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에 공산당에 기부금을 냈던 것에 대한 질문을 받은 오펜하이머는 "내가 냈던 기부금이 의도하지 않은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든지, 그 목적들이 사악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같습니다. 나는 당시에 공산주의자들을 위험하다고 여기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들이 공개적으로 밝힌 목적들은 내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미국 공산당은 인종 차별 폐지, 이주 농장 노동자들의 작업 조건개선, 스페인 내전의 반파시즘 투쟁 등 진보적 대의의 선봉에 섰고, 오펜하이머는 점차 이와 같은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게 되었다. 1938년 초그는 새로 창간된 서부 지역 공산당 기관지 《피플스 월드>를 구독했다. 그는 이 신문을 정기적으로 읽었고, 그가 나중에 설명했듯이 신문이 "이슈를 형성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졌다. 1938년 1월 말 이 신문에는오펜하이머와 슈발리에를 포함한 몇몇 버클리 교수들이 스페인 공화국에 보내기 위한 앰뷸런스를 사기 위해 1,500달러를 모금했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 P202

어느 날 저녁 오펜하이머는 오클랜드 고등학교 강당에서 열린 교원 노조 회합에 주 강연자로 등장했다. 이 행사는 널리 홍보되었고, 교원 노조는 수백 명의 공립학교 교사들이 오펜하이머가 노동조합 운동의 장래성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으러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단지 10여 명에 불과한 사람들이 참석했다. 그래도 오펜하이머는 특유의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참석자들에게 노조가입을 권유했다. 66몇몇 사람들은 오펜하이머의 정치관이 그의 개인사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느꼈다. 진의 친구이자 공산당원인 이디스는 "우리는 그가 자신이타고난 재능에 대해, 그가 물려받은 재산에 대해, 선택받은 사람이라는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라고 논평했다.  - P203

말할 것도 없이 오펜하이머는 한때 공산당원이었던 여러 친척, 친구,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좌파 뉴딜주의자로서 그는 공산당이 지원하는 활동에 상당한 액수의 자금을 쾌척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공산당에 정식으로 가입한 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공산당과의 그의 연계는 스페인 내전 당시를 전후로 "매우 짧고 강렬한" 것이었다.38 하지만 내전이 끝난 이후에도 그는 공산당원들이 주도하는 시사 토론회에계속해서 참석했다. 이런 모임들은 공산당의 은밀한 후원 아래 바로 오펜하이머와 같은 지식인들을 포섭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식으로 입당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당과의 관계를 딱히 정의하기가 애매했다. 그는 스스로를 비당원 동지(unaffiliated comrade)라고 생각했을가능성이 높다. 그가 훗날 당과의 연계를 끊으려고 노력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간단히 말해 로버트 오펜하이머에게 공산당원이라는딱지를 붙이려는 시도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이후 몇 년 동안 FBI 역시이 문제로 대단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었다.
사실 그가 공산주의자들과 연계를 맺은 것은 당시 그의 위치와 사상의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1930년대 말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교수로서오펜하이머는 정치적으로 격앙된 환경에 놓여 있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그는 정식 공산당원이었던 친구들에게 같은 편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밖에 없었다. 어찌되었건, 오펜하이머는 공산당이 추구하는 사회정의를 향한 목표에 공감했고, 그 때문에 몇몇 공산당원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FBI가 오펜하이머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화를 도청했을 때 당연하게도 공산당원이라고 알려진 사람들이 그를 같은 편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다른 한편 또 다른 FBI 도청에는 당원들이 오펜하이머가 냉담하고 신뢰할 수 없다며 불평했던 것도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당의 규율에 복종했다는 증거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대부분의 당 활동에 개인적으로 협력했지만자신이 동의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의 노선을 거부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예를 들어 그는 소련 정권의 전체주의적 성격에 불만을표현하고는 했다. 그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공개적으로 칭송했고 뉴딜정책을 지지했다. 그는 공산당이 주도하는 여러 인민 전선 조직들에 참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견실한 시민 자유주의자이자 미국 시민 자유 연맹의 명망 높은 회원이기도 했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전형적인 뉴딜 진보주의자이자 유럽의 파시즘에 반대하고 미국의 노동자 권리를옹호하는 공산당의 노선을 지지하는 동조자였다. 그가 이러한 목표들을 위해 공산당원들과 협력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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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사업부 간부들은 이미 식품 사업부에 담배가 암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한 것만큼 식품도 비만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하는 곤경에 빠질 것이며 값싸고 편리하고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소금, 설탕, 지방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경고한 상태였다. 담배의 중독성을 시인했던 담배 사업부 경영진은 이제 식품 사업부가 제품의 매력도를 높이기 위해 가공식품 생산에 투여하는 모든 것(제조성분, 포장, 마케팅)이 이미 담배를 공격한 바 있는 변호사들의 철저한 조사를 당해 내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런 변호사들은 영리하고 창의적이라는 사실도, 이런 경고를 한 사람은 담배 사업부의 재무 책임자에서 필립모리스의CEO 자리까지 오른 제프리 바이블이었다.  - P221

트랜스지방은 원래 마가린을 만드는 데 쓰였다. 그의 동년배 대부분이 그렇듯이 조셉도 어릴 적에 마가린이 정말 몸에 좋은 줄 알았다.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트랜스지방은 버터에 있는 포화지방이없었고, 당시에는 버터에 든 포화지방이 문제라는 의식이 컸기 때문이다.
조셉이 트랜스지방이 동맥경화를 일으켜 몸에 더 좋지 않고 그럼에도 가공식품 업계가 트랜스지방의 발명에 열광했다는 보도를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었다. 트랜스지방은 액체 상태의 식물성 기름에 수소를 첨가하여 고체 상태로 만들 때 생기는 경화유로 무수히많은 제품에 사용되었다. 제품의 질감을 살리고 점착력이 있는 데다식품을 장기 보관할 수 있게 해 주는 등 가공식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쿠키, 크래커, 케이크, 비스킷, 팝콘, 도넛, 샌드위치, 냉동 피자, 기름에 튀긴 패스트푸드에 이르기까지 트랜스지방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살던 곳 근처에 있는 세이프웨이에가서 트랜스지방이 안 들어간 제품이 있나 찾아봤어요."
#3그러나 조셉이 정말로 분노한 지점은 식품 업계가 제품을 만드는데 트랜스지방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나비스코 사업부를 통해 크래프트에서 생산하는 오레오를 예로 들어 이 사실을 입증했다. 오레오는 과자와 크림에 모두 트랜스지방이 들어 있었는데, 오레오와 비슷한 초콜릿 샌드위치 쿠키인 뉴먼오 Newman-O‘s에는 트랜스지방이 전혀 없었다. 뉴먼오를 몇 개 구입한 조셉은 혼잣말을 내뱉었다. "여기서 종이를 씹는 것 같은 맛이 난다면 이 소송은 하지 않겠어." 뉴먼오는 종이를 씹는 것 같은 맛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한 봉지를 다 해치운 뒤 격분한 상태로 법원에 달려가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소장을 제출했다. 2003년 5월 1일의 일이었다.
그는 법원에 캘리포니아주 전역에서 오레오 판매를 금지해 달라고요청했다. 소송에 대한 뉴스가 처음 보도된 뒤 두 시간 만에 조셉은인터뷰 서른일곱 건을 요청받았고 크래프트와의 요란한 전쟁을 시작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들의 타깃은 아주 어린아이들입니다." - P222

우리의 취약점을 이용한 기업은 크래프트만이 아니었다. 크래프트 내부 문서 중에는 1998년에 나비스코가 아이들을 타깃으로 삼는일에 대한 컨설턴트의 의견을 논의하여 작성한 메모가 있었다. 결론은 10대 청소년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식품 업계의 새로운 목표 대상은 10~12세 아동이었는데, 이 정도의 어린 나이에 이미 평생 유지될 취향이 결정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우리는 펩시, 프리토레이, 버거킹, 맥도날드와 논의했다." 메모에는 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람의 입맛은 어린 나이에 결정되기 때문에 10대보다 훨씬어린아이의 관심을 사는 데 집중할 것을 유념해야 한다. 10대를 대상으로 하는 영화, 음악, 게임, 스포츠를 통한 간접광고가마케팅 전문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역이 되면서 버거킹과 맥도날드 모두 어린이 영화나 TV 캐릭터에 마케팅을 집중하고있다. 또 펩시는 대화형 웹사이트를 운영하면서 10대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하고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는다. 펩시의 제너레이션 넥스트 광고 캠페인은 오직 10~18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다. 프리토레이, 버거킹, 맥도날드는 유명 학교 준비물브랜드와 학교 급식 프로그램, 기증품을 활용하기도 한다. - P260

그에 반해 스펄록은 맥도날드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해결했다. 한 달 만에 건강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성기능 장애가 발생했으며 체질량이 13퍼센트나 증가하고 전에는 없었던 지방간이 생겼다. 그 결과물인 영화 「슈퍼사이즈 미 Super Size M」는 2004년에 개봉되었고,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중독적 행위를 주제로 다루면서 역사상 가장 큰 화제를모은 음식 영화가 되었다. 「슈퍼 사이즈 미」의 탄생은 가공식품 제조업체들이 재즐린의 소송이 제기되었을 때 직감했던 심각한 위험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재즐린의 소송으로 이 문제가 예술, 음악, 문학 등 더 다양한 문화 영역에서 논의되는 것이었다.
특히 과학 영역까지 확대되는 것이 가장 위험했는데 그렇게 되면 편의 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뀔 수 있었다. 「슈퍼 사이즈미]의 대중적 성공은 훗날 배심원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원고측변호사들이 찾아낸 증거를 아주 관심 있게 들여다볼 환경을 조성하기도 했다. - P237

이런 가공식품에 관한 모든 우려가 소비자들의 식습관을 바꾸고 있다고 모리슨은 설명했다. 소비자들은 점점 캠벨과 같은 기업의지분이 적은 농산물 코너에서 식품을 더 많이 구입했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슈퍼마켓의 가장자리에 배치된 신선한 야채와 과일, 육류,
생선, 요거트와 같은 제품에 돈을 더 많이 쓰고 초가공식품이 모여있는 마트의 중심 부근에는 잘 가지 않았다. 게다가 마트에 직접 가는 대신 온라인에서 장을 보는 사람도 많아졌는데, 온라인에서 장을볼 때는 대개 본인은 물론 부모, 조부모들이 어렸을 때부터 애용해온 브랜드를 구입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모리슨에 따르면 가장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소비자들이 한때 자신이 사랑하던 브랜드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심은 외식에도 적용되었다. 맥도날드는 샐러드를 팔기 위해 애썼지만, 사람들은 샐러드만 파는 새로운 패스트푸드 체인에 몰려들었다. 모리슨은 소비자들이 더 이상 빠르고 편리한 음식을 신뢰하지않는다는 사실의 의미를 오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빠르고 편리한 음식을 생산하는 식품 업계 자체가 신뢰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우리는 신선 식품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음식이 건강과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급증했고 소비자들은 제품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지, 재료는 무엇인지, 그 재료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관한 투명한 정보를 식품기업에 점점 더 요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여러분도 모두 아시다시피 수백만 명의 소비자들이 아주 오랫동안 의지해 온 거대 가공식품기업과 유명 브랜드, 이른바 빅푸드 Big Food에 대한 사회의 불신도 점점 커져 갑니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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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 내 나이 벌써 여든이 넘었네. 이쯤 되면 하지 못해 한이된 일도 있고 엿 먹이지 못해 찜찜한 인간들도 있지 않겠나? 그런데" 그가 다시 에리카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투자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소"
"말씀해보세요." 에리카가 대꾸했다.
"미카엘이 발행인 자리에 복귀해야 하오."
"안 됩니다!" 미카엘이 즉시 대답했다.
"아니, 해야 하네!" 헨리크가 단호하게 말했다. "벤네르스트림에게 한방 먹이려면 방에르 그룹이 <밀레니엄>을 지원하고 자네가 편집부에 복귀한다는 사실을 발표해야 돼. 더이상 분명할 수 없는 신호 아닌가? 자네가 복귀함으로써 이는 방에르 그룹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것이 아니며 잡지의 기존 노선을 그대로 유지하리라는 기조를 의미하니까. 이렇게만 해도 현 상황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광고주들은 생각을 달리할 걸세. 벤네르스트룀은 전능한 존재가 아냐. 그에게도 적들이 있네. 그 적들이 벤네르스트룀을 골탕 먹이기 위해서라도<밀레니엄>에 광고하는 걸 고려하게 될 걸세." - P245

닐스의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온 리스베트는 샤워를 하고서치즈와 피클을 넣은 샌드위치 두 개를 먹어치웠다. 그리고 너무 닳아서 보풀투성이인 천 소파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만약 보통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보면 아마 그녀를 탓할지도 모른다. 역시 비정상이라서 성폭행을 당하고도 아무런 감정적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고 혀를 찰지 모른다.
그녀가 알고 지내는 이들의 범위는 비교적 한정적이었다. 그리고그들이 교외의 안락한 집에서 평온한 삶을 영위하는 중산층은 더더욱 아니었다. 지금껏 그녀가 알아온 여자들은 예외 없이 성년이 되기전에 적어도 한 번 이상 어떤 형태로든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폭행은 주로 또래 남자들에 의해 벌어졌고, 그들은 협박과 회유를 섞어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었다. 변을 당한 여자들은 눈물을 흘리고 강하게 분노했지만 리스베트가 아는 한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니까 그녀가 살아온 세계에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세계에서 여자는 일종의 허가된 희생물이었다. 특히 낡은 가죽재킷을 입고 눈썹엔 피어싱, 어깨엔 문신을 한 소녀라면, 즉 사회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일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 P266

드라간은 계약서를 출력했다. 이 계약서를 미카엘이 헤데스타드로 가져가면 디르크가 서명할 것이다. 인쇄한 계약서를 들고 드라간이 리스베트의 사무실로 들어서자 유리벽 저쪽에서 그녀와 미카엘이 노트북을 함께 들여다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미카엘은 한 손을 그녀의 어깨에 올려놓은 채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분명 그녀의 몸을 만지고 있었다! 드라간은 잠시 멈춰 섰다.
미카엘이 뭔가를 말하자 리스베트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웃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녀의 마음을 얻어보려고 애썼지만 드라간은 그녀가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알게 된 미카엘과는 그렇게 웃고 있었다.
드라간은 갑자기 미카엘이 너무도 미워졌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강렬한 감정이었다. 이윽고 헛기침을 하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계약서가 든 파일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 P391

"여기서 두번째 질문에 부딪히게 되죠." 리스베트가 말했다.
"어떻게 하리에트가 이 더러운 일에 휩쓸리게 되었느냐? 비교적 안정된 대가족 안에서 보호받으며 지내던 열여섯 살 소녀가."
"그러면 답은 하나밖에 없죠."
미카엘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일이 방에르 가문과 관계가 있다....." -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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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에트는 어떻게 됐습니까?" 미카엘이 물었다.
"하리에트는 내게 너무도 소중한 아이였다네. 나는 그애에게 안정감과 자신감을 주려고 했어. 게다가 우리 둘은 서로를 굉장히 잘 이해했지. 나는 그애를 친딸같이 여겼고 그애 역시 친부모보다 나를 더 따랐다네. 정말이지 하리에트는 특별한 아이였어. 오라비처럼 내성적인 성격에, 사춘기 땐 감상적으로 종교에 경도된 일도 있었지. 다른 방에르 가문 사람이라면 꿈도 못 꿀 일이었지만, 여러 방면에서 특출났고 보기 드물게 영리한 아이였다네. 도덕적 심성과 강한 의지도 갖추고 있었지. 그애가 열너덧 살쯤 됐을 무렵에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어. 나중에 방에르 그룹을 이끌거나, 적어도 중심적인 역할을맡을 인물이 그애 오라비, 아니면 내 주변에 득실대는 사촌이나 조카애들이 아니라 바로 그애라는 사실을."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이제 내가 왜 자네를 고용하려는지 진정한 이유를 밝힐 때가 되었군. 우리 가문 사람 중에 누가 하리에트 방에르를 죽였는지, 그후 사십 년 가까이 나를 미치게 만들려고 집요하게 애쓰는 인간이 누군지, 부디 자네가 밝혀주게나!" - P114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이 사고 때문에 그후 24시간 동안 다리가 막혀버렸다는 사실일세. 일요일 오후 늦게나 되어서야 남은 등유를 펌프로 뽑아내고 유조차를 견인한 뒤 교통이 재개됐지. 그 24시간 동안 섬은 외부 세계와 단절됐네. 육지로 가는 유일한 수단은 섬 쪽 요트 선착장에서 교회당 아래 구舊항구로 사람들을 실어나르려고 동원한 소방 보트 한 척뿐이었어. 그나마 처음에는 구조요원들만 탈 수있었고, 토요일 저녁 느지막해져서야 주민들도 태워주었지. 무슨 뜻인지 알겠나?"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리에트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면 여기 섬에서 일어났을 테고, 혐의자 역시 섬 안에 있던 사람들로 한정된다는 뜻이겠죠. 이를테면 섬을 무대로 한 ‘밀실 미스터리‘라고나 할까요." - P117

"하지만 그 수백만 크로나는 결국 헛되이 날아갈 겁니다. 제가 할수 있는 일이라고는 계약서에 서명하고서 일 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거겠죠."
"자넨 그렇게 하지 않을걸? 오히려 일생 그 어떤 때보다도 열심히 일하게 될 걸세."
"왜 그렇게 확신하시죠?"
"내가 자네에게 뭔가를 해줄 수 있기 때문이지. 돈으로 살 수 없으면서 자네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절실히 원하는 것."
"그게 뭐죠?"
헨리크의 눈이 가늘어졌다.
"자네에게 한스에리크 벤네르스트룀을 넘겨주겠네. 난 그자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어. 삼십삼 년 전 바로 우리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지. 난 그자의 목을 쟁반 위에 담아 자네에게 줄 수 있어. 수수께끼를 풀게! 그럼 법정에서 망신당한 자네를 ‘올해의 기자‘로 만들어주지!"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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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리스베트는 놀라울 정도로 냉정해 보이는 여자였다. 하지만 드라간이 가장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건 그 점이 아니었다. 사실 지금은 이미지가 모든 걸 좌우하는 시대 아닌가. 밀톤이 표방하는 이미지가 보수적 안정성이라면 리스베트의 차가운 이미지는 해양박람회에 전시된 동력삽만큼이나 신뢰감을 불어넣는다고 할 수 있었다.
그가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의 가장 유능한 조사원이거식증 환자처럼 비쩍 마른데다 바짝 커트한 머리에 코와 눈썹에는피어싱을 한 창백한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목에는 2센티미터쯤 되는 말벌 문신이 있었고 왼쪽 이두박근과 발목에는 끈 모양 문신을 두르듯 새겼다. 가끔 탱크톱을 입고 나타나면 어깨뼈 위에 새긴 큼직한 용 문신을 볼 수 있었다. 머리는 원래 적갈색이었는데 까마귀처럼 새카맣게 물들이고 다녔다. 하드로커 떼거리들과 한 일주일 신나게 어울려 다니다가 불쑥 나타난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에게 영양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가리지 않고아무거나 먹어치웠다. 타고난 체격이 말랐을 뿐이다. 뼈대가 마치 어린 소녀처럼 섬약했고 작은 손에 발목도 가늘었다. 가슴은 하도 작아 헐렁한 옷을 입으면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나이는 스물넷이었지어떤 이들은 열네 살로 보곤 했다.
입은 제법 컸고 코는 작은데 광대뼈가 솟아서 동양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민첩한 몸동작은 마치 거미의 움직임을 닮았으며 컴퓨터로일할 때면 손가락이 자판 위에서 춤을 추며 날아다녔다. 패션모델을할 만한 몸매는 아니었지만 적당히 화장한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찍는다면 광고모델로 나서도 될 정도였다. 요컨대 화장과 이따금 눈살이 찌푸려지는 새까만 립스틱을 바르고 다녔다 문신과 피어싱아래 숨은 그녀는 나름대로 매력적이었다. 그 매력이란 게 전혀이해할 수 없는 종류인 게 문제이긴 했지만.
리스베트가 드라간 밑에서 일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그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유형의 여자가 아니었으며 일자리를 제안할 만한 이미지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녀를 채용한 것은 순전히 홀게르 팔름그렌 때문이었다. 과거 요한 프레드리크 밀톤의 개인적인 일들을 관리했었고 지금은 조기 은퇴한 변호사다. 그는 행동에는 약간 문제가 있지만 통찰력이 뛰어난 아가씨라고 리스베트를 소개했다. 그가 기회를 줘보라고 당부하는 터라 드라간은 내키지 않았지만 받아들였다. 거절할수록 끈질기게 달라붙는 사람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문제 청소년 같은 사회의허섭스레기들을 돌보느라 쓸데없이 정력을 낭비하긴 하지만 판단력하나만큼은 제대로인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직접 본 순간, 곧바로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그녀의 문제는 단지 외모와 행동만이 아니었다. 중학교도 제대로마치지 못했고 고등학교는 근처에도 안 갔으며, 어떤 종류의 고등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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