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등 다른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 사례와 마찬가지로 로마 역시 공화정 당시에는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경험했다. 하지만 일부 포용적제도하에서 달성되었다 하더라도 그런 성장은 한계가 있었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았다. 로마의 경제성장은 비교적 높은 농업 생산성, 속주에서 거두어들이는 막대한 공물과 장거리 무역에 의지했을 뿐 기술적 진보나 창조적 파괴를 토대로 한 것이 아니었다. 로마인도 철제 도구와 무기, 문자해득력, 쟁기 농업, 건축 기법 등 일부 기본적인 기술을 물려받았고 공화정 초기에는 시멘트 벽돌, 펌프, 수차 등 다른 기술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로마제국 시대를 통틀어 기술은 답보 상태를 면치못했다. 가령 조선 부문만 보더라도 배의 설계나 삭구具에 거의 변화가 없었고, 로마인은 방향타를 개발한 적이 없어 늘 노를 저어 방향을 잡았다. 수차 역시 아주 더디게 확산된 탓에 수력 에너지가 로마 경제에혁신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송수로와 도시 하수도처럼 로마의 위대한 업적 역시 로마인이 완성했다고는 하지만 기존 기술을 사용했을 뿐이다. 혁신이 없어도 기존 기술에 의존해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은 가능했지만, 창조적 파괴가 수반되지 않는 성장에 불과했으며 또 오래가지도 못했다. 사유재산권이 갈수록 불안해지고 시민의 경제적 권리가 정치적 권리와 더불어 움츠러들면서 경제성장 역시 퇴보하고 말았다.
- P250

앞서 살펴보았던 러다이트 운동과 마찬가지로 손뜨개질 인력과 같은노동자의 저항은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는 때가 많다. 하지만 특히 정치권력을 위협받는 엘리트층은 그런 혁신을 도입하는 데 한층 가공할 만한 걸림돌이 된다. 창조적 파괴 과정에서 잃을 게 많은 세력은 새로운 혁신을 도입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런 혁신에 저항하고 막아보려 애쓰기 일쑤다. 그것이 사회에 가장 급진적인 혁신을 도입해줄 새로운 주역이 필요한 이유이고, 그런 새로운 주역과 이들이 초래하는 창조적파괴는 막강한 지도자와 엘리트층을 비롯해 이런저런 저항 세력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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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으로 직접 그의 목을 졸라 죽이거나 입이나 코를 막는 것이 더 확실한 방법이었겠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그를 만지고 싶지않았던 것이다. 그에게 다가가면, 직접 자기 손으로 눌러 죽이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게 되는 살찐 거미를 볼 때처럼 구역질이 났기 때문이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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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에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이 시대에는 혐오스러운 천재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는 그중에서도 가장 천재적이면서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이 책은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드나 생쥐스트, 푸셰나 보나파르트 등의 다른 기이한 천재들의 이름과는 달리 장바티스트 그르누이라는 그의 이름은 오늘날 잊혀져 버렸다. 물론 그것은 오만, 인간에 대한 혐오, 비도덕성 등 한마디로 사악함의 정도에 있어 그르누이가 그 악명 높은 인물들에 뒤떨어지기 때문은 아니다. 단지 그의 천재성과 명예욕이 발휘된 분야가 역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 냄새라는 덧없는 영역이었기때문이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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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중요한 것은 정착생활이 장점과 함께 단점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정착집단은 갈등 해소가 한층 어려워질 수 있다. 이동생활을 하면 불화가 생겨도 성에 차지 않는 사람이나 집단이 떠나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구 주거 건물을 짓고, 들고 다닐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자산을 쌓아두기 시작하면서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그냥 떠나버릴 수는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취락은 더 효과적인 갈등 해소 방법과 더 정교한 재산 개념이 필요했다. 취락과 가까운 땅에 누가 들어갈 수 있는지, 누가 이런저런 나무에서 열매를 딸 수 있는지, 냇물 어디에서 누가 낚시를 할 수 있는지 온갖 의사결정을 내려야 했다. 규칙도 마련하고, 그 규칙을 집행할 제도를 만들어 다듬어야 했다.
따라서 정착생활이 가능해지려면 먼저 수렵 채집인을 강제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적 혁신이 선행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 제도적 혁신으로 권력을 쥔 정치 엘리트가 사유재산권을 집행하고, 질서를 유지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 나머지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자원을 착취할 수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규모는 작더라도 샤이암 왕이 주도했던 것과 흡사한 정치혁명이 돌파구가 되어 정착생활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 P207

하지만 착취적 제도하에서 달성한 성장은 포용적 제도하에서 창출된 성장과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착취적 제도하의 성장은 지속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 성격상 착취적 제도는 창조적 파괴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기술적 진보 역시 기껏해야 제한적인 수준에 그친다. 따라서 착취적 제도를 통한 성장은 단명하고 만다. 소련의 경험은 이런 한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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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내부 분쟁과 불안정은 착취적 제도에 반드시 수반되는 태생적 특징이며, 비효율성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중앙집권화된 정치권력을 와해시키기 일쑤이며, 심하면 법과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려 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한다. 고전기를 거치는 동안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던 마야 도시국가도 종국에는 이런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 P220

 첫째, 베네치아의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포용적 제도를 향한 움직임은 뒷걸음질 치기도 한다. 베네치아는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정치와 경제 제도가 무너지자 번영의 동력은 후진 기어를 넣고 말았다. 오늘날 베네치아가 잘사는 이유는 다른 곳에서 돈을 번 이들이 관광을 와서 과거의 영화에 탄복하며 매상을 올려주기 때문이다. 포용적 제도가 후진할 수 있다는 것은 제도적 개선이 단순하게 축적 과정을 거쳐 차곡차곡 쌓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둘째, 결정적 분기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은 제도적 차이는 본디 오래갈 수가 없다. 작아서 번복될 수 있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가 재차 번복되곤 하는 것이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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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역시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나를 등진 채 퍼걸러 테이블 앞에서 있는 건 이모가 아니라 장작개비였다. 어머니를 겁주고, 들쑤시고, 어르고, 뺨을 쳐서 나를 망가뜨리게 만든 요망한 장작개비.
내 몸은 소리를 죽이기 시작했다. 숨 쉬듯 욱신대던 뒤통수가 평온을 되찾았다. 숨소리는 목 밑으로 잦아들고, 갈비뼈 안에선 심장이 느리게뛰었다. 배 속에서 공처럼 구르던 긴장이 사라졌다. 오감이 날을 세웠다.
몇 미터 거리가 있는데도, 겁먹은 것의 축축하고 거친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세상이 엎드리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들이 길을 열고 대기하는 느낌이었다.
- P283

나는 질끈 눈을 감고 싶은 심정이 됐다. 줄타기하던 줄에서 뚝 떨어진기분이었다. 조금만 기다리지 그랬어. 내가 사라질 동안만 참지 그랬어.
가방 싸들고 옥상 철문으로 나가는 데 10분이면 차고 남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너도 좋고 나도 좋았을 텐데. 너는 이토록 힘든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나는 너를 잃지 않았다고 믿으며 떠날 수 있을 테고.
"그래서 나는…침대보를 젖혀봤어. 나머지는......"
마침내 해진은 본론을 끄집어냈다.
"네가 설명해."
- P337

보내주지 않은 덕택에 나 홀로 소망을 이뤘다. 비록 요트가 아닌 새우잡이 어선이었지만, 하루하루가 죽을 만큼 고달팠지만 마음만은 편했다.
오늘 아침 항구에 내리기 직전까지 머리 없는 짐승처럼 살았으므로, 세상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다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메일을 닫고 PC방을 나왔다. 잘 곳을 찾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도로는 한적하고, 12월의 밤은 스산하고, 바다는 부옇게 젖어 있었다. 저 앞 흐릿한 안개 속에선 누군가 걸어가고 있었다. 자박자박 발소리가 들려왔다. 짠 바람을 타고 피 냄새가 훅, 밀려왔다.
-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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