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충격이 맥박수를 훅 끌어올렸다. 명치 밑에서 이글대던 절망이 위액처럼 식도로 역류했다. 국국 소리가 구토를 하듯 입 밖으로 터져나왔다. 소리는 웃음이 되어 피비린내 자욱한 집 안으로 탄환처럼 뻗어나갔다. 땀인지, 핏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뺨을 타고 턱 끝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살인자라니, 그것도 제 친어머니를 죽인 살인자라니, 그짐승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라니, 허둥대고 조바심치며 온갖 짓을다한 끝에 건져낸 게 이런 개 같은 진실이라니.
- P83

 비로소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으나실제로는 경험해보지 않았던 것, 스스로 부른 재앙, 발작전구증세였다.
운명은 제 할 일을 잊는 법이 없다. 한쪽 눈을 감아줄 때도 있겠지만 그건 한 번 정도일 것이다. 올 것은 결국 오고, 벌어질 일은 끝내 벌어진다. 불시에 형을 집행하듯, 운명이 내게 자객을 보낸 것이었다. 그것도 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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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주렸다.
씹어서 연하게 만든 것이 목구멍을 지나가는 느낌이 어땠는지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침만큼은 아직 나지만 넘어가지 않고 입술 양옆에 고이기만 한다. 목구멍이 거칠어져 일부러 마른침을 삼켜보려 할 때마다 부대끼고 거슬린다. 주룡은 나무를 떠올린다. 손을 넣어 만져볼 수 있다면, 우선 식도를 지나갈 때 죽은 나무의 좁은 옹이구멍을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는 듯한 통증을 느낄 것이고, 내장들은 손이 스치는 대로 낙엽처럼 바스러질 것이다. 그대로 뒷구멍까지 손을 밀어 넣어 뽑고 어깨를 구겨 넣고, 머리도, 나머지 한 팔도넣으면..... 배가 부르겠지. 나는 뒤집히겠지.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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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미국 헌법이 시행된 직후인 18세기 후반에는 멕시코와 별반 다름없는 은행체제가 슬슬 시동을 걸었다. 정치인들은 국가가 독점하는 은행체제를 시도했다. 측근 및 후원자에게 독점권을 부여하고 그 대가로 독점에서 얻는 이윤을 나누어 갖길 바란 것이다. 곧 미국 은행들도 멕시코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을 규제하는 정치인들에게 대출을 몰아주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런 상황이 오래가지 못했다. 독점적인 은행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정치인이라도 멕시코와 달리 선출직이어서 재선에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독점적인 은행을 만들어 자신이 대출을 받는다면 정치인에게는 이보다 수지맞는 장사가 없었다. 그러고도 무사하다면 말이다. 하지만 시민에게는 대단히 불리한 일일 수밖에 없다. 멕시코와 달리 미국에서는 시민이 정치인을 견제하고, 자신의 직위를 남용해 축재하거나 측근에게 독점권을 챙겨주는 이들을 제거해버릴 수있었다. 결과적으로 독점적 은행체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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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태양이 은빛으로 탔다. 5월의 여울 같은 하늘 아래로 띠구름이 졸졸 흘러갔다. 성당 안뜰을 에워싼 설유화 꽃가지들 속에선 휘파람새가 울었다. 나와 형은 자신의 세례명이 적힌 촛불을 들고 장미나무 아치문 안으로 들어섰다. 성가대 축가에 발을 맞추면서 십자고상 밑에 마련된 야외제단으로 나란히 걸어갔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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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재미난 쇼를 보게 될 거야."
리모컨을 누르며 영제가 말했다. 현수는 등으로 내달리는 싸늘한 전율을 느꼈다. 자신의 손목을 끊어놓은 몽치보다 더 기분 나쁜 말이었다. 글이라고는 자기소개서밖에 써본 적이 없는 그였지만 ‘보다‘와 ‘하다‘의 차이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다‘라면, 영제의 상대는 자신이었다. ‘보다‘라면, 대상과 무대가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 자신은 무대 밖의 관객이라는의미였다.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지금껏 읽었던 판은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였던가.
- P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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