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가을, 여명이 밝아올 무렵에 나는 프랭클의 가르침 중 가장핵심인 이 부분을 읽는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 매 순간은 선택이다. 우리의 경험이 얼마나 불만스럽든 지루하든 제한적이든 고통스럽든 억압적이든 간에, 우리는 항상 어떻게 대응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마침내 나는 나에게도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깨닫는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나의 인생을 바꾸게 된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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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한 것은 ‘플래시백Flashback‘이었다.내가 이날 경험한 끔찍한 신체적 감각(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에서 땀이 나고 시야가 좁아지는)은 트라우마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 (그리고 나는 살면서 이것을 수없이 계속 경험한다. 80대 후반이된 지금까지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Post-traumaticStress‘에 ‘장애 Disorder‘라는 이름을 붙여 일종의 병으로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는 트라우마에 대한 장애 반응이 아니다. 평범하고 정상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볼티모어에서의 이 11월 아침, 나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내가 깊이 손상됐기 때문에 무너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내가 손상된 인간이기때문이 아니라 단절된 삶이 남긴 결과에 고통받는 중이라는 사실을 그때도 알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 P240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나는 도망치는 방법으로는 고통을 치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도망은 고통을 더 악화시킬뿐이다. 미국에 온 후 나는 수용소로부터 지리적으로 어느 때보다 더 떨어졌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이전보다 마음 감옥에 더 갇히게 됐다. 과거로부터,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는 과정에서 나는 자유를 찾지 못했다. 나는 두려움의 감옥을 만들었고 침묵으로 감옥의 자물쇠를 봉했다. - P242

밥의 아들인 디키가 자신의 엄마에게 나에 관해 묻고 있다. 내가 정말 미국인이 맞는지, 그렇다면 왜 영어가 그렇게 서투른지 말이다. 온몸이 뻣뻣해진다. 과거가 너무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일어나는 현상이다. 마치 자동차가 급하게 멈춰 설 때 아이들 앞에 손을 뻗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반사적 반응이다. 나는 죽음의 수용소가 절대 내 아이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은 단 하나의 인생 목적으로 굳어졌다. ‘내 아이들은 절대 알아선 안 돼.‘ 내 아이들은 내가 굶주림에 뼈만 앙상한 채로 연기가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엄마가 만들어줬던 슈트루델을 꿈꾸는 모습을 절대 상상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이 이미지를 마음속에 가져서는 절대 안 된다. 나는 아이들을 보호할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게 할 것이다. 하지만 디키의 질문들을 들으니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나 자신의 침묵을 선택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침묵을 유도할 수도있다. 하지만 내가 자리에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선택할 수는 없다. 내 딸아이들은 무슨 말을 우연히 듣게 될까? 진실을 꼭꼭 숨기려는 내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게 될까?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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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나는 치타가 먹이를 잡는 능력과 가젤이 포식자를 회피하는능력이 착실하게 성장해 나간다는 인상을 주었다. 독자들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매 세대가 그 부모 세대보다 더 낫고 훨씬 더 용감해진다는 빅토리아 시대의 완고한 진보 개념을 연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계의 진실은 전혀 다르다. 의미 있는 개선이 확인될 수 있는 시간 척도는 어떤 경우든 한 세대와 그 이전 세대를 비교해 식별할 수 있는 시간보다 훨씬 길다. 더욱이 그 ‘개선‘은 전혀 연속적이지 않다. 그것은군비 확장 경쟁이라는 개념에서 나타나는 개선의 방향처럼 항상 분명한 ‘진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며, 정체하거나 심지어는 ‘여행‘ 하기까지하기 때문이다. 내가 ‘기후‘이라는 일반 항목에 일괄적으로 붙인 조건의 변화, 즉 무생물적 힘의 변화는 관찰자가 느낄 수 있는 한 군비 확장경쟁이라는 느리고 변덕스러운 경향을 압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군비 확장 경쟁에는 장기간에 걸친 ‘진보‘도, 그것에 따른 어떠한 진화적 변화도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296

두 번째 내가 ‘천적‘이라 부르는 관계가 치타와 가젤의 이야기에서설정한 둘로 이뤄진 단순한 관계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한 가지 골치 아픈 문제는 어느 종이 천적 둘(혹은 그 이상)을 가지고 있고 게다가 그 천적들이 서로 앙숙일 경우에 생긴다. 이것은풀이 뜯어먹힘 (혹은 베임)으로써 이익을 얻는다는 절반의 진리의 배후에 깔려 있는 원리이다. 소는 풀을 뜯어먹는다. 그런 의미에서 소는 풀의천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풀은 식물계에서 소 이외의다른 천적을 가지고 있다. 즉 경쟁 관계에 있는 잡초가 그 천적이다. 잡초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성장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잡초는 풀의 천적이 될 것이다. 어쩌면 소보다 훨씬 강력한 적이 될지도 모른다. 풀은 소에게 먹힘으로써 손해를 입지만 경쟁 관계에 있는 잡초 또한 소 때문에 그 이상의 손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풀에 대해 소가 미치는 순효과(純效果)를 따진다면 풀이 이익을 얻는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는 풀의 천적이 아니라 오히려 이익을 주는 친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는 풀의 천적이다. 개체로서의 풀은 먹히기보다 먹히지 않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 P297

나무의 예를 통해 잘 드러나는 또 한 가지 사실은 군비 확장 경쟁이 반드시 다른 종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 그루 한그루의 나무는 이종(異種)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동종의 구성원이 드리운 그늘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어쩌면 실제로는 그런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다. 모든 생물은 이종보다는 동종과의 경쟁에서 더 심각한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동종의 구성원은 같은 자원을 둘러싼 경쟁자이며, 경쟁의 정도는 다른 종의 구성원과 비교해 훨씬 세세한 점에까지 파급된다. 같은 종 내에서는 수컷과 암컷의 역할의 사이에서,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역할 사이에서도 군비 확장 경쟁이 나타난다.  - P302

나무의 이야기를 통해 대칭 군비 확장 경쟁과 비대칭 군비 확장 경쟁이라 불리는 두 종류의 군비 확장 경쟁 사이의 일반적이고도 중요한 차이점을 소개했다. 대칭 군비 확장 경쟁은 대체적으로 서로 비슷한 일을하려는 경쟁자 사이의 경쟁이다. 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싸우는 나무들사이에서 벌어지는 군비 확장 경쟁이 그 한 예이다. 다른 종의 나무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다른 종의 나무와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특정 경쟁, 즉 수관부樹冠部가 받는 햇빛을 둘러싼 경쟁에 관한 한 같은 자원을 두고 다투는 경쟁자들이다. 이 나무들은 한편의 성공이 다른 한편의 실패가 되는의미에서 군비 확장 경쟁에 참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경쟁이 대칭 군비 확장 경쟁이라 불리는 이유는 양쪽 모두에서 성공과 실패의 성질이 같기 때문이다. 즉 어느 편에게도 성공이란 햇빛을 획득하는 것이며, 실패란 그늘로 밀려나는 것이다.
그러나 치타와 가젤의 군비 확장 경쟁은 비대칭이다. 어느 한편이 성공하면 다른 한편은 실패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군비 확장 경쟁이지만, 성공과 실패의 성질이 양자에게 매우 다르다. 양쪽의 동물은 각기 전혀 다른 일을 ‘시도 한다. 치타는 가젤을 먹으려 한다. 반면 가젤의 의도는 치타를 먹는 것이 아니라 치타에게 먹히지 않도록 도망치는 것이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비대칭 군비 확장 경쟁 쪽이 훨씬 더흥미롭다. 왜냐하면 비대칭 군비 확장 경쟁에 참여하는 경쟁자들이 복잡한 병기 체계를 생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간의 군사 기술의예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302

고전에 속하는[동물의 적응색]이라는 책의 저자인 H. B. 코트는 이미 1940년에 이점을 훌륭하게 지적했다. 생물학에 있어서의 군비 확장 경쟁이라는 비유가 활자상으로 나타난 것은 이 책이 최초일 것이다.

메뚜기나 나비가 가지고 있는 사람의 눈을 속이는 듯한 외관이 불필요한 정도까지 상세하다고 말하기 전에 그 천적의 지각력과 식별력이 어느정도인가를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적의 군사적특징이나 전투력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순양함이 지나치게 중무장을 하고있다는 둥, 대포의 사정거리가 너무 길다는 둥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실제로 밀림 속에서 벌어지는 원시적인 전투에서도, 문명 시대의 전쟁이 세련되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진화적인 군사 경쟁이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는, 방어하는 측에서는 속도,경계, 갑주(甲胄), 가시, 굴 뚫는 습성, 야행성, 유독물의 분비, 고약한 맛,
위장이나 그 밖의 종류의 보호 등의 장치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공격하는측에서는 속도, 불의의 공격, 잠복, 유혹, 시각의 예리함, 발톱, 이빨, 바늘, 독니, 미끼를 통한 유인 등의 대항 속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추적당하는 측의 속도가 추적하는 쪽의 속도 증가와 연관되어 발달하거나, 또는 방어용 갑주가 공격용 무기와 연관되어 발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몸을 숨기기 위한 장치의 완결성은 지각력의 증가에 반응해서 진화한다. - P307

군비 확장 경쟁은 어디서 끝이 날까? 때로는 한편의 멸종으로 끝날수도 있다. 그 경우. 한편은 상대에 대해 특별한 방향으로의 전진적인진화를 정지시키고, 나아가 경제적인 이유에서 ‘후퇴‘ 하게 만들기까지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설명하기로 하자. 또 다른 경우에는, 경제적 압박에 의해 군비 확장 경쟁에 안정적인 휴지 상태가 찾아올지 모른다. 비록 경쟁의 한편이 어떤 의미에서 반영구적으로 앞서 나가고 있어도 안정적인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달리기 속도를 살펴보자. 치타와 가젤이 달릴 수 있는 속도에는 궁극적인 한계, 즉 물리 법칙에서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치타와 가젤 모두 그 한계에 도달해 있지는 않다. 양편 모두 경제적이라 생각되는 하한의 경계 이상으로 주행 속도를 올려놓는 데는 성공했다. 고속으로 달리기 위한 기술은 값싸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빨리 달리려면 긴 다리뼈나 강한 근육, 용량이 큰 페등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어떤 동물이나 정말 빨리 달릴 필요가 있는경우라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얻으려면 그것에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 비용은 경제학자들이 ‘기회비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기회 비용은, 그것을 손에 넣기위해 대신 버려야(포기해야 하는 다른 모든 비용의 합계로 측정된다. 아이를 유료 사립학교에 보내는 기회 비용은 그 때문에 살 수 없게 된 모든 것의 총합이다. 즉 살 수 없게 된 새차라든가 더 이상 즐길 수 없게된 휴가 등이 거기에 포함된다. (당신이 이런 것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을 만큼 부자라면,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기회 비용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치타의 경우 다리 근육을 굵게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다리의 근육을 생성하는 데 사용된 물질과 에너지를 이용해 ‘할 수 있었던‘ 모든 것, 예를 들면 새끼를 위해 더 많은 젖을 만들 수 있었던 가능성 등의 총합이 된다. - P311

유전자가 선택되는 것은 유전자의 내적 성질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 작용에 따른 것이다. 어느 유전자의 환경으로 특히 중요한 구성 요소는 다른 유전자이다. 다른 유전자가 그토록 중요한 구성 요소를 이루는일반적 이유는 다른 유전자 또한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진화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귀결이 이루어진다.
하나는 어느 유전자가 유리해지면 그것은 그 유전자가 협동을 선호하는 상황하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다른 유전자와 ‘협동‘ 하는 성질을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전적인 것은 아니지만, 동종 내의 유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 이유는 동일한 종 내의 유전자는 세포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협동 관계에 있는 많은 수의 유전자 집단의 진화를 일으키고 나아가서는 협동 사업의 산물로서 몸 자체의 진화로 이어지게 된다. 개체의 몸은 유전자들의 협동조합이 구축한, 각 조합원의 복제를 보존하기 위한 거대한 탈것, 혹은 ‘생존 기계인 셈이다. 유전자들이 협동하는 이유는 모든 유전자가 같은 결과, 즉함께 공유하고 있는 몸의 생존과 번식을 통해 이익을 얻기 때문이며, 또한 그 유전자들이 서로에 대해 자연선택이 작용하는 환경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항상 협동이 선호되는 것은 아니다. 지질학적 규모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대립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유전자들이 조우할 때도 있다. 이것은 특히, 물론 거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종 사이의 유전자의 경우에 해당된다. 다른 종의 개체들 사이에서는 교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종과는 유전자가 섞일 수 없다는 것이 요점이다. 어느 종 내에서 선택되어 남은 유전자가 다른 종의 유전자가 선택되는환경을 제공할 때, 흔히 그 결과는 진화적 군비 확장 경쟁이 된다. 군비•확장 경쟁의 한쪽, 예를 들면 포식자에서 선택된 결과 발생한 하나하나의 새로운 유전적 개선은 군비 확장 경쟁의 다른 한쪽, 즉 먹이가 되는 생물의 유전자가 선택되는 환경을 변화시킨다. 진화에서 나타나는 명확한 ‘진보적인 성질, 예를 들면 달리기 속도, 비행술, 예리한 시각, 발달된 청각 등의 정교한 개선을 낳을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그러한 군비확장 경쟁이다. 이 군비 확장 경쟁은 영구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 가령 그 이상 개선된다면 해당 동물 개체에 있어서 경제적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에 안정화된다. - P314

가장 관찰이 쉽고 두드러진 정의 피드백은 점차 감소하는 쪽이 아니라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오는 종류이다. 예를 들면 핵폭발이나 발작을일으키는 학교의 교사, 술집에서 벌어지는 싸움, 미국에 대해 날로 높아지는 비난의 목소리 등이 그것이다. (독자들은 내가 이 장의 첫머리에서 했던 경고를 상기하기 바란다.) 국제 정치에서 정正의 피드백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에스컬레이션‘ 이라는 전문 용어나, 중동이 ‘화약고‘라는 표현이나. 어떤 사건이 시작된 ‘도화선‘을 발견했다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정의 피드백이라는 개념과 관련해 가장 잘 알려진 표현 중 하나는 「마태복음」에 잘 나타나 있다.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없는 사람에게는 있는 것마저도 빼앗을 것이다." 이 장은 진화에 있어서 정의 피드백에 해당하는 셈이다. 생물에서는 폭발적인 정의 피드백에따라 유도된 진화의 폭주 과정이 마치 최종 산물처럼 보이는 특성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앞 장의 군비 확장 경쟁도 그 예이지만, 실제로 가장 두드러진 예는 성(性)적인 과시를 위한 기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 P325

다윈은 암컷의 변덕을 단지 천성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변덕의 존재는 성 선택의 공리(公理)이며, 스스로 설명되는 무엇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선험적인(a prior) 전제이다. 그의 성 선택 이론의 평판이 떨어지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이론은 1930년이 되어서야 겨우 피셔에 의해 구출될 수 있었으나 불행하게도 많은 생물학자들은 피셔를 무시하거나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줄리언 헉슬리를 시작으로 사람들로부터 제기된 반론은 암컷의 변덕이 진정한 과학 이론을 위한 기반으로는 정당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피셔는 암컷의 선호를 수컷의 꼬리와 마찬가지로 의심의 여지없이 자연선택의 정당한 대상으로 취급함으로써 성 선택 이론을 구해 냈다. 암컷의 선호는 암컷의 신경계의 표출이다. 암컷의 신경계는 유전자의 영향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신경계의 속성은 과거 세대에서 이루어진 선택의 영향을 받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수컷의 장식이 정적(靜的)인 암컷의 선호도의 영향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했지만, 피셔는 암컷의 선호가 수컷의 장식과 보조를 같이하며 진화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이미 이 논의가 폭발적인 정의 피드백이라는 개념과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 P328

 일반적인 결론은 이렇다. 수컷이든 암컷이든 모든개체는 수컷에게 특정 성질을 가지게 한 유전자와 암컷에게 그와 완전히똑같은 성질을 가지게 한 유전자 양쪽을 모두 가질 가능성이 높다.
즉 수컷의 성질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암컷에게 그 성질을 좋아하게만드는 유전자는 개체군 속에 제멋대로 뒤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한데 연대해 있는 경향이 있다. 이 ‘연대(togetherness)‘ 는 조금 어려운 전문 용어로 연결 비평형 (linkage disequilibrium)이라는 현상을 통해 진행되고, 수리유전학자들이 사용하는 방정식에 따라 불가사의한 일을 연출한다. 그현상은 매우 기묘하고 불가사의한 귀결을 가져오지만, 만약 피셔와 랜더의 이론이 옳다면 실제로 공작이나 긴꼬리천인조의 꼬리 그리고 그밖의 많은 유인 기관의 폭발적인 진화는 조금도 기묘하거나 불가사의한일이 아닌 셈이다.  - P333

다음에 다음과 같은 명백한 문제를 제기해 보자. 대부분의 암컷들이 10센티미터의 꼬리를 가진 수컷을 좋아한다면, 실제로 대부분의 수컷이 7.5센티미터의 꼬리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개체군의 평균 꼬리길이는 암컷의 성 선택의 영향에 따라 10센티미터로 길어지지 않은 것일까? 암컷이 좋아하는 꼬리 길이의 평균과 실제 꼬리 길이의 평균 사이에서 2.5센티미터의 편차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암컷의 선호도가 수컷의 꼬리 길이에 관계하는 유일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 그 답이다. 꼬리는 새의 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너무 길어도 너무 짧아도 비행 효율은 저하되고 만다. 게다가 긴 꼬리는이동할 때에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무엇보다 그처럼 길다란 꼬리를 만드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10센티미터의 꼬리를 가진 수컷은 암컷의 관심을 끌 수는 있겠지만, 그 대신 비행 효율의 저하, 에너지비용의 증대, 심지어는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위험의 증대라는 크나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것은 꼬리 길이에 ‘실용적인 최적값이 있다는의미일 것이다. 그 최적값은 성 선택에 따른 최적값과 달리, 일상적인 편의성이라는 기준에서 이상적인 꼬리 길이이다. 즉 암컷을 유혹하는 것을제외한 모든 관점에서 이상적인 꼬리 길이인 셈이다.
그렇다면 실제 수컷의 평균 꼬리 길이, 우리의 가상적인 예에서 설정한 7.5센티미터라는 평균 꼬리 길이는 이 실용상의 최적값과 같다고 간주해도 좋을까? 그렇지는 않다. 실용적인 면에서의 최적값은 그것보다작은 값, 대략 5센티미터 정도의 길이를 가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이유는 7.5센티미터라는 실제의 평균 꼬리 길이는 꼬리를 짧게 만들려는 실용 선택과 길게 만들려는 성 선택 사이에서 이루어진 타협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굳이 암컷을 유인할필요가 없다면 평균 꼬리 길이는 줄어들어서 5센티미터가 되었을 것이고 비행 효율이나 에너지 비용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면 평균 꼬리 길이는 차츰 늘어나서 10센티미터가 될 것이다. 7.5센티미터라는 실제 평균꼬리 길이는 둘 사이의 타협인 것이다. - P334

이 논의의 핵심은 앞에서 분명하게 밝힌 ‘연관 비평형聯關非平衡‘, 즉 어떤 길이든 주어진 길이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그것에 대응해서 같은 길이의 꼬리를 좋아하는 유전자와의 ‘연대‘라는 점에 있다. 우리는 이 ‘연대 인자‘를 측정 가능한 숫자로 생각할 수 있다. 연대 인자가 상당히 높은 경우에, 특정 개체의 꼬리 길이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알면, 상당히 정확하게 그 또는 그녀의 선호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예측할 수 있으며 그 역도 가능하다. 반대로 연대 인자가 낮은 경우에는, 어느 개체의 두 가지 부문, 즉 선호와 꼬리 길이 중 어느 한쪽의 유전자에 대한 지식을 얻으면, 그 또는 그녀의 다른 한쪽 부문의 유전자에 대해 약간의 암시밖에 얻을수 없게 된다.
연대 인자의 크기를 좌우하는 것은 암컷의 선호의 강도, 즉 암컷이 이상적이 아니라고 생각한 수컷을 어느 정도까지 참을 수 있는가, 수컷의 꼬리 길이에서 나타나는 변이가 어느 정도까지 환경 요인이 아닌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가 등이다. 이러한 모든 영향의 결과로 연대 인자, 말하자면 꼬리 길이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꼬리 길이에 대한 선호에 관계하는 유전자의 결합 정도가 극히 강하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수 있다. 어떤 수컷이 긴 꼬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선택될 때, 긴 꼬리에 관여하는 유전자만이 선택되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그 강한 ‘연대‘ 때문에 긴 꼬리를 좋아하는 유전자도 함께 선택된다. 다시 말해 암컷이 특정 길이의 꼬리를 가진 수컷을 선택하게 만드는 유전자는 실제로는 자기 자신의 복제를 선택하는 셈이다. 이것은 자기 강화 과정의 본질적 요소이다. 한마디로 자동적으로 그들 자신을 유지시키는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단 진화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기 시작하면, 이 힘은 진화를 같은 방향으로 지속시키는 경향을 낳는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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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우리가 치유하는 방식이다. 어제는 야만과 살해가 판쳤다. 어제는 인육 대신 풀 한 줄기를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오래된 관습과 예절, 규칙과 역할이 우리에게 스스로 정상이라고 느끼게 만든다. 우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살면서 상실과 공포, 삶의 끔찍한 중단을 최소화할 것이다. 우리는 ‘잃어버린 세대(제1차 세•계대전 무렵의 환멸과 회의에 찬 미국의 젊은 세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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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러한 순간-강제수용 생활의 끝, 전쟁의 끝을 상상할 때 나는 환희가 가슴에서 넘쳐나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목청껏 외치리라고 상상했다. "나는 자유다! 나는 자유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목소리가 없다. 우리는 침묵의 강물이다. 군슈키르헨의 묘지로부터 근처의 마을을 향해 흐르는 해방자들의 물결이다. 나는 임시로 만든 수레에 타고 있다. 바퀴가 끼익 소리를 내며 삐거덕거린다. 의식이 왔다갔다 한다. 이 자유에는 어떠한 환희도 안도도 없다. 우리는 숲에서 느리게 걸어 나온다. 멍한 얼굴을 하고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이내 다시 잠에 빠져든다. 자유는 잘못된 종류의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게 하는 위험이다. 자유는 상처, 이, 발진티푸스, 잘린 배, 힘없는 눈이다. - P136

 우리 대부분은 신체적으로 너무 피폐해진 나머지 제대로 걸을 수가 없다. 우리는 수레 위에 누워 있거나 지팡이에 기대어 걷는다. 우리의 죄수복은 더럽고 해졌다. 낡을 대로 낡고 누더기가 다 되어서 우리의 피부를 거의 보호하지못한다. 우리의 피부 또한 우리의 뼈를 거의 보호하지 못한다. 우리 몸자체가 해부학 수업이다. 팔꿈치, 무릎, 발목, 광대뼈, 손가락 관절, 늑골들이 시험에 나오는 문제들처럼 돌출되어 있다. 우리는 무엇일까? 우리의 뼈는 역겨워 보이고 우리의 눈은 텅 비고 어둡고 공허한 동굴이다. 움푹 꺼진 얼굴들. 암청색의 손톱들. 우리는 움직이는 트라우마다. 우리는 느리게 움직이는, 악귀들의 행진이다. 우리는 비틀거리면서 걷고 우리가 탄 수레는 자갈길 위를 덜커덕거리며 굴러간다. 우리는 줄에 줄을 지어 오스트리아 웰스의 광장을 가득 메운다. 마을 사람들이 창밖으로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우리는 두려움의 존재다. 아무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침묵으로 광장을 질식시킨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집으로 뛰어들어간다. 아이들이 두눈을 가린다. 우리는 지옥에서 살아남은 끝에 다른 누군가의 악몽이된다. - P137

생존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살아남기 위해 투쟁할 때는 ‘하지만‘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제 ‘하지만‘이 우르르 몰려온다. 우리에겐 먹을 빵이 있다. ‘그래, 하지만 무일푼이지.‘ 살이 붙고 있어 다행이다. ‘그래, 하지만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워. 너는 살아남았어. ‘그래, 하지만 우리 엄마는 죽었지.‘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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