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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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방법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백금산 지음 / 부흥과개혁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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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금산 목사님의 책읽기 방법론에 관한 책이다. 그러나 여타의 방법론의 책들과 비교하자면 방법론 자체 보다도 '방법론의 원론'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왜 방법론이 필요한가?' '여러세기에 걸친 명독서가들의 소개와 일례들'이 생각보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책 읽기 방법론에 관한 책을 처음 접하시는 분이라면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책 읽기 방법론에 대한 책은 단연 모티머J 아들러의 책이 유명하다.

벌써 여러 출판사들이 출판했고 그 제목과 분량도 다양하다. 조금 어려운 듯 하나 책읽기 방법론에 관한 이 도서를 능가할 책이 나오는데는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다만 그 내용을 소화하기엔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 백금산 목사님은 본서에서 모티머 J아들러의 독서법을 쉬운 설명으로 일부 소개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백목사님의 책에서 도움을 받은 것은 두 가지이다.

한가지는 제 1장에서 제시했던 독서의 3단계 흐름인데, 책을 읽는 가운데 첫째로 주제와 구조를 파악하라 둘째, 주제를 나의 말로 표현해 보라 셋째, 내용에 대해 찬,반의사를 표시해 보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또 한가지는 '발췌독'으로, 이는 지식과 정보를 얻는데 필요한 독서법인데 내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가 반드시 책 전반에 걸쳐 퍼져있지 않다는데 대한 제안이다. 즉 정보의 핵심은 서론과 결론, 그리고 단락의 처음문장과 마지막 문장에 모여있어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읽어 30%의 시간을 들여 80%의 독서 목적을 달성한다는 지론이다. 평소 첫장부터 마지막장 까지 정독하는게 습관인 내게는 파격적인 방법론으로 다가온다.

독서방법론에 대해 어느정도 지식을 가진 독자가 이 책을 읽는다면 독서 기술에 관한 내용에 집중적인 지식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실망감을 가질 수 있으나 방법론의 근거들, 왜 이러한 방법이 필요한가에 대한 내용과 역사적 인물들의 예와 결과들에 대한 이해는 충분히 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독서 방법론을 다룬 책들은 방법론 자체를 다루다보니 이러한 부분은 미약한점이 없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점은 본서의 장점으로 취급 할만 하다. 방법론 자체로서의 책으로는 모티머 J아들러의 책 '자유인을 위한 책읽기'와 장경철 목사님의 '금방까먹을 것은 읽지도 마라'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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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의 프랑스 미술 기행
이주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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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일간의 유럽미술체험1,2>와 <신화 그림으로 읽기>에서 가족들과의 미술관 기행으로 유명한 그가 혼자 프랑스 미술 기행에 나섰다. 땡이와 방개의 등장이 아쉽기도 하지만, 혼자 나선 그의 행적에 오히려 기대가 되는 것은 왠일일까?

그림은 눈 앞에 보이는 풍경 외에 때론 상상의 표현이기도, 때론 관념의 형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삶이라는 테두리안에 있는 것이기에 비단 허상만은 아닌 듯 싶다. 저자를 통해 우리는 그림을 보게된다. 그러나 그림 이상의 그림을 보게 된다. 그림을 그린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안에 그 옛날의 사람이 부시시 살아 일어나 웃으며 손짓하는 모습을 그가 남긴 그림을 통해 만나게 된다.

그 옛날... 그것도 먼 이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데도 불구하고 이토록 친숙한 이유는 나 역시 사람이기 때문일까? 그림을 그린 사람이 살았던 역사나 화풍, 뒷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있음직한 것들에 이국의 향기를 고향의 그것으로 환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저자를 따라 이곳저곳 예술의 향취를 맡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나의 주변을 돌아 보았다.

바쁜 일상 가운데 쉬 지나쳤던 내 삶의 작은 광경들도 이처럼 그림으로 표현되어 옛 사람의 해석이 달린다면, 이처럼 하나의 예술적 가치가 있는 그런 것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주위의 작은 것들이 문득 범상치 않게 보인다. 익숙한 것은, 소홀하게 되고, 소홀한 것은 경멸하게 되는 것이 삶의 양상이라면, 예술의 가치는 그 경멸받고 소홀했던 것들의 가치를 되살려 돌려주는데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예술은 삶의 부활이다.

주로 프랑스에 있는 주요한 미술관을 순례하며, 그 시대의 예술에 대한 회상과 술회이지만, 저자의 예술사에의 회상은 동굴에서 무덤을 아우른다. 책의 마지막 4장은 예술의 성지라 일컫는 파리에 할애한다. 그 중 몽마르트에 얼킨 거장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부분과 도심에 자리잡은 무덤 안에 이미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체취를 맡아보는 장은 매우 인상깊다.

프랑스와 파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인 듯 본서를 읽는 내내 프랑스의 예술적 영감에 흠뻑 젖어 있었다. 땡이와 방개를 두고 먼 나라에 여행길에 올라 일상을 채집해 돌아와 이야기를 들려준 이주헌님께 새삼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이 책을 만나게 되는 모든 분들이 일상의 가치를 되돌려 받아 부요함을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매 장이 시작될 때 마다 우편 위 작은 귀퉁이에 프랑스 지도와 지나온 여정을 그려놓아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저자는 방문한 지역의 미술관 뿐 아니라 주변 경관이 사진이나 약도 풍토까지 설명이 곁들어 그 그림이 제작된 배경을 더더욱 잘 설명해 주는 효과가 있었다.

간혹 장 말미에 추가로 미술관 소개와 그곳에 소장되어있는 작품 소개는 서문에서 언급한대로 저자가 계획한 저술계획이 달성되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인 듯 싶다. 미지의 것은 또한 매력인지라 그리 불만스럽지 않다. 각 장 말미에 방문했던 미술관의 관람 메모는 훗날 방문하게 될지도 모르는 독자에 대한 저자의 자상한 배려인 듯 싶다.

책을 덮을 때 19세기 인상주의 시절의 프랑스가 생생히 포착되어 있다는 공쿠르 형제의 글 일부인 “ 우리는 그 날을, 그 햇살을 즐겼다 ”는 말이 와 닿았다. 정말이지 19세기 프랑스의 날들과 햇살을 풍성하고도 만족스럽게 맛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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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기독교 사상가 10인
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 IVP / 199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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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제목처럼 위대한 사상가의 생애를 관찰하고 독자에게 그로인한 감동을 주기위한
책은 아니다. 그러한 도서 역시 우리에게 중요하고 필요하다. 우리는 신앙위인 전기를 통해 도전을 받고, 신앙적 유산을 물려받아야 하지만, 본서의 유익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또 다른 유익이 준비되어 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지만, 신앙의 여러 가지 문제에 관하여 무조건 믿기보다는 우리의 이성이 설명을 요구하는 순간에 때론 직면하게 된다. 우리 자신들이 특별한 의구심 없이 믿었더라도 후배들이나 초신자들로부터 질문을 받게되는 경우도 물론 있다.

우리가 갖게 되는 그러한 신앙적 혹은 신학적 질문들은 이전에 한 번도 제기된 일이 없는 질문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지난 2천년간의 기독교사상사에 있어 제기되었던 경우가 더욱 많다. 그 중 기독교의 중심 교리에 해당되는 질문들은 우리의 신앙의 기초에 속하는 것들이므로 이를 명확히 해 주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위해 아주 중요한 일이다. 본서에 언급된 10명의 신학자이자 신앙인들은 기독교 역사상 기독교의 진리를 수호하는데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했을 뿐 아니라, 그 과정 가운데 진리를 위협하는 무리들에게 훌륭한 논증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독자는 본서에서 신앙의 위대한 10명의 선조들이 역사속에 제기되었던 기독교의 중심교리에 해당하는 중요한 질문에 탁월한 논증과 설명을 남겨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는 곧 우리 자신의 신앙을 탄탄히 하는 것일 뿐 아니라 누군가 진리를 위협하는 공격을 가해올 때, 진리를 수호하는데도 유용하게 발휘되리라 믿는다.

우리가 진리를 믿는다면 그것을 전하게 되며, 이에따라 진리를 수호하고 설명할 입장에 곧 직면하게 될 것이다.- 신앙공동체 안에서 제기되는 토의 속에서 “내 소견으로는” 이라고 말하기보다 “루터에 의하면 ”혹은 “칼빈에 의하면 그러한 문제는 이렇게 설명되어 논쟁을 종식시켰노라” 하는 언급이 훨씬 신뢰감있고, 시간낭비를 막아줄 수 있을 것이다.

1∼6장은 논의 되었던 질문과 답의 형식이 뚜렷한 반면, 7장 이후로는 논쟁점보다는 그 장의 신앙인물의 주된 사상에 대한 서술이나 설명의 형식이다. 형식이야 어떻든 이 또한 우리가 가져볼 수 있는 의문들에 대해 훌륭한 설명 되리라 믿는다.

저자가 서문에서 명시한대로 <본서의 목적은> :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속적인 유용성을 가진 몇가지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자료들을 일반에게 알리는데 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겨냥한 독자층은 신학자 지망생 및 자신의 신앙을 더 깊이 이해하고 기독교 사상의 몇가지 주요영역을 숙고해 보고자 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내용은 결코 난삽하지 않고, 간단,명료 하다. 내용도 어렵지 않다.

이렇게 책을 쓸 수 있는 것은 저자 맥그래스의 탁월한 점이리라. 오히려 독자는 이 책을 읽고 각 인물들과 해당 주제에 대해 더 연구해보고 싶은 충동을 가질 것이다. 이러항 지적 자극 또한 저자의 목적인든 싶다. 건물을 세울 때 콘크리트 안에 철근을 넣으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강하게 된다. 우리는 체계적인 신앙적 지식을 통해서 성경의 진리와 우리의 신앙을 보다 견고하게 다져나가게 될 것이다.

저자에 대한 소개를 하자면, <알리스터 맥그레스>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의 대표자로 명성을 공고히 하고 있는 분으로 현재 옥스퍼드 신학부의 교수로써 재직하고 있으며, 크리스쳔 투데이에서도 저작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다양한 신학적 저술과 논문을 출판해 오고 있으며,칼 바르트 이후 금세기 최대의 기독교 신학자로서의 자리를 굳히게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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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
달라스 윌라드 지음, 윤종석 옮김 / IVP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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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만난 체험을 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곤 한다. 그것은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잘 알고 있는 누군가가 나의 뒤에서 내 전존재를 살며시 안아오는 것과 흡사한 느낌이었다. 나의 전존재가 그것을 지각했지만, 그가‘ 뒤에서’나를 안으셨기 때문에‘만남’이후로 나는 더더욱 그분을 가까이 만나고자 하는 갈망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되었던 것 같다.

더욱 가까운 하나님과의 만남을 추구하면서 항상 중심에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분의 ‘음성’에 관한 것이었다. 성서의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은 분명 그 분과 대화적 관계에 놓여 있었고, 우리 주님도 분명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요10:27)’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이미 그분의 음성에 대한 체험과 과정 가운데 있는 가운데서도 계속될 만큼 분명 쉽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달라스 윌라드의 「하나님의 음성」은 내게 그 분의 음성 앞에 성큼 다가설 수 있게 해 주었다.

저자는 본서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의 전반을 폭넓고도 깊이 있게 다루어 주고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고 마음깊이 동의했던 부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이란, 음성자체를 추구하기 이전에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와 교제 안에 놓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삶의 여정 가운데 우리는 많은 선택을 해야하고, 그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한 부담 가운데 우리는 안전과 성공을 보장받고자 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품게 되는데, 그러한 목적으로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구하는 것은 점장이에게 가서 묻는 것과 크게 다를바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간다는 틀 안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말은 매우 중요한 지적인 것 같다. 하나님의 음성이 초신자들보다 신앙적 성숙의 토대가 견실한 사람들에게 잘 들려진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1:1). 하나님의 존재방식을 우리는 다 알 수 없으나 우리에게 계시된 바로는 그가 다양한 형태 중 <말씀의 형태>로 존재하시기도 하신다는 것이다. 말씀은 기록된 형태 외에도 ‘음성’으로 들려올 수 있다. 출애굽기 19장9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은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음성 아닌 다른 것으로도 말씀하시기도 하신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저자는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음성으로 소통하는 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잊지 않는데,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심과 그 분과의 교제의 풍성함을 <음성>이라는 것에 제한하는 오류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 같다.

8장으로 본서는 끝이 날 수 있음에도 저자는 9장을 구성하여 정리와 당부에 해당하는 점검을 잊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그 분과의 사랑의 관계 안에서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며,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진실로 그렇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안에 거하는 삶이 청각으로 듣는 그 분의 음성보다 더더욱 확실한 또 다른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 가운데 거하는 성숙한 신앙 안에서 그 분의 뜻을 분별하고 그 음성을 듣는 것만이 전부라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삶에 말씀하고 계시며, 하나님 자신과 그 분의 음성이 별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저자가 본서를 저술 목적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워야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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