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컨대, 황진이 청순하지도 요염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런 구획자체를 간단히 뭉개 버렸다. 또 의존하지도 매이지도 않았다. 그녀가 전하는 ‘사랑법‘은 아주 간단하다. 사랑이란 타인의 욕망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홀로 설 수 있는 자만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것. 그러니 누구든 ‘사랑의 화신‘이 되기를 원한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 P96
더 놀라운 건 그 내용이 거의 엇비슷하다는 사실이다. 희한하게도 모든 상처의 원천은 유년기다. 임마가 나를 버렸어, 아빠가 집을 나갔어, 언니 혹은 오빠 때문에 내가 방치되었어, 결국 문제는 가족이다! 당연하지 않느냐고? 질대 그렇지 않다. 성인이 된다는 건 의장막을 벗어나 세계를 직접 대면한다는 뜻이고, 그 과정에서 가족삼각형과는 전혀 다른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친구를 만나고, 선배를 만나고, 스승을 만나고, 혹은 영웅과 라이벌을 만나고 또 은인과 원수를 만나고…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어린 시절의상처가 삶을 지배한다면 그건 그 사이에 전혀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보통의 심리치료는 어린 시절의 해결되지 않은 감정들을 다시 확인하고 치유하며 통합하는 직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경우 자신은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확신을 얻게 되지만, 반면에 부정적인 감정이나 고통을 유발한 책임을 부모나 주의 사람에게서 찾았기 때문에 자신은 희생자라는 감정에 사로잡히기 쉽다."(허훈, 『마음은 몸으로 말한다, 이담북스, 2010, 83쪽) - P104
그래서 아주 역설적이게도 가방끈이 길수록 ‘자율성 제로‘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즉, 요즘엔 대학원생들조차 뭘 배우려면 유명학원에 등록을 하거나 그 방면의 매뉴얼을 확보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도서관과 책을 뒤지고 친구나 선배한테 물어 가면서 앞을 스스로 구성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자발성과 능동성을 상실하는 것, 교육적으로 보자면 이보다 더 큰 마이너스는 없다. 대체 왜 그토록 서두르고 조급해하는가? 라고 물으면 다들 이렇게 말한다.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맞는 말이다. 개천에선 원래 용이 나지 않는다. 용은 본디 ‘큰 물‘에서 나는 법이다. 헌데 ‘큰 물‘이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건 사이즈가 아니다. 얼마큼 활개를 칠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에 달려 있다. 사지가 꽁꽁 결박당해서는 용은커녕 미꾸라지도 되기어렵다. 그럼 뭐가 나느냐고? 도처에서 ‘괴물‘이 출현한다. 용과 괴물의 차이는 무엇일까? 용은 여의주를 머금고 하늘로 올라간다. 그러면서 모든 미꾸라지들을 함께 도약하도록 이끄는 존재다. 괴물이란 영화 <괴물>에서 보듯, 비대한 몸집을 유지하느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존재다. 그러다 결국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존재, 그것이 바로 괴물이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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