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아니라 ‘손의 세부를 만져주는 손길, 엷은 졸음이 몰려오며 어느 순간 ‘나는 케어받고 싶다. 나는 관리받고 싶다. 누군가 나를 이렇게 영원히 보살펴주었으면 좋겠다, 어린아이처럼‘ 하고 고해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누군가 나를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만져주고 꾸며주고 아껴주자 나는 아주 조그마해지는 것 같았고, 그렇게 안락한 세계에서 바싹 오그라든 채 잠들고 싶어졌다. 그리고 모든과정이 끝났을 때 불가사리 같은 손을 쫙 펴 보이며 속으로 환하게 외쳤다.
아! 손톱이 사탕 같아졌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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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낼 때 나는 탐욕스러워진다. 자갈,
조개껍질, 모래와 그 속에 사는 작은 생물들까지 전부 소유하고싶다. 해변이 내 뇌의 화학작용에 엄청나게 강력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그곳의 모든 것을 모아서 앞으로다가올 힘든 날을 위한 부적으로 집에 가져가고 싶다. 지난 11월 동네 숲에서 자두나무와 산사나무 가지에 달린 열매와 화사한 잎을 보며 느꼈던 식물학적 소유욕의 더욱 강력한 버전이라고할까. 준보석이나 부드러운 털실 뭉치를 볼 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욕망, 바닷가 채집 활동에 따른 도파민이다. 이 자갈들을 가져다가 오두막집 안에 늘어놓고 싶다. 곱게 배열해서 조각보를 만들고 자갈 드레스를 지어 입고서 돌아다니고 싶다. 내 모습은 울퉁불퉁한 아르마딜로처럼 보이겠지.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옷차림이 될 거야. 하지만 나는 자갈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한다.
- P226

애니와 나는 집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의 마지막 굽이를 돌아간다. 오른쪽에서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산울타리 너머에 나란히 뻗은 전화선 위로 제비들이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처럼 앉아있다. 다가올 긴 여행길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몇 주만 지나면 그들도 내년을 기약하며 떠나게 되리라.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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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치료사를 찾아가고, 날마다 약을 먹고, 우울감에 압도당할 것 같으면복용량을 늘린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보다 더 많은 수면과 휴식을 취해야하며 그렇게 해도 내가 바라는 만큼 작업하고 성취할 기력이 없다.
이런 상황을 제어하려고 애쓰는 것이야말로 나의 끝나지 않는 과업이자 내 필생의 비참한 역작이 될 것이다. 나는 지쳤고 갑자기 이 병으로부터 잠시라도 휴가를 떠나고 싶어진다. 딱 하루만 아침에 일어나 내가 하는 일을 순수하게 즐길 수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기대를 줄이지 않을 수 있다면, 나는 렉퍼드 호숫가에서 작고 희귀한 새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으며 소리 내어 운다.
거기 선 채 눈물이 흘러나오게 놔둔다. 흐느끼며 길바닥에 콧물을 떨어뜨린다. 내가 느끼는 증오와 분노가 마구잡이로 터져 나오도록 내버려 둔다. 그러고 나서 정신을 꾹 쥐어짜며 현실로 돌아온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다시 ‘머릿속의 섬뜩한 상자‘에 집어넣고,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한다.
다음 날은 기분이 좋다. 우울증과 함께 산다는 게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인정하면서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 것 같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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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현실, 과학

2016년에 1분과학‘ 채널을 개설해 과학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그이야기가 웹툰으로 그려지고, 이렇게 책으로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1분과학‘을 만든 건 과학자들, 전공자들만 알고 있기에는 과학적 지식이 너무나 중요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주는 놀라움을 처음 느꼈을 때는 사실 조금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걸 왜 아무도 얘기하지 않지?‘라고 생각했죠. 과학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회라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비춰주는 불빛 같았습니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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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먼 타이어 자국이 밴활주로 사이로 휘이- 시원한 가을바람이 지나갔다. 정차된 항공기들은 모두 앞바퀴에 턱을 괸 채 눈을 감고 그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나라에서 불어와 어떤 세계로 건너갈지 모르는 바람이었다. 몇몇 항공기는 탑승동 그늘에 얌전히 머리를 디민 채 졸거나 사색 중이었다. 관제탑 너머론 이제 막지상에서 발을 떼 비상하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딴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 중력을 극복하는 중일 테지만 겉으로는 침착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얼마 뒤 녀석이 지나간 자리에 안도의 긴 한숨 자국이 드러났다. 사람들이 비행운이라 부르는 구름이었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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