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일어나지 않은 일

힐러리 클린턴은 무슨 일이 있었나what Happened』에 이렇게 썼다. "2016년 11월 8일 이후 나는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단 하나의 질문을 골똘히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는 독특한 책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몇 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출간된 이 책은 선거에 패배한 후보가 왜 자신이 실패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한 결과물이다. 그 핵심에는 2016년 선거에서 무언가 이상한 일이, 미국 정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협과 거래의 한계를 넘어서는 특이하고 일탈적인 일이 일어났다는믿음이 존재한다.
설령 2012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아니라 밋 롬니가 승리했더라도 오바마가 이게 무슨 일이야What the Hell?』 같은 책을 쏠리는 없을것이다. 패배는 미국 정치의 자연스러운 일부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존 케리가 설령 2004년 대선에서 승리했더라도 재선에 실패한 조지W. 부시가 법치 파괴 행위에 골몰하며 극렬지지자들에게 동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이 미국 제46대 대통령 당선인 조 바이든에 대한 연방의회의 공식적인 인준을 막기 위해 국회의사당을 무력 점거했다가 진압된 사건이 있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이를 두고 역겹고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옮긴이.) 클린턴의 책에서, 그리고 선거 이후 진보주의자와 ‘트럼프 절대반대파never-Trumpers‘가 쏟아낸 고뇌에 찬 논평에서 묻어나는 건 2016년 선거가 2012년이나 2004년과는 다르다는 믿음이다. 우리는 망했는데, 왜그렇게 된 건지 알아야 했다. - P9

바텔스의 생각은 이렇다.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지난 대선들에 관한 자료를 주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선거가 이상한 선거였는지 골라보라고 한다면, 당신은 이상한 선거를 고를 수 있겠는가? 비록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가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기이한 인물 중 하나이긴했지만, 2016년 대선의 결과는 2012년, 2008년, 2004년 대선의 결과와 엇비슷해 보인다.
2016년 선거 결과와 관련해서 놀라운 것은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트럼프가 30% 차로 패하거나 20% 차로 이기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투표한 사람 대부분은 2012년에 선택했던당을 2016년에도 똑같이 선택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찰할 점이 없다는것은 아니다. 결정적으로,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백인 유권자들은 트럼쪽으로 급격히 기울었고, 주요 주체들에서 그들이 과잉 대표되며 트럼프 당선시켰다. 그러나 숫자로만 보면 2016년 대선은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전형적인 경쟁이었다.
유권자들이 트럼프를 다른 공화당 후보처럼 대했다는 사실은 정당 양극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극심한 양극화는 2016년 선거를 2012년 롬니와 오바마 사이의 경쟁이나 2004년 케리와 부시 사이의경쟁과 같은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정치적 정체성이 너무 강해서 사실상 마음을 바꿀 만한 어떤 후보도, 정보도, 조건도 없었던 셈이다. 우리는 우리 편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게 뭐가 됐든 거의 모든 것을 정당화할 것이고, 그 결과는 기준, 신념, 책임감 없는 정치다. - P15

문제는 시스템이다. 유독한 시스템은 선량한 개인들을 손쉽게 타락시킨다. 유독한 시스템은 우리에게 가치를 배반하라고 강요하는 게아니라, 가치를 줄세워서 우리가 서로를 배반하도록 한다. 각자에게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것이 집단으로 행해질 때는 파괴적인 것이 된다. - P16

문제는 나름 합리적인 복잡한 시스템들이 종종 ‘논리적인 방식‘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망가진 나사나 빼먹은 정기점검을 발견하면, 사고의 원인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가 관리 비용 삭감으로 주식시장에서 이득을 보았던 사실을 놓친다면, 사고 원인 파악도 재발방지에도 실패한 셈이다. 데커는 시스템적 사고란 "어떤 한 부분도 고장 나지 않았을 때나 어떤 문제도 없어 보일 때도 어떻게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미국 정치는 이와는 다르다. 왜냐면 이 시점에서 미국 정치가 망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진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유권자에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 정치 시스템은 각자의 동기에 따라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합리적인 행위자들로 가득 차 있다. 잘 기능하도록 애쓰는 각 부분이 모여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전체가 되어버렸다. 최악의 인물이 성공을 꾸며낸다고 해서 그것이 시스템이 망가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이해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 만약 시스템을 바꾸고자 한다면, 우리는 바로 이 점을 알아야 한다. 데커는 우리가 어떻게 탐색해나가야 하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례들을 살펴보면, 좁은 범위의 기준을 잘 지키고 수행한 결과 사고가 난다는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사고는 현재의 정치·경제·사업 구조 속에서 주어지는 보상을 받기 위해 성과 기준을 잘 따랐기 때문에 일어난다. 어떤 것도 고장 나지 않고, 그 누구도 실수하지 않고, 아무도 규칙을 위반하지 않아도 재난은 벌어질 수 있다. - P19

불행하게도, ‘정체성 정치‘라는 말은 정치적 무기로 사용된다. 특히 역사적으로 소외된 집단의 구성원들의 정치적 행위를 묘사하는 데 가장 자주 사용된다. 만약 당신이 흑인이고 경찰의 잔혹성을 걱정한다면, 그것은 정체성 정치다. 만약 당신이 여성이고 남성과 여성의 임금격차에 대해 걱정한다면, 그것도 정체성 정치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전국민 신원 조사를 폭정이라고 비난하는 시골에 사는 총기 소지자거나, 높은 세율은 경제적 성공을 가로막고 부자를 악마화한다고 불평하는 역만장자 CEO이거나, 공공장소에 예수의 그림을 내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이라면? 그것은 그저 선량한 구식 정치일 뿐이다. ‘정체성 정치‘는 교묘하게 소외된 집단에만 따라붙는다.
이렇게 사용되는 ‘정체성 정치‘라는 말은 뭔가를 드러내기보다는 가린다. 이는 정치적 토론의 장에서 더 강한 집단의 관심사를 합리적이고 적절하게 보이게 하고 약한 집단의 관심사는 이기적이고 특수한 호소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사회적 약자의 관심사를 축소하고 신뢰성을 떨어트리게 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우리는 정체성을 칼날처럼 휘두르면서 렌즈로서의 정체성을 잃었고,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려는 시도속에서 우리의 눈은 멀게 되었다. 우리는 자신을 볼 눈을 하릴없이 찾아 헤매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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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윈체스터에게 편지를 써서 저서 《대영제국의 유산Outposts)의오디오북을 얼마나 즐겁게 들었는지 모르겠다고 인사했다.
나는 책의 세계에 살며, 무언가를 읽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다. 아니,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읽는 데 바쳤다. 하지만 지금은 오른쪽 눈은 ‘부재중‘이고 왼쪽 눈은 왼쪽 눈대로 오래전부터 문제가 있는 터라 읽는일이 쉽지가 않다. 어렸을 때 왼쪽 눈을 맞은 일이 있는데, 그 일로 백내장이 생겼고 그 뒤로 줄곧 시력이 아주 낮다. 주로 사용하는 오른쪽 눈의시력이 10일 때는 상관이 없었지만, 지금은 문제가 된다. 평소 책을 읽을 때 쓰는 안경이 왼쪽 눈의 시력에는 충분하지 않아 돋보기를 써야 하는데, 그러자니 읽는 속도가 더디고 페이지 전체를 한번에 훑어볼 수가없다.
케이트와 서점으로 나가 대형 활자로 인쇄한 서적을 몇 권 샀다. 하지만대형 활자 서적의 대다수가 입문서나 로맨스 소설인 것을 보고는 의기소침해졌다. 대형 활자 서적 구역에서 괜찮은 책을 단 한 권도 찾을 수 없었다. 시각에 장애가 있으면 지적으로도 장애가 있는 줄 아는가 보다. <타임스>에 이 문제에 대해 격렬한 칼럼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오디오북은 범위가 넓지만, 평생을 독자로 살아온 나는 남이 읽어주는 것을 듣는다는 일 자체가 내키지 않는다. 다행히도 사이먼 윈체스터가 이 법칙의 예외가 되었다. - P190

검고 불투명한 커다란 무언가가 중심시를 흐리는 것이 보이는데, 위족이 돌출한 아메바처럼 생겼다. 이것은 팽창했다 수축했다 하면서 율동적으로 움직이지만, 그 테두리는 면도날처럼 예리했다. 손가락으로 찔렀더니 블랙홀에 집어삼켜진 것처럼 손가락이 사라졌다. 화장실 거울에 내모습을 비쳐 보는데, 오른쪽 눈으로는 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것은 어깨와 턱수염 아래쪽뿐이었다. 글 쓸 때는 펜촉이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외출했을 때는 길 다니는 사람들의 하반신만 보였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서 더블린을 돌아다니는 "펑퍼짐한 바지 한 벌"로묘사되는 아티포니 씨가 떠올랐다. 길은 온통 치마와 바지, 상체 없이 움직이는 다리와 엉덩이들뿐이었다(이로부터 며칠 뒤에는 암점이 더 커져 사람들 발만 보였다).
물론 이 현상은 왼쪽 눈을 감았을 때만 나타난다. 양쪽 눈을 다 쓸 때면시력은 상당히 ‘정상‘이어서 지난 몇 달 동안의 상태보다도 훨씬 좋다. 이제는 오른쪽 눈의 시각이 왼쪽 눈의 시각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중심시만큼은 가망 없이 완전히 멀었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된 것이 얼마나 해방감을 주는지 모르겠다. 이 레이저 치료를 몇 달 전에 받았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하지만 단안시가 되고 보니 입체시는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데, 시야의 상반부에서 3분의 2까지 사라졌다. 하지만 하반부는 손상되지 않아서주변시는 어느 정도 남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의 하반신은 입체시로 보이고, 상반신은 완전 평면의 2차원으로 보인다. 물론 하반신을 남은 중심시로 볼 때면 이 또한 평면으로 변한다. - P197

모든 것이 평평하게 보이는 것이 싫고 입체감을 잃었다는 사실이 슬펐지만, 가끔은 나의 2차원 세계가 고마울 때가 있다. 방이나 조용한 거리, 가로로 놓인 탁자가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구성된 정물로 보일 때면, 나는 화가나 사진가가 평면 캔버스나 필름에 담은 아름다운 작품으로 상상하곤 한다. 이렇게 구성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의식하면서 그림이나 사진을 감상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그림이나 사진 작품이 입체적 착시 효과은 주지 못하지만, 이런 면에서은 더 아름다울 수 있다. - P213

손상된 것은 깊이감과 거리감만이 아니었다. 때로는 공간에 나열된 고체들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 너무도 중요한 원근감마저 소실되는 경우도 있다. 롱아일랜드에 사는 친구의 헛간을 찾아갔을때였는데, 처음에는 그곳이 헛간인지 몰라보았다. 하늘에 새겨진 도형같은 가로선, 세로선, 대각선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원근감이 생겨서 사진이나 그림 같은 평면이기는 했어도 헛간이라는 것이 인지되었다.
깊이나 거리 지각 능력을 상실한 뒤로 나에게는 가깝고 먼 사물이 결합하거나 융합하여 기이한 변종 괴물이 되는 일이 생겨났다. 하루는 이상하게도 손가락 사이에 잿빛 거미줄이 보여서 뭔가 했더니, 내가 1미터 아래의 잿빛 카펫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발이 손의 일부가 되어 수평으로 보였다). 그 순간 겁에 질려 친구의 옆모습을 보았는데, 친구의 눈에서 어린가지 같기도 하고 은백색 나무토막 같기도 한 것이 뻗어 나오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것은 길 건너편 나무에 붙은 가지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리고 유니언스퀘어에서 길을 건너는 남자가 보였는데, 그 사람은 어깨에 거대한 토목 구조물을 짊어지고 있었다(미치지 않고서야 저런 물건을 지고 갈 수가 있나…).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구조물은 그 사람으로부터 10미터 뒤에 있는 다른 구조물에 붙어 있는 것이었다. 또 소방차 꼭대기가 내 차 지붕에 꽂힌 적이 있는데, 그 소방차는 내 차에서 10여 미터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를 알고 고개를 움직여 운동 시차로 확인했는데도 이상하게 착시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혼잡한 도로의 차량 사이에서 보았던 높이 30미터가 넘는 거대한 평저선은 내 바로 앞에 있는 자동차의 측면 거울이었고, 한 여자의 이상한 초록 우산은 그 여자로부터 30미터 뒤에 서 있는 나무였다. 정말 무서운 일도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침실에서 책을 읽는데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가 머리맡의 독서등 위로 추락하려는 것이 ‘보였다‘. 두 물건이 최소한 1~2미터는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갑자기 일어나는 착시를 무슨 수로 막겠는가.
이제 더는 내 앞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오지도 움푹 꺼지지도 않는다. ‘앞‘이나 ‘뒤‘를 바로바로 지각하는 능력도 사라지고 중첩감과 원근감을 토대로 추론할 수 있을 따름이다. 공간은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며 내가 드나들고 마음 내키는 대로 배회하던 입체의 영역이었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고 그 안에 살았으며,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공간 속에서 나와 관계를 맺었다. 이제 나에게는 그 공간이 시각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 P215

우리는 주변시를 고마워할 줄 모른다. 평소에는 그 존재를 거의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보고 응시하고 초점을 맞출 때 사용하는 것은 중심시다. 하지만 중심시를 에워싸고 하나의 맥락에서, 즉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더 넓은 세계에서는 어떤 위치에 속하는지를 알려주는것은 주변시다. 보고 있는 대상이 움직일 때 우리가 의지하는 것이 바로주변시다. 주변시가 어느 쪽에서 예상치 못한 움직임이 발생하는지 경고하면, 중심시가 그 경고를 받아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오른쪽 눈의 주변시에서 큼직한 한 부분(케이크를 크게 잘라낸 조각만 한, 40도 이상 되는)이 잘려나갔다. 대략 코 오른쪽으로는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눈의 중심시는 이미 잃었지만 남은 주변시가 오른쪽에서 일어나는 일을 암시해주어 미리 주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상실했다. 오른쪽으로는 자각이 전혀 없어서 시야에 무엇이 나타나건 뜻밖의 사태요 놀라운 일이 된다. 그래서 사람이나 물건이 오른쪽에서 불쑥 나타날 때면 하릴없이 당황하고 만다. 심지어는 쇼크 상태가 되기도 한다. 공간의 큼지막한 한 부분이 나에게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 공간 안에 무엇이 되었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함께 사라졌다. - P219

헐이 말하는 심맹은 시각적 표상과 기억의 상실만이 아니라 본다는 생각 자체를 잃어버려서 ‘여기‘, ‘저기‘, ‘마주 보기‘ 같은 개념이 의미가 없어진 상태다. 생김새라든가 시각적 특징 같은 개념이 사라진 것이다. 그는 허공에 손가락으로 그려보지 않는 한 3이라는 숫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3의 ‘운동‘ 표상은 있으나, ‘시각적 표상은 없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처음 나타났을 때는 아내나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릴 수 없고 좋아하는 장소와 정든 풍경이 마음속에 그려지지 않아서 몹시 괴로웠다. 하지만 그것이 실명에 대한 자연의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자 놀랍도록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실 그는 시각적 표상 능력의 상실을 다른 감각 기능이 강화되는 다음 단계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여긴 듯하다.
완전히 맹인이 된 지 2년 뒤, 헐의 시각적 표상과 기억 능력은 선천적 맹인과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헐은 심오한 종교적 색채를 띠며 때로 요하네스(1542~1591, 에스파냐의 신비주의자이자 시인, 수도원 개혁 운동가옮긴이)를 연상시키는 언어로 희열과 묵종으로써 심맹 상태에 자신을 내맡겼다. 그는 심맹 상태란 "정법한 자율의 세계, 스스로 존재하는 세계요..… 혼신으로 본다는 것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집약적인 상태로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헐이 말하는 "혼신으로 본다"는 것은 주의를 돌리는 것, 무게중심을 다른 감각으로 이전하는 것, 그리하여 다른 감각기관들이 새로운 힘과 자양분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껏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빗소리가 어떻게 새로운 풍경의 윤곽을 보여주는지 말한다. 비가 잔디밭이나 정원의 수풀을 두드릴 때와 정원과 차도를 가르는 담장을 두드릴 때각각 다른 소리가 난다고.

비는 모든 것의 윤곽을 드러내주며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에 다채로운 빛깔의 담요를 드리운다. 간헐적인 소리로 가득하며 그래서 파편들로 존재하는 세계와 달리, 꾸준히 떨어지는 빗소리가 만들어내는 청각적 경험에는 연속성이 있어서 하나의 상황 전체를 하나로 묶어내며..… 원근감을 제시하며 세계의 한 부분과 다른 부분이 실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 P230

인지신경학에서는 지난 몇십 년 사이에 사람의 뇌가 통념만큼 불변적인 장치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이 분야의 선구자 헬렌 네빌은 언어를 배우기 전에 귀가 들리지 않은 사람들(즉, 선천적 농아나 2세 이전에 농아가 된 사람)의 뇌에서 청각을 담당하는 부분이 퇴행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이들의 청각 기관은 살아서 기능을 수행하는데, 다만 그 기능과 활동이 새로운 범주, 즉 시각 언어를 처리하는 기능으로 변신한다. 네빌의 용어로 말하자면 ‘재할당‘된 것이다. 선천적 맹인이나 아주 어려서 맹인이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보면, 시각피질의 일부영역이 재할당되어 청각과 촉각을 처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렇게 시각피질 일부가 재할당되면서 맹인의 청각과 촉각 외의 감각기관은 시력이 있는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리한 기능을 수행한다.  - P232

헐의 경험이 시각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일것이라고 여긴 것이 잘못이었을까? 적어도, 일방적이었던 것일까? 내가 반응의 한 형태만 과하게 강조하다가 이와는 전혀 다른 여타 유형의 반용도 있을 수 있음은 그만 간과해버린 것일까?
이런 생각이 떠오른 것은 몇 해 뒤, 졸탄 토리라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심리학자로부터 편지를 받았을 때였다. 그의 편지는 실명에 관한 것이아니라 뇌에서 정신을 만드는가, 정신이 뇌를 만드는가 하는 문제와 의식의 본질을 다룬 자신의 책에 관한 이야기였다. 편지에는 그가 스물한살에 사고로 실명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실명에 적응하는 방법으로 받은 조언은 시각에서 청각으로 전환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반대 방향으로움직여서 내면의 눈을 키우는 훈련을 받자고, 그래서 시각적 표상 능력을 가능한 한 끌어올리자고 결심했다.
이 훈련은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마음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그 이미지를 유지하고 조작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얻었는데, 어느 정도였느냐면 그에게는 예전에 상실한 시각 표상만큼이나 사실적이고 강렬하게 느껴지는 때로는 그보다도 사실적이고 강렬한 가상의 시각 세계를 건설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표상화 능력은 실명한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까지도 가능하게 해주었다.
"저는 우리 집 다중 박공지붕의 홈통 전체를 저 혼자 힘으로 교체했습니다. 정밀하게 반응하는 정신적 공간의 힘만으로요." 그는 이렇게 썼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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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수 원장을 한 번만 더 인용하게 해주신다면, 그 사람들은 결국 가서 그 주정수 원장이 자신의 동상을 세우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주원장의 동상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을 보았기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주원장의 동상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실상 그분이 원생들의 대표를 뽑아다가 평의회라는 기구를 설치한 바로그때부터였다고 할 수 있거든요. 주원장의 동상은 아마 이 섬이 남아 있는 한 영원히 저들의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저 사람들의 두려움은 아마 직접적으로 원장님께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 자신의 배반에 관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쉽게 말해보오. 자신들의 배반이라는 건 또 뭐요?"
원장은 비로소 조금 기세가 누그러드는 어조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주정수 원장의 동상이란 실상 그 자신이 앞장서 나서서 만들어 세웠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동상 건립은 애초 그가 만든 평의회 위원들 입에서부터 발기 동의가 나온 일이었습니다. 동상은 원생들을 대표하는 평의회 위원 자신들이 스스로 지어바친 것이었단 말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가는 원장님께선 좀 의심스러우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 섬에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좀더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이 섬 안에서는 비단 주정수 원장 시대뿐만 아니라 다른 어느 때라도 그런 일이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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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사람들은 입체시가 시각세계에 무엇을 더해줄 수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고 살지만, 우리는 그것을 만끽한다. 한쪽 눈을 감아도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입체들은 엄청난 변화를 생생하게 인지한다. 이 세계가 공간감과깊이감을 갑자기 잃고 트럼프 카드처럼 납작해진다는 것을 말이다. 어쩌면 우리의 입체시가 더 예리하며, 우리가 주관적으로 더 깊은 세계에 사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색이나 형태에 더 민감한 사람이 있는것처럼, 우리에게는 입체시가 더 민감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입체시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는 하찮은 것이 아니다. 입체시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하고도 놀라운 시지각적 전략을 이해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시감각 의식과 의식 그 자체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 P139

많은 동물종에게 입체시는 생물학적 전략으로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포식동물의 눈은 일반적으로 전방 주시형인데, 양안의 시야가 많이 겹친다. 반면에 포식동물의 먹이가 되는 동물들은 눈이 머리 양옆에 있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것이 파노라마식의 시야를 확보해주어 뒤에서 다가오는 위험까지도 포착할 수 있다. 귀상어는 무시무시한 포식동물인데, 망치처럼 생긴 머리 모양 덕분에 전방을 향하는 눈이 넓게 벌어져 있다. 실로 귀상어는 살아 움직이는 초입체경이다. 또 하나의 놀라운 전략을 갑오징어에게서도 볼 수 있다. 갑오징어는 넓게 벌어진 두 눈이 큰 각도로 파노라마 시야를 갖지만 누군가의 공격을 받을 때는 하나의 특별한 근육이 작동하여 두 눈이 바로 앞으로 몰리면서 양안시로 바뀌어 치명적인 촉수로 공격할 수 있다. - P144

우리 같은 영장류의 전방 주시형 눈에는 다른 기능도 있다. 가운데로모인 여우원숭이의 큰 눈은 어둡고 빽빽한 밀림의 군엽 속에서 죽은 듯움직이지 않는 채로 주위를 명확하게 분간하기 위한 입체시를 가능하게해준다. 착시와 속임수가 넘치는 밀림에서 천적의 위장에 넘어가지 않기위해서는 입체시가 필수불가결하다.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능수능란 그네를 타는 긴팔원숭이의 공중곡예도 입체시 덕분에 가능한 능력이다. 긴팔원숭이가 외눈박이라면 살아남기 어려울 수도 있다. 상어나 갑오징어가 외눈박이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입체시는 동물들에게 대단히 유익한 능력이다. 하지만 대가는 따르게 마련이어서 파노라마 같은 넓은 시야를 희생했으며, 양 눈의 협응과 정렬을 위한 신경과 근육 작용이 따로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두 시각 이미지의 시차로 깊이를 계산하는 뇌 기전도 별도로 발달해야 했다. 이렇듯ㅠ자연계에서 입체시는 그저 속임수 장치로 보아 넘길 만한 것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 능력이 없어도 사는 데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그것이 없기 때문에 이점을 누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 P145

수의 경험에서 확인되는 것은 성인 뇌에서 시각 영역은 가소성이 커서 양안세포와 회로가 생후 초기의 결정적인 시기에 조금이라도 살아남았다면 한참 뒤에라도 재활성화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런상황에서 기억에는 입체시가 거의 혹은 전혀 남아 있지 않을지 몰라도 잠재적 입체시 능력은 존재하므로, 눈의 위치가 적절하게 교정된다면 (예상치 못한 순간 불쑥) 소생할 수도 있다. 바로 그런 일이 50년에 달하는 휴지기 끝에 수에게 일어났다는 점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 P163

그 신경학적 기반이야 어떤 것이든 간에 시각 세계가 확대됨으로써 수에게는 실질적으로 감각기관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인데,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다. 입체시는 계속해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있다고 수는 편지에서 이야기한다. "거의 세 해가 지났는데도 새로 얻은 시각이 저에게는 여전히 기쁨과 놀라움을 줍니다. 어느 겨울날이었는데,
매점에서 점심을 간단히 때울 요량으로 강의실 건물을 나섰지요. 그런데 몇 발짝 뛰다가는 바로 멈췄어요. 탐스럽고 촉촉한 눈송이들이 저를 둘러싸고 느릿느릿 떨어지고 있었어요. 저는 눈송이들 하나하나 사이의 공간을 볼 수 있었고, 그 모든 눈송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답게 3차원의 군무를 추고 있었어요. 과거에는 눈이 저보다 조금 앞에 있는 한 장의 평면 안에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제 자신이 내리는 눈 속에, 눈송이들 한가운데에 있다고 느꼈어요. 점심도 잊은 채 저는 몇 분 동안 내리는 눈을 지켜보았고, 깊은 환희감에 압도되었어요.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답니다. 특히 생전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말이지요." - P164

암, 어떤 암이 되었건, 암에 걸린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 순식간에 뒤바뀐다는 뜻이다. 암이라는 진단을 받는 순간, 얼마가 되었건 평생 가는 검사와 치료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일상이 앞에 놓여 있으며, 미래에 관한 것이라면 무조건 보류하는 심정으로 살아가게 된다. 겨울의 첫날인 오늘, 간 기능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 야수가 내 간으로 침투했을까? 그 갈고리 발톱이 내 생명을 움켜쥐고 있을까? 내가 흑색종으로 죽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나는 종양과 흥정했다. 너는 내 눈을 가져라. 꼭 그래야겠다면. 하지만 나머지는 남겨다오. - P174

2002년은 악몽이었다. 월드컵으로 뜨거웠던 그해 함성 속에서 우리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꿈을 이루는순간, 30년을 조이던 긴장의 끈이 확 풀리면서 바로 그 순간 시험에 들었는가 보다. ‘사형수 아버지‘에서 ‘대통령 아버지‘가 되었다. 관객들에게는 드라마틱한 역전극으로 보이겠지만 아이들에게는 현기증이 나는 롤러코스터게임과 같았을 것이다. 그래서 냉정하고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었을것이라고 추측한다. 이해는 괴롭고 아픈 일로 점철된 일생 중에서도 가장견디기 힘든 고난의 시간이었다.
그들은 어제까지 아버지로 인한 피해자였는데 하루아침에 가해자가 되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아들들이 아버지의 일생에 불명예를 안기다니. 몇 차례 사선을 넘으면서 힘들게 이 자리에 와 혼신의 힘을 다하는 고령의 아버지를 보면서 어떻게 그런 처신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도여러 번 당부했건만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다. 아들들이 한없이 야속했다.
원대한 꿈을 갖고 모진 고난을 헤치며 대통령이 된 거목 아래서 가족은 늘 외롭게 마련이다. 그동안 나는 아이들의 고민과 아픔에 신경을 쓸 겨를조차 없었다. 입 바른 말 잘하기로 유명했던 미국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의 말이 정말 실감난다.
"아버지는 모든 장례식에서 자신이 주검이 되기를 원했고, 모든 결혼식에서는 신부가 되기를, 모든 세례식에서는 아기가 되기를 원했다." - P373

‘주여, 저의 기도가 부족했습니까? 저희가 교만했나요?‘
나는 기도로 나날을 보냈다. 부끄러워 국민들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다음 날 일정이 많은데 잠을 못 이루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남편을 보면서 나는 내가 죄인이라고 가슴을 쳤다. 셋째에 이어 둘째까지 구속되었을때는 숨이 막혔다. 물 한모금 넘어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겠는가. 우리내외는 말을 잊었다. 각자의 서재에서 따로 시간을 보내다 늦은 밤에야 안방으로 갔다. 북악산 기슭의 적막한 관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캄캄한 심연이었다. 나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평생 열심히 읽던 신문을 끊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었다. 어찌 뉴스에 귀를 막을 수 있겠는가. 아들들에 대한 분노를 삼키는 남편을 보며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두려웠다. 차라리 나에게 ‘당신은 뭐했느냐? 라고 역정을 냈다면 덜 괴로웠을 것이다. 매섭게 추궁을 했더라면 차라리 후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침묵했다. 그 대신 남편은 급속도로 쇠약해졌다. 의료진은투석을 권했다. 퇴임 후 쓰러지더라도 대통령이 하루 몇 시간씩 투석하느라 누워 있을 순 없었다.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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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준비된 대통령‘이었던 반면에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가 대선 4수를 하는 긴 세월 동안 나는 한 번도 내가 영부인이 되면 무엇을 하겠다는상상을 해보지 않았다. 그런 상상을 허락할 만한 주변 조건이 아니었다. 그저 만약에 내게 기회가 온다면 어려운 이웃들과 여성의 권익을 신장하는일을 하고 싶은 일념뿐이었다. 여성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함께하고 평민당부총재를 지낸 오랜 인연의 박영숙 선생, 한신대 김성재 교수 등과 의논했다. 아동과 여성을 위한 일을 큰 방향으로 정했다. 경제 위기로 인해 굶는아이가 많다고 했다. 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일이 가장 시급했다.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해서 단체를 만들기로 했다. 봉사 단체인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과 딸들에게 희망을 주는 ‘여성재단‘은 이렇게 태어났다.
나는 제2부속실 인사를 하면서 지역과 종교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집권 1년 동안 본관 제2부속실에는 호남 출신이 없었다. 그리고 기독교인이 전혀 없었다. 나는 모태 신앙으로 기독교인이지만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의 대통령 비서실 소속 제2부속실이었으므로 공사를 분별하다 보니 그리된 것이었다. 청와대 직원들은 이런 현상들을 거의 혁명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 P327

그는 회담을 앞두고 특사로 두 차례 평양을 방문한 임동원 국정원 원장에게 특별 주문을 했다.
"김 위원장을 만나거든 인물 연구를 해 오세요."
임 원장의 보고는 놀라웠다. 국제 정세에 밝고 영특하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주입된 ‘망나니‘와는 판이한 인물평이었다.
김 위원장이 말했다.
"힘들고, 두려운, 무서운 길을 오셨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도 도덕이있고 우리는 같은 조선 민족입니다. 절대 섭섭하지 않게 할 테니 염려하지마십시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데 우린 2박 3일간 대답을 줘야 합니다."
그는 연장자에 대한 예의를 깍듯이 차렸다. 그러면서 정곡을 찌르는 말을 서슴없이 터뜨렸다. 나는 그가 버거운 대화 상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들었다.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가슴에서 서러움이 물안개처럼 자욱하게감돌았다.
당신들과 교류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지난 30년간 우리가 얼마나힘들고 두렵고 무서운 세상을 살았는지 알기나 하시나요. - P337

기자회견에서 한 언론이 베르게 위원장에게 질문했다.
"수상을 위한 로비가 있었는가?"
"있었다."
"어떻게?"
"주지 말라는 반대 로비가 있었다."
심지어 4월 총선 유세장에서는 아직 받지도 않은 노벨상을 두고 한나라당이 네거티브 캠페인을 벌였다. 그것도 모자라 낙선한 원외위원장들이 노벨상 수상 저지 원정 시위를 떠났으니 이를 부끄러워서 차마 누구에게 말할 것인가. 심지어 수상이 결정된 후에도 정치권과 일부 언론에서는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데 수상식 참석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마음 약한 수행원들이 자진해서 비행기를 타지 않는 해프닝도있었다.
우리는 12월 8일 가족, 그리고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동지들을 초청해 대한항공 특별기를 타고 노르웨이 오슬로로 향했다. 12월의 북유럽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대낮임에도 거리는 한밤중이 어두웠다. 사계절이분명하고 낮과 밤이 확연한 우리가 얼마나 축복받은 나라인지 새삼 감사했다.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시상식장의 꽃은 주로 해바라기였다. 햇볕정책의 상징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있었다. 국왕이 오찬을 주최하고 저녁에는조수미 씨가 출연한 축하 콘서트가 열렸다. 다음 날 스웨덴 스톡홀름으로가 스웨덴 의회에서 연설하고 13일 스웨덴 국왕 오찬에 참석한 뒤에 귀국했다.
끈질긴 로비설 제기로 인해 노벨 위원회 게이르 룬데스타드Geir Lundestad사무총장이 KBS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비합법적인 로비는 없었다‘고 밝혀야 했다. 그럼에도 끝내 한나라당이 평화상 반납 주장까지 하자 노벨 위원회는 ‘매우 무례하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참다못해 나선 이들이 스웨덴과 노르웨이 교민들이다. 이들은 노벨상이 로비로 좌우되는 상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이후로 한국인들은 노벨상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한국이라면 넌더리를 내고 있다." 과학 분야에서 심심찮게 수상하는 이웃 일본은 스톡홀름에 상설 연락사무소를 두고 일본인 과학자들의 업적을 홍보하는 데 주력한다. 즉 그들은 합법적인 로비를 상시적으로 하고 있다. 비교하기 서글프지만 우리가 본받아야할 부분이 아닌가. - P346

나는 소록도를 두 번 방문했다. 주민자치회장이 ‘영부인 방문‘을 간곡하게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우리 세대는 한센병을 문둥병이라고 하여 가혹하게 소외시킨 마음의 빚을 지니고 있다. 나는 흔쾌히 가기로 했다. 소록도 가는 길은 무척 멀었다. 비행기로 광주까지 간 후에 거기서 다시 헬리콥터를 타야 한다. 그러기로서니 가도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는 한하운 시인의 <소록도 가는 길>만큼이나 힘들겠는가.
한센병은 전염되지 않는 병원균이다. 더 이상 환자가 발생하지 않아서1992년 종료가 선언되어 사회의 관심으로부터도 멀어졌다. 지금 그곳에 있는 분들은 손이 뭉그러지고 실명의 후유증을 앓는 고령층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더욱 절실히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나는 소록도를 찾은 첫 대통령 부인이 되었다. 1984년 5월 이곳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보다 무려 15년도 더 늦은 때였다. 2000년 5월에 내가 방문했으니 그들은 오래 기다려온 대통령 부인이 반갑고, 또한 그동안의 삶이 서러워서 많이 울었다. 나는 그들의 뭉그러진 손을 붙잡고 함께울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나에 대한 언론 보도는 냉혹했다. 소록도에 대해서는 모두 침묵했다. 오히려 <동아일보>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나는 본의 아니게 길을 막히게 한 주범이 되었다. 성남에 있는 서울비행장 가는길에 경찰에서 교통 통제를 했던 모양이다. 사실 나는 과거의 ‘미행‘만큼이나 ‘경호‘가 불편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삼엄한 경호로 인해 오히려 민폐를 끼칠까 염려해 삼간 일도 종종 있었다. 대통령 부부 경호는 논스톱이 원칙이라고 한다. <동아일보>의 그 보도는 내가 왜 길을 나섰는지, 행선지는 어딘지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날 길이 막혀 짜증이 났던 시민들이 팔순 가까운 대통령 부인이 소록도 가는 길이었음을 알았다면 ‘아, 그랬구나‘ 하고 이해해주지 않았을까. - P354

이러한 날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삶에 감사한다. 길고 험한 고난의 길이었지만 남편과 한 몸이 되어 서로 믿고 의지하며 굳건히 잘 걸어온 날들이었다. 남편의 평생 소원인 한민족의 평화가 빨리 정착되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또한 나의 지극한 염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이 차별받지 않고동등한 인격체로 인정받으면서 그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대한민국이 강자가 약자를 배려하고 보듬어 안아주는 따뜻한 사회가되기를. - P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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