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황당한 논쟁이 벌어졌을까요? 다시 ‘현생 인류의 정의 문제로 돌아와보겠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다른 사람들과 생김새가 꽤 다릅니다. 6만 년이나 고립돼 있었으니 고유한 특성이 많이 생겼겠죠. 그래서 만약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을 같은 종(인류)으로 포함시킨다면, 생김새가 몹시 다양한 다른 사람들고인류 포함)도 같은 종으로 인정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이 가능해집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게 바로 네안데르탈인입니다. 생김새는 비로 많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유럽인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생김새의 차이보다 월등히 그 차이가 큰 것도 아니거든요. 네안데르탈인의 생김새는 현생 인류가 지닌 생김새의 다양성 범위안에 충분히 포함됩니다. 네안데르탈인 역시 현생 인류의 일부가 될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사이에 자손이 나왔고, 그 결과 우리를 비롯해 지구 곳곳의 현생 인류의 몸 안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둘을 다른 종으로 구분하는게 과연 옳을까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인지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현생 인류의 아종)‘인지 논쟁이 그치지 않는 이유입니다. - P261
1960년대의 저명한 인류학자 레슬리 화이트(Leslie White)는 "인간이라는 유기체에게 문화란 체외 적응 기재다(Culture is the extra-somaticmeans of adaptation for the human organism)."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문화를 통해 환경에 적응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에 따른다면, 이런가정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문화와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몸을 통해 환경에 적응하기보다는 도구를 통해 환경에 적응하게 될 거라고요. 예를 들면 춥다고 두꺼운 지방층을 발달시킬 필요 없이, 따뜻한 난방을 해서 견디면 되거든요. 문화는 계속해서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으니, 굳이 몸으로 적용할 필요는 줄어들 것입니다. 논리적으로는 틀린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우리는 진정 진화의 법칙마저 초월하고 있을까요? - P267
하지만 21세기에 유전학 분야에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며 사정이 바뀌었습니다. 인간의 대표 게놈이 판독되고, 판독된 개인 게놈의 수도 나날이 늘고 있습니다. 이제는 여러 사람의 유전자를 서로 비교해 볼 수 있을 만큼 많은 유전 정보가 쌓였습니다. 이를 통해 어떤유전자가 얼마나 다양하게 변화했는지 추적해 보니, 기존의 주장과는달리 변화한 유전자가 하나둘씩 나타났습니다. 인간의 유전자는 계속 진화를 해 왔을 뿐 아니라, 놀랍게도, 문명이 발달하면서 더욱 그 진화속도가 빨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일으킨‘ 주체는 다름 아닌 문화였습니다. - P269
피부색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1999년에야 처음 발견돼 현재까지 10개 이상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륙마다 분포가 다릅니다. 피부색이 대략 비슷한 정도로 검거나 희다고 해도 그 유전적인 조합은 다른 것이죠. 유럽인의 흰 피부는 아시아인의 흰 피부와 다른 색깔을 띱니다. 그런데 유럽인의 흰 피부는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북쪽으로 퍼지고 나서 한참 뒤인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 비로소 처음 나타났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인류가 북쪽으로 진출한 직후는 지금으로부터 200만년전인데, 그보다 훨씬 뒤에 일어난 일입니다. 비타민D가설이 간단하게 들어맞지 않는 것입니다. 이에 학자들은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중위도 지방에 산 이후에도 인류는 사냥 등으로 고기와 생선을 풍부하게 먹었습니다. 이런음식에는 비타민 D가 풍부했고, 따라서 굳이 피부로 합성할 필요가없었습니다. 이미 피부에 있던 멜라닌 색소를 없앨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흰 피부도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농경이 시작된 1만년 전부터 이런 생활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고기와 생선 대신 곡물을 주로 섭취하게 되면서 비타민 D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 결과, 결국 부족한 비타민을 합성하기 위해 피부로 햇빛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택하게 됐습니다. 이제 자외선을 통과시켜 비타민 D를 만들 수 있는 흰 피부가 검은 피부보다 유리해졌고, 이 사람들의 피부는 하얘졌다는 것입니다. 농경이라는 문화적 요인이 흰 피부의 선택을 초래한 셈입니다. 문화가 진화를 대체한 게 아니라, 반대로진화를 촉진했습니다. - P270
플라이스토세와 비교할 때, 최근 5000년 동안 인류는 그 이전 인류에 비해 100배나 빨리 진화했습니다. 여기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다양합니다. 먼저 아주 신선한 가설로 ‘인구 증가‘를 내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1만 년 전 농경이 발달하며 인구가 늘어나자 유전자의 돌연변이수도 함께 늘었습니다. 돌연변이 발생률이 똑같더라도, 인구가 더 많으면 실제로 일어나는 돌연변이 수는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돌연변이 수는 다양성과 연결됩니다. 그래서 인류의 다양성도 늘어났습니다. 다양성은 진화의 전제 조건이기 때문에, 다양성이 높은 집단에서 진화는 활발해졌습니다. 이렇게 인류의 진화는 점점 빨라졌습니다. 인류 집단 사이의 교류도 진화를 촉진했습니다. 원래 인류는 초기부터 끊임없이 여러 지역과 유전자를 교환했습니다. 그러다 1만 년 전에 농경이 발달하고 그 후 국가가 세워지고 대규모 전쟁과 이주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인류는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대륙을 넘나들게 됐고, 교류가 폭발적으로 늘며 유전자의 다양성을 무서운 속도로 퍼뜨렸습니다. 의학의 발달도 다양성을 빚어내는 새로운 요인이 됐습니다. 예전에는 살아남지 못했을 사람의 유전자도 후대로 전수할 수 있게 되었기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농경 사회나 네안데르탈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단명했을지도 모를 만큼 심한 근시인 저도 이렇게 살아남아서 사회에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류 다양성의 숨 막히는 증가는 다시 전에 없던 또 다른 형태의 다양성을 낳았습니다. 바로 지역성입니다. 최근 티베트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서 고산 지역에 적응할 수 있는 유전자(EPAS1) 돌연변이를 발견한 것이 그 예입니다. 이 돌연변이는 불과 1000년 전에 생긴뒤 퍼져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화한 유전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이전에는 선택에 유리한 돌연변이가 나타나면 금세 인류 전체에 퍼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새로운 다양성과 지역적 환경이 어우러져 지역적인 특징으로 남게 됐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적응으로 문화와 문명이 생기면, 다시 그 대응으로 각기 크고 작은 다양한 환경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다양한 환경에 각각 인구 증가로 생겨난 다양한 특징의 인류가 적응하고 진화하면서, 인류의 형질은 한층더 복잡하고 다채로워졌습니다. - P272
첫째로, 진화의 기본 재료는 형질의 다양성입니다. 기존의 유전자와는 색다른 새로운 것이 출현하여 다양성이 생깁니다. 간단한 예를들면, 둥근 귀를 가진 집단에 돌연변이가 생겨서 뾰족한 귀가 생기게됩니다. 이전에는 둥근 귀, 한가지 유형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둥근 귀와 뾰족한 거의 두 가지 귀가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형질의 다양성과 연결된 재생산의 다양성입니다. 위의 예를계속 들어 보겠습니다. 만약 둥근 귀를 가졌던지, 뾰족한 귀를 가졌던지, 후손을 남길 확률이 똑같다면 진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둥근 귀를 가진 개체들보다 뾰족한 귀를 가진 개체들이 후손을 남기는 확률이 높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뾰족한 귀를 가진 개체들의 비율이 늘어나고, 따라서 뾰족한 귀를 일으키는 유전자의 비율이늘어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숫자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상대적인 차이, 그러니까 비율, 시장 점유율입니다. 진화는 본질적으로 집단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 P294
이렇듯 진화나 선택에 의미 있는 다양성돌연변이)은 우리에게 관찰되지 않으며 관찰되는 다양성은 선택에 중립적인 것뿐입니다. 이런 생각을 체계화한 중립 이론은 선택이 아닌 시간, 집단 크기 등에 의한 무작위적인 변화가 진화의 원동력(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18장 ‘미토콘드리아 시계가 흔들리다). 여기서 집단유전학이 크게 발달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선택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이 멀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서 선택은 또다시 화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바퀴 돌아온 느낌입니다. 최근에 부상하고 있는 후생유전학(epigenetics)의 발전은 진화론의 또 다른 장이 열릴 것을 예고합니다.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가 행복하게 웃을 일입니다. 라마르크는 획득 형질이 유전된다는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기린의 긴 목은 윗가지에 난 잎을뜯어 먹기 위해 목을 점점 늘리다 보니 목이 길어졌다는 설명입니다. 어쩌다 생긴 돌연변이 중에 긴 목이 있었는데 마침 환경에 들어맞아서긴 목이라는 돌연변이 형질을 가진 기린이 더 많은 후손을 남기게되었다는 다윈의 자연 선택과는 다른 설명이죠. 살아가면서 우리의 몸은 변합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여 근육을 키우거나, 성형 수술을 받아서 턱이 작고 뾰족해진다 해도 낳은 아이에게 커진 근육이나 작은턱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라마르크의 획득 형질 유전설은 틀린 이론으로 그동안 낙인찍혀 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후생유전학에 따르면, 획득형질이 그대로 유전될 수도 있습니다. - P296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로의 확산은 어떻게 이뤄졌을까요? 세계로의 확산은 민족의 대이동과 같은 의도적인 이동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구 증가와 인구압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확산의 배경에는 출산율의 증가 혹은 사망률의 감소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인구 폭발을 걱정하는 경우도 많지만, 정착 생활을 하지 않을 경우엔 출산율의 증가는 쉽지 않습니다. 이동 생활을 할 때 아이가 하나 이상이면 이동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이 하나를 낳아서 그 아이가 어느 정도 집단을 따라 혼자 힘으로 이동할 수 있게 돼야 그 다음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경우, 아이가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나이를 6~7세로 봅니다. 이동 생활을 하는 아프리카의 !쿵족부시먼)의 경우, 두 아이 사이의 터울은 5년 정도입니다. 터울이 그보다 짧다면 엄마는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이들 둘을 안고 메고 짐까지 든 채 이동해야 하므로 생활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인구 증가에 의한 확산이 출산율의 증가 때문이라면, 이 말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터울이 짧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둘 이상의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적인 기재가 마련됐다는 뜻입니다. 이 사회적인 기재는 ‘아버지‘였다는 가설(남자의 가족 부양설)과, ‘할머니‘였다는 가설(할머니 가설)이 제기돼 있으며 지금도 팽팽한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 P305
이 모든 호모속 종 혹은 집단이 현대 인류(호모 사피엔스)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 질문은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을 어떻게 보느냐에따라 두 가지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아프리카 기원론(Recent African origin of modern humans, 완전 대체론)입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보면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10만 년에서 6만 년 전정도에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새로운 종이라는 관점입니다. 이에 따르면 새로운 종인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로 확산하면서 이미 각 지역에서 살고 있던 원주 집단과 하나도 섞이지 않았으며(서로 다른 종에 속하므로), 우월한 문화와 언어에 힘입어 원주 집단과의 경쟁에서 이겼고, 원주 집단은 전멸했습니다. 최근 발견된 에티오피아의 허토(Herto)에서 나온 화석이 주축으로,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의 아종인 호모사피엔스 이달투(Homo sapiens idaltu)로 불립니다. 이 집단이 아프리카에서 확산하여 전 세계로 퍼졌으며, 원주 집단과 연계가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또 하나는 ‘다지역 연계론(Multiregional origin of modern humans, 혹은다지역 기원론)‘입니다. 다지역 연계론은 현생 인류가 한 곳에서 기원한새로운 종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현생 인류의 조상이 하나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각 지역의 집단끼리, 그리고 다양한 시점의 집단끼리 계속 문화와 유전자를 교환하면서 200만 년 동안 계속돼 왔다는 관점입니다. 그동안 멸종하거나 새로 발생한 집단들은 종 아래의 분류 단위인 집단일 뿐이지, 새로운 종이 발생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 P307
다지역 연계론의 문제는 호모 사피엔스가 궁극적으로 200만 년의 역사를 가진, 아주 오래된 종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모든 집단이 시공간을 아우르면서 지속적으로 유전자를 교환했다면, 생물학적인 종의 정의에 따라 유전자를 교환할 수 있는 모든집단은 하나의 종에 속하게 됩니다.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이후 모든 집단들이 하나의 종에 속하게 된다면 호모 에렉투스와 호모 사피엔스는 결국 같은 종이 되며, 종명 부여 원칙에 따라 호모 에렉투스도 호모 사피엔스로 통합돼야 합니다. 이에 따르면 100년을 넘게 사용해 온 호모 에렉투스 명칭을 종이 아닌 집단명으로 바꿔야 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200만 년 이상 지속돼 온 종으로 봐야 하며, 호모 하빌리스를 제외한 다른 모든 호모속 종은 호모 사피엔스가 돼야 합니다. 이는 논리적으로는 당연하지만, 관습의 힘을 무시할 수 없으므로 벽에 부딪힙니다. - P309
21세기에 들어서서 고인류학 연구는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데니소바인처럼 뚜렷한 화석 없이 DNA로만 존재하는 인류 조상도 발견되었습니다. 고DNA 추출 기법이 계속 발달하고 비용이 절감되면서 유전학은 고인류학에서 화석과 동등한, 어쩌면 더 중요한 자료가 될 전망입니다. 그에 못지않게 새로운 고인류 화석 역시 계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연구가 쌓여 가면서 우리는 근원적인 질문을 새롭게 묻고 대답을 찾습니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있게 되었는가?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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