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살면서 느끼는 황홀함은 모두 내면에서 나올 거란다." 발레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우슈비츠에 오기 전까지는. 마그다 언니는 엄마가 들어간 건물 꼭대기에 있는 굴뚝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영혼은 절대 죽지 않는다." 마그다 언니가 말한다. 마그다 언니는 위로의 말을 찾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무 감각이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이미 벌어진 모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가 없다. 엄마가 화염 속에서 불타는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유를 물을 수도 없다. 심지어 슬퍼할 수도 없다. 지금은 아직 안 된다. 다음 순간, 다음 호흡을 위해 온 신경을기울여야 한다. 나는 언니가 여기에 있는 한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나는 그림자처럼 언니 옆에 찰싹 붙어서 기필코 살아남을 것이다. - P77

나는 내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을 언니에게 말한다.
"언니의 눈, 눈이 매우 아름다워. 머리카락이 가리고 있을 땐 미처알지 못했어." 내가 언니에게 말한다. 이 순간, 나는 처음으로 알게 된다.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잃은 것에 관심을 기울일지 아니면 아직 가지고 있는 것에 관심을 기울일지. - P80

아우슈비츠에서 보낸 첫 몇 주 동안 나는 생존의 규칙들을 배운다. 만약 당신이 보초병으로부터 빵 한 조각을 훔칠 수 있다면 당신은 영웅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수감자로부터 빵을 훔친다면 당신은 망신을 당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여기에서는 경쟁과 지배가 아무 소용이 없다.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욕구를 초월한 후 자신의 외부에 있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에 헌신해야한다. 내게 그 어떤 사람은 마그다 언니다. 그리고 그 어떤 것은 미래에 자유롭게 됐을 때 에릭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살아남기위해서 우리는 내면의 세계, 즉 안식처를 구축해야 한다. 잠을 자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말이다. 나는 강제수용되기 전의 자기 사진을 어렵게 숨겨서 들여온 한 동료 수감자를 기억한다. 사진 속에서 그녀는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사진을 보면서 그녀는 자기 자신이 어떠한 사람이었는지를 그리고 그 사람이 여전히 죽지 않고 존재한다는 사실을스스로 상기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의식적 사고는 그녀에게 삶의 의지를 지킬 수 있는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 P85

나는 갑자기 ‘치명적인 Deadly‘과 ‘죽이고 있는Deadening, 두 표현 사이의 차이점에 관해 생각해본다. 아우슈비츠는 둘 모두에 해당한다. 굴뚝들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또 피어오른다. 어떠한 순간도 마지막 순간이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신경 쓸 이유가 뭐란 말인가? 시간을 투자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리고 만약에 이 순간이 바로 이 순간이 지구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이라 하더라도, 그 마지막 순간을 체념과 패배에낭비해야만 할까? 이미 죽은 사람처럼 마지막 순간을 보내야 할까?
"이 줄이 무슨 줄인지는 절대 알 수 없어." 내가 앞에 있는 여자아이에게 말한다. 미지의 상황이 우리의 내면을 공포로 파괴하는 대신 우리에게 호기심을 가지게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고나서 나는 마그다 언니를 쳐다본다. 언니는 다른 줄에 서도록 선별되었다. 죽으러 보내지더라도, 일을 하러 보내지더라도,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하기 시작한 것처럼 나를 다른 수용소로 보낸다 하더라도.. 내가 마그다 언니와 함께 계속 있고, 마그다 언니가 나와 함께 계속 있는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일도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원래의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운이 좋은 몇 안 되는 수감자들이다. 내가마다 언니를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마그다 언니가 나를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수용소의 운동장은 온통 혼란에 휩싸여 있다. 나는 이 줄들이 무엇을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거라곤 우리 앞에 무슨 일이 놓여있든, 반드시 ‘마그다 언니와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뿐이다. 우리 앞ㅔ 놓인 것이 죽음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 P96

"가스실에서 탈출했더니, 감자껍질 먹다가 죽게 생겼네." 누군가가툭 내뱉고 우리 모두 내면의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을 깔깔깔 뱉는다. 우리는 내면의 그곳이 아직 존재하는지 미처 몰랐다. 우리는 크게 웃는다. 부상을 입은 독일 군인들에게 수혈하기 위해 강제로 헌혈해야 했을 때 내가 크게 웃었던 것처럼. 나는 팔에 바늘을 꽂고 앉아서 속으로 농담을 던지곤 했다. ‘평화주의자 댄서의 피를 받아서 전쟁에서 꼭 승리하시기를!‘ 나는 생각했다. 나는 팔을 홱 잡아당길수 없다. 만약 그렇게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총살을 당할 것이다. 나는 총이나 주먹을 들고 압제자들에게 반항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나는 나만의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의 웃음안에 그 힘이 있다. 우리의 동지애, 우리의 명랑함은 아우슈비츠에서 열었던 가슴 대회에서 우승했던 밤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의 수다는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 P100

이제 4월이다. 언덕이 풀로 온통 초록빛이다. 하루하루 해가 길어•진다. 우리가 마을의 외곽을 통과할 때마다 어린아이들이 우리에게 침을 뱉는다. 얼마나 슬픈 일인지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이 우리를 증오하도록 세뇌를 당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내가 어떻게 복수할 건지 알아? 나는 독일인 아이 엄마를 죽일거야. 독일인은 우리 엄마를 죽였어. 그러니까 나는 독일인 아이 엄마를죽일 거야." 마그다 언니가 말한다.
나는 다른 소망이 있다. 나는 우리에게 침을 뱉는 남자아이가 언젠가 자신이 타인을 증오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에게 ‘더러운 유대인들! 벌레들!"이라고 외치는 남자아이•가 나의 복수 판타지 안에서는 장미 꽃다발을 내민다. 남자아이가 말한다. "이제 알아요. 당신을 증오할 이유가 없다는 걸요. 단 하나도요." 우리는 서로를 용서하며 껴안는다. 하지만 나는 마그다 언니에게 나의 판타지에 대해 절대 말하지 않는다.
- P108

"너" 그가 말한다. 역겨워하는 듯한 목소리다. 나는 두 눈을 감는다. 그가 나를 발로 걷어차기를 기다린다. 나는 그가 나를 총으로 쏘기를 기다린다.
무거운 무언가가 내 발 근처에 떨어진다. 돌인가? 설마 돌로 쳐서죽일 생각인가? 총보다 느린 방식으로?
아니다. 그것은 빵이다. 작은 덩어리의 호밀 흑빵.
"그렇게까지 한걸 보니 배가 몹시 고팠나 보군." 그가 말한다. 나는70여 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는히틀러가 지배한 12년이라는 시간이 모든 사람으로부터 선의를 송두리째 없앨 만큼 증오를 충분히 심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의 눈을 쳐다보니 아빠의 눈을 닮았다. 녹색이다. 위안을 주는 눈빛이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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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인간은 한때 모든 신비로운 존재 중 가장 위대한 존재로 알려졌다. 그러나 나는 우리 자신의 존재가 더 이상 신비하지 않다는확신으로 이 책을 썼다. (왜냐하면 그 비밀이 풀렸기 때문이다.) 다윈과 월리스가 그 비밀을 풀었다. 비록 당분간은 우리가 그들의 설명에 각주를다는 작업을 계속해야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가장 심오한 문제를 해명한 우아하고 아름다운 설명에 대해 모르고 있을 뿐 아니라, 믿기지 않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초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쓰게된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그 문제란 바로 복잡한 설계이다.  - P9

자크 모노가 잘 꿰뚫어 보았듯이, 다윈주의와 관련된 고충 중 하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다윈주의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다윈주의는 너무나 단순한 이론이어서, 어떤 사람은 물리학과 수학에 비교하면유치할 정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요약하면 ‘유전적인 변이를 수반한계획적인 번식은, 축적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광범위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다윈주의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윈주의가단순하다는 믿음이 거짓이라는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발표된 지 300년이 지나도록, 그리고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의 크기를 측정한 지 2,000년이 지나 19세기 중엽에 다윈과 윌리스가그 이론을 생각해 낼 때까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어떻게 그처럼 단순한 생각을 아리스토텔레스, 홉, 라이프니츠, 데카르트, 갈릴레오, 뉴턴으로 이어지는 훌륭한 사상가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발견하지 못했을까? 왜 빅토리아 시대의 두 박물학자가 등장하기까지 기다려야만 했을까? 그것을 간과한 수학자와 철학자 들은 무엇이 ‘잘못‘ 되었던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그런 강력한 이론이 아직까지 대중들의 의식 속에 흡수되지 못했을까?
인간의 두뇌는 마치 다윈주의를 이해하지 못하게, 그리고 믿지 못하게끔 특별히 고안된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종종 ‘맹목적인‘이라는수식어가 붙어 과장되는 우연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다윈주의를 공격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윈주의는 무작위적인 우연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잘못된 생각으로 다윈주의를 반박하려는 어처구니없는열망에 사로잡혀 있다. 생물이 지닌 복잡성은 우연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에 다윈주의를 우연과 동격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을 반박하기란 분명 쉬울 것이다. 나의 임무 중 한 가지는 다윈주의가 ‘우연‘의 이론이라는이 열광적인 미신을 깨부수는 것이다. 우리가 다윈주의를 믿지 못하는또 다른 이유는 우리의 뇌가 진화가 일어날 만큼 긴 ‘시간 척도‘ 에 비하면 너무도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는 사건에만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몇 초, 몇 분, 몇 년, 기껏해야 몇십 년 만에 완결되는 사건들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다윈주의는 사건 진행 속도가 너무나 느려서 완결되려면 몇만 년, 몇백만 년이 걸리는 작은 과정들의 누적에 관한 이론이다. - P12

시계는 제작자가 있어야 한다. 즉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선가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제작자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는 의도적으로 그것을 만들었다. 그는 시계의 제작법을 알고 있으며 그것의 용도에 맞게 설계했다.

페일리는 이 결론에 대해서는 아무도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못한다고주장한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이 자연의 작품에 대해 생각할 때에도 동일한 결론을 내린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시계 속에 존재하는 설계의 증거, 그것이 설계되었다는 모든 증거는자연의 작품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차이점은 자연의 작품 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또는 그 이상으로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이다.

페일리는 후일 다윈이 즐겨 사용했고 이 책에서도 다룰 인간의 눈(目)을찬미하면서 그의 주장을 확고하게 펼쳐 나갔다. 페일리는 망원경 같은인간이 고안해 낸 기구와 비교하면서 눈은 어떤 것을 본다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으며, 망원경은 그것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망원경이 인간의 설계를 통해 만들어졌듯이 눈도 반드시 설계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열성적이고 성실한 페일리의 주장은 당대 최고 수준의 생물학 지식에 의거하였지만 잘못된 것이었다. 그것도 완전히 틀린 주장이었다. 망원경과 눈을 비교하는 것, 그리고 시계와 생물을 비교하는 것은 오류이다. 비록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그 과정을 전개하였지만 모든 자연현상을 창조한 유일한 ‘시계공‘은 맹목적인 물리학적 힘이다. 실제의 시계공은 앞을 내다볼 수 있다. 그는 마음의 눈으로 미래의 결과를 내다보면서 톱니바퀴와 용수철을 설계하고 그것들의 조립 방법을 생각한다. 다윈이 발견했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맹목적이고 무의식적이며 자동적인 과정인 자연선택은 확실히 어떤 용도를 위해 만들어진 모든 생물의 형태와 그들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며, 거기에는 미리 계획한 의도 따위는 들어 있지 않다. 자연선택은 마음도, 마음의 눈도 갖고 있지 않으며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하지 않는다. 전망을 갖고 있지 않으며 통찰력도 없고 전혀 앞을 보지 못한다. 만약 자연선택이 자연의 시계공 노릇을한다면, 그것은 ‘눈먼‘ 시계공이다. - P27

그렇다면 생물은 물리학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것은아니다. 생물 안에서 물리학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생물에 초자연적인 무엇이나, 물리학의 기본 법칙에 반(反)하는 ‘생명력‘ 따위란 결코 없다. 단지 어떤 생물 ‘전체의‘ 행동을 이해할때, 물리학의 법칙을 그대로 적용하면 매우 이상하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신체는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복잡한 물건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체의 행동을 이해하려 할 때, 물리학의 법칙은 전체가 아닌 각 구성 부분에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면 전체로서의 신체의 행동은 각 구성 부분이상호 작용한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운동의 법칙을 예로 들어 보자. 만약 죽은 새를 공중에 던진다면 그것은 물리 교과서에 적힌 대로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서 땅에 떨어진 후,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있을 것이다. 그것은 질량을 가진 단단한 물체처럼 움직이고, 운동 과정에는 공기의 저항이 작용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새를 집어던지면 그것은 포물선을 그리지도 않을 것이고 땅에 떨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날아가 버리고 그 근처에서는다시 땅에 내려앉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새가 중력에 저항할 수 있는 근육을 갖고 있고, 몸 전체로 본다면 다른 물리적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근육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는 물리 법칙에 따른다. 새는 그 근육으로 날개를 움직여서 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새는 중력의 법칙을 위반하지 않는다. 새는 항상 중력에 의해 아래로 잡아 당겨지고 있으나, 날개가(날개의 근육은 물리학의 법칙을 따르면서) 중력의 힘에도 불구하고 떠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능동적인 작업을 수행하고있는 것이다. 우리가 새를 아무런 내부 구조도 없고 일정한 질량과 공기저항 계수만을 갖는 물체로 간주할 만큼 무지하다면, 새가 물리학의 법칙에 도전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가 복잡한 내부 기관을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 내부 기관들 모두가 나름대로의 수준에서는 물리학의 법칙을 준수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만 새의 몸 전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생물의 특수성은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든 모든 기계와, 복잡하고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모든 물체에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 P36

여기서 바로 내가 논의하고자 했던 마지막 주제, 즉 설명이 의미하는것이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도달한다. 우리는 지금껏 복잡한 물건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우리가 복잡한 기계, 또는 생물이어떻게 작용하는가에 관해 의문을 갖는다면 과연 어떤 종류의 설명이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 대답은 앞 문단까지 서술한 내용에 이미 나와 있다. 기계나 생물이 작동하는 방법을 이해하고자 한다면구성 성분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구성 성분들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고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만약 이해하지 못한 복잡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이미 이해하고 있는 더 단순한 것의 차원으로 환원시킬 때에만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만약 내가 기술자에게 증기 기관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물으면, 그는 나를 만족시킬 만한 일반적인 대답을 해 줄 것이다. 만약 기술자가 증기기관은 ‘스스로 움직이려는 힘 (force locomotif)‘에 따라 움직인다고 대답한다면, 나는 줄리언 헉슬리처럼 분명 실망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가 부분의 총합보다 큰 전체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나를 지루하게 만든다면, 나는 그의 말을 자르고 "거기에 관해서는 신경쓰지 말고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설명해 주시오."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듣고 싶은설명은 엔진의 각 부분들이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여 전체 엔진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처음엔 꽤 큰 부품들(그 큰 부품들의 내부 구조와 동작 또한 복잡하고, 거기에는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할 테지만)의 상호 작용에 의한 설명을 기대할 것이다. 처음에 기대하는 설명에서 거론될 단어들은 화실(火室), 보일러, 실린더, 피스톤, 조속기調速機)일 것이다. 그런 다음 기술자는 다시 이것들 각각이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처음에는 각각의 기능들을 묻지 않은 채, 그 설명을 받아들일 것이다. 각각의 단위들이 맡은 일을 수행한다고 가정하고‘ 그것들이 상호 작용하여 전체 엔진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 P37

"무슨 주의‘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내 설명 방식에 가장 적합한 이름은 아마 ‘단계적 환원주의段階的 還元主義‘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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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반대하지만 상상 속에만 있는) 존재하지도 않는 환원주의는 복잡한 물건을 ‘무턱대고 가장 작은‘ 부분의입장에서, 심지어 극단적으로는 그 작은 부분들의 ‘총합‘으로 설명한다. 반면에 단계적 환원주의자는 복잡한 전체를 설명할 때, 처음 단계에서 단지 한 단계 낮은 부품들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그 부품들은 다시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더 작은 부품들의 단계로 환원하여 설명할 수 있다.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사람을 잡아먹는 환원주의자들은 결코 긍정하지 않을 테지만, 높은 단계에 걸맞은 설명은 낮은 단계에 맞는 설명과는 사뭇 다르다. 이것이 자동차 작동 원리를 설명할 때 소립자보다는 카뷰레터(기화기)의 견지에서 설명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단계적 환원주의자는 기화기의 작동 원리를 더 작은 부품의 동작으로 설명할 수 있고그것들은 다시 더 작은 부품으로, 또 그것들은 더 작은 부품으로, 궁극적으로는 가장 작은 소립자의 수준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점에서 환원주의란 사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고 싶은 솔직한 욕망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다른 한 가지 의문은최초에 어떻게 복잡한 물건이 존재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이 책 앞부분에서 다루게 될 내용이므로 여기서는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작정이다. 나는 단지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똑같은일반적인 원칙이 적용된다는 사실만을 언급해 두고자 한다. 복잡한 물건이란 그것이 너무나 있을 법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그 존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물건을 말한다. 그것은 일회적인 우연으로는 생겨날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의 생성 과정을, 우연히 생겨날 정도로충분히 단순한 최초의 물체가 점차적으로, 누적적으로, 단계적으로 더복잡한 물건으로 변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1단계 환원주의‘로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없고, 양파 껍질 벗기기 식의작은 단계로 나누어진 설명만이 그 복잡성을 설명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복잡한 물건이 단 한 번의 단계를 거쳐 생겨났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시간순으로 배열된 일련의 작은 단계들로 설명해야 한다. - P41

박쥐와 같은 기계를 만들고자 하는 기술자가 부딪히는 문제가 바로여기에 있다. 만약 마이크나 귀가 극도로 민감하다면 스스로 내는 커다란 소리에 손상되어 버릴 위험이 있다. 소리를 작게 만드는 것은 되돌아오는 메아리가 더욱 작아지기 때문에 좋은 해결책이 못 된다. 또한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이크(귀)를 더욱 민감하게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럴 경우 전보다 작아진 소리에도 더 쉽게 손상될 것이기때문이다! 이것은 냉혹한 물리학의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생기는 내보내는 소리의 크기와 되돌아오는 메아리의 크기 사이에 생긴 급격한차이에서 비롯된 딜레마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레이더를설계한 기술자들도 이와 유사한 문제에 부딪혔는데, 그들은 우연히 ‘송신·수신‘ 레이더라는 해결책을 발견했다. 들릴까 말까 한 메아리를 기다리고 있는 극도로 민감한 안테나가 있고, 레이더의 신호는 그것을 손상시킬 만큼 매우 강력한 파동을 내보낸다. ‘송신·수신‘ 장치는 파동이 방출되기 바로 직전에 수신 안테나의 회로를 차단한다. 그런 다음 메아리가 되돌아올 때를 맞춰 다시 안테나의 회로를 연결한다.
박쥐들은 오래전에, 아마도 우리 조상들이 나무에서 내려오기 수백만년 전에, 이 ‘송신·수신‘ 전환 기술을 개발했을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박쥐의 귀에서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막의 진동이 마이크와 같은 청세포에 전달될 때 3개의 작은 뼈, 즉 그 모양에서이름이 유래된 망치뼈, 모루뼈, 등자뼈를 거치게 된다. 그런데 이 3개의뼈의 결합은 고음질의 오디오 제작자가 설계했음 직한 ‘임피던스 정합기구(impedance-matching function, 입력단과 출력단의 저항 차이를 줄여 주는기구 옮긴이)‘와 정확히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이야기이고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박쥐들은 등자뼈와 망치뼈에 잘 발달된 근육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근육들이 수축하면 그 뼈들은 소리를 효율적으로 전달하지 못한다. 마치 떨고 있는 진동판에 손가락을 대서 소리를 죽이는 것과 같다. 박쥐는 이 근육을 사용하여 귀가 잠깐씩안 들리게 할 수 있다. 각각의 파동을 내보내기 바로 직전에 근육을 수축시켜 시끄러운 파동에 귀가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수축되었던 근육은 다시 이완되어, 메아리가 돌아올 때쯤이면 본래 가진 고도의 민감성이 회복된다. 이 송신 · 수신 전환 체계는 1초를 몇 번에걸쳐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한 타이밍을 유지할 때에만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큰귀박쥐라 불리는 박쥐는 기관총 같은 초음파 파동에 정확히 타이밍을 맞추어 근육을 초당 50회씩 수축시키고 이완시킬 수 있다.
이것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기관총을 장착한 전투기에 사용된 기술과비견할 수 있을 만큼 정밀한 타이밍 기술이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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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이 쿵쿵거리고 다니면서 총으로 의자들을 넘어뜨린다. 빨리빨리 나는 갑자기 엄마에게 화가 난다. 엄마는 나를 구하기 전에 클라라 언니를 먼저 구할 것이다. 엄마는 어둠 속에서 내 손을 잡아주는대신 식료품 찬장을 뒤질 것이다. 나는 나만의 다정함, 행운을 스스로찾아야만 할 것이다. 4월의 컴컴한 새벽이 주는 한기에도 불구하고, 나는 얇은 푸른색 실크드레스를 입는다. 에릭이 내게 입 맞췄을 때 입었던 옷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드레스의 주름을 매만진다. 그러고선 가느다란 푸른색 스웨이드 벨트를 묶는다. 나는 에릭의 팔이 다시 한번 더 나를 감아 안을 수 있도록 이 드레스를 입는다. 이 드레스는 나를 호감으로 보이게 할 것이고 보호해줄 것이고 사랑을 되찾을 준비가 되어 있게 해줄 것이다. 만약 내가 몸을 떤다면 그것은 희망의 징표일 것이고 더 깊고 더 나은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의 신호일 것이다.
나는 에릭과 에릭의 가족이 어둠 속에서 옷을 입고 재빨리 움직이는모습을 그려본다. 그가 나를 생각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귀에서부터 발끝까지 에너지의 전류가 찌르르 흐른다. 나는 두 눈을 감고서 양손으로 양 팔꿈치를 받치고서 사랑과 희망의 섬광이 남긴 잔광이 나를계속 따뜻하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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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새째 오후 네시에 그의 단식은 "그들의 입에서 잘못을 시인하는 한마디의말도 끌어내지 못한 완패"로서의 종말을 맞이한다. 그는 매일 당하는 강제급식이라는 ‘융단폭격‘ 앞에 견디지 못하여 ‘무조건 항복의 백기‘를 내걸고 단식을 중단하면서 속으로 이렇게 자위한다.
"짐승과 싸우는 데 단식투쟁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방법이다."
노신(魯迅)이 봉건적 질곡 아래 짓눌린 인간성의 전형으로서 창조한 인물 아큐(JQ)가 명백한 현실적 패배에 부딪힐 때마다 늘상 비방처럼 애용하던 ‘정신적 승리‘를 통한 탈출의 광경이 여기에서 너무나도 흡사한 모습으로 재현되고있는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실로 참담한 감회를 가눌 길이 없다. 우리가 과연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거듭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 곳곳의 수감장소에서 밥을 굶으며 차디찬 벽을 향하고 앉아 있는 우리 젊은이들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그보다 더 혹심한 예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극악한 인간적 상황에 내몰려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면벽고행도 面苦行圖)는 우리 시대의 가장 깊숙한 어둠, 가장 쓰라린 치욕, 가장 비통한 고뇌를 보여주는 축도이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상황인 것이며 더이상 한시라도 방치되거나 외면되어서는 안 될 절박한 문제인 것이다. - P70

근대 이전 이러한 시대에는 국가가 죄수를 장기간 비싼 밥을 먹여주어가며 일정장소에 가두어놓을 필요가 있으리라고는 거의 상상되지 않았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조말까지만 해도 생명형 (死刑), 태장형 (笞杖刑) 및 유형(流刑) 제도가 형벌제도의 주종을 이루고 있었으며, 옥 (獄) 이란 것은 형의 집행을 위해 죄수를 일시적으로 구금하기 위한 소박한 고전적 수용제도로서밖에 활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근대 인권사상의 대두와 함께 과거의 형벌사상에 근본적 반성이 제기되었다. 죄수의 육신에 직접적으로 겨누어진 잔학행위로서의 체형은 "형집행자를 범죄자와 방불하게, 재판관을 살인자와 방불하게 만드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범인을 동정과 존경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라는 비판에 봉착하였다. 교육형주의의 주창자인 베카리아는 1764년에 간행된 그의 명저 「범죄와 형벌」에서 중세적인 사형제도를 일컬어 "끔찍한 범죄로서 비난한바로 그 살인행위를 (국가가) 냉혈하고 비정한 모습으로 되풀이하는 짓"이라고격렬히 비난하였다.
그리하여 형벌에 있어서의 야만성을 지양하기 위한 새로운 원리가 고안되었다. 레옹 포셰라는 사람은 1765년에 죄수의 교정 · 교화에 역점을 둔 ‘파리 청소년수용소의 규칙‘을 초안하였고, 마블리라는 사람은 새로운 형벌원리로서
"형벌은 .. 죄수의 신체가 아니라 영혼을 타격하여야 한다"라는 명제를 제시하였다. - P71

사상·표현의 자유, 보도의 자유라는 요청과 프라이버시의 보호라는 요청이 서로 충돌할 때 어느 선에서 조화를 모색할 것인가? 이 점에 관하여 판례법은두 가지 원칙을 발전시켜왔는데 이 두 가지 원칙은 왕왕 중복된 형태로 논의되고 있다.
그 하나는 ‘공공의 이익‘의 원칙인데 이것은 어떤 보도 또는 그에 준하는 활동이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인 국민의 ‘알 권리‘에 봉사하는 것일 경우에는 프라이버시 침해의 면책사유가 될 수 있다는 원칙이다.
또 한 가지는 ‘저명인‘ (public figure, public character or public personage)의 원칙인데 이에 의하면 어떤 기사 또는 묘사에 의하여 프라이버시의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그 기사 이전에 이미 사회 일반인으로부터 마땅히 주시받고 알려져야 할 ‘저명인‘이었던 경우에는 그 기사 또는 묘사가 면책될수 있다고 한다. 예컨대 이름없는 한 회사원의 사생활의 비밀에 관한 보도는프라이버시 침해가 될 수 있지만 에드워드 케네디와 그 여비서와의 사적 관계에관한 폭로기사는 프라이버시 침해로부터 면책될 수 있는 것이다.
"자기의 업적, 명성이나 생활방법에 의해 또는 자기의 행위나 성격에 대해 공중의 흥미를 끌기에 마땅한 직업을 선택한 자는 저명인이 되는 것이며 그리하여 자기가 가진 프라이버시의 권리의 일부를 잃는 것이다."
이것은 코헨 대 막스 사건에서 매콤 판사가 내린 유명한 정의이다 - P85

요컨대 구체적인 경우에 과연 어느 정도까지 ‘보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사생활의 비밀에 파고드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인가를 결정함에는 매우 복잡다기한 요인들을 비교형량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보도는 ‘공공의 이익‘에 합치하는가? 그 대상인물의 사회적 지위는 얼마나 ‘공적‘인가? 그것은 "보도인가 아니면 사생활에의 부당한 침입인가? 대상인물의 생활태도는 윤리적인가? 그와 대비하여 보도하는 측의 행위는 비윤리성을 현저히 띠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관점에서 부천서사건의 피해자인 권양의 이름과 사진을 게재한 일부신문의 보도가 과연 타당한 것이었는지, 손을 내젓는 사람들의 얼굴에 억지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방영을 하는 「추적 60분」등의 TV보도가 과연 온당한 것인지 하는 문제들이 진지하게 재검토되었으면 한다.
(신문과 방송, 1986.9)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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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같은 충격과 항의와 관심은 요컨대 첫째로, 원판결이 미혼여성 회사원인 원고 이경숙이 25세에 달하면 결혼하여 퇴직한다는 예상을 전제로 하여 배상액을 산정한 것은 사법부에 의한 결혼퇴직제의 정당화에 귀착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 및 둘째로, 법원이 주부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함에 있어서 하필이면 ‘최하위 생계유지노동‘인 도시여성 일용임금 일당 4천원을 산정 기초로 삼았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과 의구심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 관하여 성명서, 건의문 또는 좌담회 등을 통하여 발표된 여성단체들이나 개인들의 견해를 종합하여보면 여성들은 원판결의 위와같은 입론에 대하여 이를 여성에 대한 차별적 편견의 반영으로 보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뿐더러 언론에 보도된 사회 일반의 여론 역시 원판결에대하여 이를 일반적 법감정에 부합되지 아니하는 의외의 판결로 보고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위와같은 여론의 반응에 대하여 이를 단순히 민사소송에 있어서의 당사자주의, 손해배상사건에 관한 법원의 판결관행, 기타 제반 소송기술상의 문제 등에대하여 전문적 지식이 없는 문외한들의 무지와 오해의 소치로만 가볍게 돌려버린다는 것은 결코 정당한 일이 되지 못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원판결의 판단이설사 손해배상소송에 있어서의 종래의 재판관행에 따른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사실상 최초로 사회 일반에 널리 주지되면서 소박한 일반적 법감정에 현저히 어긋난다는 여론의 비판에 봉착하게 된 이 마당에 있어서는 그같은 종래의재판관행 자체에 대하여 근본적인 비판과 재검토가 가해져야 옳을 것이며 법원으로서는 자세하고도 충분한 심리를 통하여 일반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논거를 제시함으로써 종래의 관행을 재확인하든지 아니면 종래의 관행을 수정. 변경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 P45

바꾸어 말하자면 각종 법령, 취업규칙, 단체협약, 근로계약 등의 규정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단순한 관행, 관습, 지배적 편견, 기타사실상의 강제력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거나를 막론하고 근로여성들에대하여 부과되고 있는 일체의 결혼퇴직강제 현실의 잔존수명은 법원이 이를 얼마나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얼마나 강경한 어조로 비난하느냐에따라서 크게 좌우되는 것이며 이같은 견지에서 볼 때 미혼여성 근로자의 결혼후 계속근무 가능성 여하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이른바 ‘자기실현적 예언‘ (self-fulfilling prophecy)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위 원고가 근무하던 회사에 기혼여성이 없다는 등의 사유만으로 가볍게 위 원고의 결혼퇴직을 예언한 원판결의 위 입론의 근저에는 아무래도기혼여성의 취업을 백안시하고 가사노동 전념을 미덕으로 보는 전통시대적 · 남성지배적 편견과, 대등한 사회참여를 통하여 경제적 독립, 인격적 통합, 인간[적 존엄을 획득하고자 하는 다수 여성들의 절실한 염원에 대한 몰이해 (沒理解)가 은연중에 자리잡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으며, 사회여론이 원판결에 대하여 사법부에 의한 결혼퇴직제의 정당화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는것을 단순한 문외한의 오해라고 돌려버릴 수 없는 소이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 P48

나. 주부 가사노동에 대한 화폐적 평가의 점
(1)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부부재산제도는 여성의 경제적 무력화와 예속상태를 영구화하는 방향으로만 운용되어왔습니다. 주부가 가사노동에만 전념하는경우 주요한 재산은 모두 남편의 소유명의로 되고 만약 그렇지 아니할 때는 자금출처의 조사, 증여세의 부과 등 감내하기 어려운 불이익이 부과됩니다.
결혼생활을 통하여 형성된 남편명의의 재산은 가정공동체 속에서의 아내의헌신적인 기여와 협력에 힘입은 것이고 따라서 부부 공동의 노력의 산물이라고하여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혼시 아내에게 그 재산에 대한 정당한 몫만큼의 분할청구권이 인정되지 아니하고 다만 남편의 유책 (有責) 행위로 인하여 입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으로서의 성격을 지닌 위자료만이 인정될 뿐이며그 수액 또한 남편에게 남겨지는 재산과의 균형상 지극히 미미하게만 인정되고있습니다. 이같은 여성의 경제적 무권리상태 및 그로 인하여 여성들이 감내하여야만 하는 온갖 수모와 굴종과 고통은 결국 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천시(賤視), 그 경제적 가치에 대한 부당한 외면의 필연적인 귀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 P51

감옥 안에서 밥을 굶는다는 것은 보통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의 극한상황이다. 거기에는 인간의 연약한 육신이 짊어질 수 있는 모든 고뇌와 저주가 집약되어 있다. 무엇이 우리의 젊은이들을 이같은 극한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는가?
마하트마 간디도 옥중에서 단식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도처에서 옥중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 젊은이들의 인간적 상황은 간디의 경우와는 근본적으로다르다. 간디는 그의 비폭력 · 불복종 운동의 대의를 전파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서 옥중단식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우리 젊은이들은 감옥내에서의 폭행등 각종 굴욕적인 처우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어방법으로서, 어떤 의미에서는 강요받다시피 단식을 하고 있다. 또 간디의 옥중단식에 관한 소식은 그때그때 세상에 널리 공표되어 온 세상이 그 귀추를 지켜보았으나, 우리 젊은이들은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절연된 처절한 고독 속에서 허기를 가누고 있다. 간디는 결코 ‘강제급식‘과 같은 일은 당하지 않았고, 그의 단식투쟁은 언제나 소기의 성과를 거둔 후 자의에 의해 종결되었다. 그런데 우리 젊은이들의 외로운 단식은 거의 언제나 강제급식이라는 이름의 어쩌면 인도적인 듯하면서도 어쩌면 가장 비인도적인 엄청난 물리력에 부딪혀 끝내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중도에서 좌절되고 만다.
세칭 ‘서울대프락치사건‘으로 구속되었던 전 서울대생 유시민씨는 만기출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구매신청한 포도가 썩어서 들어온 것을 보고 그동안의 인내가 한계점에 도달하여 "들척지근하고 텁텁한 포도를 씨앗까지 씹어 삼키면서 ••• 독심을 품고" 옥중단식을 결행하였다가 단식 나흘째 되는 날 예의 강제급식을 당한다. 최근에 펴낸 「아침으로 가는 길」에서 그는 당시의 광경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나는 이제 완전히 덫에 걸린 짐승꼴이었다. 발버둥칠수록 덫은 더욱 고통스럽게 조여들 뿐이다. 누군가가 내 머리카락을 잔뜩 움켜쥐고 진찰대 아래로 잡아당겼다. 여러 차례 쐐기질을 시도하던 손길이 조금 늦추어진 순간 나는 결심했다. 말해야한다. 끝까지 입을 벌리지 않으면 저 고무호스를 콧구멍으로 집어넣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한껏 모로 비틀어 젖힌 다음 재빨리 입을 열었다. 당할 때 당하는한이 있더라도 의사표시만은 명확히 해야 한다.
"그만! 내 스스로 먹겠..
노련한 과장이 기회를 놓칠 턱이 없다. 쐐기는 조금씩 밀려들어왔다. 혀끝에 느껴지는 껄끄러운 나무의 감촉. 앞이빨이 몽땅 부러져나가는 듯한 아픔. 숨쉬기가 거북스럽다. 과장의 씨근대는 숨소리말고 주위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팔다리에서힘이 빠져나갔다. 미끄러운 무엇이 목 안을 스치고, 곧이어 구역질이 치밀어올랐다. 꾸루룩 꾸룩 미음이 뱃속으로 흘러들었다. 구역질은 더욱 격렬해지고 숨이 가빴다. 어릴 때 집에서 기르던 개가 쥐약이 든 음식을 먹고 죽어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개는 옆으로 길게 뻗은 채 뱃속에 든 것을 몽땅 토해놓고 죽었다. 토할 때마다 갈빗대가 숭숭 드러난 개의 배는 마치 아코디언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했다. 내가 바로 그런 꼴이었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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