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의 첫눈이 내리고있다.

지금 시각 12월 4일 새벽 03시 02분  ... 나는 새벽을 깨우고 있다.

 

 

간밤에 내 사랑하는 가족들과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또 먹는 것이지만 삼겹살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아니하고 참으로 최고 음식이다.

사랑하는 내 아내는 항상 준비가 대단하다. 

나는 마늘에고추, 상추면 된다고 우기지만 아내는 항상 버섯, 솔 ( 부추라고도 한다.) 여러 갖은 야채를 많이도 준비한다.  이렇게 준비를 많이해서 먹어야 맛이 더 좋다고 한다.  이렇게 음식 잘 하는 아내를 만난 것은 내 생애의 최고의 선물이다....

꼼꼼한 아내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털털한 나는 힘으로 하는 불판이며 휴대용버너, 삼겹살 먹을 준비를 한다.  결코 부드러운 그릇이며 세심한 것은 나를 시키지 않는다. 다 깨 먹는다고...

한가지...  소주는 항상 한병 냉동실에 넣어놓는다. ( 살짝 김이 서리 내린 것처럼 얼린 소주가 제 맛이다.)

 두 아들들의 먹성은 참으로 좋다. 음료수도 흘려가며 아내의 잔소리도 들어가며 밤이 깊어가면서,시끌 법석한 소리가 집안을 울려도 그래도 삼겹살은 하염없이 잘도 익는다.

예전에는 바짝 익힌 살짝 탄 삼겹살이 좋았는데 지금은 부드러운 삼겹살이 참으로 좋다.

상추를 펴서 먼저 밥을 넣고 삼겹살을 올리고 쌈장을 넣은 다음 마늘과 고추를 넣는다.

소주 한잔을 입안에 털어 넣은후...   "  캬~    "  를 꼭 한 번 한다.    이 소리가 나야  맛이 더나지...그리고 삼겹살을 먹으면 그 맛은 임금의 수랏상보다 더한 맛을 준다.

아내와 한잔 건배를 한후 두 아들의 먹는 모습을 보면 잘도 먹는다... 그래 내가 열심히 살아야 겠구나.  저놈들 입안에 저 맛나게 먹는 삼겹살을 먹게 해 주려면 열심히 돈을 벌어야 겠구나.... 하는 경각심도 생긴다...

 

삼겹살을 먹으면서 두런두런 아내와 세상사는 이야기 또는 요즘의 나의 일과 근황도 솔직히 일러둔다.

세상에서 가장 나를 위로해주고 알아주는 나의 소중한 사람과의 대화는 삶의 최고의 할력소이다.

가족은 내가 살아가는 최고의 희망이고 행복의 처음이다.

가족 ....

세상에서 가장 긴 끈이다.  내가 살아가고 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나 혼자만의 삶이 었다면 나는 이렇듯 세상을 열심히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내에게는평생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 못난 나에게 와서 온갖 고생에 듬직한 아들 둘 낳아주고 맛있는 음식을 해 주는 아내는 나의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소주 한 병을 비운후 아내와 맥주로 입가심을 하면서 마무리를 짓는다. 두 아들놈들은 연신 장난이다.

나는 슬슬 취기가 올라오면서 눈이 졸리다.  오늘은 토요일.. 참으로 추운 날이었지.... 그리고 나는 아홉시도 못 되어서 일찍 잠이 든다..... 쿨쿨쿨 ...

행복은 이런 것이다.........   항상 잔잔하고 내곁에 미소를 짓는다...

 

깨었다....  아침인줄 알았다.   새벽 2시 30분 여분 ...

아내는 그때까지 잠도 안자고 내가 빌려온 톰크루즈의 우주전쟁을 보고 있다.

이 사람이 시간이 몇시인데 안자고 있냐니  오늘이 토요일이고 내일 애들 학교도 안가고  지금 창박에 첫눈이 온다고 한다.

뭐야 ... 나는 커튼을 젖혔다.   참말로 첫 눈이 소복이 온 세상을 덮쳤다.  아니 다 흰 것으로 만들었다.

나는 옷을 챙겨 입었다.

아내가 한 마디한다.  자기하고 나하고 바뀌었단다.  자기는 눈오면 눈 치우고 길 미끄러워서 여러가지로 싫은데 여자처럼 저리 눈 좋아한다고 한마디 한다.

이 사람아  첫눈 오는데 여자고 남자고 어디가 있어 ....   얼마나 좋아  나는 한 마디하고 나와 본다.

정말로 아름답게도 눈이 온 세상을 다 덮어버렸다.

참으로 이 아름다운 세상이구나...  그런데 왜들 아웅다웅 힘들게들 살아가는지.....

하얀눈을 하나 뭉쳐서 저기 나무에 던져보았다. 단 한 번에 명중이다.

저기 오르막에 차 한대가 미끄러워서 올라가지를 못하고 몇번을 오르락 내리락하다가 아예 멈추어섰다.   헛웃음이 나오고 잘 올라가기를 기도해본다.

아 그랬지 ....  그날도 이렇게 첫눈이 내렸지....

 

 

나는 또 내 열아홉살의 기억, 1989년의 기억속으로 또 떠나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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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항상 여행을 떠나는 느낌을 주고는 한다.

덜컹덜컹 소리도 좋지만 통로를 지나는 곳에서의 밖의 풍경은 웬지 영화 인 듯한 느낌도 준다.

담배를 한대 피워물고 후~  하고 내뿜으면 그 담배냄새 마저도  운치를 전하는 느낌이다.

통로사이로 삶은 달걀있어요,  음료수 있어요, 시원한 맥주도 있어요~   하고 감정이 없는 듯한 아저씨의 말에는 기차에서만 볼 수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돈이 없다.   그나마 내 몸엔 동전 몇닢도 되지 않는다.

생각이 교차한다.  이리에 내려서 친구들에게 소주도 한잔 사 달라고 하고 차비도 신세지어 내일 다시 인천으로 올라갈까?    아니면 무작정 서울까지 가 버릴까?    친구들에게 다시 찾아가서 신세를 진다는 것은 쪽 팔리겠지....    아니야... 친구 좋다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차피 서울에 도착해도 열 두시가 넘을 것 같다.

서울에서 인천가는 전철이 끊기면 어느곳에서 밤을 세운다는 말이냐...  시간도 어중중 한대..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돈이 없음이다.   없는 탓이다.  아니 무능하고 준비하지 못한 나의 탓이다.

일단 잠을 한숨 청하자....   얼마후에 긴장한 탓인지 깨었다..

검표원들이 가끔 확인을 하고도 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리역을 10여분 남겨두고 있다고 한다.

무려 3시간 가까이를 온셈이다.  시간은 어느 덧 저녁 9시를 다 된 것 같다.

결단을 내렸다..   무조건 가고 보자.  쪽 팔리게 신세를 지기도 뭐하고 전철이 끊길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자리를 내어 주어야한다.  나이 지긋한 분이 한분 앉으신다. 나는 이제 자리가 없는 신세 ... 

담배를 피워 물었다.

올라가 보자...  기차값은 이리까지 이지만 서울역에서 어떻게 말로 떼우든 아님 담을 뛰어넘든 인천으로만 가자   그 생각 뿐이었다.    서서 가는 시간은 길고도 지루하다.

담배도 피워보고 창박을 아무리 쳐다보아도 더딘 시간은 멈추어 버린 듯 하다.

쪼그려도 앉아보고 서있기도 해 보고 이런 저런 자세로 있다 보니 몸의 피곤이 더 찾아온다.

검표원들의 눈도 피해보고 쪼그려 잠도 살짝 청해보고 서울로 가는 길은 피곤하구나.

친구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자식 차비좀 넉넉히 좀 주지...

아니 내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 그리 생각이 짧다는 말이냐...  비상금이라는 것도 모른다는 말이냐...   그렇게 기차는 나의 의지와는 아는지 모르는지 하염없이 가고만 있다.

삶은 판단의 연속이다. 생각의 차이가 나를 키우고 작게도 만든다.어떤 판단을 하든지 나홀로 책임을 지어야한다.

 

어느덧 기차는 서울에 진입하여 용산역을 다다르게 된다.

시간은 12시를 넘어서있었다.

스산한 날씨에 찬바람이 사정없이 불어오고 있었다.

기차를 많이 타보진 않았지만 웬지 플랫홈에서 더한 바람이고 낯선곳에서의 추위는 더욱 살을 에는 듯하다.   사람들이 종종 걸음으로 모두들 개찰구를 나가고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무리들과 떨어져서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에 잠겨본다.

표받는 아저씨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여 사정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하고 정문으로 나가야하나... 아니면  저 내 키보다도  2배는 훨씬 높아 보이는 저 방호벽을 넘어서 몰래 월담을 하여야하나 ..   월담하나는 자신이 있지를 않는가?  철 구조물 사이사이를 건너서 높겠지만 다리 조심하고 펄쩍 뛰면 그만이 아닌가? 

 

여러 생각에 잠기는 순간 사람들은 어느새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결정을 내렸다.

개구멍을 통과하느니 당당하게 걸어나가자...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고 이해를 구하여 정중히 사과하자..  도망치고 내 앞의 현실을 대충 살지는 말자..

 

모든 사람들이 다 나간다음 나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몇분에 걸쳐서 상황 설명과 사정을 이야기하니 아저씨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면서 웃으며 나를 내보내 주셨다.

드디어 나는 서울에 온것이었다.

뛰어서 전철역으로 가보니 20여분 전에 막차는 끊어지고 말았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1시가 다 되어가고 나는 일단 용산역광장에 우뚝 선채 갈피를 잡지를 못하고 있다.

 

배가 무지하게 고팠다.

한끼만 걸러도 죽을 것 같은 내 위장은 나를 많이도 원망하는 듯 꼬르륵 소리가 났고 호주머니에는 채 200원도 안되는 동전 몇개만 있을 뿐이다. 담배도 열차에서 많이도 피워대어서 몇가피 남지도 않았다.

내 몰골이 한심해 보였다.

겉은 겉멋만 잔득 들어서 정장에 바바리코트 까지 입고 머리는 무스까지 발랐지만 나는 빛좋은 개살구 아닌가?     

저기 포장마차에 들러서 우동 한그릇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몇천원만 있어도 저기 심야 만화방이라도 가서 대충 시간을 보내어 잠든후 첫차를 타면 될텐데 나는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를 않는구나..

여관 아닌 여인숙에 갈돈도 없었다. 택시를 타기에는 너무도 비싼 요금이었다.

정글의 세계에서 나는 기본을 가지지 못한 존재가 되었다.  돈은 약속아닌가?  내가 행하고 그 것을 취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힘을 나는 잃었다... 

 

서울에 아는이도 특별히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 댓가를 치루어야만 한다....  그렇구나  댓가를 치루어야지.

저 네온사이 반짝이는 그 어떤 곳에서 나를 반기고 내가 반기면서 들어갈 곳이 없다면 나는 움추리고 이 새벽을 보내어야겠지...

용산역안으로 들어갔다. 그리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쾌 사람이 된다.

오늘 밤은 여기서 보내야 하는 구나   그래 4시간 정도만 버티자.  첫차를 타고 인천으로 가는 것이다.

그 많은 시간중에서 겨우 4시간 아니냐...  난방시설이 되어있지만 추워 얼어죽을 정도도 아니고 참을만 하지도 않느냐...  담배를 한대 피워 물었다. 

참으로 한심한 내 자신이다.  어떻게든 되겠지가 이런 결과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 많은 삶중에서 이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따뜻한 곳도 저리도 많은데 이렇듯 초라하게 있는 것은 또 무엇이냐...   얼마나 무능력하느냐...

친구가 많이도 원망도 들었다.   자식 매정한 놈 차비줄 것이면 돈 만원 더 주었으면 이리 고생은 안하지 .. 친구를 이렇게까지 거지로 만들어서 이리 고생을 시켜야하느냐....

아니다  아니다....  다 못난 내 탓이다.  사람이란 최선의 비상금은 챙겨서 유사시를 대비하여야지 그 많던 돈 친구들과 술 퍼마시다가 다 쓴 나의 탓이다.

돈은 있고 보아야 한다.  여유있게 있어 보아야 한다. 남들도 똑같은 사람이다. 나라도 그리 되지 마라는 법은 그 어느곳에도 없다. 써보고 나서 있는 놈들을 이야기 해 보아야 한다 ?

 ( 아니다 !  있는 놈들이라고 하면 안된다.  있는 분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다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지독히 고생하여 부자가 됐는데 누가 나보고 있는 놈이라고 하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나...)

고생 단단히 해 보아야  다시는 이리 못난 꼴 안 보이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를 맴돌았다.

 

어른들이 그랬던가?

추운 겨울 날에는 뱃속이 허하면 안된다.  따뜻한 국물 챙겨먹고 밥 많이 묵고 다녀라...

다른 것은 다 참겠다. 하지만 이 배고픈 이 속만큼은 참지를 못하겠다.

새벽 2시가 넘고 역안은 난방시설이 없어서 을시년 스럽게도 더욱 추워졌다.

오리털 파카를 단단이도 껴입은 저 아저씨가 너무도 부럽다.

가까이에 웬 게슴치리한 눈빛을 한 아줌마가 나에게 슬며서 다가와서 조용이 이야기한다.

총각 놀다 가지 않을라우?  뭘 놀다가라는 이야기 인가?

남의 속도 모르고 염장을 지르고 있구나....   아줌마 됐어요...

인상을 팍섰다....   한시간후 또 다른 아줌마가 연애나 한번 하고 가라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이렇듯 더디게 간적이 없는 듯하다.  의자에 앉아있다가 추어서 서서 걷기도해보고 앉앗다 일어섰다  해보았지만 정말 시간은 멈추어 버린듯 하다.

마지막으로 피워버린 담배도 이제는 다 떨어졌다. 

새벽 3시를 넘어섰지만 아직도 2시간은 더 버텨내야 한다는 말인가?

옛일들을 생각도 해보고 여러 잡념의 생각에 생각을 또 하고 해 보았다.

잠을 청해 보려고 눈을 감고 아무리 있어도 추위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갈 수록 느쪄지는 것은 정말로 배가 고프다...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육개장이나 해장국을 한그릇만 먹었으면 어린놈이지만 소주도 한잔만 했으면 ...  상상 속에서 나는 몇그릇을 먹었고 몇병을 비워됐는지 알 수가 없다.

새벽 4시가 넘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저기 아저씨에게 용기를 내어서 담배한가피를 얻어서 피웠다...  정말 꿀 맛 이었다.    이 추운 날씨에 이것도 불이라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까지 필터까지 피운 듯하다.

이제 한시간만 더 버티면 된다.   한시간이다.  한시간이면 된다.....

 

그렇게 버티어서 나는 5시 20분 첫차 인천행전철에 올랐다.

차비도 없었고 차표도 없었기에 그냥 뛰어넘었다.   죄책감도 들지 않았고 미안함이나 남의 시선따위는 두려운 마음이 없었다. 누가 왜 무임승차 하냐고 묻는다 해도 이제는 모든 것에 지쳤다.

전철안은 너무도 따뜻했다.   이렇듯 따뜻한 곳은 어머니 품속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살았다.... 나는 이제 살았다...   정말 살았다...  이런 생각이 너무도 들었다.

전철안에서 바라본 세상풍경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아 !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동인천역에 도착하였다.

누가 보건 말건 또 넘었다.   광장에 나오니 사람들도 없었고 아직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아 참  택시비도 없지... 택시로 20분은 족히 가는 하는 길이었다.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할 수도 없다.  그래 걸어가자 ..  이제까지도 왔지 않느냐...

걸으면 한시간 조금 더 걸리지 않겠나.... 무작정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참으로 내 자신이 너무도 한심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상 가상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 수가....

세상에 하얀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방울, 한방울 정말로 하늘에서 구멍이 난 것처럼 펑펑 너무도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낭만도 잠시 눈과 바람에 얼마나 심하고 세차게 내리는지 앞을 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눈과 추위와 바람에 아 !  얼어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이어지는 이런 고통에 눈물이 날 것 같다.  아니 흘리고 싶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 걸은지 30분 만에 마지막 용기를 내어서 택시를 잡아탔다. 진작에 탈 것을 ...

아저씨에게 사정얘기를 하고 회사기숙사에서 돈을 가져다 드리고 1000원 더 드린다고 했더니 아저씨 참으로 친절도 하다.   나는 그리도 열심히도 걸었던 그 길을 택시는 무슨 타임머신 이라도 되는 것처럼 금새 10분 만에 회사에 도착하였다.

자는 친구놈 깨워서 돈을 빌려서 택시비를 주었다. 

아직 어두운 시간 아침 7시가 되지 않은 아침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밤의 새벽이었고 긴하루 였다.

 

판단의 미숙으로 생긴 나의 시간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가 만들어낸 나의 불찰이었다.

돈이라는 생활의 일부를 무시한 극악한 처방이었다.  누구도 원망 할 수가 없는 시간의 다툼이었다.

나는 제대로 돈의 위력을 실감하였고 없음에 대한 고통의 댓가를 치루어낸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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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의 자서전을 읽는 것은 가을 날 빨갛게 잘 익은 감을 먹는 느낌이다.  봄,여름,가을의 햇살을 다 이겨내고 늦가을에 잘 익은 감은 먹는 즐거움도 한 몫 하지만 보는 즐거움이 더 하다.  나에게 성공한 사람의 자서전은 이런 행복한 즐거움의 하나이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정말 인간만이 누리고 취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즐거운 일이다.

외롭고 힘든 순간에 삶을 이겨낸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훌륭한 비타민이다. 간단하지 않은가? 보통사람인 저 사람도 해냈는데 내가 못해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성공한 국내 ceo들의 이야기는 제대로 된 감을 보고 먹는 일이다. 대필이건 자신이 쓴 책이건 잔잔한 감동과 배움의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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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

형은 언제나 말보다 행동이라는 실천으로 모든것을 보여주었다.

 

형은 무엇을 하던  한번시작을 하면 끝장을 보는 성미이다.
길이 아니면 절대 그길을 가지않았고, 그길이 옳은 길이고 꼭 목적을 달성해야하는일이라면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형만의 원칙을 지켰다.

 

장기,바둑, 테니스,배구,펜글씨, 볼링,지금은 골프 같던데...
내가 어릴적부터 보아오던것이 여러가지인데, 이것을 자기것으로 만드는 그방법들이
나에겐 큰의미로 다가왔다. 
먼저 어떤시작을 하던지  항상 이론에 심취를한다.

원리를 아는것과 이것이 나에게 오는 가장 효과적이면서,빨리 갈수있는길이 무엇인가에
부단한노력을 한다.

스폰지가 물을 흠뻑 흡수하듯이 기본기가 되는 서적과 이론에 풍부한것들을 섭취한다음이어서 실전에 들어간다.

손에 굳운살이 박히고, 몸에 통증을 곳곳에 유발할만큼 형자신을 하고있는 분야에
몸으로써 각인을 시킨다.
그리고 언제나 배우는것에 주저하지않는다.
형보다 나은 사람이라면 나이를 불문하고,머리숙여 배우기를 주저하지않으며
항상 겸손했다...배우는 자세에서 항상 겸손했다.
그리고 또 그가르침에 대한 행동을 몸으로써 머리를 쓰면서 실천으로 몸에 흡수를한다.

 

언젠가 형이 볼링을 배울때였다.
볼링을 시작한지도 1년이 넘었을때인데도 항상 파스냄새가 진동을 했다.
어깨에다가 파스를붙이고, 팔에는 얼음찜질하면서도 비디오를 보면서 선수들의 연습장면을 보는것이었다.

형자신이했던 연습경기를 보면서 무어라 무어라 궁시렁 대면서 항상 홀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또 볼링장으로 가는것이다.
그렇게 파스붙이고 ,얼음찜질하면서도 아프다 아프다 하면서도 뭐가 그리좋은지

항상 볼링장에가서 밤새껏 볼링하고 새벽 몃시간자고 출근하는 형를 보곤 이런생각이들었다...  미쳤구만 !!  미쳤어..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저렇게까지 하고싶을까?
볼링공이 상당히 무겁더구만 ... 미쳤어  볼링에 달쳤어..
나는 이런생각이 들지않을수밖에 없었다.
몇년을 그렇게 다니더니 그 볼링장에서 형수님 만나서 결혼했으니 그것도 참 ...

 나는 그때는 그런열정을 이해를 하지못했다.
세상을 살아가매  어느정도만 하면됐지, 그렇게 까지 해야하나 하고 이해를 하지못했다.
뭐 둥글둥글 좋은게 좋은거라고 그렇게 살면 되지않겠나 하는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언제가인가부터 그것은 절대로 아니다.
프로는 자기자신 스스로를 절대로 안일하게 내버려두지않는다.
벼랑끝에 나를 세우든지 아니면 더이상 갈수없는, 뒤돌아서면 도저히 빠져나올수없는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그때가 가장 아름답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시작했으면 결코 포기하지 않는삶!
가야할 길이 있는데도, 오늘하루만 쉬어가고 내일 서서히 가자... 하는 내자신을
내스승 형처럼  강하게 나도 가고싶다.
내가하는 이사업분야에서 완전한 프로가 될수없다면 그 프로가 되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도전하고싶다 ..  


오늘 이순간 , 그리고 지금 바로...
나는 일에 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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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가을이 깊어 가고 있습니다.

몇일전 달력을 보다가 깜짝 놀랬습니다.

하는 일이 일요일, 휴일도 없는 지라 아침 일찍 나서서 저녁늦게 들어오는 일을 하는 지라 달력 볼 일이 있어도 심각하게 보지를 않았는데 오늘 문득 달력을 보다가 세상에 겨우 올 한해가 두달 정도 밖에 안남았다는 것을 알고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솔직히 나이가 먹는 다는 것이 그리 두려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이라는 것도 이제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60대의 젊은이가 있고 20대의 노인이 있다는 말은 참으로 유쾌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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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제 마음속에 계시는 분이라 동경하고 존경하지만, 속에 있는 마음으로만 그치지않고 마음으로 표현하고자 용기를 내어 편지를  보냅니다.

항상 바쁘신 분이시라 이 글을 읽어볼 시간이 허락하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편지라 함은 답장을 받고자 아님이 아닌, 자의에 의한 글이기에 쓰는 그 자체에 의미로 답장을 꼭 받아야 한다는 전제로 편지를 보내는 것은 아니니 부담 갖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짝사랑과 비슷하죠.

내가 그사람을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해 줄 것이라 생각해서는 부담이 갈 수가 있습니다.

 

저는 가까운 안양에 있는 그랜드슬램을 꼭 이루고 픈 이경상이라고 합니다.

 

그저 선배님의 글을 아끼고 사랑하며 실천하고픈 마음을 가진 보통사람입니다.

고마움을 마음속으로만 간직하는 것보다 글로 표현하여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서 이렇게 편지를 하는 것이지요. 

책을 읽는 다는 것, 독서라 함은 저자와의 진지한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점에서 저는 선배님께 너무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표현하는 사랑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그저 마음속에 있는 천가지 마음보다는 한 번의 실천을 지향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선배님의 글을 읽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속의 제 마음의 동경과 흠모의 대상이신 선배님께 글을 올려보자.

 

답장이 없는 편지일지라도 그저 이제까지의 가르침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여보자 ...

편지보내는 이 순간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좋은가?  학창시절 연애편지를 보내는 이 기분만으로도 얼마나 제자신에게 존중감을  느끼게하는가?  

그저 이런 기분만으로도 마음이 잔잔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많은 독자들이 선배님의 글속에서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었고 저 또한 큰 힘과 용기를 내었습니다.

애국이라는 것 또한, 사회봉사라는 것 또한,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님을 느꼈습니다. 자신이 가진 생각과 마음을 글이라는 유기체로 표현하여 글을 읽고 변화하고 그 변화에 실천이라는 가속도를 붙여서 무언언가에 정진한다면 무엇이 되도 일가를 이루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알고 있는 것을 깨우쳐주시는 선배님의 글을 정말 감사히 동경합니다...

 

 

 

편지를  쓰면서 저는  분명히  배우고 있고 또한 성숙하리라 생각합니다.

 

 

겨울밤이 깊어 질 수록 글을 벗삼아 동경하는 분에게 글을 적는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편안한 밤,  깊은 수면 취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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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그렇게 고향을 떠나 전주로 떠나게되었다.
내기억에 많은 짐이아닌 이불보따리와 옷가지가 몇개든 작은 가방하나에...
완행버스 트렁크에 형에짐을 옮겨주었다.
멀리사라져가는 버스를보니  영원히 볼수없을것처럼 마음이 찹찹했다.

 

전주로 상경한 형은 하숙생활형편이 안되니 자취를 하게되었다.
자취방 월세를 아끼기위해서 친구한분과같은방을 쓰면서 그렇게 하나하나 자리를 잡아갔다.
하지만 집에서 도와줄형편이 아니니 형이  처할수있는 방법은 철저한 홀로서기 그것뿐이었다.
자취방월세, 학비,생활비, 여러 들어가는 일상생활비를 형 혼자 극복해나가야했다.
시골집에서 도와줄수있는것은 쌀이며 , 반찬 몇가지일뿐이다.
그래서 시작한 형의 홀로서기방법은 신문배달과 우유배달이었다.
남들처럼 하면 보수가 적기때문에 다른이들보다 더많은 신문과 우유를 돌렸다.
새벽4시부터 몇시간을 그렇게 악착같이 일을 해나갔다.
그리고 학교가 끝난후에는 또다른 아르바이트를 병행해나갔다.

 

신문배달 이라는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나는 새벽에는 안해보고 아침에만 하는신문배달을 5년 가까이 해보았지만
신문배달이라는것이 아침에 하루도 거르지않고 일관성있게하는, 날씨에 많이도 영향을 받는
쉬운일이 아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부나  달린다는것이 운동이 될수는 있으나
운동하고 일하고는 결코 같은 부류는 아닌것같다.

 학교생활은 학교생활데로 공부도 열심히 해야했고 상업고등학교라는 특성상
부기,주산,여러 공부와 학원생활, 그리고 밤이면 아르바이트...
마치면 집으로와 또다른 공부  (공부도 효과적으로 했던것같다. 이마에 흰천을 두르고 책상앞에는 할수있다"하면된다" 여러 글귀가보이고 잠을 깨우려고 바늘이나  여름에는 세수대야에 물가득붓고 발을 담구는등  방학때 형에 자취방을 보면 진풍경이다)도해야했고
새벽이면 신문배달에 밥도 해먹고 또싸가야지 ...내가본형은 항상 바쁘고 시간이없었다.

 그렇게 살아가는 형의 강한 집념과 힘은 대체 어데서 나오는것일까?

하루 3시간이상을 자지 않으면서 학교생활과 생활수단을 병행할수잇는 그강한 , 대체 강해질수있는 힘은 무엇인가?
가까이에서본 형의 가장강한 스승은 책이었다.
누가 가르쳐주지않은 냉정한 세상에서 찿을수있는 가장 큰힘이자 스승은 형에겐 책뿐이었다.  약해지는 마음을 잡기위에서 택한 가장 강한힘...
형은 강해지고저 무수한책을 보았다.
그리고 나에게 항상 하는 말이있고 항상 선물한것은 책이었다.
동생아! 책을 보아라 ... 책속에 길이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도 그렇게 책을 무수히보나보다.
올해목표가 백권인데 벌써 반절은 달성한것같다.

 

형은 책도 가려서 보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읽었던 책이 자기개발 마인드책과 3시간 수면법에 관련된책,
그리고 어려움속에서도 굳세게 살아가 나중에 훗날 꼭 성공한 분들의책을 ...
형이 그당시 선물했던 책중에 대우 김우중회장님에"세계는 넓고 할일은많다"가 가장 기억에남고 지금도 내책장에 소중히 소장하고있다.

 그당시 형이 봤던책들중에 지금도 기억에 남는책은

신념은 마술이다"  "내자신과의 싸움에 강해져라"  "3시간 수면법"
"효과적인 3시간 수면법"  "잠들어있는 나의 죽은 시간들"
여러 책들을 보면서 형이 했던말들은 절대 책은 빌려보지말고 사서봐라.
그리고 집중하고 정독하라!  좋은 책은 한번에 그치지말고 몇번이라도 읽어라.
좋은내용은 몇번이고 되세김하듯 외우듯이 읽어라,, 그리고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라...
나는 지금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어느 한여름밤에 형이 친구분과 하는 얘기를 들은적이있다.
이 내용또한 책에서 인용된이야기다.
내용인즉  세상은 마음먹기에따라서 다할수있다.
문제는 마음가짐이고  철저한 마인드다.
나를 믿지않고 , 내자신을 어떻게 극복하지못하고 세상을 살아간단말인가..미국에서 실험을 했더란다.
밀가루를 조금씩 봉투에담고 10명에게 주었단다.

"이약은 설사약입니다"하고
잠시후 5분이경과하자 10명중 3사람이 화장실로가서 설사를 했더란다.
자신의 마음을 설사약이라고 굳게 믿었기에 몸이 스스로 반응을 한거란다.
기가막히지 않은가?
어떤상황에서도 자신을 굳게믿고 ,그러한 정신으로 살면은 하늘도 나를 도울것이요.
내자신을 사랑하고 나는 할수있다는 신념으로 살겠노라고....
다짐하는 형을 보면 참으로 멋있었다.

 

잊혀지지않는 슬픈일이있다.
인생에서 가장 혈기왕성하고 좋을때가 고등학교때이다.
고등학교의꽃은 수학여행이다.
형은 평소에는 항상 홀로서기를 하였는데 그 수학여행때만은 집에와서 돈얘기를햇다.
자존심이 강한 형이왜그런얘기를 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남들처럼  수학여행만은 부모님에게 뿌듯이받아 다녀오고싶은
소년으로 돌아가고 싶었던것같다.
부모님께서 주시지 못하자 형은 스스로 알아서 하겠노라며 쓸쓸히 전주로향했다.


몇주가 흘러 형은 집에 다녀왔는데 수학여행을 잘다녀왔노라고했다.
철부지동생들은 왜 빈손이냐고 묻자 형은 돈이 없어서 선물은 못사왔다고 미안하다며
다음에는 꼭 사오마 말했다.
그리고 또 몇주가 흘렀는데 우리가족은 형이 수학여행을 가지않은것을 우연히알게되었다.

형은 거짓말을 한것이었다.
어머니께서 왜 그랬냐고 우시면서 묻자 형은 하여야할 공부도 많았고  쉬고싶었노라고 하면서 낮에는 도서관에서 밀린공부하고 밤에는 밀린책을 실컷보아서 좋았다고했다.
잠시동안 우리가족은 말없이 조용해졌다.
나는 느꼈다. 형은 갈수도있었는데 가고도 싶었는데  그수학여행이라는것또한
사치라고 느꼈지않았나 생각이든다. 자기가 처해있는 그현실속에서 분명히 그것또한 사치라고...
그렇게 고교생활은 서서히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한이 되었던지 형은 대학교나 직장생활은 생각도안해보고 접어버리고
돈벌러 군대나 가련다 하고 하사관에 지원하고 입영날짜를 기다리며
여행에관한한책들을 몇권을 구입해 정독하고 계획을 세워 전국일주를 수십일에걸쳐헤냈다...


 나는 어린시절 형이 참으로 무서웠다.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나올것처럼 보였다.
비유가 될련지모르겠지만  쉬리의 최민식의 날카로운눈빛과
최민수의 잔잔하면서도 선이굳은 목소리로 형이 비추어졌다.
유독 바로 밑의 남동생이라서 그런지 형은나에게 신경을 많이도 써주었다.
나는 그런형이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고  결코 잡지못할 거인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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