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아무런 병도 없었다. 사람들은 뼈가 쑤시고 아리는 일이 없었다. 또한 고열이 나는 일도 없었다. 그때는 천연두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복통, 폐결핵도 없었다. 그때는 사람들이 두 발로 바르게 서 있었다. 허나 이방인들이 오면서 모든 게 무너져 내렸다. 그들은 공포를 들고 왔다. 그들은 꽃을 말려 죽이러 왔다. - P298
잉카의 마추픽추가 부분적으로는 피부점막리슈만편모충증의 성행 탓에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잉카인들은 이 병이라면 학을 뗐어요." 쿠스가 말했다. 리슈만편모충을 옮기는 샌드플라이는 높은 고도에서는 살지 못하지만, 잉카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작물인 코카나무를 경작하는 저지대에는 널리 퍼져 있었다. 마추픽주는 딱 적당한 고도에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마추픽추에서 왕과 조정 대신들은 가장 무시무시한 병에 걸릴 위험 없이 안전한 장소에서 통치를 하고, 코카 경작과 관련된 제식을 주재할 수 있었다. 16세기에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남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안데스산맥 저지대의 원주민들, 특히 코카나무 경작자들의 안면 기형을 보고 섬뜩함에 몸서리를 쳤다. - P312
사실 그 병은 제1세계 사람들을 공격한 제3세계 질병이었다. 현재 세계는 구세계와 신세계가 아니라 제1 세계와 제3세계로 나뉜다. 과거에는 제3세계에만 국한되었던 병원균들이 이제는 제1세계를 지독할 정도로 잠식해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벌어질 질병의 미래 궤도인 셈이다. 병원균에게는 경계가 없다. 그것들은 궁극의 여행자들이다. 병원균에게 연료가 되는 인간이라는 땔감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간다. 우리 제1세계 사람들은 질병, 특히 ‘소외된 열대병들‘이 제3세계에 격리되어 있을 것이라고, 병원균들이 못 들어오게 막고서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무사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과할 정도로 안일하게 생각했다. 머나먼 땅에 있는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말이다. - P375
이때껏 영원히 살아남은 문명은 없었다. 하나같이 차례대로 소멸을 향해 움직였다. 해변의 부서지는 파도처럼 말이다. 그 어떤 것도 이러한 우주의 섭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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