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생들은 말이 없었다.
밥을 먹으려 하지도 않았고 잠을 자려고 하지도 않았다. 거적을 뒤집어쓴 채 공사장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누워 뒹굴기만했다.
그것은 참으로 끔찍스러운 광경이었다.
허탈감은 조원장도 마찬가지였다.
조원장 역시 처음 한동안은 그 엄청난 자연의 배반 앞에 원망스런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그는 다만 주체할 수 없는 허탈감 속에 넋을잃은 사람처럼 멍청스레 며칠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 며칠이 지나고 나자 조원장은 비로소 자신에 못지않은 수천 나환자의 무서운 절망감에 눈길이 미치기 시작했다.
원생들의 절망감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떤 위험스럽기 그지없는 원망과 증오감으로 변색되어가고 있었다. 원생들의 원망과 미움이 누구를 표적으로 겨누게 될 것인가는 물으나마나였다.
원생들에게는 옳은 표적이 찾아질 리 없었다. 배반의 원흉은 물론 바람을 몰아온 자연의 심술이어야 했지만, 원생들의 미움은 그토록 먼 표적을 들춰낼 여유가 있을 수 없었다.
원생들의 표적은 그들에게 가까이 있는 조원장 자신일 수밖에 없었다. 조원장 자신도 원생들이 그렇듯이 그 자연을 원망의 표적으로 삼을 수는 없었다.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조원장은 차츰 자신에 대한 무서운 복수심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문둥이는 남 위해 일하는 법이 없노라고 충고해준 것은 아마도그 황희백 노인의 진심이 분명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둥이들의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그런 생각일랑은 앞으로 절대 지니지 않겠노라고 한 조원장 자신의 장담은 아마도 모두 사실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조원장은 생각이 분명했다. 그는 이제 황장로 말마따나 자기 아닌 누구를 위해 다시 일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오직 스스로의 복수심 때문에 어떻게든지 그자연의 횡포를 견뎌 이겨내고 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은 집념 때문에 다시 일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 P252

그러는 가운데도 투석 작업은 꾸준히 계속되어, 가라앉은 둑을 다시 솟아오르게 하는 데는 또 한번 3개월의 세월이 흘렀다. 이번에도 돌둑이 수면 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며칠 동안뿐이었다.
둑은 다시 가라앉아버렸다.
가라앉으면 솟아올리고, 솟아올려놓으면 다시 가라앉는 싸움이 끝없이 되풀이되었다. 제1, 제2, 제3 세 개의 방조제가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여기저기서 교대로 가라앉아 들어갔다. 제1 방조제에서 10미터가 무너진 것을 쌓아 이어놓으면 제2방조제에서 20미터가 물러나앉았고, 그것을 어렵사리 이어 발라놓으면 이번에는 제3방조제 쪽에서 다시 30미터가 가라앉아 들어갔다.
원생들도 이젠 원장과 마찬가지로 그 싸움 자체에 대한 집념이 쌓여갔다. 원생들도 이제 땅에 대한 소망 같은 건 둘째 문제였다. 틈만나면 물속으로 모습을 숨겨 들어가려고 하는 그 돌둑과의 싸움에만 정신이 팔려 지냈다. 땅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싸움을 이기고 말겠다는 집념이 그들에게 돌을 던지고 또 던지게 했다. 돌둑은 벌써 인간이 자연을 다스리기 위한 무의지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것은무서운 복수심을 가지고 인간의 의지에 끈질기게 거역해오는 두려운 생명체였다.
하지만 그런 싸움이 무한정 계속되다 보면 지쳐나는 쪽은 역시 인간들 쪽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심신이 지치다 보면 무엇엔가 터무니없는 곳에까지 의지의 손길을 뻗치게 마련이었다. - P262

문둥이들도 벌써 그걸 알아차리고 있는데, 주정수 원장혼자서만 유독 그것을 모르고 있었던 게 탈이었더란 말이지. 난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구만. 한데 이번에는 조원장이 또 그토록 답답한 사람일 줄을 누가 알았겠나. 묘한 것은 글쎄, 원장으로 오는사람마다 이 한 가지 일에만은 뜻밖에도 늘 미숙한 데가 많은 점이거든. 도대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분별해내는 데는 이 문둥이들보다 늘 깨우침이 늦단 말야. 그래서 오늘 밤처럼 또 이렇게 섭섭한 일들이 벌어지고 ••••••.
"그만두시오."
흉물스런 산짐승이 미리 사람의 혼을 뽑아놓기 위해 멀리서부터 빙빙 주위를 좁혀들어오고 있는 듯한 노인의 사설에, 조원장은 그만 견딜 수가 없어지며 소리를 버럭 지르고 나섰다. 참혹스런 일을 저지르려 할 때면 언제나 조용조용 옛날 얘기들을 들추어내는 것이 노인의 버릇이라고 했던가. 조원장은 노인의 그 음침스런 예감이 깃든 목소리가 마치 함정에 걸려든 날짐승을 다루는 거미줄처럼 끈적끈적 온몸을 옭아매 들어오고 있는 기분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을 견디고 있을 수가 없었다. 사냥에 성공한 거미가 먹이의 가슴팍에 독침을 꽂아넣기 전에 포획물의 생명이 충분히 시들기를 기다리듯, 노인은 원장의 영혼과 육신의 힘을 서서히 마비시켜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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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의 진보적인 유권자들이 어떻게 해서 공화당원들이 메디케어에 생각이 열려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는쉽다(실제로 많은 공화당원이 메디케어에 생각이 열려 있었다). 그러나오늘날 어떤 정당이 더 많은 건강보험 보장을 지지하는지를 두고서 유권자들이 혼란스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두 정당 사이의 선택은 훨씬 더 선명해졌다.
또 다른 예로 임신중단 문제를 보자. 1982년 상원의원 조 바이든은 ‘로 대 웨이드 사건Roe v. Wade‘의 판례를 뒤집을 수 있는 헌법 수정안에 찬성했다. 그는 당시 그 투표를 두고 "미국 상원의원으로서 내가 던진가장 어려운 투표"였다고 말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바이든은 자신의 양육 과정을 들어 그 결정을 설명했다. "여러분이 뭐라고 표현하고싶으시든 간에, 나는 아마도 내 배경의 피해자이거나, 부산물일 것입니다." 그는 또한 정치적 순간의 산물이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로 대 웨이드‘ 사건 판결에 반대했지만, 그의 부통령 넬슨 록펠러는 뉴욕주 주지사로서 임신중단 제한 조치를 폐지했다. 1976년 공화당 정강은 임신중단을 "우리 시대의 가장 어렵고논쟁적인 질문들 가운데 하나"라고 일컬었다." 이어 "우리 당에는 필요한 경우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대법원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고, 모든 임신중단을 금지하는 개헌으로 대법원의 결정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원들도 있다"라고 하며 공화당 내부의 분열을 인정했다. 의회에서도 비슷한 수의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이 임신중단에 반대하는 투표를 했다. 여론조사에서도 민주당원이든 공화당원이든 상관없이 임신중단은 어떤 경우라도 합법이어야 한다고 말할 가능성과 어떤경우라도 불법이어야 한다고 말할 가능성이 같았다.
오늘날 바이든은 ‘로 대 웨이드‘ 사건 판례를 뒤집으려는 보수 진영의 노력에 대해 "그것은 잘못된 것이며, 유해합니다. 그리고 우리는그것을 막아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공화당 정강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말도 하고 있지 않다. 공화당의 2016년 정강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확고히 하며, 태어나지 않은 아이도 침해 불가한 생명에 대한 기본권을 가지고있음을 단언한다." 임신중단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을 지지하는 공화당원들을 인정하기는커녕, 그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민주당원들을 공격한다. 또한 그 정강은 "민주당의 임신중단에 대한 거의 무조건적인 지지와 임신중단에 대한 기본적인 제한에 대한 강경한 반대는 그들을 미국국민의 생각과 극적으로 멀어지게 한다"라고 선언한다. 건강보험 문제와 마찬가지로, 1970년대 공화당 내에는 임신중단에 찬성하는 사람이있었고, 또한 임신중단에 반대하는 유권자는 민주당원들 사이에서 비빌 언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런 여지가 없다. 민주당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지지하고 공화당은 반대한다. 정치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어도 이것은 알 수 있다. - P43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하스연구소Haas Institute의 인종정치 프로젝트 책임자인 이안 헤이니 로페즈lan Haney Lopez는 20세기 미국을 ‘헤렌볼크Herrenvolk -지배 민족만을 위한 민족주의-옮긴이 자유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다수 인종 집단에게는 민주주의이지만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매우다른 정치 제도다. 헤이니 로페즈는 "헤렌볼크 자유 민주주의는 백인들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사회의 부를 어떻게 하면 계속 아래쪽으로, 바깥쪽으로 확산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며 번영을 공유하고 확장했습니다. 백인들에게 민주주의는 매우 잘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자유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니었다. - P55

사실상 남부연합의 정치적 위계질서가 남부에서 복원되면서 미국은 백인 우월주의의 힘과 정치적 거래주의의 힘을 합치는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심지어 전국 단위의 민주당이 옛 영토를 회복하고자 하는인종주의자들에게 이끌리지 않았을 때도, 영토가 종종 군벌들에게 내맡겨지는 것과 같은 이유로 남부는 군벌들의 손에 내맡겨졌다. 그리고 남부 민주당은 권력자들의 이익에 봉사했다. 전국 단위의 민주당은 뉴딜 정책의 의회 통과, 대통령 선거 승리, 인프라 건설에 신경을 썼다. 전국 단위 민주당은 그들에게 중요한 표를 줄 수 있는 남부 민주당과 함께 일하는 것과, 탈당해서 민주당 국정 과제를 방해할 수 있는 남부 민주당에 도전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남부 민주당을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했다. - P56

남부와 민주당의 연합은 결코 순수하게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정말로 민주당원이었고, 당에 대한 충성은 지역 정체성으로굳건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최초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었다. 따라서 공화당에 대한 남부의 적대감은 뼈에 새겨진 것처럼 확고했다. 민주당은 부자에게서 가난한 사람에게로 부를 재분배하는 것을 지지했다(북부는 부유했고 남부는 가난했다). 프린스턴대학교교수 하워드 로젠탈Howard Rosenthal은 "20세기가 될 무렵, 남부 민주당은 민주당 내부의 좌파를 대표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포퓰리스트였습니다. 당시 부의 재분배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북부에서 걷어서 가난한 남부에 주는 것이었습니다. 의회에서 인종 문제는 의견 불일치의 영역으로서 논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인종은 의견 불일치의 영역이 되었다. 민주당은 부유한 북부 백인들에게서 가난한 남부 백인들에게 부를 재분배하는 것만을 원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부유한 백인들에게서 가난한 흑인들에게로 부를 재분배하기를 원했다. 더군다나 1948년부터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내린 군대 내 인종 분리 폐지 명령과 함께 민주당은 남부와의 기본 협약을 배반했다. ‘주의 권리‘를 정강으로 내걸고 출마한 배리 골드워터가 공화당원으로서는 처음으로 옛 남부연합의 많은 부분을 대변했다.
민주당이 어떻게 민권을 포용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복잡하다. 이 이야기에는 린든 존슨이나 휴버트 험프리와 같은 정치인들의 이상주의뿐만 아니라, 북부에서 비백인 유권자들을 포함하기 시작한 선거 연합체들이라는 냉정한 계산법이 포함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경제학적 진보주의의 논리적 결론에 따라, 왜 비백인 미국은 계속 가난한지에 대한 관심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 P58

 카바서비스는 "결국 하원 투표에서와 마찬가지로 상원에서도 민주당 의원들보다 공화당 의원들이 훨씬 더 높은 비율로 민권법의 토론 종결과 통과에 찬성표를 던졌다. 공화당의 경우 5분의 4가 넘었지만, 민주당의 경우 3분의 2에 불과했다"라고 썼다.
그런데 왜 민주당이 민권법을 통과시킨 정당으로 여겨지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민권법을 통과시킨 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다수당이었고, 대통령도 민주당 소속이었다. 그들은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딕시크랫과의 동맹을 끝내기로 했다. 존슨의 특별보좌관으로 일했던 빌 모이어스Bill Moyers는 존슨이 민권법에 서명한 날 밤 침실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 대통령을 보았던 일을 회상했다. 존슨이 "난 우리가 앞으로 오랫동안 남부를 공화당에 넘겨주게 되었다고 생각하네"라고 말했다고 모이어스는 기억한다."상원 다수당 원내 대표 시절 남부 민주당에 의한 인종적 평등 봉쇄를 시행했던 존슨의 말이 옳았다. 민주당의 남부 지역에대한 장악력이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지만, 바로 그때가 약해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 P59

남부는 민주당 텃밭이었지만, 한때 진보주의의 비전이었던 주의 재분배와 계층 상승이 흑인에게까지 확대되자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 남부 민주당은 공화당과 타협할 이념적 이유가 있었고, 전국 단위 민주당과는 타협해야 할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남부 권력은 민주당을 원래보다 덜 진보적으로 만들었고, 공화당의 의회 권력을 원래보다 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두 당이 그 시대의 가장 깊은 정치적 분열을 두고 갈라지는 것을 막았다.
여기서 우리는 혼합 정당들 시대의 표 분할의 힘과 목적을 확인할수 있다. 남부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화당에, 의회와 주지사 선거에서는 보수적인 딕시크랫 민주당에 투표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국 정치가 날카로운, 심지어는 폭력적인 의견 차이로 분열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러한 싸움이 정당과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속될 수 없었고, 그러지도 않았다. 민주당이 민권을 포용하고 공화당이 그 법안에 반대하는 지도자 뒤로 결집하기로 한 것은 남부 보수주의자들이 공화당에 합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이것은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의 발판이 되었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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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은 지름길이다. 미국정치학회 보고서는 정당을 ‘통치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라고 했는데, 정당이 "조치를 위한 대안들 사이에서 적절한 선택권을 유권자에게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우리는 세금의 적정 수준을 모르고, 시리아 상공에 비행 금지 구역을 만드는 게 옳은 건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민주당, 공화당, 녹색당 또는 자유당을 지지하는지는 안다. 당을 선택하는 행위는 국가가 직면한 광범위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가치들을 정확한 정책 판단으로 바꿀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람들을 선택하는 행위다. 보고서의 저자들은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있어서 공적인 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기뢰는 선거에서 정당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다."라고 썼다. - P29

「모든 정치는 전국적이다All Politics Is National」라는 분석에서, 에모리대학교의 정치학자 앨런 어브래머위츠Alan Abramowitz와 스티븐 웹스터 Steven Webster는 20세기 후반에 어떻게 그런 행동 양식이 약해지고 또다른 천 년의 경계를 넘으면서 사실상 사라졌는지 보여준다. 어브래머위츠와 웹스터는 경합이 이뤄지는 하원 선거 지역들을 조사한 결과, 1972년과 1980년 사이 하원 선거에서의 민주당 몫과 대통령 선거에서의 민주당 몫 사이의 상관관계가 0.54 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1982년과 1990년 사이에 그 수치는 0.65 까지 올라갔다. 2018년경에는 0.97에 달했다!  40년 사이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는 하원의원 투표에 있어 ‘도움이 되긴 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수준과는 거리가 있는‘ 지지 예측변수에서 ‘거의 완벽한‘ 지침으로 바뀌었다.
표를 나눠주는 것은 두 정당에 대해 편안함을 느낄 때 가능하다. 즉, 한 당에 표를 몰아준다는 것의 이면에는 두 정당에 대한 편안함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있다.  - P35

언뜻 보기에 이 두 가지 경향은 상반된다. 어떻게 유권자들이 투표는 이전보다 당파적으로 하면서 당에서는 더 멀어질 수 있을까? 정당에 대한 일관된 지지와 정당에 대한 충성도는 연결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여기서 고려해야 하는 핵심적 개념은 ‘부정적인 당파성‘이다. 이것은 지지하는 당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 아니라 반대하는 당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에서 기인하는 당파적 행동을 말한다. 만약 당신이 지지하는후보가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단순 무식하거나 사회주의자인 상대 후보의 당선이 두려워서 투표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부정적인 열성 당원이었던 것이다. 많은 이가 부정적인 열성 당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6년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한 조사에따르면, 자칭 무당과 유권자들은 부정적인 동기에 더 이끌렸다. 공화당이나 민주당 성향을 보이는 대다수 무당파 유권자들은 자신의 성향에대한 주된 이유를 설명할 때 상대 당의 정책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조적으로 어느 당의 정책을 지지하기 때문에 그 당을 선택했다고말하는 사람은 각 집단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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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수는 공원 시설을 훼손할 염려가 있다 하여 원생들 마음대로 공원 지역을 출입하는 것을 금지했다. 공원을 언제나 깨끗이 단장시켜놓고 섬을 찾아오는 손님만 있으면 어김없이 그곳으로 데리고 가서 이 섬에 건설한 그 자랑스런 원생들의 낙원을 증거해 보였다.
도대체 모든 것이 배반의 연속이었다. 자신들의 낙원을 꾸미기 싫어 목숨을 내걸고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의 행작으로부터, 원생들의 휴식과 위안을 위해 만들어진 공원이 오히려 그것을 누릴 사람들에게 모셔지고 있는 데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가지도 배반 아닌 일이 없었다.
공원은 정말 원생들에게 모셔지고 있었다. 그렇게 모셔지고 있는 공원이 섬을 구경 온 사람들에게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받고 있었다. 공원은 원생들을 위해 원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정수와 섬을 다녀간 엉뚱한 구경꾼들의 것이었다. 섬에 꾸며졌노라는 낙원 역시 원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정수와 섬을 다녀간 사람들에게만 있었다.
소록도의 환자들에겐 낙원이 없었다. 환자들에게 낙원이 없는 한 소록도엔 낙원이 없었다. 그들의 이기적인 소문 속에만 소록도의 천국은 존재하고 있었다.
명분은 믿을 것이 못 되었다. 섬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섬사람들은 그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상욱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명분이 아니라 그것을 갖게 되는 과정이었다. 명분이 과정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명분이 제물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천국이 무엇인가. 천국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마음으로 얻을 수 있은 것이어야 했다. - P157

나 역시 당신들의 처지가 위로를 받아야 할 것인 줄은 너무도 잘알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주님의 위로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위로를 받는 것이 당신들의 권리일 수는 없습니다. 위로만 받으려고 하지 마시오. 당신들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이겨 넘어서려 하지 않으면 주님께서도 언제까지나 당신들을 위로만 해주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고 하신 말씀이야말로 당신들에겐 보다 큰 위로가 되리라는 점을 깨닫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말을 끝내고 난 원장은 이제 장로들의 반응 같은 건 기다려볼 생각도 없다는 듯 한동안 검은 하늘로 시선을 흘리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자신이 할 일을 다한 사람처럼 조용히 뱃머리를 섬쪽으로 돌려세웠다. - P180

"도대체 절더러 지금 무얼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원장은 거의 신경질적인 어조가 되고 있었다.
"무얼 어떻게 하다니? 원장이 내게 그걸 물어서 쓰나?"
황장로가 원장을 나무랐다.
"그야 원장이 할 일이란 간단하지. 원장은 그저 앞으로도 뱃심 좋게 우리 문둥이들을 부려주기만 하면 되는 거지. 원장은 문둥이들만잘 부려주면 되는 게야. 지금까지 이야기도 내 그래서 원장한테 무슨 도움이 될까 하고 귀띔을 해준 게 아닌가 말야."
"••••••."
"겁먹지 말고 죽도록 일을 부리라 이 말이지. 그렇게 지내온 놈들이라 하려고만 들면 무슨 일이고 끝장을 보고 말 위인들이니까. 게다가 원장은 이번 일에 대해 추호도 망설일 필요가 없는 명분이 있지 않나. 그건 원장이 우릴 부려댈 명분도 명분이지만 우리들 쪽에서도 지금까지 감당해온 숱한 고난들 가운데서 모처럼 명분다운 명분이 서는 일이거든. 하지만 원장이 먼저 겁을 집어먹은 꼴을 보이면 모든 건 끝장이야. 저 위인들 가슴 속에 숨겨진 독기는 아닌 게아니라 제 몸을 던져 둑을 쌓아올리라면 능히 그렇게 할 수도 있을것이지만, 원장이 겁을 먹은 기색을 보이고 보면 그건 하루 아침 동안에도 잔인스런 심술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니까……"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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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에서 시지각과 시각적 표상의 유사점을 관찰한 사례는 최소한 한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1년, 영국의 신경과 의사 헨리 헤드와 고든 홈스는 후두엽에 미미한 손상을 입은 이로 인해 완전 실명은 아니지만 시야에 맹점이 생긴 환자 다수를 진료했다. 그들은 환자들에게 상세한 질문을 던져서 맹점이 나타난 지점이 심상이 나타난 지점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1992년에는 마사 패라가 이끄는 연구진이 후두엽절제술로 인해 한쪽 눈의 시각을 부분적으로 상실한 한 환자의 사례를 보고했다. 그 환자는 마음의 눈의 시야각도 축소되었는데, 시각을 상실한부위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시각적 표상 기능과 시지각 기능에서 최소한 일부 요소는 분리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사례는 1986년에 머리에 부상을 입은 뒤 완전색맹이 되어 나와 상담했던 화가 씨의 경우였다.  1 씨는갑자기 색 지각 능력을 상실하고 비탄에 빠졌지만, 색을 기억할 수도 마음속에 그려볼 수도 없다는 사실을 더더욱 고통스러워했다. 심지어 이따금씩 나타나는 시각편두통 증상에서도 색이 빠져 있었다. 1 씨 같은 환자들의사례는 지각 기능과 표상 기능이 시각피질의 위쪽에서 아주 밀접하게 쌍을 이루고 있음을 시사한다.  - P256

"정상 시력인 친구들은 저와 함께 여행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질문을 던지면 친구들은 보지 못할 뻔했던 것을 발견합니다. 눈이 보이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보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이건 일종의 호혜 관계예요. 서로의 세계를 풍부하게 만들어주거든요."
여기에 내가 풀 수 없는 (그러나 기분 좋은)역설이 하나 있다. 경험과 기술 사이에, 세계를 직접 경험해서 얻은 지식과 무언가를 매개로 얻은 지식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맞다면, 언어는 어떻게 그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할까? 가장 인간적인 발명품인 언어는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언어가 있기에 우리 모두가, 그러니까 선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까지도,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계를 볼 수 있지 않은가.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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