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분열이 한 사회를 갈라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위험한 것은 하나의 크고 깊은 분열, 즉 메가 분열이다. 메이슨은 이 점과 관련하여 미국 사회학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앨즈워스 로스Edward Alsworth Ross가 사회학의 원리 The Principles of Sociology』에서 한 말을 인용한다.

사회에서 주요 대립은 개인, 성별, 나이, 인종, 국적, 지역, 계급, 정당, 종교 종파 사이에서 일어난다. 여러 대립이 동시에 최고치에 이를 수도 있지만, 숫자가 많다고 해서 그중 하나가 덜 위협적인 것은 아니다. 모든 갈등은 동시에 사회 내 다른 모든 갈등에 간섭하지만, 분열의 선이 일치할 때만큼은 예외다. 이경우 그들은 서로를 강화한다. (…) 그러므로 10여 개의 대립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선을 따라 분열하는 사회는 실제로 한 줄을 따라 분열하는 것보다 폭력으로 찢기거나 산산이 부서질 위험이 적다. - P107

메이슨은 양극화를 부추기는 데 정체성이 정책 이슈에 관한 입장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다른 모든 것이 똑같을 때, 정책과 관련해 가장 온건한 입장을 가진 사람과 가장 많은 교차 정체성을지닌 사람들을 비교한다면, 정책적 중도파가 교차 정체성으로 당파성을 억제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상대편에게 두 배 이상 적대적인 것으로나타난다. 다시 말하자면, 정체성 면에서 동질성을 느끼는 것이 정책적인 면에서 합의점을 찾는 것보다 혐오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메이슨은 이렇게 썼다. "이것은 미국의 정체성 위기다. 우리가 당파적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이전부터 당파적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는 당파적 정체성이 우리가 서로를 참아내지 못하는 편협함을 우리의 정치적 의견 불일치 정도를 뛰어넘는 수준으로까지 부추기면서, 다른 사회적 정체성들과 나란히 정렬될 때 나타난다." - P109

또다시 사람들이 한방에 모여 있다. 그들은 당장 해야 할 일과 관계없이 정체성에 따라, 그들이 속한 집단에 상을 주고 외부 집단을 벌주기위해 어떤 권력을 가졌는지에 따라 분류되어 있다. 아이엔가는 이렇게 말한다. "옛 이론에 따르면 정당들은 깊은 사회적 분열을 상징하기 위해 등장했다. (…) 그러나 이제 정당정치는 그것만의 생을 살기 시작했다. 이제 그것은 분열이다."
‘그것만의 생‘이라는 표현은 타이이 1970년에 쓴 글을 상기시킨다. 사회과학자들은 집단 분쟁의 ‘합리적 형태와 ‘비합리적‘ 형태를 구별했다. 타이펠은 "전자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갈등과 그에 수반되는 태도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 간의 진정한 경쟁을 반영한다. 후자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이것은 다양한 종류의 누적된 감정적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타이펠은 "이 두종류의 적대감을 구별하는 일은 그 둘이 가차 없이 서로를 강화하며 소용돌이에 빠지므로 생각보다 덜 명확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정책적 차이와 정체성 갈등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 둘은 서로를 강화하지 서로 반하지 않는다.  - P114

참가자들은 기사에 실린 프로그램에 대한 호감도를 1부터 7까지의 척도로 평가해보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이념적 성향이 강했고, 복지 정책에 관심도가 높은 학생들이었다. 하지만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진보적인 학생들과 보수적인 학생들 모두 정책 내용보다 준거집단에 따라 판단했다. 자기 당이 지지하면 진보주의자들은 엄격한 복지라도, 보수주의자들은 호화스러운 복지라도 지지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사고가 놀랍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직업, 학습,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소수의 주제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을가질 수 있다. 그러나 시민으로서, 그리고 선출된 관료로서 우리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 국제 송유관의 환경적 영향,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낙일찍는 일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에 관한 판단을 일상적으로 요구받고 있다.
정당의 역할 중 하나는 우리가 그러한 결정들 사이에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우리가 정당에 가입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의 가치관과 목표, 다시 말해 가족과 지역사회와 같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에 의해 우리에게 전해졌을지도 모르는 가치와 목표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슈들을 연구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우리가 하게 될 판단과 정당의 정책적 판단이 일치할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정당들은, 비록 일련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지만, 사심 없는 진실 안내자가 아니다. 정당은 세력을 키우려는 단체다. 또는 심리학자들이 말하듯이, 그들의 추론은 정확성이 아닌 다른 동기에 의해 작동할 수 있다. - P125

하지만 카한과 그의 팀은 완전히 다른 가설도 세웠다. 사람들은 지식의 부족에 구애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은 일반적으로 해양학자들이 발견한 내용이나 다른 은하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논쟁에서 이기고 싶어 하지 정답을 찾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진실을 찾는 것 말고 다른 목적을 위해 이성을 활용할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공동체에서 그들의 지위를 높이거나 집단에서 추방당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더 똑똑하고 더 교육을 받은 시민이라고 해도이성적으로 의견 차이를 좁히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단지 논쟁의 참가자들이 자신의 편을 위한 주장을 펼칠 준비가 더 잘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
나는 이 결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싶다. 이것은 믿을 수 없는 발견이다. 문제를 정확하게 푸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반하는 일이 될 경우 수학을 잘할수록 문제를 정확하게 풀 가능성이 줄어든다니 사람들은 올바른 답을 얻기 위해 합리적으로 추론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옳음을 보여주는 답을 찾기 위해 추론하는 것이었다. - P128

더 많은정보는 올바른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만약 우리의 탐색이정확성이 아닌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 더 많은 정보가 우리를 오도하거나 더 정확히는, 우리가 자신을 오도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가장 좋은 증거를 찾는 것과 우리의 옳음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증거를찾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인터넷 시대에 그러한 증거와 전문가들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 P131

카한은 이 이론을 ‘정체성 보호 인지 identity-protective cognition‘라고부른다. "중요한 집단과 불화하거나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개인은 무의식적으로 집단의 가치를 위협하는 사실 정보에 저항한다." 다른 곳에서 그는 더 간결하게 표현했다. "우리가 믿는 사실은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준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심리적의무는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자신이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 P134

이러한 예측이 앞으로도 계속될지를 두고 인구학자들의 의견은 일치하지 않는다. 아마도 20세기에 아일랜드인이 백인으로 분류된 것처럼 히스패닉계 백인들은 앞으로 일반적인 백인으로 인식될 것이다. 인좋은 하나의 구조이고, 우리는 계속해서 그 범주를 재구성한다. 중요한것은 인종과 권력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다. 그리고 인구 통계상의 변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현실을 앞지르고 있다. 2013년 미국진보센터, 폴리시링크Policy Link, 라티노 디시즌스 Latino Decisions, 록펠러 재단이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위 참여자는 49%가 비백인이라고믿었는데, 정답은 37%였다.
나는 이런 순간, 즉 다수의 우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느끼는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두고 몇 달에 걸쳐 정치인, 사회심리학자, 정치학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수많은 연구를 통해 증명되고 미국 정치의 모든 곳에서 보이는 답은, 이런 대규모 변화는 선거뿐만 아니라 심리적 차원에서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바마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반동적인 새로운 사회운동과 사상가들의 부상, 대학교 캠퍼스에서의 정치적 올바름과 할리우드 배우들의 대표성을 둘러싼 전쟁, 미투 운동과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의힘, 이민에 대한 싸움 등 이 시대의 핵심 정치적 갈등들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맥락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권력이 곧 없어질 수도 있고, 오랫동안 우리가 느꼈던 부당함이 곧 바로잡힐 수도 있다는 느낌만큼 강하게 집단과의 동질감을 찾게 하는 것은 없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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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히틀러가 권력을 잡자 곧바로 여러 규정이 생기고, 많은 것들이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어요. 많은 지시와 긴급 조치들도 하루아침에 내려졌죠.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많았어요. 예를 들어 아우토반이 건설되기 시작했어요. 전체 사회 구조를 확 바꾸는 일이었죠. 일거리가 없어 거리에 나와 있던 사람들이 사라졌으니까요. 거지와 가난한 사람들 중에는 놀고먹는 것이 좋아서 빈둥거린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가난하고 할 일이 없어서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많았어요. 일도 없고 대부분 식구도 많아 먹고살기가 더욱 팍팍했죠. 그렇다고 사회적 지원이 많은 것도 아니었어요. 히틀러는 우리가 짊어져야 했던 패전의 짐들을 처음엔 아주 멋들어지게 해결해 나갔어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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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포기하고 싶은 날글이 내게도 있습니다. 아무것에도 애착을 가질 수 없는 날들이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내 안의 나선 경사로를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구부러진 스프링을 어떻게든 펴야겠다고. 스스로의 비틀린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길인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예술가가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비틀림일수록 그 곁에 어린 환상들을 걷어내십시오.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것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 - P30

"가족여행은 정말 오랜만이다."
자매의 마음속에 지난 세기 가족여행들의 풍경이 스쳐지나갔다. 이제 없는 사람들이 운전하는 차에 좁게 끼여 앉아 투닥거리던 시간들이.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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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전에는 누구도 유대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있어요. 순전히 나중에 나치에 의해 만들어진 거죠, 우리는 국가사회주의를 통해서야 유대인들이 우리와 다른 인간이라고 의식하게 됐어요. 그게 모두 나중에 유대인 말살 프로그램으로 이어졌죠. 우리는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이 전혀없었어요. 아니 그 반대였어요. 아버지는 손님 중에서 특히 유대인들을 좋아했어요. 돈이 많을 뿐 아니라 항상 값을 후하게 치렀거든요. 우리는 유대인 아이들과 놀기도 했어요.
그중에는 힐데라는 마음씨 고운 여자아이도 있었어요. 또바로 옆집에 내 또래의 유대인 아이가 있어서 종종 함께 어울렸어요. 비누 가겟집 딸 로자 레만 오펜하이머는 지금도또렷이 기억나요. 우리는 그 애들이 이상하다고 느낀 적이한 번도 없어요. 그건 다 커서도 마찬가지였죠. 국가 사회주의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을 때도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어요. 다만 우리는 친애하는 지도자를 향해 반갑게 손만 흔들어 주었을 뿐이에요. 왜 안 그러겠어요?
1933년 이전에 유대인 문제를 생각한 사람들은 소수였어요 처음에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었고 돈이 생겼어요. 나중에 우리는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베르사유 조약으로 사기를 당했다고 배웠어요.
한마디로 우리는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우리한테 무슨 일이 닥칠지 전혀 몰랐어요. - P45

하지만 아무리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도 어두운 면은 있기 마련이죠. 특히 제1차 세계 대전에 패배한 뒤가 그랬어요. 베를린의 거리 곳곳에 실업자와 거지, 가난한 사람들이 넘쳐났어요. 하지만 나처럼 베를린 근교의 좋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어요. 궁핍과 가난이 판치던 시절에도 그런 특별한 지역이 있었던 거죠. 우린 그런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았고, 보지도 않았어요. 그냥 외면해버렸죠.
그러다 1933년 3월에 갑자기 나치가 선거에서 이겼어요.
••••••
히틀러 취임 직후엔 한마디로 그냥 희망이 들끓었어요.
히틀러가 정말 정권을 잡으리라고는 누구도 믿지 못했어요. 정말 깜짝 놀랄 일이었죠. 아마 그 사람들 자신도 깜짝놀랐을 거예요.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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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타운대학교의 정치학자 한스 노엘 Hans Noel은 분류는 양극화의 하위 범주일 뿐이라고 말한다." 실용적인 말로 하자면, 그는 이 두가지가 "스펙트럼의 양쪽 끝 사이의 긴장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진다"라고 했다. 이것이 양극화를 설명하는 말이다.
나는 노엘의 말에 동의하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 양극화 대 분류 논쟁은 이슈 기반 양극화와 정체성 기반 양극화를 설명하는 것으로 더 잘 이해된다. 대마초와 관련한 두 가지 예는 사람들이 양극 중심으로 결집하는 것을 보여준다. 한 예에서는 사람들이 주변으로 모여드는 극들이 그들의 정책적 의견을 반영하고, 다른 예에서는 그들의 정치적 정체성을 반영한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양극화는 서로를 강화한다. 이슈에 기반한 양극화는 정치적 정체성 양극화로 이어진다.  - P62

우리는 전문가들이 ‘중도적 다수‘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정치학자 데이비드 브룩먼David Broockman 이 보여주었듯, 소위 중도파가 진보주의자나 보수주의자보다 더 ‘극단적인‘ 의견을 갖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되는 방식은 이렇다. 여론조사에서는 사람들에게 대마초 합법화, 이라크전쟁, 전 국민 의료보험, 동성결혼, 세금, 기후변화등 다양한 문제에 대한 입장을 물어본다. 사람들의 응답은 우파적이냐또는 좌파적이냐로 구분되어 코드화된다. 우파적인 답과 좌파적인 답이 혼재하는 사람들은 평균해서 중간에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중도파로 분류된다.
하지만 그들은 중도적이지 않다. 그들은 그저 분류가 되지 않은 것뿐이다. 개별적인 답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치적 주류에서 한참 벗어난 의견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브룩먼은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이 영국처럼 국가가 운영하는 보편적인 의료보험 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이 모든 불법이민자들을 즉시 추방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종종 게이와 레즈비언에게 매우 가혹한 조치들이 16~20%의 지지를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중도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왜 극단적입니다."
양극화가 정당에 대한 충성심으로 추동될 때는 중도적일 수 있다. 정당들은 선거에서 승리하길 원하므로, 투표에서 승리를 안겨줄 생각들을 옹호하려고 한다. 어느 한쪽 정당에 애착이 없는 사람은 훨씬 더 대중적이지 않은 의견을 자유롭게 가질 수 있다. - P65

인구 통계가 변하면 가치도 변한다. 2002년에는 공화당원의 50%, 민주당원의 52%가 도덕적인 사람이 되려면 신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2017년에는 이 말에 동의하는 공화당원의 비율이 47%로 약간 감소했지만, 민주당원의 비율은 64%까지 치솟았다."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 와 대니얼 지블랫Daniel Ziblatt 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세금과 정부 지출과 같은 전통적인 정책 이슈보다 더 큰편협성과 적대감을 일으키는 경향이 있는, 두 개의 깊게 양극화한 이슈인 인종과 종교를 두고 두 정당은 현재 분열되어 있다"라고 썼다. 나는 여기에 약간 수정을 가하고 싶다. 두 정당은 편협함과 적대감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는 근본적인 정체성들을 두고 분열되고 있으며, 이슈 갈등은 단지 그러한 분열의 한 표현일 뿐이다.
인종과 종교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지리에 의해서도 분류되어 있다.  - P68

변하는 것은 우리의 심리가 아니다. 변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심리가 정치나 삶에서의 다른 선택들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동되는지다. 정당 간의 차이가 명확해짐에 따라, 정당의 생각과 인구 통계의 마치 자석 같은 끌어당김은 ‘심리적으로 정렬된 사람들‘에게는 더 강해졌다. 이것은 ‘심리적으로 대치되는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더 강해지는 것과 같다. 헤더링턴과 뮐러는 <프리우스 혹은 픽업트럭>에서 ‘유동적‘ 혹은 ‘고정된‘이라고 일컫는 심리적 척도를 사용한다. 그들은 이렇게 썼다.

우리가 ‘고정된 세계관‘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진 사람들은 잠재적인 위험을 더 두려워하며, 모든 위협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명확하고 변함없는 규칙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고방식은 계층과 질서가 팽배한 사회구조를 지지하도록 이끈다. 대조적으로, 우리가 ‘유동적 세계관‘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을 위험하다고 인식할 가능성이 작다. 더 나아가 그들은 각 개인이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사회구조를 지지할 것이다. 그들은 한 사회의 안녕이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탐구하고, 진짜 자아를 발견할수 있는 더 많은 자유를 준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 P78

<열림 대 닫힘>에서 존스턴, 페데리코, 러빈은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수준과 다양한 심리적 경향성을 시험했다. 그들이 몇 번이고발견한 사실은 심리가 정치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의 정치적의견을 예측해주지 못하지만,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정치적 의견을 예측하는 강력한 예측 변수라는 것이다. 정치에 관심이없는 사람들에게서는 "기질에 따른 분류가 거의 없지만, 정치 참여도가 높은 사람들에게서는 그 효과가 매우 크다. 다양한 경험에 대한 개방성은 정당 정체성에 있어서 거의 모든 다른 요소들을 압도했다.
이러한 발견에 기반해서 세 연구원들은 흥미로운 결론에 도달했다. "의견을 형성할 때, 정치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이 던지는 질문은 ‘이 정책이 나에게 무슨 이득이 되는가?‘이다. 하지만 정치 참여자들은정체성을 내세워 반응한다. 정치 참여도가 높은 시민들이 던지는 질문은 ‘이 정책에 대한 지지는 나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이다.
다시 말해 심리적 분류는 정체성 정치의 강력한 원동력이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핵심적인 심리적 전망과 결부시킬 정도로 충분히 정치에 신경을 쓴다면, 정치는 당신의 심리적 자기표현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심리에 의해 정치적 연합체들이 나뉘면서, 한쪽 또는 다른 쪽에서의 회원 자격은 내가 누구고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선언이자 신호가 된다. 우리가 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에 참여할 때, 거래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정치에 참여할 때, 정치는 정체성이 된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정치와 맺는 관계, 그리고 서로와 맺는 관계가 변한다. - P79

타이펠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가 속한 집단의 내부 사람들은 호의로 대하고 외부인에게는 적대감을 느끼는 본능을 너무 깊게 학습하는데, 그러한 본능은 사회적 경쟁과 무관하게 작동한다. 우리는외부인에게 등을 돌리기 위해 그들을 일부러 미워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에게 등을 돌려서 어떤 이득이 따라올 필요도 없다. 우리가 그들을 ‘그들‘로 분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일단 ‘그들‘로 분류하면, 그들에게 의구심을 갖고 대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으로 대하려고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치 추위에 반응해 소름이 돋는 것과 같은 자동 반응이다.
타이펠의 이론은 암울하긴 해도 훌륭하다. 타이펠은 이 이론을 실험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보았고 두 가지 가설을 제기했다. 첫 번째는우리가 세상을 ‘우리‘와 ‘그들‘로 분류하는 데 너무 익숙해 있어서 아주 미미한 신호만 주어져도 그렇게 하리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세상을 ‘우리‘와 ‘그들‘로 분류하고 나면, 우리는 우리가 소속한 집단에대해서는 호의적으로 행동하고 외부 집단은 차별하리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렇게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이러한 가설을 발판 삼아 타이펠은 일련의 실험을 시행했고, 그 결과는 오싹하고 소름끼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 희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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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두 구성원 가운데서나 외부 집단의 두구성원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때는 행동을 추동하는 집단 경쟁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결과가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소년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두 구성원에게 돈을 줄 때 외부집단의 두 구성원에게 줄 때보다 더 많이 주었다. 돈을 줄 내부 집단 구성원이 없는 상황에서도 소년들이 외부 집단 구성원들을 벌주기로 한결정에 대한 타이펠의 묘사는 지금 읽어도 놀랍다. 그들이 여전히 외부집단을 벌주기로 선택한 것은 ‘불필요한 차별을 보여주는 명백한 사례였다. 
타이펠은 이러한 결과를 반영한 1971년 논문에 집단 갈등이 자원이나 권력을 둘러싼 제로섬적 충돌 때문에 생겨난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고 썼다. 그는 "차별적인 집단 간 행위가 오로지 ‘객관적‘ 이해 충돌측면에서만 고려된다면, 그것은 결코 이해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의 연구에 참여한 소년들은 허술하고 잘못된 기준에 근거해 분류되었고, 소속 집단이 다른 이들을 벌줘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때로는심지어 잃을 것이 있었다). 소년들의 행동은 소속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순수한 욕망과는 거리가 있었고, 종종 자신의 집단과 외부 집단사이의 격차를 키우려고 불이익도 감수했다. 타이펠은 돈이 주된 동기가 아니며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승리"라고 썼다.
다시 말하지만, 이 결과는 서로를 알고 있다거나, 무작위로 분류된무의미한 집단에 대한 애착이 사전에 없었고, 자신은 결코 얻을 수 없는 돈을 배분하는 일을 맡은 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 P84

 블라이드는 "듀크대학교나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둘 중 하나에 대한 충성을 통해 살아가고 죽는 것은경기와 팬덤을 통해 재현되는 것 못지않게 현실적이다"라고 썼다.
나는 이 문구가 마음에 든다. "충성을 통해 살아가고 죽는다."이 말이 과장되게 들린다면, 이 감정적인 경험이 합리적일 수도 있음을 고려해보라. 인간은 무리 지어 살도록 진화했다. 집단의 일원이 되고 집단이 번창하는 것은 생존을 의미했다. 집단에서 추방당하거나, 자신이 속한 집단이 적에게 짓밟히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우리가 집단 소속감과 지위를 죽고 사는 문제로까지 인식하도록 진화한 것이 정말 이상한 것일까? 외로움에 대한 과학적인 발견은 강력한 통찰을 제공한다. 우리는 사회적 고립이나 명예의 실추를 단지 심리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공동체에서 버림받았다는 느낌이나 다른 사람들의 비난은 실제로 신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외로움이 비만이나 흡연보다 나쁘다는 통계를 들어봤을 것이다. 미국 공중보건위생국장을지낸 비벡 머시Vivek Murthy 같은 의료 전문가들은 사회적 고립이 질병이나 부상에 준하며, 이러한 심리적 상태는 신체적 질병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이 메커니즘은 진화적이다. 우리의 뇌는 생존하기 위해 집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집단에서 쫓겨났다고 느낄 때, 몸 전체에 엄청난 스트레스 반응을 촉발한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우리는 사회적 생물로 진화했다. 신뢰와 협력의 관계를 구축하는 우리의 능력은 오래전부터 안정적인 식량 공급과 일관된 보호를 받을기회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수천 년 동안 사회적 관계의 가치는 우리의 신경 체계에 주입되어, 사회적 관계의 부재는 신체에 스트레스를 주었다. 외로움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장기적 혹은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핵심 스트레스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더 잦은 상승으로 이어진다. 또한 외로움은 신체에 염증을 일으키고, 결국 혈관과 다른 조직을 손상시켜 심장병, 당뇨병, 관절병, 우울증, 비만, 조기 사망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또한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의사 결정, 계획, 감정 조절, 분석, 추상적인 사고를 지배하는 뇌의 전두엽 피질을 고장낼 수 있다. - P90

2015년, 패트릭 밀러 Patrick R. Miller와 패멀라 존스턴 코노버 PanelaJohnston Conover는 「마음의 빨간 상태와 파란 상태Red and Blue States of Mind」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공화당원들과 민주당원들이 (그리고 어느 한 정당으로 기우는 무당파들이) 선거 기간 어떻게 행동하는지 살펴본다. 그들을 움직이는 동기는 무엇인가? 그들은 무엇을 느끼는가? 무엇이 그들을 정치에 참여하게 하는가? 논문의 결론은 이렇다.
"열성 당원들의 행동은 더 큰 선을 위해 정치 과정에 참여하는 사려 깊은 시민들의 행동이라기보다는 스포츠 팀원이 소속 팀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하는 행동과 유사하다. 시쳇말로 ‘헐‘이다!
밀러와 코노버는 당원들의 행동을 두 단계로 나누어 시험했다. 첫번째 단계에서는 상대 당에 대한 분노와 경쟁심이라는 프리즘을 통해당파적 행동을 관찰했다. 그들은 엄청나게 많은 자료와 선거 전후 여론조사를 이용하여 사회적 이슈에 관한 입장, 이념, 나이, 교육, 정치 지식, 교회 출석, 성별, 당파적 정체성, 인종 등 개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있는 것들을 조사했다. 그 결과 그들은 정책과 사상, 이념 같은 고매한 요소들이 열성 당원의 감정에 어느 정도 역할을 했지만, 압도적인 동인은 당파적 정체성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밀러와 코노버는 이렇게 썼다. "선거는 정당일체감을 가지는 사람들의 팀 정신을 두드러지게 하여 그들에게 반복적으로 민주당과 공화당을 ‘우리와 그들‘로 비교하게한다. 이것은 선거에서 패배하면 잃을 것(지위를 잃게 된다)에 주목하게한다. (…) 결국 경쟁과 분노 둘 다를 낳는다."
밀러와 코노버가 생각한 다음 질문은 그러한 감정이 행동으로 이어졌는지였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이 공화당원이나 민주당원이 선거운동을 돕거나 실제로 투표하도록 이끄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시행했다. 이번에도 사회적 이슈나 이념 같은 추상적인 것보다 당파적 정체성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 후 밀러와 코노버는 흥미로운 작업을 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상대편에 대해 얼마나 많은 분노, 경쟁심, 무례함을 느끼는지 떠올려보라고 요청했다. 이 질문이 추가되자, 다른 모든정치적 요인의 영향력은 급락했다. - P94

 <열림대 닫힘>에서 가장 참여가 적은 유권자들은 물질적 이득이라는 렌즈를 통해 정치를 보는 경향이 있지만(‘이 정책이 나에게 무슨 이득이 되는가?‘), 가장 깊이 참여하는 유권자들은 정체성의 렌즈를 통해 정치를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이 정책적 입장에 대한 지지는 나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는 좌파 진영에서 오랫동안 고민해온 현상, 왜 노동자 계층 유권자들이 공화당을 지지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왜 노동자 계층이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삭감하고 빈곤층을 보호하는 노조를 무너뜨리는 정당에 투표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저버리는 행동을 하느냐는것이다. 존스턴, 러빈, 페데리코가 발견한 것은 사람들이 정치에 더 많이 참여하고 투자함에 따라 만족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이익‘이 바뀐다는 사실이다. 경제적 부가 정치적 행동에 있어서 유일하고 합리적인 동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실수다. 더 정치적이 될수록 자기표현과 집단 정체성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다. 존스턴, 러빈, 페데리코는 "시민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 의견을 형성할 때 물질적인 관심사가 목표가 아닌 경우가 많다"라고 썼다. 
물론 정치인들이 모든 유권자에게 똑같이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가장 깊숙이 참여하는 유권자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둔다. 그들에게 투표하고, 그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그들에게 기부할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유권자를 더 많이 끌어모으려면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정치인인지 알리는 것으로 부족하고, 상대편 정치인이 얼마나 나쁜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공동의 적만큼 집단을 단결시키는 것은 없다. 상대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을 없앤다면, 정치인은 지지자들의 열정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 P96

오바마는 이렇게말했다. "미국 정치가 실제 사람들이 그런 것보다 더 양극화하는 데 기여한 것을 꼽자면, 적어도 두어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정치적 스펙트럼상에서 완전히 반대편에있는 가족이나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있습니다. 그렇긴 해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합니다. 그렇죠? 우리 모두는 축구 경기를 하러 가거나. 아니면 자녀들이 축구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코치 노릇을 하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부모들도 만납니다. 그러다 누군가가 정치적인 언급이라도 하면, 갑자기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라는 반응을 보이게 돼죠."
여기서 오바마는 정치적 정체성이 우리의 유일한 정체성은 아니라는 점을, 그리고 우리의 다른 정체성(어린이 야구 팀 코치, 학부모회 회원, 부모 등등)은 정치적 정체성보다 훨씬 덜 양극화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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