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라게르시 동굴에서 보인 식인 행위의 흔적에 대해서는 지난 20년동안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물라 게르시 동굴의 네안데르탈인 화석에서 보인 뼈 손질 흔적은 크라피나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보이는 흔적과달랐기 때문입니다. 물라 게르시에서는 사람의 치아 흔적이 분명하게나 있는 손가락뼈도 발견되었습니다. 장례 의식이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과 장례 의식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습니다. 20세기 전반에 고인류의 식인 행위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과 대조적으로 20세기 후반에는 고인류의 식인 행위가 인정받기 어려웠습니다. 이 논쟁 속에서 네안데르탈인의 식인 행위에 대한 배경을 밝혀낸 것이 고기후 연구입니다. 12만 년 전 남프랑스의 기후를 연구하면서 네안데르탈인에게 닥친 큰 시련이 알려졌습니다. 잘 알려졌듯이 네안데르탈인은 수만 년 동안 빙하시대를 성공적으로 산 사람들입니다. 이들은눈 덮인 계곡에서도 매머드나 순록처럼 큰 몸집의 동물을 사냥할 수 있었습니다. 빙하시대에 몸집이 큰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서는 큰 몸집이필요합니다. 네안데르탈인은 다부진 근육질 몸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지탱하기 위해 하루 평균 3,000~5,000칼로리 정도를 먹어야 했던것으로 추정됩니다. 3,000~5,000칼로리는 프로 운동선수의 하루 필요열량과 맞먹습니다. 이렇게 성공적으로 수렵 적응을 해오던 네안데르탈인에게 큰 시련이닥친 것은 13만 년 전 기온이 잠깐 상승했던 무렵입니다. 이때 평균 기온은 현재보다도 섭씨 2도가량 높았습니다. 기온이 따뜻해졌는데 어째서 시련이 되었을까요? 광활한 초원 지대는 눈 깜짝할 새에 우거진 숲으로 변했습니다.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숲은 매머드같이 거대한 몸집의 동물보다는 토끼같이 작고 빠른 동물에게 유리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에게 고기를 제공했던 몸집 큰 동물들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매머드 대신 토끼로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은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물라 게르시의 네안데르탈인 화석의 치아에는 성장기에 영양부족을 겪은 흔적이 보입니다. 굶주림 끝에 네안데르탈인이 선택한 방법은 같은 네안데르탈인을 먹는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 P124
빙하기는 유례없는 어려움을 가져왔습니다. 그 빙하기를 살아남지못한 고인류 집단도 많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에게 정복당했다는 주장도, 네안데르탈인의 인구가 줄어들어서 현생인류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였기 때문에 절멸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네안데르탈인의 인구가 줄어든 이유에는 열악한 환경이 있을 것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의 출생률 저하로 절멸했다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열악한 환경의 결과입니다. 출생률의 저하에는 환경이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네안데르탈인뿐만이 아닙니다. 에티오피아의 헤르토Herto 에서는 20만 년전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로 알려진 고인류 화석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들에게는 머리뼈에 섬세한 칼자국이 나 있습니다. 단지 머리뼈 속의 두뇌를 먹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머리뼈를 바가지 모양으로 다듬어 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칼자국입니다. 돌칼로 다듬은 흔적은 어른의 머리뼈에서도, 아이의 머리뼈에서도 보였습니다. 식인의 흔적에서는 다른 사람을 죽여서 신나게 먹는 희희낙락한 모습이 아니라 이것을 먹지 않으면 굶어 죽게 되는 극한적인 상황에서 절박한 마음으로 먹는 비장한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았던 그들이 우리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 P126
량부아가 특별한 병을 앓고 있던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라는 새로운 종의 일원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섬 왜소화현상island dwarfism으로 머리와 몸집이 작아졌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거의 200만 년 전부터 고인류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자바인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인도네시아에 살던 호모 에렉투스중 한 집단이 섬에 갇히게 되면서 섬 왜소화 현상으로 인해 몸과 머리가 작아졌고 6만 년 전의 작아진 모습의 새로운 종으로 진화했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섬 왜소화로 몸집이 작아진 코끼리가 발견되는 한편 섬 비대화로 몸집이 커진 쥐도 발견됩니다. 포식자가 없어진 환경에서 몸집이 커지는 종이 있는가 하면 어떤 좋은 먹을 것이 줄어들어서 몸집이 작아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살던 호모 에렉투스 중 일부가 플로레스섬에 고립되어 섬 왜소화로 머리와 몸집이 작아진 새로운 화석종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되었다면 그 시기는 공교롭게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sumatra 의 토바Toba 화산이 폭발한 시기와 맞물리게 됩니다. 7만5,000년 전에 일어난 토바 화산의 폭발은 인도네시아와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 P131
작은 몸집과 작은 머리의 고인류는 우리가 여태껏 생각해 왔던 인류의 다양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합니다. 작은 머리로 석기를 만들어쓰고 죽은 사람을 매장하고, 벽화를 그릴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20세기의 답은 결단코 ‘아니요‘였습니다. 고인류학계 대부분이 받아들인 정설에 따르면 벽화와 같이 고도의 인지 능력이 있어야 하는 행위는호모 사피엔스의 특유하고 독특한 행위였기 때문에 당연히 ‘호모 사피엔스급의 몸과 머리‘를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머리가 커야만 가능하다고 생각되던 추상적 사고, 창의력, 복잡한 도구의 제작, 예술 등이 작은 머리로도 가능하다면 도대체큰 머리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머리가 커야만 가능하다고 생각되던일이 작은 머리로도 가능하다는 발견은 새로운 질문을 만듭니다. 인류의 큰 머리가 생물학적으로 특별한 것은 분명합니다. 맹장처럼 이전 기능을 상실하고 이제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라고 하기에는 큰 머리가 너무 대단합니다. 사람처럼 큰 머리를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큰 머리를 만들고 유지하려면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류의 머리가 커지는 것은 수백만 년 동안 지속된 경향 중 하나입니다. 그동안 환경은 점점 척박해져 갔습니다. 큰 머리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빙하기의 척박한 환경에서 확보해야 했습니다. 큰머리를 가지고 있는 아기를 출산하는 과정은 지극히 힘들며,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큰 머리를 돌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합니다. 큰 머리는 심지어 쉬고 있는 동안에도 기초대사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렇게 제작비와 유지비가 엄청난 비싼 장기를 빙하기라는 힘든 환경에서 계속 유지할 만큼 중요한 두뇌는 어떤기능을 했을까요? 도구를 만들고 예술 활동을 하고 고도의 인지 기능을수행하기 위해 큰 머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큰 머리는 어떤 기능을하는 것일까요? - P137
심리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사회적 두뇌 가설을 주장합니다. 사회적인 동물일수록 머리가 크다는 내용입니다. 사람의 머리는 부피가를 뿐만 아니라 그 안을 채우는 뇌세포가 쭈글쭈글한 주름을 이루면서 표면적을 최대한 늘렸습니다. 지극히 사회적인 동물인 사람이 서로에 대한 정보와 서로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정보를 저장하고 꺼내 쓰는 장기로서 큰 두뇌가 진화했다는 가설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뇌가 작은 고인류 집단은 복잡한 사회연결망이 없었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큰 두뇌를 생물학적으로 연구하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람 두뇌와 다른 동물 두뇌를 비교하여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조직, 단백질, 유전자를 찾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큰 두뇌도 설명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우리는 지금 큰 머리와 지혜, 문화를 하나로 묶어 생각해 왔던 관념이 해체되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사람다운 지혜와 문화를 만들어 낸 사람다운 머리는 큰 머리가 아니라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머리라는 가설이 힘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양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막상 다양한 인류를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P139
그런데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까지 확산된 지역에서 발견되는 네안데르탈인 화석은 네안데르탈인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남유럽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은 육식만 한 것이 아니라 채식도 충분히했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동물성 먹거리를 거의 섭취하지 않았을 정도입니다. 이 사실을 알아낸 과정도 재미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인골을 발굴하면 깨끗하게 손질한 후에 분석하게 됩니다. 물론치아도 포함됩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치아를 깨끗하게 닦아서 손질했습니다. 치석도 당연히 닦아냈습니다. 칫솔을 사용해서 깨끗하게 솔질한 다음 드러난 치아의 모양을 관찰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닦아낸 치석에 중요한 단서가 있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치석에서 정보를 추출할 수 있는 방법이 그동안 개발된 것입니다. 고인류학 연구자층이 넓어지면서 이전에는 버렸던(?) 자료에서 중요한 정보를 추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치석도 그중 하나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게되었습니다. 스페인의 엘 시드론 동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치석을 분석한 결과 의외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치석에 있는 자료를 분석해 보니 버섯, 잣, 이끼 등 다양한 식물성 먹거리의 DNA가 발견된 것입니다. 물론 동물성 위주의 식생활을 했던 네안데르탈인의 치석 자료도 풍부합니다. 벨기에의 스피 네안데르탈인의 치석을 분석한 결과 이들이 예상대로 동물성 단백질 위주의 식생활을 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면 같은 유럽에서 살면서도 스피 네안데르탈인은 동물성 식생활을, 엘시드론 네안데르탈인은 식물성 식생활을 했다는 것으로 단순하게 결론을 내리면 될까요? 그보다는 각 네안데르탈인 집단의 구성원이 모두 똑같은 식생활을 하지는 않았다는 결론에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스페인의 엘살트El Salt 동굴에 남겨진 네안데르탈인의 똥 화석을 분석한 결과 어떤 네안데르탈인은 채식 위주로, 어떤 네안데르탈인은 육식위주로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그날 하루만큼은) 같은 집단에 속한 네안데르탈인이라도 서로 다른 식생활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은 이들이 먹거리에 서로 다른 취향 내지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 P149
네안데르탈인의 두뇌 용량은 현생인류보다 큽니다. 두뇌 용량의 증가는 물론 인류 진화 전반적으로 보이는 특징입니다. 그리고 큰 두뇌 용량은 일반적으로 우수한 인지 능력과 연관됩니다. 그렇지만 네안데르탈인의 두뇌 용량이 크다고 해서 현생인류보다 더 똑똑하다는 결론을내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네안데르탈인의 큰 두뇌는 달리 해석되었습니다. 두뇌 용량은 크지만 두뇌 세포가 현생인류처럼 촘촘하고 빼곡하게 배열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막상 인지 능력은 현생인류보다 못하다는 해석이 대두되었습니다. 큰 두뇌 용량은 추운 지방에서 살기 위한 적응이라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또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이 주로(평균적으로 몸집과 머리가 큰 남자이었기 때문에 두뇌 용량이 큰 것으로 관찰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모두 하나하나 설득력이 있고 가능성이없지는 않은 해석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설명이 네안데르탈인이 현생인류보다 못하다‘는 전제를 결론으로 받아들인 다음에 제시되었다는것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이 뒤떨어진 인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은 많은연구에 의해 도전받고 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은 벽화를 그렸습니다. 맹금류를 사냥하여 발톱으로 장신구를 만들어 몸에 걸쳤습니다. 죽음을 슬퍼하고 죽은 이를 위해 장례를 치렀습니다. 꽃잎을 뿌리면서 죽은이를 애도했습니다. 사슴 발가락뼈에 기하학적인 문양을 새겼습니다. 이 모두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네안데르탈인은 할 수 없고 현생인류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행위입니다. - P151
이들의 유전자 정보는 이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무엇보다유전적인 다양성이 낮았습니다. 전 세계를 아우르고 있는 현생인류보다는 멸종 위기에 부닥친 고릴라의 유전자와 엇비슷한 정도의 다양성이었습니다. 그렇지만 10~20명으로 이루어진 집단 안에서도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Y염색체보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에서 보이는 다양성이 컸습니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다양한 곳에서 왔다는 뜻입니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이동했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처에서 2만 년 전까지도 살고 있던 데니소바인보다는, 비슷한 시기에 유럽 반대쪽에서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과 더 비슷했습니다. 이제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연구는 대표적인 머리뼈 몇 개를 놓고 또 다른 고인류 화석종과 비교하는 차원에서 한 걸음 나아가 하나의 집단을 이루는 개개인에 대한 연구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연구가 점점 진행되면서 우리가 바라보는 네안데르탈인의 모습도 그에 따라 변화해 왔습니다. 단순히 이랬다 저랬다하는 게 아니라 단편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다양하고 입체적인 모습을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네안데르탈인은 지극히 ‘사람다운‘ 고인류 종이었습니다. - P153
하지만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데니소바인은 과연 존재했을까요? 여태껏 데니소바인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고이제 와서 이게 무슨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데니소바인은 뼈가아닌 유전자로만 존재하는 고인류입니다. 새끼손가락뼈 반 마디와 이빨 몇 점만 가지고 데니소바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뉴스 매체 등에 등장하는 데니소바인의 얼굴은 발견된 얼굴뼈 위에 근육의 추정치를 덧입혀서 과학적으로 추정한 복원 모형이 아니라 오히려 상상도에 가깝습니다. 데니소바인이 실제로 존재했던 인류 집단인지조차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개체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A형, B형, O형과 같은 혈액형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혈액형은 유전자를 바탕으로 합니다. 지역별로 많이 분포하는 혈액형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O형은 중남미에 많고 B형은 중앙아시아에 많습니다. 그렇지만 같은 혈액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지는 않습니다. B형 혈액형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특정 지역에서 더 많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B형 혈액형인‘ 이라는 집단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유전자가 널리 퍼졌었다고 해서 데니소바인이 널리 퍼졌다는 이야기가 바로 성립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데니소바 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데니소바인‘이라는 집단이 존재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데니소바인‘이라는 집단이 과연 존재하는지는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유전자가 곧 집단이 아니고 곧 종도 아닙니다. 데니소바인이 네안데르탈인처럼 맨눈으로 구별할 수 있는 형질을 가진 집단인지는 앞으로의 연구로 확인해 나가야 합니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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