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자: 실제로 일반적인 교육 과정에서는 논점들이 가진 수많은 측면들을 접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나 역사, 심지어 철학 교과 과정에서는 창조론을 논의하는 게 적절할것이다. 그러나 과학 교과 과정에서 가르칠 만한 것이 아님은 아주 확실하다. 마찬가지로 생물학 교과 과정에 아메리카 원주민의 창조신화 수업이 들어갈 수 없다. 창조과학을 과학으로 가르치게 되면 심각한 해가 생긴다. 종교와 과학의 경계가 모호해지게 되고, 그렇게되면 과학적 패러다임이 무엇이며 어떻게 적절하게 적용할 것인지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조론의 바탕에깔린 가정들은 진화생물학뿐만 아니라 모든 과학에 대해 양면 공격을 가하고 있다. 첫째, 만일 우주와 지구의 나이가 불과 만 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 우주론, 천문학, 물리학, 화학, 지질학, 고생물학, 고인류학, 초기 인류의 역사가 모두 무효가 되어 버린다. 둘째, 초자연적인 힘이 개입해서 한 가지 종만이라도 창조했다고 인정하는 즉시, 자연법칙들은 물론 자연의 운행에 관한 추론들이 모두 공허해져버린다. 어느 쪽이 되었든, 모든 과학이 무의미해진다. - P265
만일 이 말이 참이라면, 자연의 원인은 자연적인 것이어야지 초자연적인 것이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그러나 ‘X 의 원인‘이 반드시 ‘X와 비슷한 것‘ 일 필요는 없다. 초록 폐인트의 원인은 파랑 페인트와 노랑 페인트가 혼합된 것이다. 두 색 중 어느 것도 초록과 비슷하지 않다. 동물의 똥거름은 과일나무를 더 잘 자라게 하는원인이다. 과일은 맛이 좋지만, 똥거름과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14세기에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뛰어나게 펼친 (그리고 18세기에 데이비드 흄이 더욱 뛰어나게 반박했던) 제일 원인과 원동자 논중은 다음 물음으로 쉽게 제쳐 버릴 수 있다. 신의 원인, 신의 운동의 원인은 누구, 또는 무엇인가? 흄이 입증한 것처럼, 설계의 합목적성이라는 것은 대개 착각이고 주관적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 것은 새의 입상이라면 훌륭한 설계이겠지만, 벌레 입장이라면 그리 훌륭한 설계가 아니다. 두 개의 눈이 이상적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심리학자 리처드 하디슨이 주의 깊게 지적한 것처럼, "뒤통수에 눈이하나 더 달려 있다면 바람직하지 않을까? 집게손가락에도 눈이 하나달려 있다면 자동차의 제어판 뒤에서 작업할 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1988, 123쪽) 어떤 면에서 보면, 목적이란 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지각하는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만물이 합목적적으로 아름답게 설계된 것은 아니다. 악, 질병, 기형, 그리고 창조론자들이 느긋하게 간과해 버리는 인간의어리석음은 말할 것도 없고, 자연은 괴상한 모습과 목적이 없어 보이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남자의 젖꼭지와 판다의 엄지는 굴드가 무목적성과 빈약한 설계 구조를 보여 주는 사례로 자신 있게 드는 것들이다. 만일 신이 조각 그림 맞추기 퍼즐처럼 생명을 서로 딱딱 맞게 설계했다면, 그런 기이한 것들과 문제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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