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스칸은 압도적인 힘을 과시할 수 있는 공격을 계획했으며, 그관중은 이미 정복한 부하라 주민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다음 행군 목적지 사마르칸드의 군대와 주민이었다. 몽골 침략군은 공성 부대들이 수백 년 동안 사용해온 돌과 불을 던지는 투석기, 평형추 투석기, 대석궁(大石弓) 등을 새로 만들어 요새로 굴려갔을 뿐 아니라, 불이 붙은 액체가든 단지, 폭발장치, 인화물질까지 가져갔다. 그들은 또 바퀴에 올려놓고 쓰는 엄청난 크기의 쇠뇌도 가져갔다. 접이식 사다리가 달린 이동용 탑도 밀고 갔다. 이 탑 위에 올라가면 성벽의 수비군을 향해 활을 쏠수 있었다. 몽골군은 공중에서만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굴을 파는 사람들은 땅속을 파고들어 성벽을 무너뜨리려 했다. 칭기스 칸은 이렇게 하늘, 땅, 지하에서 뛰어난 과학기술 능력을 과시하는 동시에 포로들-요새에 있는 병사들의 전우도 많았다에게 앞으로 달려나가라고 명령하여 적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했다. 이 포로들의 몸이 해자를 채우면서 살아 있는 방벽이 세워졌다. 그러면 다른 포로들이 그 방벽 위로 전쟁용 무기를 밀고 갔다.
몽골군은 무기를 새로 고안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접촉한 다양한 문화의 무기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런 지식의 축적을 통해 손에 쥐게 된세계의 무기들은 어떤 상황에도 응용이 가능했다.  - P47

사냥꾼은 신혼부부에게 들키지 않고 자기 야영지로 돌아가 두 형제를 불렀다. 이 사냥꾼은 가난해서 후엘룬 같은 신부와 결혼을 하는 데필요한 선물을 마련할 여유도 없었고, 또 신부를 데려오기 위하여 처갓집에서 노역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는 초원에서 부인을 얻는 두번째로 흔한 방법을 택했다. 약탈혼이었다. 삼형제는 아무것도 모르는사냥감을 추적했다. 그들이 신혼부부를 급습하자 칠레두는 공격한 자들을 수레에서 떼어내기 위해 즉시 앞으로 내달았다. 예상대로 그들은 칠레두를 쫓아갔다. 칠레두는 산을 한 바퀴 돌아 공격자들을 떨치고 신부에게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후엘룬은 남편이 공격자들을 그들의 땅에서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잠깐 따돌려봐야 곧 다시 돌아올 것이분명했다. 후엘룬은 십대 소녀에 불과했지만 남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 자리에 남아 납치범들에게 굴복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만일 칠레두의 말에 함께 타고 달아난다면 결국 붙잡혀서 남편은 죽음을 당할 것이 뻔했다. 그러나 칠레두 혼자만 달아나면 자신만 붙들리는 것으로 끝날 수 있었다.
「몽골비사에 따르면 후엘룬은 남편이 자신의 계획을 따르도록 이런 식으로 설득을 했다고 한다. "살아만 있으면 앞방마다 수레마다 처녀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당신은 다른 여자를 찾아 신부로삼을 수 있고, 그 여자를 나 대신 후엘룬이라고 부르면 돼요." 이어 후엘룬은 얼른 저고리를 벗더니 신랑에게 "빨리 달아나라"고 다그쳤다. 그녀는 헤어지는 선물로 저고리를 그의 얼굴에 던지며 말했다. "이것을가져가요. 내 냄새를 맡으며 가요."
초원 문화에서는 냄새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다른 문화에서는 만나거나 헤어질 때 끌어안거나 입을 맞추지만 초원의 유목민은뺨에 입을 맞추는 것과 흡사한 동작으로 서로 냄새를 맡는다. 냄새 맡기에는 매우 깊은 감정적 의미가 담기는데, 여기에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이루어지는 가족간의 냄새 맡기에서부터 연인 사이의 성적인 냄새 맡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이 있다. 각 사람의 숨결과 독특한 체취는 그사람의 영혼의 일부로 여겨진다. 따라서 후엘룬이 남편에게 던져준 저고리는 중요한 사랑의 정표였던 것이다. - P52

예수게이는 후엘룬을 납치한 직후 타타르와 싸우러 나갔다가 테무진우게라는 이름의 전사를 죽였다. 아들이 태어난 직후에 돌아온 예수게이는 아이의 이름을 테무진이라고 지었다. 초원지대 사람들은 아이에게 평생 사용할 이름을 하나만 지어주기 때문에 이름을 고르는 데는 상당한 상징이 개입되며, 그 상징은 여러 겹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흔했다. 이들은 이름이 아이의 인격과 운명을 드러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테무진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은 몽골족과 타타르족 사이의 끈질긴 적대감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테무진이라는 이름의 정확한 의미나 아버지가 그런 이름을 지어준 의도에 대해서는 학술적인-물론 상상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지만- 토론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강력한 가설은 여러 아이들에게 공동의 어근에서 파생된 이름을 부여하는 몽골의 관습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후엘룬은 테무진 뒤에도 자식을 넷 더 낳았는데 막내아들은 이름이 테무게였다. 막내자식이자 외동딸의 이름은 테물룬이었다. 이 세 이름은 모두 테물이라는동사 어근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어근은 물불 안 가리고 달려가다. 영감을 받다. 창조적인 생각을 하다. 심지어 분방하게 공상을 하다등의 뜻을 가진 여러 몽골 단어에 나타난다. 한 몽골 학생은 나에게 "등위에 올라탄 사람의 의사에 관계없이 가고 싶은 데로 질주하는 말의 눈에 나타난 표정"을 연상하면 된다고 설명해주었다. - P56

몽골족에게 싸움이란 진짜 전쟁이나 지속적인 분쟁이라기보다도 생계를 위한 일상적인 약탈에 가까웠다. 복수도 약탈의 구실이 되곤 했지만, 진짜 동기가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전투에서 이기면 약탈품을 가지고 와서 가족이나 친구와 나누었고, 나누는 물자의 규모에 따라 승자의위신이 달라졌다. 승리한 전사들은 적을 죽인 것에 자부심을 가졌고 그일을 기억했지만, 머리나 머리 가죽을 모으는 허세는 부리지 않았다. 또전투에서 죽인 사람들의 숫자를 나타내기 위해 눈금을 새긴다거나 다른상징을 이용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살인이 아니라 물자였다.
초기 몽골 부족들에게 사냥, 교역, 목축, 전투는 서로 뗄 수 없이 연결되며 생계활동의 망을 이루었다. 사내아이는 말을 탈 수 있을 때부터이 각각의 일을 배웠다. 어떤 가족도 이 가운데 한 가지 활동만으로 먹고살 수 없었다. 습격의 방식은 지리적 조건이 결정했다. 비단길의 교역도시들에 가까이 사는 남쪽 부족들은 멀리 떨어진 북쪽 부족들보다 늘물자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남쪽 사람들은 무기도 좋았다. 따라서 그들과 싸워서 이기려면 북쪽 사람들은 더 빨리 움직이고, 더 머리를 써야 하고, 더 열심히 싸워야 했다. 이렇게 교역과 습격을 번갈아 되풀이하면서 느리지만 꾸준하게 금속과 직물이 북방으로도 흘러들었다.
북방은 날씨도 더 나쁘고, 풀도 더 부족하고, 사람들도 더 거칠고 폭력적인 곳이었다. - P59

남편은 죽고 다른 남자들은 데려가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엘룬은이제 가족 외부로 밀려나게 되었는데, 그런 사람은 누구도 도와줄 의무가 없었다. 후엘룬이 이제 그 무리의 일원이 아니라는 메시지는 몽골족이 늘 관계의 상징으로 이용하는 음식을 통해서 그녀에게 전달되었다. 봄에 전직 칸의 미망인인 두 늙은 할멈은 가족의 조상에게 드리는 연례제사 음식을 마련하면서 후엘룬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것은 그녀에게 제사 음식을 나누어주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었고, 나아가서 그녀가 가족의 구성원이 아니라는 통보였다. 이제 후엘룬과 그녀의 가족은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고 스스로 자신들을 보호해야 했다. 타이치우드 씨족은 오는 강 하류에 있는 여름 근거지로 내려갈 준비를 하면서 후엘룬과 그녀의 자식들은 두고 가기로 결정했다.
「몽골 비사』에 따르면 무리가 이동하면서 두 여자와 일곱 자식을 버리고 가자, 무리에서 지위가 낮은 가문에 속하는 노인 하나만 큰 소리로 이의를 제기했다고 한다. 테무진은 이 노인의 말에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타이치우드의 한 남자가 노인에게 당신은 우리를 비판할 권리가 없다고 마주 고함을 지르더니 뒤로 돌아가 창으로 노인을 찔러 죽였다. 이것을 보고 당시 열 살짜리 아이였을 테무진은 죽어가는 사람을도와주러 달려갔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고통과 분노를 느끼며 흐느끼기만 했다. - P62

어떻게 해서 그런 비천한 지위에 있던 추방당한 아이가 몽골족의 위대한 칸으로 올라갈 수 있었을까? 『몽골 비사」에서 테무진이 어른으로커가는 이야기를 살피다 보면 아이에게 깊은 상처를 준이 초기의 사건•들이 그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나아가서 그가 권좌에 오르는 데 중대한 역할을 했다는 핵심적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테무진은 그의 가족과함께 비극을 견디어내면서 초원지대의 엄격한 카스트 구조에 도전하고자신의 운명을 주도하고, 가족이나 부족보다는 신임하는 동료와 동맹을맺어 이것을 일차적인 지지기반으로 삼겠다는 강한 결의를 굳히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테무진은 우선 자무카라는 이름의 몇 살 연상의 소년과 이런 강력한유대를 맺었다. 자무카의 가족은 오논 강변 테무진의 야영지 근처에 여러 번 천막을 쳤으며, 그가 속한 자다란 씨족은 테무진 아버지의 씨족과 먼 친척 관계였다. 이상적인 몽골 문화에서는 친족 관계가 다른 모든 사회적 원리를 지배했다. 친족으로 이루어진 망 외부에 있는 사람은 바로적이 되고, 가까운 친족 관계일수록 그 유대도 더 가까워졌다. 테무진과 자무카는 먼 친척 관계였지만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형제처럼 되고 싶었던 것이다. 테무진과 자무카는 어린 시절에 두 번이나 영원한 형제 관계를 맺자고 맹세했으며, 몽골 전통에 따라 의형제가 되었다. 이 운명적인 우정의 이야기는 테무진 인생 초기의 축을 이루는 사건으로, 필요한자원들을 배치하는 테무진의 탁월한 능력을 분명하고 세밀하게 보여준다. 테무진은 이 능력을 바탕으로 역경을 이겨내고, 나아가 초원지대를지배하는 여러 부족의 폭력적 성향을 길들이게 된다. - P64

어린 나이에 테무진은 단지 명예나 위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기기위해 목숨을 건 게임을 했다. 그는 마치 짐승을 사냥하듯 형에게 살금살금 다가갔는데, 훗날 이런 사냥 기술을 전쟁 전술로 바꾸는 데 천재적인솜씨를 발휘하게 된다. 그는 또 자기보다 활 솜씨가 나은 카사르를 앞으로 가게 하고 자신은 뒤를 맡음으로써 전술적으로 영특한 면을 보여주었다. 모든 경주에서 일등을 해야 하는 말처럼 테무진은 뒤따르지 않고앞서 나가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앞자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관습을 어기고, 어머니에게 도전하고, 설사 가족이라 하더라도앞길을 막는 사람은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테무진은 벡테르를 죽여 배다른 형제의 지배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금기를 어겼기 때문에 가족을 더 큰 위험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그들은 즉시 살던 곳에서 달아나야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몽골 전승에 따르면 그들은 벡테르의 주검이 한데서 썩도록 놔두었고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동안은 그곳에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벡테르와 후엘룬이 훈계했듯이 이제 테무진은 보호자나 동맹자도 없이 쫓기는 몸이 되었다. 그는 가장은 되었지만 배반자로서 위험에 처해 있었다.
지금까지 후엘룬의 가족은 버림받은 사람들이기는 했지만 범죄자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살인 사건으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제이것을 핑계로 누구나 그들을 추적해서 없애버릴 수 있었다. 스스로 오논 강의 귀족 혈통이라고 자부하던 타이치우드 씨족은 전사들을 보내그들의 영토에서 살인을 저지른 죄를 물어 테무진을 벌하고 그가 비슷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기로 했다. 넓게 트인 초원지대에서는 숨을곳이 없었기 때문에 테무진은 안전한 산악지대로 달아났다. 그럼에도그를 추적한 사람들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타이치우드는 그를 그들의본거지로 데려갔으며 그의 의지를 부수기 위해 칼- 황소의 멍에처럼생긴 장치-을 씌워놓았다. 칼을 쓰면 걸을 수는 있지만 손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도와주지 않으면 먹지도 마실 수도 없었다. 매일 다른 가족이 그를 지키고 또 먹여주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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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오펜하이머와 그로브스는 원자 폭탄을 만들기 위한 독일과의 경주를 이끌어 나갈 완벽한 콤비였다. 오펜하이머의 스타일인 카리스마적 권위가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 적절했다면, 그로브스는 위협함으로써 권위를 행사했다. 하버드 출신의 화학자인 조지 키스티아롭스키(George Kistiakowsky)는 "그로브스가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부하들에게 겁을 줘서 맹목적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라고 기억했다. ‘서버는 그로브스가 "그의 부하들에게는 가능한 한 심술궂게 대하는 것을 방침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오펜하이머의 비서인 프리실라 그린 더필드(Priscilla Green Duffield)는 장군이 항상 그녀의 책상을 지나쳐 가면서 인사도 없이 "얼굴이 더럽군."과 같은 무례한 말들을 던졌다고 기억했다. 그로브스의 이런 교양 없는 행동은 메사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만이었고, 이는 오펜하이머에게 향할 비판을 줄이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로브스는 오펜하이머에게만은 그러지 않았는데, 이는 그들 사이의 관계에서 오펜하이머가 가진 영향력을 보여 주는 척도이기도 했다.
오펜하이머는 그로브스를 만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해냈다. 그는 장군이 원했던 대로 능숙하고 효율적인 행정가로 거듭났다. 버클리에 있을 때 그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보통 종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로스앨러모스에서 오펜하이머 가족의 가까운 친구가 된 버클리 출신 내과 의사 루이스 헴펠만은 오펜하이머가 메사에서는 "종이 한장 없는 깨끗한 책상을 유지했다."라고 말했다. 외모도 변했다. 오펜하이머는 그의 긴 곱슬머리를 잘랐다. 헴펠만은 "그가 머리를 너무 짧게잘라서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라고 기억했다. - P350

오펜하이머가 공산당원으로 알려진 진과 만났다는 보고서는 워싱턴으로 전달되었고, 곧 그녀가 소련 정보 기관으로 원자 폭탄과 관련된 기밀을 전달하는 통로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샀다. 진의 전화를 감청하는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1943년 8월 27일 작성된 문서에서 FBI는 오펜하이머가 "그녀를 중개자로 이용하거나, 그녀의 전화로 코민테른 조직과중요한 통화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1943년 9월 1일, FBI의 수장인 에드거 후버는 법무장관에게 보내는편지에서, 그들의 소련 코민테른 첩보 요원들에 대한 수사 결과 "진태트록은 우리 나라의 전쟁 준비 노력에 관한 비밀 정보를 가진 사람의정부(情婦)가 되었음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후버는 진이 "샌프란시스코 지역 코민테른 조직원들의 연락책이며, 그녀는 관련자로부터 비밀정보를 빼낼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조직의 첩보 요원들에게 그 정보를 전달해 줄 수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후버는 "코민테른 조직 첩보 요원들의 신원을 파악하려는 목적으로" 그녀의 전화를감청할 것을 제안했고, 그해 늦은 여름 무렵 육군 정보처나 FBI에 의해도청기가 설치되었다.
오펜하이머가 진과 하룻밤을 보낸 지 2주 후인 1943년 6월 29일, 서해안 방첩 대장인 보리스 패시 중령은 펜타곤에 보낸 메모에서 오펜하이머의 비밀 취급 인가를 취소하고 현재 직위에서 해고할 것을 요구했다. 패시는 오펜하이머가 "여전히 공산당과 연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가 가진 것은 모두 정황 증거에 불과했다. 그는 오펜하이머가 진을 방문한 사실과 "버나데트 도일과 스티브넬슨과 연락을 주고받는 공산당원인" 데이비드 호킨스와의 전화 통화를 증거로 들었다. - P361

기묘한 인터뷰였다. 이 인터뷰는 나중에 오펜하이머를 파멸로 몰아넣게 될 것이었다. 그는 육군 정보 장교에게 첩보 활동이라는 적신호를보냈고, 엘텐튼을 용의자로 지명했으며, "결백한" 익명의 중재자가 역시 결백한 몇 명의 과학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판단에 확신하기 때문에 이름을 거명할 필요는 없다고 패시를 안심시켰다.
오펜하이머는 몰랐겠지만, 이 대화는 한마디도 빠짐없이 녹취되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녹취록은 오펜하이머의 보안 파일에 들어갔다.
나중에 그가 접근 방식들(두 번인지 세 번인지는 확실치 않지만)에 대한 보고가 부정확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에(자신도 그 출처를 설명할 수 없는 ‘황당무계한‘ 이야기) 그는 자신이 패시에게 거짓말을 했는지, 아니면 패시에게는 진실을 말하고 나중에 거짓말을 했는지 증명할 길이 없었다. 그것은 그가 모르고 시한폭탄을 삼킨 것과 같았다. 그것은 10년 후 폭발할것이었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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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그가 <밀레니엄>에 싣기 위해 집필하년 탐사기사의 주제는 바로 ‘보안과 불법 해킹‘이었다고 미카엘은 주장했다.
리스베트는 눈썹을 찌푸렸다. 이 주장이 거짓임을 잘 아는 그녀는대체 <밀레니엄>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미카엘이 이를 통해 자신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려 했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일단 네덜란드서버에 접속해 ‘MikBlom/laptop‘ 아이콘을 더블클릭했다. 뒤이어 그의 노트북 화면이 뜨자 한가운데에 놓인 ‘리스베트 살란데르‘ 폴더와 ‘살리에게‘ 파일이 눈에 들어왔다.
미카엘의 편지를 열어본 그녀는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화면을응시했다. 그녀의 내부에서 상반된 감정들이 뒤얽혔다. 지금까지는 스웨덴 전체가 자신의 적이었다. 그녀로서도 별반 이상할 것 없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연합군이 한 명 튀어나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결백을 믿는다고 단언하는 잠재적 연합군이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연합군은 그녀가 스웨덴에서 죽어도 보고 싶지 않은 유일한 남자였다. 리스베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미카엘은 여전히 순진하기 짝이 없는 빌어먹을 착한 인간이었다. 그렇다면 그녀 자신은 어떤가? 열 살 이후로는 스스로 죄가 없다고 말할 수없는 존재였다.
죄 없는 사람? 그딴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책임지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를 뿐. - P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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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온순한 사람들이 평상시라면 생각하지도 못할 아이디어를 내게 만들었다. 1942년 10월 말에 오펜하이머는 "비밀"이라고 표기된 편지를 한 통 받았다. 그것은 옛 친구이자 동료인 바이스코프가 보낸 것이었는데, 당시 프린스턴에 와 있던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에게서 들은 놀라운 소식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파울리에 따르면, 노벨상을 수상했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얼마 전 베를린의 핵연구 시설인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Kaiser-Wilhelm Institute)의 소장으로 임명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파울리는 하이젠베르크가 스위스에서 강연을 하기로 계획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어서 바이스코프는 이 소식을 베테와다. 바이스코프는 "나는 스위스에서 하이젠베르크를 납치하는 편이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나 베테가 스위스에 나타난다면의논하고 나서 즉시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독일인들도 같은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라고 썼다. 바이스코프는 심지어 자신이 직접 그 임무를 맡겠다고 자원하기까지 했다.
오펜하이머는 즉시 바이스코프에게 답장을 보내 "흥미로운" 편지를잘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이젠베르크가 스위스를 방문할 것이라는소식은 이미 알고 있었고, 이 문제를 워싱턴의 "해당 당국과 이미 의논했다고 밝혔다.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이 진행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정부 당국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싶었습니다." 오펜하이머가 이 문제를 의논했던 "해당 당국"이란 부시와 그로브스였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바이스코프의 계획을 지지하지 않았다. 설령 하이젠베르크를 성공적으로 납치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연합국이 핵연구를 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을 나치스에게 알리는 결과가 될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펜하이머는 부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하이젠베르크가 스위스를 방문하는 것은 우리에게 드문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점을 언급하지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그로브스는 하이젠베르크를 납치하거나 암살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1944년에 그는 전략 정보국(Office of StrategieServices, OSS) 요원이자 전직 프로야구 선수인 모 버그(Moe Berg)를 스위•스로 보내 하이젠베르크의 뒤를 밟게 했다. 하지만 결국 암살을 시도하지는 않기로 결정했다.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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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게르는 오랫동안 꼼짝 않고 그녀를 응시했고 심장은 엄청난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입을 열어 그녀가 주는 음식을받아먹었다.
그녀는 한입씩 그에게 먹여주었다. 보통 그는 밥 먹을 때 누가 시중드는 걸 극도로 싫어했지만 지금은 리스베트가 무엇을 원하는지이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시중을 드는 건 무기력한 살덩어리에 불과한 그를 정해서가 아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을 낮추기 위함이었다.
좀처럼 보기 드문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한입에 적당한 양을 준비해놓고 그가 다 씹어 삼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빨대가꽂힌 잔을 가리키자 그녀가 차분한 손길로 음료를 마실 수 있게 해주었다.
밥을 먹는 동안 둘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 한입을삼키고 나자 그녀는 포크를 내려놓았고 더 원하는지 눈빛으로 물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이젠 됐어.
마침내 홀게르는 휠체어에 몸을 편안히 기대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리스베트가 냅킨으로 입을 닦아주었다. 문득 자신이 미국 영화에나오는 마피아 두목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최고의 존경을 받는카포 디투티 카피•••••  그녀가 손등에 키스해주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그 엉뚱한 이미지에 자기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었다.
"이 안에서도 커피를 마실 수 있어요?"
홀게르가 뭐라고 웅얼댔지만 혀와 입술은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했다.
"저쪽 구석에...... 커피가 있어."
"변호사님도 한잔 하실래요? 전처럼 설탕 없는 밀크커피?"
그가 머리를 끄덕이자 리스베트는 쟁반을 하나 들고 가 조금 있다
커피 두 잔을 받쳐들고 돌아왔다. 오늘 그녀는 평소와 달리 블랙커피를 마셨다. 홀게르는 그녀가 아까 우유 마실 때 쓰던 빨대를 커피잔에 꽂아놓은 걸 보고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홀게르는 할말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갑자기 혀가 굳어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대신 둘은 여러 차례 눈빛을 주고받았다. 리스베트는 너무나도 죄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가 먼저 침묵을 깼다.
"변호사님이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정말이에요. 살아 계시리라곤꿈에도 생각 못했죠. 그런 줄 알았다면 절대로••••• 진작 뵈러 왔을거예요"
홀게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서해주세요."
그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비록 입술이굳어 삐딱한 미소였지만. - P185

갑자기 그는 격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사실 동료인 닐스 비우르만에게 연락해 리스베트가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도여러 번 했었다. 하지만 무력감 때문인지 아니면 두려움 때문인지 매번 포기하고 말았다. 왜 아직 자신에게 힘이 있을 때 그녀의 후견 체제를 끝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는가! 그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와 계속 만나고 싶었던 자신의 이기심 때문이었다. 그는 이 복잡하기 그지없는 괴상한 소녀를 사랑했다. 한 번도 자식을 가져본 적 없는 그에게 딸 같은 존재였기에 그녀와 계속 접촉할 구실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렇게 소중한 그녀를 찾는 일이 그에겐 너무도 어려웠다. 이렇게 요양원에서 헌 가방처럼 축 늘어져 있는 주제에, 화장실에 가서바지 지퍼도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주제에 누굴 찾아나선단 말인가.
오히려 자신이 리스베트를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여전히 살아남았구나. 하긴 내가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능력 있는 아이였지.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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