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오늘 뿐이다.
진정으로 단 오늘 뿐이다.
요즘 내가 내 자신에게 거는 최면이다.
단 오늘 뿐이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 처럼 살자는 결의와 다짐이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고 단 하루도 허투로 살 수 없다는 배수진을 치는 마음이다. 

내가 선택한 직종은 집에 신규아파트에 입주하면 꼭 해야하는 소품중의 하나이다. 치열한 경쟁의 한 직업이다.
벌써 2년차가 다 되어간다. 요 근래 크리스마스,신정 할 거 없이 아침 8시에 출근하여 밤 10-11시까지 일했다.12시를 넘은 적도 없다.
쉬어본 것은 가족들과 같이 나눈 화천 산천어 축제를 제외하고 4개월 사이 하루도 쉬어본 적이 없다.
시간이 없어서 가족을 챙기지 못했다는 것은 핑계다. 바쁘고 시간이 없으니 더 사랑과 정성의 말들을 할 수 밖에 없다.늦은 저녁 가족들에게 나의 솔직한 심정과 상황을 이해와 당부의 말을 건넸다.
1년에 5일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 토,일 주말이 몇 배로 바쁘기에 정말 쉰다는게 너무 힘든 유혹이다.
나도 솔직히 쉬고도 싶고, 놀고도 싶고, 책도 보고 싶고, 잠도 실컷 자고 싶지만 참기로 했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 2개를 지참하고 미쳐보자. 일하다가 죽어보자. 정말 이번이 마지막인 것 처럼 그렇게 한 번 살아보자.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지금 쉴 때가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나온 1년 10개월을 잠시 더듬어 보기로 한다. 영업한 시간을 되돌려보자.
돈은 역시 사람이 벌어 준다. 즉 고객이 벌어준다는 말이다. 그 고객을 어떻게 모셔야 하는가?
감동을 주어야 한다. 어떻게 감동을 주어야 하는가?  내 자신을 먼저 최고의 프로로 만들어 제대로 된 서비스와 어드바이스를 주어야 한다.
서비스는 무엇인가? 서비스는 순간 순간 발휘되는 삶의 자세에서 나오는 진정한 태도다.
세일즈를 위한 태도가 아닌 삶의 진정한 태도, 진정 사람을 겸손히 포근하게 살갑게 하는 하나 하나의 행동들이다. 처음 봤지만 오랜 세월 같이 한 지인처럼 진심어린 마음으로 고객을 대한다면 그 고객은 나를 선택한다. 나를 초이스한다. 나를 초이스한다는 것은 나를 믿고 사줄 만한 신뢰와 인성,그 모든 것에 고객 마음의 빗장을 해제했다는 게다. 나는 닫힌 마음의 거대한 빗장을 열고 당당하게 들어가는 이것이 영업이고 세일즈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 열린 마음으로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화려한 말솜씨와 제품의 장단점, 가격의 메리트도 중요하겠지만 고객을 대하는 진정어린 마음과 태도. 나는 이것이 첫째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영업했다. 정말 참기 힘든 순간도 웃음과 내안의 인내와 배려로 참았다.
그 이후로 돈은 정말 내 뒤에서 서서히 꼬리를 치며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다만 그 꼬리의 종이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지갑으로 옮겨 담았을 뿐이다. 이걸 알기 위해서 지난 십수년을 고생했나 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도 내가 내 자신에게 경계했던 것은 단 한가지였다.
오늘 50만원 벌었건 100만원 벌었건 이것은 내가 운이 좋아서이다. 내일이라고 그리 잘 되라는 법은 없다. 단 오늘 뿐이다. 단 오늘 뿐이다. 단 오늘 하루만 더 열심히 하자. 이제까지 내가 운이 좋아서 좋은 분들을 만나서 잘 된 것이니 겸손하게 단 오늘만 더 열심히 하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단 오늘만 최선의 몇배를 다하자... 이 마음으로 살아온1년 10개월이다. (아니 1년전 이맘때 또 한번 다 잃는 순간도 있었구나.) 다행히 고객에 다른 고객의 소개,소개로 많은 분들을 계약하였고 밤새워 붙인 현수막과 명함, 인터넷 소개글로 전화기는 불이 났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김밥2줄로 배를 채워도 행복했다. 밤 10시가 넘어서 상담과 설치를 마치고 차를 운전해 집으로 오는 데 1월의 엄동설한 창밖의 바람이 너무도 시원했다. 와이셔츠에는 아직도 식지않은 땀들이 마르고 있다. 엄동설한인데 너무도 시원했다. 그래도 잊지않은 것은 감사한 마음을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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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과 지난 삶에 연연하는 것은 과거형인간이다.

이런사람은 절대 발전이 없다. 삶은 현재에 있지만 내일과 미래를 준비해야한다.
과거에 얼마나 큰 시행착오를 했든 성공을 했던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현재에서 어떤 마음과 어떤 자세로 세상에 떳떳이 임하느냐  이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잘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다. 이 잘함과 못함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 했던 실수와 시행착오를 또다시 하는 사람은 발전이 없는 사람이다. 
안 될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안하는 사람은 더 말 할 것도 없는 사람이다.  

남과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철학이 있는 사람은 원칙을 세우는 사람이다.원칙이 있는 사람은 태산같은 자부심과 바다같이 깊은 사람이다.철학은 자신만의 명검이다. 무사는 함부로 칼을 뽑지 않는다. 철학이 있는 사람도 절대 사소한 것에 흔들리지 않는다.

도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도전을 하다보면 부딪혀 몰려오는 응전의 폭풍 또한 있다.
절대 세상에 공짜가 없음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댓가를 치루어내는 사람이 되자.
먼훗날 해보지도 않고 후회하는 사람이 되지말고 피땀을 흘려 무언가 자신에게 떳떳한 그런 사람이 되자.
도전과 응전,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것이 나의 삶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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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는 목표가 뚜렷한 사람이다.

목표가 뚜렷하니 한 시간도 허투로 살 수 없는 사람이다.

거창한 목표도 있고 결코 이루 수 없는 허무맹랑한 목표도 있고 정말 남들이 보기에 하찮은 목표도 잇다.

나는 많은 목표가 있다. 부와 삶, 성공, 이루고 싶은 많은 것들이 드림리스트에 있지만 가장 중요한 목표는 단 3가지이다.

 

1.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거창하게 국가와 인류를 위하여 무언가 거대한 것을 이루겠다는 꿈은 나중이다. 내 가장 소중한 가족과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2. 삶이다. 내가 진정 살고 삶이다. 시간의 구애와 흐름을 차단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을 만드는 장소다.

아내가 항상 말하고는 한다.  참 성격도 특이하고 세상에 별로 없는 사람이다.  생긴 것은 분명히 도시풍으로 생겼다고 하는데 하는 행동이나 말하는 것, 좋아하는 음식보면 영락없는 시골사람이라고...    솔직히 나는 농촌에서 자라서 어려서부터 일하여 온탓인지 정말 시골일 잘 한다.
지게도 잘지고 나무나  온갖 굳일일인 시골일 정말 잘하고 잘 할 자신이 있다.
특히 도끼로 장작 패는 일은 지금도 하고 싶고 밤이 되면 장작불을 지피며 고구마,감자 또는 삼겹살도 구워먹고 싶다.그 온돌에서 푹 자면 참으로 개운할 게다.
땀이 적당히 흐른다. 자면서도 더운 느낌이 드는 그 온돌이 아파트생활하는 요즘에 너무도 그립다.

아침이면 내가 지은 전원주택  (목조건물과 흙으로 진 두채의 집을 지을 것이다.) 에서 새소리 나오는 아침을 맞는다. 아침이슬이 떠있는 산나물이나 직접 재배한 채소를 개울로 가서 씻어낸다.  흙을 씻어내어서 가지런히 소꾸리에 넣어서 가져온다.
군불을 지펴서 오래된 솥에 직접 밥을 지어 먹는다.
누릉지가 나오는 그 밥은 정말 꿀맛이겠다.
내가 직접 만든 탁자에 방금 따온 산나물과 약초, 상추로 아침을 먹는다.  고추장은 순창이나 내가 직접 제조한 것이면 더욱 좋겠지. 녹차를 우려만든 물로 보리차를 대신한다.
점심에는 뒷산에서 칡을 캐어서 즙을 내어 만들어 먹기도 하고 뿌리는 국수를 만드는 것에 쓰기도 한다.

나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제법 쳐놓은 우리에서 오리며 닭도 키워본다.  
사온 돼지는 산속에서 살기에 말 그대로 산돼지가 되는 것이다.  염소도 키워보고 소도, 송아지로 한마리 키워본다.
내가 어릴때 좋아하던 똥개 순종도 한마리 기르고 신풍이와 똑같은 코카스파니엘도 한마리 더 키워본다.

더우면 개울가로 발을 담구어 본다.  발을 담구어도 시원치 않으면 반신욕도 좋겠지.
목침하나 베고 졸리면 자면 그만이다.  자장가는 옆 개울에서 물소리가 자장가인 것이다.
가끔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또한 재미나는 일이다.  사람이 별로 없으니 소음이 조금 커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그리고 깨면 옆에 있는 책 하나를 펼쳐읽는다.
언제든 좋은 글귀는 밑줄을 그어야 하니까 색볼펜이 하나 있으면 그만이다.
독서는 저자와의 진지한 대화라고 했던가.   같이 있으니 나는 혼자가 아닐 것이다.

저녁이면 내가 직접 자르고 도끼질한 참나무나 통나무로 군불을 지피우고 불빛을 본다.
멀리서 소쩍새가 울고 이름모를 새가 우는 것은 같이 있음이 좋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불이 약해져 숯불이 남거든 냉동실에 얼려둔 삼겹살 남은 것을 꺼내게 된다.
오래 묵혀둔 더덕술이면 더 좋고 매실주나 칡술도 관계가 없다.   이리 좋은 곳에 와서 독한 소주를 마실 일은 일년에 얼마 없을 것이다.
달빛이 너무도 좋구나.  별 빛 또한 그려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구나.
신선이 따로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구나.
옛일을 명상 하는 것 또한 그리 나쁠 것도 없다.  어제의 나와 지나온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지를 않은가?   고생하고 힘든 삶은 잘 견디어 준 내 자신을 위하여 건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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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배달을 말하다 무술과쌈박질

2004/08/05 11:57



복사 http://blog.naver.com/nbjs/60004682842









목숨을 걸었던 무술인… ‘바람의 파이터’ 최영의


장남 최광범씨, 아버지의 삶과 무술세계 담은 『This is 최배달』 펴내

“맨손으로 소를 때려잡는 비결은 간단하다. 한 손의 새끼 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으로 턱걸이가 아니라 배꼽걸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파워로 쳐라. 스피드도 중요하다. 아주 추운 날 정권치기를 할 때 주먹이 지나간 선을 따라 하얀 선이 생겨날 만큼의 속도로 쳐라. 그 주먹으로 치면 소는 죽는다!”

17세의 나이에 홀홀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10년 뒤 도쿄무도대회 가라테(空手) 부문에서 우승하고, 극진가라테라는 실전 무술을 창시한 전설적인 무술인 최배달(본명 최영의ㆍ1922~1994). 47마리의 황소와 맨손으로 대결해 4마리를 즉사시키고, 나머지 소들의 뿔을 전부 꺾는 등 초인적인 일화를 남겼던 그의 힘은 과연 어디서 나왔을까? 우리에게 ‘바람의 파이터’란 별칭으로도 친숙한 최배달 무술의 근원을 아들 최광범(30) 씨가 속속들이 파고들었다.
“아버지는 최강의 훈련을 거친 분이셨습니다. 하나의 기술을 온전한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30,000회의 연습을 강조할 정도였죠. 또 “최선을 다한다”는 말을 아주 꺼려하셨습니다. 혹여 일이 잘못 돼도 빠져나갈 변명의 여지를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경기에 나설 때마다 항상 송두리째 ‘목숨’을 걸었습니다.”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정형외과 레지던트 3년차인 최씨는 얼마 전 동생 광수(28), 광화(22)씨와 함께 최근 아버지 최배달의 삶과 무술 세계를 담은 평전 ‘This is 최배달’(찬우물 刊)을 펴냈다. 8월 12일에는 그가 자문을 맡은 영화 ‘바람의 파이터’(감독 양윤호ㆍ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도 개봉한다.

- 전설적인 무술인 최배달
평전이 생전 최배달의 무술 이론과 철학 세계를 충실하게 고찰하고 있다면, 영화는 최배달의 영웅적인 활약상과 강한 외면 뒤에 감춰진 인간적인 고뇌를 조명하는데 집중한다. 최씨는 특히 배우 양동근이 주연을 맡은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말한다. “영화 개봉 후 아버지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영화 속 최배달의 인상을 고스란히 실제 최배달의 느낌으로 연결할 테니까요.”
무엇보다 배우 양동근의 연기력에 대해 최씨는 후한 점수를 준다. “아버지 무술 세계를 적어도 7,8할은 실감나게 그렸다”고 평한다. “촬영도중 배우 양동근에게서 젊었을 때 아버지의 모습이 저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모습을 봤어요. 경기 후 허탈해 하던 인간적인 갈등까지… 생전 아버지에 대한 고찰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알려졌다시피 최배달에 얽힌 일화는 수두룩하다. 벽돌 격파를 하면서 거들먹거리곤 하던 어느 무술가와의 자리에서 벽돌을 두 손에 쥐고 비틀어서 부숴 버렸다고 하는가 하면, 술집에서 시비를 걸던 건달 앞에서는 뚝배기를 귀를 엄지와 검지로만 차례로 뜯어냈다고 하는 ‘무한’의 힘이 화제의 핵이다.
“중 3때 생일날 아버지께서 180cm에 90kg짜리 샌드백을 선물로 주셨어요. 저는 신이 나서 날마다 이마에 땀이 이슬처럼 맺히도록 치고, 또 쳤죠. 그렇게 2년이 흐른 어느날 ‘텅텅’ 소리가 온 마당에 울리도록 샌드백을 치고 있는데 아버지가 다가와 ‘그렇게 치는 거 아니다. 멋은 있지만…’하며 질책하시더군요. 놀란 것은 그 다음 순간이었죠. 아버지가 짧은 기합과 함께 뻗은 주먹에 그 육중한 샌드백이 ‘퍽’ 소리와 함께 반으로 접혀버린 겁니다. 당시 아버지 연세가 일흔에 가까웠어요.” 그때 아들은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아버지의 저런 ‘괴력’이 그를 전설이 되게 했다는 사실을.
흔히 무廈된??만화에서는 무예 고수들이 죽기 전엔 그의 후계자에게 평생 갈고 닦은 비법을 전수해준다. 그래서 그도 생전 아버지에게 최고의 고수가 되는 비법을 알려달라고 졸라대곤 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조용히 아들을 타일렀다. “주인공이 복수에 성공한 건 비법을 전수 받아서가 아니다. 마음에 칼을 품고 자신만의 기술을 익히는데 올곧게 정진했기 때문이다.”

- 마음에 칼을 품고 올곧게 정진하신 분
세인들은 종종 그런 아버지를 시라소니, 김두한 등과 비교한다. “최배달과 시라소니가 맞붙으면 누가 이길까.” 이 같은 물음들에 일일이 답변할 가치를 두지 않지만, 때로 은근히 부아가 치민 적도 있었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모두 당대를 빛낸 뛰어난 기량을 갖춘 분들이었지만, 그런 식의 단순 비교는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무술인으로서 심신을 수련하며 ‘칼끝에서’ 인생을 사신 분입니다.”
세계 곳곳을 돌며 최고의 무예 고수들과 100여 차례 겨뤄 모두 승리를 거둔 전설적인 파이터로 사람들에게는 알려졌지만, 그의 기억 속의 아버지 최배달은 자식들에게 한없이 자애롭고 따뜻한 분이라는 무게가 더욱 크다.
“어린 세 아들의 머리를 감겨주길 좋아하셨어요.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게 하고 얼굴은 천장 쪽을 향하게 해서 눈에 비눗물이 들어갈세라 조심스레 머리를 감겨주곤 하셨어요.”
94년, 험난한 무술인의 길을 원치 않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대 시험을 준비 중에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가족 가운데 누구도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잠시 일본에 다녀오겠다고 집을 떠난 뒤, 3주 만이었다. 말기 폐암이었던 아버지는 90여 kg의 몸무게가 마지막 순간에 60kg이 될 정도로 고통 받으면서도, 끝내 자식들에게는 “소를 때려잡던 강인한 아버지로 남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아니라 산을 잃은 심정이었습니다. 사랑했다기보다 존경했습니다. 앞으로 아버지가 평생을 바쳤던 무술과 철학을 올바르게 알리는데 열과 성을 다할 생각입니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

 

( 출처 : 주간한국

출처블로그 : 한국자기개발원


"최선만으로 안된다, 목숨을 걸어라"

"아버지 무패의 비결은 자기수양과 정진이었어요"… 아들, 최배달 일대기 엮어 책·영화화

“아버님은 의외로 약한 분이었습니다. ‘무패의 파이터’였긴 했지만 말년엔 몸 이곳 저곳이 안좋아 자주 통증을 호소하곤 하셨습니다. 특히 관절이 좋지 않으셨어요. 손목이나 무릎 같은 곳이 심했습니다. 손목을 뒤로 젖히지도 못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어머님이 아버님 팔·다리를 주무르며 마사지 해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3040세대에겐 ‘고우영, 대야망’으로, 2030세대에겐 ‘방학기, 바람의 파이터’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고 최배달(본명 최영의)씨. 전북 김제에서 출생, 1939년 17세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1947년 도쿄 무도대회 가라테(空手) 부문서 우승한 뒤, 미국·남미·중국 등을 돌며 고수들과 무예를 겨뤄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는 전설적 인물. 그가 창시한 ‘극진(極眞) 가라테’는 오늘날 일본 공수도의 대명사로 군림하며 러시아·북한 등을 포함한 세계 100여개국서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배달의 장남 최광범(30)씨는 강한 아버지의 ‘인간적인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형외과 레지던트라는 직업 때문인지 그가 풀어내는 ‘기억’엔 의사로서의 개인적 소견이 양념처럼 곁들여졌다.

“젊었을 때 워낙 심하게 몸을 쓰셨던 것 같아요. 극한의 상황에서 계속 단련을 하셨으니까,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수 없었을 테죠. 아버님은 생전에 약 100번에 걸쳐 황소와 대결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 47마리의 뿔을 꺾고, 4마리는 즉사시켰죠. 그때 쓰러지는 소에 무릎이 깔린 적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400㎏도 넘는 황소가 무릎을 덮쳤으니…. 제 생각으로는 당시 미세골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것이 퇴행성 관절염으로 발전된 것이라고 봅니다. 운동을 무리하게 하는 사람들은 퇴행성 관절염을 조심해야 하거든요.”

쏘는 듯한 눈빛에 다부진 체격

부친을 닮아 그럴까? 최광범씨의 모습은 예사롭지 않았다. 탱글탱글하니 쏘는 듯한 눈빛에 프로레슬러 같은 체구, 활기 넘치는 다부진 몸집이 사진으로 본 ‘최배달’을 쏙 빼닮았다. ‘한 가락’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하. 저희 3형제가 다 그래요. 저는 174㎝에 92㎏, 둘째는 175㎝에 95㎏, 막내는 181㎝에 95㎏입니다. 모두들 운동을 좋아하죠. 저는 킥복싱과 헬스를 했고요, 둘째(최광수·29)는 체육대를 나와 킥복싱 선수로 활동했습니다. 막내(최광화·23)는 아직 학생인데 검도를 익혀 서울 검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최광범씨는 만화가 방학기씨가 스포츠신문에 ‘바람의 파이터’를 연재(1989~1993년)할 때, 작가 앞에서 실전 자세를 시연해 이해를 도왔던 무술 모델. 그런 그가 왜 ‘극진 가라테’가 아닌 킥복싱을 배웠을까?

“우리나라엔 가라테 도장이 없습니다. 아버님이 태권도와의 마찰을 우려, 고국에는 극진 가라테를 들여오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물론 가라테를 배우고 싶었었죠. 어렸을 때 아버님께 ‘좋은 도장을 소개시켜 달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님이 뜻밖의 대답을 하시더군요. ‘가장 가까운 곳이 가장 좋은 도장’이란 겁니다. ‘매일같이 갈 수 있고, 틈 나는대로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란 거지요. 저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장이 킥복싱 도장이었습니다.”

 

‘배달’은 자식들에게 “기본부터 착실히 다질 것”을 강조했다고 한다. “아버님은 항상 ‘내가 많은 사람들과 겨뤄 상대를 쓰러뜨렸지만, 그 비결은 결코 화려한 공중돌기나 발차기가 아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장의 무기는 오직 ‘정권치기’ 하나였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발차기가 화려할수록 위력적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전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님이 미국 프로레슬러 톰 라이슨과 붙었을 때 얘깁니다. 만화에선 공중에 붕 떠서, 링 3면을 돌아가면서 발로 차, 가속도를 붙여 그 힘으로 톰 라이슨을 가격한 것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상황은 그와 다릅니다. 상대도 평생을 갈고 닦은 고수 아닙니까? 그런 상대의 빈틈은 눈 깜빡하는 순간, 0.1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그 순간을 잡느냐 못잡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립니다. 그런 상대 앞에서 벽을 세 번씩이나 차면서 빙빙 돌면, 그게 통하겠습니까? 그때도 아버님의 무기는 단 한 방, 상대가 ‘깜빡’하는 그 틈을 파고든 정권치기였다고 합니다.”

 

“기본에 충실하라” 역설

최광범씨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버님을 보면 늘 ‘칼 끝에 서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습니다. 아버님은 항상 자신을 다듬으며 정진하셨거든요. 집에서도 좌선을 하시고, 천천히 산책하며 차를 마시곤 하셨습니다.”

“아버님에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은 그 말을 몹시 싫어하셨어요.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그 나름대로 열심히 해보겠다는 말 아니냐’는 거죠. ‘자기 상황에 따라 단지 성실히 노력하는 정도로는 이뤄지는 것이 적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버님은 ‘목숨을 걸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거다 싶으면 목숨 걸고 정진해야 한다’는 겁니다.”

 

‘배달’에게 최광범씨는 늦둥이다. 52세에 첫아들을 낳았으니 늦둥이도 이만저만한 늦둥이가 아니다. 무예를 위해 결혼마저도 뒤로 미뤘던 것일까?

“어머님이 일본서 유학할 때 아버님을 만났습니다. 당시 어머님은 24세, 아버님은 45세였습니다. 사실 아버님에겐 어머님을 만나기 전, 다른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일본사람이어서 집안 어른들이 인정하시지 않았습니다. 어머님을 데려오자 집안 어른들이 비로소 인정했다고 합니다. 한국인이었으니까요. 1974년에 제가 태어나자 부모님은 한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아버님은 귀국 후 한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며 생활하셨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공식적인 사회활동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무패의 파이터에게도 사생활은 있었을 터. 부부싸움이나 자녀 교육문제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배달’의 모습이 궁금했다.

“아버님은 큰소리를 내지 않으셨어요. 소리지르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부부싸움은 제가 기억하는 한 한 번도 하지 않으셨어요. 트러블이 생길 것 같으면 어머님은 아무말도 않고 그냥 가만히 계시기만 했어요. 그럼 그냥 모든 것이 조용해졌습니다.”

 

최광범씨는 ‘최배달’의 아들로서 “고교시절 동급생들의 눈길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딱 한 번 사고를 친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후회했어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는데…. 상대편 얼굴이 부서지다시피 했거든요. 의사가 보더니 ‘교통사고가 났느냐’고 물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애들이 ‘최배달 아들이 싸운다’며 우루루 몰려 나와 에워싼 채 구경하려 몰려들어서…, 저도 모르게 그만 우쭐해진 겁니다.”

10여년 전 치료비로 400만원이 나왔을 정도라니, 집에서 엄청 혼났을 법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버님은 아무 표정도 없이 ‘무술은 너 자신을 닦는 거다’라고 딱 한마디만 하시더군요.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했어요. 나중에 그러셨다더군요. ‘그래도 맞고 들어온 것 보단 낫다’라고요.”

 

‘최배달=일본인’ 일본 만화는 왜곡

최광범씨는 바쁘다. 8월 12일 개봉되는 영화 ‘바람의 파이터’의 제작 자문을 맡았고, 부친의 일대기를 엮은 책 ‘This is 최배달’(찬우물)을 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레지던트 생활 아시잖아요? 병원 일을 보면서 인터뷰도 하고 하려니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아예 휴가를 냈습니다.”

최씨는 인터뷰 말미에 최배달을 다룬 한 일본 만화에 대해 언급했다. 이 만화에는 최배달이 ‘가미카제’ 조종사로 묘사됐고 일본이 패망하자 ‘허망하다’며 눈물을 흘린 것으로 그려져 있다.

 

“아버지는 도장의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귀화했지만, 죽을 때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창씨개명을 할 때도 ‘배달’이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그런데 철저한 일본인으로 아버지를 묘사한 것은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최씨는 “시정조치가 없을 때엔 극진회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법적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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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와 아마추어.

프로와 아마추어를 생각해 보았다.
프로는 무엇이고 아마추어는 무엇인가?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 왜 프로는 프로일 수 밖에 없고 아마추어는 아마추어로 계속 남을 수 밖에 없는 지에 대해 곰곰히 진지하게 내 자신을 성찰하며 글로 풀어보고 싶다.

 

톨스토이의 글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젊은이가 길을 가다가 사자를 만났다. 갑자기 피할 길이 없자 젊은이는 칡넝쿨을 잡고 우물속으로 몸을 피했다. 우물 바닥에는 새파란 독사 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위에는 사자요, 아래는 독사떼가 기다리는 절박한 상황이다. 여기다 설상가상으로 위를 보니 흰쥐, 검은 쥐가 나타나 칡넝쿨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이 우리네 사는 인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젊은이의 선택은 무엇일까? 나는 여기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나온다고 분명히 자신할 수 있다.

 

차민수씨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드라마 올인의 실제 주인공이자 세계 포커 챔피언이었고 프로 바둑기사이기도 하다.
올인의 이병헌의 연기가 돋보여 종영된 타짜의 주연도 장혁이 아닌 이병헌이 맡았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본다.
그는 진정한 승부사다. 빠른 판단과 결단을 내려야 하는 도박의 세계. 어쩌면 삶 자체가 도박이 아니겠는가?

 

 

아마추어는 시야가 좁다.

시야가 좁은 것은 틔이지 않은 시각 때문이다. 처음에 운전을 배우면 앞만 보는 이치와 같다.
아마추어는 스스로 무너진다. 프로는 서서히 무너지지만 아마추어는 언덕에서 굴러내니는 것처럼 가속도가 붙는다.
포커에서 상대편의 돈을 30% 가져오는 데는 2-3시간이 걸리지만 나머지 70%돈을 가져오는 데는 30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다.

아마추어는 본전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계속 붙잡고 있다가 몽땅 잃고 만다. 아니다 싶으면 20-30% 손해를 봤더라도 털어버릴 줄 알아야 한다. 적게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마추어는 돈을 좀 벌면 빨리 튀려고 한다. 주식으로 말하면 단타다. 반면 프로는 이기면 느긋하다. 이겼다 싶으면 이번에는 많은 차이로 이기려한다.
그래서 마음의 여유와 베짱을 배워야 한다. [대망]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절대 서둘지 마라... 것처럼 자신을 은인자중하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프로의 특징]

 

1.프로는 상대의 패와 심리를 자로 재듯 정확하게 읽어내는 사람이다.

 

"포커를 자주 치는 사람이 50-200명 정도 된다. 프로는 그들의 실력,매너,습관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기억에 넣어 놓고 필요하면 사진 현상 하듯이 꺼내 쓴다. 이미 나왔던 패들,딜러가 끝난 카드를 겉더가는 순간도 외워버린다.단 1%의 쓸모라도 있으면 외워버린다." 책을 다 외웠는데 시험에 한 문제도 안 나올 수도 있지만 한 문제라도 맟추기 위해 외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2. 프로는 한발 물러나 앉아 공부하는 사람이다.

 모든 것을 주위환경으로 돌리는 사람이 많다. 경제탓, 사람탓, 고유가탓, 그 탓탓탓이다. 탓탓탓 하는 사람은 평생 탓만 하며 탓으로 끝날 사람이다. 가장 무책임하고 가장 아마추어도 못 낄 사람이 하는 이 변명의 습관을 버려야 한다.
누구나 조건은 똑같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헤쳐 나갔는가? 내가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 내 탓임을 알아야 한다.
인정하고 반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이게 공부이고 자기반성이며 프로로 가는 정석의 길이다.

 

3.프로는 제대로 된 자신감을 갖는 사람이다. 


제대로 된 자신감은 쌓아온 실력과 자신의 내면을 성찰해 온 사람이다.

"내가 세계1위였지만 100위 혹은 1000위와 실력차가 얼마나 될까? 손톱만큼이나 될까? 그래도 평생을 뒤집지 못한다. 바둑에서 이창호를 한 번은 이길 수 있겠지만  한 번의 승부는 의미가 없다." 차민수 씨의 말이다.
그렇다. 처음에는 자신감이 없을 수도 있다. 차차 이기는 레코드를 쌓아나가면 이긴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인생과 삶의 수단에서도 마찬가지도 한순간도 허투로 살지 않고 고심하며 진심어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삶의 진정한 고수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한 번 울린 승전보는 두 번이 되고 세번,네번으로 이어진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고 성공도 해 본 사람이 더 잘 할 수 있다. 프로의 느낌을 가져본 사람은 안다. 그 희열의 뿌듯한 쾌감을 말이다. 

 프로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닥친 난관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멋지게 역전시키는 사람, 뒤얽긴 실타래를 풀듯이 어떤 문제가 닥쳐도 눈빛을 온유하며 유연하게 풀어내는 사람, 누구나 no라고 말하지만 yes로 180도 뒤집는 사람. 자신 스스로가 경쟁력이고 상품이자 하나의 브랜드된 사람.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다. 과거, 미래도 중요하지만 당장 오늘 하루를 제대로 이기는 사람만이 진정한 프로다.

프로는 자신의 삶, 사업,영업,인관관계, 모든 인생의 어울림에서 감동을 주는 사람이다. 자신의 마음을 인내하고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이는 자가 진정한 프로다.
움직인 마음이 모든 세상의 자물쇠을 여는 열쇠이다. 안된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방법밖에 없다. 무조건 잘 된다만 생각하면 되는 길만 보일 것이다. 이것이 프로의 특징이다.
프로는 멋지다. 멋진 사람은 그 이상의 멋짐을 더 보여주는 최고의 실력자다.
그대여!
한 쪽 눈을 웃음지으며 윙크해보아라. 세상은 그대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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