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바꾼 전쟁의 역사 - 미국 독립 전쟁부터 걸프전까지, 전쟁의 승패를 가른 과학적 사건들
박영욱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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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류 역사상 하루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는 어느 전쟁사가의 말이 새삼 재인식되는 요즘이다. 지난 20세기엔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전쟁에 참여해 무려 2억 명 가까운 희생자를 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지구상에는 어느 한쪽에서라도 늘 전쟁이 게속되어 왔다. 특히 구 소련이 붕괴되고 처음 맞는 뉴 밀레니엄인 21세기에 들어와서도 4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지구상에서 단 하루도 전쟁이 없었던 날이 있었나 싶다. 2001년 9·11 테러로 촉발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뉴 밀레니엄은 피로 시작돼 왔다. 이어 시리아 내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새 희망으로 가득 찬 2000년 벽두부터 우리에게 들려오는 '전쟁' 뉴스는 아직도 휴전 중인 우리나라에겐 섬찟한 뉴스로 다가온다. 아프리카의 종족 간 전쟁이나 내전 등은 이젠 뉴스거리도 안 된다는 듯 외신마저 거의 다루지 않을 정도로 큰 전쟁으로 점점 도를 높이는 것 같아 불안과 공포심을 자아낸다. 

"전쟁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독자의 바람은 독자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전 세계인의 가슴속에는 늘 '전쟁은 이제 그만'이라는 바람을 갖고 매일 매일 삶을 위한 전쟁터로 뛰어든다. 경제는 자유경쟁 시장에서 스스로 발전해 간다는 경제 이론이 무색할 정도로 이젠 경제 문제도 전쟁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 국가간 무역은 어느 한쪽이 손해를 거듭한다면 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지금은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 중이다. 직접적으로 군사력을 동원하고 영토를 침범하지는 않지만 이를 바라보는 세계인들은 걱정과 한숨만 내쉬는 형국이다. 사회나 체육, 심지어 문화까지도 '전쟁'으로 표현되고 있다. 상호 이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언제 전쟁이 발발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속에서 세계인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21세기 지구상의 현실이다. 국가는 때로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더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전쟁에 뛰어들어 왔다. 

2년 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 때만 하더라도 엄청난 전쟁의 시작이라며 각종 뉴스 매체들은 앞으로 세계 패권국의 양상이 재편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해설까지 내놓으며 요란스러웠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은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환영하는 입장이어서 적극 지원을 약속하고,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는 핵을 사용해서라도 자신들의 침략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아시아 아프리카나 남미 등 다른 대륙의 세계인들도 직접적인 전쟁 피해는 아니더라도 크든 작든 러-우 전쟁은 일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려하는 마음이었다. 식량과 에너지 공급에 대한 압박 때문이다. 그리고 한마음 한뜻으로 전쟁이 빨리 끝나기만은 빌고 또 원했다. 러-우 전쟁은 지금 벌써 2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고 소모전 양상으로 장기화되어 가는 형국이다.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은 물론 민간인 피해자 숫자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10월 세계인이 놀랄 만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을 일어난 계기는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인데, 전쟁 선언은 이스라엘이 했다. 자신들의 국민 100여명을 인질로 잡아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총리가 나서 하마스의 완전 축출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뒤를 쫓고 있다. 미사일 공습과 불법 침략으로 이스라엘 국민 수백 명이 죽었다는 사실에 분개한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 조직을 뿌리뽑아 평화를 되찾겠다는 선언은 불가피하게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참혹한 희생이 뒤따랐다. 가자지구에 살던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희생자가 1만 명을 넘었다고 발표된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전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생각보다 훨씬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인류는 나라가 형성되고부터 전쟁이라는 이름의 죽고 죽이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옛날 고대국가 등에서 하는 전쟁의 방식이 다르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국가간 전쟁은 군이들끼리 어느 장소에 집결해 정면 대결로 승패를 가렸다. 당연히 희생자는 대부분 병사들이고, 민간인의 희생은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가 근대로 들어오면서 과학의 힘을 빌어 엄청난 위력을 가진 각종 무기들이 개발되면서 병사들보다 민간인 희생자가 더 많은 숫자의 희생자를 낸다. 2차 세계대전의 원자폭탄이 좋은 예이다. 폭탄 하나로 수십 만 명이 일시에 희생되는 엄청난 살상력은 인류에게 공멸의 무기로 인식되지만, 여전히 위협은 계속된다. 

이 책 『과학이 바꾼 전쟁의 역사』은 과학이 전쟁과 만나 뜻밖의 거대한 시너지를 만들어 낸 근대 이후의 전쟁에서 출발한다. 자연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과학은 자연의 현상을 관찰하고 증명함으로써 세상을 이롭게 하는 굉장한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나라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그랬던 과학이 본격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국가의 과업에 적극 활용되면서부터였다. 국가의 기강이 흔들리고, 외부의 침입에 맞서고, 영역을 넓히는 소용돌이 가운데 굵직한 변혁을 이끌어 낸 건 언제나 과학이었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2차 세계대전도 당시 나치의 히틀러가 세계 정복의 꿈을 갖게 된 것도 '과학'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패전국에게 부과되는 전쟁 배상금으로 시민들의 불만이 너무 높았다. 뼈빠지게 벌어서 전쟁 배상금으로 내야 하니 그걸 감당해내기가 매우 힘들었으리라. 더욱이 전쟁에 지는 바람에 산업 시설은 망가지고 국민들의 의지도 거의 없으니 제대로 경제가 돌아가기가 어려웠으리라. 그러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전승국들은 독일의 전쟁 배상금을 독촉했고, 이는 독일인들에게 수치와 경제적 빈곤을 강요하는 일이기에 그들의 분노가 점점 커졌다. 히틀러는 이를 교묘히 선전선동으로 독일인의 분노를 한데 묶어 다시 전쟁을 일으키려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세계 가장 우수한 종족이라는 '아리아인'의 혈통을 앞세웠다. 걸림돌은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나라 없이 2,000년 이상을 떠돌면서 신앙심과 선민의식으로 유대를 지켜왔다. 특히 노벨상 수상자를 살펴보면 유독 과학 쪽의 수상자가 국적은 다르지만 유대계가 압도적이었다. 유대인은 과학적 탁월함뿐만 아니라 경제 금융에 관한 지식도 우월했던 것 같다. 장사도 잘했고 기업도 잘 이끌었다. 어쩌면 나라도 없는 유대 민족이 살아남는 길은 돈을 소유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이 책은 전쟁에서 '과학'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를 분석해낸다. 물론 독일의 과학자만을 대상으로 하진 않는다. 문을 연 과학자는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아지에다. 화약 개량을 위해 화약국장으로 임명된 라부아지에부터 원자를 쪼갤 수 있다는 과학적 발견을 원자폭탄으로 완성시킨 물리학자 오펜하이머까지 이 책 속에 모두 들어 있다. 물론 과학자 한 명만의 힘은 아니다. 또 무기 사용 전에 과학자들은 인류에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 발명하고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평화시와 전쟁 때 과학은 '두 얼굴'을 가진다. 인류의 편리함과 건강, 수명을 위해 사용될 경우 더없이 훌륭한 업적으로 남지만, 전쟁 무기로 사용될 경우는 엄청난 수의 희생자를 가져오게 한다. 인류를 식량 위기에서 구한 비료 원료를 개발해 놓고 독가스에 활용한 화학자 하버,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 기관총을 발명한 의사 개틀링, 수소폭탄을 개발한 물리학자 텔러 등 전쟁의 고비마다 결정적 장면을 만들어 낸 과학자들의 업적이다.



 원자폭탄 제조와 사용을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는 7개 부문에서 올해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다. 

이들의 발견과 발명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고 세계 패권을 바꿔 놓았다. 과학사를 전공하고 국방 기술을 연구하는 저자 박영옥은 과학이 전쟁과 만나 세계정세를 변화시킨 사건들을 포착해 24가지로 정리하면서 전쟁을 우연히 발생한 사건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과학이 전쟁을 도왔고, 과학 기술을 활용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얻은 나라들은 그 지위를 유지 혹은 탈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과학을 지원해 왔다. 그런 과정에서 무기는 더 강력해지고 전투는 보다 치열해졌으며 필연적으로 인류는 늘 새로운 위기에 봉착했다. 이 점이 두 얼굴을 가진 과학의 야누스적인 측면이다. 

이 책의 표제어가 풍기는 뉘앙스 '전쟁사', '과학사'로 봐선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를 담은 것만은 아니다. 에디슨과 벨 등 익숙한 발명가들이나 듀폰과 포드 등 낯익은 회사들의 이름을 만날 때면 반갑고, 무기 경쟁을 유발해 수익을 챙긴 로비스트 자하로프와 원자폭탄 기술을 한 나라가 독점하는 것을 우려해 스파이가 된 푹스 이야기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한 편 한 편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듯, 영화를 보듯 뇌리에 새기며 책장을 넘길 수 있다. 특히 이처럼 흥미로운 사건들을 더욱 실감나게 해 주는 건 풍부한 사진 자료들이다. 가능한 한 쉽고 간결하게 풀어낸 글에 이해를 돕는 사진들이 더해져 당시의 풍경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특히 원폭 이야기가 나올 때는 얼마 전 아카데미 상을 휩쓴 〈오펜하이머〉가 눈앞에 선하다. 과학의 발전 과정이 그렇듯 저자는 책 속 사건을 가급적 연대순으로 배치하고자 했지만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소련 등 세계와 시대를 넘나들다 보니 가지런히 정리하기는 어려웠다고 밝힌다. 이런 부분에 아쉬움을 느낄 독자들을 위해 책 속 주요 사건들을 뒷부분에 연표로 정리해 싣는 저자의 센스 또한 유명 작가로서의 면모다. 왼쪽은 전쟁사, 오른쪽은 과학적 사건들이라 책을 다 읽은 후에 쭉 살펴보며 책 속 내용을 정리해 보기에도 좋고, 미리 관련 내용을 훑은 다음 책을 읽는 것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 책은 「미국 독립 전쟁부터 걸프전까지 전쟁의 승패를 가른 과학적 사건들」이란 부제를 갖고 있다. 「창조와 파괴의 만남」이라는 제목의 〈들어가는 말(프롤로그)〉를 통해 "폐허가 된 전장에서 인간은 다시 모여 창조의 문명을 지었지만 이 문명은 다시 전쟁으로 파괴됐다"는 '전쟁의 이중성'을 전제하고, "이런 역사 속에서 창조를 담당한 건 자연의 이치에 대한 앎과 깨달음으로 만들어진 과학 지식이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쌓은 과학 지식과 기술이 만나 불행하게도 다시 파괴의 도구가 됐다고 지적한다. 적을 더 효과적이고 철저하게 파괴하거나 막아 내기 위한 전쟁의 무기가 된 점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근대 이전 과학자의 위상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고 한다. 대부분 국가의 지원을 받지도, 국가적 사업에 참여하거나 기여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지동설의 갈릴레이, 근대 물리학의 완성자 아이작 뉴턴도 직업이 모두 따로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개인적 과학 연구자였다는 말이다. 이처럼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던 과학 연구가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일로 받아들여지면서 점차 '전문 직업인'이 됐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직업적으로 전문 과학자가 나타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무렵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 시기는 왕정 체제가 막을 내리고, 시민 혁명과 공화정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격변기이자, 근대적인 의미에서 국가의 틀이 확립된 시점과 일치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런 과정에서 정부와 권력자들은 과학자들의 자질과 능력이 국가 경영과 군대를 체계화하고 군사력 강화에 상당히 쓸모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과학자가 본격적으로 전쟁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가 된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미국 독립 전쟁부터 미·소 냉전시대까지 약 200년간이 과학과 전쟁의 발달 과정을 24장(章)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과학자- 라부아지에의 화약」 「과학, 정치와 만나다- 왕립 과학 아카데미와 미터법」 「강한 군대를 위한 학교- 나폴레옹이 사랑한 에콜 폴리테크니크」 「프로이센의 반격- 워털루 전투를 향한 빌드업」 「공학의 탄생- 그리보발의 대포」 「크림 전쟁과 1세대 방산 기업- 암스트롱 포 vs. 휘트워스 라이플」 「트라팔가르 해전이 쏘아 올린 근대 해군력의 진화- 나폴레옹 함부터 드레드노트까지」 「군국주의 시대 죽음의 상인- 무기 로비스트, 배질 자하로프」 「1차 세계대전 공포의 살상 무기- 하버의 암모니아」 「총기 대량 생산 시대- 개틀링의 기관총과 휘트니의 조면기」 「우연히 일어나는 전쟁은 없다- 포드의 장갑차」 「빠른 군납을 위해 모든 것을 동일하게- 셀러스의 표준 나사」 「엘리트 군인 만들기- 세이어의 웨스트포인트」 「과학 기술이 돈이 되다- 에디슨의 GE와 벨의 AT&T」 「철보다 강한 섬유를 군수품으로- 듀폰의 나일론」 「전쟁이 키운 학교- MIT의 공학 vs. 칼텍의 기초 과학」 「2차 세계대전, 미국의 시대가 열리다- 버니바 부시의 국방연구위원회」 「원자는 쪼개진다- 상대성 이론과 원자핵분열 실험」 「전쟁을 끝내다- 오펜하이머의 맨해튼 프로젝트」 「뜨거운 전쟁에서 차가운 전쟁으로- 냉전 시대 푹스와 맥마흔법」 「핵이 만든 또 다른 무기- 텔러의 수소폭탄」 「육군 대 해군 대 공군- 리코버의 핵 잠수함」 「우주로 쏘아 올리다- 고더드와 대륙 간 탄도 미사일」 「냉전 그 후, 끝나지 않은 전쟁- 정밀 유도 무기부터 인공지능까지」 등이다. 



책에 따르면 과학 기술은 나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이로 인해 인류는 더 편리해지기도 더 위험해지기도 한다. 과학 기술을 어떻게 쓰느냐는 순전히 인간의 의지에 달렸다. 전쟁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동시에 언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는 미래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삶에는 정답이 없으니 이미 지나간 역사를 보면서도 어떤 선택이 더 옳았을지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인류를 위해 더 좋은 방향이 무엇인지 생각해야만 하고, 이 책이 조금이나마 그런 생각들을 환기시킬 수 있다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는 이 책을 펴낸 후 예스24와의 가진 인터뷰를 통해 차세대 전쟁 양상은 'AI의 시대'라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현재 전쟁 양상을 주도하는 한 단어를 꼽으라면 인공지능입니다. 제 책이 주로 2차 대전과 냉전기까지를 다루고 있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그 내용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인류의 일상과 복지에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과 서비스 개념을 동시에 무기와 전장에 적용하고 활용하기 위해 세계 주요국들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물론 예외는 아니고요. 무기와 군사력이 궁극적으로는 인류 멸망의 어두운 본질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늘 피아 간의 생존 갈등과 투쟁이 있어 왔고, 현시점에서도 우리 개인과 사회, 국가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하는 데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는 점도 너무나 명백합니다. 사이버 테러나 정보전뿐 아니라 이제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해서 업그레이드해 온 거의 모든 지상, 해상, 공중 무기체계에 인공지능 기술과 방법론이 적용돼 더 치명적이고, 더 강력하고, 더 스마트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절대적으로 무기를 조종하고 사용해 왔던 방식에서부터 인간과 인공지능 무기가 협동하는 방식의 전쟁 개념이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저자 : 박영욱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 학사, 동 대학원에서 유럽과학사와 미국과학기술사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회와 방위사업청에서 국방 정책 입법과 행정 업무를 담당했고, 광운대학교와 동양대학교, 카이스트를 비롯한 여러 대학교에서 국방 과학 기술 정책을 중심으로 강의와 연구 경력을 쌓았다. 현재 우석대학교와 명지대학교 객원교수이자 한국국방기술학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반도체 인사이트 센서 전쟁』(공저), 『과학기술, 미래 국방과 만나다』(공저)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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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우렐리우스를 읽어야 할 때
김옥림 지음 / 미래북(MiraeBook)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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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을 몇 번 읽은 적이 있다. 당연히 대부분 번역본이고, 고대 로마 문장(라틴어)은 해석이 어렵다는 이유로 책을 번역한 사람마다 다소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는 기억이 있다. 그러나 해석이 달랐다는 것도 나중에야 안 사실이다. 뜻을 이해하기에 바빴고 어떤 것이 잘 된 번역인지는 알 길이 없었기에 그렇다. 결국 독자는 늘 『명상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책을 덮곤 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 작가가 쓴 『명상록』과 아우렐리우스 황제에 대한 이야기다. 단순 번역본이 아니라 김옥림 작가가 나름대로 읽고 해석을 덧대고, 동서양 많은 철학·사상 책에서 사례들을 들어가며 독자들이 이해하기 풀어 쓰고 다듬었다. 개인적으로 독자는 아우렐리우스 황제보다, 그가 쓴 『명상록』보다 작가 김옥림이 풀어쓴 책이라고 해서 선뜻 선택했다. 표제어도 『지금은 아우렐리우스를 읽어야 할 때』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철학자로 『명상록』이라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전을 남겼다. 황제가 『명상록』을 남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하지만, 전쟁과 정치도 굉장히 잘했다고 한다. 훗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책은 물론 그의 치적을 영화 등의 예술작품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가 쓴 『명상록』은 황제로서 겪은 수많은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깊이 깨달은 성찰을 담아 쓴 책이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삶이 어렵거나 답답할 때 읽으면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고전으로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하버드대를 비롯한 유수의 대학에서 필독서로 꼽히며 넬슨 만델라와 빅터 프랭클도 이 책을 읽고 살아야 할 용기를 얻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아우렐리우스를 읽어야 할 때』는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남긴 말 중에 가장 보편적이면서 가장 핵심적인 주요 골자를 가려 뽑아 『명상록』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한 점이 의의가 크다. 저자 김옥림은 살아가면서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하려는데 지혜가 필요할 때,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의 문제로 고민이 있을 때 이 책에서 답을 찾아보길 바란다고 말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통에서도 10년에 걸쳐 일기를 쓰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외세의 침략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던 그였지만 삶의 길을 찾기 위해 성찰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현재 자신의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 늘 고민했던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진실한 인간이 되기 위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는 인간이 우주에 존재하는 한 영원불변의 법칙이다”라고 말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아우렐리우스를 읽어야 할 때』를 통해 조금 더 쉽게 아우렐리우스의 지혜와 성찰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는 동서고금의 다양한 이야기를 덧붙여 아우렐리우스의 슬기를 전하고자 노력했으며 『명상록』의 가치를 더욱 깊이 있게 느낄 수 있게 구성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발견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마음의 위기를 지혜롭게 넘기고 인생을 좀 더 가볍게 살아가는 법을 안내한다.

저자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가르침에서 삶의 답을 찾다」라는 제목의 〈프롤로그〉에서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훗날 그가 세계사에 한 획을 긋는 인물로 평가받는 것은 철학자로서의 위상이 더 큰 까닭"이라고 전제하고 "그는 진리에 이르기 위해, 양심적인 한 인간으로서 거듭나기 위한 탐구와 성찰을 위해 열정을 다 바쳤다"고 설명한다. 즉,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최고의 권력을 가진 황제였지만, 그 역시 사람이기에 삶과 죽음의 고뇌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에, 집무 중이나 전쟁터에서도 늘 사색하며, 진실에 이르는 길을 찾고자 부단히 노력한 지성과 인품을 지닌 철학자였다고 강조한다. 그는 삶에서 체득한 깨달음을 쓴 글과 소크라테스, 에픽테토스 등 철학자들의 말들을 가려 뽑아 함께 남긴 저서가 『명상록』이다. 



『명상록』은 모두 12권으로 구성돼 있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과 특히 황제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죽음에 대한 고뇌와 통찰이 잔잔하게 깔려 있다. 진실한 인간이 되기 위한 탐구와 진실한 인간이 되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진지하고도 담담하게 살아가는 지혜에 대한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국내외적으로 매우 혼돈된 상황에 휩싸여 있다. 이런 가운데 그의 『명상록』이 서점가에 눈에 자주 띄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국내적으로는 여야가 정쟁을 일삼고, 정부는 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은 채 일관성이 결여된 정책으로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상황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또 세계적으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으며, 수많은 도시가 파괴되고 천문학적인 경제 손실을 가져옴으로써 전 세계를 암울함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또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제의 동맹국도 가차 없이 찍어 내리고, 적국도 끌어들이는 등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다. 이런 상황이 사람들의 마음속엔 불안한 삶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깊이 깔려서 『명상록』이 대두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럴 때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는다면 현실의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시킴은 물론, 마음을 바로잡게 됨으로써 정신적인 혼돈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명상록』은 아우렐리우스가 황제로서 수많은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깊이 깨달은 성찰을 담아 쓴 책이기에 마음이 혼란스럽고, 삶이 어렵고 답답할 때 읽으면 삶의 지혜를 얻게 됨으로써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명상록』 출판 붐의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독자들로서는 왜 지금 『명상록』이 필요한가?란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시대가 다르고, 당시 상황이 지금과 다르고, 추구하는 목적이 다를지라도 인간의 본성과 삶의 본질은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답변이다. 『명상록』을 통해 아우렐리우스는 인간이 진실에 이르는 길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말하며, 신의 가르침에 따라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말했던 것이다.



7권은 고통은 인간에게 따라오는 그림자와 같은 것, 그러기에 참고 견디어 이겨내라고 주문한다. 이 경우 정신적으로 강건해짐으로써 평온을 느끼게 되고, 정신을 지배하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8권은 모든 인간에게 일어나는 사건은 인간이기에 인간에게 맞는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독자들이 이 서평을 읽는다면 느꼈을 5권과 8권의 내용은 함께 묶여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 이런 연계성을 저자 김옥림은 파악함으로써 이 책 『지금은 아우렐리우스를 읽어야 할 때』를 6장으로 구성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 9권에서는 근심은 인간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것이니, 스스로 그것을 이겨내야 함을 말한다. 10권에서는 사람은 대자연의 지배를 받는 까닭에 이성적 본능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11권은 우리의 삶은 무(無)로 변하는 게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로 변하는 것임을 말한다. 12권은 감정을 움직이고 꼭두각시처럼 자신을 조정하는 단순한 본능보다 우월하고 신적인 것이 자신의 내부에 있음을 말한다. 그런 까닭에 자신을 지배하려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고 맞서 이겨내야 함을 역설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요즘 서점가에는 아울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신간과 베스트셀러 목록을 왔다갔다 하며 늘 눈에 띈다. 얼마 전에는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새롭게 되짚어 주는 책 『지금이 생의 마지막이라면』을 출간했다. 그는 매일 겪는 일의 한계와 인간관계의 어려움 등 다양한 고민으로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하면 삶의 위기를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을지, 그에 대한 힌트를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이미 죽은 사람처럼, 이제 삶을 마감한 사람처럼, 앞으로 남은 인생은 덤이라 생각하고 자연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

2000년 전 로마 황제를 지낸 청년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찾아낸 문장을 찾아내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자연에 순응하지 않아서"라고 기시미 이치로는 말한다. 이어 기시미 이치로는 세상의 모든 것은 각자의 섭리에 따라 운동하고 순환하게 되어있으니 어떠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자연의 이치에 따라 흘러가도록, 흔들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라고 『명상록』은 권고한다고 썼다. ‘죽음도 만물의 변화로 하나의 현상이며 우리가 죽을 때는 더 이상 감각이 없으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죽음을 기피하는 감정도 가질 필요는 없다’ 바로 이러한 자각 위에 ‘하루하루를 마치 그날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추진하는 것이다.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적 사색을 통해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깊게 재검토해 나간다.



저자 김옥림은 아울렐리우스의 『명상록』에서 모두 61개의 명제를 찾아내 이 책 『지금은 아우렐리우스를 읽어야 할 때』에 소개한다. 독자들이 정확히 읽고 뜻을 제대로 파악하여 삶의 지향으로 삼거나 삶의 중심으로 삼을 만하다고 제시하고 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1장 세 번째 항목 「이성에 따라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다. 『명상록』에 "이성을 섬기고 따른다는 것은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분별없이 행동하지 않고 신이나 인간이 하는 일에 대하여 불만을 품지 않으며 마음을 깨끗하게 갖는 것이다."란 명제를 들춰낸다. 책에 따르면 사람에게는 '이성'과 '감정' 두 가지가 내면의 축을 이룬다. 이성은 개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을 감각적 능력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로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키는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을 말한다. 또한 진위, 선악을 식별하여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을 말한다. 

감정적인 사람은 주변 사람과 함께할 땐 이성적으로 대함으로써 자칫 잘못될 수 있는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 관계에 있어 원만하게 소통하기 위해서는 이성적이어야 한다. 이성적이어야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다 잘 이어가는 데 있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같은 설명의 글을 공자의 "군자는 남과 화합은 하지만 뇌동(雷同)은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진실되게 화합은 할지언정 비리에 뇌동부화(雷同附和)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p.31) 저자 김옥림은 설명을 덧댄다. 자신이 이성적이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고 감정적이라면 반드시 자신을 이성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에 있어 사리분별이 철저해야 하며, 매사를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저자 : 김옥림(金玉林)


현재 시, 소설, 동화, 동시, 교양, 자기계발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히 집필활동을 하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에세이스트이다. 시세계 신인상(1993), 치악예술상(1995), 아동문예문학상(2001), 새벗문학상(2010), 순리문학상(2012)을 수상하였다. 교육타임스 《교육과 사색》에 ‘명언으로 읽는 인생철학’을 연재하고 있다.

시집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따뜻한 별 하나 갖고 싶다》, 《꽃들의 반란》, 《아무렇지도 않게 행복한 날》, 《기적을 울리며 달려가는 기차를 볼 때마다》, 소설집 《달콤한 그녀》, 장편소설 《마리》, 《사랑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들》, 《탁동철》, 에세이 《사랑하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행복한 아침을 여는 책》, 《가끔은 삶이 아프고 외롭게 할 때》, 《허기진 삶을 채우는 생각 한 잔》, 《내 마음의 쉼표》, 《백년 후에 읽어도 좋을 잠언 315》, 《나는 당신이 참 좋습니다》, 《법정 마음의 온도》, 《법정 행복한 삶》, 《지금부터 내 인생을 살기로 했다》, 《힘들 땐 잠깐 쉬었다가도 괜찮아》, 《인생의 고난 앞에 흔들리는 당신에게》, 《사랑의 결》, 《월든에서 보낸 소로의 시간》, 인문교양서 《어른들의 문장력》, 《1일 1페이지 짧고 깊은 지식수업 365_통찰력 편》, 《1일 1페이지 짧고 깊은 지식수업 365_교양 편》, 《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오십에 읽는 노자 도덕경》, 《철학자의 말》, 자기계발서 《명언으로 읽는 100명의 인생철학》, 《책사들의 설득력》, 《유대인 대화법》, 《인생이 깊어질수록 다가오는 것들》, 《이건희 담대한 명언》, 《나와 함께 살아갈 당신에게》, 《품위 있게 나이 든다는 것》 외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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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역사 - 우리가 몰랐던 제도 밖의 이야기
세라 놋 지음, 이진옥 옮김 / 나무옆의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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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엄마의 역사』는 부제 「우리가 몰랐던 제도 밖의 이야기」와 표지화로 주제가 규정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정희진 이화여대 초빙교수의 말이 심상찮다. "이 책은 인간의 역사는 곧 엄마의 역사이고, 인간의 조건은 엄마의 조건임을 보여준다. 이것이 진실이다. 울지 말고 읽기를···." 저자 세라 놋은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예전에는 어떤 모습이었기에 이렇게 비장한 질문을 던지고 있을까? 수세기 동안 역사학자들은 전쟁, 정치, 혁명에 대해서는 다양한 기록을 남겼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상의 역사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곰곰 되돌아보니 아이 육아에 대한 엄마들의 이야기는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듯하다. 출산과 여자에겐 일상의 일이고 보편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서였기에 그런 것일까? 어쩌면 어머니에게 주어진 출산과 양육은 인류 역사 이래 당연한 생물학적 특징 혹은 의무라고 생각해서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독자는 남자다. 당연히 육아를 주의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가끔 놀아주는 일이 아빠로서의 일이라면 일이었다.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육아에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는 자성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우리는 육아를 출산과 함께 엄마가 담당해야 하는 책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 책 『엄마의 역사』는 혹시 페미니즘과 관련되는 것 아닐까? 20세기 말 여성의 권리,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사회적 진출, 남성과 동등한 입장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이 강력하게 부상했다. 이 책도 저자 세라 놋이 같은 입장에서 저술했을 것이란 게 독자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저자는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예전에는 어떤 모습이었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힌다. 저자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했고, 현재 인디애나 대학교 역사학 교수이며 킨제이 연구소 연구원이다. 그동안 여성과 젠더, 감정의 역사에 대한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페미니스트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할 충분한 길을 걸어온 듯하다.

저자는 그러나 두 아이의 엄마라고 한다. 여성과 여성학에 관한 연구와 책을 썼지만, 이 책은 페미니스트로서 쓴 게 아니라고 말한다. 둘째 아이를 가진 상태에서 연구를 시작했다는 저자는 임신과 출산, 유아 양육에 관한 과거의 일화들 사이에 자신의 경험을 더함으로써 역사서와 에세이의 결합을 시도한 것이다. 이 책은 동사 지향적이고, 일화에 기반하며, 일인칭 화법으로 구성한 역사라는 새로운 제안이다. 또 역서 서술의 객관성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 모성 경험에 접근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론을 보여준다.



저자는 연구를 결심한 이후 과거의 어머니들이 남긴 일기와 편지, 짤막한 메모, 법정 기록의 한 줄, 그림 속 인물 등 흥미로운 자료들을 탐사하며 평범한 여성들의 잃어버린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평균 일고여덟 명의 아이를 낳았던 17세기 북미의 어머니에서 아이를 가져야 할지 논쟁하는 20세기 말의 페미니스트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광대하고 복잡한 모성 경험에 대한 놀랍고도 감동적인 초상을 만들어낸다.

저자는 연구를 통해 모성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전제한다. 이 가장 본질적인 경험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보고 어머니의 역사적 발자취를 포착하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이다. 저자 놋은 새로운 유형의 역사 해석을 구축하기 위해 자신만의 장르를 창조해낸다. 에세이와 역사를 오가며 일화들을 쌓아올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 점은 앞서 밝힌 대로다. 저자의 글쓰기는 이에 따라 광범위한 동시에 내밀하며, 정교하면서도 서정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역사서로서 이 책은 17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영국과 북미 지역의 어머니를 조명한다. 크리족과 오지브와족 여성에서부터 애팔래치아 산맥의 소작농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쌀 플랜테이션 농장의 노예화된 사람들부터 뉴욕시와 런던 이스트 엔드의 공동주택 거주자들에 이르는 다양한 사회 집단의 여성이 여기에 포함된다. 앞선 언급처럼 일기, 편지, 법정 기록, 의학 안내서 들을 샅샅이 조사하고, 광범위한 시각에서 경제 및 사회 구조와 모성의 밀접한 관계를 조명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한편 에세이로서 이 책은 인류의 경험에서 가장 일상적이며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 엄마 되기의 경험을 역사로 기록하기 위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사료의 틈을 상상력으로 메우기도 하며 잃어버린 과거를 탐사한다. 그리고 저자 자신의 경험을 탐구하고 기록한다. 방해받은 시간,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수면 부족에도 역사가 있다는 것을 놋은 거대 서사가 아닌 일화들의 구조물을 축조하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17세기 사람들은 임신과 젖먹이 양육을 가리켜 '아이와 함께 가기'라고 일컬었다는데 우리가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란 질문을 내놓는다. 1688년에 한 관찰자는 "아이와 함께 가기란 말하자면 거친 바다 같은 곳에서 임신으로 배가 부른 여자와 그녀의 아이가 아홉 달 동안 떠다니는 것"으로 보았다고 조사 결과를 내놓는다. 놋은 이 기록물은 "출산은 유일한 항구로서, 위험한 암초투성이고 곧잘 아이와 산모 양쪽 모두에게 위험하다. 도착한 뒤에도 (···) 그들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즉 폭풍이 치고, 형태를 탈바꿈하는, 근심거리와 암초투성이의, 드라마로 가득한 장면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밝힌다. 

저자는 또 20세기 후반 국립보건기구는 임신은 곧 결혼을 가리킨다고 간주했다고 지적한다. 일상의 용어 '미혼모'가 1960년대에 좀 덜 비하적인 표현인 '싱글 마더'로 대체되었지만, 결혼한 전업주부 엄마라는 것이 가족 규범으로 굳건히 유지되고 있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과거에 아기를 낳는 것이 어떠했는지 탐구하는 최선책은 아마도 거대 서사들을 한쪽으로 밀어두고 그 조각들과 일화들에 주목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저자는 이에 따라 과거에 엄마 되기가 어떠했는지 탐구하는 최선책은 아마도 아주 작은 장면들로 이뤄진 격자 울타리를 세워, 수많은 다양한 관련 사건들을 추적해가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책에 따르면 임신, 유산, 태동, 분만 준비, 출산. 다음으로 씻기고, 먹이고, 자고, 못 자고,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고, 방해받고, 맡기고 찾아오고. 이 모든 것이 본능적 진행 과정, 다시 말해 '아이와 함께하기'의 피와 내장을 이룬다. 동사(動詞)들이다. 동사로서 '엄마 되기'이다. 

다소 낯선 단어이긴 하지만 생생한 표현에 쉽게 드러난다. 쉴새없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휴식이나 안락한 분위기는 돌봄 틈이 없다는 말로 이해된다. 〈프롤로그〉에서 저자의 말은 임신 출산 양육의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은 절대적이고 자신을 돌볼 여유는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역사적 호기심은 우리를 비상하게 해주고, 우리 자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도록 해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의심하고, 다시 상상하도록 허용한다. 우리만의 시대를, 그것이 무엇이고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등고선으로 파악함으로써, 더 충만하게 소유하게 해준다."(p.19)



저자는 자신의 연구를 “동사 지향적이고, 일화에 기반하며, 일인칭 시점의 에세이 형식으로 구성된 모성의 역사”라고 말한다. 이런 연구 방법을 제안한 배경을 책 말미에 「연구 방법에 대해서」란 제목의 장(章)을 따로 마련해 8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소개한다. 왜 일화인가라는 질문에는 세 가지 기원을 밝힌다. 첫째, 일화 제시는 17세기에 나타난 역사 저술의 전통으로, 개인적 삶과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수단으로 채택되었는데, 이는 남성들의 행적에 대한 정치적, 관습적 서사와 대조되는 방식이다. 한 17세기 해설자의 관찰에 따르면 보통 역사학자들은 '공공 안에서 남성들'의 행위를 염두에 두었다. 그들은 '군대에, 혹은 도시의 소요에서'의 남성을 묘사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러나 새로운 역사학자들은 '무슨 일이 있든 그들의 벽장 문을 활짝 열어놓기를' 시도했고, '대화로' 사람들을 이해하기를, 그리고 '사람들의 내적 삶과 (···) 가장 사적인 순간의 목격자'가 되기를 시도했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정치적 서사를 말해왔다면, 이제 몇몇 역사학자들은 개인적인 이야기와 내적 경험을 기록한 일화들을 말하게 되었다. 그 해설자는 벽장 문을 열어젖힌 이들을 가리키는 투박한 이름까지 만들어냈다. 일화-기록자라는. 둘째는 과거 엄마 노릇의 흔적들이 극도로 파편적이며 단편적이라는 데 기인한다. 편지의 여담, 여행담의 한 장면, 노예의 서술, 원주민 보호구역에 대한 인류학자들의 짧은 보고서, 구술사나 사회학적 조사에서의 간략한 증언 같은 일화들은 모성 경험의 중요한 증거이자 그 총체를 조망하는 방식이고, 부재를 존재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셋째는 21세기의 모성 이론으로, 정신분석학자인 리사 버레잇서가 정확히 표현한 것처럼 “모성은 그 자체로 일화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버레잇서는 어머니의 서사와 발화가 아이의 지속적인 방해로 인해 끊임없이 중단되고 구멍이 난다는 사실에 주목해 일화의 중요성을 조명한다. 어째서 동사 지향적인가? 엄마 되기는 숱한 동사들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또한 동사들은 일화와 특별한 관계를 갖는다. 하나의 일화는 전형적으로 하나의 장면을 펼쳐 보이거나, 한 사람 또는 일군의 사람들을 행동하고 존재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행위들을 통해 보여준다. 동사 지향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자연적이거나 생물학적이며 불변하는 것으로 오해되는 엄마 되기를 개별화하고 특화하도록 돕는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역사적 단편들은 정말 다양하다. 임신과 아기 양육은 시간과 공간에 좌우된다. 한 아기의 엄마 노릇을 하는 것은 어떤 확정된 상태가 아니다. (···) 엄마 되기가 무엇인지 파악하기란 다원적이고 구체적으로 들어감을 의미하며, 그 어마어마한 다양성을 탐험하는 일을 의미한다.(p.17)

저자 놋은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쓰는 자신에게는 일인칭 작문이 이러한 동사 지향적 접근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역사 서술에서 객관성이 유일한 서약이 아님을 환기시키며, 저자로 하여금 모성 경험에 대해 직접적이고 지속적으로 글을 쓸 수 있도록 추동한다. 놋은 연구의 끝에 이르러 “무엇보다도 가장 특별한 것은, 내가 본능적으로 엄마 노릇 하기가 일의 일종이며, 사랑의 노동이며, 언제나 다른 활동들 사이에서 수행되는 한 활동임을 인식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하여 엄마 노릇 하기는 모든 돌봄이 옹호받는 광범위한 보살핌의 연합체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 전망한다.

명사를 동사로, ‘어머니’라는 정체성을 ‘엄마 노릇 하기’라는 행동으로 바꿔보라. 전망이 아주 다르게 보일 것이다. 후기 자본주의하에서 모든 종류의 돌보는 이들?입양모, 생모, 고용된 위탁모, 또는 여성, 남성, 레즈비언, 게이, 성전환자,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이 외치는 돌봄에 대한 옹호는 실제로 광범위한 연합체를 구축할 수 있다. 21세기는 우리의 발밑에서 여전히 요동치고 있다. (p.396~397)

문장이 우리가 쓰는 문장과 다소 차이가 있는 느낌이다. 단문에 익숙한 우리들의 문장과 많이 다르다. 그래서 한 번 읽고 단숨에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여럿 드러난다. 시간이 없을 때는 할 수 없이 그냥 읽어나가지만 다시 생각난다면 재독할 예정이다. 이 책을 번역한 이진옥은 〈옮긴이 후기〉를 통해 부연 설명을 해준다. 이에 따르면 '나는 엄마다.' 이 문장을 영어로 쓰면 'I am a mother.'이다. 알다시피 여기서 mother는 명사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동사라고 정의한다. 엄마라는 말에 임신하고, 태동을 느끼고, 출산하고, 아기를 씻기고 ㅁ거이고 재우며 돌보는 행위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마더링(mothering)이다. 엄마 되기! 엄마 노릇하기! 이 단어가 이 책의 핵심이다. 어머니, 모성, 모성다움이라는 말의 맥락과 함의는 사회에 따라 다르고 계속 변화한다. (···) 역사 분야에서 모성을 주제로 하거나, 어머니 역할을 연구한 논문이나 책은 다른 주제에 비해 아주 적다. 사실 학문 연구의 대상이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p.477)



일화들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 대문자 H로 시작하는 역사―노예제도, 산업화 부상, 혁명적 이데올로기―와 아이와의 삶을 다룬 지극히 평범한 사안들 사이를 오가는 특별히 강력한 수단이다. 일화들은 아이와 함께하는 것을 조명하는 다양한 장면이나 언급이나 대상들을 해석할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 설사 연속적인 자료가 없고, 남겨진 빈약한 기록의 흔적이 통상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사소해 보일지라도 말이다. 일화들은 ‘그것은 어떤 것이었는가’ 묻기를 계속할 유일한 수단이다.(p.135)


저자 : 세라 놋(Sarah Knott)


영국에서 성장해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현재 인디애나 대학교 역사학 교수이며 킨제이 연구소 연구원이다. 『감수성과 미국 독립혁명Sensibility and the American Revolution』을 저술했고, 여성과 젠더, 감정의 역사에 대한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역사협회의 간판 잡지인 《미국 역사 비평American Historical Review》 편집자이자 《과거와 현재Past and Present》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앤드루 멜런 재단을 비롯해 로더미어 미국연구소Rothermere American Institute, 옥스퍼드 생애기술센터Oxford Center for Life Writing 등에서 다양한 연구 과제를 수행해왔다.


역자 : 이진옥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과 부산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강대를 거쳐 현재 부산대에서 강사로 재직 중이다. 석사논문으로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페미니즘 연구」를 쓰고, 「18세기 영국 블루스타킹 서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관심 분야는 여성사, 미시사, 신문화사이며, 역서로 『완벽한 아내 만들기: 피그말리온 신화부터 계몽주의 교육에 이르는 여성 혐오의 연대기』가 있다. 논문으로는 「만들어진 ‘모성’: 18세기 영국의 여성 담론」, 「영국 여성들, 백화점에 가다: 자본주의와 페미니즘의 어떤 만남」, 「참정권에 반대한 영국 지식인 여성들: WNASL을 중심으로」이 있으며 현재 빅토리아 시기 ‘집안의 천사’ 담론을 연구 중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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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학 필독서 50 - 셰익스피어에서 하루키까지 세계 문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14
박균호 지음 / 센시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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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세계 문학 필독서 50』은 세계적 명성을 얻은 위대한 작가 50권의 소설을 저자 박균호가 엄격한 기준을 세워 선정한 '고전 읽기'의 중요성을 알게 해춘다. 저자 박균호는 작가 입장이 아닌, 독자 입장에서 이들 작가와 작품을 해설하고 분석한다. 당연히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낸다. 저자는 선정 기준은 〈프롤로그〉에 자세하게 설명한다. 독자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등재된 50권의 명작 중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가장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세계 명작 소설 전집』, 『세계 고전 소설 100선』 등의 축약본을 읽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뮤지컬과 영화로도 감상했다. 어렸을 때는 '레 미제라블'이란 단어의 뜻도 몰랐지만 '비참한 사람들'이란 뜻도 고등학교 때 이르러서야 알았다. 또 이 소설에 주요 시점에 등장하는 기독교의 영향력에 대해서도 까막눈이었다. 사상적 배경이나 집필 취지 등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완역본은 아니지만 그나마 완역에 가까운 책을 손에 든 것은 대학 이후부터였다. 당시 프랑스 시대 상황이 눈에 들어왔고, 기독교 문명이라는 상황도 이해할 때였다. 

그렇게 하나 하나 생각하다보니 빵 한 개 훔쳤다고 '19년의 징역형'에도 시선이 멈추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안 되지만 19세기 중엽 프랑스는 식량 상황이 좋지 않아 식량 도둑을 크게 처벌하는 법이 있었다고 한다. 주인공 장발장도 징역 5년형을 받았으나 여러 번의 탈출 시도로 형기가 19년으로 늘었다. 이 책 『세계 문학 필독서 50』의 1장(章) 〈레 미제라블〉에서는 주인공 '장발장'처럼 징역 5년형을 받은 실제 사례도 소개된다. 

이 장에서 저자는 『레 미제라블』은 당시의 시대상, 생활 모습 등을 알 수 있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고 말한다. 특히 위고의 아버지가 워털루 전투 때 프랑스 육군 장교였기 때문에 워털루 전투 부분은 특별히 매우 세밀하고 밀도 있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도 덧붙인다. 나폴레옹 3세와의 갈등으로 19년 간의 망명 생활을 했던 위고는 원래 약자를 대변하고 민주주의를 지지한 인물이었지만 이 경험을 통해서 더욱더 약자에 대한 연민과 지원을 주장하는 작가로 거듭났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위고는 또 매우 진보적인 정치인이기도 했다는 게 저자의 평가다. 때문에 『레 미제라블』을 통해 사회 부조리를 통렬히 비판한다는 것. 『노트르담 드 파리』(1831)가 발표된 이후 성당 재건을 위한 대대적인 모금 운동이 일어났고, 아름다운 모습이 재건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두 작품은 모두 민중의 아픔을 노래한 작품이지만 흥미롭게도 『노트르담 드 파리』는 지배층을 상징하는 성당을 재조명했다면, 『레 미제라블』은 하층민을 상징한 하수도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계 문학 필독서 50』은 세계의 문학 고전 50편을 선정해 작품에 대한 내용 설명과 함께 책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할 것 등을 저자 박균호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흔히 고전문학이란 줄거리의 재미와 함께 '특별한 그 무엇' 때문에 오랫동안 독자들이 읽어온 작품을 일컫는다.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은 문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 담았다.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잘 아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일본의 현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수십~ 수백 년 문학 역사상 최고의 명저로 평가받는 50권을 엄선, 한 권당 10분이면 읽을 수 있도록 핵심만 쉽게 정리했다. 저자가 책을 엄선한 기준은 읽는 재미가 뛰어나서 한 번 잡으면 단숨에 끝까지 읽게 되는 힘을 가진 책을 중심으로 했다고 밝힌다. 

세계적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위대한 명저 『햄릿』부터 서양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로 평가받는 『레 미제라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 『데미안』, 모든 미국 현대문학의 출발점이라 평가받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 현대 영미 작가 125명의 투표로 정한 세계 문학 베스트 10에서 당당히 1위로 선정된 『안나 카레니나』 등이 망라돼 있다. 특히 거의 모든 작품이 세계 50여 개국에 번역되고 세계에서 가장 탄탄한 팬층을 거느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해변의 카프카』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으며 오랜 세월 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도 포함돼 있다. 독자는 이들 많은 작품을 책이나 뮤지컬이나 오페라, 영화로 변주된 내용을 감상한 편이다. 

그러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이나 중국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는 거의 읽지 못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독자가 옛날에는 책을 많이 읽었으나 최근 20년은 거의 책을 읽지 않았다는 점을 반증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독서에 대한 성찰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 외에도 『노인과 바다』, 『1984』, 『오만과 편견』, 『위대한 개츠비』, 『이방인』, 『아Q정전』, 『신곡』 등 누구나 인정할 만한 문학 명저 50권을 작품 내용과 저자, 당시 시대 배경, 작품이 끼친 영향을 함께 소개함으로써 문학을 잘 모르거나 알고 싶은 초보 독자들부터 문학을 즐겨 읽는 독자들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독자들이 여러 분야 책 중에 문학책을 가장 많이 찾는 이유는, 문학책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혹은 경험할 수 없는 수많은 인생과 인물을 간접 경험 함으로써 우리가 처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삶에 대한 의미와 통찰을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 박균호의 주장이고, 집필 취지이다. 저자는 문학책을 읽고 싶었지만 어떤 책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던 독자, 작품과 작가에 대해 알고 싶은 독자, 효율적으로 문학책을 읽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밝힌다. 책을 가까이 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느끼듯이 "세상에는 읽어야 할 명작이 많고, 추천하고 싶은 걸작도 수없이 많다." 저자가 이 책을 펴낸 이유를 읽을 수 있는 문장이다. 

저자는 자신의 취향대로 아무렇게나 이 책에 고전들을 선정한 것은 아니다. 분명 고전으로 불리워질 만큼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고,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작품 중에서 신중하고 엄격한 기준으로 선정했고, 「수 세기에 걸친 명작 중에 이것만은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라는 제목의 기준을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책에 따르면 독자들이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소설을 첫 번째 기준으로 삼았다. 소설을 읽는 재미는 명작의 포기할 수 없는 미덕이다. 여기서 '재미'란 극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 소설을 말한다. 사실 위대한 작품들 중에는 이해하기 까다로운 작품들도 많다. 문장이 길고 난해하거나 스토리 자체가 꼬여 있어서 해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가령 마르셀 프루스트의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같은 작품은 모든 평론가들이 인정하는 대작이자 걸작이지만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 소설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또한 어려운 소설 목록에서 늘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이처럼 철학적인 담론을 진지하게 담고 있거나 문학적 의미나 상징성으로 평가받는 소설은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도 이번 50권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저자는 밝힌다. 독서력이 단단히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읽으면 오히려 독서의 즐거움을 앗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토리 자체가 흥미를 돋우고 개성 있고 설득력 있는 주인공들이 등장하여 기승전결의 담백한 구조를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책을 가장 중요한 선정 기준으로 두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가 고전의 '기준'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독자는 어렸을 때 학창 시절에 배운 '소설의 4요소(서사성·교시성·오락성·감동성)' '소설구성의 3요소(인물·사건·배경)' 등을 떠올린다. 이런 소설 집필의 기준을 바탕으로 "어떻게 명작이 되는가?"를 고민할 단계가 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마담 보바리』 『분노의 포도』 『적과 흑』 『허영의 시간』 『폭풍의 언던』 등은 문학사적 의의라든가 대표성을 떠나서 한번 잡으면 좀처럼 놓기 어려운 흥미로운 스토리로 유명하다. 이 소설들의 줄거리를 단 몇 줄로 요약해 들려준다면 누구든 호기심이 발동할 것이다. 이렇게 가독성 좋은 책으로 '독서힘'을 기른 다음 다소 난해한 소설로 단계를 높여간다면 그때는 아마 어려운 소설도 조금은 수월하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문학은 한 사회와 그 사회의 문화를 대변하는 만큼 문화별, 나라별 분류가 두 번째 중요한 선정 기준이다. 이 책에 실린 50권의 고전을 통독한다면 전 세계 각 문화권의 오늘을 있게 한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저자는 기대한다. 오늘날 세계는 국경과 문화가 느슨해진 세계 시민의 시대다. 따라서 우리가 매일 만나고 소통하며 교류하는 다른 문화권을 이해하는 데 문학 만큼 좋은 것도 없다는 저자의 주장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문학이야말로 시대와 사회상을 고스란히 반여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책으로 세계 여행을 해보자는 저자의 의도가 밑바탕에 깔린 셈이다. 

세상을 바꾼 새로운 사상이라든가 사회 변혁운동의 실마리를 제공한 소설을 세 번째 기준으로 삼았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1984』를 읽으면서 전체주의 국가에 대한 경고를 들을 수 있다. 『돈키호테』를 통해서는 근대문학의 기틀을, 『레 미제라블』을 통해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 제도의 기원을 읽어낼 수 있다. 또한 『변신』에서는 거대 조직의 부품으로 전락한 개인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 있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으면서 인종차별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우리가 동화책으로만 읽은 『걸리버 여행기』는 어떤가. 이 책은 문학이 신랄한 사회 풍자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특히 명성 있는 문학평론가나 서평가의 평가로 우리는 고전을 읽을 때도 많다. 마치 이 책에 있는 목록과 작품·작가의 설명을 읽고 너무 좋아서 읽게 되는 경우 말이다. 그러나 "좋은 책인 줄은 알겠는데, 왜 우리가 굳이 그 책을 읽어야 하는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지?"란 궁금증이 들 때도 있다. 저자의 답변은 단호하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수많은 사건으로 엮인다. 그럴 때마다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할까?'란 의아심이 들 때가 많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선택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고민될 때도 많다. 이때 우리가 읽었던 소설은 우리를 좀 더 현명하고 깊이 있는 통찰로 안내한다." 

소설 속에는 우리가 겪지 못했던, 또는 상상하지 못했던 수많은 상황과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소설 속 인물들은 소설이라는 세계 속에서 서로 갈등하고 화해하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살아간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 그런 수천수만 개의 다양한 세상과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작품 속 세상을 간접 경험하면서 우리의 현실에 적용하여 나의 감정을 해석하고 새로운 인생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겪는 위기, 갈등,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자신이 미처 표출하지 못한 해묵은 감정을 정화하고 인생을 전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저자가 〈프롤로그〉를 통해 밝힌 '세계 문학 필독서 50' 선정 이유는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이자, 소설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이다. 즉 고전을 읽는 것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지혜나 영감을 얻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해석해도 된다는 독자는 이해한다. 저자는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우리는 그 가운데서 우리의 롤모델을 찾기도 하고, 비슷한 인생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나와 비슷한 가치관과 인생 경험을 쌓는 등장인물을 만나면 내 인생의 참고인이 되기도 하고, 내가 바라던 삶을 살아가는 소설 속 인물을 만나면 그의 인생을 거울 삼아 새로운 꿈을 꾸기도 한다. 사람들이 명작이라고 칭송하는 위대한 작가들이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발휘해서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사건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들이다."(p.15~16)



「바둑이 품은 예도와 예술적 품격을 담다」라는 제목의 〈명인〉 40장(章)에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바둑 관전기 쓴 소설이다. 1899년 오사카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이즈의 무희』 『설국』 『산소리』 등 수많은 명작을 발표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968년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작가로서 절정의 시기에 이른 1972년 자살로 갑작스레 생을 마감했다고 저자 박균호는 쓰고 있다. 자살의 구체적 이유는 밝혀지지 않은 듯하다. 이 장에서 저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설국』으로 노벨상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가 정작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은 작품은 바둑 소설 『명인』이라고 설명한다. 이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바둑의 대가가 일생 최후의 대국에 혼신을 기울여 몰두하는 이야기이지만, 많은 일본 독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의 모습을 상징화한 것으로 여긴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1938년 도쿄 〈니치니치신문〉사가 주최하여 6월 26일부터 12월 4일까지 무려 6개월에 걸쳐 벌어진 혼인보 슈사이 명인 인퇴기, 즉 은퇴 기념 대국을 다룬 소설이다. 상대는 기타니 미노루 7단이었으며 소설 속에서는 오타케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야스나리는 이 대국을 직접 관전하고 신문에 기보와 함께 관전기를 64회에 걸쳐 연재한다. 그러나 십수 년이 지난 1951년 소설로 개고(改稿)한 『명인』을 발표했다. 저자는 이 소설은 무척 흥미롭고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바둑을 전혀 두지 못하더라도 별다른 진입 장벽이 없을 만큼 어렵지 않고 놀랍도록 정교하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또 『설국』에서 느끼기 힘든 박진감이 넘친다. 수십 년간의 바둑 인생을 한꺼번에 바쳐서 최후의 승부를 가리는 명인과 도전자 오타케 7단의 승부를 얼마나 사실적이고 정교하게 묘사했는지 바둑을 둘 줄 모르는 독자들도 마치 자신이 바둑 명승부를 벌이는 당사자인 것처럼, 혹은 그 대국 현장에 와 있는 것처럼 긴장감과 생동감을 맛본다. 저자는 "일본에는 바둑을 소재로 한 소설이 많지만 『명인』만큼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소설은 단연코 존재하지 않는다. 바둑이라는 소재로 독자들에게 이토록 강렬한 전율을 느끼게 만든 야스나리는 글쓰기의 명인이라고 칭송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 〈예브게니 오네긴〉은 푸시킨 문학의 재조명한다. 「러시아와 러시아인의 모든 것을 담다」는 부제를 가진 이 장은 푸시킨을 "러시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자 소설가"라고 소개한다. 사실 푸시킨은 현대 러시아 문학을 창시한 작가로 명성이 높다. 푸시킨은 후대 작가들이 애용하게 될 정교한 러시아어 어휘를 확장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는 장차 러시아 문학 발달의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짧은 생애 동안 서정시, 서사시, 소설, 드라마, 비평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문학 장르의 작품을 발표한 러시아의 위대한 시인이자 국민작가의 평을 듣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러시아 문학이라는 세계에서 푸시킨은 모든 러시아인의 고향과 가족이라고 불리고 있다고 한다. 

푸시킨이 1823년에서 1830년에 걸쳐 쓴 '운문 소설'이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비평가이면서 푸시킨, 도스도옙스키 같은 작가를 길러낸 것으로도 유명한 비평가 밸린스키는 이 작품을 가리켜 "러시아 생활의 백과사전"이라고 찬양했는데, 그만큼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사실적 묘사가 많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작품은 각각 40~60개의 연을 가진 총 여덟 개의 장으로 이루어졌으며 푸시킨으로서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작품이다. 또 푸시킨은 러시아 최초로 글만 써서 생계를 꾸려갈 수 있었던 최초의 작가였다고도 한다. 푸시킨의 이러한 상업적 성공은 『예브게니 오네긴』 덕분이다. 푸시킨은 이 책 초판 인세만으로 현재 가치로 2억에 상당하는 돈을 벌었다고 설명한다. 이 작품을 높게 평가한 도스토옙스키는 "『예브게니 오네긴』에서 묘사한 러시아인의 삶은 전무후무한 창의력과 완전함으로 구현되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읽는 것은 이런 위대한 작가들의 내밀한 자기 고백이자 극복의 과정이다. 큰 보상을 지불하지 않고도 이들이 남긴 이 거룩한 유산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니, 이것만큼 어마어마한 재산이 또 있을까? 게다가 그 유산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는 재미와 감동과 여운까지 있다. 고전소설은 지루하고 재미없고 어렵다는 편견만 버린다면 누구든 고전소설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 유산을 소유할 수 있다. 일종의 특권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p.481)


저자 : 박균호


교사이자 북 칼럼니스트이다.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25년째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독서평론》,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웹진》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 청소년을 위한 독서 칼럼을 연재했다. 지은 책으로는 《오래된 새 책》, 《아주 특별한 독서》,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 《수집의 즐거움》, 《독서만담》, 《사람들이 저보고 작가라네요》,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읽기》가 있다. 《고전적이지 않은 고전 읽기》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한 2019년 세종도서 교양 부문에 선정된 바 있으며,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관한 2019년 올해의 청소년 도서로도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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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미선나무에서 아카시아까지 시가 된 꽃과 나무
김승희 외 지음, 이루카 옮김 / 아티초크 / 202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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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는 꽃과 나무에 대한 시인들의 사유가 담겼다. 독자는 시와 꽃을 모두 좋아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꽃을 예찬한 시는 모든 시인이 쓰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시인은 꽃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독자들에게 '꽃의 말'을 전해준다. 어쩌면 꽃은 시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매개체일지도 모른다. 이 시집의 표제어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도 미선나무의 꽃말이라고 한다. 미선나무는 열매의 모양이 부채를 닮아 미선(美扇)나무로 불리운다는 설도 있다. 1919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후 유럽과 일본으로 건너가서 지금은 여러 나라에서 훌륭한 조경수로 귀한 대접과 사랑을 한몸에 받는 나무라고 한다. 현재 미선나무 자생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은 충북 괴산의 송덕리·추점리와 영동읍 외곽지대인 용두봉이며, 최초 발견된 진천군 초평리 자생지는 지난한 한국현대사와 함께 많이 훼손되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까움을 준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미선나무는 볕이 잘 드는 산기슭에서 자란다. 높이는 1m에 관목이고, 가지는 끝이 처지며 자줏빛이 돌고, 어린 가지는 네모진다. 잎은 마주나고 2줄로 배열하며 달걀 모양 또는 타원 모양의 달걀형이고 길이가 3∼8cm, 폭이 5∼30mm이며 끝이 뾰족하고 밑 부분이 둥글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전년에에 형성되었다가 3월에 잎보다 먼저 개나리 꽃모양의 흰색 꽃이 총상꽃차례로 수북하게 달린다. 연분홍색의 꽃이 달리는 경우도 있지만 흔치않다. 노란색의 개나리꽃은 향기가 없지만 미선나무의 꽃은 향기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미선나무의 종류는 흰색 꽃이 피는 것이 기본종이다. 분홍색 꽃이 피는 것을 분홍미선(for. lilacinum), 상아색 꽃이 피는 것을 상아미선(for. eburneum), 꽃받침이 연한 녹색인 것을 푸른미선(for. viridicalycinum), 열매 끝이 패지 않고 둥글게 피는 것을 둥근미선(var. rotundicarpum)이라고 한다.<사진 아래 참조>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꽃과 나무를 모티프로 희망과 사랑을 노래한 국내외 유수한 시인들의 명시를 엄선한 시선집이다. 김승희 시인의 「미선나무에게」를 비롯하여 서른세 명의 시인들이 각양각색으로 변주한 꽃과 나무들이 독자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이 시집의 문을 여는 「미선나무에게」를 쓴 김승희는 한국 여성문학사에서 독보적 위상을 차지하는 시인이다. “시인은 본질적으로 세상의 어두운 면에 감응하는 존재”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시는 위안부 할머니, 밀양 덕천댁 할머니와 김말해 할머니, 5·18과 4·16 엄마들 등 국가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을 기억한다. 시인은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는 사랑의 봄을 안다”고 하며 이 “봄은 이어지고 이어져 우리 앞에 봄꽃들의 행렬은 끝이 없다.” 그리고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고”, “끝이 없다”는 말에서 우리는 기억하는 행위를 간파한다.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미선나무에게」는 각별한 울림으로 다가와 우리에게 기억해야 할 것이 무언지 일깨워 준다.


이 봄에 나는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

누구에게 못한 말을 누군가에게 하는 것처럼

1인분의 사랑의 말을 누군가에게 하려는 것이다

동백에게 못한 말을 매화에게

매화에게 못한 말을 생강나무에게

생강나무에게 못한 말을 산수유에게

산수유에게 못한 말을 산벚나무에게

앵두나무,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 철쭉에게

이 봄에 나는 누군가에게 해야 할 사랑의 고백을

어딘가에게 고백해야 한다(p.15)


- 김승희 「미선나무에게」 중에서



토머스 무어의 「아몬드꽃」을 읊조리다 보면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생각난다. 평생 정신질환으로 불운한 삶이지만 예술에의 열정은 누구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강했던 화가다. 그의 그림은 당대에 팔리지 않아 가난하게 살았지만 현재 그의 그림은 수천억 원을 웃돌 정도로 높게 평가받는다. 토머스 무어(1779~1852)는 아일랜드의 시인으로 이국적 정서가 넘치는 페르시아의 설화시 〈랄라루크〉로 유명해졌다. 정치적 풍자시와 애국적인 시집을 남겼고, 〈잉글랜드의 파지가(家) 사람들〉 등 영국인에 대한 유머러스한 풍자시로도 유명하다.


불행할 때

행복한 때를 꿈꾸면 희망은 

잎 없는 가지에 피는 

은빛 아몬드처럼 싹튼다네(p.37)


- 토머스 무어 「아몬드꽃」 전문



비운의 시인 로르카는 시인에게 꽃이 없다면 아픔과 희망을 무엇에 담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시인으로 재판도 없이 사살당한 로르카는 아카시아, 달리아, 장미, 백합, 재스민, 석류나무, 인동덩굴 등 각양각색의 식물을 모티프로 삼아 죽음이 그것으로 끝이라면, 그래서 그 죽음이 기억에 남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하면서 슬픔 속에 희망이 깃들기를 염원한다. “소련의 스파이”라는 죄목이었다.(그의 친구들 몇 명이 공산주의자들이었다는 것) 로르카는 이상하리만큼 인기가 있었다. 특히 그가 『집시 이야기 민요집』을 내고 스페인 국가 문학상을 받으면서부터 인기가 대폭발하였다. 로르카의 비극적 죽음은 그의 시를 미국에서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인의 위치로 올려는 데, 그리고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젊은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막상 로르카의 좋은 시들은 시인의 설명처럼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 가득 차 있다.


향기로운 아카시아는 질투하고 

달리아는 거드름 부리고

감송은 한숨지으며 사랑을 말하고

축일의 장미는 웃음을 말하고

노란색 꽃은 미움이고

빨간색 꽃은 분노이고

흰색 꽃은 결혼을 뜻하고

자줏빛 꽃은 수의를 뜻한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아카시아꽃」 전문



“데이지꽃을 믿듯 세상을 믿는다”라는 페르난두 페소아, “죽음을 거부하는” 오월의 꽃 전령사 에밀리 디킨슨, “죽지 않는 사랑과 정열”의 빨강 카네이션을 찬미하는 엘라 윌러 윌콕스까지, 서른세 명의 시인들이 읊는 50편의 시를 담은 이 시집은 우리의 슬픔을 어루만지고 은유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뜻깊은 기회를 독자들에게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국내 처음 소개되는 여성작가 안나 마골린은 절망의 아스팔트에서 백합처럼 온화한 꽃을 피우는 자신을 상상하며 희망을 살린다. 그리고 엘라 윌러 윌콕스는 희망이 있어야 성실할 수 있고, 성실해야 헬리오트로프의 꽃말처럼 헌신할 수 있다고 노래한다. 그에게 꽃은 바라보아야 시들지 않으며, 카네이션에는 “죽지 않는 사랑과 정열”이 잠들어 있다. 이 또한 애도를 거친 기억의 흔적이다.

'장미'는 가장 화려하고 매혹적인 향으로 손꼽힌다. 이미지 때문일까, 화려함 때문일까 장미는 '꽃 중의 꽃'인가 보다. 이 시집에도 장미를 소재로한 시가 많다. 일리엄 셰익스피어의 「장미꽃에 관한 소네트 구절 모음」(p.44), 노자영의 「장미」(p.55), 로르카의 「가을의 노래」(p.73), 아틸라 요제프의 「어른거리는 장미」(p.76), 윌리엄 블레이크의 「병든 장미꽃」 등이 등장한다. 


모든 장미꽃들이 희다.

내 아픔만큼 희다,

눈이 내렸을 때만 희다.

전에는 장미꽃들이 

무지개를 입고 있었다.

영혼에도 지금

눈이 내리고 있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가을의 노래」 중에서



꽃과 나무가 필요하지 않은 때가 없지만 지금은 특히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꽃은 “인생의 서리를 지기엔 너무 약하다”고 하지만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의 시인들은 꽃을 가슴에 품고 시를 통해 위로를 주는 힘이 있는 매개체로 승화시킨다. 그래서 슬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더욱 그런 시가 간절한지도 모르겠다. 이 시집을 읽다 시대 정신을 가다듬기에 더 없이 좋은 시 한 편이 이 시집에 들어 있다. 독자는 개인적으로 이 시인을 가장 좋아한다. 일제 강점기 한국시사에 영원히 기억될 만큼 절개를 보인 시인다. 윤동주만큼이나 좋다. 


항상 앓은 나의 숨결이 오늘은

해월(海月)처럼 게을러 은빛 물결에 뜨나니

파초 너의 푸른 옷길을 들어

이닷 타는 입술을 축여 주렴

그 옛적 사라센의 마지막 날엔

기약 없이 흩어진 두 날 넋이었어라

젊은 여인들의 잡아 못논 소매 끝엔 

고운 손금조차 아직 꿈을 짜는데

먼 성좌와 새로운 꽃들을 볼 때마다

잊었던 계절을 몇 번 눈 위에 그렸느뇨(p.53)


- 이육사 「파초」 중에서



저자 : 김승희(金勝熙)

1952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 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됐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국제작가프로그램 (IWP),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포스카리 대학교의 체류 작가를 지냈다.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어바인 캠퍼스 등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쳤고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시집 『태양 미사』, 『왼손을 위한 협주곡』, 『미완성을 위한 연가』, 『달걀 속의 생』,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냄비는 둥둥』, 『희망이 외롭다』, 『도미는 도마 위에서』 등이 있고, 소설집 『산타페로 가는 사람』과, 산문집 『33세의 팡세』, 『어쩌면 찬란한 우울의 팡세』 등을 썼다. 연구서로 『이상 시 연구』, 『현대시 텍스트 읽기』, 『코라 기호학과 한국시』, 『애도와 우울(증)의 현대시』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올해의 예술상, 한국서정시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명예교수이다.


저자 : 이육사(李陸史, 이원록, 이활)

본명은 ‘원록’으로 1904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하여 조부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1925년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한 뒤 1926년 베이징으로 가서 베이징사관학교를 졸업하였다. 1927년 귀국했으나 독립운동으로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 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1930년에 첫 시 「말」을 조선일보에 발표하며 시단에 데뷔하였으며, 1937년 김광균 등과 함께 동인지 「자오선」을 발간, 그 무렵 유명한 「청포도」, 「교목」, 「절정」, 「광야」 등을 발표했다. 1943년 6월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이듬해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하였다.


저자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

1898년 그라나다 지방 푸엔테 바케로스에서 대지주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무 살이 되던 1918년 로르카는 그라나다를 떠나 마드리드로 간다. 그는 그 후 10년 동안 마드리드 국립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된다. 같은 해에 첫 작품이자 시적 산문집인 『풍경과 인상들(Paisajes y Impresiones)』을 출간한다. 1920년에 희곡 〈나비의 저주〉를 무대에 올렸으나 청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1921년에는 『시집(Libro de poemas)』을 출간함으로써 공식적인 시인이 되었다. 1927년에는 역사극 〈마리아나 피네다(Mariana Pineda)〉를 무대에 올려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로르카를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로르카로 인식시킨 작품은 시집 『집시 로만세(Romancero Gitano)』(1928)였다. 1929∼1931년 시기에 그는 뉴욕에서 몇 달을 보내며 현대 도시의 날카로움을 경험했다. 유럽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신세계의 도시 분위기는 로르카의 내면에 초현실주의에 대한 강한 욕구를 불어넣었다. 시집 『뉴욕의 시인(Poeta en Nueva York)』과 〈관객〉은 거의 같은 시기에 뉴욕과 쿠바에서 초현실주의라는 악령에 사로잡혀 써내려 간 것이다.

1936년 7월 17일 스페인은 시민전쟁에 돌입했다. 로르카는 시인이자 고향 친구인 루이스 로살레스의 집에 피신했다가 그라나다 국민전선 사령관에게 체포되었다. 1936년 8월 20일 새벽, 청색 하늘 아래 로르카는 임시감옥에서 끌려 나와 비스나르와 알파카르 사이에 있는 벼랑에서 재판도 없이 처형당했다.


역자 : 이루카

서울에서 태어나 브루클린과 마드리드에서 성장했다. 비교문학을 공부했으며, 여성과 소수자 문학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밤은 엄마처럼 노래한다』는 옮긴이의 첫 번역서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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