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생각하건대 그날 거기에 그 수도복을 걸어놓은 것은 나의 가장 큰 실수이지 않았나 싶다. 세월이 지나간 후에, 나는 다시는 그 목련 나무 곁을 무심히 지나지 못했다. 목련이 흰 광목 빛깔 꽃이라도 흐드러지게 피우는 달에는 목련 꽃잎처럼 가슴이 하얗게 바랬고 목련꽃이 지는 날에는 오래도록 창가를 서성였다. 바람이 많이 부는 가을날 큰 이파리를 뚝뚝 떨구는 그 나무 아래를 지날 때면 오래된 상처가 도지는 것처럼 가슴 언저리가 욱신거렸다. 가끔은 그 나무를 찾아가 가만히 쓰다듬었다. 사람은 가도 나무는 거기 오래 남아 있으리란 것을 알았다면 나는 차마 그곳에 그렇게 무모하게 나의 추억을 걸쳐놓지 못했으리라.
- P130

...그런데 짐을 싸면서 알아버린거야. 내가 네게 모질게 말할 수 있었던 건, 헤어지자 말하자고 만난거긴 하지만 아직도 네가 내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그래서 내가 강한 척이라도 할 수 있었다는 걸, 이제 네가 정말 없다고 생각하니까 강한 척도 할 수 없었다는 걸."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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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진적 변화는 또한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무리수를 막는 효과도 있었다. 폭력적인 체제 전복은 제거된 체제의 빈자리에 뭔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뜻이다. 프랑스혁명이 이를 여실히보여주었는데, 민주주의에 대한 첫 실험은 공포정치로 이어졌고, 1870년 프랑스 제3공화국이 들어설 때까지 왕정복고에 이은 민주주의 복원과정을 두 차례나 되풀이했다. 러시아혁명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제국보다 더 평등한 체제를 원했던 다수의 열망은 축출된 이전 체제보다훨씬 더 폭력적이고 잔혹하며 사악한 일당독재로 이어졌다. 이런 사회에서 점진적 개혁이 어려웠던 이유는 다원주의가 결여되어 있고 고도로 착취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영국에서 점진적 변화가 실현 가능했고바람직하기까지 했던 것은 바로 명예혁명에서 싹튼 다원주의와 그와함께 도입된 법치주의 덕분이었다.
- P454

포용적정치제도하에서는 자유언론이 번성하고, 자유언론은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에 대한 위협을 널리 알려 저항의 기운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착취적 제도, 절대주의 체제, 독재정하에서는 그런 자유가 불가능하다. 착취적 정권은 애초에 그런 제도와 체제를 이용해 반대 세력이 심각한 위협이 되기 전에 짓밟아버리기 때문이다. 20세기 전반, 미국에서 자유언론이 제공한 정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정보가 없었다면 미국 대중은 강도귀족이 실제로 어느 정도 권력을 휘두르며 힘을 남용하고 있는지 끝내 깨닫지 못해 트러스트에 대항하는운동이 불타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 P463

선순환은 여러 메커니즘을 통해 작동한다. 첫째, 다원주의 정치제도의 논리는 독재자, 정부 내 파벌, 심지어 선의의 대통령이라 해도 권력찬탈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든다. 자신의 권한을 제한하는 대법원의 굴레를 벗어던지려 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나 블랙법을 곧장 시행하려 했던 로버트 월폴 경이 깨달은 바였다. 두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개인이나 소수 무리에 권력을 몰아주면 다원주의적 정치제도의 기반을 훼손할 위험이 따르며, 다원주의의 진정한 잣대는 그런 시도를 얼마나 잘 제압하느냐에 달려 있다.
•••••
둘째, 이미 여러 차례 살펴보았듯이, 포용적 정치제도와 포용적 경제제도는 서로 의지하며 확대되는 양상을 띠게 된다. 이를 통해 또 다른 선순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
마지막으로 포용적 정치제도하에서는 자유언론이 번성할 수 있고자유언론은 포용적 제도를 위협하는 움직임을 널리 알려 저항 세력을 부채질하는 역할을 하는 사례가 많다.  - P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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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티스트인 J. R. 스티븐스JR. Stephens는 온 시민에게 투표권을 주는 보통선거가 대중에게 왜 중요한지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보통선거권은… 포크와 나이프, 빵과 치즈의 문제처럼 생활에 밀접히닿아 있다. 내가 말하는 보통선거권이란 이 땅의 모든 노동자가 좋은 외투를 두르고, 좋은 모자를 쓰고, 온 가족이 번듯한 집에 살며 제대로 된식사를 할 권리가 있음을 뜻한다."
- P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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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예수가 다시 온다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까? 내 생각에 예수가 다시 온다면 그들이 가장 먼저 나서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버릴 거야. 아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지하에 감금하겠지. 아니다. 현대에서는 그런 방법이 아니다. 그건 비난받을 확률이 너무도 높아. 제일 좋은 건 미디어를 이용해 그를 바보로 만드는 거야.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트집 잡아 기사를 내겠지. 그가 한 집에 초대되어 갔는데 젊은 여자 막달라 마리아를 동반해 물의를 빚었다. 심지어 그녀는 사치스럽게도 200만 원짜리 향유를 그의 발에 부었다. 평소 그들은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이에게 주라고 해놓고 말이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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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마찬가지로 호주가 선택한 포용적 제도를 향한 길 역시 잉글랜드와는 달랐다. 내전과 명예혁명을 거치며 잉글랜드를 뒤흔들어놓았던 혁명이 미국이나 호주에서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들 나라의 건국 당시 상황이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갈등 없이 포용적 제도가 떡하니 들어섰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은 포용적 제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떨쳐버려야 했다. 잉글랜드에서는 오랜 역사를 거치며 깊이 뿌리박힌 절대주의 왕정을 제거하려면 혁명이 필요했다. 미국과 호주에서는 그런 장애물이 없었다. 미국과 호주에서 포용적 제도가 뿌리내렸다는 것은 두나라에 산업혁명이 빠르게 확산되어 부가 쌓이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 P406

 종합해보면 프랑스군이 유럽 대륙에 큰 고통을 안겨주기는 했지만, 이들이 유럽의 형세를 획기적으로 뒤바뀌어놓은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봉건질서가 자취를 감추었고 길드가 무너졌으며 군주와 제후의 절대권력 역시 송두리째 흔들렸고 경제, 사회, 정치등 모든 면에서 권력을 틀어쥐고 있던 교회마저 맥을 못 추게 되었다.
태생적 지위에 따라 인민을 불평등하게 대우했던 앙시앵레짐의 기반이 무너진 것이다. 이런 번화 덕분에 해당 지역에서 훗날 산업화가 뿌리내릴 수 있게 해준 포용적 경제제도가 수립되었다. 19세기 중엽에 이르자,
프랑스가 장악했던 지역은 거의 예외 없이 산업화가 한창이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러시아 등 프랑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역이나, 폴란드와 에스파냐 등 프랑스의 점령 기간이 일시적이거나 제한적이었던 지역은 여전히 제자리걸음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 P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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