p.68~69)

 


 

이 책 『붉은 강 세븐』은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끔찍한 전염병의 원흉이 되고, 불안과 공포로 촉발된 나쁜 기억이 감염자를 자신의 악몽의 이미지로 변형시킨다는 설정을 담고 있다. 인류의 마지막 세상을 그려내지만 그 인간의 사랑과 연대야말로 종말 직전의 위기 상황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종말의 예고 사항을 미리 훑어보게 하는 진지함을 작품 속에서 녹여낸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배경이 된 세상은 이미 감염병이 창궐해 아포칼립스 상황에 처해진 지구의 일부분, 영국 템스강과 바다로 이어지지만 이미 전 세계가 이해할 수 없는 감염병으로 서서히 저물고 있는 상황이다. 이 소설은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들의 자발적 희생을 끌어내는 요인이 그들이 더 이상 기억해낼 수 없는 각자의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며 예방과 해결의 단초를 제공한다. 소설가로서 기억을 통해 감염되는 전염병이라는 독창적이고 탁월한 아포칼립스를 창조해 낸다는 점에서 "역시 작가 라이언"이라는 칭송이 잇따르는 것이다. 특히 이 독창적 서사에 인간의 숭고함의 색채를 더했으니 이보다 더 돋보이는 아포칼립스 작품이 나올까 싶다. 물질적 풍요로움과 과학 기술의 눈부신 진보의 다른 한편으로, 그릇된 집착과 망상으로 어디를 향해 가는지 불확실해진 이 시대에 대한 강렬한 우화로 남을 『붉은 강 세븐』은 장르적 쾌감과 더불어 잊지 못할 감동의 여운을 안겨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지금까지 들었던 비명 중에 가장 격렬한 불협화음으로 해독이 불가능했다. 적어도 십여 개의 목구멍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이라고 할 수 없는 길게 늘어진 단어들이 혼란과 고통과 불가사의한 황홀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조된 감정과 공명하며 울려 퍼졌다. 불협화음임에도 불구하고 헉슬리는 그 소리에 기묘한 통일성이 깃들어 있음을 느꼈다. 물론 음색에 일관성이라고는 없었다. 하지만 각 음량은 마치 합창단이 각자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음에도 같은 지휘자를 따르는 것처럼 조화를 이루면서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다.(p.148)

 


 

“이 사람들 흉터는 우리 것과 달라.” 헉슬리는 손전등 빛을 여자의 면도한 두개골 쪽으로 더 가까이 움직여 귀 위쪽에 봉합된 2.5센티미터짜리 절개 부위를 비추었다. (중략)

“그렇다면 이름은?”

리스는 손전등으로 여자의 팔뚝을 비추었다. 살점이 여기저기 변색된 탓에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지만, 리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문신을 해독했다. “칼로.” 남자의 것은 좀 더 알아보기 쉬웠는데, 리스는 피가 그의 팔이 아닌 양손에 응고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터너.”(p.181~182)

 

저자 : A.J. 라이언

 

1970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성년이 된 이후엔 런던에서 살았다. 역사학을 전공하고, 영국 정부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았던 그는 첫 소설 『피의 노래Blood Song』가 성공을 거둔 이후 전업 판타지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이윽고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대표작인 『피의 노래』, 『타워 로드Tower Lord』, 『불의 여왕Queen of Fire』 등 ‘까마귀의 그림자Raven’s Shadow’ 시리즈, 『깨어난 불The Waking Fire』, 『화염의 군단The Legion of Flame』, 『재의 제국The Empire of Ashes』 등 ‘드라코니스 메모리아The Draconis Memoria’ 시리즈, 『늑대의 부름The Wolf’s Call』, 『블랙 송The Black Song』 등 ‘까마귀의 칼날The Raven’s Blade’ 시리즈, 『버림받은 자The Pariah』, 『순교자The Martyr』, 『반역자The Traitor』 등 ‘강철의 언약The Covenant of Steel’ 시리즈는, 본명인 앤서니 라이언Anthony Ryan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예술과 과학, 완벽한 리얼 에일에 대한 끝없는 탐색이 주요 관심사다.

 

역자 : 전행선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2007년 초반까지 영상 번역가로 활동하며 케이블 TV 디스커버리 채널과 디즈니 채널, 그 외 요리 채널 및 여행전문 채널 등에서 240여 편의 영상물을 번역했다. 그 후 바른번역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현재 바른번역 회원으로 활동하는 출판전문 번역가이다. 옮긴 책으로는 『와인의 세계』, 『이웃집 소녀』, 『템플기사단의 검』, 『살인을 부르는 수학공식』, 『무조건 행복할 것』,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 『3~7세 아이를 위한 사회성 발달 보고서』, 『허풍선이의 죽음』, 『마지막 별』, 『아도니스의 죽음』, 『미라클라이프』, 『예쁜 여자들』, 『전쟁마술사』 등이 있다.

『개의 마음을 읽는 법』 책을 번역한 전행선, 구세희, 고빛샘, 김경희, 전혜상은 ‘꿰어서 보배’ 소속 번역가들이다. ‘꿰어서 보배’는 소설, 인문, 경영, 심리, 교육 등 각 분야의 실력파 번역가들이 독자들에게 빈틈없고 유려한 번역을 선보이고자 뜻을 모아 만든 팀으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우리 속담에 착안해 이름을 지었다. 옮긴 책으로는 『창조의 순간』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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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현재의 철학 - 21세기의 삶을 위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 EBS CLASS ⓔ
조대호 지음 / EBS BOOKS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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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영원한 현재의 철학』은 서양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그리스 철학에 대한 이야기다. 세 철학자는 사제지간이라고 우리는 배워서 알고 있다. 나이 차로 보아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물론 아테네가 도시국가임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나이 차이는 한 시점 한 공간에서 만났을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동시대 동일한 장소에서 공부(?)하던 사제지간이라 할 수도 있다. 이들 세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학교 다니면서 이미 고등학교 때 많이 배운다. 더욱이 그리스의 문명을 대표하는 '철학'의 근간을 세운 철학자들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나 잘 나갈 때나 이들 철학자들은 일정 이상의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저자 조대호는 많이 알려진 바, 서로 스승과 제자 관계라는 것,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는 것, 플라톤이 ‘아카데미아’라는 학교를 세웠다는 것,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든 서양 학문의 기반을 다져놓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지금까지 배운 지식을 깨부수고 새로운 의미로 풀어내고자 집필했다. 이미 정설로 알려진 것들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굳어져 있어 그것들을 새롭게 풀어내고 현대적 의미를 찾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이 책은 우리에게 알려진 상식들을 되새기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자 시도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우리는 왜 아직도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읽는가?」란 제목의 〈들어가며〉('프롤로그')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고대 철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라고 묻는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는 동·서양의 역사에 엄청난 유산을 남겼다고 전제하고, 민주정, 서사시와 비극 등을 포함한 문학과 예술, 건축과 조각 등 그리스 문명이 남긴 유산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가 남긴 유산 가운데는 영광과 희망의 기록뿐 아니라 혼란과 절망의 흔적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바로 영광된 유산의 어두운 그림자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저자가 다시 세 철학자를 되돌아보는 이유이다. 그래서 인간 문명의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한 그들의 철학적 성찰은 언제나 유효하고, 우리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나은 삶을 위한 지혜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갖는 현재성에 접근할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3부 12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소크라테스에 관한 이야기이고, 「아고라의 목소리」, 「철학과 ‘참된 정치’」, 「재판과 죽음」이란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2부엔 플라톤으로, 「상처받은 영혼의 철학」, 「인간의 본성」, 「정의란 무엇인가?」, 「민주정과 철인통치론」 등 4개의 장이 플라톤과 그의 철학을 돕는다. 3부 아리스토텔레스 편이다. 「자연의 관찰」, 「인간, 실존, 이성」, 「행복과 덕」, 「실천적 지혜」, 「나쁜 민주정과 좋은 민주정」으로 나뉘어 아리스토텔레스를 설명한다.

저자는 먼저 그들의 생몰연도부터 파고든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사이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사이에 각각 43년의 시간 차이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의 탄생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죽음까지 대략 150년의 시간이 걸렸다. 고대 철학 연구자들조차도 이런 점에 특별히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의 연구에는 핵심적 요소가 된다. 왜 그럴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 있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산 사람들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당시 아테네는 도시국가로서 늘 전쟁의 위협이 있었고, 또 실제로 기나긴 전쟁을 치르면서 승패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흔들리는 것 또한 동서고금을 통해 마찬가지다. 다만 저자가 여기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세 명의 철학자가 150년이란 기간 중 일부 겹치지만 격변하는 아테네 정서에 따라 스승과 제자 관계이기는 하더라도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았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앞서 언급한 〈들어가며〉를 통해 당시의 사회 상황을 설명한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70~399)가 태어나기 10년 전 그리스는 페르시아 제국과 전쟁을 치러 승리를 거뒀다. 승리의 영광은 50년 정도 지속됐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이 발발하면서 빛을 잃었다. 동방의 제국에 맞서 싸우는 데 앞장섰던 아테나이와 스파르타를 주축으로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두 편으로 갈라져 내전에 휘말렸다.

 


 

이 내전이 27년 동안 지속되면서 그리스는 쑥대밭이 된었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의 번영과 쇠퇴를 목격하면서 그 시대의 사회적·정신적 혼란에 대해 고민했던 철학자다. 플라톤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하고 몇 년이 지난 뒤 태어났다. 전쟁과 내분의 혼란 한복판에 던져졌다고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래서 그의 삶은 스승의 삶보다 더 암울했다. 몰락하는 아테나이 사회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플라톤은 절망의 현실을 마주해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꿈꾼 철학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삶은 또 다르다. 그는 오랜 기간 이어진 도시국가 중심의 그리스 사회가 해체되어 '제국'으로 넘어가던 시대를 살았다. 그의 제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바로 제국의 건설자였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어떤 현실 참여의 길도 열려 있지 않았다. 그는 고향을 떠난 이방인의 삶을 살았으니까. 이 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걸었던 철학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된 배경이 되었다. 그는 현실과 거리를 두면서 자연과 인간을 관찰하는 관찰자의 삶을 살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며 '다른 철학'을 했던 사람들이다.

세 철학자가 다른 세상을 살았다는 점에 저자가 주목하는 이유는 세 사람의 철학에는 '인간 사회의 영광과 쇠퇴, 그리고 해체의 경험'이 집약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그들의 철학이 지금까지 의미를 가지는 이유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영광의 시대에도, 쇠퇴의 시대에도, 해체의 시대에도 이 철학자들의 생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저자는 이 책에서 역설하고 있다. 1부 '소크라테스 편'의 제목은 〈인간의 삶에 대해 묻다〉이다. 「사람다운 삶을 찾는 일상의 대화」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1장 「아고라의 목소리」에서 소크라테스의 삶과 외모, 그리고 일상에 대해 언급한다. 이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아고라의 터줏대감이었다. 툭 튀어나온 이마, 콧대가 우묵한 안장코, 넙치 같은 얼굴, 대머리 등 남다른 외모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게다가 그는 항상 맨발이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사람들의 눈길을 끈 이유는 그런 외모가 아니라 대화의 기술 때문이었다. 그의 대화는 아주 친숙한 것에서 시작한다. 석공일, 구두 수선, 말 조련 등 일상의 사례에서 출발하는데, 이런 대화는 어느 순간 경건, 우정, 용기, 절제, 정의 등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는 칼, 가위, 술병, 장신구 등 가재도구의 이름을 대면서 ‘이것을 어디서 구하지?’라고 묻다가 느닷없이 ‘그럼 용감하고 덕이 있는 사람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던져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소크라테스의 말은 긴 연설도, 장황한 강의도 아니었다. 물론 강의료도, 상담료도 받지 않았다. 사람들의 생각을 묻고 따지다가 조롱과 주먹다짐을 피하면 다행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왜 그렇게 사서 고생을 했을까?(p.15~16, 책 내용은 경어를 사용하지만 편의상 독자가 평상어로 바꿈)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철학은 있었다고 한다. 그가 태어나기 약 150년 전에 그리스 땅에서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 즉 '철학'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의 철학을 '자연철학'이라고 부른다. 자연의 존재와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 철학의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자연과학에 가깝다. 소크라테스는 바로 철학의 본질을 자연에 대한 탐구에서 인간 삶에 대한 탐구로 바꿔놓은 사람이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처음으로 철학을 하늘로부터 끌어내려 도시로 가져다 놓았으며 집안으로까지 들여놓았고 삶과 도덕과 좋은 일과 나쁜 일을 탐구하게 했다."

이 지점에서 저자의 '철학관'이 조금 드러난다. 철학은 정치도, 예술도, 기술도 하지 않는 것을 한다. 바로 '질문하는 일'이다. 대중의 인기를 끄는 정치가 정말로 대중을 위해 좋은 정치인지, 예술이 제공하는 즐거움이나 감동이 혹시 사람들의 생각을 무디게 하고 판단력을 빼앗는 것은 아닌지, 기술 발전이 낳는 사회 문제와 환경 파괴 등을 우리가 방치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철학이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리고 철학은 이를 통해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일깨운다.

앞서 언급한 펠레폰네소스 전쟁은 단순히 아테나이와 스파르타 두 나라 사이의 싸움만은 아니었다. 이 두 나라가 이끄는 동맹에 가담했던 그리스의 도시국가들도 아테나이 편과 스파르타 편으로 나누어서 싸움에 말려들었다. 27년 동안 이어진 전쟁은 마침내 아테나이의 패전으로 끝난다. 소크라테스는 70년을 살면서 인생의 후반기 30년을 이 전쟁통에 보낸 사람이다. 여러 차례 전투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역사가 투키디테스의 말대로 전쟁은 공정한 중립을 허락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가 전쟁의 혼란기 겪으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보통 사람으로 살면서 영혼의 탁월함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라는 점이다. 그는 대화를 영혼의 탁월함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용기란 무엇인가?', '절제란 무엇인가?', '우정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는 이런 질문을 놓고 아고라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대화를 나누었다. 소크라테스가 한 일을 간단히 요약하면 정의가 없는 시대에 정의를 묻고 절제가 없는 시대에 절제를 묻고 참된 용기가 없는 시대에 용기에 대해서 물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소크라테스의 삶과 철학은 합법적인 것과 옳은 것 사이의 간극을 메어서 둘을 일치시키려고 하는 노력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 둘 사이의 간극에서 빚어질 수 있는 파국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였다."(p.62)

 


 

플라톤은 불우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집안이 가난해서 불우했던 것이 아니다. 그는 최고의 명문가 출신이었다. 중하층의 석공 집안에서 태어난 소크라테스와는 달랐다. 하지만 집안이 좋아도 플라톤은 행복하지 않았다. 꿈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가졌던 꿈은 당시의 명문가 출신들이 가졌던 것과 똑같았다. 정치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태어나기 몇 년 전에 발발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플라톤은 정치가의 꿈을 펼치기 어려웠다. 소크라테스를 만나 철학에 관심을 돌렸지만 몇 해 뒤 플라톤은 더 깊은 상처를 겪었다. 바로 스승의 죽음이다. 그 시대에 가장 정의롭다고 생각했던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에게 평생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런 점에서 플라톤의 철학은 ‘상처받은 영혼의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p.68~70)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죽은 뒤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을 여행한다. 남부 이탈리아 방문 때 피타고라스를 따르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경험은 플라톤에게 구원과 같은 체험이었다. 수학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영원히 불변하는 진리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후 고향에 돌아온 플라톤은 '아카데미아'를 설립한 뒤 젊은 사람들을 모아 교육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철학의 장소'가 열린 것이다. 철학의 장소가 아고라에서 아카데미아로 바뀐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소크라테스가 아고라에서 시민들의 반성 능력과 정치적 의식을 고양시키는 데 철학의 목적을 두었다면, 플라톤은 아카데미아를 세워 미래 세대를 교육하는 일에 나선 것이다.

우리가 '플라톤' 하면 떠올리는 단어가 '이데아'인데 고대 그리스의 일상어에서 눈에 보이는 '외형', '형태', '모습' 등을 뜻한다. 보이는 것 중에는 아름다운 형태가 있고 흉측한 형태가 있다. 사람의 모습은 짐승과 다르다. 이 모든 것을 그리스인들은 '이데아'라고 불렀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신체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눈에 보이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바꾸어 사용한다. 이로 인해 '이데아'는 눈에 보이는 '감각적 형태'가 아니라 지성 또는 이성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정신적 형태'를 뜻하게 된다. '신체:눈:감각적 형태=영혼:정신:정신적 형태' 우리 몸에는 눈이 있어서 이를 통해 이 눈으로 사물을 본다. 감각적 형태가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다.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에는 지성이 있어서 이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근현대 철학자 중 니체는 플라톤을 비판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현실 앞에서 비겁했고 그래서 이상으로 도망쳤다"고 비판했다. 플라톤의 철학을 현실도피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대목을 지적하고 있다.

 


 

책의 3부 '아리스토텔레스 편'의 9장 「인간, 실존, 이성」에서 저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인간이 '로고스를 가진 동물'이라고 인간에 대한 정의를 내린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본성을 지적하면서 사용한 그리스어 '로고스(logos)'에는 여러 각지 뜻이 있다. '로고스'는 '계산', '이성', '추리', '말', '법칙' 등을 뜻한다. 그래서 인간이 '로고스를 가진 동물'이라는 의미는 대략 인간만이 이성을 갖고 말을 하고 계산하고 추리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정의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간의 실존과 본질은 불가분의 관계다. '실존'은 인간에 대한 20세기의 철학적 논의에서 화두 역할을 한 개념이다. 사르트르와 하이데거가 대표적 철학자들이다.

고대 아리스토텔레스가 탐구한 '인간의 본질'과 현대 철학자들이 주목하는 '인간의 실존'은 아직도 논의 중이지만 인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에는 로고스의 작용으로서 '추리'가 따른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랜 그리스 철학 공부, 특히 그리스와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연구에 집중해온 저자로서는 자신이 그동안 찾은 가장 중요한 발견은 다음과 같은 사소한 발견이라고 밝힌다. "인ㄱ란은 추리하는 존재다. 추리에는 상상이 따르고 비교가 따르고 정당화가 따르고 선택의 과정이 따른다. 이러한 추리 과정으로부터 인간의 과학적 탐구, 실천적 계획, 범죄, 예술, 종교 등 모든 것들을 다 설명을 해낼 수가 있다···." 위대한 발견자의 생각 속에서 저자 자신이 찾아낸 가장 중대한 발견임을 내세운다. 그 안에 인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로고스를 가진 동물" 이라는 단순한 정의 안에 압축해 담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한 고대 철학자가 평생을 걸쳐 이룩한 명제 하나를, 한 현대 철학자가 오랜 탐구 끝에 찾아낸 명제 하나를 철학 책이라고는 한두 권 읽은 독자가 쉽게 평하기에는 어렵다. 차분하게 재독을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저자 : 조대호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서양 고전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마인츠대학교 연구 교수,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원장, 한국서양고전철학회 회장, 한국서양고전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과 문학을 연구하고 강의하며 생물학의 철학, 윤리학, 행동 이론, 기억 이론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 대학 내의 연구와 교육 외에 대학 밖에서 그리스 고전들을 알리는 일에 힘쓰고 있다. 네이버 [열린연단], JTBC [차이나는 클라스], EBS [클래스ⓔ] 등 매체에 출연했고 2021년부터 동아일보에 [신화의 땅에서 만난 그리스 사상]을 연재하면서 철학, 문학, 역사의 고전 속에 담긴 더 나은 삶을 위한 통찰들을 찾아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위대한 유산』(공저), 『아리스토텔레스: 에게해에서 만난 인류의 스승』, 『일리아스, 호메로스의 상상 세계』 등이 있으며, 역서로 『파이드로스』, 『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 선집』(공역)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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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나 봐요
채도운 지음 / 지베르니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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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운명처럼 다가온 뜻밖의 공간에서 치열하고도 맹렬한 투쟁을 한다. 어쩌면 내가 태어난 곳, 살던 집, 일하는 공간에 대한 우리 모두의 감정과 닮아 있는 곳이 현재 있는 곳과 놀랍게도 닮아 있다. 때론 달콤하고, 때론 씁쓸하며, 어떤 날에는 뭉클하게 만드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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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도운 지음 / 지베르니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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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나 봐요』는 일상에서의 작은 즐거움을 찾아가는 '소확행'의 여정을 담은 에세이다. 자칭 '애매한 인간'이라는 필명의 채도운 저자는 신인 작가는 아니다. 이미 『엄마는 카페에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라는 에세이를 펴낸 바 있다. 필명으로 활동하는 이유는 독자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애매한'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였을 듯하다. 어쩌면 딱 부러지게 일을 마무리하는 스타일이 아닌가 싶지만, 그것을 일부러 필명으로 내세울 바는 아닐 것 같고... 1992년생이라니 서른을 넘긴 여성으로서 삶의 중간이라는 의미도 아니고... 아무튼 그의 이번 에세이도 전작과 비슷한 카페&서점 이야기다. 사실 저자는 어렵게 공기업에 입사하고 4년을 근무했다고 한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었는지, 경남 진주 작은 마을에 카페&서점 〈보틀북스〉를 운영하겠다고 나선다. 유서 깊은 도시 진주이지만 변두리 작은 마을에 난생처음 카페를 운영하며 하루하루 일기쓰듯 카카오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고,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책까지 출간한 것이 전작 『엄마는~』이다. 전작은 저자가 카페를 운영하면서 밀리의서재x카카오브런치 전자출판프로젝트에 당선된 것이 계기였다. 이번 책 『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나 봐요』는 카페 이야기는 맞지만 중점이 카페라는 '공간'에 맞추어져 있다.

'공간'이란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라는 사전적 풀이이지만,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나는 곳'이란 속뜻도 포함하고 있는 3차원적 빈 곳을 의미한다. 여기에서의 공간은 저자에게 있어 카페를 말한다. 운영이 어렵지만 임차연장계약을 체결하며 보틀북스 두 번째 시즌을 맞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두 번째 카페 이야기를 담아내며, 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저자가 "내가 기대한 인생은 아니지만 운명처럼 다가온 뜻밖의 공간에서의 치열하고도 맹렬한 일상 투쟁"을 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이 공간은 특별한 의미를 담는다.

 


 

저자는 자신이 현재 있는 공간이 자신이 태어난 곳, 살던 집, 일하는 공간에 대한 우리 모두의 감정과 닮아 있다고 말한다. 자기가 현재 있는 공간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말이다. 때론 달콤하고, 때론 씁쓸하며, 어떤 날에는 뭉클하게 만드는 '그곳'은 우리의 일상이 담긴 곳이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계속, 그렇게 각자의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는지 모른다는 비유에 독자로서는 조금은 당혹스럽다. 저자의 공간에 대한 의식이 점점 사유가 더해지면서 특별한 내용이 하나씩 추가된다는 느낌을 독자는 강하게 받는다. 우리의 일상이 행복이라는 단어를 조금씩 닮아가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전작을 낸 후 모 인터뷰를 통해 카페에서 가족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담았다고 밝혔다. "처음 책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부모님은 어떤 내용의 책일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어요. 마침내 종이책이 출간되자, 부모님은 각자 한 권씩 사서 읽으셨더라고요. 그리고 며칠 뒤 엄마와 아빠에게 연락이 왔어요. 저는 부모님이 제게 ‘대견하다’, ‘자랑스럽다’라고 말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부모님은 먼저 “미안하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빠의 은퇴 과정, 엄마의 외로움, 할머니와의 씨름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을 딸이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을지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고. 뒤에서 우리의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게 해서 미안하다고. 딱 그말을 하시더라고요."라고 털어놓았다. 한없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부모님께 “우리 행복하자”라는 말만 건넬 뿐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었다.

저자는 「나는 기어코 또 희망을 발견해 버리고야 말았다」란 제목의 이번 책 〈프롤로그〉를 통해 운영상의 어려움 등 첫 번째 책 출간 이후부터 이번 책 낼 때까지의 과정을 '무미건조'하리만큼 덤덤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치열하게 살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살 수가 없는 공간이었다는 말이다. "오지 않는 손님을 무작정 기다리며, 의미 없이 휴대전화를 스크롤링하는 행동은 일상을 조금씩 좀먹어 들어갔다." 오지 않을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그 순간이 싫어서, 비생산적인 자신이 미워서, 좀처럼 째깍거리지 않는 자신의 시계가 답답해서, 이 순간을 만들어낸 과거의 선택이 너무나도 한스러워서 '책'을 택했다고 고백한다.

 


 

책을 읽고 있는 저자를 본 한 손님의 권유로 독서 모임을 시작했을 때에야 저자의 시계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독서 모임 전까지 책을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은 일상을 쫄깃하게 만들어 주었다곡도 말한다. '자기 계발' '투자' '시험' 등 미래지향적인 단어들을 모두 내려놓고, 충실하게 현재를 즐길 수 있는 순간이었다고 털어놓는다. 함께라서 외롭지도 않았다. 책이 주는 위안을, 이 공간에도 공유하기로 결심했단다.

이로써 이곳은 카페이기보다 서점이 됐다. 그동안 독서 모임 멤버는 무려 200여 명으로 늘었고, 독서 모임의 종류도 과학, 사회, 역사, 철학, 경제 등 다채로워졌다. 그런데도 현실을 살아간다는 건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고. 적자생존, 파이싸움, 제로섬게임, 생존과 도태···. 많은 단어들이 나타나 저자를 뒤흔들어 놓는다.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에 책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고, 거리마다 나부끼는 임대 포스터는 모두의 마음에 불안감만 불어넣는다. 다달이 때맞춰 내지 못하는 공과금에는 늘 자잘한 연체금이 붙어 있었고, 반품하지 못하고 쌓여 있는 책들ㅇ른 저자의 마음에 무게와 부피를 더해갔다. 얼굴만 봐도 나냥 좋았던 손님의 지갑이 굳게 닫힌 날, 찌푸린 저자의 인상을 깨달았을 때 마음의 가난으로까지 이어지는 현실이 버거웠다고 진솔하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이렇게 되면 소확행이 아니라 '소확고(苦)'에 더 가깝다.

그러나 질척거리는 절망 속에서도 저자는 〈프롤로그〉 제목처럼 「기어코 또 희망을 발견해 버리고야 말았다」. 저자는 말없이 읊조린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면 쉬운 길을 나는 왜 기어코 꾸역꾸역 계속 가려는 것일까. 그 꾸역이, 그 모자라 보이는 우직함이 '희망'을 바라볼 수 있게 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운명'을 찾아내게 하며, '길'을 개척한다고 믿는다. 이 책은 자신의 '꾸역의 여정'이라고... 이 책은 모두 5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나는 계속 이 공간을 유지할 운명이었나 봐요〉, 2부 〈당신의 이름이 새겨진 도서관〉, 3부 〈지금 사랑을 담는 중입니다〉, 4부 〈지옥에서 온 커피〉, 5부 〈인생 대환장 파티, 본 적 있나요?〉 등이다. 각 부에는 10편 안팎의 글들이 옹기종기 모여 한 권의 책을 이룬다.

 


 

〈프롤로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문장들이 본문에서는 힘 있게 이어진다. 월세를 내지 못해 쩔쩔매는데 코로나19로 인해 폐업 위기에 있는 소상공인에게 지원한 지원금의 힘이 가장 컸단다. 이 돈으로 월세며 전기세며 관리비며 내니까 꼴깍 숨넘어가기 직전까지 버틸만했다. 버텼다기보다 죽지 못한 것이리라. 역시 작가는 고통에서도 희망을 찾아내는 데 특화된 분이 아닌가 생각되는 대목도 있다. "버티는 시간이 무척 괴롭다거나 고된 것만은 아니었다. 손님들과 찐친 못지않은 우정을 다지기도 했고, 마음 맞는 손님들과 맥주도 마시고 책도 읽으며 나름 재밌고 행복했다. 나도 그 과정을 통해 '카페'라는 공간이 단순히 차를 사고파는 공간이 아님을, 같이 추억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공간임을 깨닫고, 또 배웠다."(p.17)

저자는 이어 '공간' 이야기를 본격 꺼내든다. 책에 따르면 솔직히 고백하자면 자신이 운영하는 이 '공간'을 무어라고 부를지 아직 결정 내리지 못했다. 카페일까? 서점일까? 공방일까? 문화공간일까? 뭘까? 온통 애매하기만 한 나라서 이 공간도 애매하기만 했다. 카페 같기도 하고, 서점 같기도 하고, 공방 같기도 하고 뭐 그런 거. 하지만 애매하기 때문에 모든 걸 아우를 수 있고, 애매하기 때문에 모든 걸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애매한 것도 특징이 되고, 장점이 되고, 강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카페 같아서 좋아하는 손님, 문화공간 같아서 좋아하는 손님을 다 우리 '애매한 공간'에 초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애매함의 힘이란 이토록 놀라운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나는 굉장히 심란한 상태다. 이 공간을 좋아해 주는 손님도 있고, 나 자신도 자부심을 느끼고 만족스럽게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무척이나 속상하다. 손님이 방문하는 것만큼 수익은 나지 않는다. 일은 일대로 하고 있지만, 내게 돌아오는 이익은 없다. 손님과 이야기하는 건 재밌지만, 또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다. 나는 이 공간을 계속 유지해야 할까? 5년의 시간 동안 나는 뭘 얻었을까? 예금과 적금은 없지만 행복과 보람을 얻었다. 하는 일은 즐겁다. 손님들과의 일상들도 참 행복하다. 하지만 이 행복이 돈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

 


 

저자의 이번 책에서도 행복하지만, 고뇌스러운 하루의 일상이 별 감정의 동요 없이 잘 드러나 있다. 고뇌스럽지만 그러나 해답은 또 어떻게든 찾아낸다. 애매한 공간이어서일까. 카페 주인이 못 찾으니 이번엔 손님이 제시한다. 손님들과 책맥 모임을 만들어서 벌써 2년째란다. 저자는 그날따라 고작(?) 캔맥주에 취했다. 아니, 힘든 자신의 감정에 취했을까? 저자는 그저 온통 무거운 마음의 짐을 울부짖듯 토로했다. 그런데 손님이 딱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본인은 이 모든 걸 놓고 포기하고 싶구나.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이거 하나가 딱 좋아서 못 놓는 거구나. 손님들이 진상이거나 조금이라도 악독하고 못됐으면 놓았을 텐데. 이놈의 모임에 진상이 한 명이라도 등장했으면 그 얄팍한 끈을 놓을 수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 도저히 못 놓는구나."

이때 저자는 왜 놓지 못하는가를 해답을 얻었다고 한다.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왜 힘든 감정싸움을 하면서까지 이 공간을 버텨내고 있었는지에 대한 해답 말이다. 현실적인 문제는 엄청난 위압감을 자랑하며 저자를 짓눌렀다. 즐거움, 행복, 보람 그 모든 긍정적 감정을 압도할 만큼 힘들게 했다. 하지만 자자는 분명히 행복하기 때문에, 지금 손님들과의 이 시간과 순간이 너무 행복하기에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이 공간이 운명인가 보다.

 

저자 : 애매한 인간(채도운)

 

1992년생. 자격증, 이력, 경력, 전문성, 돈, 재능 등 모든 게 애매한 인간. 무난하게라도 살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다 마침내 공공기관 입사에 성공했다. 하지만 힘겹게 4년을 버티고 퇴사, 나고 자란 진주에서 무작정 카페를 열었다. 그게 온통 애매하기만 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 주인을 닮아서일까? 카페도 애매하다. 카페인가, 서점인가, 마을회관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매함이 주는 힘을 믿기에, 이 공간을 방문해주는 손님, 친구들, 가족과 함께 하루하루를 충실히 잘 살아내고 있다. 애매한 인간의 카페 창업기를 브런치에 연재하다가 밀리의 서재에서 『엄마가 카페에서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 전자책을 출간했다. 오늘도 진주에서 카페&서점 ‘보틀북스’를 애매하게 운영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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