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 아일랜드
김유진 지음 / 한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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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이 책 『센트 아일랜드』는 청소년 소설이다. 독자가 이 책을 선택할 땐 우리 청소년을 위한 소설의 발전을 직접 체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 책은 자연스럽게 독자의 청소년 시절을 되새기게 한다. 독자의 청소년기는 우리 사회가 산업화해 가는 과정이었다. 책은 모두 대학입시에 맞춰져 있었다. 선생님들도 입시 대비해 가르쳤다. 즉, 시험에 나올 것과 나오지 않는 부분을 잘 가름했다. 그래서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교사로서도 능력이 인정된다. 그때 국어 교과서 외의 책은 별도로 읽기를 권장하지 않았다. 서양 고전이나 동양의 고전에 해당되는 몇몇 권만 독서를 권장할 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 문학이 발전할 토양이 제대로 갖추어질 수 없었다. 작가도 학교도 소설은 시간 보내기였을 뿐 오히려 소설 읽을 시간에 입시 공부해라고 다그칠 정도였다. 

청소년기는 정서적으로 방황할 때다. 뿐만 아니라 이성에 관한 관심이 높아질 때다. 연애 소설이나 멜로 소설을 읽고 싶은 호기심은 충만하다. 그러나 선생이나 가정에서도 연애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대학을 포기한 사람이나 하는 일이었다. 대학 입시를 위한 귀중한 시간의 낭비였다. 그래도 문학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대부분 외국 고전으로 소개된 비교적 순수한 사랑이야기를 읽어야 했다.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런 것은 대학에 가서 정해도 될 일이었다. 소설가들도 청소년을 위한 책은 별로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독자의 청소년 시절에는 시대 상황이 그랬다. 그리고 독자는 연애 소설 한 권 못 읽고, 장래 희망을 결정할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지금껏 훨씬 어려운 책을 읽고 있다. 심리학, 정신의학 등 꼭 읽어야 할 많은 책들은 나중에 관심이 생겨야 읽게 됐다. 이것은 결국 자신의 직엄과 관련되지 않은 책은 거의 읽지 못한다는 의미와도 동일하다. 

이 책을 보면서 독자의 느낌은 무척 행복했다. 청소년들의 꿈과 희망을 펼칠 많은 것을 소설에서 녹여내고 있다. 그리고 이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도 내포하고 있다. 청소년기에 무엇을 읽느냐에 따라 꿈도 바뀌고, 세상살이에도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독자 세대는 그것이 생략돼 있다.



이 책은 열아홉 살 다린이 열 살 때부터 꿈꾸었던 '센트 아일랜드'에 입사해 향기 전문가가 되려는 과정과 노력이 잘 표현돼 있다. '센트 아일랜드'는 전 세계 향기 산업의 핵심 집합체이자 복합 연구 단지이다. 이곳은 매년 한 차례, 후각이 뛰어난 19세의 ‘인턴 연구원’을 선발한다. 뛰어난 후각은 필수다. 다린은 센트 아일랜드 인턴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 향기 공부에 매진했다. 드디어 시험을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치른 1차 필기시험에서 합격하면서 2차 시험을 치르기 위해 산업단지로 들어간다. 네 차례에 걸친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그토록 기대하던 센트 아일랜드에선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곳에서 응시자로서 함께 숙식을 하며 테스트를 받는 친구이자 경쟁자들과 만나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사건과 사고가 묘사된다. 저자 김유진은 소설의 묘미를 돋우기 위해 이 연구단지와 엄마의 과거를 엮어 이야기를 끌어간다. 다린은 이 시간을 무사히 견뎌 내고 기다리던 ‘합격’하고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최근 우리에게 닥친 코로나 감염병처럼 이 소설 속에서도 감염병 바이러스 시대가 묘사된다. '향기'는 이 바이러스 시대를 이겨내는 치료제를 개발한 센트 아일랜드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이때 감염병으로 후각을 잃은 사람들이 많아지며 센트 그룹은 향보리 추출물을 통한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사람들의 후각은 전보다 더 예민해졌다. 초기에 치료제만 만들던 센트 그룹은 향과 관련된 다양한 것을 연구·제조하는 대단위 산업단지화 할 정도로 커졌다. '센트 월드'를 만들어 단순히 향을 맡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향을 체험하게 하자, 사람들은 센트 그룹을 더 열광하게 된다. 이 가운데 최고의 인기인 센트 아일랜드는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섬이다, 섬 가운데 보라색 퍼플산이 자리하고 있다. 센트 아일랜드는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센트 그룹이 만든 첨단 시설이 어우러져 더욱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연보랏빛 모래사장, 절경에 조성된 용암 온천, 분화구 옆에 설치된 거대한 케이블카, 센트 아일랜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출입은 불가하지만 멀리서 보이는 대규모 향 연구 단지까지···. 그야말로 향기 치료제를 위한 대단위 산업단지다. 사람들은 센트 아일랜드는 죽기 전 꼭 한번 방문해야 할 관광지로 손꼽기도 한다. 다린은 가장 먼저 엄마에게 1차 합격 소식을 전하지만, 뜻밖에도 엄마의 강한 반대를 마주한다. 엄마와 한바탕 설전을 벌이고, 결국 응원조차 받지 못한 채 찝찝한 마음으로 2차 시험을 위해 시험장으로 떠난다. 7,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지원자들은 센트 아일랜드로 가는 크루즈선에서 네 차례의 테스트를 치른다. 모두가 상위 1% 뛰어난 후각을 가진 친구들이다. 

이 테스트에서도 경쟁자들의 등수는 나눠진다. 테스트마다 1등과 꼴등이 발표되고, 꼴찌는 그 즉시 짐을 싸서 돌아가야 한다. 가혹하다시피 엄격한 경쟁이다. 예상치 못한 방식에 응시자들의 긴장감은 고조되고 급기야 부정을 저지르는 일까지 발생한다. 와중에 다린은 센트 연구소에서 우연히 엄마의 흔적을 발견한다. 엄마가 왜 이곳에? 엄마의 에 조금씩 다가가는 다린. 과연 다린은 엄마가 반대했던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사실 다린은 이미 센트 월드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다린이 열 살 생일 기념이었다. 다린은 센트 월드에서 후각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센트 그룹에 입사하는 꿈 하나만을 위해 달려왔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향을 분석하고 공부하며 전력을 다해 꿈을 좇았다. 

그렇게 센트 아일랜드 인턴 2차 시험장까지 왔다. 센트 아일랜드에 도착하기 전, 모두가 모인 연회장에서 갑자기 연기가 나오면서 향기를 맞추는 사전 테스트가 진행된다. 사전 테스트는 룸메이트 별 팀전. 연기의 향을 맞춰, 금고를 열고 그 안에 있는 옷과 배지를 착용해야만 센트 아일랜드에 입성할 수 있다. 팀원 중 단 한 명이라도 제한시간 내 도착하지 못하면 다시 육지로 돌아가야 한다. 크루즈선은 마치 향기를 위한 배처럼 향에 관한 배답게 호화롭기도 하고, 향기를 내는 거의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음료를 마실 때도 자신이 원하는 향을 추가해 마시도록 돼 있고, 시험을 위한 것이니만큼 응시자들은 향에 관한 기억을 담아야 한다.



이곳에 와 알게 된 로라와 다린은 같은 팀에 배치된다. 팀원들이 힘을 합쳐 미션에 응해, 통과해야 한다. 또 다른 팀 메이트 지나는 몸이 굼뜬 편이라 느렸지만, 팀을 도와 공동으로 미션에 통과한다. 그렇게 도착한 센트 아일랜드. 교육생들은 센트 아일랜드를 돌아보며 각각 자신이 원하는 연구소들을 방문한다. 뚜껑이 달린 하나의 큰 물병처럼 생긴 센트 오리지널, 공간의 향을 연구하는 센트 스페이스, 색조 화장을 한 듯 팔색조 매력을 선보이는 하나의 아이섀도우 팔레트처럼 생긴 센트 뷰티 등 연구소들은 각각의 특성에 맞추어 독특한 형태의 외관을 자랑하고 있다. 일랑은 센트 뷰티, 지나는 센트 푸드, 다린과 로라는 센트 스페이스로 향한다.

저자 김유진은 등장인물과 배경이 생동감 있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앞선 문장처럼 머릿속으로 그리고 따라가다 보면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시각적인 즐거움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다. 또 강한 성격의 캐릭터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향기가 느껴지는 듯한 후각적인 상상력을 채워준다. 숙소로 돌아온 이들은 각자 탐방한 연구소를 얘기하며 다사다난했던 센트 아일랜드에서의 첫날을 마무리한다. 센트 아일랜드에서의 둘째 날, 두 번의 테스트에 성공하며 우쭐해하던 다린은 시궁창 냄새를 없애야 하는 개별 테스트에서 냄새를 덮는 데만 급급해 결국 순위권에서 밀려난다. 다린은 인생 첫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그동안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몇 차례의 테스트를 거치며 다린을 포함한 로라, 지나, 일랑. 룸메이트 4인방은 때로는 경쟁자이자 때로는 조력자로 함께 웃고, 울며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낸다.

크루즈선에서 실시되는 테스트는 묘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안녕하세요, 4박 5일간 여러분의 인솔자 고도명입니다." 무대에 오른 듯이 원형 버스의 중앙에 선 인솔자가 허리를 숙여 공손히 인사한다. 그의 목에 걸린 배지가 허공에서 대롱대롱 흔들린다. 다른 센트 그룹 직원들이 그렇듯이 그도 보라색 재킷을 입고 있다. 그는 세 가지 수칙을 일러 주고 간단한 인삿말을 대신한다. ① 촬영 금지 ② 외부 연락 금지 ③ 시험장 녹화 촬영 등 이미 안내문에 고지된 내용이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어딘지 수상쩍은 점이 엿보인다.



2차 테스트에 임하는 응시생들이 치러야 하는 일은 경쟁적이라기보다 생존경쟁 같은 처절함이 묻어난다. 요즘 대기업 입사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처절함마저 느껴진다. 얼마 전 유행했던 '오징어 게임' 같은 살아 남기 게임 같다. 

어릴 적부터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꿈의 씨앗을 겨우 찾는다 해도 누군가는 그것을 심는 데에 그치지만, 다린은 씨앗의 소중함을 알아보고 끊임없이 물과 양분을 주며 가꾸고 돌본다. 상상도 못한 테스트를 마주하면서도 향에 관한 일이라면 진심으로 맞부딪히는 다린에게서는 소설 속 말처럼 ‘꿈 냄새’가 난다.

"꿈이 있는 자들에게는 꿈 냄새가 나. 꿈이 있는 한 네 몸에 밴 꿈 냄새는 절대 지워지지 않아." 아빠가 다린에게 해준 말이자 힘든 순간마다 다린이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이다. 이 말은, 하고 싶은 일을 좇으며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애쓰는 우리 모두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깊이 각인해야 할 말이기도 하다. 

『센트 아일랜드』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목표가 뚜렷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일랑은 선천적으로 뛰어난 후각을 타고나서 1차 시험에 통과했지만 아직 확고한 꿈은 없다. 하지만 센트 아일랜드에서 다린과 다른 친구들을 만나 자신의 꿈을 찾아 나간다. 로라는 아빠 때문에 목표를 갖게 되었지만, 친구들을 만나며 선의의 경쟁이라는 재미를 느낀다. 서로 열정과 꿈을 나눠 가지며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은 눈부시다. “꿈이 있는 자들에게는 꿈 냄새가 나.”라는 소설 속 대사처럼 이 책은 독자들에게, 다린과 아이들처럼 자신의 꿈을 돌아보고 주변 친구(혹은 동료)와 ‘꿈 냄새’를 함께 나누는 계기가 되어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마침내 합격자 발표 시간이 되었다. 어쩌면 이날을 위해 10여년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 있는 자들에게는 꿈 냄새가 나. 꿈이 있는 한 내 몸에 밴 꿈 냄새는 절대 지워지지 않아."(p.288)


저자 : 김유진


““꿈 깨.” 처음 글을 쓴다고 했을 때 들었던 얘기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주인공 ‘다린’에게 꿈을 주입했습니다. 무작정 저에게 꿈을 불어넣었으면 팡! 하고 터졌겠지만, 다린에게 꿈을 불어넣자 『센트 아일랜드』가 탄생했습니다. 그즈음 7년간의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글쓰기에 매진했습니다. 현재 한 평 남짓한 서재에서 글로, 온 세계를 그려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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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자들
고은지 지음, 장한라 옮김 / 엘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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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와 민족에게 20세기는 그야말로 '코리안 디아스포라'라고 할 만하다. 우리는 나라를 빼앗기고 36년의 일제 식민지 생활을 했고, 간신히 식민지를 벗어나자마자 남과 북으로 갈려져 동족상잔의 뼈아프고 참혹한 전쟁을 3년이 넘도록 치렀다. 6.25 한국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휴전한 채 다시 70여년이 흐르고 있다. 우리에게 20세기는 온전히 암흑의 시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남한 쪽만으로도 세계적 경제 대국과 민주화를 이뤘다는 것은 '기적'이라 불릴 만하다. 경제 대국과 민주화는 겉으로 드러난 성과이지만 이 같은 성과를 내기까지 또 수많은 노동자와 민주 투사의 희생이 있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21세기도 4반세기가 지나는 시점에서 디아스포라 현장을 되돌아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잊지 않아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역사의 준엄한 경고 앞에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이 설 자리를 찾고 있다.

요즘 '디아스포라 문학'이 SF 붐을 타고 많이 활성화되고 있다. 여기서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단어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너머'를 뜻하는 '디아(dia)'와 '씨를 뿌리다'를 뜻하는 스페로(spero)가 합성된 단어로, 이산(離散) 또는 파종(播種)을 의미한다고 한다. 본래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후에 그 의미가 확장되어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 또는 그들의 거주지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이 책 『해방자들』은 이런 관점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말에 걸쳐 100년 동안 한국인은 식민지배의 수탈과 압제, 남북간 이념 전쟁과 국토의 분단, 이후 들어선 군부독재에 철저히 짓밟히고 노예 같은 삶을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에서 살지 못하고 외국으로의 이주를 택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 교포, 동포로 지칭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이주해 간 곳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았을까? 결코 아니다. 어디에 붙어 있지도 모르는 나라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에게 곱게 시선을 줄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역으로 고국을 떠난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으로 새겨져 있을까?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의 개막을 알렸던 이민진의 『파친코』는 4대에 걸친 재일조선인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파친코』는 재미교포 1.5세대인 이민진 작가가 30년에 달하는 세월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로, 2017년 출간되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후 전 세계 33개국에 번역 수출되었으며, 뉴욕타임스, BBC, 아마존 등 75개 이상의 주요 매체의 ‘올해의 책’,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선정되며 평단과 대중을 모두 사로잡았다. 한국의 이야기에 세계를 눈물 짓게 만든 화제작이자 21세기의 새로운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한 『파친코』의 감동이 아직도 대한민국 독자들에게는 강렬하게 남아 있다. 

이 소설 『파친코』의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에서 시작해 버블경제 절정에 이르렀던 1989년 일본까지, 한국과 일본을 무대로 거의 100년에 걸쳐 펼쳐진다. 어머니 양진과 함께 허름한 하숙집을 꾸리며 살아가는 열여섯 선자는 일본을 오가며 일하는 생선 중개상인 한수를 만나 처음으로 조선 밖의 더 넓은 세상을 상상하기 시작하지만, 그의 아이를 가진 뒤에야 그가 오사카에 아내와 아이를 둔 남자임을 깨닫고 상심한다. 한편 선자네 하숙집 손님으로 온 목사 이삭은 선자를 자신의 운명으로 여겨 청혼을 하고, 선자는 이삭과 결혼해 오사카로 건너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조선인이자 여성으로서 차별과 멸시를 견디며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때까지 일해" 자신과 가족을 지켜내야만 하는 선자의 삶은 지난하고도 고되었다. 선자를 둘러싼 파란만장한 가족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방, 한국전쟁, 분단 등 한국 근현대사와 겹쳐지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이니치(재일동포를 일컫는 말)’의 삶이 눈에 들어오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책을 쓴 이민진 작가는 일곱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계 미국인 작가다. 한국말이 서투르니 영어로 소설을 썼고, 그 소설을 우리말로 번역해 출간되었다. 

이민진의 『파친코』를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파친코〉도 제작됐다. 이 드라마의 주요 배우들과 작가를 비롯하여 작품의 감독인 코고나다와 저스틴 전과 각본 수 휴 모두 부모님이 한국 사람인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한국어·일본어·영어 3개 언어로 완성했다. 이 드라마는 2022년 3월 25일 〈애플 TV+〉를 통해 방영됨으로써 전 세계에 한국의 디아스포라를 보다 널리 알린 계기가 되기도 했다.



『파친코』를 통해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의 자장 안에서 눈에 띄는 작가인 고은지의 첫 소설인 『해방자들』에도 교포들의 시선이 담겨 있다. 더욱이 저자 고은지는 드라마 〈파친코〉의 작가진 중 한 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해방자들』의 이전에 저자 고은지는 이미 다양한 수상 이력으로 이름을 알린 작가다. 2017년 시집 『시시한 사랑』으로 플레이아데스 프레스 편집자상, 2020년 자전적 에세이 『마법 같은 언어』로 워싱턴주 도서상, 퍼시픽 노스웨스트 도서상, AAAS 도서상을 수상했으며 펜오픈북상 후보에 올랐다. 또한 이원 시인의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를 영어로 번역해 한국문학번역원 번역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23년에 출간된 『해방자들』은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아픔과 희망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2024년 뉴욕 공공 도서관 주관 ‘젊은사자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한 가족의 역사를 통해 수십 년간 계속된 점령, 전쟁, 분열의 상처를 여실히 그려냈다. 나아가 역사와 사회가 개인에게 남기는 상처를 사랑으로 치유하는 희망적인 미래를 그려낸다.

저자 고은지가 지금까지 출간한 책은 모두 네 권이다. 시집, 자서전, 번역서, 그리고 이번에 출간한 소설이다. 네 권이 모두 다른 분야인 것도 놀랍지만, 네 권 모두 다양한 수상 이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더하면 더 놀랍다. 그가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라고 한다. 당시 그는 힙합 댄서의 꿈을 꾸고 있었다.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 따르면 수학 성적을 채울 수 없어 듣게 된 시 입문 수업을 계기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수업을 듣게 된 첫 주에 고은지는 마흔 편의 시를 썼다. 시를 쓰면서 고은지는 자신의 언어를 발견했다. “그 당시 나는 무척 우울했지만 나에게는 내가 무엇을 느끼고 무슨 일을 겪었는지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다. 시를 쓰기 전까지는 내가 지내는 방식에 불안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 언어를 손에 넣으면서, 자기 안에 있는 결여와 고통을 마주 보게 된 것이다. “이게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이구나-그렇게 생각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글쓰기는 제 인생을 바칠 수 있는 일이었어요.”



저자 고은지의 이력에는 다른 교포들과는 또 다른 개인 가족의 상황도 가해져 더 힘든 나날을 보냈다. 저자가 열네 살이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에게 한국에서 일자리 제안이 왔다. 정서적 안정보다 금전적인 지원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그의 어머니는 남편과 한국으로 이주해 9년 동안 아이들과 떨어져 지냈다. 애정과 소속감에 굶주렸던 저자는 오래도록 눌러 담은 원망과 분노를 시에 담기 시작했다. 시집 『시시한 사랑』은 바로 그런 고독과 공허의 결과물이다. 저자에게 교수는 번역을 시작해보라고 조언했다. 그의 시에 너그러움이 부족하다면서, ‘용서’를 시 안에 녹여 넣는 방법을 찾으라고 한 것이다. 저자가 선택한 용서의 시작점은 어머니가 남긴 편지들이었다. 한국에서 지내면서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지만, 고은지가 49통의 손 편지가 들어 있는 상자를 열어본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는 것.

저자에 따르면 편지 번역은 자전적 에세이 『마법 같은 언어』로 이어졌다. 편지를 번역하면서 고은지는 마침내 어머니를 용서했다. 그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선택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 편지에는 어머니의 사랑과 함께, 한국 현대사에 얽힌 가족사가 담겨 있었다. 관동대지진 이후 이어진 한국인 학살, 제주도 4·3, 한국전쟁과 분단, 남한의 군부독재까지. 처음으로 한국의 역사가 어머니와 어머니의 가족에게 어떤 상처를 남겼고 가족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알게 된 것이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남긴 외로움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이윽고 어머니의 고국이자 자신의 뿌리인 한국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한국의 역사와 역사가 남긴 고통을 되짚는 길을 걷기로 했다. 그 고민과 노력은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과거, 현재,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닿았고, 고은지는 이민진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파친코〉에 작가진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특정 에피소드에서는 메인 작가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 책 『해방자들』은 저자 고은지의 작품 세계가 온전히 구현됐다는 평가다. 『해방자들』의 이야기는 1980년 대전에서 시작한다. 군부독재와 계엄령의 시대, 혼자 딸 인숙을 키우던 요한은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를 받고 교도소로 끌려가 죽음을 당한다. 인숙은 성호와 결혼한다. 성호는 임신한 인숙을 어머니와 함께 남겨두고 미국으로 떠나고, 인숙은 시어머니 후란의 시집살이를 견디며 생계를 이어간다. 아들 헨리가 태어난 후 인숙은 성호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한다. 조국과 멀어진 땅에서 후란은 아들과 며느리 사이를 질투하고, 성호는 고부갈등을 외면하고 일터로 도망친다. 외로운 인숙을 위로하고 헨리를 돌보는 사람은 인숙이 일터에서 만난 사업가 로버트다. 그런 집에서 자란 헨리는 한곳에 머물지 않는 사람이 된다.



가족의 삶 사이사이 떠오르는 과거는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다. 군부독재 정권은 요한의 목숨을 빼앗고 성호가 허무를 품게 만들었다. 로버트의 어머니 고일을 망가뜨린 건 일본의 지배와 제주도 4·3이다. 전쟁과 함께 반으로 갈린 한국은 로버트를 영원히 신념에 붙들어두었다. 북한에서 건너온 제니는 통일이라는 희망이 과거를 지우는 망상이라며 분노한다. 서울올림픽의 봉화는 어린 헨리에게 영원히 못 박힌 기억으로 남았고, 삼풍백화점 소식은 후란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세월호 뉴스를 보던 어린 하루는 어째서 아무도 승객들을 구해주지 않는지 묻는다.

개인의 삶과 나라의 역사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해방자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미국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진행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을 얽매고 있는 가장 큰 고통은 자신의 조국이다. 이민자들의 역사에서 미국은 조국의 잔혹한 전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로 표상되지 않는다. 국가가 겪은 수십 년간의 점령, 전쟁, 분열은 개인의 삶에도 흉터를 남긴다. 그러므로 『해방자들』은 그저 한 재외국민 가족의 이야기가 아닌, 조국의 역사에 얽매인 우리 자신의 서사 자체다.

『해방자들』에서 눈에 띄는 점은 많은 파괴와 상처가 한국인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민자 문학에서 주로 보이는 ‘이방인 의식’은 주로 인종차별과 소수 집단의 무력감, 떠나온 모국과 거주하는 타국의 경계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자의식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고은지의 작품에서 주축을 이루는 것은 다름 아닌 ‘재외동포의 한(恨)’이다. 그렇기에 『해방자들』은 경계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한국을 떠나서도 한국의 역사가 남긴 상처로 일그러졌고 서로를 향해 경계를 세웠다. 마치 한 나라를 반으로 가른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선’처럼. ‘자연스러운 경계가 아닌’ 국경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는 사회’를 갈라놓았으며, 사람 사이에 세워진 경계는 서로를 끝없이 외부인으로 만든다. 그러나 신념이나 세대를 이유로 서로를 괴롭히고 죽이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화해와 화합을 향해 나아간다. 세대 차이에 힘겨워했던 후란과 인숙은 서로를 인정하며 받아들이고, 성호와 인숙의 불화는 후란의 죽음과 함께 치유된다. 신념의 차이가 있긴 해도 헨리와 제니는 같은 음식을 먹으며 하나로 묶인다. 그렇게 역사적 사건들에 몰려 삶의 터전을 옮겨간 가족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다치고 상처받았다 해도 서로를 감싸고 위로하는 한 우리는 언제든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믿음, 이 묵직한 메시지와 함께 『해방자들』은 독자들에게 치유와 화해에 대한 소설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답을 찾아보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물속에서 아이들은 어디로 갈 수 있었을까? 성호가 말했다. “가라앉는 배에 타고 있을 때는 아무도 믿으면 안 돼. 다른 사람 말은 절대 듣지 마.” 

배의 한쪽부터 시작해 객실이 차례대로 가라앉는 모습은 나라가 가라앉는 모습 같았다. 구조를 하러 간 잠수부가 증언했다. “이제 어떤 재난이 닥쳐와도 국민의 도움을 구하지 말고 정부가 알아서 하십시오.” 헨리가 돌아왔고, 딱딱하게 굳은 채 위층 방으로 걸어 올라갔다. 나는 어느 자리에 있든, 설령 고통받고 죽는 상황에서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많은 것들에 관해 제니에게 이야기했다. 제니는 한숨을 쉬었다. 고개를 젖히고 내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희망을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거나 실망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p.264)


저자 : 고은지(E. J. Koh)


198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태어났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문예창작과 번역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워싱턴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7년 시집 『시시한 사랑』을 출간해 플레이아데스 프레스 편집자상 시 부문을 수상했고, 2020년 어머니와의 관계를 다룬 자전적 에세이 『마법 같은 언어』로 워싱턴주 도서상, 퍼시픽 노스웨스트 도서상, AAAS 도서상을 수상했으며 펜오픈북상 후보에 올랐다. 이원 시인의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를 영어로 번역했으며, 이 작업으로 한국문학번역원 번역대상을 수상했다. 드라마 [파친코]에 작가진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2024년 젊은사자상 소설 부문을 수상한 『해방자들』은 고은지가 쓴 첫 소설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아픔과 희망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한 작품이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된 한 가족의 역사를 담은 이 작품은 한반도에서 수십 년간 계속된 점령, 전쟁, 분열의상처를 신중하고 고운 언어로 되짚는다. 나아가 작가는 과거가 남긴 고통을 사랑으로 치유하는 희망의 미래를 그려낸다.


역자 : 장한라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불어불문학을 전공했으며, 같은 대학 인류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국제 행사 통역과 사회과학 분야 논문 번역을 맡으며, 다양한 장르의 책을 번역하고 글을 쓰고 있다. 역서로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 『세계의 교사』 『말의 무게』 등이 있으며, 저서로 『열두 달 초록의 말들』 『너와 나의 야자시간』(공저) 『게을러도 괜찮아』(공저)가 있다. 구입한 물건을 오래 쓰고, 되도록 음식은 남기지 않고 다 먹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환경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다. 글을 쓰거나 옮기며 여행 생활자로 지내고 있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경험의 기록을 『열두 달 초록의 말들』로 한데 모았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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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녕가
이영희 지음 / 델피노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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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화녕가(歌)』는 일제 강점기에 가수를 꿈꾸던 한 여인의 기구한 일생과 시대의 아픔을 녹여낸 소설 작품이다. '인예'는 진주의 한 양반집 딸이다. 부모가 모두 죽었지만 할아버지 '순행'은 하인들을 거느린 진주에서 꽤 행세를 하는 양반이다. 소설이 시작하는 시점은 인예가 10살이었다. 오빠 인서는 11살이고 당시 진주 최초의 소학교인 사립 봉양학교 학생이다. 봉양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 인서는 저자(시장)에서 광대 패거리를 맞닥뜨렸다. 연지곤지 칠한 사내가 여인보다 고운 목소리로 가락을 뽑아냈다. 이때 광대 패거리들이 부르던 노래가, 이애리수가 불렀다고 알려진 〈황성의 적〉이다. 우리에게는 〈황성 옛터〉로 알려졌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의 서른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당시 시대는 광대들도 전통 창가와 마당놀이가 아닌 신 유행가와 신파극을 선보이던 시절이라고 저자는 소설 지문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양반집답게 이런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근처만 지나가도 치도곤을 내리겠다는 할아버비 순행의 엄포가 인서의 머리를 스쳤지만 선명히 울리는 가락에 밀려나고 만다. 같이 오던 아범(아마 집 하인인 행랑아범을 지칭한 듯)이 어쩌려고 이러시냐고 어서 가지자 몇 번이나 재촉했지만 인서의 발걸음은 흘려 버렸다. 집에 돌아오자 아범은 순행의 명령에 따라 멍석말이 태형을 당한다. 이 사달은 모두 인서의 탓이지만 아래 하인이 주인 도련님 대신 매를 맞는 것이다. 말리고 제대로 모셔와야지 그것을 듣고 있었다는 죄목 때문이다.



서씨 부인(할아버지 순행의 재취)은 순행보다 30살이나 어리지만, 인서의 부모가 없는 상태에서 새미골 남초시 집안의 모든 실권을 틀어쥐고 있다. 서씨 부인이 순행의 지시에 따라 멍석말이 당하는 장면을 똑바로 지켜보고 가슴에 새기라고 한 점을 다시 한 번 인서에게 재확인하듯 인서의 고개를 돌려놓았다. "멍석말이 태형을 20대에서 하나도 감하지 말고 손끝에는 절대 정을 두지 말 것이며 무엇보다 우리 손주께서는 눈에 박히고 귀에 새기듯 똑바로 지켜보시라 했지요. 허니, 순주님! 외면치 말고 똑바로 하세요."

서씨 부인은 어쩔 줄 몰라 하는 인서를 세워 둔 채 인예의 손을 잡고 안채로 들어간다. 인예를 안듯이 데려 가며 서씨 부인은 태형을 치는 하인 병구에게 다시 한 번 다짐하듯 명령한다. "행여 아범이 똑바로 걸음걸이를 하는 것을 보게 되면 니 놈의 다리가 부러질 줄 알거라." 안 그래도 불에 타서 한쪽이 일그러진 아범의 얼굴이 매질 끝에 한층 더 일그러졌다.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아범의 아낙 무명댁은 입술을 질근 씹었다. 역시나 한 쪽이 불에 탄 얼굴이었다. 손에 잡혀 끌려들어가던 인예가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하지만 인서는 황소처럼 콧김만 토해냈다. 절대 울지 않을 것이야! 난 절대 울지 않아! 민들레 풀씨처럼 어린 주먹을 꽉 틀어진다. 

이 시점에서 갑자기 화녕이 등장한다. 독자들이 약간 혼란스러울 수 있다. 소설의 설명을 들어가며 부연 설명을 독자가 덧대어 본다. "화녕의 꿈은 신파극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10년 전 극작가 김우진과 동반하여 현해탄에 뛰어들었다는 윤심덕이 화녕의 롤 모델이었다. 목숨은 하늘에 속했는데 스스로 제 목숨을 끊은 것은 칭찬할 일이 못 된다. 하지만 일본 유학 후 대한제국 최초의 여가수로 불리며 〈사의 찬미〉 레코드판까지 남긴 것은 극진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죽음 이후에 몰고 다니는 온갖 낭설도 11살 소녀의 마음에는 그저 낭만이었다.

게다가 경성의 단성사에서 태양극장 창립공연으로 관람했던 무용가극 〈사랑과 죽음〉은 지금도 다 외우고 있다. 작년에 극단이 해체되고 말았다니 퍽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이와 달리 채단은 곡조에는 무심히, 좁고 세로로 긴 창문을 단속하기에 바빴다. 사랑채로 사용하는 별채에서 건너오는 소리를 차단하기 위함이었다.(p.12)



앞서 잠깐 언급된 〈황성 옛터〉는 고려의 옛 궁터 만월대의 달 밝은 밤, 역사의 무상함을 느껴 즉흥적으로 만든 가락이라고 한다. 느린 3박자의 리듬에 요나누끼단음계(혹은 미야코부시 음계)로 만들어진 가요곡으로 이다. 이 애수적인 멜로디가 전수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신파극단 취성좌(聚星座)의 서울 단성사(團成社) 공연 때 여배우 이애리수가 막간무대에 등장해 이 노래를 부르자, 객석에서는 '재창'을 외치며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전하고 있다. 이 노래는 삽시간에 장안의 화제가 되었으며, 이애리수가 노래할 때마다 관중들도 따라 불렀다. 신경과민이던 일본경찰은 중지하라는 경고를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앞서 적힌 가사 뒤를 이어,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로 1절을 이루고 있다. 

화녕이 등장함으로써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이 선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점은 남아 있다. 화녕의 롤 모델이라고 설명된 윤심덕은 "10년 전 김우진과 현해탄에서 몸을 던진 윤심덕"이라는 표현으로 인서의 진주에서의 일은 1936년쯤으로 추정된다. 윤심덕의 사건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윤심덕에 대해서는 우리 가요계에 이미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윤심덕은 평양 출생으로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했으며, 강원도 원주에서 1년여 동안 소학교 교원을 한 뒤 관비유학생으로 일본 도쿄음악학교(현 도쿄예술대학교) 성악과에서 수업받았다. 1921년 동우회(同友會) 등의 순회극단에 참여하면서 극작가 김우진과 친교를 맺기도 하였다. 1922년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조교생활 1년을 마친 뒤, 1923년 6월 귀국하자마자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 독창회를 가짐으로써 성악가로 데뷔했다.

이때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모든 음악회 프로에는 항상 윤심덕을 넣을 만큼 일약 스타가 되었다. 양악이 수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제대로 성악을 공부한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의 풍부한 성량과 당당한 용모 또한 대중을 휘어잡았다. 그러나 정통음악을 가지고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강사생활과 함께 경성방송국에 출연해 세미클래식으로 방향을 선회하기도 했다. 한때 극단 토월회 주역배우로 무대에 서기도 했으나 연기력이 없어서 실패했다. 대형 오페라가수를 꿈꾸었던 그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중가요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꿈꾸었던 예술 조국을 만들기에는 이 땅이 너무 낙후했고 견고한 유교적인 인습은 그녀를 더욱 못 견디게 했다.



특히 유부남 김우진과의 사랑은 진보적인 도덕관을 지닌 그녀를 궁지로 몰아갔다. 1926년 여동생 윤성덕의 유학길 배웅을 위해 일본에 간 그녀는 닛토(日東)레코드회사에서 24곡을 취입한 뒤 먼저 와 있던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서 정사했다. 그녀가 남긴 〈사의 찬미〉는 오늘까지 널리 불리고 있다. 이 책 『화녕가(歌)』는 실로 〈파친코〉의 시대 배경과 많이 겹치는 듯하다. 이 작품도 동일한 시기를 배경으로 윤심덕과 같은 실존 인물들이 모티프가 되어 소설화된 작품이다. 1920~40년대 한국 가요사는 일제강점기의 억압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과 저항의 메시지를 담아낸 중요한 문화적 유산으로 이 시기의 가요들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민족의 슬픔과 절망 또 동시에 희망과 저항의 상징이었다고 이 책을 출판한 〈델피노〉 측은 밝히고 있다.

저자 이영희는 이 소설에서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개인의 삶과 사회적 투쟁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그 시대의 절절한 정서를 문학적으로 재현했다. 이 시기는 일제의 만주사변, 난징대학살, 중일전쟁 등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공하며 식민 지배국을 늘려나간 시대이자 수탈과 탄압이 더욱 가혹해진 시기와 겹친다. 이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대중음악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사람들은 스타에 열광하며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능해지는 이유다. 

이 책 『화녕가(歌)』는 이 시기에, 불꽃같은 열망을 품고 자신의 꿈을 추구하는 화녕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내며 단순히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당시 한국 대중음악이 가진 역사적, 민족적 의미를 섬세하게 탐구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또한 이애리수가 부른 〈황성의 적〉, 이난영이 부른 〈목포의 눈물〉, 김서정 작사·작곡의 〈강남달〉 등 당시 한국 대중음악의 중요한 곡의 가사를 소설에 삽입하여, 화녕의 마음을 그 음악적 의미와 함께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유모인 채단 한 명만 앉혀 두고 부르는 초라한 음악회로는 제 핏줄 속의 가락이 만족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버젓이 인예가 앉아 있는 이 자리에도 올 수가 있었다. 그래도 혹여나 나중에 저도 제 노랫가락을 위해서 일본에 붙어먹지 못해 안달이 나지나 않을까? 자주 궁금하였다. 

첫 곡은 〈목포의 눈물〉이었다. 19살의 가수 이난영이 오케레코드사를 통해 레코드판을 발매하자마자 경성에 다니러 갔던 재후(화녕의 아버지)가 사 들고 왔었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콧소리가 섞여 꺾어지는 화녕의 음성이 안채 마당에 울려 퍼졌다. 계집애의 눈이 동그랗게 뜨인다. 가사 그대로 애달픈 사연에 예상외로 깊은 음색이라 그랬을 것이다. 그럼 이 노래가 남녀상열지사가 아니라 일제가 호남의 곡창 지대 곡물을 수탈하는 목포항의 한을 그린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다음 곡은 시에론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된 〈강남달〉이었다. 진주 출신 작곡가이자 무성영화 〈락화유수〉의 변사인 김영환이 지은 곡이라 일부러 골랐다.


강남달이 밝아서 님이 놓던 곳

구름 속에 그의 얼굴 가리워졌네



태형을 가할 수 있는 권한까지 있는 헌병대에서는 재후를 이렂저리 찢어놓았다. '갈가리'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았다. 재후가 까만 테라쟁이들과 하고 있었던 것은 마작이 아니고 공작이었단다. 1930년 진주학생만세운동, 1931년 진주농고 비밀결사, 1932년 진주고보 비밀결사, 그 모든 배후에 있었던 것이 바로 별채에서의 모임이었단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호녕의 심장이 거북이 등껍질로 변하였다. 하지만 그래놓고 재후는 화녕을 채 1분도 보지 않았다. 총살형이 확정되었고 내일이 시행일이었는데도 긴말도 하지 않았다. 

"너와 나는 가는 길이 다르다. 나는 천황을 죽이고 싶고 너는 천황에게 신명을 바치는 삶을 살고 있다. 허니 애비와 딸로 이어진 인연은 저주이고 천형이로구나. 해서 오늘부로 깔끔히 갈라내니 난 더 이상 너의 아비가 아니다. 허니, 돌아가라, 소녀여!"(p.86) 재후는 그 짧은 말로 화녕을 뒤로 한 채 철문 안으로 사라져갔다. 충격이라는 말로는 부족하였다. 발밑이 무너진다는 표현으로도 어림없었다. 화녕은 눈물 한 방울 못 흘리고 아직까지는 제 집이었던 일본식 목조주택으로 돌아왔다. 축음기 앞에서 멍하니 한참을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너의 문제는 어찌 사느냐가 아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너의 문제로구나. 살거라. 어찌해서든 살아남거라. 니가 아비의 뒤를 따른다면 아비의 수고는 물거품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니가 살아남는다면 아비의 수고는 내 조국의 광명을 위한 마중물이 될 것임을 기억해라."(p.86~87)


저자 : 이영희


경남 진주시 하대동 거주

꽃을 사랑해서

꽃으로 글을 쓰는 글쟁이

<영남문학> 중편소설 등단

통일부 통일창작동화 수상

대한민국 e작가상 수상

제 7회 진주시 북 페스티벌 초청 강연

장편소설 『그 모퉁이 집』, 『감꽃 길 시골하우스』 출간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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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기쁨 다시 찾은 행복 - 마스노 순묘의 인생 정리법
마스노 슌묘 지음, 윤경희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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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과 과학의 급속한 발전이 맞물리면서 세상은 인류가 만들어낸 온갖 물질로 풍요롭게 보인다. 늘 식량이 부족해 굶주리고, 헐벗었던 시대는 이제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다. 풍요로운 물질과 지구 어디라도 하루만에 갈 정도로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이젠 '지구촌'이란 별칭도 등장했다. 특히 21세기 뉴 밀레니엄 시대는 그야말로 부족한 것 없는 시대를 넘어 '안 되는 게 없는 시대'로 인류의 문명은 발전했다. 당장 어디를 가더라도 온갖 재화들의 유혹으로 가득하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물건들이 쉴새 없이 쏟아진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최고의 호사를 누리는 부자와 권력자들 뒤에서 아직도 일부 지역에서는 가난과 질병 등 전근대적 유물과 싸우고 있는 사람도 10%쯤은 있다. 

이처럼 세상은 불공평한 듯하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속성 상 이런 모습이 점점 심화될 것이란 말에 독자는 동의한다. 갈수록 빈부의 격차가 커진다는 의미다. 그러나 인류의 진보를 늦출 방법은 없다.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누리며 사는 '욕망' 때문이다. 인류의 가장 큰 단점이 '탐욕'인 것 같다. 누구든 욕심을 갖고 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욕심은 적정선에서 멈출 줄만 안다면 '삶의 의지'로 비춰진다. 사실 이것이 인류를 지금까지 번영케 하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나 현자들은 수천 년 전에 이미 간파했다. 탐욕은 죄악이고, 번뇌의 원인이다. 부처도 탐욕을 버리라고 했고, 예수 역시 탐욕을 경계했다. 인류에겐 수천 년 전부터 탐욕 때문에 악의 구렁텅이로 빠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탐욕과 욕심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자의적 판단을 미루고 이웃이나 자신이 속한 사회의 기준에 맞춰야겠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 『버리는 기쁨 다시 찾은 행복』의 저자 마스노 슌묘는 "내 것을 갖고 싶은 마음은 일종의 본능이고, 욕심은 발전의 원동력이기 되기도 하니 욕심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욕심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역시 승려로서의 탐욕에 대한 경계심을 표현한다.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자신이 욕심을 제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내가 그 욕심에 휘둘리게 된다는 것. 유혹과 욕심과 집착 속에 갇히는 것,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이고, 고통의 원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본래의 ‘나’,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마음을 갖고 있던 본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저자 마스노 슌묘는 일본의 존경받는 승려이자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이다.



저자는 책의 〈서문〉을 통해 '선(禪)'을 화두로 말을 꺼낸다. "요즘 서양 사람들도 선을 매우 흥미롭게 여기고 있음을 실감한다. 특히 서양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확실히 관심이 커지는 것 같다"고 운을 뗀다. 근대 문명의 과도한 발전과 이에 따라 나타나는 많은 폐해, 예를 들어 전 지구적인 환경 문제와 급속한 정보화가 초래한 관리사회, 커뮤니케이션 과제같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 대해 지식인으로서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과 적지 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도 밝힌다. 저자는 사람이 사람답게 존재하고 자연과 사람이 근본적으로 함께 사는 방법을 다시 찾아야 하는 이때, 그들은 '선' 사상에 주목하고 있다는 증명이라고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선의 특징은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로 집약할 수 있는데, 이는 문자나 말에 붙들리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는 내 마음 자체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운동을 통해 몸의 근육을 단련시키듯 선을 수행해 마음의 훈련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상의 유행이나 유혹은 우리의 일상이 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유혹은 우리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 잡은 물욕을 자극한다. 남들보다 멋진 차를 갖고 싶고, 큰 집을 갖고 싶고, 고급 브랜드 옷을 입고 싶은, 그야말로 무언가를 소유하고 싶어 하는 마음 말이다.

게다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생활을 하고 싶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 되고 싶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원한다. 하나라도 현실이 되면 거기서 만족할 것 같지만 마치 유혹이 사람을 조종하는 게 아닐까 할 만큼 '더 가질 거야, 더 가질 거라고!'라는 마음이 계속해서 생겨난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가득 흘러넘치는 내 안의 욕심, 그 마음을 번뇌라 부른다. 또한 이런저런 다양한 유혹 안에 나를 꼼짝 못하게 묶어 두고 있는 것도 번뇌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번뇌가 빙글빙글 돌고 돌아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원래 모든 사람은 부처님처럼 자기중심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아욕(我欲)과 자아(自我)가 두꺼운 군살이 되어 원래 갖고 있던 아름다운 마음을 덮고 감추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맑은 마음이던 자기 존재가 가려진 것으로 저자는 풀이하고 있다. 티끌 하나 없는 거울같이 맑은 마음, 즉 '본래의 자기'와 다시 재회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속작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게 이 책에서 말하려는 주요 골자다.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에 어느 정도 군살이 붙을 수밖에 없다. 이 군살을 조금이라도 줄여서 깊숙이 감춰져 있던 본래의 맑은 마음을 찾아 꺼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선'의 수행이고, 꺼낸 마음을 일상생활에서 생생하게 살리는 것이 '선'의 가르침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책의 주제는 '버린다'와 '멀어진다'이다.(p.9) 선에서 말하는 무심(無心)은 마음을 없애 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을 어디에도 두지 않는다는 의미다. 즉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아서 자유자재로 있을 수 있는 마음이다. 이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면 세상도 크게 달라 보일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걱정하지 말고 ‘버린다’〉, 2부 〈두려워하지 말고 ‘멀어진다’〉, 3부 〈행복의 길잡이〉 등이다. 1부와 2부에서는 저자가 생각하는, 버리거나 멀어져야 좋은 것들을 소개하고, 3부에서는 행복의 길잡이가 되어 현대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야 좋을지에 대해 '선'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안내하고 있다. 1부의 버릴 것을 각 장(章)의 제목을 기준으로 일부 열거해 본다. 「과도한 마음의 체지방」, 「자아」, 「모서리」, 「소속」, 「체면」, 「나태」, 「선악 판단」, 「고통」, 「당연함」 등을 들고 있다. 또 멀어져야 할 것들로는 「고립」, 「생각」, 「숫자」, 「상대의 모래판」, 「괴로움」, 「깨달음의 집착」 등을 꼽고 있다. 

자신의 손이 닿은 것들은 물건 하나 쉽게 버리지 못한다는 사람이 많다. 물건에 좋은 추억이 깃들어 있을수록 더욱 그렇다. 물건을 버리는 것이 자신의 일부를 버리는 것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다 보니 버릴 물건이 없고 어느새 자신은 물건들의 집에 세들어 사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이에 저자는 희사(喜捨)’란 단어를 생각해볼 것을 조언한다. 희사란 불교에서 말하는 '시주'의 다른 말로, 기쁘게 버린다는 뜻이다. 절에 가서 불전함에 불전을 넣는 것, 즉 시주를 하는 것은 돈을 기쁘게 버린다는 의미이다. 이때 기쁘게 버리라고 하는 이유는 집착을 끊어내기 위해서이다.



1부 14장(章)에 「삼독(三毒)을 버린다」라는 제목이 나온다. 삼독이란 불교에서 번뇌의 원인이 되는 세 가지 독소를 의미한다. 이른바 '탐(貪)·진(嗔)·치(痴)'이다. 불교에서 이는 열반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근원적인 세 가지 악이라 일컫는다. "탐은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진은 타인에 대한 시기와 질투, 미움을 포함한 분노, 치는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올바르게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뜻한다."(p.71) 불교에서는 이 삼독을 가능한 마음에 품지 말고 거리를 두고 살라고 가르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사람은 본래부터 '청정한 마음'을 갖고 있다. 서로에게 그 깨끗한 부분을 내어 주어야 좋은 관계가 된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란 표현으로 대신했다. 

삼독의 반대가 '무심(無心)'이다. 사람들은 자주 저자에게 "무심이란 어떤 마음 상태인가?'를 묻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빼앗기지 않는 마음'이라고 저자는 답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머리로 이해했다 해도 몸으로 체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생명이 있는 한 인간은 이런저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번뇌에 둘러싸여 살 수밖에 없고, 평범한 사람에게는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것을 모두 버린다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에 따르면 그 대답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마지막 설교를 훗날 제자들이 정리한 《유교경》에 기록되어 있다. 탐하는 마음이 강한 사람은 끊임없이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만큼 고뇌도 많고, 욕심이 적은 사람은 욕망을 제어할 수 있기 때문에 고통도 그만큼 적다. 만족을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마음이 부유하고,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은혜로운 상황에 있더라도 마음이 가난하다. 아무리 교양이 있고 사회·경제적으로 단단하게 자리를 잡은 사람이라도 도리를 잊어버리게 되면 마음이 욕심에 휘둘려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고 만다. 어느 것에도 빼앗기지 않았던 마음이 참혹하게도 갉아 먹힌다고 저자는 풀이해준다.



특히 요즘은 '진', 즉 분노의 감정이 여기저기에서 불을 맹렬히 뿜어 대고 있는 듯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SNS도 현실 세계도 모두 비방천지이다. 어떤 논쟁이 일어나면 그 일과 상관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우르르 몰려 분노의 감정을 쏟아낸다고 지적한다. '진'은 뭔가에 거슬린 감정이 분노가 되어 분출하는 것이다. 나에 대한 험담이나 무례한 말, 내 존엄을 해치는 말을 들으면 반론하고 싶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난데없이 날아온 공에 얼굴을 맞고 그 충격에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내가 맞은 만큼 똑같이 최대한 세게 공을 던지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이에 저자는 '선'에서는 분노의 감정을 머리까지 끌어 올리지 말고 배에 머물게 두라고 가르친다고 귀띔한다. 여기서 말하는 배는 '제하단전' 혹은 '단전'을 뜻한다. 배꼽 중앙에서 아래로 손가락 네 개를 갖다 댄 만큼의 위치라고 설명한다. 분노의 감정은 대략 3초면 잠잠해진다고 한다. 이에 따라 분노를 단전에 잘 두는 방법을 저자는 조언한다. 마음에 거슬리는 말을 들었을 때를 대비해 미리 어떤 주문 같은 말을 생각해 두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고마워'나 '잠깐만' 같은 것이다. 그리고 상대에게서 공이 세게 날아왔을 때 이 주문을 3회에서 5회 마음속으로 외칠 것을 주문한다. 거짓말 같겠지만 한 번 해보면 신기하게도 100만큼 올라가리라 생각했던 분노의 감정이 절반이나 절반 이하가 된다고 한다. 꼭 해보기를 저자는 독자들에게 권유하고 있다. 분노에 휩쓸려 나온 말은 겨우 3초를 기다리지 못해 입을 뜷고 나온 것이다. 그런데도 한번 입에서 나온 말은 도로 물릴 수 없다. 그 한순간의 실수 때문에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그 사람을 영원히 잃기도 한다. 분노의 감정은 머리에 올리지 말라고 저자는 요청한다.

이와 함께 오늘을 충만하게 사는 데 방해가 되는 고립, 잠념, 숫자, 상대의 모래판, 고통, 집착에서 멀어지라고 저자는 충고한다. 고립 대신 혼자서 조용한 시간을 갖는 고독을 가까이하고,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잡념에서 떠나 이 순간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저자는 숫자로 비교할 것이 아니라 정도(程度)를 파악하고, 상대의 모래판에 설 것이 아니라 내 안의 평화를 좇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 고통에서 멀어질 것을 권유하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걱정하지 말고 버리라고 주문한다. 기쁜 마음으로 버린 것은 돌고 돌아 또 다른 기쁨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멀어지십시오. 버리고 멀어지다 보면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것을 알게 되고,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것들과 가까워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본래의 ‘나’로 돌아갈 것입니다."

2부 3장은 「숫자에서 멀어진다」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멀어지라'는 말이다. 숫자는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숫자를 선호한다. 하지만 뭔가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것보다 오히려 '가진 것들을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는가, 올바르게 쓰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요즘 미디어에 자주 나오는 것 중에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라 불렸던 부탄이 최근 몇 년 동안 행복도 순위에서 확 떨어졌다는 보도를 인용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설에 따르면 SNS로 다른 사람의 생활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비교를 하게 된 것이 큰 요인이라고 한다.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옆 사람은 더 많은 물건을 갖고 있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더 자주 먹고 있는 것이다. 이를 알게 된 부탄 사람들 마음에 '나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구나'라는 생각이 싹튼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언급한다. 이는 '있는' 것이 아닌, '없는' 것을 세어 남과 비교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행복'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다.


저자 : 마스노 슌묘(ますの しゅんみょう, 升野 俊明)


1953년 일본 가나가와 현에서 태어났다. 겐코지(建功寺)의 주지 스님이자 다마미술대학교 명예교수이며, 다수의 책을 낸 작가이자 선(禪) 사상과 일본의 전통 문화를 바탕으로 ‘선의 정원’ 창작 활동을 하는 정원 디자이너이다. 정원 디자이너로서는 최초로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활동을 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일본의 ‘예술선장 문부대신 신인상’을 받았으며, 주요 디자인 작품으로는 일본의 캐나다 대사관 정원, 세르리앙타워 도큐호텔의 일본 정원 등이 있다. 2006년 〈뉴스위크〉 일본판 ‘세계가 존경하는 일본인 100인’에 선정되었고, 대표작으로는 『열등감 버리기 기술』, 『심플하게 나이 드는 기쁨』, 『일상을 심플하게』 등이 있다.


역자 : 윤경희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 졸업하고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 출판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일 잘하는 사람은 왜 사우나를 좋아할까?』,『초등 아이가 공부에 푹 빠지는 법』,『초등학생을 위한 요리 과학실험365』,『일본식 집밥 레시피 100』,『남자아이의 학습능력을 길러주는 방법』,『손정의처럼 일하라』,『뇌에 맡기는 공부법』,『나라 이름으로 여행하는 지구 한바퀴』,『프랑스 사람은 지우개를 쓰지 않는다』,『사회학 명저30』,『연애 사자성어』,『사자성어사전』,『상황별 사자성어』,『50대에 꼭 해야할 100가지』,『남편을 날씬하게 만드는 반찬』,『빡치는 순간 나를 지키는 법』 등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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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흔들릴 때 아들러 심리학 - 인생을 두 배로 살기 위한 마음공부 10가지
알프레드 아들러 지음, 유진상 옮김 / 스타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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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쯤 알프레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의 한 부분을 주제로 한 『미움받을 용기』란 책이 우리나라 서점가에 열풍을 몰고 온 적이 있었던 것으로 독자는 기억한다. 『미움받을 용기』는 일본인 학자가 쓴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이란 부제를 달고 출판한 책이다. 고가 후미타케, 기시미 이치로 등 두 일본인 학자는 아들러 심리학 전공 학자들로서 아들러 심리학의 일부분을 바탕으로 썼다. '용기의 심리학'이란 별칭을 받을 정도로 대단한 열풍을 몰고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이때 아들러란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의 존재를 각인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 심리학의 거장인 아들러의 학설, 이론에 대한 이해를 더 요구하는 현 시대다. 우리 현대인들은 편리하고 빠른 디지털 시대의 수많은 정보를 제때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새로운 정보의 홍수 속에 매몰되어 간다. 인공 지능과 빅데이터로 요약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느새 깊숙이 들어온 지금 과연 우리는 충분히 소통하고 있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을 던진, 코로나 팬데믹의 강한 충격을 겪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정신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껴 감당하지 못함을 인식해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가다가 최종적으로 심리적 혼란이나 정신적 장애에 부닥치는 사례는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형국이다.

이 책 『삶이 흔들릴 때 아들러 심리학』도 역시 아들러의 심리학을 바탕으로 씌어졌다. 역자 유진상이 「인생을 두 배로 살기 위한 마음공부 10가지」란 부제를 사용해 번역하고 엮은 책이다. 역자 유진상은 「용기로부터 시작되는 마음의 행로」란 제목의 책 〈서문〉에서 "사람에게는 용기가 있고 없음에 따라 삶은 송두리째 바뀐다. 그렇지만 용기라는 것이 '난 오늘부터 용기 있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다짐한다고 해서 쉽게 갖게 되는 힘이 아니다"고 말한다. 역자는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도록 해주는 용기,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살도록 하는 용기, 자유롭게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이끄는 용기는 어떻게 사람의 내면에 단단히 잡게 되는지"를 이 책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개인심리학자 아들러가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그것을 자기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까닭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대로 주체적이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탐구하는 것이 바로 아들러의 문제였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아들러는 그 문제를 '머리'로써가 아니라 '가슴'으로써 이해했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아들러는 정상인과 비정상인 사이에 특별한 구분을 짓지 않는다고 역자는 말한다. 문제아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대하며 그들에게서 일부러 결점을 찾아내거나 비난하려 들지도 않았다고 한다. 아들러는 그저 진실된 마음으로 '어떻게 이 사람을 이해할 것인가' '어떻게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도록 도울 것인가'를 고민하고, 어려움을 겪는 모든 사람들이 그 문제를 극복하고 용기 있게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자 한 것이란 주장이다. 요즘 말로 보면 비정상인(정신장애인)이란 진단 결과의 구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어쩌면 지극히 과학적인 태도였다고 볼 수 있다. 대상 자체를 아주 객관적인 시선으로 대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는 게 독자의 믿음이다. 

역자는 〈서문〉에서 개인이 어떤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 어려움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거나 그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그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는 말을 꺼낸다. 또 어떤 사람들은 원망과 분노를 아무 상관없는 타인에게 돌리고 폭행이나 살인도 심심치 않게 벌인다는 점도 덧붙인다. 다소 극단적인 사실을 꺼내들었지만 아들러의 용기 심리학을 뒷받침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아들러는 당시 다른 치료자와 달랐다는 점을 각인시키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들러는 자기 삶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온전히 감당해 내야 하는 사람은 분명 그에 해당하는 개인이지만, 그 과정에서 주변의 도움이 없다면 개인적 문제는 결코 해결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굉장히 일반적인 이야기 같지만 사실 당시 시대 상황이나 지금의 시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비춰볼 때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개인적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 일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그 문제를 주변이나 자식에게 유전시키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아들러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연구했다는 사실을 부각하고 있다. 아들러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역자는 강조한다.



아들러의 생각은 인간의 삶은 개인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로부터 시작된다고 보았다는 게 역자의 주장이다. 자신을 믿는 용기, 자신을 믿고 한 발자국씩 떼어 가는 용기, 절대 포기하지 않는 용기. 그렇게 한 개인은 사회적 인간으로 확장되어 나간다고 아들러는 '용기'를 강조한 듯하다. 용기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주변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내면의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 일의 성공에는 사회적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아들러는 주장했다. 아들러는 이들이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어떤 일을 하든 도움이 되어야 하는 사람으로서 교사나 의사의 역할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아들러는 그들이 자기 전공 분야 이외에도 관심을 갖고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습득하여 추론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들러가 자신이 주장한 개인 심리학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도 과학적 경험과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비롯하여 타인을 돕는 일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아들러는 모든 인간이 보다 행복한 삶을 살도록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평생에 걸쳐 연구하고 실천한 심리학자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는 고통과 혼란이 이어지는 불확실한 시대다. 오늘날 아들러 심리학이 주목받는 이유라고 역자는 말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마음 공부 10가지'를 부제로 달고 있다. 이 책은 10가지에 대해 각 한 장(章)씩 모두 10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경험은 인생을 만든다-삶과 경험」, 2장 「용기 있는 사람은 뇌마저 바꾼다-마음과 몸」, 3장 「열등감은 극적인 인생을 만들어 낸다-열등감의 이해」, 4장 「기억 속에 숨겨진 진짜를 찾아라-불완전한 기억」, 5장 「꿈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꿈의 이해」, 6장 「사춘기의 욕망을 긍정으로 바꿔라-사춘기의 성」, 7장 「잘못된 환경이 범죄자를 만든다-범죄의 접근성」, 8장 「천재들의 어린 시절을 읽어라-협력과 공헌」, 9장 「이웃에 대한 관심이 세상을 이끈다-관심의 인류애」, 10장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편견과 사랑」 등이다. 각 장은 3~6개의 소항목으로 나누어 각 장의 주제로 수렴된다. 

3장의 경우 '열등감'에 관한 이야기다. 아들러는 열등감을 "개인이 어떤 일에 대해 잘 적응하지 못하거나 혹은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그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자기의 확신을 언행으로 표현하는 경우에 나타난다"고 정의한다. 따라서 세계적인 심리학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개인심리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열등감'이라고 할 수 있다고 역자는 말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많은 학파의 심리학자들이 이 열등감을 채용해 그들 자신의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아들러)는 그들이 열등감을 이해하고 있는지 혹은 올바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확신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에게 그가 열등감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알리는 일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해결 방법도 찾지 못한 채 열등감만을 더욱 심하게 증폭시킬 뿐이다. 우리는 그가 자신의 삶 속에서 특별히 실망감을 느꼈던 특정 사건에 대해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그가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바로 그 문제에 대해서 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정신 질환 환자들은 열등감을 갖고 있다. 신경증 환자들 역시 모두 열등감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 여부로 환자들을 구별할 필요는 없다. 한 환자가 다른 환자와 구별되는 것은 그가 인생을 유익하게 살아갈 수 없다고 느끼는 이유가 어떤 종류의 상황인가 하는 점이다. 또한 자기의 노력이나 활동에서 느꼈던 한계에 의해서 구별된다. 그에게 "당신은 열등감을 앓고 있다"라고 알려서 용기를 가지도록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에게 "당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말씀드리지요, 당신은 머리가 아픈 겁니다"라고 말함으로써 그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똑같이 무익한 일이다.

대부분의 신경증 환자에게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느끼는지 물으면 그들은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내가 주위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단지 그 사람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기만 하면 된다. 자기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거듭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 어떤 트릭을 사용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행동을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오만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그러한 태도를 통해 그의 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은 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할 때 제스처가 심한 사람은 '만약에 나의 말을 강조학지 않는다면 아무런 중요성도 갖지 못할 것이다'라고 느낀다고 추측할 수 있다. 자기가 타인에 대해서 우월한 듯이 행동하는 모든 사람의 배후에는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서 숨겨야만 하는 열등감이 존재하고 있다. 그 노력은 마치 키가 너무 작아서 고민하는 사람이 자기를 커 보이게 하기 위해서 발끝을 세우고 걷는 일과 같다.(p.83~85)



7장 「잘못된 환경이 범죄자를 만든다-범죄의 접근성」에서는 장을 구성하는 세부 항목의 제목을 따라가다 보면, 왜 이 장에서 '범죄자'를 다루는가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아들러는 범죄자들은 생각하고 말하고 듣는 방식이 보통 사람들과 매우 다르다고 밝힌다. 그들은 별도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지성은 이 차이에 의해서 방해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들은 이야기할 때 모든 사람이 우리들을 이해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범죄자의 경우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그들은 물론 바보나 지적장애자는 아니지만 보편성을 띠지 않는 개인적인 논리와 지성을 갖고 있다고 아들러는 강조한다. 

이에 따라 7장은 '범죄자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다-범죄자들의 사고방식-재능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협력을 배워 보지 못한 겁쟁이-문제아를 지도하는 가장 어리석은 행위-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오는 분노-교사는 사회 진보에 도움을 줄 수 있다'로 마친다. 두 번째 '범죄자들의 사고방식'에서 참조해야 할 사항이 강조된다. 이에 따르면 흔히 시대가 어수선하고 사람들이 심적 부담을 많이 지게 되면 범죄가 한층 늘어난다고 하는데 확실히 그 말이 맞다. 통계에 의하면 때에 따라 범죄의 수는 곡물값의 상승에 의해서도 증대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경제상태가 범죄를 야기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상황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행동에 있어서 제한받고 있다는 표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인간들의 협동 능력이 한계에 부딪치게 되며, 이러한 한계에 도달하면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공헌하지 못하게 된다. 협동의 마지막 잔재를 잃고 범죄에 끌리게 되는 것이다. 개인심리학에 있어서 많은 사례들을 연구한 끝에 우리는 마침내 단순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범죄자들이 거의 타인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그도 어느 정도까지는 협동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정 선을 넘어 버리면 범죄에 직면하고 만다. 이처럼 한계를 넘는 일은 그가 매우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발생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직면하게 되는 인생의 여러 문제들이 있는데, 범죄자들은 그 중 몇 가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개인심리학은 인생의 여러 문제를 세 가지 주요 영역으로 나누고 있다. 아들러는 세 가지 영역, ① 동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우정 ② 직업 ③ 사랑 등을 지적한다.



범죄자들도 때로 친구를 가지긴 하지만 그것은 동료일 때뿐이다. 그들은 지하 조직을 형성하여 서로 간의 충성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들은 지하 조직을 형성하여 서로 간의 충성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들은 바로 그들이 활동 영역을 어떻게 축소시켰는가를 보게 된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평화롭게 잘 지내는 방법을 모르며, 따라서 다른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을 일단 도망자로 보는 것이다. 또 직업의 영역에 있어서도, 범죄자들은 대부분 직업 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네들은 노동이라는 두려운 상태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들은 일이 두렵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처럼 직업에 몰두하려고 하지 않는다. 유익한 직업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들의 복리에 공헌하는 것인데, 범죄자들에게서는 특히 그러한 사고방식을 찾아볼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범죄자 대부분은 훈련되지 않고 미숙한 노동자라는 주장이다. 마지막 영역에는 사랑이 포함되어 있다. 좋은 애정 생활도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협동을 요구한다. 감화원에 보내지는 범죄자들의 반 정도가 입소할 때에 성병에 걸려 있다고 하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당시 유럽의 통계 기준) 이것은 그들이 애정 문제로부터 값싼 도피를 해왔음을 가리킨다는 게 아들러의 주장이다. 이로 인해 이들은 상대방을 단순히 하나의 소유물로 간주하며 돈이면 사랑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성생활이란 다만 정복과 획득의 문제일 뿐이라고 아들러는 역설하고 있다. 아들러의 이 장에서의 주장은 정신질환에 대한 진단을 내릴 때 의사들이 개개인의 원인이나 심리 상황에 주목하지 않고 이미 발견된 행동이나 말 따위에서 진단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정신병원에 수용하고 약물을 투여해도 원인 치료로서는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내포하고 있다고 독자에게는 읽힌다.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의 요체이자 기본 바탕을 중심으로 개인질환자들에 대한 맞춤형 심리 치료가 먼저라는 주장을 제기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독자는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프로파일러의 심리 분석의 요체가 되지 않았나 싶다. 


저자 :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

1870년 헝가리계 유대인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빈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1895년 의사가 되었다. 1902년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수요 모임인 〈빈 정신분석학회〉에 참여해 활동하다가 견해를 달리한 회원들과 1912년 탈퇴해 〈개인심리학회〉를 결성했다. 사회 감정에 중점을 두는 견해를 통해 열등감의 연구와 치료에 힘을 쏟았으며 ‘개인심리학회’ 연구 활동 결과물로 『신경증 기질(The Neurotic Constitution)』을 발표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빈을 중심으로 아동 정신병원 22곳을 열었으나 아들러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1932년 강제 폐쇄되었다. 1927년 이후부터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의 초빙교수를 역임하고 유럽과 미국에서 여러 차례 대중 강연을 했으며, 이 경력을 인정받아 미국 롱아일랜드 의과대학 교수직에 임명되었다. 각국을 누비며 강연 여행을 계속하던 중 1937년 스코틀랜드 애버딘에서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저서로 『신경쇠약의 특색에 관하여(Uber den nervo sen Charakter)』 『개인심리학의 이론과 실제(The Practice and Theory of Individual Psychology)』 『삶의 과학(The Science of Living)』 『인간 본성의 이해(Understanding Human Nature)』 등이 있다.


역자 : 유진상

서울에서 태어나 대일외국어고등학교, 경희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메로스어학원을 수료하고 일본외국어전문대학에서 한·일 동시통역을 전공했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어학연수를 마치고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다음 대학원에서는 철학과 심리학에 심취했다. 또한 잡지에 미국 문화를 소개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귀국하여 전문 번역과 출판 기획자로 나서게 되었으며, 지금은 글쓰기에도 열정을 다하고 있다. 편저로 『심리학의 더 즐거움: 인간관계의 최종 병기』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조직의 바이블: 조직을 관리하는 2대 원칙』 『부자 엄마 강의록』 『100년의 교제술』 『내 아들아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생각의 논쟁』 『손에 잡히는 심리학』 『철학의 즐거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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