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나는 치타가 먹이를 잡는 능력과 가젤이 포식자를 회피하는능력이 착실하게 성장해 나간다는 인상을 주었다. 독자들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매 세대가 그 부모 세대보다 더 낫고 훨씬 더 용감해진다는 빅토리아 시대의 완고한 진보 개념을 연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계의 진실은 전혀 다르다. 의미 있는 개선이 확인될 수 있는 시간 척도는 어떤 경우든 한 세대와 그 이전 세대를 비교해 식별할 수 있는 시간보다 훨씬 길다. 더욱이 그 ‘개선‘은 전혀 연속적이지 않다. 그것은군비 확장 경쟁이라는 개념에서 나타나는 개선의 방향처럼 항상 분명한 ‘진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며, 정체하거나 심지어는 ‘여행‘ 하기까지하기 때문이다. 내가 ‘기후‘이라는 일반 항목에 일괄적으로 붙인 조건의 변화, 즉 무생물적 힘의 변화는 관찰자가 느낄 수 있는 한 군비 확장경쟁이라는 느리고 변덕스러운 경향을 압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군비 확장 경쟁에는 장기간에 걸친 ‘진보‘도, 그것에 따른 어떠한 진화적 변화도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296

두 번째 내가 ‘천적‘이라 부르는 관계가 치타와 가젤의 이야기에서설정한 둘로 이뤄진 단순한 관계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한 가지 골치 아픈 문제는 어느 종이 천적 둘(혹은 그 이상)을 가지고 있고 게다가 그 천적들이 서로 앙숙일 경우에 생긴다. 이것은풀이 뜯어먹힘 (혹은 베임)으로써 이익을 얻는다는 절반의 진리의 배후에 깔려 있는 원리이다. 소는 풀을 뜯어먹는다. 그런 의미에서 소는 풀의천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풀은 식물계에서 소 이외의다른 천적을 가지고 있다. 즉 경쟁 관계에 있는 잡초가 그 천적이다. 잡초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성장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잡초는 풀의 천적이 될 것이다. 어쩌면 소보다 훨씬 강력한 적이 될지도 모른다. 풀은 소에게 먹힘으로써 손해를 입지만 경쟁 관계에 있는 잡초 또한 소 때문에 그 이상의 손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풀에 대해 소가 미치는 순효과(純效果)를 따진다면 풀이 이익을 얻는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는 풀의 천적이 아니라 오히려 이익을 주는 친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는 풀의 천적이다. 개체로서의 풀은 먹히기보다 먹히지 않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 P297

나무의 예를 통해 잘 드러나는 또 한 가지 사실은 군비 확장 경쟁이 반드시 다른 종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 그루 한그루의 나무는 이종(異種)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동종의 구성원이 드리운 그늘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어쩌면 실제로는 그런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다. 모든 생물은 이종보다는 동종과의 경쟁에서 더 심각한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동종의 구성원은 같은 자원을 둘러싼 경쟁자이며, 경쟁의 정도는 다른 종의 구성원과 비교해 훨씬 세세한 점에까지 파급된다. 같은 종 내에서는 수컷과 암컷의 역할의 사이에서,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역할 사이에서도 군비 확장 경쟁이 나타난다.  - P302

나무의 이야기를 통해 대칭 군비 확장 경쟁과 비대칭 군비 확장 경쟁이라 불리는 두 종류의 군비 확장 경쟁 사이의 일반적이고도 중요한 차이점을 소개했다. 대칭 군비 확장 경쟁은 대체적으로 서로 비슷한 일을하려는 경쟁자 사이의 경쟁이다. 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싸우는 나무들사이에서 벌어지는 군비 확장 경쟁이 그 한 예이다. 다른 종의 나무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다른 종의 나무와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특정 경쟁, 즉 수관부樹冠部가 받는 햇빛을 둘러싼 경쟁에 관한 한 같은 자원을 두고 다투는 경쟁자들이다. 이 나무들은 한편의 성공이 다른 한편의 실패가 되는의미에서 군비 확장 경쟁에 참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경쟁이 대칭 군비 확장 경쟁이라 불리는 이유는 양쪽 모두에서 성공과 실패의 성질이 같기 때문이다. 즉 어느 편에게도 성공이란 햇빛을 획득하는 것이며, 실패란 그늘로 밀려나는 것이다.
그러나 치타와 가젤의 군비 확장 경쟁은 비대칭이다. 어느 한편이 성공하면 다른 한편은 실패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군비 확장 경쟁이지만, 성공과 실패의 성질이 양자에게 매우 다르다. 양쪽의 동물은 각기 전혀 다른 일을 ‘시도 한다. 치타는 가젤을 먹으려 한다. 반면 가젤의 의도는 치타를 먹는 것이 아니라 치타에게 먹히지 않도록 도망치는 것이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비대칭 군비 확장 경쟁 쪽이 훨씬 더흥미롭다. 왜냐하면 비대칭 군비 확장 경쟁에 참여하는 경쟁자들이 복잡한 병기 체계를 생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간의 군사 기술의예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302

고전에 속하는[동물의 적응색]이라는 책의 저자인 H. B. 코트는 이미 1940년에 이점을 훌륭하게 지적했다. 생물학에 있어서의 군비 확장 경쟁이라는 비유가 활자상으로 나타난 것은 이 책이 최초일 것이다.

메뚜기나 나비가 가지고 있는 사람의 눈을 속이는 듯한 외관이 불필요한 정도까지 상세하다고 말하기 전에 그 천적의 지각력과 식별력이 어느정도인가를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적의 군사적특징이나 전투력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순양함이 지나치게 중무장을 하고있다는 둥, 대포의 사정거리가 너무 길다는 둥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실제로 밀림 속에서 벌어지는 원시적인 전투에서도, 문명 시대의 전쟁이 세련되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진화적인 군사 경쟁이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는, 방어하는 측에서는 속도,경계, 갑주(甲胄), 가시, 굴 뚫는 습성, 야행성, 유독물의 분비, 고약한 맛,
위장이나 그 밖의 종류의 보호 등의 장치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공격하는측에서는 속도, 불의의 공격, 잠복, 유혹, 시각의 예리함, 발톱, 이빨, 바늘, 독니, 미끼를 통한 유인 등의 대항 속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추적당하는 측의 속도가 추적하는 쪽의 속도 증가와 연관되어 발달하거나, 또는 방어용 갑주가 공격용 무기와 연관되어 발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몸을 숨기기 위한 장치의 완결성은 지각력의 증가에 반응해서 진화한다. - P307

군비 확장 경쟁은 어디서 끝이 날까? 때로는 한편의 멸종으로 끝날수도 있다. 그 경우. 한편은 상대에 대해 특별한 방향으로의 전진적인진화를 정지시키고, 나아가 경제적인 이유에서 ‘후퇴‘ 하게 만들기까지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설명하기로 하자. 또 다른 경우에는, 경제적 압박에 의해 군비 확장 경쟁에 안정적인 휴지 상태가 찾아올지 모른다. 비록 경쟁의 한편이 어떤 의미에서 반영구적으로 앞서 나가고 있어도 안정적인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달리기 속도를 살펴보자. 치타와 가젤이 달릴 수 있는 속도에는 궁극적인 한계, 즉 물리 법칙에서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치타와 가젤 모두 그 한계에 도달해 있지는 않다. 양편 모두 경제적이라 생각되는 하한의 경계 이상으로 주행 속도를 올려놓는 데는 성공했다. 고속으로 달리기 위한 기술은 값싸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빨리 달리려면 긴 다리뼈나 강한 근육, 용량이 큰 페등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어떤 동물이나 정말 빨리 달릴 필요가 있는경우라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얻으려면 그것에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 비용은 경제학자들이 ‘기회비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기회 비용은, 그것을 손에 넣기위해 대신 버려야(포기해야 하는 다른 모든 비용의 합계로 측정된다. 아이를 유료 사립학교에 보내는 기회 비용은 그 때문에 살 수 없게 된 모든 것의 총합이다. 즉 살 수 없게 된 새차라든가 더 이상 즐길 수 없게된 휴가 등이 거기에 포함된다. (당신이 이런 것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을 만큼 부자라면,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기회 비용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치타의 경우 다리 근육을 굵게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다리의 근육을 생성하는 데 사용된 물질과 에너지를 이용해 ‘할 수 있었던‘ 모든 것, 예를 들면 새끼를 위해 더 많은 젖을 만들 수 있었던 가능성 등의 총합이 된다. - P311

유전자가 선택되는 것은 유전자의 내적 성질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 작용에 따른 것이다. 어느 유전자의 환경으로 특히 중요한 구성 요소는 다른 유전자이다. 다른 유전자가 그토록 중요한 구성 요소를 이루는일반적 이유는 다른 유전자 또한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진화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귀결이 이루어진다.
하나는 어느 유전자가 유리해지면 그것은 그 유전자가 협동을 선호하는 상황하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다른 유전자와 ‘협동‘ 하는 성질을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전적인 것은 아니지만, 동종 내의 유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 이유는 동일한 종 내의 유전자는 세포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협동 관계에 있는 많은 수의 유전자 집단의 진화를 일으키고 나아가서는 협동 사업의 산물로서 몸 자체의 진화로 이어지게 된다. 개체의 몸은 유전자들의 협동조합이 구축한, 각 조합원의 복제를 보존하기 위한 거대한 탈것, 혹은 ‘생존 기계인 셈이다. 유전자들이 협동하는 이유는 모든 유전자가 같은 결과, 즉함께 공유하고 있는 몸의 생존과 번식을 통해 이익을 얻기 때문이며, 또한 그 유전자들이 서로에 대해 자연선택이 작용하는 환경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항상 협동이 선호되는 것은 아니다. 지질학적 규모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대립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유전자들이 조우할 때도 있다. 이것은 특히, 물론 거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종 사이의 유전자의 경우에 해당된다. 다른 종의 개체들 사이에서는 교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종과는 유전자가 섞일 수 없다는 것이 요점이다. 어느 종 내에서 선택되어 남은 유전자가 다른 종의 유전자가 선택되는환경을 제공할 때, 흔히 그 결과는 진화적 군비 확장 경쟁이 된다. 군비•확장 경쟁의 한쪽, 예를 들면 포식자에서 선택된 결과 발생한 하나하나의 새로운 유전적 개선은 군비 확장 경쟁의 다른 한쪽, 즉 먹이가 되는 생물의 유전자가 선택되는 환경을 변화시킨다. 진화에서 나타나는 명확한 ‘진보적인 성질, 예를 들면 달리기 속도, 비행술, 예리한 시각, 발달된 청각 등의 정교한 개선을 낳을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그러한 군비확장 경쟁이다. 이 군비 확장 경쟁은 영구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 가령 그 이상 개선된다면 해당 동물 개체에 있어서 경제적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에 안정화된다. - P314

가장 관찰이 쉽고 두드러진 정의 피드백은 점차 감소하는 쪽이 아니라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오는 종류이다. 예를 들면 핵폭발이나 발작을일으키는 학교의 교사, 술집에서 벌어지는 싸움, 미국에 대해 날로 높아지는 비난의 목소리 등이 그것이다. (독자들은 내가 이 장의 첫머리에서 했던 경고를 상기하기 바란다.) 국제 정치에서 정正의 피드백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에스컬레이션‘ 이라는 전문 용어나, 중동이 ‘화약고‘라는 표현이나. 어떤 사건이 시작된 ‘도화선‘을 발견했다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정의 피드백이라는 개념과 관련해 가장 잘 알려진 표현 중 하나는 「마태복음」에 잘 나타나 있다.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없는 사람에게는 있는 것마저도 빼앗을 것이다." 이 장은 진화에 있어서 정의 피드백에 해당하는 셈이다. 생물에서는 폭발적인 정의 피드백에따라 유도된 진화의 폭주 과정이 마치 최종 산물처럼 보이는 특성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앞 장의 군비 확장 경쟁도 그 예이지만, 실제로 가장 두드러진 예는 성(性)적인 과시를 위한 기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 P325

다윈은 암컷의 변덕을 단지 천성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변덕의 존재는 성 선택의 공리(公理)이며, 스스로 설명되는 무엇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선험적인(a prior) 전제이다. 그의 성 선택 이론의 평판이 떨어지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이론은 1930년이 되어서야 겨우 피셔에 의해 구출될 수 있었으나 불행하게도 많은 생물학자들은 피셔를 무시하거나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줄리언 헉슬리를 시작으로 사람들로부터 제기된 반론은 암컷의 변덕이 진정한 과학 이론을 위한 기반으로는 정당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피셔는 암컷의 선호를 수컷의 꼬리와 마찬가지로 의심의 여지없이 자연선택의 정당한 대상으로 취급함으로써 성 선택 이론을 구해 냈다. 암컷의 선호는 암컷의 신경계의 표출이다. 암컷의 신경계는 유전자의 영향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신경계의 속성은 과거 세대에서 이루어진 선택의 영향을 받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수컷의 장식이 정적(靜的)인 암컷의 선호도의 영향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했지만, 피셔는 암컷의 선호가 수컷의 장식과 보조를 같이하며 진화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이미 이 논의가 폭발적인 정의 피드백이라는 개념과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 P328

 일반적인 결론은 이렇다. 수컷이든 암컷이든 모든개체는 수컷에게 특정 성질을 가지게 한 유전자와 암컷에게 그와 완전히똑같은 성질을 가지게 한 유전자 양쪽을 모두 가질 가능성이 높다.
즉 수컷의 성질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암컷에게 그 성질을 좋아하게만드는 유전자는 개체군 속에 제멋대로 뒤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한데 연대해 있는 경향이 있다. 이 ‘연대(togetherness)‘ 는 조금 어려운 전문 용어로 연결 비평형 (linkage disequilibrium)이라는 현상을 통해 진행되고, 수리유전학자들이 사용하는 방정식에 따라 불가사의한 일을 연출한다. 그현상은 매우 기묘하고 불가사의한 귀결을 가져오지만, 만약 피셔와 랜더의 이론이 옳다면 실제로 공작이나 긴꼬리천인조의 꼬리 그리고 그밖의 많은 유인 기관의 폭발적인 진화는 조금도 기묘하거나 불가사의한일이 아닌 셈이다.  - P333

다음에 다음과 같은 명백한 문제를 제기해 보자. 대부분의 암컷들이 10센티미터의 꼬리를 가진 수컷을 좋아한다면, 실제로 대부분의 수컷이 7.5센티미터의 꼬리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개체군의 평균 꼬리길이는 암컷의 성 선택의 영향에 따라 10센티미터로 길어지지 않은 것일까? 암컷이 좋아하는 꼬리 길이의 평균과 실제 꼬리 길이의 평균 사이에서 2.5센티미터의 편차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암컷의 선호도가 수컷의 꼬리 길이에 관계하는 유일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 그 답이다. 꼬리는 새의 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너무 길어도 너무 짧아도 비행 효율은 저하되고 만다. 게다가 긴 꼬리는이동할 때에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무엇보다 그처럼 길다란 꼬리를 만드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10센티미터의 꼬리를 가진 수컷은 암컷의 관심을 끌 수는 있겠지만, 그 대신 비행 효율의 저하, 에너지비용의 증대, 심지어는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위험의 증대라는 크나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것은 꼬리 길이에 ‘실용적인 최적값이 있다는의미일 것이다. 그 최적값은 성 선택에 따른 최적값과 달리, 일상적인 편의성이라는 기준에서 이상적인 꼬리 길이이다. 즉 암컷을 유혹하는 것을제외한 모든 관점에서 이상적인 꼬리 길이인 셈이다.
그렇다면 실제 수컷의 평균 꼬리 길이, 우리의 가상적인 예에서 설정한 7.5센티미터라는 평균 꼬리 길이는 이 실용상의 최적값과 같다고 간주해도 좋을까? 그렇지는 않다. 실용적인 면에서의 최적값은 그것보다작은 값, 대략 5센티미터 정도의 길이를 가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이유는 7.5센티미터라는 실제의 평균 꼬리 길이는 꼬리를 짧게 만들려는 실용 선택과 길게 만들려는 성 선택 사이에서 이루어진 타협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굳이 암컷을 유인할필요가 없다면 평균 꼬리 길이는 줄어들어서 5센티미터가 되었을 것이고 비행 효율이나 에너지 비용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면 평균 꼬리 길이는 차츰 늘어나서 10센티미터가 될 것이다. 7.5센티미터라는 실제 평균꼬리 길이는 둘 사이의 타협인 것이다. - P334

이 논의의 핵심은 앞에서 분명하게 밝힌 ‘연관 비평형聯關非平衡‘, 즉 어떤 길이든 주어진 길이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그것에 대응해서 같은 길이의 꼬리를 좋아하는 유전자와의 ‘연대‘라는 점에 있다. 우리는 이 ‘연대 인자‘를 측정 가능한 숫자로 생각할 수 있다. 연대 인자가 상당히 높은 경우에, 특정 개체의 꼬리 길이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알면, 상당히 정확하게 그 또는 그녀의 선호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예측할 수 있으며 그 역도 가능하다. 반대로 연대 인자가 낮은 경우에는, 어느 개체의 두 가지 부문, 즉 선호와 꼬리 길이 중 어느 한쪽의 유전자에 대한 지식을 얻으면, 그 또는 그녀의 다른 한쪽 부문의 유전자에 대해 약간의 암시밖에 얻을수 없게 된다.
연대 인자의 크기를 좌우하는 것은 암컷의 선호의 강도, 즉 암컷이 이상적이 아니라고 생각한 수컷을 어느 정도까지 참을 수 있는가, 수컷의 꼬리 길이에서 나타나는 변이가 어느 정도까지 환경 요인이 아닌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가 등이다. 이러한 모든 영향의 결과로 연대 인자, 말하자면 꼬리 길이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꼬리 길이에 대한 선호에 관계하는 유전자의 결합 정도가 극히 강하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수 있다. 어떤 수컷이 긴 꼬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선택될 때, 긴 꼬리에 관여하는 유전자만이 선택되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그 강한 ‘연대‘ 때문에 긴 꼬리를 좋아하는 유전자도 함께 선택된다. 다시 말해 암컷이 특정 길이의 꼬리를 가진 수컷을 선택하게 만드는 유전자는 실제로는 자기 자신의 복제를 선택하는 셈이다. 이것은 자기 강화 과정의 본질적 요소이다. 한마디로 자동적으로 그들 자신을 유지시키는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단 진화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기 시작하면, 이 힘은 진화를 같은 방향으로 지속시키는 경향을 낳는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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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우리가 치유하는 방식이다. 어제는 야만과 살해가 판쳤다. 어제는 인육 대신 풀 한 줄기를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오래된 관습과 예절, 규칙과 역할이 우리에게 스스로 정상이라고 느끼게 만든다. 우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살면서 상실과 공포, 삶의 끔찍한 중단을 최소화할 것이다. 우리는 ‘잃어버린 세대(제1차 세•계대전 무렵의 환멸과 회의에 찬 미국의 젊은 세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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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러한 순간-강제수용 생활의 끝, 전쟁의 끝을 상상할 때 나는 환희가 가슴에서 넘쳐나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목청껏 외치리라고 상상했다. "나는 자유다! 나는 자유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목소리가 없다. 우리는 침묵의 강물이다. 군슈키르헨의 묘지로부터 근처의 마을을 향해 흐르는 해방자들의 물결이다. 나는 임시로 만든 수레에 타고 있다. 바퀴가 끼익 소리를 내며 삐거덕거린다. 의식이 왔다갔다 한다. 이 자유에는 어떠한 환희도 안도도 없다. 우리는 숲에서 느리게 걸어 나온다. 멍한 얼굴을 하고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이내 다시 잠에 빠져든다. 자유는 잘못된 종류의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게 하는 위험이다. 자유는 상처, 이, 발진티푸스, 잘린 배, 힘없는 눈이다. - P136

 우리 대부분은 신체적으로 너무 피폐해진 나머지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우리는 수레 위에 누워 있거나 지팡이에 기대어 걷는다. 우리의 죄수복은 더럽고 해졌다. 낡을 대로 낡고 누더기가 다 되어서 우리의 피부를 거의 보호하지못한다. 우리의 피부 또한 우리의 뼈를 거의 보호하지 못한다. 우리 몸자체가 해부학 수업이다. 팔꿈치, 무릎, 발목, 광대뼈, 손가락 관절, 늑골들이 시험에 나오는 문제들처럼 돌출되어 있다. 우리는 무엇일까? 우리의 뼈는 역겨워 보이고 우리의 눈은 텅 비고 어둡고 공허한 동굴이다. 움푹 꺼진 얼굴들. 암청색의 손톱들. 우리는 움직이는 트라우마다. 우리는 느리게 움직이는, 악귀들의 행진이다. 우리는 비틀거리면서 걷고 우리가 탄 수레는 자갈길 위를 덜커덕거리며 굴러간다. 우리는 줄에 줄을 지어 오스트리아 웰스의 광장을 가득 메운다. 마을 사람들이 창밖으로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우리는 두려움의 존재다. 아무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침묵으로 광장을 질식시킨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집으로 뛰어들어간다. 아이들이 두눈을 가린다. 우리는 지옥에서 살아남은 끝에 다른 누군가의 악몽이된다. - P137

생존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살아남기 위해 투쟁할 때는 ‘하지만‘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제 ‘하지만‘이 우르르 몰려온다. 우리에겐 먹을 빵이 있다. ‘그래, 하지만 무일푼이지.‘ 살이 붙고 있어 다행이다. ‘그래, 하지만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워. 너는 살아남았어. ‘그래, 하지만 우리 엄마는 죽었지.‘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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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이상 지역감정의 문제를 있어도 없는 것처럼 덮어두기만 할 때는 지난 것 같다. 이 문제를 엄연한 현실문제로서 정면으로 다루어 올바르고도 근본적인 해결방향을 모색하여야 할 때가 되었다. 흔히들 지역감정을 그저 무조건적으로 나쁜 것, 무조건 ‘해소‘되어야 하고 또 해소되기만 하면 그만인 것처럼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는 그런 관점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 의심한다. 호남사람들의 지역감정과 영남사람들의 지역감정을 똑같은 차원에 놓고 평면적. 무차별적으로 다루는 것은 문제가 있다.
광주사건 직후 김영삼씨의 마산유세장에 예상을 넘는 엄청난 군중이 운집하였던 사태에서도 드러나듯이 영남사람들의 지역감정은 다분히 호남의 지역감정에 대한 역감정으로서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호남사람들의 지역감정은 멀리 거슬러올라가자면 삼국시대 이래 천수백년, 그리고 가까이만 보더라도 박정희정권 이래 4반세기에 걸쳐 심화되어온 지역적 억압과 차별의 현실에 바탕을 둔 것이며, 그것이 근본적으로 시정되지 않는 한 결코 ‘해소‘될 수가 없는성질의 것이다.
거기에다가 다른 무엇보다도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이 겪은 엄청난 비극적 참화의 역사가 있다. 그 가슴속에 맺히고 쌓인 한과 분노가 어떠리라는 것은누구나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을 고려한다면 호남사람들에게 ‘지역감정‘을 갖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 애시당초 무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덮어만 두겠는가. 이러한 ‘지역감정‘은 마땅히 있어야만 하고 지역적 억압과 차별의 부당한 현실을 타파하는 추진력으로서 활용되어야만 한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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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주장에는 드러나지 않은 가정이 있다. 사실 그 가정은 여러 개인데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것은 그중에서도 특정한 한 가지이다. 그것은 생명(즉 복제자와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일단 탄생하면 진화를계속하여 마침내는 그 자신의 기원에 관해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갖춘 생물이 될 때까지 발전해 간다는 가정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행운의 정도는 그에 걸맞게 축소되어야 한다. 좀 더 정확히말하자면 앞에서 주장한 이론이 허용하는 어떤 행성에서 생명이 탄생할확률의 최댓값은 우주에 있는 생명 탄생에 적합한 행성의 수를, 일단 탄생한 생물이 자신의 기원에 관해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갖춘 생물로 진화할 확률로 나눈 값이라는 말이다.
‘자신의 기원에 관해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이 적절한 변수라는 말이 약간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왜 그것이 적절한 변수인지를 이해하려면 그와 반대되는 가정을 해 보면 된다. 생명의 탄생이라는 사건이 꽤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만, 그것에 따른 지능의 진화는 거의 불가능하고 엄청난 행운이 필요한 사건이라고 가정해 보자. 생명은 여러 행성에서 탄생했지만, 지능의 진화라는 사건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사건이어서 우주에 있는 행성 가운데 단 한 군데서만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인간이 그 의문점에 관해 토론할 정도의상당한 지능을 갖추었기 때문에 지구가 바로 그 행성이라는 것을 알 수있다. 이번에는 생명의 탄생과 생명 탄생 후 지능의 탄생이라는 두 사건이 모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사건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지구와 같은 어떤 한 행성이 그 두 가지 행운을 모두 누릴 확률은 매우 낮은 2개의 확률을 곱한 것과 같다. 그러면 가능성은 훨씬 더 적어진다. - P242

그것은 마치 우리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지금의이론에서 얼마간의 행운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이 얼마간의 행운의 최댓값은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 탄생에 적합한 행성의 숫자와 같다. 우리에게 할당된 행운이 주어지면 그것을 우리의 존재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제한된 용품으로 ‘소비‘ 할 수 있다. 만약 어떤 행성에서 생명이 처음 탄생한 과정을 설명하는 데 우리에게 할당된 행운의 거의 대부분을 써버린다면 그 이론의 나머지 과정, 즉 뇌와 지능의 누적적인 진화를 설명하는 데 쓸 수 있는 행운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만약 생명의 탄생 부분에서 행운의 대부분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후의 진화 과정에 사용할 행운이 어느 정도는 남아 있을 것이다. 더욱이 지능의 탄생에 할당된 행운의 대부분을 사용하기를 바란다면, 생명의 탄생 부분에서 행운을 많이 사용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생명의 탄생을 거의 불가피한사건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할당된 행운의 전부가 우리 이론의 두 단계 모두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사실상 우주의 도처에서 생명이 존재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 P243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일단 시작되기만 하면, 지능의 진화를불가피한 것 정도는 아닐지라도 상당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만들 위력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할당된 행운 전체를 행성에서의 생명 탄생 과정에 쏟아 부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 결과 생명 탄생의 과정에 최대 10분의 1의 확률을 써야만 한다. 이것이 우리의 이론에서 생각할 수 있는 행운의 최댓값이다. 가령 생명이 DNA와 단백질을 기초로 한 복제 기구가 한꺼번에 우연히 자연 발생했을 때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한다고 가정하자. 이 우연의 일치가 한 행성에서 동시 발생할 확률이 10분의 1보다도 작지 않을 경우 우리는 그러한 터무니없는 이론의 사치를 허용할 수 있다.
이 허용선은 매우 커서 아마도 DNA나 RNA의 자연 발생을 수용하기에도 넉넉할 것이다. 그러나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없이는 전혀 충분하지 않다. 단 한 번의 사건(1단계 자연선택)으로 칼새처럼 잘 날고, 돌고래처럼 헤엄을 잘 치고, 독수리처럼 먼 곳을 잘 보는 훌륭한 신체를 만들어 낼 확률은 우주에 있는 행성의 수는 고사하고 원자의 수보다도 더 큰 어마어마한 수의 역수이다! 생명의 기원을 설명함에 있어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 P244

 기본문제(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나 하는 문제)가 어떻게해결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한 가지 예를 살펴보는 것으로 가장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럼 어떤 이론을 본보기로 들 것인가? 대부분의 교과서들은 유기물로 이루어진 ‘원시 수프‘를 기초로 한 일련의 이론(오파린의 가설과 밀러의 실험 등을 말함 옮긴이)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생명이 탄생하기전 지구의 대기 상태는 아마 현재 생명이 없는 다른 행성의 대기와 비슷했을 것이다. 원시 대기에는 산소가 없었고 수소와 물과 이산화탄소가풍부했으며 암모니아NH3, 메탄CH4 그리고 그 밖의 몇 가지 간단한 유기 분자들이 있었을 것이다. 화학자들은 이처럼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는 유기 화합물이 자연적으로 합성되기 쉽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플라스크 안에서 원시 지구의 조건을 축소하여 재현했다. 그런 다음 번개를 대신하는 방전 불꽃을 일으켰고, 지금처럼 오존층이 태양 복사선으로부터지구를 보호하기 전에는 훨씬 강했을 자외선을 쬐었다. 실험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정상적으로는 살아 있는 생물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몇 가지 유기 분자를 포함해서 여러 종류의 유기 분자들이 플라스크 안에서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다. DNA RNA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 구성 단위인 퓨린 염기와 피리미딘 염기가 플라스크 안에 있었다. 단백질의 구성 단위인 아미노산도 있었다. 이 이론에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것은 복제자의 기원이다. 구성 단위들이 서로 모여 RNA 같은 자기 복제사슬을 만들지는 않았던 것이다. 아마 언젠가는 만들겠지만 말이다. - P246

 이 이론은 글래스고 대학교의 화학자 그레이엄 케언스스미스가 주장하는 ‘무기 광물질‘이론이다. 처음 제안된 것은 20년 전이었고 그 후 세 권의 책을 통해 개선되고 정교해졌다. 가장 최근의 것인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일곱 가지단서』에서는 생명 탄생의 수수께끼를 명탐정 셜록 홈즈가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케언스스미스는 DNA. 단백질 기구가 비교적 최근에 출현했을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대략 30억 년 전 정도 되는 비교적 최근에 그것들이 출현했다는 말이다. 그전에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복제자가 여러 세대에 걸쳐 이룩한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있었다. 그러던 중DNA가 출현했고 그것이 훨씬 효율적인 복제자로 판명되자 원래의 복제 시스템은 DNA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잊혀져 갔다. 이 견해에 따르면 오늘날의 DNA 체계는 뒤늦게 출현했으며, 기본적인 복제자로서의 역할을 찬탈했고, 초기의 투박한 복제자가 했던 역할을 최근에 넘겨 받은것이다. DNA에게 기본적인 복제자의 역할을 빼앗기기는 했어도 최초의 복제자는 내가 항상 뇌까리는 1단계 자연선택‘을 통해서 생겨날 수있을 정도로 단순해야만 한다.
화학은 크게 유기화학과 무기화학으로 나뉜다. 유기화학이란 탄소라는 특정한 원소에 관한 화학이며 무기화학은 그 나머지를 말한다. 탄소는 매우 중요한 원소이고 화학에서 고유한 영역으로 분류될 만한 가치가 있다. 그 이유는 생물에 관련된 화학이 탄소 화학이기 때문이고, 탄소 화학을 생물에 적합하게 만든 바로 그 성질이 플라스틱 공업과 같은산업에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탄소 화학을 생물과 공업에 적합하도록만든 탄소 원자의 가장 중요한 성질은, 거의 무한히 많은 종류의 거대분자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질을 가진 원소로는 탄소말고도 규소가 있다. 오늘날 지구 생물의 화학이 탄소 화학이긴 하지만, 이것이 우주 전체에 해당된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지구에서도 그 사실이 항상 변함이 없었다고 볼 수도 없다. 케언스스미스는 지구에 출현한 최초의 생물은 스스로를 복제하는 규산염 같은 무기 결정에 바탕을 둔 존재라고 믿는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유기물 복제자, 즉 DNA는 나중에 그 역할을 넘겨 받았거나 찬탈한 것이 된다. - P247

케언스스미스는 최초의 복제자가 진흙이나 점토에서 발견되는 무기물의 결정들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결정이란 원자나 분자가 고체의상태로 질서정연하게 배열된 것을 말한다. 원자나 작은 분자들은 그들의 ‘모양‘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성질에 따라서 어떤 고정된질서정연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차곡차곡 쌓인다. 마치 어떤 특정한방식으로 서로 끼워 맞춰지길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현상은 그들이 지닌 성질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일 뿐이다. 원자나 작은 분자들이 서로 끼워 맞춰질 때 어떤 방식을 ‘선호하는가‘에 따라 전체 결정의 모양이 달라진다. 이 말은 또한 다이아몬드와 같은 커다란 결정에서조차도 흠이 있는 곳을 제외한다면 어떤 한 부분의 형태가여타의 부분과 정확하게 같음을 뜻한다. 만약 우리가 원자의 크기로 줄어들 수 있다면 우리는 수평선을 향해 곧게 뻗은 끝없이 이어진 원자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복제이기 때문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결정이 자체의 구조를 복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결정은 원자(또는 그에 상응하는 것)의 층들이 겹겹이 쌓인 것이고 각각의 층은 바로 아래의 층위에 만들어진다. 원자들은 용액 속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만(원자와 이온의 차이는 지금으로서는 큰 문제가 안 된다.) 우연히 결정을 만나면 결정의 표면에 있는 적당한 위치에 끼어 들어가는 자연스런 경향이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소금물에는 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이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다. 소금 결정은 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이 전후 좌우 상하 교대로 배열되어 있는 것이다. 물속에 떠다니던 이온이 결정의 딱딱한 표면에 부딪히게 되면 거기에 달라붙어서 새로운 층을 형성하는데, 그 층은 바로 아래층과 동일하다. 그래서 일단 결정이 자라기 시작하면 각층은 그 밑의 층과 똑같이 만들어진다. - P249

진흙과 점토와 바위는 작은 결정들로 만들어져 있다. 그것들은 지구어디에나 풍부하며 아마 줄곧 그래 왔을 것이다. 점토와 암석의 표면을 주사 전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놀랍고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마치 꽃송이들이 줄지어 있는 것처럼 자라난 결정, 선인장처럼 자란 결정들. 장미꽃 가득한 정원처럼 보이는 부분, 다육질 식물의 단면처럼 생긴 작은 나선들, 쭉쭉 뻗은 파이프 오르간 모양, 벌레의 똥이나 치약을짜놓은 것 같은 구불구불하고 비틀린 모양의 결정, 투명 플라스틱으로만든 모형처럼 생긴 각진 결정 등 온갖 모양의 결정들을 볼 수 있다. 좀더 확대해 보면 결정들이 가진 질서정연한 형태에 더욱 놀라게 된다. 원자들의 위치가 드러날 정도로 확대해 보면 결정의 표면은 마치 기계로짠 옷감과 같은 규칙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약간의 흠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핵심적인 요소이다. 잘 짜여진 옷감의 한가운데 짜깁기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부분과 똑같지만 단지 옷감이 짜여진 방향이 다르다. 아니면 방향은 같은데 약간 밀려나서 다른 부분과 줄이 맞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결정들은 거의 대부분 흠이 있다. 그리고 일단 흠이 생기면 그 위에 새로 생기는 층에도 그형태가 그대로 복사된다. - P253

흠은 결정 표면 어디에나 생길 수 있다.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다면 결정의 표면에 여러 가지 형태로 생길 수 있는 수많은 흠들을 상상하면 된다. 신약 성경을 세균 1개가 가진 DNA 속에저장한다고 할 때 써 먹은 방식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결정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DNA가 결정보다 우수한 점은 저장된 정보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읽어 내는 문제는 일단 접어 두자. 결정 속의 원자배열 형태에 생긴 흠이 2진수를 나타내는 암호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편의 머리 크기만 한 결정 속에 신약 성경 여러 권에 해당하는 정보를담을 수 있다. 거시적인 수준에서 보면 이런 방식은 레이저 디스크(콤팩트 디스크) 표면에 음향 정보를 담는 것과 똑같다. 음향 또는 음악은 컴퓨터를 통해 2진수로 바뀐다. 레이저는 유리같이 매끈한 디스크의 표면에 작은 흠들을 낸다. 레이저로 만든 각각의 흠들은 2진법의 1(또는 01다. 이것은 정하기 나름이다.)을 나타낸다. 디스크를 걸어 음악을 재생할때에는 다른 레이저 빔이 그 흠들의 패턴을 ‘읽는다.‘ 그러면 CD 플레이어 속에 장치된 특별한 목적을 가진 컴퓨터를 통해 그 2진수가 음의진동으로 변환되고 다시 엠프를 통해 증폭되어 들을 수 있게 된다.
지금은 레이저 디스크가 주로 음악을 저장하는 데 사용되지만, 똑같은 기술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전체 내용을 저장하고 읽을 수 있다. 결정 속 원자 수준에서 생긴 홈은 레이저 디스크 표면에 만들어진흠보다 훨씬 작다. 따라서 결정은 같은 면적에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있는 잠재력이 있다. 앞에서 DNA의 정보 저장 능력을 살펴보고 깊은인상을 받은 바 있는데 사실 DNA는 그 자체가 결정과 매우 흡사하다.
비록 점토의 결정들이 이론적으로는 DNA나 레이저 디스크만큼의 정보저장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이 실제로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이론에서 점토와 다른 광물 결정들이 하는 역할은 지구상에 최초로 출현한 ‘저급한 수준‘의 복제자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어느 순간에 ‘고급 수준‘의 DNA로 대체되었다. 결정들은 지구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물에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다. DNA가 복제될 때 복제 효소와 같은 정교한 ‘기구‘가 필요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동시에 그 결정에는 흠이 생긴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은 결정이 자라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층에서 복제된다. 결정이 자란 후에 몇 개의 조각으로 부러지면 그것들은 새로운 씨를 뿌리는 셈이다. 그리고 각각의 조각들은 ‘부모‘ 결정이 갖고 있는 흠의 형태를 그대로 ‘물려받는다.‘ - P254

그래서 우리는 이제 원시 지구에서 복제, 증식, 유전, 돌연변이를 보여 주는 광물 결정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 결정들이 보여주는 현상들은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들
"이다. 하지만 아직도 ‘위력‘이라는 요소가 부족하다. 이것은 복제자가자신의 복제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성질을 말한다. 복제자를 추상적으로 생각했을 때, 우리는 ‘위력‘이라는 것을 복제자가 가진 직접적인 성질, 즉 ‘점착성‘ 같은 본질적인 성질로 이해했다. 이 초보적인 수준에서는 위력‘이라는 용어가 합당하지 않은 것 같다. 단지 진화의 나중 단계에서 사용되는 것과 같은 의미로 사용했을 뿐이다. 가령 뱀의 독니의 위력은 뱀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독니에 대한 DNA 암호를 보존하는 것이다. 최초의 저급한 복제자가 광물 결정이었는지 아니면 DNA 자체의 직접적인 조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들이 발휘한 ‘위력‘은 점착성 같은 초보적이고 직접적인 것이었으리라고 추측할수 있다. 뱀의 독니와 난초의 꽃 같은 고등한 수준의 위력은 훨씬 나중에 나타났다.
점토에 있어 ‘위력‘ 이란 어떤 것인가? 점토의 어떤 성질이 자기와 같은 종류의 변종이 풍부해지게 만들 수 있을까? 점토는 강이나 뱃물의 상류에서 바위가 풍화되어 물에 녹아 들어온 규산과 금속 이온 같은 화학적 구성 단위로 만들어진다. 조건이 적당히 만들어지면 그것들은 하류에서 다시 결정을 이루고 점토를 형성한다. 어떤 특정한 형태의 점토 결정이만들어지느냐 안 만들어지느냐는 무엇보다도 물 흐름의 속도와 패턴에 달려 있다. 그러나 반대로 점토의 침전도 물의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것들은 지하수가 흐르는 땅의 짜임새, 모양, 수위를 변화시킴으로써 무심코 이 일을 한다. 어떤 점토 변종이 우연히 토양의 구조를 바꿔서 지하수의 흐름을 빠르게 하는 성질을 갖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결과 점토는 씻겨 내려갈 것이다. 이런 종류의 점토는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정의한다. 또 흐름을 변화시켜서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점토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주는 점토도 성공적이지 못하다.
물론 점토가 존재하고 ‘싶어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복제자가 우연히 갖게 된 성질에서 비롯된 사건과 결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것이다. 이제 다른 종류의 점토를 생각해 보자. 이번 것은 지하수의 흐름을 늦춰서 자기와 같은 종류의 점토가 더 많이 침전되도록 만든다. 확실히 이런 변종이라면 시간이 갈수록 더 많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지하수의 흐름을 조작했기 때문이다. 이번것은 ‘성공적인‘ 점토 변종이 될 것이다.  - P255

자,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보자. 결정들 중의 일부가 촉매 역할을하여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는 일이 우연히 발생했다. 그 새로운 물질은 결정들이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 가는 것을 돕는다. 이 이차 물질들은(처음에는) 그것들만의 고유한 가계(家系), 다시 말해 조상과 자손을 갖지 않았다. 그 대신 원래의 복제자를 통해 각 세대에서 그때그때 새로만들어졌다. 그것들은 결정들의 도구, 즉 원시적인 ‘표현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케언스스미스는 그의 결정 복제자가 만든 도구들이 복제되지 않으며, 이들 가운데 유기 분자가 많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무기화학 공업에서 유기 분자들이 자주 사용되는데, 그 이유는 유기 분자들이액체의 유동성이나 무기 입자의 성장 또는 균열 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효과는 결정 복제자의 ‘성공‘ 여부에 영향을 주는 성질과 똑같다. 예를 들어 몬모릴로나이트(montmorillonite)라는 아름다운이름을 가진 점토 광물은 카르복시메틸 셀룰로오스(carboxymethylcellulose)라는 덜 아름다운 이름의 유기 분자가 소량 존재할 경우 잘 부러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카르복시메틸 셀룰로오스의 양이 적어지면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나서 몬트모릴로나이트 입자들이 서로 붙는다. 탄닌이라는 유기 분자는 석유를 시추하기 위해 진흙에 구멍을 뚫을 때 구멍을 더 쉽게 뚫으려고 사용한다. 석유 시추업자가 진흙의 점성을 변화시키고 구멍이 잘 뚫리는 정도를 조절하기 위해 유기 분자를 사용할 수 있다면, 자기 복제 능력이 있는 광물질이 누적적인 자연선택의 결과, 자기 복제를 위해 유기 분자를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여기서 케언스스미스의 이론은 약간의 기분 좋은 보너스를 얻는다. 이제까지 정설로 여겨 왔던 유기 분자의 ‘원시 수프‘ 이론을 지지하고있는 다른 화학자들이 점토 광물이 그 이론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중의 한 사람(D. M. 앤더슨)은 "지구에서 스스로를 복제하는 미생물을 탄생시킨 몇 가지 혹은 대다수의 비생물적인 화학 반응과 과정이 지구 역사의 초기에 점토 광물의 표면이나 다른 무기 분자의 표면에 아주 근접한 곳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 P259

우리의 관심사는 RNA나 그와 비슷한 분자들이 스스로를 복제하는 분자가 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광물 결정 ‘유전자‘가 RNA (또는 비슷한. 물질)를 더 효과적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RNA가 스스로 복제되도록 만들었다.
즉 RNA의 자기 복제 능력은 RNA를 더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RNA는 자기 복제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일단 새로운 자기 복제 분자가 탄생하자 새로운 종류의 누적적인 자연선택이시작되었다. 새로운 복제자는 본래 찬조 출연자였지만 원래의 결정보다더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나자 그 역할을 넘겨 받게 되었다. 그들은 진화를 계속했다. 그래서 결국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DNA 암호를 완성하였다. 원래의 광물 복제자는 닳아빠진 주형처럼 버려졌다. 그리고 오늘날의 생물은 단일한 유전 체계와 단일한 생화학을 바탕으로 비교적 최근의 조상에서 진화해 나왔다. - P261

히 사람들은 자연선택이 순전히 부정적인 힘에 지나지 않는다으고 생각한다. 기형이나 실패작을 제거하는 능력은 있지만 복잡하거나 아름답고 효율적인 설계를 구축할 능력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선택은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무언가를 제거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것일까? 진정 창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덧붙이지는 못하는 것인가? 우리는 조각 작품의 예를 통해 이 물음에 대한 부분적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조각가는 대리석 덩어리에 아무것도 더하지 않는다. 조각가는 오직 떼 내기만 할 뿐이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조각 작품이 탄생한다. 그러나 이 비유는 자칫하면 사람들을 나쁜 생각(즉 조각가가 의식을 가진 설계자라는 생각)으로 비약하게만들고 정작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게 만들 위험의 소지가 있다. 이 비유에서 중요한 점은 조각가의 작업이 무엇을 부가하는 것이 아니라 제거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점에서도 조각가의 비유에 지나치게 매달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단지 비유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은 무언가를 제거하기만 할지도 모르지만 돌연변이는 무언가를 부가할수 있다.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결합하는 방법 중에는 오랜 지질학적시간 동안 삭제보다 부가를 많이 함으로써 복잡성의 구축을 이끌어 낼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주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서로 적응한 유전자형(coadapted genotypes)‘이고 다른 하나는 ‘군비 확장 경쟁 (arms races)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은 표면적으로는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공진화(계통적으로 관계없는 여러 생물이 서로 연관되며 진화하는 것 옮긴이)‘와 ‘서로에게 환경이 되는 유전자‘ 라는 측면에서 하나로 결합된다. - P277

물론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이처럼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유전자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느냐 불리한 ‘상황‘이 되느냐에 가장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그 집단 가운데 이미 다수를 점하고 있는 다른유전자, 즉 몸을 공유할 가능성이 높은 다른 유전자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다른‘ 유전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유전자 집단이 일체가 되어 어떤 문제를 협동해서 해결하는방향으로 진화하게 되리라는 것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유전자 자신이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는 오직 유전자 풀 속에서 생존하는 데 성공하거나 실패할 뿐이다. 진화하는 것은 유전자의 ‘팀 (team)‘이다. 그런데 다른 팀 역시 마찬가지로 또는 그 이상으로 능숙하게 기능할지도모른다. 그러나 일단 한 팀이 그 종의 유전자 풀 속에서 우세를 점하기시작하면 그 팀은 필연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설령 어떤 소수파팀이 훨씬 더 효율적으로 기능한다 하더라도 소수파 팀이 뚫고 들어오기란 매우 어렵다. 다수파 팀은 단순히 다수파라는 이유만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그렇다고 해서 다수파 팀이 절대 치환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절대 바뀌지 않는다면 진화는 브레이크가 걸려 정지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그 속에 일종의 내재된 관성이 있다는 뜻이다. - P281

물론 이런 논의가 생화학적 수준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눈, 귀, 코, 보행에 사용되는 사지(四肢)처럼 동물 신체의 협동적인 기관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부분을 만드는 적응력이 높은 유전자 집단에 대해서도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살을 베어 무는 데 적합한 이빨을 만드는유전자는 고기를 소화하는 데 적합한 창자를 만드는 유전자가 우위를점한 ‘상황‘에서 유리하게 된다. 역으로 식물을 으깨기 좋은 이빨을 만드는 유전자는 식물을 소화하는 데 적합한 창자를 만드는 유전자가 우세한 ‘상황‘에서 유리해질 것이다. 두 경우 모두 역이 성립한다. 따라서 ‘초식 유전자‘ 팀은 함께 진화하기 쉬울 것이다. ‘육식 유전자‘ 팀 역시함께 진화하기 쉽다. 실제로 어떤 의미에서는 같은 몸속에 들어 있는 유전자의 대부분은 하나의 팀으로 서로 협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진화적 시간을 거쳐 그 유전자들(그들 자신도 선조의 복제이다.)은서로 자연선택을 하는 환경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왜 사자의 선조는 육식을 선택했고, 영양의 선조는 초식을 채택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원래 처음부터 우연히 결정되었다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연이라고 말한다면 사자의 선조가 초식을 선택할 수 있었고, 영양의 선조 역시 육식을 채택할 수 있었다는 의미도 된다. 하지만 어느특정한 계통이 일단 풀보다 고기를 잘 처리하는 유전자 팀을 구축하기
‘시작‘ 하면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자기) 강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계통이 일단 고기보다 풀을 잘 처리하는 유전자 팀을구축하기 시작하는 경우에도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또 하나의 방향으로 강화될 것이다.
생물의 초기 진화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사건의 하나는 그러한 협동사업에 참여하는 유전자의 수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 P282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은 환경의 한정된 부분, 즉 기후에대한 것뿐이었다. 기후는 동물과 식물 모두에게 극히 중요한 요소이다. 그 패턴은 수세기에 걸쳐 변화하며, 끊임없이 진화가 그 변화를 뒤따르‘도록 강제한다. 그러나 기후 변동은 임의적이고 일관성도 없다. 그런데 동물의 환경에는 그보다 훨씬 일관적이고 악의에 찬 방향으로 변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따르지‘ 않는 수많은 부분이 있다. 환경의 이러한 부분이란 생물 그 자체이다. 하이에나와 같은 포식자에게있어 최소한 기후만큼 중요한 환경은 먹이, 즉 누(소처럼 생긴 영양의 일종옮긴이)나 얼룩말이나 영양 같은 동물들의 개체군이다. 풀을 찾아 평원을 이동하는 영양이나 그 밖의 초식 동물에게는 기후뿐 아니라 사자나 하이에나 같은 육식 동물들도 매우 중요하다. 누적적인 자연선택은동물들을 기후 조건에 훌륭하게 적응하게 만들 뿐 아니라 먹이가 되는초식 동물들을 포식자보다 빠른 속도로 적응하게 만든다. 따라서 진화가 장기적인 기후 변동을 ‘뒤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먹이가 되는 생물의 진화적 변화는 포식자의 습성이나 무기의 장기적 변화를 ‘뒤따르게‘ 된다. 물론 그 역도 성립한다. - P293

동물이나 식물의 계통은 진화적 시간 속에서 평균적인 기후 조건의변화를 뒤따르는 데 뒤지지 않을 만큼 부지런히 적의 변화를 ‘뒤따를‘것이다. 가젤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치타의 무기나 전술의 진화적 개선은 기후의 지속적인 악화와 마찬가지이다. 가젤은 기후에 적응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치타의 개선을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데 기후는 수세기에 걸쳐 느린 속도로 변화할 뿐이고 가젤에 대해서만 특별히 악의적인 방식으로 변화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기후가 가젤을 ‘잡아먹지‘ 는 않는다. 치타도 수세기에 걸쳐 변화한다. 그것은 연평균 강우량이 수세기에 걸쳐 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연평균 강우량은 특별한 이유나 주기 없이 오르내리는 데에 비해 치타는 수세기에 걸쳐 그 선조보다 가젤을 포획하는 능력을 높여 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계속되는 치타의 세대가 해마다 바뀌는 기후 조건의 연속적인 변화와 달리 그 자체가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되기때문이다. 따라서 치타의 다리는 점점 빨라지고, 눈은 점차 예리해지고, 이빨은 계속 날카로워진다. 기후 같은 무생물적 조건들은 그것이 아무리 ‘적대적‘인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그 적대성을 점진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어디에도 없다. 반면 살아 있는 천적은 진화적 시간 척도에서 볼 때, 그 적대성을 점진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육식 동물이 차츰 ‘나아지는‘ 경향은 먹이가 되는 동물이 육식 동물과 마찬가지로 평행하게 나아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군비 확장 경쟁처럼 (앞으로 살펴보게 될 경제적 비용 문제 때문에) 금방 속도가 떨어지게 될것이다. 먹이가 되는 생물에게도 마찬가지 경우가 성립한다. 가젤은 치타와 동일하게 누적적인 자연선택을 통해, 역시 세대를 거치면서 점차 빠른 속도로 달리고 신속하게 반응하고 키 큰 풀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기는 방법을 터득하는 등의 능력을 개선하게 된다. 가젤 역시 천적에 대해서(이 경우에는 치타에 대해서) 적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는 것이다. 주위 환경에 훌륭하게 적응한 동물에게는 어떤 변화도 악화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치타의 관점에서 연평균 기온의 변화는, 해를 거듭한다고 체계적으로 더 좋아지거나 나빠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갈수록 가젤은 오로지 나쁜 방향으로만, 즉 치타로부터 교묘하게 도망칠 수 있는 방향으로만 적응해서 점점 더 잡기 어려워진다. 여기에서도포식자가 그와 평행하게 개선되는 경향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가젤의 전진적인 개선을 향한 경향은 점차 느려져 언젠가는 브레이크가 걸려버릴 것이다. 한쪽이 조금 개선되면 다른 한편도 조금 개선된다. 그리고 다른 편이 조금 더 개선되면 한편도 조금 더 개선된다. 이 과정은 수십만년이라는 시간 척도 속에서 악의에 찬 나선을 그려 간다.
국가들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이보다 훨씬 짧은 시간 척도로 두 적대국이 병기류를 서로 다른 나라의 개선에 대응해 전진적으로 개선시키고있을 때 이것을 ‘군비 확장 경쟁‘ 이라고 부른다. 군비 확장 경쟁과 진화는 매우 유사한 특성을 가지기 때문에 이 용어를 차용해도 아무런 문제는 없을 것이다.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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