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고향은 전북 진안입니다.
흔히 무진장 골짜기라고 합니다.
지금도 고향에 가끔 가면 30년전의 그 모습 그대로 별로 변한게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자신을 시골깡촌 촌놈일고 소개를 가끔합니다. 사실이 그러하니까요.
네 나이 7살로 기억됩니다. 1978년입니다.
아버지께서 어떤 마음을 드셨는지 마을하고 한시간 멀리 떨어진 곳에 외딴집을 지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지으셨는지 돌아가신 아버지께 지금도 묻고 싶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전원주택이지요.
이웃이라고는 한채도 없는 홀로 말 그대로 외딴집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적 싶은 그런 외딴집입니다..
집 앞에는 강이라 하기에는 크고 냇가로 하기에는 작은, 그런 강물이 흐르는 곳에
앞산에는 200미터가 넘는 작은 산이 있었답니다.
바위도 많고 여러 물고기들과 동물들의 노래소리가 나는 곳입니다.
집은 대지보다 약간 높은 둑에 집을 세채로 지으셨답니다.
한채는 부모님과 할머니,저희 5형제들이 사는 집
두번째는 오리와 닭,소,염소 등 가축들이 사는 곳
세번째는 여러 생리현상과 농사 지을 때 쓰는 연장 넣어 두는 곳.
그 주위로 나무들이 굉장히 많았고 지대가 확 트여 넓었답니다.
그 넓은 곳에 논과 밭, 자연이 숨쉬고 친구들의 집은 멀어 보이지도 않는 멀리 떨어진 그 외딴집.
그림이 살짝 그려지시나요? 좋겠다고요.
어머~ 낭만있겠다. 전원생활이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노래는 분명히 맞는데 3주만 살아보시면 그 말이 쏘옥 들어갈 겁니다...
그 당시 현실이 다 그렇듯 시골생활 참으로 가난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먹고,먹은 힘으로 또 일하고..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는 표현이 참 맞을 겁니다.
(쾌 동네에서 부자라고 소문났다는데 아버지가 술을 엄청나게 좋아하셨던지라...)
가난했는데, 그보다 더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린 시절 형제들 너나 할 것없이 어린 고사리같은 손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작은 농사일을 시작하여 소 꼴베고,모심고,돌나르고.거름 져나르고
가을에는 낫으로 벼 베고 겨울이면 낮에는 땔감하고 밤에는 소죽을 끓이곤 했습니다.
자갈밭을 옥토밭으로 개간하고 논밭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린이날에 한번 놀아보는 게 소원일 정도로 일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면 거짓말이라고 안 믿는 분고 계십니다. 하지만 30대 후반이나 40대 가난한 집에서 자란 사람들은 거의 일상이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가난한 것이 죄는 아니지만,참으로 먹고 살기 힘든 시기였습니다. 지금도 주위에는 그 당시보다 더 어려운 이웃이 많습니다. 시대만 변했을 뿐이지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당시 가난했던 그 삶의 견뎌낸 생활들이 제 인생의 거름이었나 봅니다.
웬만한 고난이나 실패는 두렵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외딴집에 살면서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답니다.
여름이면 고기도 많이 잡았습니다.
천렵이라고 앞 냇가에서 웃통을 벗고 멱감으며 물고기잡아 어른들은 매운탕에 소주 한잔 걸치시고 어린 나는 고기만 먹고 물가에서 수영도 하고 대수리도 잡습니다. 고동이라고도 하죠.
많이 잡아서 동네에 내다 팔기도 하여 아르바이트도 했죠.
수영이 지치면 나무 그늘에서 늘어지게 한숨도 잡니다.
참으로 행복하고 깊은 단잠이었지요.
겨울이면 "토끼가 너희들을 잡겠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셔도 동생과 둘이서 온 산을 헤메며 토끼를 잡으려 돌아다녀 옷을 흠뻑 젖은 일도 많았답니다.
이사 올 때 심었던 복숭아,사과나무,배나무도 어느 덧 초등학교 6학년때에는 엄청 크고 좋은 맛으로 자랐습니다.맛있고 크다는 소문 때문에 도시에서 찾아와서 많이 사고곤 했습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어 아이 머리 크기 만할 정도로 컸답니다.
당연히 그럴 수 밖에요.
몇년전 추운 겨울날 아버지께서 500원 주신다기에 쾡이와 삽으로 키만큼 파서 심운 과일나무이자 여러 거름 배설물들을 주어서 키워온 정성의 결정체인걸요.
가을이면 한해 열심히 하여 지어진 곡식들과 여러 호박,감자,고구마, 콩과 곡식들을 캐는 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에게도 행복으로 다가 왔습니다.
부자라는 것이 무언지 모르는 때였지만 겨울내내 먹을 수 있는 곡식이 있다는 것이 지금 생가갛여도 흐뭇하고 뿌뜻한 행복으로 다가 오는 시간이었습니다.
길고 추운 겨울이 오면 외딴집에는 그리 할 일이 많지 않습니다.
낮에는 땔감하느랴 몇시간 보내고 저녁에는 짐승들 밥주고 소죽 끓입니다.
그 군불에 고구마, 가래 떡 구어먹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리고 밥먹고 난후 그 긴 겨울밤을 뭐하고 보내겠습니까?
어린 그 시절부터 전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스승인 책을 만나게 됩니다.
전기불이 들어오지 않던 시절, 호롱불 밑에서 그 불빛에서 읽었던 그 독서가 지금도 눈을 감으면 저절로 생각이 납니다.
아스라히 잊혀진 것은 잊혀졌지만 그래도 생각이 나는 그 때 읽었던 위인전들과 모험이 담긴 소중한 책들...
몇번을 읽어서 지루해지자 해가 뜨는 낮에 눈속을 뚫고 먼 마을로 걸어갑니다.
한시간을 넘게 걸어가서 친구들 집집마다 다 들려서 책을 빌려오는 그 즐거움은 아마 모르실 겁니다.
한권 한권. 가방에 넣어 메고 오는 약간은 무거운 가방의 무게. 그 무게로 느껴지는 들뜸과 희열이 나는 그 기쁨.
홀로 다시 외딴집으로 돌아오는 소년의 가슴에 발책이라는 이 든든한 친구가 있어 외롭지 않고 발걸음은 더욱 재촉됩니다.
방학 때 이 책들이 있으니 이제 안심이구나. 하는 마음이 든 거죠...
그때부터 책은 저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지금까지의 독서습관이 된거죠.
어렵고 가난한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그날 부모님과 같이 사는 즐거움이 있었고 언젠가 우리도 저멀리 보이는 동네로 이사 갈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 좋았답니다.
이 책은 그런 저의 희망이 담긴 글입니다.
글 속에는 저의 모든 것이 있습니다.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 성격,됨됨이, 꿈,목표, 살아가는 방법, 등등 모든 것들을 목욕탕에서 알몸이 되듯이 솔직하게 보여주고 이야기하려 합니다.
제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더운 여름입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씨앗을 뿌리는 봄을 지나 어느 덧 자란 벼에 잡초도 뽑아주고 농약도 하고 비료도 주는 그런 여름에서 퇴약볕에서 서있습니다.
밀집모자 하나 둘러 쓰고 인생이라는 논과 밭에서 벼를 가꾸고 밭을 일구는 그런 농부입니다.
농부는 1인기업가입니다.
어머니 몸속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철저한 1인기업가입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고 멋지게 꿈과 목표를 이루는 멋진 1인 기업가입니다.
1. 제 자신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40세가 되기 전에 39살에 열심히 살아준 제 자신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살아준 제 자신에게 참 고맙더라구요.
2. 전문가가 된 다음에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되기 위하여 이 글을 써봅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런 생각과 꿈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지구촌에서 제 존재의 감히 세상에 한번 알리고 싶었습니다.
3.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우주가 있습니다.
모든 시작과 끝도 자신에게 있습니다.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엮어서 만든 단하나의 실전영화
알몸으로 시작합니다.
보통사람이 보통사람에게 들려주는 소박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왜 이 책을 써야 하는가?
독자는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나와 독자는 이 책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이 것이 책을 쓰는 내내 제가 제 자신에게 주는 난제입니다.
이 책을 든 모든 분들께 멋진 1인기업가 정신을 드리는 게 저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아들과 아내가 물에 빠졌다면 저는 먼저 아내를 구합니다.
그리고 두 아들도 무조건 구합니다. 그런 소중한 저의 아내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언젠가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너를 위하여 책을 쓰겠단 약속을 한 친구보다 더한 친구 강재구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사랑과 인내를 가르쳐준 어머니와 형제들, 개구장이 두 아들, 설빈 찬빈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이제 저와 단둘이 손잡고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 볼까요....