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0월 25일 오전 10시 30분, 오펜하이머는 대통령집무실로 안내되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화술에 능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라는 명성이 자자한 유명 물리학자를 만나고 싶어 했다. 패티슨 장관이 그를 소개하고 나서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트루먼은 오펜하이머에게 메이-존슨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며 대화를 시작했다. 트루먼은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적 문제가 무엇인지 정하는 것입니다. 국제 문제는 그 다음이지요."라고 말을 꺼냈다." 오펜하이머는 이상하리만큼 길게 침묵을 지키다가 머뭇거리며 "어쩌면 국제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 모든 핵기술을 국제적으로 통제하는 노력을 통해 신무기의 확산을 막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을 하려던 것이었다. 대화 중에 트루먼은 갑자기 그에게 러시아 인들이 언제쯤 그들의 원자 폭탄을 만들 수 있겠냐고 물었다. 오펜하이머가 모른다고 대답하자, 트루먼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신은 대답을 안다고 말했다. "영원히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오펜하이머는 그와 같은 어리석음은 트루먼의 한계를 보여 주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히긴보텀은 "대통령이 전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것을 보자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자신의불안감을 계산된 결단을 보여 주는 것으로 감추고는 했던 트루먼에게, 오펜하이머는 지나치게 불확실했고, 애매했으며,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마침내 대통령이 자신의 메시지가 갖는 급박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감지한 오펜하이머는, 긴장한 듯 손을 비비며 나중에 후회할 만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대통령 각하. 내 손에 피가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Mr. President, I feel I have blood on my hands)."라고 말했다. - P505

1946년에 진행된 오펜하이머와 트루먼 정부 관료들에 대한 후버의조사는 반공주의 정치의 전조였다. 그는 "공산주의자", "공산주의 지지자", 또는 "동조자"라는 혐의를 무기로 정적들을 침묵시키거나 파괴했다. 그것은 사실 새로운 전술이 아니었다. 이와 같은 혐의는 1930년대말부터 주 정부에서 상당한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입증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 사이의 간극이 점점 커지는 당시의 분위기에서, 우리의 "원자 비밀"을 지킬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기는 쉬운 일이었고, 이와 같은 필요성은 핵 관련 연구자들에 대한 극심한 감시를 정당화했다. 후버는 핵 문제에 대한 가장 보수적인 입장에서 벗어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고, 그는 원자 에너지 정책에 관여하는사람 중 오펜하이머가 가장 혐의점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P517

오펜하이머는 이와 같은 딜레마에 대한 해법으로 현대 과학의 국제주의를 제시했다. 그는 원자력 에너지와 관련된 모든 것을 독점적으로 관장하는 국제 기구를 만들어 개별 국가들에게 혜택을 나눠 주자고 제안했다. 이 기구는 기술을 통제하고 그 기술이 오직 민간 목적으로만 개발되도록 할 것이었다. 오펜하이머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세계 정부 없이는 영구적 평화를 얻을 수 없고, 평화가 없다면 세계는 필연적으로 핵전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라고 믿었다. 물론 세계 정부는 당장 실현될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오펜하이머는 적어도 원자력에너지 부문에서만이라도 각국이 주권을 "부분적으로 포기"하기로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계획에 따르면 원자력 개발 공사(AtomicDevelopment Authority)가 전 세계 모든 우라늄 광산, 핵발전소, 그리고 연구소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 될 것이었다. 어떤 나라도 원자 폭탄을 만들지 못하게 될 것이었지만, 과학자들은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기위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었다. 4월 초에 한 강연에서 그가 설명했듯이, "이 제안은 원자력 개발 공사가 설립되어 핵무기로부터 세계를•보호하고 원자력 에너지의 혜택을 제공할 수 있을만큼만 각국이 주권을 부분적으로 포기하자는 것입니다." - P521

그래도 바루크는 벌칙 없는 법조항은 무용하다고 고집했다. 그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의 의견을 무시하면서, 소련이 적어도 20년 동안은 핵무기를 만들 수 없으리라고 선언했다. 34 그러므로 그는 빠른 시일 안에 미국의 독점적 지위를 포기할 긴급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가 국제 연합에 제출하기로 마음먹은 계획은 애치슨릴리엔털 보고서를 상당히 수정한, 사실상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새로운 원자력 기구가 취하는 어떤 행동에 대해서도 소련은 사실상 안전보장 이사회의 거부권을 포기하게 될 것이었다. 협정을 위반하는 나라는 즉시 핵무기 공격을 받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소련은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된 기밀 정보를 제공받기 전에 그들의 우라늄 광맥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제출해야만 했다.
애치슨과 매클로이는 처벌 조항을 처음부터 강조하는 것에 강하게반대했다. 그들은 또한 바루크의 의도대로 핵무기에 대한 미국의 독점을 앞으로 수년간 유지한다면 계획은 성사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이 계속해서 핵무기를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소련이 그와 같은조건에 합의할 리는 만무했던 것이다. 바루크의 제안은 원자력 에너지를 국제 협력을 통해 통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독점을 연장하려는 의도였다. 매클로이는 완벽한 국가 안보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일이며 그와 같이 엄격한 즉각 처벌 조항을 두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다음 날 대법관 펠릭스 프랭크퍼터는 매클로이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아주 대단한 싸움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은 반대편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 너무 화가 나서 ‘입에서 먼지를 내뿜을 정도였다고요." - P526

1946년 6월 14일, 바루크는 "산 자와 죽은 자(the quick and the dead)"사이의 선택이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국제 연합에 자신의 계획을제출했다. 오펜하이머와 애치슨릴리엔털 계획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이 예상했듯이, 소련은 즉시 바루크의 계획을 거부했다. 모스크바의 외교관들은 그대신 핵무기의 생산과 사용을 금지하는 간단한 조약을 제안했다. 오펜하이머는 키티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 제안이 "그리 나쁘지않다."라고 말했다. 누구도 소련이 바루크 제안의 거부권 행사 관련 조항에 반대한 것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오펜하이머는 키티에게 바루크는 "그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이었는지 잘 알면서도" 이 결과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낙담했는지 과장되게 말하고 다닌다고 평가했다. 트루먼 행정부는 오펜하이머가 예상한 대로 소련의 제안을 거절했다. 몇 달 동안이나 협상이 계속됐지만 그저 형식뿐이었고 의미 있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로써 두 강대국은 핵무기 경쟁을 조기에 통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와 곧이은소련의 대규모 핵무기 생산이 있고 나서 1970년대가 되어서야 미국 행정부는 서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군비 통제 조약을 제안할 것이었다. 그때가 되면 이미 수만 개의 핵탄두가 생산된 후였다. 오펜하이머와 그의 동료들은 바루크 때문에 이 기회를 놓쳤다고 비난했다. 애치슨은 나중에 "그것은 (바루크의) 임무였는데 그가 일을 망쳤습니다."라고 평가했다." 라비 역시 호의적이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 그 일은 완전히 미친 짓이었다." - P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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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착각한 모양인데, 주주들이 계속 남으려는 건 돈을 벌기 위해서예요. 그걸 바로 자본주의라고 하죠. 만일 그들에게 돈을 잃게될거라고 말한다면 당장에 주주를 그만둘 겁니다."
"내가 손해를 보라고 제안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충분히 있죠. 주주가 된다는 건 책임을 진다는 뜻입니다. 방금 당신도 말했듯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본주의예요. <SMP> 주주들은 수익을 내고 싶어하죠. 시장이 수익과 손실을 결정하는 게 바로 자본주의 법칙 아닌가요? 그런데 당신은 그 법칙이 <SMP> 직원들에게만 적용되어야 하고 당신과 주주들은 예외라는 듯이 얘기하는군요" -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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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는 나중에 신비로운 버섯구름이 하늘로 떠오르는 것을 보았을 때 기타의 구절을 떠올랐다고 말했다. 1965년 NBC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우리는 이 세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몇몇은 웃었고, 몇몇은 울었습니다. 대부분은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나는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을 기억했습니다. 비슈누 왕자에게 그의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감명을 주기 위해 비슈누는 팔이 여러 개 달린 형태를 취하고서는 ‘이제 나는 죽음이, 세계의 파괴자가 된다(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근본적으로는 이와 같이 생각했을 것입니다."라고 기억했다." 오펜하이머의 친구인 에이브러햄 페이스는 이 인용문이 오피의 "승려 같은 과장"처럼 들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펜하이머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건, 그의 주변 인물들이 있는 그대로의 행복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로런스는 그의 기사에서 그들의 감정을 묘사했다. "큰 폭발음이 거대한 섬광이 번쩍한 지 약 100초후에야 울렸다. 새로 태어난 세상의 첫 울음이었다. 그것은 침묵에 잠긴 부동의 실루엣에 생명을 불어넣고 목소리를 주었다. 고함 소리가 공기를 채우기 시작했다. 지금껏 땅에 선인장처럼 뿌리 내린 듯 서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춤을 추기 시작했다. " 몇 초 후 사람들은 춤을 멈추고서로 악수를 나누기 시작했다. 로런스는 그들이 "서로 등을 두드리며행복한 아이들처럼 웃어대기 시작했다."라고 보고했다. 폭발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던 키스티아콥스키는 오펜하이머를 끌어안고 10달러를 내놓으라고 했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지갑이 비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며 다음에 주겠다고 말했다" (나중에 로스앨러모스로 돌아와 오피는 키스티아콥스키에게 자신이 서명한 10달러짜리 지폐를 증정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통제 센터를 떠나면서 오펜하이머는 베인브리지와 악수를 나눴다. 베인브리지는 그의 눈을 쳐다보면서 "이제 우리는 모두 개새끼들이다(Now we‘re all sons-of-bitches)."라고 중얼거렸다. 본부로 돌아와서 오펜하이머는 동생 프랭크와 패럴 장군과 함께 브랜디를 나눠 마셨다. 한 역사가에 따르면, 그러고 나서 그는 로스앨러모스에 남아 있던 비서에게전화를 걸어 키티에게 메시지를 남겨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에게 이제 침대보를 갈아도 좋다고 전해 주게." - P472

오펜하이머의 지휘 하에 만들어진 원자 폭탄이 이제 곧 사용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소련과의 군비 경쟁을 촉발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였다. 트리니티 시험 직후, 그는 바네바 부시로부터 임시 위원회가 폭탄의 존재와 곧 일본에 사용될 것임을 러시아에 알려야 한다는 그의 권고를 만장일치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듣고 안도했다. 그는 당시 포츠담에서 처칠과 스탈린을 만나고 있던 트루먼 대통령이 그에 대한 단도직입적인 토론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이 3자 회담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게된 오펜하이머는 아연실색했다. 무기에 대한 허심탄회하고 솔직한 토론을 하기는커녕, 트루먼은 의뭉스럽게도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는 것에 멈췄던 것이다. 트루먼은 그의 회고록에 "7월 24일, 나는 스탈린에게우리가 파괴력이 매우 강한 신무기를 만들어 냈다고 넌지시 말했다. 러시아 수상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단지 그 소식을 듣게 되어 기쁘며 ‘그것을 일본에 대항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을 따름이었다."라고 썼다. 이것은 오펜하이머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역사가 앨리스 킴벌 스미스가 나중에 썼듯이 "포츠담에서 일어난일은 어이없는 희극이었다." - P479

로버트 윌슨은 히로시마로부터의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후기가 사용되지 않기를 바랐으며,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펜하이머는 1월에 폭탄이 시범 단계에 이름때까지만 일을 지속하도록 그를 설득했다. 그리고 그는 오펜하이머가임시 위원회 심의 과정에 참여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그는 오펜하이머가 그에게 확실한 약속을 할 수 없는 위치에 있음을 이해했다. 그것은 장군들, 전쟁부 장관 스틸슨,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이 내릴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뢰가 무너졌다고 느꼈다. 월슨은 1958년에 "나는 일본인들과의 토론이나 그 위력을 평화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시범 없이 폭탄이 사용되었을 때 배신당했다고 느꼈습니다."라고 썼다.
윌슨의 아내 제인은 히로시마 소식을 들었을 때 샌프란시스코를 방문중이었다. 그녀는 로스앨러모스로 서둘러 돌아와 남편에게 축하의 미소를 지었으나 그가 "매우 우울해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3일 후 두번째 폭탄이 나가사키를 파괴했다. 제인 윌슨은 "사람들이 쓰레기통 뚜껑을 두들기며 기뻐했지만 남편은 거기에 참가하지 않았어요. 그는 골난 사람처럼 불행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로버트 윌슨은 "나는 아프고 속이 안 좋아서 토할 것 같았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윌슨 같은 사람은 또 있었다. 로스앨러모스 금속학자 시릴 스미스의 아내 앨리스 킴벌 스미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감정의 변화를 겪었고, 심지어는 전쟁을 끝낸 것이 폭격을 정당화한다고 믿었던 사람들조차도 악이 실재한다는 것을 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느끼게 되었다."라고 썼다. 히로시마 이후, 메사 위의 사람들은 대부분 잠시나마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샬럿 서버에 따르면, 나가사키의 소식이전해진 후에는 암울함이 연구소를 뒤덮었다. 곧 "오피가 원자 폭탄은 지나치게 끔찍한 무기이기 때문에 이제 전쟁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라는 말이 돌았다. 한 FBI 정보원이 8월 9일에 보고한 바에 따르면 오펜하이머는 "신경 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다. " - P483

1945년 8월 8일, 스탈린이 얄타 회담에서 루스벨트에게 약속했고 포츠담에서 트루먼에게 확인했던 대로 소련은 일본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것은 천황의 주전파 각료들에게 치명적인 소식이었다. 그들은 그동안소련을 잘 이용하면 일본이 미국의 "무조건 항복" 원칙보다 다소 완화된 항복 조건을 얻어낼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던 것이다." 이틀 후 나가사키가 플루토늄 폭탄으로 황폐화된 다음 날 일본 정부는 항복 제안을 전해 왔다. 조건은 단 하나였다. 일본 천황의 지위를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그 다음 날 연합국은 항복 조건을조금 바꾸는 것에 합의했다. 천황의 통치권은 "연합국 총사령관에 위임한다."는 것이다. 8월 14일, 라디오 도쿄(Radio Tokyo)는 정부가 이 조건을 받아들였다고, 즉 항복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전쟁은 끝났고,
그로부터 몇 주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저널리스트들과 역사가들은 폭탄이 없었어도 전쟁이 비슷한 조건으로 같은 시기에 끝났을지를 두고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 P484

오펜하이머는 안심하지 않았다. 그는 그 주말의 대부분을 과학 패널의 이름으로 스팀슨 장관에게 보내는 최종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는 데 보냈다. 그의 결론은 비관적이었다. "핵무기의 사용을 효과적으로 막을수 있는 적절한 군사적 대응책은 없다는 것이 우리의 의견이다." 게다가 폭탄은 지금도 대단히 파괴적이지만 점점 더 커지고 더 큰 파괴력을갖게 될 것이었다.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한 지 사흘 만에 오펜하이머는 스팀슨과 대통령에게 이 신무기들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미국이 핵무기 분야에서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세울 방법이 없다. 게다가 설령 주도권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를 가장 끔찍한 파괴력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우리는 과학적, 기술적 능력을 키우는 것으로 적국에 피해를 가할 수는 있어도 이 나라의 안전을 보장할 수는없다고 믿는다. 안전은 오직 앞으로 전쟁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으로만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보고서를 완성한 오펜하이머는 바로 워싱턴으로 향해 바네바 부시와 함께 스틸슨의 전쟁부 보좌관인 조지 해리슨을 만났다. 오펜하이머는 8월 말 로런스에게 "시기가 안 좋았어. 투명성을 보이기엔 너무 일러."라고 전했다.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들이 왜 원자 폭탄에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는지를 설명하려고 했다. 그는 "지난 전쟁에서 독가스가 그랬듯이" 원자 폭탄 역시 국제 사회에서 금지되어야할 것이라는 주장을 넌지시 비추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워싱턴에서만난 사람들 중 누구도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포츠담에서 일이 아주 틀어졌다는 명확한 인상을 받았다. 즉 러시아 인들과 함께 협력이나 통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진전도 이루어지지않았다." - P485

오펜하이머는 맨해튼프로젝트가 근복적인 의미에서 바로 라비의 예상을 현실화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지난 3세기 동안의 물리학의 결과로"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성취가 물리학을 피폐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이는 단순히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었다. 그는 곧 과학적 성과로서의 폭탄을 비하하기 시작했다. 오펜하이머는 1945년 말 상원 위원회에서 "우리는 잘 익은 과일이 많이 달린 나무를 세게 흔들어 레이더와 원자 폭탄을 만들었습니다. (전쟁 동안에) 우리는 이미 알려진 지식을 광적이고 무자비하게 착취했습니다." 그는 이 전쟁이 "물리학에 현저한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멈추게 했지요." 그는 전쟁 중에 "학생을 길러내는 것을 포함해 물리학 분야의 전문 활동을 완전히 멈추었음을 볼 수 있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쟁은 또한 과학에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바이스코프가 나중에 썼듯이 "전쟁은 과학이 모두에게 가장 직접적인 중요성을 가진다는 것을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명확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물리학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1945년 9월 21일 금요일 정오, 오펜하이머는 스팀슨에게 작별 인사를하러 갔다. 그날은 스팀슨의 전쟁부 장관 임기의 마지막 날이자 그의 78세 생일이었다. 오펜하이머는 스팀슨이 그날 오후 백악관에서 이임식을 할예정이며, 그 자리에서 "원자력에 대한 열린 접근"을 "뒤늦게" 주장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스팀슨의 일기에 따르면, 그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적절한 반대 급부(quid pro quo)가 있다면 폭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할 기회를 줄 수도 있다고 러시아에게 즉시 제안해야 할 것"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생각이었다.
오펜하이머는 스팀슨을 진심으로 좋아했고 신뢰했다. 오펜하이머는 전쟁이 끝나고 원자 폭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논쟁이 중요한 전기를 맞고 있을 때 스팀슨이 은퇴한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이날 만났을 때, 오펜하이머는 폭탄의 기술적 측면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했고, 스팀슨은 그에게 펜타곤 이발소에 같이 가자고 했다. 스팀슨은 그의 가느다란 은색 머리를 다듬었고 이발이 끝나자 의자에서 일어서서 오펜하이머와 악수를 나누고는 "이제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 P490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들은다시 한번 올림푸스 산으로 돌격해 인간을 위해 제우스의 벼락을 가지고 돌아왔다." <라이프(Life)》는 물리학자들이 이제 "슈퍼맨 옷"을 입은듯하다고 비평했다.
오펜하이머는 이와 같은 찬사에 익숙해졌다. 그는 마치 지난 2년 반동안 메사 위에서 새로운 역할을 준비하는 훈련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과학자-정치가로 탈바꿈했고, 심지어 시대의 우상이 되었다. 파이프를 피우고 중절모를 쓰는 등 조금은 가식적인 그의 행동들조차 곧 전세계에서 알아보게 되었다.
그는 곧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들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 철학 협회(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의 청중들에게 "우리는 대단히 끔찍한 무기를 만들었고, 이는 세계를 한순간에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란 세계의 기준에서는 사악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만듦으로써 우리는 과연 과학이 인간에게 유익하기만 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원자 폭탄의 "아버지"는 자신의 창조물이 개념상 공포와 침략의 무기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그것은 저렴하기까지 했다. 이 조합은 언젠가 인간 문명 전체에 치명적일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초보적인 핵무기도 값싸게만들 수 있습니다•••••. 누구나 손쉽게 핵무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히로시마가 핵무기 사용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히로시마에투하된 폭탄이 "사실상 패배한 적을 향해" 사용되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침략자의 무기입니다. 놀라움과 두려움은 분열하는 원자핵만큼 그것의 근본적인 성질입니다." - P493

트루먼 대통령이 1945년 10월 3일 자신의 메시지를 국회에 전달했을때, 많은 과학자들이 처음에는 안도했다. 이 메시지는 애치슨 밑에서 일하는 젊은 변호사인 허버트 마크스(Herbert Marks)가 작성했는데, 그는이 메시지에서 의회에게 산업 전반을 규제할 권력을 가진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워싱턴 내부인들조차 알지 못했지만, 마크스는 오펜하이머의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이 문서는 오펜하이머가 원자력 에너지의 위험성과 잠재적 편익의 양면성에 대해 느끼던 급박한 마음 상태를 반영하고 있었다. 트루먼은 원자력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으로는 상상할 수없을 정도로 혁명적인 새로운 힘이다."라고 선언했다. 시간이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 트루먼은 "가능하다면 원자 폭탄의 이용과 개발을 포기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조율만이 인류의 희망이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핵무기를 폐기하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을 받아 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큰 메시지를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다음 날 콜로라도 상원 의원 에드윈 존슨(Edwin C. Johnson)과 켄터키하원 의원 앤드루 메이(Andrew J. May)가 입안한 법안에는 영향을 미칠방법이 없었다. 메이-존슨 법안이 구현하는 정책은 근본적으로 대통령의 연설과 상충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것이 군부의 승리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이 법안은 보안 규정을 어기는 것에 엄격한 징역과 높은 벌금을 부과할 것을 제안했다. 오펜하이머의 동료들은그가 메이-존슨 법안을 왜 지지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10월 7일, 그는 로스앨러모스로 돌아와 로스앨러모스 과학자 협회의 집행 위원회 위원들에게 법안을 지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특유의 설득력으로 그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시간이 가장 중요한 변수였고, 재빨리 국내 원자력 에너지 관련 사안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을만들지 않으면 핵무기를 금지하는 국제 협약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는것이었다. 오펜하이머는 어느새 워싱턴 내부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회망과 순진함으로 가득 차서 정부에 협력적인 지지자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법안의 구체적인 조항을 살펴본 과학자들은 경악했다. 메이존슨 법안은 대통령이 임명한 9인 위원회에 원자력 에너지에 관한 모든 권력을 집중시킬 것을 제안했다. 군 관계자들도 위원회에 참가할 수있도록 허용할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경미한 보안 규정 위반으로도 최고 징역 10년까지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가 1943년 로스앤러모스 과학자들을 육군 소속으로 하는 계획을 승인했을 때처럼, 그의동료들을 걱정시켰던 구체적인 조항들의 함의는 정작 오펜하이머는 놀라게 하지 못했다. 전쟁 중의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보았을 때, 그는 그로브스와 전쟁부와 같이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 P497

 몇 분 후, 뜨거운 뉴멕시코의 태양을 받으며 단상 위에 앉아 있던 오펜하이머는 그로브스 장군으로부터 감사장을 받기 위해 일어섰다.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그는 앞으로 연구소의 작업에 참여했던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고 그들의 성취를 돌아볼 수 있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는 말했다. "오늘 그 자부심은 깊은 우려와 함께해야 합니다. 원자 폭탄이 무기고의 신무기에 불과한 것이 된다면, 인류가 로스앨러모스와 히로시마의 이름을 저주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는 계속했다. "전 인류가 단결하지 않으면 반드시 멸망할 것입니다. 이것이 엄청나게 파괴적이었던 이번 전쟁이 우리에게 준 교훈입니다. 원자 폭탄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보여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시기에, 다른 전쟁에 대해, 다른 무기에 대해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들은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들 중 몇몇은 잘못된 역사의식을 가지고 이번에도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법률과 인류애의 이름으로 단결된 세계에 헌신했습니다. - P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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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제게 전화를 걸어왔어요"
에리카는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가 왜 자네에게 전화했을 것 같은데?"
"리스베트가 수배중일 때 그 사람을 여러 번 인터뷰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저를 잘 아는 것이고요."
"그래. 그는 자넬 잘 알고 있어. 스물일곱 살 먹은 임시기자이고 검사가 퍼뜨리고 싶은 정보가 있을 때 써먹을 수 있는 편리한 통로라는 걸."
"그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형사에게서 전화를 받았고, 나가서 커피를 한잔 했고, 거기서 그가 얘기해줬어요. 저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적었고요. 자,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난 자네가 그의 말을 정확히 인용했다고 믿어. 그다음에 해야 할일은 안데르스에게 그 정보를 보고하는 거였고, 그는 나를 찾아와 상황을 설명해야 했지. 우리가 함께 상의해서 취해야 할 입장을 결정할수 있도록 말이야."
"압니다. 하지만 전......"
"자네는 그 정보를 안데르스에게 가져다줬어. 그래, 잘했어. 문제는 안데르스였지. 그건 그렇고 기사를 한번 분석해보지. 첫째, 한스파스테는 왜 이 정보가 세간에 유포되기를 바랐을까?"
요한네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내가 이 기사는 거짓이고, 리스베트는 스테로이드와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면 자넨 뭐라고 대답할 거야?"
"그건 증명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죠."
"그렇지. 다시 말해 어쩌면 거짓일 수도 있는 기사를, 그것이 거짓임을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발표할 수 있다는 게 자네 생각인가?"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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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르트는 리스베트의 병실 앞으로 다가가 문고리를 돌렸다. 문고리는 무언가에 걸려 단 1밀리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주 짧은 순간, 그는 확실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엉거주춤 문앞에 서 있었다. 방안에 안니카 잔니니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만일 그녀의 서류가방에 군나르의 보고서 사본이 들어 있다면 ••••• 그러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걸 부술 힘이 그에겐 없었다.
어차피 그의 계획에 없는 일이었다. 안니카는 프레드리크가 맡아서 처리할 것이다. 자신은 실라첸코만 끝내면 그만이었다.
에베르트는 복도를 둘러보았다. 스무 명쯤 되는 간호사에 환자와면회객들이 문을 빼꼼히 연 틈으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권총을 치켜들어 복도 끝 벽에 걸려 있는 그림에 대고 한 방 쏘았다. 마치 요술 지팡이라도 휘두른 듯 구경꾼들이 일시에 자취를 감췄다.
그는 꽉 닫혀 있는 문에 다시 한번 눈길을 던진 뒤 결연한 걸음으로 살라첸코의 병실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그런 다음 면회객용 의자에 앉아 오랜 세월 그의 삶에서 내밀한 부분이었던 소련 망명자의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꼼짝 않고 앉아 있은 지 십 분이나 되었을까, 복도에서 들려오는 웅성대는 소리로 그는 경찰이 도착했음을 알았다. 그 순간, 특별히 생각나는 건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권총을 들어 자신의 관자놀이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어진 일들은 살그렌스카 병원에서 자살을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신중치 못한 선택이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에베르트는 급히 외상 전문 응급실로 옮겨졌고, 안데르스 요나손은 곧바로 필수적인 생체 기능을 유지시키기 위한 응급조치를 취했다. - P206

프레드리크가 말을 끊었다.
"그는 암에 걸렸어. 위와 대장, 그리고 방광에 벌써 여러 달 전에사망선고를 받았고, 살날은 두 달밖에 안 남아 있었지."
"암?"
"그는 여섯 달 전부터 그 권총을 가지고 다녔네. 더이상 고통을 견딜 수 없는 정도가 되면, 자신이 중환자실에 누운 고깃덩어리가 되면 사용하겠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하지만 섹션을 위해 마지막 봉사를해야 했지. 참으로 위대한 마지막 출정이었어."
비리에르는 멍한 얼굴이 되었다.
"그럼 당신은 알고 있었던 겁니까? 그가 살라첸코를 죽일 생각이었다는 걸?"
"물론이지. 살라첸코가 입을 열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는 것, 이게바로 그의 임무였어. 자네도 잘 알잖나. 우린 그자를 위협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었다는 걸."
"이 일로 어떤 스캔들이 일어나게 될지 몰라요? 당신도 에베르트만큼이나 돈 거예요?"
프레드리크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는 비리에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팩스로 받은 종이 한 뭉치를 건넸다.
"그건 작전상 내린 결정이었어. 난 지금 내 친구를 애도하고 있고, 얼마 후엔 나도 그의 뒤를 따르게 될 거야. 그리고 스캔들은...... 어느 전직 세무 변호사가 편집광 증세가 명백히 드러나는 편지들을 써서 신문사, 경찰, 그리고 법무부 장관에게 보냈네. 그중 하나를 봐. 여기서 에베르트는 살라첸코에게 갖가지 혐의를 씌우고 있어. 팔메 수상을 암살하고, 스웨덴 국민을 염소로 전부 독살하려고 했다는 식으로, 이 편지들을 살펴보면 정신질환자의 작품이라는 걸 명백히 알 수있지. 제대로 읽히지도 않는 데가 한두 곳이 아니고, 툭 하면 나타나는 대문자와 밑줄과 느낌표, 그리고 이렇게 여백에다 깨알같이 적어높은 방식이 특히 마음에 들어."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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