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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인간적인 삶
김우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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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페렐만으로 시작하여 페렐만으로 끝나는 이 책은 저자의 가늠하기 어려운 사상적 넓이와 깊이로 인해 무슨 말을 전하려 하는지 참으로 난해하기 짝이 없다. 물론 나의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사상적 편협함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나는 저자의 사회와 정치에 대한 통찰력에 대해 의구심을 버릴 수 없는 이유를 나름대로 지적하고 싶다. 이 책의 도입부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런데다가 현 정부는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비판적인 진보적인 정부다…….`- p.30 -

난 이 글을 보는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정부라고 저자는 보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노조와 민주노총을 비난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부가 진보적이고 신자유주의 비판적이라고 하신다.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이며 진보적인 가치를 중시하고 개혁적인 정부가 되라고 찍어 주었다가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는 국민들은 뭐란 말인가?

과연 `가늠하기 어려운 사상적 넓이와 깊이로 인해 우리시대의 대표적인 인문학자로 평가된다.`라는 저자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신문 몇 줄 읽어 보면 알 수 있었던 상식적인 내용을 대교 수님께선 모르고 계셨던 것일까? 아니면 신자유주의자들을 극구 옹호하는 극우 보수적인 신문에서 떠들어 대던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진보주의 자에 대한 비판쯤으로 여기셨던 것은 아닐까?

어디에 가나 대 학자님의 저서에는 꼭 `가늠하기 어려운 사상적 넓이와 깊이로 인해 우리시대의 대표적인 인문학자로 평가된다.`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니는데, 그렇게 평가하신 분들은 과연 30페이지에 등장하는 저 이상한 주장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기 만하다.

명말의 대학자 이탁오 선생은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이 50 이전에 나는 정말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자 나도 따라 짖어댄 것일 뿐, 왜 그렇게 짖어댔는지 까닭을 묻는다면,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없이 웃을 뿐이었다.”

이는 유교의 교조주의를 비판하고 통렬한 자기반성을 통해 진정한 학문의 길을 가려는 대학자의 자기 자신과 주류 유교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었던 것이다.

나는 저자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50이전의 이탁오 같은 사람들의 지식권력에 대한 맹목적인 짖음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대학자의 사소한 실수인가, 아니면 치졸한 인간의 못된 물어뜯기 본성의 희생양인가???

이 책을 읽고 사실 페렐만의 자유의지와 삶의 태도를 알게 된 것만 해도 큰 소득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명예와 부를 포기하고 자유의지에 따라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그에 비해 돈과 명예에 이끌려 인생을 진정한 자유의지를 실현하지 못하는 우리네의 삶은 어찌 보면 일차원적 이거나 2차원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요즘 신문 지면으로 자주 접하고 있는 김 교수님의 글은 우리에게 자상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었지만 역시 대부분 이해하기 힘들었다. 김 교수님의 글쓰기는 내게 모호함으로 다가왔고 친절하게 이해시켜 주시지는 않는 분이라 느껴졌다. 오늘도 신문에서 선생의 글을 접하였지만 자꾸 산만하게 느껴지는 논점 때문에 읽다 포기하고 말았다.

앞으로 그 모호함과 산만하게 느껴지는 논점을 극복하는 게 나의 과제로 느껴진다.

고려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아직도 우리에게 고견을 들려주시는 대학자를 존경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지식이 권력이 되고 그 권력 앞에 맹종하는 지식 장사치들의 모습은 자유의지를 실현하지 못하는 저차원의 인간일 뿐이다.

어쩌면 대학자의 깊은 성찰과 고견을 이해 못하는 나는 얕은 지식으로는 비판을 위한 비판에만 능할 뿐 나 또한 자유의지를 실현하지 못하는 저차원의 인간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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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adic1 2011-03-27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렐만에 대해서 알려면 오히려《100년의 난제 :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을까?》를 한번 읽어 보는 것이 좋을것 같다.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 인권 운동가 오창익의 거침없는 한국 사회 리포트
오창익 지음, 조승연 그림 / 삼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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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무자비하고 무감각한 세상 사람들의 눈먼 냉담함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벗어 버릴 수가 없었다.

지난 가을  조중동 광고 중단 운동이 뜨거웠던 어느 날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주인장에게 신문을 조 보겠다며 신문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주인이 건네준 신문은 조중동중 하나였다. 그동안  조중동이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왜곡보도로 질타를 받고 매스컴과 시민운동을 통해 조중동 불매운동과 광고주 압박 운동이 사회적이 이슈가 되어 많은 분들이 알고 있으니 특히 많은 사람이 다녀가는 식당에서는 그런 신문을 보는 곳은 없을 거라 생각 했었는데. 나름대로 나에겐 좀 의외였다. 그래서 주인장에게 아직도 이런 신문을 보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나 주인은 아직 조중동 찾는 손님이 많고 그냥 보던 거라 계속 본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을 하더라. 좀 따지려다가 다시금 생각해보니 내 주변 사람들도 공짜라서 본다거나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조중동을 봐야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꽤 있음을 깨닫고 좀 문제가 심각하단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착한 이웃이고 후덕한 식당 주인장이며 평범한 시민들인데, 이 사회의 부조리와 억압적인 현실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무관심으로 애써 외면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이웃들의 선량함이 사회의 어두운 곳의 문제까지 관심 갖는 문제와는 아무 관련이 없음이 나는 슬프다.

이 책의 저자 오창익 씨가 문제를 제기하고 활동하는 분야를 조중동에서는 어떻게 보고 어떻게 평가하며 얼마큼 다루고 있는가?  그 신문을 애독하는 많은 중장년층은 그 신문의 기사를 통해 우리 사회 구석구석의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얼마 전의 용산철거민 학살 사건을 보는 시각도 자신이 보는 신문의 시각과  동일하다. 사실을 보는 왜곡된 시각도 동일하다.

과연 이 책을 보는 내 이웃의 시각은 어떠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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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마키아벨리 군주론 서울대 선정 만화 인문고전 50선 1
윤원근 지음, 조진옥 그림, 손영운 감수 / 주니어김영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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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 파주 출판단지에서 북쇼가 열리고 있다.

아마 다음 주면 모든 행사가 마무리 될 것 같다.

이 책은 지난 10월 18일 `무박2일 12시간 책읽기` 행사의 한부분인 `저자와의 대화`시간에 읽고 토론한 책이다.

행사 일주일전에 이 책과 다른 한권의 군주론 책을 읽고, 당일 저자이신 윤원근 박사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군주론에 대한 저자의 친절한 요약과 부연설명은 군주론에 대한 완벽한 강의였다. 그러나 내가 직접 저자에게 지적했지만 이 책은 만화지만 쉽게 읽혀지지 않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쉬운 텍스트를 어지럽게 늘어놓은 것 같다.

군주론 자체의 난이도는 중학 고학년에서 고등학생 수준이면 쉽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다.

참고로 서해문집과 까치출판사에서 나온 군주론이 그중 가장 쉽고, 친절한 설명이 장점이다. 이 책은 어려운 고전을 만화로 쉽게 접근한다는 의도에도 불구하고 쉬운 책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불평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또한 고전의 번역이나 평역 등은 전공자나 해당과목 전문가 하는 것이 권위가 있을 뿐만 아니라 텍스트의 해석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인데, 김영사의 만화고전 시리즈는 해당 전문가의 글쓰기나 전문가의 감수 등이 보이지 않는다.

어려운 고전을 쉽게 읽히게 하겠다는 의지는 가상하지만 만화 고전을 읽고 나서 어려운 원전을 읽으며 진정한 고전을 대하는 사람이 얼마나 나올지 의문이다. 요즘 같이 책 안 읽는 세상에서 말이다.

고전에 쉽게 접근하는 책을 내놓았다면 원전에 대한 출판에도 책임을 다하는 게 출판사의 도리가 아닐까 한다.

김영사의 고전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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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 2009-07-06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으음
공감합니다...
 
군주론 - 가장 정직한 정치 교과서 서해클래식 5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신재일 옮김 / 서해문집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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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서가에 꽂아두고 언젠가 읽혀지기를 이 책을 바라볼 때마다 희망 했었다.

이 책을 얻었던 지난봄 積書勝金이라는 글로 사인을 해주셨던 서해문집 김흥식 사장님의 인문학에 대한 애정과 사인의 의미를 생각했을 땐 積書(책을 읽고 ,책을 쌓고 동시에 지성을 쌓는 것이 진정한 적서인데 나는 단지 이 책을 쌓아 놓았을 뿐이다)에만 치중했던 나의 지적 무능함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김 사장님과 좋은 책을 만들어주신 저자와 편집부직원 여러분께 미안할 뿐이다.

이 책을 어떠한 이유로 최근에 두 번 읽게 되었다.

군주론과 마키아벨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지만 나는 마키와벨리의 시대적인 상황, 다시 말해 이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피렌체와 이탈리아의 역사적 상황에 관점을 두었다.

군주론이란 결국 강력한 외세에 어려움을 격고 있는 시대적 상황을 해결하기위한 마키아벨리의 고뇌의 산물인 것이다.

한 시대를 살았고 국제 정치의 일선에서 고뇌했던 마키아벨리의 깊은 속내를 읽어내곤 군주론과 마키아벨리에게 어떠한 평가를 내리기 보다는 마키와 벨리와 그의 시대를 이해하고 그 역사 속에 나를 대입해보고 상상하고 느끼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

쉬운 필체로 쉽게 읽히게 해준 역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또한 역자도 후기에서 밝힌 바 있지만 쉽게 읽혀지도록 편집에 많은 정성을 들인 편집자들의 노력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생각한다.

고전이란 누구나 읽어야 할 책이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어렵고 시대와 동떨어진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군주론은 읽혀져야 할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지만 지나간 시대와 지금의 정치현실은 군주론으로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오히려 정치권력보다 경제 권력이 맹위를 떨치는 지금의 현실에서 자본권력의 마키아벨리스트적인 면은 군주론에서 배운 것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군주론은 고전이지만 그 책이 읽히는 시대의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신기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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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시대의 기록 1
박원순 지음 / 역사비평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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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12일

“인간의 영혼은 차돌같이 강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질그릇처럼 약하다.”

인간성을 파괴하고 영혼을 파괴하는 고문이 정치권력의 유지를 위해 자행되어 왔고, 지금도 지구 어디에선가 차돌같이 강하던 영혼이 질그릇처럼 산산 조각나 차디찬 시멘트바닥에 뒹굴며 치욕과 굴욕을 당하고 있으리라…….

죽음이 오히려 희망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에 부딪치는 영혼에게 죽음조차 사치일 뿐 그들에겐 허락되지 않는다. 그 고문의 장소를 자백(그들의 각본대로 조작된)없인 살아 나갈 수 없으며, 고문을 당하는 그 순간은 단지 죽음보다 더 무서운 몸서리쳐지는 현재만이 존재할 뿐이다.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무자비하고 무감각한 세상 사람들의 눈먼 냉담함이다.”

예외적인 경우에 ‘한번쯤’ 고문이 용납되고 허용된다면 고문은 점차 일반화되고 말 것이다. 이는 작은 틈새가 발단이되 큰 둑이 붕괴되는 상황과 다름없다. 그러므로 고문은 어떠한 경우에도 허용되거나 정당화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08년 3월13일

그동안 자행되어 왔던 고문의 양상과 피해자들에 대해 읽었다.

"과연 내가 그 고문의 현장에 있었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이 각각의 case를 읽을 때마다 뇌리를 스친다. 그때마다 몸서리를 치며 이러한 잔혹한 짓이 거의 사라졌다고 느끼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면 극심한 공포심에 고개를 절래 흔들고 만다.

꿈에라도 상상하기 싫다……. 아니 이 책을 읽으면서 꿈속에서나마 그런 고문의 현장에 내가 주인공이 되어 있으면 어떡할까 하는 이상한 상상이 계속 나를 괴롭힌다.

나와 동시대에 같은 하늘은 이고 살았던 사람들…….

그들과 내가 처지가 바뀌어 있었다 하더라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었던 암울했던 시대…….

아! 나는 그저 운이 좋았었던 것이란 말인가?

그 시대에 자행되었던 고문이라는 야만적인 폭력이 지금도 그들을 미치게 하고 괴롭게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2008년 3월19일

박원순 변호사의<야만시대의 기록1:아무도 기록하지 않는 역사>를 겨우 끝마쳤다. 여기저기 관심을 쏟다보니 무려 일주일만의 완독이다. 중간에 다른 책에도 관심을 갖다보니 속도가 늦어진 점도 있었고 고문과 인권에 대한 저자의 고견과 인용문들의 내용을 꼭 가슴에 새겨야만 할 것 같아 노트에 남겨놓는 작업을 병행하다보니 늦어진 것 같다.

고문을 방지하고 나아가 없애는 길은 건전한 시민의식으로 무장하고 관심을 갖고 표현하며 행동하는 길밖엔 없는 것 같다. 남의 일이 아닌, 언젠간 나와 내 가족이 말로 표현하기조차도 싫은 "거기"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면 남의 일처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수수방관만 하고 있을 문제가 아닌듯하다.

나는 오늘 당장 고문방지에 대한 시민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것이며 나아가 진정한 인권의 보장과 인권의 신장에 기여할 수 있는 일에 동참할 것이다. 또한 지인들과 가까운 이웃들에게 인권의 고귀함을 알리고, 그러한 일들을 함에 있어 인권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할 수 있는 공부도 병행할 것이다.

이 책의 부제가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 역사>이다. 아무쪼록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역사가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이러한 역작에 리뷰가 적다는 건 많이 읽히지 않았다는 것과는 상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관심조차 없었다면 우리들은 저자에게 미안에게 느껴야 할 것 같다. 물론 고문의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에게도…….

이 글을 쓰는 나는 그 동안 인권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 부끄러웠고, 그 무관심에 치를 떨며 괴로워했을 수많은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바로 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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