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 깃털은 무척 부드러워 보여서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만지고 싶어진다. 온기를 보존해주는 촘촘한 깃털은 먹이를 활발하게 찾기보다는 앉아서 기다리는 성향의 사냥꾼에게 필수적이다. 가장 바깥쪽 날개깃에는 빗살 같은 술 모양 테두리가 있는데, 이는 공기의 흐름을 끊어 올빼미가 먹이를 덮칠 때 날갯짓 소리를 없애준다. 올빼미는 정면을 향한 부리부리한 눈 때문에 현자를 상징하는 동물이 되었지만, 사실 올빼미의 눈이 그렇게 생긴것은 망막에 최대한 많은 빛 입자를 받아들여 잠복할 때 조명구실을 하고 먹이를 좀 더 쉽게 포착하기 위해서다. 인간에게 가장 매력적인 올빼미의 특징은 소형 포유동물을 효율적으로 사냥하기위해 진화했다는 이야기다. 눈앞의 산울타리에 앉아 있던 올빼미는 마침내 자리를 뜨기로 했는지, 밤색과 초콜릿색 줄무늬가 있는 두 날개를 펴더니 모습을 감춘다. - P99
나는 어린 시절 잠자리에서 「다람쥐 넛킨 이야기 The Tale of Squirrel Nutkin」를 들은 이후로 줄곧 올빼미를 무서워했다. 뻔뻔스러운 주인공 다람쥐가 올빼미 브라운 영감의 눈앞을 활보하며 놀려대고,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브라운 영감은 조각상처럼 침착하던 태도를 잃고 양쪽 발톱으로 넛킨을 낚아채 땅에 내리꽂는다. 이 장면을 묘사한 비어트릭스 포터 Beatrix Potter 의 삽화는 분노하여 살기를 띤 브라운 영감을 보여준다. 넛킨은 간신히 탈출에 성공하지만, 이 삽화와 이야기는 항상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자연이 매혹적인 동시에 잔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산울타리에 앉아 있는 올빼미를 보니 어린 시절 브라운 영감에게 느꼈던 공포가 떠오른다. 세상은 잔혹한 곳일 수 있다는 최초의 불안한 예감도. - P98
우울증을 제어하려면 꾸준한 경계가 필요하다. 자연속에서의 산책, 창의적으로 보내는 시간, 그리고 홀로 있을 때곁을 지켜줄 호박색 털북숭이 친구라는 방어용 무기를 갖춘 일상적전투 말이다. 일거리가 평소보다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가정사의 스트레스가 쌓여 나쁜 기운이 엄습할 때면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 야외 활동의 유익한 효과가 사라지고, 우울증의 가차 없는 절망이 더욱 거세게 나를 훑는 것이다. 그런 시기가 오면 이 끈질기고 진 빠지는 병이 승산을 얻게 된다. 나는 우울증과 싸우느라 지치고 활력이 거의 소진된 상태다. 힘을 모으려면 따뜻한 나날과 펜랜드의 햇살이 필요하다. 2월이 끝나고 더 많은 자엽꽃자두가 피어날 무렵, 나는 작업의뢰를 거절하고 더욱 오래 잠을 잔다. 자연물을 그리고 수집하고 사진으로 찍으려는 욕구도 실물처럼 빠져나간다. 내가 하는 모든일로부터 거리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내 우울증이 승세를 타는것 같아서 두렵다. - P116
뇌 내의 화학작용이 현저하게 균형을 잃고, 긍정적 사고의 허약한 바닥이 무너진다. 나는 우울증의 가파르고 매끄러운 벽을따라 깊디깊은 우물로 곤두박실친다. 자엽자두가 만발하고가시자두꽃이 피어나지만 나는 봄의 신호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내가 10월 이후 그토록 고대해온 자연의 변화가 시작되었건만, 지금의 나는 가파른 우물 벽에서 나를 끌어올려 줄 아주 작은발판을 찾을 힘도 낼 수 없다. 몸을 움직이려면 어마어마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하루 일정이 1월에는 ‘기사 마감하기, 앵초 사진 찍기, 작품전시하기‘였다면 3월에는 ‘몸 씻기, 아침 먹기, 이 닦기‘가 된다. 이런 사소한 일들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이며 어떤 날은그런 일조차 하나도 해내지 못한다. 뇌 내의 화학적 변화가 나를끌어내려 꼼짝 못 하게 짓누른다. ••••• 우울증이 탐욕스러운 잿빛 민달팽이처럼 마음을 갉아먹을때면 온몸의 반사신경과 감각이 잠들어버리는 것 같다. 뇌의 쾌락중추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침울함은 더욱 깊어진다. 바삭한 감자칩의 맛과 살살 녹는 초콜릿 케이크가 주는 미각이 그립다.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무쾌감증은 우울증의 주된 증상이다. 이런 결핍 상태에서는 나의 병증이 한층 교활하고 용의주도하게 느껴진다. 우울증은 식인종처럼 나를 뜯어먹으며 내게서 쾌감을 앗아가고, 더욱 강력하게 뇌를 움켜쥐고 통제한다. - P127
겨울 날씨가 뇌에 일으킨 화학적 변화와 피할 수 없는 지속적인 스트레스, 자초한 압박이 날 기진맥진하게 했다. 나를 파국으로 이끌어가는 우울증의 압력에 저항하려던 노력도 무의미해졌다. 내마음은 우울증이 갈망하는 자기소멸을 향해 비틀비틀 나아간다. 나는 그것을 실행에 옮길 방법들을 생각한다. 그 생각이 어찌나 강렬한지, 일 년의 대부분을 절벽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 해주던 이런저런 기분 전환 요령들도 떠오르지 않는다. 조그만 뗏목하나에 의지해 나이아가라 폭포 꼭대기에 놓여 있는 기분이다. 11번 국도로 차를 몬다. 그곳에는 다리가 여럿 있다. 머릿속에 다리를 찾아가자는 생각만이 요란하게 울려댄다. ‘어느다리가 가장 좋을까?‘, ‘어느 다리가 가장 높고 효율적일까?‘ 불쾌하고 끔찍한 소음이 퍼져 나간다. 그 소리가 어찌나 실감나는지 정말로 두개골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마음속에서 나 자신을 끝내고 싶은 욕망이 왕왕거린다. 그렇게 차를 몰아가는데 문득 도로 중앙분리대에서 자라나는 조그만 묘목들이 눈에 들어온다. 눈앞을 스치는 푸른 잎사귀와 엔진의 규칙적인 진동이 내면의 참담한 소음을 가라앉힌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나의 온전한 부분, 자연 속에서 치유를 구하는 뇌의 일부분이 깨어난다. ‘넌 멀쩡한 상태가 아니야. 도움을 요청해.‘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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